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과 기하학

I. 지금까지 나는 여러 번 반복하여 기하학의 원리는 경험적 사실이 아니며, 특히 유클리드의 공준은 실험에 의해 증명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이미 제시된 근거들이 내게는 아무리 확실해 보여도 많은 지성에게깊이 뿌리내린 잘못된 관념이 존재하기 때문에 계속 강조해야 한다고 믿는다. - P94

III. 기하학과 천문학

질문은 다른 방식으로도 던져졌다. 만일 로바체프스키기하학이 참이라면 매우 멀리 떨어져 있는 별의 시차는 유한해지고, 리만기하학이 참이라면 음수가 된다. 이는 경험을 통해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은 결과이며,
사람들은 천문학적 관측을 통해 세 가지 기하학 중 어떤 것을 채용할지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 P95

내게 이러한 물음은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 내 생각에 이것은 누구라도 분명 터무니없다고 여길 다음의 사항과 똑같은 것이다. 미터와 센티미터로는 나타낼 수 있지만 트와즈toise,
피에pied, 푸스pouce로는 측정할 수 없는 길이가 존재하여, 실험을 통해이러한 길이의 존재를 확인함으로써 1트와즈는 6피에로 분할된다는 가설을 직접 반박할 수 있을까? - P96

이 논의에 대해 더 자세히 살펴보자. 나는 직선이 유클리드공간에서어떤 두 가지 속성을 가진다고 가정하고 이를 A와 B라 부르겠다. 비유클리드공간에서 이 직선은 아직 속성 A를 갖고 있지만, 더 이상 속성 B는 갖지 않는다고 하고, 끝으로 유클리드공간에서든 비유클리드공간에서든 직선만 유일하게 속성 A를 가진다고 하자. - P96

하지만 이런 일은 없다. 속성 A처럼 직선을 인지하고 다른 모든 선과 구별하게 해 주는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있는 속성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P96

우리는 어려움을 조금 뒤로 물러나게 했을 뿐이다.
사실 조금 전 내가 언급한 속성은 오직 직선만의 속성이 아니라 직선과 거리의 속성이다. 이것이 절대적 기준으로 이용되려면, 직선 이외의선과 거리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직선 이외의 선과 거리 이외의양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는 참이 아니다. - P97

다시 말해 임의의 한 순간에 물체의 상태와 서로 간의 거리는 오직 초기순간일 때의 동일 물체의 상태와 서로 간 거리에만 의존하고, 시스템의 초기절대위치와 초기절대방위에는 전혀 의존하지 않는다. 이를 축약해서 상대성의 법칙이라 하자. - P98

이는 공연한 걱정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사실 상대성의 법칙을 매우 엄격하게 적용하려면 우주 전체에 적용해야 한다. 왜냐하면 만일 우주의 일부만 고려한다면, 그리고 만일 이 부분의 절대적 위치가 변한다면 우주의 다른 물체들까지의 거리 역시 변하고, 따라서 고려되고있는 우주의 일부에 이 물체들이 끼치는 영향이 증가하거나 감소하여 거기서 일어나는 현상의 법칙을 변경할 것이기 때문이다. - P99

따라서 상대성의 법칙은 다음과 같이 기술할 수 있다.
임의의 한 순간에 우리의 도구를 통해 읽어 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최초의 순간에 동일한 도구를 통해 읽어 낼 수 있었던 것에만 의존할 것이다. - P99

임의의 한 순간 물체의 상태 및 서로 간 거리와, 같은 순간 이 거리들이 변하는 속도는 오직 최초의 순간 물체의 상태 및 서로 간 거리와, 최초의 순간 이 거리들이 변하는 속도에 의존하겠지만, 시스템의 최초 절대위치나 절대방위에도, 그 최초의 순간 이 위치와 방위가 변하는 속도에도 의존하지 않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렇게 기술된 법칙은 적어도 일반적으로 해석되는 경험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 P100

철학자라면 충격을 받겠지만, 물리학자라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실이 거기에 있다.
뉴턴이 이 사실로부터 절대공간의 존재를 결론지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나는 이러한 견해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데, 그 이유는 3부에서 설명하겠다. 지금으로서는 이러한 곤란에 빠지고 싶지는 않다. - P101

VI.
경험적 사실을 통해 우리는 물체 사이의 관계만 알 수 있다. 어떠한 실험도 물체와 공간 사이의 관계, 혹은 공간의 서로 다른 부분 간의 관계를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아니, 대상으로 할 수도 없다. - P101

VII.
만일 실험이 물체를 대상으로 한다면, 그것은 적어도 물체의 기하학적속성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까?
먼저, 물체의 기하학적 속성을 통해 무엇을 알 수 있을까? 나는 물체와 공간 사이의 관계에 관한 것이라고 가정한다. 따라서 이러한 속성은물체 사이의 관계만 대상으로 하는 실험을 통해서는 접근할 수 없다. 이것만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속성이 아님을 충분히 알 수있다. - P102

이는 미리 공간의 형식이나 계량적 속성에 대한 어떠한 개념을 갖고있지 않아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결코 ‘물체의 기하학적 속성‘
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그리고 만일 실험이 수행된 물체가 로바체프스키의 군과 동일한 구조를 지닌 군에 의해(즉, 로바체프스키기하학에서의 고체와 동일한 법칙에 따라) 운동한다면, 이러한 확인은 불가능할 것이다. - P104

