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다가 말다가 읽다가 말다가.
안 좋은 습관인데, 안 고쳐진다.








피고인1. 박재호.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 적용법조 형법144조2항.

피고인2. 김수만. 폭행치사. 적용법조 형법 262조. - P45

나는 법원에 제출할 의견서의 초안을 잡아보기 위해 워드프로세서를 열었다가 다시 공소장을 보았고, 다시 워드프로세서로 돌아왔다. 커서는 계속 깜빡였고 자리를 뜨지 않았다. 박재호는 물었다. 정말로 그게 답니까? 나는 그 말을 의견서 첫 줄에 적을 뻔했다. - P46

 이준형, 어감과는 달리 여자였고, 목소리가 젊고 또랑또랑했다. 마음에 들었다. 그사실은 내가 마침 점심시간이니 사무실 앞 식당에서 식사를하면서 대화하자고 제안하는 데 영향을 줬다. 나는 법원 근처의 ‘올리브 퀼트‘라는 양식당에서 그녀를 만났고, 늘 그렇게 먹는 척 미디엄 굽기의 등심 스테이크를 주문하고 후식으로는 커피를 골랐다. 그녀는 평범한 토마토소스 파스타를 시켰다. - P46

종업원이 그릇들을 가져가자 그녀는 A4용지 묶음을 꺼냈다.
"제가 지금까지 조사한 바를 정리한 거예요. 대부분 아는내용이겠지만 한번 읽어보세요. 이 사건에는 문제가 있어요."
나는 그녀의 서류를 받았다.
"사람이 두 명이나 죽었다면 ‘문제‘라는 표현으론 부족하지요."
"피해자는 경찰이 자기 아들을 죽였다고 주장하고 있죠?" - P47

"네. 박재호를 피고인이라 부르는 게 입에 붙지 않네요. 그게 이 사건에서 이상한 점이고요. 전 지금까지 강제철거를 세건 취재했어요. 경찰정보가 이렇게 폐쇄적인 건 처음이에요.
물론 사람이 죽은 것도 처음이지만, 철거당일 진압에 관계한그 누구와도 인터뷰를 할 수 없었어요. 언론과의 접촉을 철저히 막고 있거든요. 기자가 사건에 접근하기 곤란하다면 그건 많은 걸 뜻해요. 보통은 심각한 문제가 있단 걸 뜻하죠." - P47

"철거 당일에 한 시민이 현장을 녹화한 VCR 봤나요?"
난 그 질문에 당황했다. 그런 게 있냐고 대답하고 그녀에게그 VCR을 요구하는 게 옳았지만, 나는 아직 안봤다고 말했다.
"사건에 대해 잘 모르시는군요."
"저는 어제 사건을 수임했습니다." - P48

"하지만 박재호 씨 아들 박신우가 의학적으로 사망한 곳은현장이 아니라 인근 병원인 걸로 압니다. 이 기자님의 의심은합리적이지만 경찰이 박신우를 타살했다는 주장에 법률적인 증거가 되기엔 무리가 있어요. 더 조사해봐야겠지만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 P48

그녀는 잠시 침묵하고는 짧게 덧붙였다.
"VCR을 보세요. 꼭이요."
종업원이 다가와 커피를 더 마시겠냐고 물었고, 나는 사양했다. 그녀는 손목시계를 봤다. 수수한 메탈시계였다. 식사가끝난 것이다. - P49

기하여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대석이 맥주를 마시자고 했지만 거절하고 집으로 왔다. 9시가 넘어 있었다. 침대에 누워 오늘 낮 준형에게 받은 사건자료를 펼쳐보았을 때는 한 시간이 더 지나 있었다. - P49

취재자료라기보다는 수사자료에 가까운 글이었다. 전부 읽었을 때, 나는 지금 읽은 것이 이 사건과 관련하여 내가 얻을 수있는 최상의 보고서란 걸 깨달았다. 나는 부엌으로 가서 라면끓일 물을 냄비에 받아 불 위에 올렸다. 거실로 나와 그녀가 보내준 VCR을 2배속으로 훑어보고 나서 보고서가 지적한 의문지점으로 돌려 다시 자세히 살펴봤다.  - P50

