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과 기하학

I. 지금까지 나는 여러 번 반복하여 기하학의 원리는 경험적 사실이 아니며, 특히 유클리드의 공준은 실험에 의해 증명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이미 제시된 근거들이 내게는 아무리 확실해 보여도 많은 지성에게깊이 뿌리내린 잘못된 관념이 존재하기 때문에 계속 강조해야 한다고 믿는다. - P94

III. 기하학과 천문학

질문은 다른 방식으로도 던져졌다. 만일 로바체프스키기하학이 참이라면 매우 멀리 떨어져 있는 별의 시차는 유한해지고, 리만기하학이 참이라면 음수가 된다. 이는 경험을 통해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은 결과이며,
사람들은 천문학적 관측을 통해 세 가지 기하학 중 어떤 것을 채용할지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 P95

내게 이러한 물음은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 내 생각에 이것은 누구라도 분명 터무니없다고 여길 다음의 사항과 똑같은 것이다. 미터와 센티미터로는 나타낼 수 있지만 트와즈toise,
피에pied, 푸스pouce로는 측정할 수 없는 길이가 존재하여, 실험을 통해이러한 길이의 존재를 확인함으로써 1트와즈는 6피에로 분할된다는 가설을 직접 반박할 수 있을까? - P96

이 논의에 대해 더 자세히 살펴보자. 나는 직선이 유클리드공간에서어떤 두 가지 속성을 가진다고 가정하고 이를 A와 B라 부르겠다. 비유클리드공간에서 이 직선은 아직 속성 A를 갖고 있지만, 더 이상 속성 B는 갖지 않는다고 하고, 끝으로 유클리드공간에서든 비유클리드공간에서든 직선만 유일하게 속성 A를 가진다고 하자. - P96

하지만 이런 일은 없다. 속성 A처럼 직선을 인지하고 다른 모든 선과 구별하게 해 주는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있는 속성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P96

우리는 어려움을 조금 뒤로 물러나게 했을 뿐이다.
사실 조금 전 내가 언급한 속성은 오직 직선만의 속성이 아니라 직선과 거리의 속성이다. 이것이 절대적 기준으로 이용되려면, 직선 이외의선과 거리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직선 이외의 선과 거리 이외의양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는 참이 아니다. - P97

다시 말해 임의의 한 순간에 물체의 상태와 서로 간의 거리는 오직 초기순간일 때의 동일 물체의 상태와 서로 간 거리에만 의존하고, 시스템의 초기절대위치와 초기절대방위에는 전혀 의존하지 않는다. 이를 축약해서 상대성의 법칙이라 하자. - P98

이는 공연한 걱정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사실 상대성의 법칙을 매우 엄격하게 적용하려면 우주 전체에 적용해야 한다. 왜냐하면 만일 우주의 일부만 고려한다면, 그리고 만일 이 부분의 절대적 위치가 변한다면 우주의 다른 물체들까지의 거리 역시 변하고, 따라서 고려되고있는 우주의 일부에 이 물체들이 끼치는 영향이 증가하거나 감소하여 거기서 일어나는 현상의 법칙을 변경할 것이기 때문이다. - P99

따라서 상대성의 법칙은 다음과 같이 기술할 수 있다.
임의의 한 순간에 우리의 도구를 통해 읽어 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최초의 순간에 동일한 도구를 통해 읽어 낼 수 있었던 것에만 의존할 것이다. - P99

임의의 한 순간 물체의 상태 및 서로 간 거리와, 같은 순간 이 거리들이 변하는 속도는 오직 최초의 순간 물체의 상태 및 서로 간 거리와, 최초의 순간 이 거리들이 변하는 속도에 의존하겠지만, 시스템의 최초 절대위치나 절대방위에도, 그 최초의 순간 이 위치와 방위가 변하는 속도에도 의존하지 않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렇게 기술된 법칙은 적어도 일반적으로 해석되는 경험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 P100

철학자라면 충격을 받겠지만, 물리학자라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실이 거기에 있다.
뉴턴이 이 사실로부터 절대공간의 존재를 결론지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나는 이러한 견해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데, 그 이유는 3부에서 설명하겠다. 지금으로서는 이러한 곤란에 빠지고 싶지는 않다. - P101