첫 번째 검증 전체는 공간이 유클리드적임을 입증하는 경험을 구성하고, 두 번째 검증은 공간이 비유클리드적임을 입증하는 경험을 구성한다고는 하지 않기를 바란다.
사실 두 번째 검증 과정이 가능하도록 운동하는 물체를 상상(말 그대로 상상할 수는 있다. 그리고 그 증거는 제일 먼저 찾아온 기계공이 수고할 마음과 지불할 돈만 있다면 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공간은 비유클리드적이라고 결론지어서는 안 된다. - P105

보론

VIII.
완벽을 기하기 위해서는 미묘하고 긴 설명을 요하는 문제에 대해 언급해야겠지만, 여기서는 내가 『형이상학과 도덕』 Revue de Métaphysique et de Morale과 『일원론자』 The Monist에 발표한 것을 요약하는 데 그칠 것이다. 공간이삼차원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 P106

이 계열들 가운데 그 자체만으로 외적 변화를 보상할 수 있는 것들을구별하여 ‘이동‘이라 했다. 서로 매우 근접한 두 이동은 구별할 수 없으므로 이러한 이동의 집합은 물리적 연속의 특징을 보여 준다. - P107

공간의 점이란 무엇인가? 누구나 안다고 믿지만 이는 착각이다. 공간에서의 한 점을 표상하려 할 때, 우리가 보는 것은 흰 종이에 찍힌 검은 반점, 검은 칠판에 묻은 분필의 반점, 즉 항상 어떤 물체[대상]이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다음과 같이 이해해야 한다. - P107

실제로 대상이 멀어져도 망막의 동일한 점에 상이 맺힐 수 있다. 시각은 그렇다고, 대상은 계속 동일한 점에 있다고 대답하지만, 촉각은 아니라고 대답한다. 왜냐하면 방금 전까지 손가락으로 만지고 있던 대상을 이제 더 이상 만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 P108

그러면 우리가 그처럼 구별한 변화들 중 하나로부터 차례로 도출되는 모든 자세를 같은 부류에 포함시키자. 같은 부류의 모든 자세는 공간의 동일한 점에 대응되고, 각각의 부류에는 하나의 점이, 각각의 점에는하나의 부류가 대응될 것이다. - P109

선조로부터의 경험

설령 개별적 경험으로써 기하학이 창시되지 못했을지라도 선조로부터의 경험으로써는 이와 다를 것이라고 흔히들 말해 왔다. 그런데 이는 무슨 의미일까? 우리는 유클리드의 공준을 경험적으로 증명할 수 없지만, 우리의 선조들은 할 수 있었다는 의미일까? 가당치 않다. 우리의 지성은 자연선택에 의해 외적 세계의 조건에 적응해 왔고, 인간이라는 종에 가장 유리한, 다시 말해 가장 편리한 기하학을 채택했다는 의미다. 이는 기하학이 참인 것이 아니라 유리한 것이라는 우리의 결론과 완전히 일치한다.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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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

1905년에 출간한 「농담과 무의식의 관계」에서 나는 사실 유머를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다루었다.¹ 당시 내게 중요했던 것은 유머에서 얻게 되는 쾌락의 근원을 알아보는 것이었고, 유머적 쾌락이라는 소득은 절약된 감정 비용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지적했다.² - P529

1 심리학의 이론적 장치의 한 요소로, 다시 말해 초심리학의 한 요소로 프로이트가 설정한 가설이다. 상반된 충동들의 갈등에 역점을 두고 보는 역동적 관점과 의식, 전의식, 무의식, 혹은 자아, 초자아 등으로 심적 장치의 구성 부분들에 주목하는 국부론적 관점과 더불어 정신적 에너지의 증감과 이동 등을 포괄해서 지칭하는 계량적개념을 비유적으로 경제적 관점이라고 부른다. 욕망이 지니는 조급함 등도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겨냥한다는 측면에서 경제적 관점에 따른 해석의 한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정신적 에너지가 일정한 연상 작용이나 외부의 사물들과 독특한 관계를 맺는 과정에 대해 프로이트가 사용한 Besetzung, 즉 <집중>이라고 한국어로 옮길 수 있는 개념을 프랑스의 정신분석계에서 <투자>라는 용어로 옮긴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프랑스의 투자에 해당하는 단어는 경제적 맥락이외에서는 <위>라는 뜻도 갖고 있다. 어쨌든 적절한 한국어 역어를 찾는 작업은 과제로 남아 있다.

2 흔히 우리가 음담패설이라고 부르는 것과 구별해 육(肉)이라고 하는 농담들을 통해 성 충동들이 순수하게 언어적 조직과 정신적 연상만을 통해 촉발되고 해소되는 전반적인 과정을 염두에 둔다면 프로이트가 반복해서 기대고 있는 경제적 비유들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역주

유머가 자아내는 쾌락의 근원을 파악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유머를 듣고 있는 사람에게서 일어나는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다.  - P530

여기까지는 별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곧 유머를 드러내는 사람에게 좀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된다. 유머의 본질은 상황이 자아낼 수 있는 정서적 흥분들을 절약하고 익살을 통해 그러한 감정적 표현들의 가능성을 물리치는데 있다. 여기까지는 유머를 드러내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과정이그것을 듣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과정과 일치한다. - P531

역동적 측면에서 볼 때 무엇이<유머러스한 태도> 속에서 일어나는 것일까? 답은 물론 유머를드러내는 사람에게서 찾아야 할 것이다. 관객에게서는 단지 메아리만을, 다시 말해 아직 알려지지 않은 이 과정의 모방만을 볼 수있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 P531