초췌한 남자와 어린 아들. 천장 왼쪽 끝을 철거용역 직원들이 비집고 들어와 망루로 진입한다. 실내에서는공성과 수성의 실랑이가 벌어진다. 15분이 지났다. 지금이다.
천장 오른쪽 끝에서 진압경찰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하나, 둘, 꽤 많다. 그들이 망루로 진입한다. 경찰 몇 명이 아들에게 다가간다. 아버지가 절규한다. 경찰이 아들 머리 위로 높이 곤봉을 쳐든다.
- P50

만약에 진압경찰이 박재호의 아들을 죽였다면 법정에선 뭐가 달라지지? 일단 정당방위의 성립을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이 사건에서 정당방위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경찰과 검찰이 제시한 사실관계를 전면적으로 부정해야 한다. - P51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나는 가스레인지의 불을끄고 물이 다 증발한 후 바닥이 까맣게 타버린 냄비를 설거지통에 아무렇게나 처박아 넣었다. 시계는 새벽 1시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절실히. - P51

염만수는 느린 걸음으로 책상 쪽으로 걸어갔다. 전자식 커피포트를 꺼내 물을 끓였고, 물이 끓는 동안 나에게서 등을 보이고 서 있었다. 그의 풍채는 여전히 압도적이었고, 상상력을자극했다. 법대 강단에 선 늙은 교수의 모습. 개강 첫날 강의시간에 출석을 부른 후 300명의 이름을 몽땅 외워 학생들의 기를 죽여 놓는다.  - P52

"그거 아나? 내 강의를 들은 연수원생이 졸업을 하고 인사하겠다고 학교로 찾아온 건 처음이네. 처음이야."
"정말입니까? 그럴 것 같지 않은데요."
"법대생들은 날 좋아하지. 난 그 이유를 알아. 같은 이유로그 아이들이 변호사가 되면 날 싫어하게 돼. 하지만 적어도 내가 그치들을 싫어하는 만큼은 아니지. 반갑네, 윤 변호사." - P53

"국선전담변호사라고. 자네는 언제나 참 어렵게 사는군. 일은 어떤가?"
"얼마 전에 철거민 사건을 하나 맡았습니다. 철거 진압 도중에 경찰 한 명과 학생 한 명이 폭력 사태로 사망했어요. 제 피고인이 경찰을 죽였는데, 사망한 학생의 아버지이기도 하고요. 흥미로운 사건이죠." - P53

"교수님은 제가 아는 최고의 법률가입니다. 이 말은 진심입니다." - P53

"피고인을 상담하면 시간당 얼마를 받나?"
"국선변호사는 상담비용을 안 받습니다."
"그렇군. 난 변호사를 상담해줄 때 시간당 100만 원을 받네."
"저에겐 큰돈입니다. 그냥 이야기를 드리고 싶었는데요."
"난 농담을 자주 하지 않아. 그런데 자네는 농담을 아예 이해하지 못하는군." - P54

"그게 어떻게 진담이 되겠나. 변호사한테 낭비한 내 시간을어떻게 돈으로 환산하겠어. 식사나 하면서 얘기하세."
염만수는 책상에 앉아 전화를 걸어 누군가를 식당으로 불렀다. 우리는 서울대 경영대학의 교수식당으로 걸어갔다. - P54

"철거민 문제라면 딱 어울릴 친구를 알지.공법분야의 모든문제에 미쳐 있는 내 제자야. 지금은 형법학 교수일세. 같이 식사하면서 아까 그 이야기를 해보게 좋아서 달려들걸."
식당으로 들어가 우리는 별실로 인도받았다. - P54

이주민, 서른네 살이었고, 스물아홉 살에 서울대 법과대학의 형법학 조교수가 됐다. 그가 염만수의 눈에 든 건 대학교 2학년 채권각론 중간고사 때였다고 한다. 염만수는 답안에 적는 법률 개념에 독일어를 병기하는 사람에게 보너스 10점을 주겠다고 했는데, 일곱 장 전체의 절반을 독일어로 써낸 매끈한 논리의 시험지가 나타났다. 시험이 끝난 후 염만수는 이주민을 집으로 초대해서 저녁식사를 함께했다. - P55

