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어 게임에서 축적한 가상 재화를 이베이를 통해 현실 세계에서 사고판다는 점이 무엇보다 놀라웠다. 이를테면 이베이에는 게임에서 얻은 ‘거대 거북의 벨트‘나 ‘원시 바다의로브‘ 같은 아이템을 다른 사람에게 40달러에 팔겠다는 게시물이 올라오곤 했다. 심지어 가상 세계 속 화폐인 ‘플래티넘 조각‘ 50만 개를 무려 천 달러나 주고 사는 사람도 있었다. - P5

이 연구는 사실 순전히 개인적인 흥미로 시작한 작업이었다. 그래서 캐스트로노바는 이 논문을 SSRN에 공개할 때만 해도 그리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 P7

이렇게 언론과 커뮤니티를 통해 그의 연구가 소개되기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논문은 SSRN에서 가장 많은다운로드 횟수를 기록했다. 마침내 다른 사회과학 연구자부터 정부의 경제 관료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이 그가 연구한가상 세계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순식간에 그는 각종 미디어나학술회의의 초청을 받는 가장 인기 있는 경제학자 중 한 사람이 되었다. - P7

그전까지 사람들은 게임 속 가상 세계는 현실과 단절된 세상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어찌 보면 과거 오랜 시간 동안 비디오 게임을 통해 익숙해진 편견이었다.  - P8

MMORPG 속 가상 세계는 얼핏 보기에 용과 마법이 등장하는, 현실과 전혀 다른 세상처럼 보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실 세계와 매우 유사한 경제·사회 체제가 구축되어 있었다.
가상 세계 속에서 수행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활동은 표면적으로 보면 그저 유희를 추구하기 위한 행동 같았으나 실상은 현실 세계에서 우리가 하는 행동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 P9

그의 연구는 대단히 독창적이고 흥미로웠으나 세부적인 논리 전개나 자료 정리에서 허술한 면도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지나치게 경제학적인 관점에 매몰되었기 때문인지 게임 안에서 사용자들이 하는 모든 활동을 현실 세계에서 이윤을 추구하는 경제활동 지나치게 동일시하여 이론을 전개하는 경향이 있었다. 즉, 그는 게임을 지나치게 도구적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 P10

이런 한계가 있지만 그가 게임 경제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개척한 선구자라는 점에 논란의 여지는 없다.  - P11

 가상 세계는 디지털로 이뤄져 있으며 여기서 사람들이 하는 행동이나 일어나는 사건은 모두 게임 서버를 통해 기록되고 저장되기 때문이다. 이런 자료를 ‘로그 데이터log data‘라고 부르는데, 이 로그 데이터를 분석하면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상세한 정보를 알 수 있다. - P12

이 책의 전반부인 1~3장은 이와 관련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세상의 종말이 다가왔을 때 인류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 상황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올바른 정책은 무엇일까? 가장 합리적인 보상 정책은 무엇일까? 혹시 사람들은 큰 보상이 주어지면 더 열심히 일하지 않게 되지는 않을까? 조직 관리를 위해 필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사람들이 조직에서 떠나고 조직이 쇠퇴하는 것을 미리 알 수 있는 신호는 무엇일까? 이와 같은 다양한 사회학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데 게임이 어떤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 P13

그러나 실제 온라인 게임 속 가상 세계는 개인의심리나 행동, 각종 사회적 쟁점, 심지어 국가 무역과 같은 경제활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현실과 영향을 주고받는다. 책의 후반부인 4~6장은 이와 관련된 주제를 다루고 있다. - P14

한편, 심리학에서 진행된 여러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행동에 쉽게 영향받는다. 
(중략)
 그런데 몇몇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호혜성이나 행위의 전파는 가상 세계 속 캐릭터 사이에서도 관측할 수 있으며,
심지어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의 경계를 넘어서도 가능하다고한다. 만약 이렇게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가 서로의 행동과 심리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면, 우리는 가상 세계가 현실 세계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를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 P15