이제 유머의 몇몇 특성들과 친숙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유머는 농담이나 희극처럼 해방시켜 주는 것뿐만이 아니라 동시에뭔가 위대하고, 사람을 열광하게 한다. 이러한 특성들은 앞의 두경우와 같은 지적인 활동에서 얻을 수 있는 쾌락 속에는 없는 특성들이다. - P531

 자아는 현실적인 이유들 때문에 마음 상하고 고통받기를 거부하며, 외부세계로부터의 외상(外傷)이 자신에게는 문제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 P532

 유머는 체념적이지 않고 도전적이다. 유머는 자아의 승리를 의미할 뿐 아니라 쾌락 원칙의 개가, 즉 현실적조건의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관철시킬 수 있는 쾌락 원칙의 개가를 의미한다. - P532

이러한 두 가지 특성, 즉 빠져나갈 수 없는 현실을 밀어내고 쾌락 원칙의 우월성을 확인하는 과정을 통해 유머는 정신 병리 현상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퇴행적이거나 혹은 반항적인 과정과근접해 있다고 할 수 있다. 고통의 가능성에 맞서 유머가 행하는이러한 방어를 고려할 때 우리는 유머를 인간의 정신 활동이 고통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만들어 낸 일련의 많은 방법들 속에 포함시킬 수 있다. - P532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 유머러스한 태도를 취했을 때 우리는 이 상황을 내가 농담을 다루면서 어렴풋이 암시한 바 있는 방식으로 생각하고 싶어진다. 다시 말해 그는 다른 사람들을 마치 어른이 어린아이를 다루는 것처럼 대하는데, 이럴 때 그는어린아이에게는 상당한 의미를 갖고 있는 이해관계와 고통들을미소 지으며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식으로 행동한다. - P533

즉 어떤 사람이 자신에게 다가올 수 있는 고통의 가능성들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유머러스한 태도를 취하는 상황을 기억하고 있다. - P533

병리적 현상들을 다루면서 알게 된 자아가 갖고 있는 구조를 고려한다면 잘 납득이 가지 않는 이러한 묘사가 실제로는 튼튼한 근거가 있는 것임을 알게 된다. 자아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자아는 그 핵심에 초자아⁴라는 매우 특이한 하나의 심급(審級)을 갖고있다. - P534

이런 이유로 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가정을 했다. 통상적인 성애적 대상 리비도 집중과 사랑에 빠진 상태와의 차이는 후자의 경우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리비도 집중이 대상으로 이행하여 자아는 말하자면 대상을 위해자신을 텅 비운다는 것이다. - P535

따라서 나는 여기서 제시된 가능성이, 즉 다시 말해 어떤 주어진 상황 속에서 한 개인이 자신의 초자아에 에너지를 과잉 집중하게 되면 그때부터 이 초자아는 자아의 반항들을 변형시킨다는 가능성이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 P536

겁에 질려 있는 자아에게 유머를 통해 위안이 가득 담긴 말을해주는 자가 정말로 초자아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아직 초자아의 본질에 대해서 살펴보아야 할 것이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게다가 모든 사람들이 다 유머를 구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 P537

정신분석에 의해서 드러난 몇 가지 인물 유형

Einige Charaktertypen aus der psychoanalytischen Arbeit(1916)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이 논문은 1916년 『이마고』에 처음 실렸다. 특히 세 번째 부분은 매우 짧지만 프로이트의 비의학적 논문으로 범죄 심리학에 새로운 생각의 문을 열어 주었다. - P353

정신분석에 의해서 드러난 몇 가지 인물 유형

의사가 신경계통의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정신분석적 치료를 행할 때 무엇보다 먼저 환자의 성격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의사는 환자의 증상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런 증상들 배후에 어떤 충동들이 숨어 있고 어떤 충동들이 증상들을 통해 해소되고 있는지, 또 충동적인 욕망들이 어떤 알 수 없는 단계를 밟아 이런 증상들로 나타나게 되었는지를 알고 싶어 할 것이다. 그러나 의사가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할 치료 기술은 순식간에 의사 자신의 알고 싶다는 욕망을, 위에서 말했던 것들이 아닌 다른 대상으로 향하게 한다. - P357

의사의 노력에 저항하는 것은 환자가 스스로 인정하거나 주위사람들이 환자에게 부여하는 성격상의 특징들이 아니다. 별로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던 환자의 특성이 전혀 예기치 못했던 강도를 띠고 나타나는 경우가 종종 있으며, 또 어떤 때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태도들이 의사와의 관계 속에서만 드러나기도 한다.  - P357

예외들


(전략)
환자는 어김없이 해로운 결과를 낳는 쾌락을 단념하도록 요청받을 뿐이다. 그는 이 쾌락을 잠시 유보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고,
비록 그것이 시간이 걸린다고 해도 즉각적인 쾌락을 더욱 안전한 쾌락과 바꾸는 것을 배워야 한다. - P359

 이는 다시 말해 의사가 자신의 교육적 작업을 행하면서 <사랑>의 어떤 구성 부분을이용한다는 말도 된다. 의사는 실제로는 이러한 이차 교육을 실시하면서 어떤 식으로든 첫 번째 교육을 가능케 했던 과정을 반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 P360