이주민이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왔다. 키가 매우 컸고 체크무늬 더플코트와 구겨진 청바지를 입었다. 기껏해야 대학원생으로 보였다. 잘생긴 얼굴, 패기 넘치는 눈빛. - P55

식사가 나왔다. 젊은 교수는 스승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그는 나와 대화하는 동안 젓가락을 들지 않았다. 겸손과 조심성이 몸에 냈고, 자신의 손이 닿지 않는 세상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많은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고려해볼 만한 어떤전략에 대해서도 불가능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 P56

"나중에 저 친구가 쓴 불복종 운동에 관한 논문을 읽어보게 가관이야."
제자가 웃었다. 그 웃음에서 나는 수줍음을 읽었다.
"다른 기회에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고 싶군요. 윤 변호사님이 괜찮다면요."
"저야 영광이지요." - P56

주민은 학부생들로 구성된 공법학회를 지도하는데, 그 학회의 아이들은 미군범죄부터 철거민 문제까지 다양한 주제를 연구하며 현장 시위에까지 참여한다고 했다. 그는 법학의 미래라는 표현을 썼다.
염만수는 기름진 참치뱃살을 씹으며 그 아이들은 하나같이 성적이 형편없다고 말했다. 우리 쪽늘 쳐다보지 않았다. 혼잣말이었다.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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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재활치료용 책이 되었네.
10권 이후로 번역은 안 될 것 같지만, 그래도 나오면 좋겠다.

요번 달 안에는 다 읽고 책장 구석에 넣어놓아야겠다.
늦었지만 햇빛에 색이 바래지기 시작했다.

저격수는 망설였을 것이다. 자기를 향해 질주해오는 기기나와 표적의 도주경로를 만드는 나, 둘 중에서 어느 쪽을 노려야 하는지 기기나를 노리면 내가 벽을 구축한다. 나를 향하면 기기가 거리를 좁힌다. - P249

기기를 뒤쫓는 광선, 기기나는 생체 강화계 제2계위 세에레(飛燕)‘에 의해 근육 신경전달 물질 아세틸콜린과 에스트라제효소를 제어하고 반응속도를 제2계위 ‘세레(疾惟隼)‘에 의한 도파민, 노르아드레날린, 아드레날린 등의 카테콜아민류를 합성하여전투에 불필요한 뇌 회로를 차단, 고속 사고에 의해 고속 도약과반사를 반복하여 상대의 저격을 피하고 있다. - P249

빛 선은 기기나를 쫓아가는 것처럼 보이다가 반전. 내가 구축한금속 벽들의 열에 착탄, 열선이 수평으로 움직여 여덟 개의 강철벽을 두동강, 용해하는 절단면을 보이며 여덟 개의 벽이 뿌리부터쓰러져갔다.
여덟 개의 벽 뒤에 나는 없었다. 물론 몰딘 추기경장도, 아즈비터 의원도 도망쳐 들어가지 않았다. - P249

우선 발사부터 착탄까지 레이저를 통하는 매체인 대기에 의한 감쇄율, 의치(値)를 생각한다. 기온 15도, 1기압, V를 사정0.75334킬로미터, A를 적외선 파장 1.315마이크로미터라고 하면,
10-3×3.91÷V× (0.55/A)× (0.585×V의 0.33)이 된다. - P250

저격수도 내가 자기가 있는 곳을 정확하게 포착한 사실을 깨달았는지 왼쪽 눈에 잔인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모습으로 봐서는 소문에 듣던 사광의 브레난테겠지. - P250

먼저 세운 강철벽은 절단되었지만 헤로델과 비서관의 몸을 숨겨준다. 기기나도 제일 앞줄에 구축한 벽 뒤에 숨었다. 기기나는 잘해주었다.
브레난테의 주의는 나에게 집중되었을 것이다. - P251