VI.
경험적 사실을 통해 우리는 물체 사이의 관계만 알 수 있다. 어떠한 실험도 물체와 공간 사이의 관계, 혹은 공간의 서로 다른 부분 간의 관계를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아니, 대상으로 할 수도 없다. - P101

VII.
만일 실험이 물체를 대상으로 한다면, 그것은 적어도 물체의 기하학적속성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까?
먼저, 물체의 기하학적 속성을 통해 무엇을 알 수 있을까? 나는 물체와 공간 사이의 관계에 관한 것이라고 가정한다. 따라서 이러한 속성은물체 사이의 관계만 대상으로 하는 실험을 통해서는 접근할 수 없다. 이것만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속성이 아님을 충분히 알 수있다. - P102

이는 미리 공간의 형식이나 계량적 속성에 대한 어떠한 개념을 갖고있지 않아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결코 ‘물체의 기하학적 속성‘
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그리고 만일 실험이 수행된 물체가 로바체프스키의 군과 동일한 구조를 지닌 군에 의해(즉, 로바체프스키기하학에서의 고체와 동일한 법칙에 따라) 운동한다면, 이러한 확인은 불가능할 것이다. - P104

첫 번째 검증 전체는 공간이 유클리드적임을 입증하는 경험을 구성하고, 두 번째 검증은 공간이 비유클리드적임을 입증하는 경험을 구성한다고는 하지 않기를 바란다.
사실 두 번째 검증 과정이 가능하도록 운동하는 물체를 상상(말 그대로 상상할 수는 있다. 그리고 그 증거는 제일 먼저 찾아온 기계공이 수고할 마음과 지불할 돈만 있다면 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공간은 비유클리드적이라고 결론지어서는 안 된다. - P105

보론

VIII.
완벽을 기하기 위해서는 미묘하고 긴 설명을 요하는 문제에 대해 언급해야겠지만, 여기서는 내가 『형이상학과 도덕』 Revue de Métaphysique et de Morale과 『일원론자』 The Monist에 발표한 것을 요약하는 데 그칠 것이다. 공간이삼차원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 P106

이 계열들 가운데 그 자체만으로 외적 변화를 보상할 수 있는 것들을구별하여 ‘이동‘이라 했다. 서로 매우 근접한 두 이동은 구별할 수 없으므로 이러한 이동의 집합은 물리적 연속의 특징을 보여 준다. - P107

공간의 점이란 무엇인가? 누구나 안다고 믿지만 이는 착각이다. 공간에서의 한 점을 표상하려 할 때, 우리가 보는 것은 흰 종이에 찍힌 검은 반점, 검은 칠판에 묻은 분필의 반점, 즉 항상 어떤 물체[대상]이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다음과 같이 이해해야 한다. - P107

실제로 대상이 멀어져도 망막의 동일한 점에 상이 맺힐 수 있다. 시각은 그렇다고, 대상은 계속 동일한 점에 있다고 대답하지만, 촉각은 아니라고 대답한다. 왜냐하면 방금 전까지 손가락으로 만지고 있던 대상을 이제 더 이상 만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 P108

그러면 우리가 그처럼 구별한 변화들 중 하나로부터 차례로 도출되는 모든 자세를 같은 부류에 포함시키자. 같은 부류의 모든 자세는 공간의 동일한 점에 대응되고, 각각의 부류에는 하나의 점이, 각각의 점에는하나의 부류가 대응될 것이다. - P109

선조로부터의 경험

설령 개별적 경험으로써 기하학이 창시되지 못했을지라도 선조로부터의 경험으로써는 이와 다를 것이라고 흔히들 말해 왔다. 그런데 이는 무슨 의미일까? 우리는 유클리드의 공준을 경험적으로 증명할 수 없지만, 우리의 선조들은 할 수 있었다는 의미일까? 가당치 않다. 우리의 지성은 자연선택에 의해 외적 세계의 조건에 적응해 왔고, 인간이라는 종에 가장 유리한, 다시 말해 가장 편리한 기하학을 채택했다는 의미다. 이는 기하학이 참인 것이 아니라 유리한 것이라는 우리의 결론과 완전히 일치한다.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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