그런데 환자들에게 이렇게 어떤 쾌락 충족 Lustbefriedigung을 잠정적으로 포기하도록 요구할 때, 다시 말해 좀 더 나은 결과를 위해 잠시 동안의 고통을 참고 희생하도록 요구하거나 혹은 단지모든 사람에게 유익한 규율에 복종하도록 결심을 하게 할 때, 어떤 환자들은 이러한 의사의 요구에 강렬하게 저항하곤 한다. - P360

우리 모두가 <예외>로 인정받기를 원하고 있고,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특전을 누리고 싶어 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스스로를 예외로 선언하고 또 실제로 그렇게 행동한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고, 흔히 볼 수 없는 특수한 동기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로 간주할 수 있다. - P361

따라서 자칫 연극 자체가 심리적으로 불가능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관객이 마음속으로 아무런 저항 없이 주인공의 대담함과 능란함에 대해 공감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 극작가는 주인공에대해 관객이 느끼는 공감의 근저(根)에 뭔가 비밀스러운 것을 창조해 놓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객들의 공감은 오직 관객들 자신도 주인공과 동일한 뭔가를 갖고 있다는 느낌에 의존할 때만 가능하다. - P363

 주인공 리처드는 말하자면, 우리 자신의내부에 있는 이러한 측면이 거대하게 부풀려진 것이라고 볼 수있다. 우리는 모두 어린 시절에 받은 선천적인 피해를 내세우며자연과 운명을 당당히 비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P364

그러나 극작가는 세련된 구성으로 그의 주인공이 모든 비밀을큰 소리로 모두 털어놓도록 하지는 않았다. 그는 우리로 하여금 주인공과 함께 이 비밀을 나누어 갖도록 하며, 우리의 마음을 움직여 비판적인 생각 대신에 주인공과 일체가 되도록 유도하고 있다. - P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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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키델리코에게 꽃다발을

■□□□□□

신발장을 향해 오렌지색으로 물든 복도를 따라 걸으면서 리코는 힘없이 중얼거린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저 유명한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의 한 구절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하는 것들마다 제대로 이루어지는 게없는 이런 세상 따위 완전 질려버렸으니 확 죽어버릴까? 라는 주인공의 그러한 탄식이다. - P110

얄궂게도 친구를 다치게 함으로서 처음으로 그러한 명제와 마주하게 되었다.
리코는 아무렇게나 내뱉듯이 말한다.
·타인과의 교류가 없으면 사람은 살아갈 수 없으니 생각할 것도 없지." - P111

작은 몸집의 남자애였다. 여자들 중에서도 작은 편인 유이와거의 차이가 없다. 곱슬머리인 것이겠지만, 끄트머리가 구부러진 부드러워 보이는 밤색 머리카락이 인상적이다.
"소개할게요. 같은 반의 에이리 이안이에요."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이었다. 다만 어디서 들었던 이름인지까지는 생각이 안 난다. 유이의 재촉을 받고 "처음 뵙겠습니다." 에이리 이안이 보았던 대로 부드러운 웃음을 띤다. - P112

두 1학년과 일단 헤어진 뒤 자전거 주차장으로 향한다. 그리고 다시 합류하기 위해 자전거를 끌면서 교문으로 향한다. 교문에 가까이 가니 두 사람의 대화가 들렸다.
"미리 말해 두지만, 리코 선배한테 실례되는 태도는 취하지마?"
"유이는 저 선배가 은근히 마음에 드는 모양이구나." - P113

"싫어. 건방진 유이가 하라는 대로 순순히 인정하는 건 내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뭐야, 그거! 바보아냐?!"
멀리서 보면 마치 말싸움을 하는 것처럼 상호간에 거리낌이없다. 그만큼 서로의 마음을 잘 안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리고선배인 리코 앞에서나 겸손하게 가만있을 뿐이지, 아무래도유이는 성격이 드센 것 같다. 호 - P114

유이는 다행이라는 표정을 짓고 있다. 그래서 유이의 귓전에대고 짓궂은 웃음으로 리코에게 속삭였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만약 내가 이탈리아 남자였다면 너를 지금 당장 침대에다 밀쳐서 다음날 해가 뜰 때까지 네 온몸에 *아모레를 속삭여주고 싶은걸."


*아모레(Amore) : 프랑스, 이탈리아 등 라틴어권에서 ‘사랑‘을 지칭하는 명사. - P114

"너희들, 꽤 사이가 좋은가 보군."
"아니에요. 그냥 악연이에요."
리코가 물어보자 에이리 이안은 옅게 미소를 띤다.
"자네는 유이 남자 친구가 아닌가?"
같이 서 있는 두 사람은 굳이 말하자면 남매로 보일 수도 있었지만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 P116

절대로 말해서는 안 될 이름이다. 그것은 천공의 성을 붕괴시키는 멸망의 주문과도 같다. 일단 입에 올렸다간 리코의 이성은 아주 손쉽게 와해될 것이다. - P117

리코는 자조의 웃음을 참고 큰 동작으로 고개를 흔든다. 누구한테 들으라는 것도 아닌 ......미안하다, 사나.‘ 참회의 마음을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곧바로 리코는 턱을 쭉 내밀고 가슴을 편다.
"저 유명한 괴테는 이렇게 말했다. ‘공기와 빛과 친구의사랑 이것들만이라도 남아 있다면 낙담할 일이 없다.‘고 말이지." - P119