브레난테의 저격, 그것 자체가 우리가 파고들 수 있게 만든 유일한 허점이다.
곧 두 장째의 벽이 열선으로 절단되었다. - P251

나는 주식을 발동하려고 깊고 깊은 의식 속으로 내려갔다. 정신의 혼돈의 세계에서 의식을 사용하여 주식을 자아내기 시작했다. - P252

주력은 다중 나선을 그리고 복잡하게 조합되어 상승해갔다. 마장검 ‘단죄자 요르가‘에 달린 보주의 연산 능력에 의해 재배열되고 다시 짜여진다.
세장째의 벽이 비스듬히 잘렸다. - P252

브레난테의 광선이 반전, 상공에서 덮쳐온다.
뒤쪽으로 쓰러지며 나는 마침내 화학 연성계 제9계위 사케(三品???鏡)‘를 발동시켰다.
물질 표면에 온갖 파장의 빛을댄경우의 반사율을 파장의 함수로서 표시했다. 광학 반사 스펙톨율로 약 98퍼센트를 자랑하는 수산화탄소 마그네슘. 그 무색의 입방계 결정을 분자 하나까지 통제한 완전 평면의 거울로 만들어 세 장을 생성. - P252

나를 태워 죽이려고 쏟아지던 ‘레라제‘ 의 광선이 하늘에서 쏟아졌다.
그러나 적외선 레이저라면 광선이 어떤 입사각으로 주식의 거울면에 들어가도 같은 각도로 반사가 가능하다. 어떤 각도로 나가면두 배 구부러지게 되고, 다음 거울에서 직각에서부터 최초의 각도를 빼고, 나오는 각도가 직각을 뺀 최초의 각도가 되면 직각 두 개분의 각도를 뺀 최초의 각도의 두 배 정도 휘게 된다. - P253

반전된 죽음의 빛은 753.34미터 앞의 상업 빌딩 옥상에 도달. 반사된 빛은 각도와 방향은 정확하지만 위치는 조금 어긋난다. 마장장궁의 끝이 아니라 광학식 단안경에 명중. - P253

빛은 렌즈를 파괴하고 내부를 관통하여 다시 렌즈를 빠져나간다.
그리고 브레난테의 시야로 날아든다. 안구를 증발시키고 뇌수를펄펄 끓인다. 경막과 두개골을 관통하여 후두부를 지나 하늘로 빠져나갔다. - P253

거기에서 한계에 달한 나는 지각안경의 증폭률을 되돌렸다. 들고있던 오른손을 내리고 상체를 지탱했다.
교회 뜰에는 정적이 퍼졌다.
앞쪽에 엎드려 있던 기기나가 도룡도를 방패로 삼으며 몸을 일으켰다.
"끝난 것 같군." - P254

나는 두 사람의 안전을 확인하고 내 몸을 보았다. 왼쪽 어깨가 깎이고 왼쪽 팔꿈치 아래가 없었다. 대지에 내던져진 오른쪽 발목 밑도 사라진 상태다. - P254

전위직이라면 이 정도 출혈이나 부상은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통상 인간보다 조금 튼튼한 것뿐인 내 육체는 한계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계를 넘은 주식을 대량 발동하여 뇌가 들끓고 신경계가 타는 것 같았다. 심신이 빈사 상태, 아니 죽기 일보 직전이겠지. - P255

8장 귀향하는 영혼


(중략)


사후 세계라고 생각했지만 그럴 리가 없다. 영혼의 불멸도, 전생도 논리적으로 믿지 않는다.
눈을 부릅뜨고 확인해보니 하얀 합판 천장이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 P261

아아, 나라는 개념이 왠지 사용하기 힘들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자 내가 누워 있는 침대 옆에 기계가 몇대나 연결되어 있다. 기계와 링거에서 뻗어 나온 이내 팔과 목에 이어져 있다.
기계 끝, 문 쪽에 가죽 구두가 보였다. 이어지는 것은 가느다란발목이다. 내 타입의 다리다. - P262

