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용희 어린이 어머님 맞으세요?"
약간은 짜증스러운 어조였다. 김실자는 눈을 끔벅거리며 서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교사 최두연입니다. 이분은 사회복지사 신미현 씨고요. 아동학대 방지 차원에서 전수조사로 나왔습니다. 석용희 어린이와 함께 지낸다고 신고하신 곳이 이 기도원 맞죠?" - P137

김실자가 바닥을 내려다보던 자세 그대로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그 모양새가 마치 덜덜 떠는 것만 같아서 신미현은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
"어머님・・・・……." - P137

노인이라고 믿기힘들 정도로 분칠한 얼굴과 새빨간 립스틱을 바른 입술에 거부감이 일었다. 가늘고 길게 찢어진 눈이 뱀의 혀처럼 두 사람의 얼굴을 훑었다. 그녀가 나타나자 김실자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천주님!"
‘천주? - P138

종교적인 이유라고 했지만 종교의 수장 같은 느낌은 잘들지 않았다. 화장만 아니면 평범한 모습이었다. 의아함이 머릿속을 스치는 사이 천주라고 불린 여자가 팔을 뻗었다. 손을 잡고있던 아이가 반사적으로 두 걸음 앞으로 걸어 나왔다. - P138

"그게 안 된다면 더 이상 협조할 수 없습니다. 당신들의 법으로종교의 자유를 허하였으니, 당신들의 법으로 우리를 구속해보세요."
천주의 눈이 날카롭게 변했다. - P139

용희는 밖에 세워둔 채였다. 문이 쾅 닫혔다.
신미현은 자신을 올려다보는 아이의 작은 눈을 내려다보았다. 두사람을 경계하는 것 같았지만 엄마 뒤로 숨지는 않았다.
낮은 한숨을 쉬며 신미현이 용희의 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네가 석용희니?" - P139

가 되지 않을 터였다. 신미현은 손을 들어 아이의 머리를 가만히쓰다듬어주었다. 머리카락은 부드러웠다. 손을 만졌다. 거칠진않았다. 조금 마른 듯하지만 학대가 의심되는 정황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 P140

"어머님, 죄송하지만 아이와 면담을 먼저 하겠습니다. 10분만주시죠."
"어......."
김실자의 눈이 불안하게 여기저기로 흔들렸다. 그녀는 입술을 달막일 뿐 무슨 얘기를 해야 좋을지 모르는 것 같았다. - P140

천주가 들어간 철 대문이 앓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10분 후에 나오시죠. 아니면 저희가 들어가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 P140

"천주님! 큰일이.………. 아이와 따로 얘기를 해야 한다고……"
두서없는 그녀의 말에 책상 앞에 앉아 있던 천주가 일어섰다.
김실자와는 달리 여유로운 태도였다.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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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정리 1

여러 개의 양(quantity) 또는 이들 사이의 비율이 임의의 유한한 시간 동안연속적으로 변하면서 같은 값으로 접근한다고 하자. 주어진 시간이 끝나기전에 이들 사이의 차이가 임의로 잡은 어떤 값보다도 작으면, 이들은 결국같아진다. - P97

보조정리 2

직선 A와 AE, 그리고 곡선 ace로 에워싸인 도형 AacE가 주어져 있다.
여기에 길이가 모두 같은 AB, BC, CD, ⋯를 밑변으로 삼아 평행사변형Ab, Bc, Cd, .…를 작도하면(단 이들의 세로변 Bb, Cc, Dd, ..…는 Aa와 평행하며, 평행사변형의 개수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다) 작은 평행사변형 akbl.
blcm, cMdn,.…이 완성된다. 이들의 가로(폭)를 점점 줄여가면서 개수를무한정 늘이면 곡선 도형(원래의 도형)에 내접하는 도형 AkbLcMdD와 외접하는 도형 Aalbmcndo, 그리고 원래 도형 AabcdE는 면적이 같아진다. - P97

보조정리 3

평행사변형의 밑변 AB, BC, CD, …가 같지 않아도, 이들이 한없이 작아지면 내접 도형과 외접 도형, 그리고 곡선 도형의 면적은 궁극적으로 같아진다. - P99

