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연설과 복잡한 묘사, 회상 장면 등이 빈번하게 도입되었고, 매번 똑같은 말로 결론짓고 있다. 이러한 ‘원형 작시법‘은 시인에게 언제 몸짓으로 돌아가야 하는지 언어적 표지를 제공했다. - P531
관용어는 두 단어(튼튼한 집‘, ‘검붉은 바다‘)일 수도, 그 이상의 단어은 백색의 발을 가진 테티스)일 수도, 혹은 두세 문장 정도의 길이일 수도있었다. 물결 치는 머릿결의 아카이아인들은 그 행의 다른 부분에 음절수가 몇 개 필요한가에 따라 때로 ‘전투로 단련되었을 수도, 때로는 그저소박하게 용감할 수도 있었다. - P532
서사시는 초기 그리스의 시였고, 서정시(서사가 없고 극이 없는 시)는 호메로스 이후 3세기가 흐른 뒤에 최고점에 다다랐다. - P532
종교제의와 가장 밀접하게 관련된 합창시는 근대 영어에 이름을 남겼다.(파에온‘은 아폴론을 숭배하는 노래였고, ‘험노스‘ 는 일반적인 숭배의 노래, ‘엔코미온‘은 찬미가, ‘트레노스는 장송가였다. 이들단어에서 영어 단어 ‘paean (찬가)‘, ‘hymn (찬송가)‘, ‘encomium(찬양 연설), "threnody (장송가)‘가 생겨났다.) - P532
서정시의 전체 흐름은 서사시와 비슷하지는 않았지만, 한때 더 작고 혁신적인 목표가 있었다. 사적 정서와 개인 경험의 삽화를 채색한 것이다.
그녀의 약하다 약한 항의를 입맞춤으로 압도하고, 요염한 손길로 그녀의 기분을 내 기분대로 녹여 주고, 그녀가 마지못해 동의하여 한숨을 쉬지 않을 때까지. 나를 황홀하게 만들어 주길.
- 사포, 「아낙토리아에 바치는 송가」(모노디 시) - P533
처음으로 시인 개인의 목소리는 시 안에서 환하게 빛을 뿜었다. 그리고 결국 그리스 서정시는 기교와 전문 용어를 빌려주면서 17세기 영국에서 폭발적으로 생산된 ‘서시‘의 원형이 되었다. - P533
덕분에 시낭송보다는 화려한 볼거리와 의상을 갖춘 희곡 공연의중요성이 점차 커졌다. 서정시인은 이미 그리스 문화의 변방으로 밀려났다. - P534
무덤 비석에 새겨진 형태로 처음 발견된 경구는 간결하고 직설적이었다.(대리석에 시 한 편을 새겨야 한다면 짧은 시를 짓게 될 것이다.) 머지않아 그리스의 경구들은 비용이었다가 어느 상황에서도 쓸 수 있는 촌철살인의 진술로 진화했다.
누구도 파멸의 순간에 너와 친구가 되려 하지 않는다.⁵ - P534
로마의 송시
로마의 작가들은 그리스 희곡을 차용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시의 양식을 차용했다. 하지만 라틴어 희곡처럼 라틴어 시는 그리스어 시와 같은 성취에 결코 이르지 못했다. - P534
존 밀턴부터 A. E. 하우스먼에 이르기까지 영국 시인들이 대대로번역한 그의 송시에서, 호라티우스는 경험 많고 신랄하고 냉소적이지만 마음이 선한 인생의 관조자 입장을 취했다. - P535
중세 시학
중세 시학은 중세의 역사처럼 고대에서 곧장 이어지지 않는다. 이민족의 침입으로 인해 고전 희곡처럼 고전시는 잠시 자리를 잃는다. 글쓰기는 사라져 가고 그리스어와 라틴어는 직접성을 상실하며, 중세에 부상한 시는 라틴어 송시보다는 게르만의 구술 전통의 영향을 받았다. - P536
그리스 서사시처럼, 고대 영어 서사시 『베오울프』는 문자로 씌어지기 한참 전인 기원후 800년경부터 구술로 공연되었을 것이다. - P536
궁중의 사랑과 명예 이야기로 이루어진 『거웨인 경과 녹색의 기사』의 주인공 역시 처음부터 초자연적 존재와 갈등한다. 베어진 자신의 머리통을 집어 들고 걸어가는 녹색의 기사가 바로 그 존재다. - P538
단테의 「지옥편」이나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같은 중세 후기의시들 역시 기독교적 주제로 이루어진 작품들이다. - P538
중세의 시학은 아우구스티누스로부터 이러한 시적 이야기들이 얼마나 성공적일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데는 유보적인 성향을 물려받았다. 결국 다른 창조와 마찬가지로 언어는 타락했고 선천적으로 부정하기 때문에 신성과 직접적인 접촉으로 이어질 수 없었다. - P538