"뭣보다 묘한 치료를 하는 투자 진료소가 아니라 다행이다."
이 정도 말하는 데에도 피곤했다. 머리를 돌리고 베개에 머리를 묻었다. - P262

진짜 아파서 조금 놔달라고 왼손을 들었다. 아, 절단된 내 팔이붙어 있다. 시트 아래서 발을 움직여보니 오른쪽 발목 아래도 존재했다.
그렇다고 해서 아프다는 사실이 바뀌진 않는다. 내 가슴에 얼굴을 묻은 지브의 뺨에 손을 얹었다. 떼어놓으려다가 그만두었다.
지브의 녹색 눈에서 투명한 눈물이 흘러나와 뺨을 적시고 있었던것이다. - P263

지브와 누이 아레시엘은 어딘지 닮았다. 얼굴이나 성격에 닮은곳은 없는데, 그래도 어딘가 닮았다.
속박은 언제까지나 계속된다. 하지만 사랑스러움도 사멸하는 일이 없는 것이다.
생각났다. -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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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가고 싶다, 현대미술관. 근데 너무 멀다. 서울공화국이라는 말이 체감이 된다.


책을 밑줄을 잘 못 넣었었다.


내일은 좀 더 여유롭게, 그리고 좀 더 쉬운책을 읽어야지.

폭풍우의 전차에 쓰여 있는 그 무시무시한 이름",⁸⁴ 자유는 모든 혁명의 원리다. 자유 없는 정의란 반란자들에게 상상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의가 자유의 중지를 요구하는 시대가 온다.

84) 필로테 오네디(Philothe O‘Neddy). (원주)
"젊은 프랑스 (Jeunnes-France)‘의 멤버인 오귀스트마리 동데(Auguste-Marie Dondey, 1811~1875)의 필명인 필로데 오네디의 ‘파나티즘‘(불과불꽃 1833)li - P189

 이 모순이 현저해지면서, 우리 시대의 혁명가들은 프랑스 혁명 후 입법 의원들의 얼굴과 연설들에서 광채를 발하던 그 행복과 희망의 표정을 짓지 못한다. 이 모순은 불가피한 것일까? 이 모순은 반항의 가치를 특징짓는 것일까, 아니면 그것을 배반하는 것일까? - P190

혁명, 특히 유물론적이고자 하는 혁명은 다만 과격한 형이상학적 십자군에 불과하다. 그러나 전체성(totalité)이 곧 통일성(unité)일까? - P194

20세기 혁명의 독창성은그것이 처음으로 아나카르시스 클로츠⁸⁷의 오랜 꿈인 인류의 통일, 그리고 역사의 결정적인 완성을 실현하겠다고 공공연히 나섰다는 데 있다. 반항의 운동이 ‘전제냐 무냐‘에 이르렀던 것처럼, 또 형이상학적 반항이 세계의 통일성을 원했던것처럼, 20세기의 혁명 운동은 그 논리의 가장 명료한 귀결에 이르자 손에 무기를 듣고 역사적 전체성을 요구한다. 반항은 그리하여 혁명적인 것이 될 것을 강하게 요구받는다.

(중략)

87) 장바티스트 클로츠(Jean-Baptiste Cloots, 일명 Anacharsis Cloots,
1755~1794) 프로이센 출신의 혁명 사상가 1776년에 파리에 와서 백과전서파에 가담했고 혁명을 지지하며 ‘인류의 웅변가‘, ‘인류의 시민‘으로 자처했다. - P193

다시 말해서 공간상에서 분명하게 표현되는 변전 운동도 시간적인 차원에서는 단지 어림짐작한 근사치일 뿐인 것이다. 19세기에 사람들이 경건하게 인류의 점진적인 해방이라고 불렀던 것도 밖에서 보면, 스스로를 넘어서서 사상 속에서 스스로의 형태를 모색하려 하지만 아직 하늘과 땅에서 모든 것을 안정시킬 결정적 혁명에는 이르지 못한 일련의 끊임없는 반항의 연속으로 비칠 뿐이다. - P192