부가정리 4

그러므로 위에 언급한 현들은 궁극적으로 직선이 아니며, 곡선 4E에 무한정 가까워진다. - P100

보조정리 4

2개의 도형 AacE와 PprT의 내부를 다음의 경우와 같이) 같은 개수의 내접하는 평행사변형으로 가득 채웠다고 하자. 이들의 폭을 무한정 줄여나간다고 했을 때, 첫 번째 도형의 평행사변형과 두 번째 도형에서 이에 대응되는평행사변형의 최종 면적이 모든 평행사변형에 대하여 동일하다면, AacEPprT는 면적이 같다. - P100

보조정리 5

서로 닮음 관계에 있는 도형의 대응변(직선 또는 곡선)들은 길이 비율이 모두 같고, 면적 비율은 길이 비율의 제곱과 같다. - P102

보조정리 6

임의로 주어진 매끄러운 호(곡률이 연속적으로 변하는 호) ACB와 이에 대응되는 현 AB가 있다. 현의 한쪽 끝 A에서 호에 접하는 직선을 AD 라 하자.
AD는 양쪽으로 길게 뻗어 있다. 이 상태에서 A와 B가 호를 따라 서로 가까워지다가 한 점에서 만나면, 현과 접선의 사잇각 BAD는 무한정 작아지다가 결국 0으로 사라진다. - P102

보조정리 7

 위와 같은 가정에서 호와 현, 그리고 접선의 길이는 궁극적으로 같아진다. - P103

B가 A를 향해 접근하는 동안 AB와 AD를 연장한 선 위에 와 다를잡아서, B가 어느 위치에 있건 bd와 BD가 항상 평행하도록 유지하고, 호 ACB와 닮은꼴인 호 Ac를 그려보자. 점 A와 B가 하나로 합쳐지면 <dab는 0으로 사라지고 (보조정리 6 참조), 유한한 직선 A와Ad가 하나로 합쳐지면서 그 사이에 낀호 Ac도 이들과 같아진다.
그런데 직선 AB와 AD, 그리고 이들 사이에 낀 호 ACB는 각각 Ab,
Ad, Acb와 항상 비례관계에 있으므로 결국은 이들의 길이도 같아진다. [Q.E.D.] - P103

부가정리 2

A를 지나는 또 다른 직선 AF와 AG, 그리고 B를 지나는 또 다른직선 BE, BD가 있고, BF가 접선 AD와 평행하면 (A와 B가 무한정 가까워질 때) AD, AE, BF, BG, 그리고 호 ACB와 현 AB의 길이는 궁극적으로 같아진다. - P104

부가정리 3

그러므로 이들의 최종 비율을 논할 때는 어떤 것을 사용해도 상관없다. - P104

보조정리 8

직선 AR과 BR, 호 ACB와 현 AB, 그리고 접선 AD를 조합하면 3개의 삼각형 RAB, RACB, RAD²가 만들어진다.
여기서 A와 B가 가까워지면 3개의 삼각형은 점점 작아지면서 닮은꼴 도형에 접근하다가, A와 B가 한 점에서 만날 때 닮음비는 1:1이 된다(즉 3개의 삼각형이 완전히 같아진다).

2) 이들 중 RACB는 삼각형이 아니라 부채꼴에 가깝다.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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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연설과 복잡한 묘사, 회상 장면 등이 빈번하게 도입되었고, 매번 똑같은 말로 결론짓고 있다. 이러한 ‘원형 작시법‘은 시인에게 언제 몸짓으로 돌아가야 하는지 언어적 표지를 제공했다. - P531

관용어는 두 단어(튼튼한 집‘, ‘검붉은 바다‘)일 수도, 그 이상의 단어은 백색의 발을 가진 테티스)일 수도, 혹은 두세 문장 정도의 길이일 수도있었다. 물결 치는 머릿결의 아카이아인들은 그 행의 다른 부분에 음절수가 몇 개 필요한가에 따라 때로 ‘전투로 단련되었을 수도, 때로는 그저소박하게 용감할 수도 있었다. - P532