말은 물리 영역의 일부기 때문에 진리를 가리키는 것만큼이나 쉽게허위를 가리킬지 모른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을 형성시킨 『기독교 교리에 대하여』에서 이렇게 썼다. - P539
이렇게 언어에 사로잡히는 것은 아우구스티누스가 경고했던 ‘재주‘의 문제다. 그래서 단테의 「지옥편」은 꿈에서 일어나며, 화자는 조금 거리를 두고 진리를 보고 있는 것이다. - P539
또한 초서는 그래서 자기가 조금 전까지 말한 모든 것을취소하며 순례를 끝맺는다. 순례하던 인물이 말재주에 미혹되어 바른 길에서 멀어지고 잘못된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잘못된 목적으로 돌아설 가능성을 생각한 아이러니컬한 염려 때문이었다. - P539
중세 신학자들은 언어가 두드리는 대로 펴지는 성질이 있어서 네 가지 층위의 의미를 포함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이야기는 다음 네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 P540
축어적(실제 이야기 혹은 표면적 의미) 의미, 우의적(때로는 ‘예형론적‘이라고도 하며, 예수나 천상의 영역과 관련된 영적 진실을 그린 삽화)의미, 비유적 (이야기에서 ‘도덕‘으로, 기독교인의 실제 삶에 적용) 의미, 그리고 신비적(반드시 최후의 시기와 관련된 죽음, 심판, 영원한 운명) 의미가있다. - P540
우의적으로, 순례자는 또한 신의 왕국과 악마의 영역 사이에서 천국으로 가는 길을 잃는다. 그는 비유적으로, 일상의 삶에서 도덕적인 요구와 맞붙어 싸우며, 신비적으로, 자신의 최후목적지인 지옥 혹은 천국으로 향해 간다. - P541
다층적 해석은 단순하고 꾸미지 않은 진리를 전달하기 어렵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의심과 토마스 아퀴나스가 『신학 대전』에서 펼친 사실에 근거한다. - P540
그는 이스라엘인들이 이집트를 빠져나오는 엑소더스 이야기를 다룬 시편 113 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만약 우리가 그 글자만(어적 의미)을 생각한다면"
편지만을 고려한다면 우리에게 의미 있는 것은 모세 시대에 이스라엘의 아이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하는 것입니다. 우화로 본다면 그리스도를통한 우리의 구원이 의미 있을 것이며, 도덕적인 의미로 본다면 영혼이 죄의슬픔과 비참함에서 은총의 상태로 변하는 것이 의미가 있겠지요. 신비적으로 본다면 이 세계의 타락이라는 굴레에서 죄를 씻은 영혼이 영원한 영광의 자유로 나아가는 것이겠지요.¹⁰ - P541
르네상스시대의 새로운 학문은 세상과 언어가 본질적으로 불완전해서 불로써 정화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지성으로써 풀어야 하는 난제라고 보았다. - P541
시인은 신비주의자가 아니라 언어의 과학자가 될 수 있었고, 무아지경을 경험하지 않고도 신중하고 정확한 음절을 선택해서 진리를 보여줄 수 있었다. - P542
16세기와 17세기에는 시가 산문보다 좀 더 명확한 것이라고 이해되었다. 시는 시를 쓰는 이에게 언어를 신중하게 선택할 것을 강요했기 때문에 당시에 최고의 정보 전달 매체가 될 수 있었다. - P542
언어에 대한 경의는 과학뿐 아니라 청교도주의와도 관련 있다. 청교도주의자는 성경을 번역할 때 교회에서 성령의 해석에 따르기보다는성경을 신뢰할 만한 산문‘으로 번역하려고 새로이 시도했다. 간명한 언어가 신을 드러내는 힘에 높은 가치를 부여한 것이기 때문이다. - P5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