경험에 비추어 프루통의 이 말에 한마디 덧붙인다면, 정부는 오직 다른 정부에 대해서만 혁명적일 수 있다고 하겠다. 혁명적 정부는 대부분의 시간동안 전시(戰時) 정부일수밖에 없다. 혁명이 광범위해질수록그것이 상정하는 전쟁의 판돈은 보다 엄청난 것이 된다.  - P192

오직 하나의 혁명, 즉 결정적인 혁명 외에 다른 혁명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궤도를 완전히 한 번 회전한 것처럼 보이는 운동은 정부가 수립되는 바로 그 순간에 이미 새로운 궤도 회전에 돌입한다. - P191

 더 정확히 말해서, 반항이 개인적 경험에서 사상을 향해 가는 운동인 반면, 혁명은 사상을 역사적 경험 속에 편입시키는 일이다. - P191

이론상으로 혁명이라는 단어는 그것이 천문학에서 쓰일 때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궤도를 완전히 한 바퀴 회전하는 운동이며, 완전한 공전을 거쳐 한 정부에서 다른 한 정부로 옮아가는 운동이다. 정부가 바뀌지 않은 채 재산 소유 제도만 변화하는 것은 혁명이 아니라 개혁이다.  - P190

 이 시론의 목적은 몇몇 혁명적 사실들 속에서 형이상학적 반항의논리적 귀결, 구체적 예증, 그리고 몇 가지 변함없는 주제들을 살펴보는 데 있다. - P194

대부분의 혁명은 살인에서 그 형태와 독창성을 얻는다. 모든 혁명, 혹은 거의 모든 혁명은 살인이었다. 게다가 그중 몇몇은 왕의 살해와 신의 살해까지 실천했다. 형이상학적 반항의 역사가 사드와 더불어 시작되었듯이 지금 우리가 다루는 주제는 왕의 시역자들과 더불어 비로소 시작된다.  - P194

노예가 주인에게 반항한다고 할 때, 그것은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대항하여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여러 가지 원리들이 지배하는 하늘의 세계와는 거리가 먼 잔혹한 지상의 일이다.
그 결과는 단 한 사람의 살인일 뿐이다. - P195

서력 기원이 시작되기 수십 년 전, 고대 세계의 말에 일어 난 스파르타쿠스의 반항은 이 점에 있어 대표적인 예라고 할수 있다. 우선 그것이 검투사들의 반항임을 주목할 수 있다.
즉 주인들의 구경하는 재미를 위하여 상대를 죽이든가 자기가 죽든가 할 수밖에 없는 노예들의 반항인 것이다. 일흔 명 - P195

불복종자는 예속을 거부하고 주인과의 동등을 주장한다. 그가 이번에는 자기가 주인이 되려고 하는 것이다. - P196

1793년 1월 21일 훨씬 이전에, 그리고 19세기 왕의 사역자들 이전에 이미 여러 왕들이 살해된 바 있다. 그러나 라바야크⁹⁴와 다미앵⁹⁵ 그리고 그 외 몇몇 암살자들은 개인으로서의 왕을 살해했을 뿐 그 원리를 해치려 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다른 왕을 원했을 뿐 달리 바라는 것이 없었다. 

(중략)



94) 프랑수아 라바야크(François Ravaillac, 1578~1610), 프랑스 왕 앙리 4세를 암살한 인물.
95) 로베르 프랑수아 다미앵(Robert-François Damiens, 1715~1757). 프랑스 왕 루이 15세를 암살한 인물. - P200

 이른바 자유사상, 즉 철학자들과 법학자들의 사상은 이 혁명을 위한 지렛대 역할을 했다.⁹⁶ 


96) 그러나 왕들 자신도 여기에 협조한 셈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학교적 권력에 정치적 권력을 강요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의 정당성의 원리자체를 서서히 훼손했기 때문이다(원주) - P201

앙시엥레짐하의 군주 정치는 실제 통치 면에서 언제나 자의적이었다고는 할 수 없을지라도 그 원리에 있어서는 이론의 여지 없이 전제적이었고 또 그래야만 했다. 군주 정치는 신권설에 토대를 두고 있는 것이었다. - P201