서사시는 초기 그리스의 시였고, 서정시(서사가 없고 극이 없는 시)는 호메로스 이후 3세기가 흐른 뒤에 최고점에 다다랐다. - P532

종교제의와 가장 밀접하게 관련된 합창시는 근대 영어에 이름을 남겼다.(파에온‘은 아폴론을 숭배하는 노래였고, ‘험노스‘
는 일반적인 숭배의 노래, ‘엔코미온‘은 찬미가, ‘트레노스는 장송가였다. 이들단어에서 영어 단어 ‘paean (찬가)‘, ‘hymn (찬송가)‘, ‘encomium(찬양 연설),
"threnody (장송가)‘가 생겨났다.) - P532

서정시의 전체 흐름은 서사시와 비슷하지는 않았지만, 한때 더 작고 혁신적인 목표가 있었다. 사적 정서와 개인 경험의 삽화를 채색한 것이다.


그녀의 약하다 약한 항의를 입맞춤으로 압도하고,
요염한 손길로 그녀의 기분을 내 기분대로 녹여 주고,
그녀가 마지못해 동의하여 한숨을 쉬지 않을 때까지.
나를 황홀하게 만들어 주길.

- 사포, 「아낙토리아에 바치는 송가」(모노디 시) - P533

처음으로 시인 개인의 목소리는 시 안에서 환하게 빛을 뿜었다. 그리고 결국 그리스 서정시는 기교와 전문 용어를 빌려주면서 17세기 영국에서 폭발적으로 생산된 ‘서시‘의 원형이 되었다. - P533

덕분에 시낭송보다는 화려한 볼거리와 의상을 갖춘 희곡 공연의중요성이 점차 커졌다. 서정시인은 이미 그리스 문화의 변방으로 밀려났다.  - P534

무덤 비석에 새겨진 형태로 처음 발견된 경구는 간결하고 직설적이었다.(대리석에 시 한 편을 새겨야 한다면 짧은 시를 짓게 될 것이다.) 머지않아 그리스의 경구들은 비용이었다가 어느 상황에서도 쓸 수 있는 촌철살인의 진술로 진화했다.


누구도 파멸의 순간에
너와 친구가 되려 하지 않는다.⁵ - P534

로마의 송시

로마의 작가들은 그리스 희곡을 차용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시의 양식을 차용했다. 하지만 라틴어 희곡처럼 라틴어 시는 그리스어 시와 같은 성취에 결코 이르지 못했다. - P534

존 밀턴부터 A. E. 하우스먼에 이르기까지 영국 시인들이 대대로번역한 그의 송시에서, 호라티우스는 경험 많고 신랄하고 냉소적이지만 마음이 선한 인생의 관조자 입장을 취했다. - P535

중세 시학

중세 시학은 중세의 역사처럼 고대에서 곧장 이어지지 않는다. 이민족의 침입으로 인해 고전 희곡처럼 고전시는 잠시 자리를 잃는다. 글쓰기는 사라져 가고 그리스어와 라틴어는 직접성을 상실하며, 중세에 부상한 시는 라틴어 송시보다는 게르만의 구술 전통의 영향을 받았다. - P536

그리스 서사시처럼, 고대 영어 서사시 『베오울프』는 문자로 씌어지기 한참 전인 기원후 800년경부터 구술로 공연되었을 것이다.  - P536

궁중의 사랑과 명예 이야기로 이루어진 『거웨인 경과 녹색의 기사』의 주인공 역시 처음부터 초자연적 존재와 갈등한다. 베어진 자신의 머리통을 집어 들고 걸어가는 녹색의 기사가 바로 그 존재다.  - P538

단테의 「지옥편」이나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같은 중세 후기의시들 역시 기독교적 주제로 이루어진 작품들이다.  - P538

중세의 시학은 아우구스티누스로부터 이러한 시적 이야기들이 얼마나 성공적일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데는 유보적인 성향을 물려받았다.
결국 다른 창조와 마찬가지로 언어는 타락했고 선천적으로 부정하기 때문에 신성과 직접적인 접촉으로 이어질 수 없었다. - P538