"아아, 리코 선배....... 멋져요....... 아름다워요."
옆에 있는 유이는 마치 영웅이 등장하자 눈에서 하트를 만들어내는 처녀와도 같았다. 그리고 사이케테이 리코는 처음에는한 발 물러선 태도였지만, 아무래도 무언가 터진 것처럼 지금은 생생하다.
2대1. 이안에게 아주 나쁜 상황이다. 이안은 탄식과 함께 중얼거린다. - P120

"어떠한 사상을 검증할 때, 더욱 많은 케이스를 비교하는 것이 결국 검증의 정확도와 직결되는 것이거든. 카미우치 유우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를 아는 보다 많은 인물들로부터이야기를 듣는 게 유리하지. 물론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몇번이고 계속 듣게 되는 경우는 종종 있긴 하지만, ‘진실의 여신은 그런 낭비를 받아들여 꾸준한 작업을 끈기 있게 반복하는 자에게만 미소를 지어줄 것이야." - P121

이안은 발끈하여 일어서 있었다. 그것은 그녀의 진지하지 못한 태도에 대한 것이었는지, 혹은 그 외의 부분에 대해서인지.
이안은 사이케테이 리코한테 무수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
"제가 유우진의 이야기를 해드릴 테니, 대신 앞으로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않겠다고 약속해주세요. 유우진은 그냥 놔두어주셨으면 해요." - P122

카미우치 유우진과 만났던 것은 이안이 중학교 1학년이었을때였다. 같은 반이었다.
카미우치 유우진이란 좋든 나쁘든 한마디로 말하자면 ‘튀는녀석‘ 이었다.
카미우치 유우진은 같은 반의 그 누구하고도 말을 나누지 않았으며, 입학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상급생들하고 수시로말다툼을 벌이고 교사로부터 주의를 들어도 아무렇지도 않다 - P123

들은 얘기로는 카미우치 유우진은 초등학교 때부터 고립되어 있었다고 한다.
겉모습은 아주 잘 생겨서 이미 얼굴을 아는 사람들이 많았던만큼, 카미우치 유우진이라는 신입생의 ‘악평‘은 입학한 지 3주도 되지 않아 학교 안에 완전히 퍼졌다. - P124

따돌림의 리더 격인 여자애가 있는 그룹의 다른 여자애가 마침 고백했던 그 남자애를 좋아했던 것도 있어, 며칠도 지나지않아 그 여자애는 그 반의 ‘왕따‘ 로 찍히고 말았다.
입학 후 한 달이라 하면 슬슬 학교와 반에 적응하기 시작할때다. 그렇게 지반이 무른 시기에 스스로 풍파를 일으키려는 사람이 있을 리 없으며, 여자애들이 정한 방침을 남자애들도 거스르지는 않았다. 사심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그중에는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녀석들도 있는 상황이다. - P125

하지만 딱히 옹호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무관심이라고할 수 있을 차가운 태도였다. 다만 카미우치 유우진은 같은 반의 다른 애들처럼 그 여자애를 적극적으로 괴롭히지는 않았다. - P125

주위의 여자애들이 공포에 질려 입을 꼭 다물었을 때, 실속도 없으면서 떠받들어지는 것은 아닌 모양인지, 리더 격인 여자애만은 겁먹은 표정이긴 하지만 계속해서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때였다. 카미우치 유우진의 행동에 모두 눈을 의심했다.

카미우치 유우진은 리더 격인 여자애의 몸을 강제로 끌어안더니 자신의 입술로 눈앞의 입술을 틀어막았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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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아는 인간인가?"에 대한 중립적 판단

앞서 보았듯이, 최소주의적 자유주의는 철학적인 정의관이 아니라 정치적인 정의관을 추구한다. 다시 말해 칸트주의적 인간관이건 다른 인간관이건간에 어떠한 특정한 인간관도 전제하지 않는 정의관을 추구한다. 최소주의적자유주의는 자율이나 개성 같은 "포괄적인" 자유주의적 이상들을 위해서가아니라 목적들이 서로 다른 가운데 사회적 협력을 보장하기 위해, 즉 정치적목적을 위해 논쟁적인 도덕적·종교적 문제들을 괄호 칠 것을 제안한다.⁴⁰ - P151

40 John Rawls, "Justice as Fairness: Political notAffairs, 14(Summer 1985), 245.
Metaphysical", Philosophy & Public - P488

로 대 웨이드 사건에서 연방대법원이 제시한 논증은 논쟁적인 도덕적·종교적 문제들을 괄호 치고서 헌법과 관련된 사건들에 대해 결정을 내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준다. 연방대법원은 자신들이 인간 생명의시작점 문제에 대해 중립적이라고 주장했지만, 실상 연방대법원의 결정은 이미 그 문제에 대한 특정한 답변을 전제하고 있었다. 연방대법원의 결정은 텍사스주의 낙태금지법이 인간 생명의 시작점에 관한 특정한 이론을 전제하고있다는 주장으로 시작됐다. - P151

연방대법원은 다양한 견해들을 요약하고 나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존재를 온전한 의미의 인간으로 인정한 법은 결코 존재한 바 없다‘고 결론지었다. 연방대법원은 이러한 결론을 바탕으로 해서, 텍사스 주가 생명에 관한 특정한 이론을 법으로 구현한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 P152

 "잠재적 생명에 대한 국가의 중대하고 정당한 관심과 관련해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생존 능력이다. 왜냐하면 태아는 어머니의 자궁 밖에서 의미 있는 삶을 영위할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존 능력에 근거해 태아의 생명을보호하는 국가의 규제는 논리적으로 보나 생물학적으로 보나 정당하다."⁴⁴ - P152