 그러나 그 정당성을 행사했던 자들은 그것을 자명한 이치로 생각했고 또 남들에게도자명한 이치로 내세웠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루이 14세는이 원리에 대해 확고한 믿음을 지니고 있었다.⁹⁸



98) 샤를 1세는 신권설을 부정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공정할 필요도, 성실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신권설을 신봉하고 있었다. (원주) - P202

 적어도 프랑스에 있어서는 왕권이 민(民)의사정을 알게 되면 흔히 귀족과 부르주아의 박해로부터 인민들의 공동체를 보호하려고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정의의 발로였던가? 아니다. 당시 작가들의 관점인 절대적 관점에서 본다면 그게 아니다. 설사민이 왕에게 호소할 수 있었다 해도 원리로서의 왕에게 반하는 호소는 할 수 없었던 것이다. - P202

사실 자유사상이 신을 문제 삼는 그 순간부터 정의의 문제가 전면에 나타난다. 그런데 다만 그 당시의 정의란 평등과 혼동되는 것이었다.  - P203

 당통¹⁰¹은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법률가와 같은 공평무사한 처사를 하지 못한다고 해서 왕을 단죄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우리는 왕을 죽이고 싶을 뿐이다."



101) 조르주 자크 당통(Georges Jacques Danton, 1759 ~ 1794). 프랑스 국민 의웓, 프랑스 대혁명의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 - P204

새로운 복음


『사회계약론』은 무엇보다 먼저 권력의 정당성에 대한 탐구다. - P204

신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간주되는 전통적 정통성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임을 이 책은 전제한다. 이 탐구는 그러므로 다른 정당성, 다른 원리들을 내세운다. - P205

전통 질서에 대한 공격은 너무나 명백한 것이어서 1장에서부터 루소는 왕권의 근간이 되는 인민과 왕 사이의 계약보다인민을 규정하는 시민 상호간의 계약이 선행한다는 사실 증명하려고 노력한다. - P205

 우리는 여기서 뉴턴의 혁명에 버금가는 것을 정치 분야에서 목격하게 된다. 권력은 그러므로 전제(專制)로부터 나오는것이 아니라 일반적 합의에 기원을 둔다. 바꾸어 말하자면, 권력은 이제 더 이상 있는 것이 아니라 있어야 할 것이다. - P206

『사회계약론』에서 우리는 일반 의지를 곧 신 자체로 상정하는 하나의 신비론의 태동을 목도하게 된다. 투소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각자는 자신의 개별 인격체를 공동의 것으로 살고 자신의 모든 권능을 일반 의지의 지고한 지도하여 맡기며 전체의 분리될 수 없는 부분으로서 공동체의 일원이 됨을 받아들여야 한다." - P206

 루소는 그리하여 주권자 자신이 그 어떤 경우에도 범하지 않을 하나의 법을 주권자 자신에게 부과한다는 섯은 정치적 공동체의 본성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선언한다. - P207

 그러나 일반의지에 복종하기를 거부하는게 일반 의지가 과하는 벌이란 오직 그를 ‘자유롭도록 강제하는 한 가지 방식에 불과하다. - P207

 인간은 그러므로 이제 더 이상 자신의 결정을 취소할수 없고, 이후 그 결정은 그의 머리 위에서 떠돌게 된다. 일반의지는 무엇보다 보편적 이성의 표현이고, 보편적 이성은 정언적(定言的)이다. 새로운 신이 태어난 것이다. -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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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 8 여성 피험자

지금까지 서술한 실험에서는 피험자가 성인 남성이었지만, 여성 40명도 연구대상이었다. 이들이 이론적으로 특히 관심을 끄는 이유는 사회심리학에서 발견한 두 가지 일반적인 사실 때문이다. 첫째, 대부분의순종 실험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더 고분고분하다(Weiss, 1969; Feinberg,
등사판 인쇄물). 따라서 이 연구에서도 여성이 더 복종적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른 한편, 여성이 남성보다 덜 공격적이고 더 공감적이라고생각한다. - P104