말은 물리 영역의 일부기 때문에 진리를 가리키는 것만큼이나 쉽게허위를 가리킬지 모른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을 형성시킨 『기독교 교리에 대하여』에서 이렇게 썼다. - P539

 이렇게 언어에 사로잡히는 것은 아우구스티누스가 경고했던 ‘재주‘의 문제다. 그래서 단테의 「지옥편」은 꿈에서 일어나며, 화자는 조금 거리를 두고 진리를 보고 있는 것이다. - P539

 또한 초서는 그래서 자기가 조금 전까지 말한 모든 것을취소하며 순례를 끝맺는다. 순례하던 인물이 말재주에 미혹되어 바른 길에서 멀어지고 잘못된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잘못된 목적으로 돌아설 가능성을 생각한 아이러니컬한 염려 때문이었다. - P539

중세 신학자들은 언어가 두드리는 대로 펴지는 성질이 있어서 네 가지 층위의 의미를 포함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이야기는 다음 네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 P540

축어적(실제 이야기 혹은 표면적 의미) 의미, 우의적(때로는 ‘예형론적‘이라고도 하며, 예수나 천상의 영역과 관련된 영적 진실을 그린 삽화)의미, 비유적 (이야기에서 ‘도덕‘으로, 기독교인의 실제 삶에 적용) 의미, 그리고 신비적(반드시 최후의 시기와 관련된 죽음, 심판, 영원한 운명) 의미가있다. - P540

우의적으로, 순례자는 또한 신의 왕국과 악마의 영역 사이에서 천국으로 가는 길을 잃는다. 그는 비유적으로,
일상의 삶에서 도덕적인 요구와 맞붙어 싸우며, 신비적으로, 자신의 최후목적지인 지옥 혹은 천국으로 향해 간다. - P541

다층적 해석은 단순하고 꾸미지 않은 진리를 전달하기 어렵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의심과 토마스 아퀴나스가 『신학 대전』에서 펼친 사실에 근거한다. - P540

그는 이스라엘인들이 이집트를 빠져나오는 엑소더스 이야기를 다룬 시편 113 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만약 우리가 그 글자만(어적 의미)을 생각한다면"

편지만을 고려한다면 우리에게 의미 있는 것은 모세 시대에 이스라엘의 아이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하는 것입니다. 우화로 본다면 그리스도를통한 우리의 구원이 의미 있을 것이며, 도덕적인 의미로 본다면 영혼이 죄의슬픔과 비참함에서 은총의 상태로 변하는 것이 의미가 있겠지요. 신비적으로 본다면 이 세계의 타락이라는 굴레에서 죄를 씻은 영혼이 영원한 영광의 자유로 나아가는 것이겠지요.¹⁰ - P541

 르네상스시대의 새로운 학문은 세상과 언어가 본질적으로 불완전해서 불로써 정화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지성으로써 풀어야 하는 난제라고 보았다. - P541

시인은 신비주의자가 아니라 언어의 과학자가 될 수 있었고, 무아지경을 경험하지 않고도 신중하고 정확한 음절을 선택해서 진리를 보여줄 수 있었다. - P542

16세기와 17세기에는 시가 산문보다 좀 더 명확한 것이라고 이해되었다. 시는 시를 쓰는 이에게 언어를 신중하게 선택할 것을 강요했기 때문에 당시에 최고의 정보 전달 매체가 될 수 있었다. - P542

언어에 대한 경의는 과학뿐 아니라 청교도주의와도 관련 있다. 청교도주의자는 성경을 번역할 때 교회에서 성령의 해석에 따르기보다는성경을 신뢰할 만한 산문‘으로 번역하려고 새로이 시도했다. 간명한 언어가 신을 드러내는 힘에 높은 가치를 부여한 것이기 때문이다. - P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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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임을 확인하기 위해 구조적 지표에만 기댄다면, 『일리아드』와 앨런 긴즈버그의 『아우성』에 ‘시‘라는 이름표가 붙은 이유가 억지스럽게 보일 것이다. 내가 만든 "시는 잠망경과 같다."는 은유는 특히 볼테르의 "시는 영혼의 음악이다."라는 정의와 비교할 때 별다르게 시적이지 않지만,
각운이나 연 등 시대에 따라 변하는 명백한 구조적 표지와 구별해 시를이해하는 데 작게나마 도움이 될 것이다. - P528