44 John Rawls, "Justice as Fairness: Political not Metaphysical", Philosophy & PublicAffairs, 14(Summer 1985), 163 - P488

최소주의적 자유주의자의 중립성 옹호론에는 또 다른 난점이 있다. 사회적 협력을 위해 논쟁적인 도덕적·종교적 문제들을 괄호 치는 데 동의한다고해도, 괄호 친다는 것이 무엇이냐라는 문제는 여전히 논란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논란을 해결하려면, 문제가 되는 이해관계에 대한 실질적 평가나 최소주의적 자유주의가 피하고 싶어하는 자아관. 이 둘 가운데 하나가 필요할 것이다. 로 사건의 판결을 인정하고 있는, 다음의 낙태 판결은 이러한 난점을보여준다. - P153

요컨대 스티븐 더글러스가 국가 전체에 하나의 답을 강제하기를 거부함으로써 노예제를 둘러싼 해결하기 어려운 논쟁을 괄호 칠것을 제안했듯이, 화이트는 해결하기 어려운 낙태 논쟁을 괄호 칠 것을 제안했다. - P153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자유로운 선택을 주장하는 것은 연방대법원의 가치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지역민들이 자신들의 가치를 개인에게 강요하는 것을 막는 것일 뿐이다.  - P154

 설사 해결하기 어려운 도덕적·종교적 논쟁을 사회적 협력을 위해괄호 치는 데 동의한다고 해도, 이번에는 괄호 친다는 것의 의미가 분명하지 않을 수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즉 화이트의 입장과 스티븐스의 입장 사이에서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도덕적·종교적 이해관계에 대한 실질적 견해가 필요하거나, 아니면 칸트적 자유주의가 주장하는 것 같은 인간관이 필요하다. - P154

 자유롭게 선택하는 무속박적 자아로서의 인간상은 최근에야 비로소 우리의 헌법적 실천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 호소력이 무엇이건 간에 그러한 인간상은 미국의 정치적 전통의 토대가 아니며, "민주주의 사회의 공적 문화‘는 더더욱 아니다. 따라서 그러한 인간상이 자유주의를 정당화하는 데서 어떤 역할을 하든, 그 역할은 문화적 해석이나 전통에 호소하는 데만 근거해서는 안 되며,
어디까지나 도덕적 논증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 P155

만일 자유주의자들이 개인의 선택을 보장하는 방식(화이트의 방식이 아니라 스티븐스의 방식)으로 논쟁적인 도덕적 문제들을 괄호 치고자 한다면, 그들은 결국 자아의 목적보다는 자아 자체를 우선시하는 인간관을 내세울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인간관에 수반되는 난점들을 피할 수 없다. - P155

새로운 프라이버시권을 동성애 금지법에 적용한다면?

낙태 사건이 최소주의적 자유주의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데 비해, 동성애사건은 관용을 자율권하고만 연결 짓는 자유주의 유형의 문제점을 보여준다. - P155

연방대법원은 프라이버시권을 동성애자들에게까지 확대하기를 거부하면서, 그동안의 프라이버시 판결들에서 공표된 권리들 중 동성애자들이 추구하는 권리들과 "조금의 유사성이라도 갖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선언했다. "가족, 결혼, 출산 등과 동성애적 활동 사이에는 어떠한 연관성도 입증된 바 없다."⁴⁹ - P156

49 Bowers, 478 U.S. at 191. - P488

하나는 자발주의적인 답변이고, 다른 하나는 실체적인 답변이다. 전자는 행위에 반영되어 있는 자율에 입각해 논증을 펼치는 반면, 후자는 행위가 실현하는 인간의 선에 호소한다. - P156

바워스 판결에서 반대 의견을 제시한 연방대법관들은 이 두 가지 답변 중에서 오직 전자에만 의존했다. 블랙먼 연방대법관은 동성애적 내밀성을 그것이 연방대법원이 보호하는 내밀성과 공유하고 있는 인간의 선에 입각해 동성애적 내밀성을 옹호하는 대신에, 그동안 연방대법원의 판결들을 개인주의 입장에서 바라보았다. - P157

"개인의 관점에서 볼 때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자신의 삶을 어떻게 영위할 것인지, 더 좁게 말하면 반려자와의 개인적이고 자발적인 결합 속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데 관심을 갖고 있다."¹⁵⁷ - P157

52 Bowers, 478 U.S. at 218-219. - P488

항소법원은 부부 관계가 출산의 목적 때문만이 아니라 상호 지지와 자기표현을 위한 더할 나위 없는 기회 때문"에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항소법원은
"결혼은 희망을 갖고 인내하면서 신성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내밀함을 유지하는 가운데 어떠한 운명이 닥칠지라도 함께하는 것이다"라는 그리스얼드 사건에 대한 연방대법원의 의견을 상기시켰다. -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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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카다의 큰 소리가 건물 전체에 쩌렁쩌렁 울렸다.
"변호사님, 병원으로 가게 해드릴 테니 고소만은 하지 말아주세요."
"웃기지 마시오! 서장을 불러와!" - P184

"병원에서 진단서를 떼고 폭력을 행사한 경찰을 특정하겠습니다. 이제 내일은 석방될 겁니다."
"아, 네......." 어안이 벙벙하여 감사하다는 말도 나오지 않았다. - P184