고백하자면 나는 전문 연구자도 아니고 심지어 사회과학과는 거리가 먼 분야를 전공했다. 그러므로 여기서 소개하는 연구들이 사회과학 전공자의 눈에는 어설프게 비칠 수 있으리라 짐작한다. - P15

가장 큰 문제는 자료 확보의 어려움이다. 어느 분야든 마찬가지겠지만 연구에 필요한 자료는 항상 부족한 법이다. - P15

이런 이유 때문인지 캐스트로노바의 논문이 발표된 지 20년이 지났어도 게임 사회학은 여전히 학문적 유아기 수준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한 상태다. 이렇게 연구 수준이 낮다 보니 초반에 큰 관심을 보이던 사람들도 지지부진한 결과에 실망하여 등을 돌린 경우가 많다. - P17

그런데 여기서 그는 한 가지 기발한 착상을 떠올린다. 기존 게임 서비스를 단순히 끝내고 리부트버전을 시작하는 게 아니라 <파이널 판타지> 속 가상 세계인 에오르제아가 거대한 재앙에 의해 멸망하고 새로운 세계가 시작된다는 설정을 적용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기존 버전을 리부트버전으로 대체하겠다는 것이다. - P26

서비스 종료일이 다가올수록 에오르제아 전반에 걸쳐진행되는 종말 설정에 사람들의 관심이 뜨거워졌다. 도시에 쳐들어오는 몬스터들의 공격을 막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재화를 털어 방어에 전념하는 사용자가 있는가 하면, 심지어 이전에 게임을 떠났던 사용자가 에오르제아의 종말을 직접 경험하기 위해 돌아오는 사례도 있었다. - P28

특히 감동적인 부분은 마지막을 장식한 참여자 명단 영상이었다. <파판 14>의 엔딩 크레디트는 무려 1시간 38분 동안 이어졌는데, 여기에는 게임 제작진뿐만 아니라 종료 시점까지 남아준 게임 사용자들의 이름이 모두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파판 14>는 엔딩 크레디트가 가장 긴 게임으로 《기네스북Guinness book》에 올랐다.  - P29

이 사례는 실패한 게임이 리부트를 통해 성공한 거의 유일한 사례라는 점뿐만 아니라 서비스 종료 자체를 게임 안에 훌륭하게 녹여냈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찬사를 받고 있다. - P29

 처음에 그는 가상 세계의 종말을 앞둔 사람들이 서비스 종료를 결정한 게임 회사의 독단적인 결정에 분노하거나최후의 순간에 마음껏 가상 세계를 짓밟는 등의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걱정했다. 혹은 어차피 서비스를 종료하면모든 게 끝이니 미련을 두지 않고 접속을 끊고 일상으로 돌아가 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 P33

그러나 그의 예상은 모두 빗나갔다. 그동안 서비스에 애착을 가지던 사람들은 종료 순간에 가상 세계에 모여 그동안의추억을 서로 나누고, 서비스가 서서히 종료되면서 가상 세계가 조금씩 사라지고 마침내 텅 빈 화면에 접속 오류 메시지 창이 뜨는 모습을 같이 지켜봤다. - P34

고려대학교 김휘강 교수 연구실은 아마 전 세계에서 게임과관련된 연구를 가장 많이, 가장 다양하게 진행하는 곳일 것이다. 이 연구실에서는 주로 국내에서 서비스되는 MMORPG 로그 데이터를 이용해 데이터기반 보안이나 사용자 행동 분석과 관련된 여러 가지 논문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 P35

논문에 따르면, (저자의 예상과 달리) 테스트 종료가 가까워져도 게임 사용자들은 캐릭터 육성이나 생산, 소비 등의 활동에 큰 변화가 없었다. 물론 캐릭터 성장과 관련된 임무 수행이나 경험치 획득 같은 활동량은 소폭 줄어들었으며, 경제활동에서 생산에 비해 소비 비율이 늘어나는 경향이 보이기는 했으나 종말을 앞둔 시점의 변화라고 하기에는 그리 크지 않았다. - P36

