1980년대의 이란-콘트라 스캔들은 세계사의 과거 수 세기 동안 흔히 사용된 쿠데타 방식이 아닌 합법적 선거로 선출된 공모자가 시민의 권리를 침해한 음모였다. 이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음모론자들이 품어온 우려가 구체화된 사례다. - P67
2010년대에는 2016년 대통령 선거 준비 기간의 광기로는 충분치 않다는 듯이 선거 기간과 트럼프 당선 후 기이한 음모론이 속속 등장했는데, 그중 하나는 트럼프의 유세 현장에서 지지자 중 일부가 ‘Q‘와 ‘QAnon‘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었다는 음모론이다. - P68
또한 이런 음모론은 2016년 ‘피자게이트Pizzagate‘ 음모론으로 이어졌는데, 이 음모론의 주창자는 아무런 증거도 없이 힐러리가 피자 가게에서 아동 성매매 사업을 하고 있다는 황당한 주장을 펼쳤다. 터무니없는 소리 같지만 피자게이트 음모론을 믿은 한 젊은남자가 변태 행위를 척결하겠다며 AR-15 소총으로 한 레스토랑 가게를 난사했다. 다행히 아무도 다치지 않았지만 음모론적 망상의 힘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 P69
거짓은 진보를 가로막을 수 없다
탈진실 시대의 진실스러움에 대한 진실
마이클 셔머 Michael Shermer
어휘는 생각을 구체화한다. 따라서 사전학자들은 어휘의 용법과 의미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추적한다. 그 속에는 문화적 동향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 P151
2017년 1월 22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후, 그의 선임고문인 켈리앤 콘웨이 Kellyanne Conway는 NBC <밋 더 프레스Meetthe Press>에 출연해 백악관 대변인 션 스파이서 Sean Spicer가 취임식관람객 규모에 대해 잘못된 진술을 한 것을 옹호하며 ‘대안적 사실‘이란 단어를 사용했다. (후략).³ - P151
3 Interview with Kellyanne Conway. January 22, 2017. NBC Meet the Press. https://nbcnews.to/2wjC7bB - P164
그해 독일의 언어학자들은 대안적 사실을 ‘올해의 비언어‘로뽑았다. 이후 ‘가짜뉴스fake news‘라는 용어는 한 해 동안 사용량이 365퍼센트 증가하며 일반적인 용어가 되었다. - P152
우리는 정말로 진실스러움, 가짜뉴스, 대안적 사실로 대변되는 탈진실의 시대를 살고 있는가? - P152
하버드대학교의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는<스켑틱> 21호에 기고한 글 ‘탈진실을 넘어 사실의 세계를 향하여‘에서 왜 그렇지 않은지 설명한다. (중략). "우리는 탈진실의 시대를 살고 있다"라는 문장은 참인가? 만일 그렇다면 이 말은 진실일 수 없다." 다시 말해 당신이 이 말이 참이라고 주장한다면 당신은 논증을 하고 있는 것인데, 이는 당신이 이말이 참인지 아닌지를 결정하기 위해 고심한다는 뜻이고, 따라서 우리는 탈진실의 세계에 속해 있지 않다는 뜻이다. - P152
정치적 프로파간다로서의 탈진실은 분명 진실이 이용(또는 오용)되는 한 가지 방법으로 핑커와 나 또한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매킨타이어는 핑커(그리고 그 외 다른 사람들)의 탈진실에 대한 주장을 (1) 진리는 중요하지 않으며, (2) 진정으로 진리를 신경 쓰는 사람은 더 이상 아무도 없고, (3) 아무도 진리를 찾을 수 없으며, (4)이 시대가 정말로 탈진실의 시대라면 우리는 그냥 다 포기하는 편이 낫다는 주장으로 일축하며 핑커가 허수아비 때리기를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 P154
한나 아렌트가 썼듯이 어떤 사람들은 분명 사실과 허구, 거짓과 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중략). 그러나 사람들이 실재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이 정말로 사실인가? 이들은 다른 정치적 노선을 지지하고자 사실을 왜곡해서 보고 있는 건 아닐까? - P154
언론인인 캐머로타는 범죄율의 장기적인 감소에 주목하고 있지만, 정치인인 깅리치는 사람들이 범죄에 대해 느끼는 두려움에 호소하여 지지자를 결집하려 한다. 깅리치는 시카고 · 볼티모어 · 워싱턴 등 최근 범죄율이 치솟은 도시들의 통계를 인용했고, 이 수치가 사실임을 캐머로타도 인정했다. 두 사람이 인용한 통계는 모두 사실이며, 따라서 최근에 등장한 탈진실스러움의 사례로는 볼 수 없다. - P156
그보다는 1940년대 이후 등장한 추억의 ‘스핀 닥터**‘가 탈진실스러움에 더 가까운 사례다.