미키코까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움츠렸다.
"죄송합니다. 설마하니 똘마니한테 변호사가 붙을 줄은 생각하지 못해서요." - P185

아키오가 보석으로 나와 여관으로 돌아온 것은 다음날 오전이었다. 유실물 횡령죄는 없었던 것이 되었고, 사문서 위조만 문제가 되었으나 미미한 죄이기 때문에 기소유예 처분을받고 끝났다. - P186

신병을 넘겨받을 때까지 자청해서 일을 도맡아 처리해준 지카다는 가슴을 뒤로 젖히고 월광가면(1958년~1959년에 방송된 텔레비전 모험 활극 프로그램의 복면 주인공 이름)이나 쾌걸 하리마오(1960년~1961년에 방송된 텔레비전 영화로, 정의의 하리마오가 군사기관, 비밀결사단과 싸우는 모험 활극이다)처럼 웃었다. 좌익 변호사에게는 진실이 어떻든 당국을 굴복시켰다는 것이 중요한 전과일 것이다. - P187

연합회의 운동가들도 여관으로 찾아와 다들 "잘 이겨냈다"
라고 아키오를 칭찬했다. 대체 이 사람들은 뭘 정의로 생각하는지 미키코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 P188

"뭐라고? 변호사를 불러준 것은 나야."
"그건 고맙지만, 그래도 나는 나쁜 짓은 하지 않았어."
"알고 있어. 아키오, 너는 나쁜 짓 같은 건 할 수 없어. 경찰은 조선인이라서 잡아간 게 틀림없어." - P188

"자, 아키오, 누나한테 사실을 말해봐. 그 금화는 어떻게 된거야?"
"누구한테 받은 거야."
"거짓말하지 마. 골동품상이 24만 엔이나 내고 매입한 금화를 누가 너한테 준다고 하는거야?" - P189

"너, 한번만 더 엄마를 울게 하면 가만 안둬."
"알았다니까."
아키오가 과장되게 어깨를 치켜올리며 성큼성큼 나갔다. 미키코는 깊이 한숨을 내쉬며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동생이 앞으로 이상한 일에 휘말리지 않으면 좋으련만. - P190

13

우에노서의 추태는 이지마 형사부장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다마리 과장과 다나카 과장대리가 부장실로 불려 가 질책을 당했다. 지검도 보고를 받고 격노했다고 한다. 당연히 수사본부의 분위기는 나쁘고, 회의에서는 아무도 발언하지 않게 되었다. 특히 새로 가세한 우에노서의 형사들은 오늘 밤의 회의에서도 구석진 자리에 몸을 숨기듯이 앉아 있었다. - P191

다나카가 터무니없는 말을 했다. 금화에 일련번호가 있는것도 아니고 특징도 없다.
"이봐, 사와노 자네는 전에 보험사에서 근무했잖아. 뭔가 의견을 말해봐." - P192

"피해자는 그 금화를 어디서 입수한거지?"
"가족도 모른다고 합니다. 시계상이라 해외에서 이것저것대량으로 사들인 것 중에 섞여 있었던 게 아닐까요?"
"장부에 기록은 없나?"
"그것도 따님한테 물어봤는데 사장을 은퇴한 지가 오래되어옛날 일은 모른다고 합니다. 게다가 피해자 측에 장부를 내라는 것은 임의로라도 꺼려진다고 할까.
"가족이 뭔가 숨기고 있는 게 아닐까요?" - P192

"적어도 살해당한 아버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만……………. 대체로 도난당한 물건에 대해서도, 셋째 딸은 처음에 금고에는 대단한 게 들어 있지 않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큰딸이 금화가 없어졌다는말을 꺼내 정정한 것입니다. 셋째 딸은 뭔가 숨기고 있는 게 아닐까요. 적어도 진심으로 범인을 잡아주었으면 하는 의사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만……………." - P193

모리는 히죽거리며 다가와 주먹으로 니이의 가슴을 찔렀다.
"자네는 쓸 만한 놈이야. 출세하겠어."
"설마요. 해군이라면 전선으로 보내지겠지요."
미야시타, 사와노, 구라하시도다가와 5계 전원이 모였다.
"이봐, 닐, 말을 꺼낸 사람이 먼저 시작하는 거네. 신와회에들어갈 때는 자네가 선두에 서." 미야시타가 말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윤곽이 보이지 않네요." 사와노가 말했다. - P195

다나카 과장대리가 폭력단 담당인 수사과에서 정보를 제공받은 것은 사흘 후의 일이었다. 사흘이 걸린 것은 4과의 과장대리가 1과를 위해 정보를 내놓으라 한다고 내놓는 놈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요?"라고 지당한 말을 해서 조정에 시간을 잡아먹었기 때문이다. - P196


"야마다 긴지로가 살해당하고 신와회는 어떤 상태입니까?"
다나카가 질문했다.
"그야 깜짝 놀라고 있습니다. 오랜 교제가 있었고 초대 회장과는 의형제를 맺은 사이니까요."
"하나무라의 반응은요? 야마다가 죽어서 이득을 보는 건 하나무라일 텐데..."
"그건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조용히 있습니다." - P200

"정보가 들어오는 것은 으레 여름입니다. 아마 필리핀에 주둔해 있는 미군 장교들이 여름휴가로 귀국해 있는 동안 군 내부의 밀매 그룹이 일을 일으킨 게 아닐까, 그렇게들 보고 있습니다." - P201