강아름 교수는 그 이유에 관해 테스트 종료를 앞둔 상황이기 때문에 다른 캐릭터들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더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사용자들이 늘어났기 때문으로 추정했다. 물론 그렇다고 이것을 종말을 앞둔 아비규환으로 확대해석해서는 안 될 것이다. - P38

마지막으로 저자는 캐릭터 간의 채팅 데이터를 이용해 소통량의 변화도 분석했는데 서비스 종료가 가까울수록 함께 임무를 수행할 새로운 모임을 구하는 내용은 줄어들지만 기존 모임의 구성원들과 주고받는 대화량이 점점 늘어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 P39

정리하자면, 이 연구는 서버에 기록된 수많은 캐릭터의 상세한 수행 기록을 바탕으로 가상세계의 종말을 앞둔 사람들의 행태를 분석했다는 측면에서 의의가 있다. 물론 이 연구에서 관측한 행태가 실제 세계의 종말에서도 똑같이 재현될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 P3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최근 스릴러에선 이런 것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막상 읽으면서도 기시감이 느껴졌다.
이 책이 1990년대에 나왔었다는데, 그때는 이런 식의 전개가 익숙하지 않아서 인기가 있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재미있는 책이다. 가볍게 읽기 좋은 책으로 추천할만하다.

그의 대답은 명료하고 게다가 흥미로웠다. 『야광충』은 노노구치 오사무의 노트나 플로피디스크 속에서 내용이 일치되는 원고가 발견되지 않았던 작품 중의 하나라는 것이었다. - P144

그날 밤부터 나는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노노구치 오사무에게 히다카 구니히코의 작품 중에 추리소설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그가 이 작품의 제목을 말했었다. 뭔가 다른 의도가 있어서 이 책을 거론했는지 어떤지는 아직 알수 없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일부러 자신이 관여하지 않은 작품을 추천했는지도 모른다. - P145

고뇌를 거듭하던 그는 밤이면 밤마다 자신이 살해되는 꿈을꾼다. 천사의 얼굴을 가진 아내가 그에게 미소를 보낸 뒤에 침실의 창문을 여는 것이다. 그러면 거기로 한 남자가 들어온다.
남자는 나이프를 들고 그에게 덤벼들지만 그 직후에 남자의모습은 아내로 바뀐다. 그런 꿈이었다. - P146

히다카 쿠니히코는 모 사립대학의 계열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그대로 그 대학 문학부 철학과에 진학했다. 그곳을 졸업한뒤에는 홍보대리점과 출판사 등을 전전했고, 그 사이에 응모한 단편소설로 신인상을 수상한 것이 계기가 되어 작가활동을시작했다. 그게 약 10년 전의 일이다. 데뷔 후 3년쯤은 책이 거의 팔리지 않았지만, 4년째 되던 해에 『타오르지 않는 불꽃』이라는 작품으로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단숨에 인기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 P147

각자 다른 길을 걸어온 두 사람이 재회한 것은 노노구치 오사무에 의하면 7년 전쯤이었다. 소설 및 잡지 등을 통해 히다카의 이름을 보고 반가워서 찾아갔던 게 계기였다고 한다. - P148

"결론부터 말하자면, 타오르지 않는 불꽃이 히다카 씨에게 모종의 분기점이 되었던 건 분명해요. 그 작품으로 한 꺼풀을 벗었다고 할 수 있죠. 둔갑을 했다. 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 P149

『타오르지 않는 불꽃』은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던 한 남자가출장길에 목격한 불꽃놀이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폭죽 장인이 된다는 이야기다. 스토리도 재미있지만 불꽃의 묘사가 특히 훌륭했다. - P150

"그걸 두 분이서 함께 생각해내는 건가요?"
"아뇨, 기본적으로는 모두 히다카 씨가 생각해냅니다. 당연하죠, 그쪽이 작가니까요. 나로서는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보고간단한 의견을 말해주는 정도예요." - P150