7분 만에 읽는 시인과 시어의 역사

서사시의 시대

최초의 서구 시는 그리스 시다. 초기 그리스 시는 서사시다. 영웅담과 전쟁 이야기가 구전으로 산발적으로 퍼져나가다 마침내 기원전800년경에 호메로스가 글로 옮긴 것이다 - P529

그리스인들에게 시란 오늘날보다 훨씬 광범위한 영역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시란 역사보다 철학적이고 더 가치 있다. 왜냐하면 시는 일반 용어로 말하는 반면 역사는 세부적인 것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시는 보편 진리를 보여 주려고 애쓰는 언어였다. - P529

자신만의 언어 양식과 묘사 양식을 이용해 다른 사실들과 서로 조합해듣는 이들을 위해서 하나의 통일된 전체로 ‘재창조하거나 ‘만들어 낸 것이다. 『일리아드』는 실제 역사적 사건이었을 하나의 사실로 출발한다. 어느 전사가 사제의 딸을 납치한 다음 되돌려주려 하지 않자 그녀의 아버지가 요구받은 몸값을 가지고 도착한다. - P530

그렇다면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에서 시인은 어디에 있는가?
시인은 청중에게 말을 하고 있다. 이 서사시들이 수백 년 동안 구전되었고, 그래서 시인은 청중의 눈앞에 언제나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시인은 종이 뒤에 숨어 있지 않았다.  - P530

다른 보조 기억 장치도 서사시의 구성을 돕는다. 시인은 종종 앞으로 하려는 이야기의 윤곽을 잡아 주는 서막 격인 ‘차례‘ 구술로 시작하는데, 이것은 시인 자신뿐 아니라 청중이 기억하는 데도 보조 장치 역할을 한다. 이야기를 이어 가기 전에 예전에 이야기한 부분을 떠올리려고이따금 멈춰서 동작을 재현하기도 한다. - P531

그리고 자주 벌어지는잔치, 전투, 습격, 무기 시합 장면은 똑같은 반복 구조로 소개되었다. 가령 ‘전투 장면‘은 똑같은 유형을 따를 수 있었던 터라 시인이 특정 전투에대해 자세히 모른다 해도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 P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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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때 건강이 넘쳤던 머시 덱스터는 축 늘어지고 이상할 정도로 기력이 없어서 공허한 목소리와 당황스러우리만큼 창백한안색을 지닌 구정하고 가련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하인 마리아도 독특할 정도로 머시와 비슷한 특징을 하고 있었다. - P38

 그곳에서 1785년에 그의 아들 듀티가 태어났고, 상업화에 쫓겨 강 건너 언덕 너머의 에인절 가. 당시에 새로 형성된 이스트사이드 거주 지역으로이주할 때까지 살았다. - P38

그는 듀티의 후견인으로서 아이 몫의 재산을 최대한 불리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했기에, 죽음과 질병 등 세입자들에게 찾아온 숱한 변화뿐 아니라 그 저택에 대해나날이 강해지는 세인들의 혐오감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 P38

사략선 선원이 된 듀티는 그 저택에 대해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고,
1812년 전쟁 때는 카후니 선장의 비절런트 호에서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했다. 그는 무사히 귀향하여 1814 년에 결혼했으며, 기억에 남을1815년 9월 23일 밤에 아버지가 되었다. - P39

사략선 선원이 된 듀티는 그 저택에 대해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고,
1812년 전쟁 때는 카후니 선장의 비절런트 호에서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했다. 그는 무사히 귀향하여 1814년에 결혼했으며, 기억에 남을 1815년 9월 23일 밤에 아버지가 되었다. - P39

 해리스 가문의 남자로서는 유일한 생존자인 캐링턴 해리스마저 내가 겪은 일을 알려주기 전까지는 그저 그 저택이 전설이 담긴 폐가라고 생각해왔다. 캐링턴은 애초에 그저택을 허물고 아파트를 지을 계획이었으나, 내 이야기를 들은 후에는저택에 새로 수도관을 설치한 뒤 세를 놓기로 결심을 바꾸었다. - P39

