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냥 보러 나왔어요."
흑인 여자 하나가 말했다. 또 다른 흑인 여자는 울기 시작했다. (중략).
"아니 저 여자를 위해 눈물을 흘려? 저 여자가 언제 우리를 위해울어준 적이 있어? 어디 말해 봐!"
나도 이제 고개를 돌렸다. 우리 집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하늘은 황혼이 지는 것같이 노랗고 빨간색으로 물들었다. 다시는 쿨리브리를 볼 수 없으리라고 나는 생각했다. 모 - P62

"이모, 서랍 속에서 리본으로 묶인 내 땋은 머리를 찾아냈어요. 처음에는 뱀인 줄 알았어요."
"네 머리칼을 잘라야 했단다. 네가 계속 아팠어. 그러나 이젠 나와 함께 있으니 안전해. 내가 우리는 모두 안전하리라고 말했었지? 침대에서 몸조리를 해야 한다. 왜 방 안을 왔다 갔다 하니? 네 머리는 잘 자랄 거다. 더 길게, 그리고 숱도 더 많아질 거야." - P63

"피에르는 죽었지요?"
"피에르는 여기로 오는 도중에 죽었단다. 가엾은 녀석."
‘그 전에 죽었어요.‘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너무 피곤해서 말을 잇지 못했다. - P64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날이었다. 나는 크리스토핀과 함께 가겠다고 졸랐다. 내 몸이 아직 성치 못한 때문인지 어른들이 내가 원하는 대로 하라고 허락했다. 마차를 타고 가는 도중 멍하니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던 내 모습을 지금도 기억한다.  - P65

 어머니가 나를 어찌나 꼭 껴안으시던지나는 숨을 쉴 수도 없었다. ‘이건 내 엄마가 아니야.‘ ‘아니야, 엄마가 맞아. 틀림없는 내 엄마야.‘ 어머니가 문 쪽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다시 나를 바라보셨고, 그러고는 또 문 쪽을 바라보셨다. 나는 감히 "피에르는 죽었어요." 라고 말할 수 없어 고개만 가로저었다. - P66

수녀원으로 가는 날 나는 코라 이모를 꽉 껴안고 놓지 못했다. 인생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그 인생에 죽어라고 매달리듯이 나는 그날 이모에게 죽어라고 매달렸다. - P66

"저 미친 계집애를 좀 보라지. 네 엄마처럼 너도 미쳤지? 네 이모가 너를 왜 수녀원에 보내는지 알아? 너를 집에 두기가 무서운거야. 수녀님들이 너를 수녀원에 가두어두라고 보내는 거란다. 네 엄마는 미쳐서 신발도 양말도 안 신고, 게다가 속바지도 안 입고돌아다닌다며? 네 양아빠를 죽이려 했고 네가 시골집으로 찾아갔을 때는 너도 죽이려고 했다더라. 네 엄마 눈도 네 눈도 유령의 눈이야. 왜 나를 똑바로 못 보는 건데?"
괴상하게 생긴 남자아이가 말했다. - P68

나의적 빨강머리 소년이 담장을 따라 저쪽으로 뛰어가는 게 보였다. (중략). 단지 초인종만 정신없이 눌러댔다.
드디어 수녀원 대문이 열렸고, 흑인 수녀님이 고개를 내미셨다. 그러나 수녀님은 기분이 상하신 모양이었다.
"초인종을 그렇게 눌러대서는 안 된다. 나도 벨 소리를 들으면최대한 빨리 달려오는 거란다."
나는 등 뒤로 육중한 수녀원의 대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을 수있었다. - P69

"무슨 일이니? 왜 우는 거야? 무슨 일이 생긴 거니?"
그러나 나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수녀님이 내게 우유 한 잔을 가져다주셔서 마시려 했지만 목이 메어 넘어가지 않았다. - P70

"우리가 저스틴 원장 수녀님을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 라임주스 원장님이라고 해. 별로 머리가 좋은 분은 아닌 것 같아. 너도 알게 될 거야." - P71

(전략).
저스틴 원장님은 단조로운 목소리로 읽어 내려갔다.
"테오필루스, 여기 제가 장미를 한 송이 가져왔어요. 당신은 믿지 않는 그리스도, 나의 영원한 배우자의 정원에 피어 있던 꽃이에요. 테오필루스는 침대 곁에 둔 장미가 전혀 시들지 않는 것을보고 기독교로 개종했습니다." - P72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모욕하는 것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모욕하는 것과 같아요. 그들이 바로 주님께서 선택하신 분들이시니까요."
원장님은 지나가는 말처럼 아주 형식적으로 이 말씀을 하시고는 질서정연한 삶과 정조관념으로 주제를 바꾸셨다 - P73

이제 크리스토핀도 우리를 떠나 아들과 살고 있기 때문에 어머니의 근황에 대해 말해 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 P75