오치아이는 사건이 복잡해짐에 따라 사고가 이리저리 흐트러졌다. 북쪽 지방 사투리를 쓰는 젊은 남자가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 정리되지 않았다. - P203

"그 금화, 엄청나게 값나가는 물건이었어. 깜짝 놀랐다니까.
너는 알고 있었어?"
"아니, 모르는데." 간지가 대답했다.
"그렇겠지. 옛날 화폐 수집상한테 가져갔더니 24만 엔이라는 가격이 붙어 있었으니까, 알았다면 통 크게 주지 않았겠지."
"24만 엔?" 옆에서 사토코가 얼빠진 소리를 냈다. "그거 내1년치 급료야." - P204

"사토코 씨는 좀 조용히 있어봐. 그런 것보다 문제는 금화야. 간지, 어디서 손에 넣은거야?"
아키오가 다시 몸을 돌려 추궁했다.
"빈집 털이로 훔친 물건이야." - P205

"그날은 금요일이었을 거야. 보금자리로 삼고 있던 배 근처에서 민가를 물색하고 빈집 털이를 하러 두 집에 들어갔어. 그런데 세 번째로 들어간 집이 커다란 저택이었고, 그곳에 거금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져 1층 금고를 쇠지레로비틀어 열었더니 현금이 별로 없어서 실망했지. 하지만 수입한 손목시계하고 금화가 있어서, 그럼 이거라도 가져가자 하고 배낭에 넣은 다음에 2층으로 올라가 방의 벽장을 열려고 했을 때 사람이 돌아온 거야." - P206

"빈집 털이를 하러 들어갔다가 돌아온 사람과 마주친 적은지금까지도 있었어. 그럴 때 사람은 대체로 기겁해서 털썩 주저앉을 뻔하거나 허둥지둥하거든. 그래서 나는 쇠지레를 치켜들고 ‘해보니!‘ 하고 허풍을 쳤는데, 그쪽은 전혀 당황하지않고 ‘야, 꼬맹이. 너 빈집 털이냐?"라고 으름장을 놓으며 묻더라고. 그래서 ‘그렇다!‘라고 대답했더니 잠깐 입을 다물고 있다가 아래로 좀 내려와‘라고 나한테 오히려 명령을 하더라고." - P207

"빠루라는건 뭐야? 나도 몰라." 사토코가 옆에서 말했다.
"못을 뽑는 도구야." 아키오가 귀찮은 듯이 대답했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 다음 이야기를 해봐." - P208

"이봐, 간지. 너는 정말 어수룩한 놈이구나. 경찰은 강도살인사건으로 수사하고 있어. 빈집 털이가 강도로 돌변했다고 말이야 잡히면 범인이 되고 만다고."
"안 잡혀. 한 번뿐이었고 아마 얼굴도 기억하지 못할걸."
"지문 같은 건 남기지 않았지?"
"괜찮아. 지문은 다 닦았어. 난 빈집 털이로 먹고사니까 그런 실수는 하지 않지." - P210

"그놈들 얼굴 기억해?" 아키오가 물었다.
"아니. 잘 기억나지 않아, 아아, 안 되겠어. 이번에는 속까지안 좋아졌어."
간지는 다시 이불을 뒤집어썼다. 머릿속에서 뭔가가 빙글빙글 도는 감각이 들고 균형감각이 없어졌다.
"너, 괜찮아? 안색이 안좋아."
"가만히 있으면 괜찮아져" - P211

"사토코 씨, 무슨 짓을 한건데?"
아키오가 묻자 사토코는 마지못해 털어놓았다.
"매춘 알선이나 여러 가지가 있는데……………. 전부 누명을 쓴거야 아는 언니가 부탁해서 오키나와에서 온 미성년자들을 터키탕에 소개했을 뿐이거든."
"그거 위험해. 돈 받았지?"
"그야 소개비 정도는 받았지." - P212

"잠깐만, 나갈거야?" 사토코가 물었다.
"어어. 파친코에 갔다올게. 모처럼 양복을 샀으니까 입고 걸어다니고 싶어서."
"너 제정신이야? 잡혀가도 난 몰라."
"괜찮다니까. 벌써 한 달 넘게 지났어. 증거는 남기지 않았고 아무한테도 들키지 않았고, 경찰도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니까." - P213

"그럼 뭐야? 도둑이지, 도둑이야."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간지는 변명하기가 귀찮아져 돈으로 입막음을 하기로 했다.
"너희들, 주스 사줄 테니까 안 본 걸로 해주라."
"좋아요. 하지만 카스텔라도요."
한 아이가 말했다. 순식간에 "그래요, 그래요" 하고 분위기가고조되어 간지를 둘러쌌다. - P215

"새전 도둑은 6학년생도 하는 거야?"
"해요, 해요. 처음에는 중학생이 했고, 그걸 초등학생이 흉내내게 되었어요. 우리는 아직 한적이 없고요."
"도쿄의 아이는 장난꾸러기뿐이구나." 간지가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 P216

구멍가게에 도착할 무렵에 간지는 아이들과 완전히 허물없이 되어 하나에 5엔이나 하는 카스텔라를 함께 먹었다.
(중략)
그 후 아이들과 딱지치기를 했다. 레분토에 있었을 때부터간지는 자주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았다. 바보라는 걸 직감으로 알았을 것이다.
간지는 자신이 처한 위치를 완전히 잊고 있었다.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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