내가 해리스 가문의 일대기에 얼마나 강한 인상을 받았는지는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계속 이어지는 가문의 기록에서 나는 전부터 알고있던 것을 뛰어넘는 집요한 악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악의 기운은 해리스 가문이 아니라 그 저택과 관련이 있었다. - P40

특히 앤 화이트를 비롯한 하인들은 지하실의 주방을 사용하기 꺼려했고, 적어도 세 가지의 구체적인 구전에 따르면 지하실주방의 나무뿌리와 곰팡이류가 사람을 닮은 기묘한 형상을 하거나 악마의 윤곽을 그리고 있었다고 한다. 구전 부분은 유난히 내게 흥미로웠는데, 내가 어렸을 때 목격한 것과 같았기 때문이었다. - P40

엑시터의 미신에 사로잡혀 있던 앤 화이트는 가장 터무니없는 동시에 가장 그럴듯한 이야기를 퍼뜨렸다. - P40

그러나 그녀의 이야기는 저택의 터가 본래 묘지였었다는 이유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었다. 내 판단으로는 하인 스미스가 저택을 떠나면서 ‘밤마다 내숨결을 빨아들이는‘ 뭔가가 있다고 불평한 것과 맞아떨어짐으로써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으로 보인다.  - P41

이 감정은 상당히 오랜 시차를 두고나타난 신문 기사, 그러니까 금단의 저택에서 죽은 사망자를 다룬 기사로 인해 더욱 강해졌다. 《프로비던스 가제트》와 《컨트리 저널》의1815년 4월 12일자 기사, 그리고 《데일리 트랜스크립트 앤 크로니클》지의 1845년 10월 27일자 기사가 그것이었다. - P41

그러나 더욱 당혹스러운 것은 저택의 임대를 중단하게 만든 마지막 사건이었다. 진행성 정신병을 앓다가 빈혈증으로 죽은 사람이 친척들의 목과 손목을 노리고 공격한 일이 있었던 것이다. - P42

삼촌은 거의 백 년 전의 불행한 로비 해리스를 떠올리게 하는 그 사건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곧전쟁터에서 돌아온 얼마 후부터 체이스와 휘트마시 박사로부터 직접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그 저택에 대한 역사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 P42

 당시 저택의 소유주였던 초로의 아처 해리스가 1916년에 사망하기 전까지 그와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와 함께 아직 생존해 있는 독신의 누나 앨리스로부터 삼촌이 수집한 가족사를 전부 확인받기도 했다. - P42

 늙은 선원이었던 듀티 해리스는 전사한 아들 웰컴보다 두 해를 더 살았지만 그 자신은 떠도는소문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러나 유년 시절의 보모였던 마리아 로빈스를 떠올리던 중 로비 해리스가 쏟아냈던 프랑스어에 대해 단서가 될 기이하고도 음침한 무엇을 깨달았던 모양이다. - P43

해리스 가문과 관련된 정보에 지친 나는 마을의 초창기 기록으로 관심을 돌렸고, 같은 일을 진행했던 삼촌보다 더 열정적으로 파고들었다.
내가 원했던 것은 1636년 정착기부터 시작되는 아니면 내러갠섯 인디언 전설들과도 이어져 있을지 모르는 그 이전부터의 포괄적 향토사였다. - P42

나는 아주 주도면밀하게 백 가 혹은 베니피트가가 나중에 관통하게 될 지역을 추적해 나갔다. 실제로도 일설에 의하면, 그 지역에 스록모턴 가의 가족 묘지가 포함되어 있다고 했다.  - P44

그것은 그 일의 가장 기묘한 국면중에서 몇 부분과 일치하는 자료로서 나는 조바심까지 느꼈다. 1697년의 임대 계약 기록인데, 에티네 룰레와 그의 아내에게 소량의 토지를빌려주는 내용이었다. 마침내 프랑스와 연결고리가 나타난 것이었다.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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