갈등을 다루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여성 특유의 방식이 드러났다.
실험 후 인터뷰에서 남성들보다 여성들은 자신의 경험을 자녀 양육의문제와 훨씬 더 자주 관련지었다. - P105

여성이 권위자의 역할을 하는 경우는 더욱 흥미로울 것이다. 남성피험자들과 또 다른 여성들이 이 여성 권위자에게 어떻게 반응할지 불분명하다. 여성을 상사로 두는 일은 드물다. - P105

실험 9 희생자의 계약상 한계

어떤 피험자는 암묵적인 사회적 계약에 의존해서 자신의 복종을 설명한다. 그들의 추론에 따르면, 자신들은 지식의 발전이라는 통상적으로 인정받는 가치를 추구하고자 자유의 일부를 포기하기로 실험자와 계약했다는 것이다. - P105

즉 희생자는 실험상의 권위자와 계약을 맺었고, 따라서 자신의 의무를 일방적으로 그만둘 자유가 없다는 것이다. - P106

 그 경험이 희생자에게 아무리 불쾌하더라도, 그는 계약상의 의무를 존중해야 한다. 사회는 이런 전제 위에 성립한다. - P106

이러한 주장은 경험적으로 검증이 필요할 만큼 충분히 자주 제기되었다. 이런 사고는 희생자가 실험에 임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의지에 반해서 전기충격을 받는 것에 함축적으로또는 다른 방법으로 동의하지 않았다. - P106

학습자를 전기의자에 묶기 전에 그리고 첫 번째 전기충격을 가하기 전에, 표면상으로는 두 명인 피험자들에게 학습 실험의 본질을 알려주었다. 그다음, 피험자들은 다음과 같은 내용의 일반적인 양도 양식에 서명했다.
"나는 자유의지에 따라 참가한 이 실험 연구에서 발생하는 모든 법적권리를 예일대학교와 그 고용인들에게 양도하는 바이다." - P106

펜을 손에 쥔 채 양도 양식에 서명하기를 주저하면서 심장병 때문에 자신이 요구할 때 실험을 중단한다는 조건에서만 참가하겠노라고 말한다. - P106

 배신과 명백한 권리 침해의 요소가 도입되었다. 실험상의 문제는 이것이 중요한지의 여부이다. 또는 ‘계약‘ 논쟁이 그런 상황에서 작용하는 실제 힘과는 거리가 먼 단지 철학적인 문제인가 하는 것이다.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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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기기가 밖에 나가는 수밖에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혈로를 뚫는 수밖에 없어."
"개죽음은 내 취미가 아니야."
몰딘이 항의를 했다. 다시 사당 벽 일부가 무너진다. - P246

나는 냉정함을 갖고 말을 이었다.
"그러나 몰딘 추기경장과 아즈 의원이 죽으면 츠에베른 용황 제국과 라페토데스 7 도시 동맹은 물러설 때를 모르고 분쟁을 개시할겁니다. 본격적인 무력 충돌로 발전할지도 모르지요. 그렇게 되면 헤로델의 약혼녀와 같은 비극이 일어난다." - P246

"사실 그대로 되겠지. 그리고 타인의 목숨으로 말하는 어리석은 이보다는 자기 목숨으로 말하는 어리석은 이에게 경의를 표하고싶다."
나는 한동안 생각했다. 여러 가지 단편을 조합하여 결론을 냈다.
"경의나 훈장 따위보다 원하는 게 하나, 아니 두 개쯤 있는데요."
"여기에서 살아서 나간다면 뭘 줘도 아깝지 않아."
"그렇다면 진실을 부탁드립니다." - P246

저격이 이어지는 모양이다.
"약속은 절대 기억해주십시오. 대답을 얻지 못하고 죽을 수는 없으니까."
헛기침을 한 나는 한동안 호흡을 가다듬었다. 차분해지고 나서 눈을 감고 조건을 생각했다. - P247

"하는 수밖에 없어."
"전술은?"
"도박이지만 있긴 해."
나는 기기나에게 전술을 설명했다. 기기나는 씁쓸한 얼굴을 했다. -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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