모든 것은 밝음 아니면 어둠으로 나뉘어 있었다. 수도원의 벽들, 정원에 피어난 꽃들의 선명한 색깔들, 수녀님들의 흰 제의. 이런 것들이 모두 밝음에 속한다면, 수녀님들이 쓰신 베일, 허리로부터 길게 늘어뜨린 묵주 끝의 십자가, 나무의 그림자, 이것들은 모두 어둠이다.  - P77

기도를 하다가 신기한 생각이 떠올랐다. 기독교에서는 왜 죄가되는 것이 그리도 많지?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또 죄가 아닌가? - P77

내가 수녀원에 살던 약 십팔 개월 동안 메이슨 씨가 가끔 나를보러 오셨다. 그는 먼저 원장 수녀님과 면담을 했고, 나는 저녁을 먹으러 가거나 친지를 방문하기 위해 옷을 차려입은 후 응접실에서 기다렸다. (중략).
마지막으로 나를 보러 오셨을 때는 무언가가 좀 달랐다. 나는 응접실로 들어서자마자 변화를 금세 알아차렸다. - P78

"거기 말고, 당분간은 자메이카에서 같이 살자. 나하고 네 이모하고, 코라 이모가 드디어 고향으로 온단다. 영국에서 한 번 더 겨울을 지냈다가는 죽을 거라고 하더라. 그리고 리처드도 함께 살자. 일생 동안 수녀원에서 숨어 살래?"
‘그러면 왜 안 되는 거지?‘ 나는 생각했다. - P78

우리가 수녀원 대문을 막 빠져나가려고 할 때 메이슨 씨는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내가 영국 친구 몇 명에게 다음 겨울은 자메이카에서 보내자고 말해 놨다. 너도 심심치 않고 좋을 것 같아서."
"여기로 올까요?"
나는 의심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한 명은 분명히 와. 그건 확실해."
메이슨 씨의 웃는 모습 때문이었을까, 나는 혼란과 슬픔. 그리고 상실감에 목이 메었다. - P79

그들은 안전하다. 수녀원 ‘밖‘의 세상이 어떠한지 그들이 무얼 알겠는가?
내가 두 번째 꿈을 꾼 것은 바로 이때였다. - P80

이제 마리 오거스틴 수녀님이 나를 기숙사의 침실에서 데리고나오신다. 내게 어디 아프냐고 물으시고, 다른 친구들이 자고 있으니 방해를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다. 나는 아직도 몸을 벌벌 떨면서 혹 수녀님이 나를 그 신비한 커튼 뒤 당신의 침대로 데려가시려는 것은 아닌지 생각한다. 착각이다. - P81

이제 어머니와 나의 꿈이 한데 섞이고 있었다.
어머니가 나닥나닥 기운 옷을 입고 빌린 말을 탄 채 돌을 깐 길위에서 내게 손을 흔들고 계신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려 나는 다시 눈물을 흘렸다.
(중략).
"너는 그런 인생의 수수께끼에 관심을 두지 마라. 악마가 왜 아직도 활개를 치고 있는지 누가 알겠니. 아무도 모른단다." - P82

제2장

그랑부아



그래, 이제 모든 것은 끝이 났다. 전진과 후퇴*도, 의심도 주저도, 좋든 나쁘든 간에, 어쨌든 모든 것은 끝이 난 거다. 

* ‘로체스터의 서술로 시작하는 2장은 ‘성의 정치학‘ 안에서 발생하는 남녀의 갈등은 물론, 제국과 식민지, 흑인과 백인, 자연과 문화, 자연신앙과 기독교, 본능의발산과 절제 등 양극을 이루는 가치관들이 대립하는 장이다. ‘전진과 후퇴‘는 전투 용어로서 그 갈등의 심각성을 예고한다고 할 수 있다. - P85

옆으로 기울어 슬픈 모습을 한 야자나무며 해안 자갈밭 위로 끌어올려진 고기잡이배들, 삐뚤빼뚤하게 늘어선 흰 오두막집들을 바라보며 나는 이 동네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매서커 (대학살)라고 해요."
"여기서 노예들이 학살을 당한 모양이지?"
"네? 아니에요."
충격을 받은 목소리다.
"노예라니요. 절대 아니에요. 아주 옛날에 일어난 일인가 봐요. 아무도 기억하는 사람이 없어요." - P86

"카로구나."
앙투아네트가 말했다.
"맞아, 카로, 캐롤라인이야."
앙투아네트가 손을 흔들자 그 여인도 손을 흔들었다. 꽃무늬가 화려한 밝은 색 옷에다 머리에는 줄무늬 수건을 매고 금귀고리를 단 이 늙은 인간은 야하고 품위 없어 보였다.
"옷이 젖지 않겠소?"
내가 말했다.
"아니요. 비가 그쳐가는데요. 뭐" - P87

(전략).
그는 자기의 이름이 영 불(젊은 황소)이며, 나이는 스물일곱이라고 말해 주었다. 또 다른 짐꾼의 이름은 에밀이고, 이곳에서 태어나 자랐다고 했다.
"몇 살이냐고 저 사람에게 물어보세요."
영불이 슬쩍 말했다. 에밀이 확실하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열네 살인가? 네, 맞아요. 열네 살이에요."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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