** 정부의 입장과 정책을 국민들에게 설명하는 대국민 언론 담당자. 어떤 사안에대해 정부에 자의적으로 유리한 해석을 내리는 사람을 이르기도 한다. - P156
탈진실이란 개념조차 새로운 것이 아니다. 《옥스퍼드 사전》은 탈진실이란 단어의 연대를 1992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 P157
즉 탈진실스러움이란 별로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소셜미디어를 통해 가용성 편향이 최대치로 증폭됨에 따라 2016년 ‘탈진실‘이란 단어는 그 이용 빈도가 이전 해에 비해 2000퍼센트 급증했고 《옥스퍼드 사전》이 선정한 올해의 단어가 되었다. 《옥스퍼드 사전》은 이 단어를 "여론의 형성에 있어서 감정이나 개인적인 신념에 대한 호소보다 객관적 사실의 영향력이 더 낮은 상황을나타내거나 그와 관련된 단어"로 규정했다. - P159
사전 편집자들이 탈진실 언어가 급증했다고 염려하고 정치 전문가들은 진실의 종말을 고하며 (여러분이 감당할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공화국이라고 선언하는 오늘날, 사상의 인터넷은 비이성의비자유주의자들에 대항하기 위한 도구로서 ‘실시간 사실 확인‘을이용해왔다. 정치인들이 연설 중 낡고 오래된 스핀 닥터 기술을 이용해 진실을 이용하려 들면 팩트체커들이 그 연설에서 오류와 거짓말을 추적하고 진실, 대부분 진실, 반쯤 진실, 대부분 거짓, 순거짓말 중에서 등급을 매긴다. - P160
인지과학자 위고 메르시에Hugo Mercier는 2020년 저서 《어제 태어나지 않았다Not Born Yesterday》에서 제이슨 브레넌Jason Brennan의 《민주주의에 반대한다Against Democracy》를 인용하며 "인간은 속기 쉽고 인간의 뇌는 진실을 추구하도록 배선되어 있지 않으며 지나치게 권위에 의존하고 획일적인 의견에 굴복한다는 생각에 반하는 증거"가 무수히 많다고 말했다. - P160
메르시에가 말하듯이 "기본적으로 우리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접하면 그것에 저항하는 태도를 취한다. 다른 적절한 단서가 없을 때 그 아이디어가 우리의 선입견이나 기존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의도와 맞지 않으면 우리는 그 아이디어를 거부한다. 인간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에 걸쳐 신중히 지속된 신뢰, 명확히 입증된 전문성 그리고 건전한 논증이 필요하다."²¹ - P161
21 Mercier, Hugo. 2020. Not Born Yesterday: The Science of Who We Trust and WhatWe Believe.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257, 270-271. Quotes fromrennan are in: Brennan, Jason. 2019. Against Democracy, Princeton, NJ: PrincetonUniversity Press, 8. - P165
메르시에는 왜 잘 속는 동물은 진화할 수 없었는지를 보이며책을 시작한다. - P161
메르시에는 히틀러와 관련해서도 대부분의 독일인이 나치 이념과 나치 정권이 제시한 대부분의 강령을 수용한 것은 아니라는 강력한 증거를 제시한다. - P162
사람들은 흔히 "어떻게 그토록 많은 지적이고 교양 있는 고학력의 독일인이 나치가 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 정답은 "대부분은 아니다"이다. 소련이나 북한과는 달리 나치 정권은 ‘다원적 무지pluralistic ignorance‘ 위에 세워졌다. 다원적 무지란 어떤 사안에 대해자기 자신은 그것을 믿지 않지만 집단 내 다른 구성원이 그것을 신뢰할 것이라는 믿음을 말한다. - P163
과학자는 어떻게 가설을 만드는가
전주홍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생리학교실
과학에서 가설의 중요성은 이미 여러 과학철학자가 지적한 바 있다. 칼 포퍼 Karl Popper는 《과학적 발견의 논리Logic of Scientific Discovery》에서 시험할 가설이 없다면 자연을 적절하게 관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 P177
이런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과학자에게 가설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어딘가 불편한 표정을 지을 것이다. 대개 과학자들은 개별 가설들의 타당성에만 관심을 기울일 뿐 가설 그 자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고민해볼 일이 잘 없기 때문이다. - P177
무엇을 설명하려 하는가
가설은 과학 연구의 출발점이다. 따라서 가설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연구 목적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과학 연구는 측정결과를 바탕으로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일반적으로 의생명과학에서 말하는 설명은 법칙보다는 기계론 혹은 기전mechanism에 근거한다.² - P178
2 Bechtel & Abrahamsen. Explanation: a mechanist alternative. Stud Hist Philos Biol Biomed Sci. (2005) 36, 421-441 - P194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은 용어나 개념을 정의하는문제는 대개 철학의 영역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⁵ 실험실에서는 가설, 설명, 기전, 인과관계, 환원주의라는 개념이 서로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지만 이 개념들을 명료하게 정의하고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 P178
5 Machamer et al. Thinking about mechanisms. Phil. Sci. (2000) 67, 1-25; CraverCF, Darden L. Mechanisms in biology. Introduction. Stud Hist Philos Biol BiomedSci. (2005) 36, 233-244: Allen GE. Mechanism, vitalism and organicism in latenineteenth and twentieth-century biology: the importance of historical context. Stud Hist Philos Biol Biomed Sci. (2005) 36, 261-283; Nicholson DJ. The concept of - P194
학술지에 투고한 논문이 거절될 때 흔히 접하는 심사 의견 중의 하나가 "기계론적이지 않고 너무 기술적descriptive이다"라는 것이다.⁷ - P178
7 기술적인 것과 기계론적인 것을 구분하는 뚜렷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과학자나 학술지 편집진도 이런 용어의 개념을 명료하게 정의하여 사용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맥락적 이해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의생명과학에서 물리적 정체나 실체를 밝혔던 연구는 대부분 기술적인데, 이는 세포막의 조성이단백질과 지질로 구성되었거나 염색체가 핵산과 단백질로 구성되었음을 밝힌 연구를 떠올리면 금방 이해될 것이다.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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