"별로 그런 느낌은 아니었어요. 그렇다고 전혀 뜻밖인 것도아니었죠. 폭죽 장인에 대해 다룬 소설가가 적지 않으니까요."
"미무라 씨가 뭔가 충고를 해서 그 내용이 바뀌었다. 하는부분은 없습니까?" - P151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건 구별하기 힘들어요. 그 작가의 글이냐 아니냐를 알 수 있는 단서는 단어의 사용이나 표현 방식에 있거든요." - P151

나의 고스트라이터설은 흔들리지 않았다. - P152

단서는 세 가지였다. 첫 번째는 에이프런이다. 체크무늬로,
여성용이 분명한 디자인의 에이프런이 노노구치 오사무의 서랍장에 세탁하여 다리미질을 한 상태로 들어 있었다. - P153

두 번째는 금목걸이였다. 이쪽은 아직 케이스에 든 채로 포장도 뜯지 않은 상태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보석가게의 물건이다. 누군가에게 선물하려다가 그대로 넣어둔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 P153

그리고 세 번째는 여행 신청서였다. 그것은 작게 접혀서 목걸이 포장과 함께 작은 가방 속에 들어 있었다. 신청서는 모 여행대리점의 것으로, 그 내용에 따르면 노노구치 오사무는 오키나와 여행을 신청하려고 한 모양이었다. 신청서의 날짜는 7년 전 5월 10일로 되어 있었다. 출발 예정일이 7월 30일인 것을 보면 여름휴가를 이용해 여행을 떠날 생각이었던 듯했다. - P153

이런 세 가지 단서에서 추정할 수 있는 것은 노노구치 오사무에게는 적어도 7년 전에는 연인이라고 할 만한 여자가 있었고, 현재 그 여자와의 관계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노노구치 쪽에서는 아직도 그여자에 대해 호감을 품고있다는 점이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추억의 물건을 오랜 세월 소중히 간직하고 있을 리 없는 것이다. - P154

하지만 7년 전이라면, 히다카 구니히코가『타오르지 않는 불』을 발표하기 1년 전이었다. 그 무렵에 노노구치 오사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 여자를 만나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 P154

"공개하라는 건 아니고요. 그냥 저한테만 말해주시면 돼요.
만일 수사 결과, 사건과 관계가 없다는 게 밝혀지면 두 번 다시 이런 질문은 안 할 것이고, 물론 보도기관에 발표하지도 않겠습니다. 또한 상대 여성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것은 제가 보증하지요." - P155

하지만 노노구치 오사무는 그 여자의 이름을 말하려 하지않았다. 그 대신, 수사 방식에 클레임을 걸어왔다.
"아무튼 더 이상 내집을 휘젓지 말아줘. 그 속에 남에게서맡아둔 귀중한 책도 있으니까." - P156

하지만 이 탐문수사에서는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노노구치의 자택 왼편 이웃집에 살고 있고 전업주부라서 늘 집에 있다는 아줌마조차 그의 집에 여자 손님이 찾아오는 건 본 적이 없다고 대답한 것이다. - P156

나는 노노구치 오사무의 교제 범위를 처음부터 다시 점검해보았다. 올 3월에 사직했다는 중학교에도 가보았다. 그러나 그의 사적인 부분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극단적으로 적었다. 예전부터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편이 아니었지만, 건강이 나빠진뒤로는 학교 밖에서 다른 교사들을 만나는 일은 아예 없어졌다고 한다. - P157

나는 다시금 인사말을 건네고 도네 선생의 근황 등을 으레하는 절차대로 물어보았다. 그런 뒤에 노노구치 전임 교사에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찾아왔다고 슬그머니 운을 뗐다.
도네 선생은 그 즉시, 요즘 큰 화제가 된 인기작가 살인사건을 머릿속에 떠올렸는지 진지한 표정으로 승낙해주었다. - P158

"하지만 여자의 감이라는 건 적중했을 때는 꽤 인상적이지만 실은 틀리는 일도 많거든. 그러니까 객관적인 정보도 말해두는 편이 좋겠지? 노노구치 선생이 중매로 몇 번인가 선을 봤었다는 건 알고 있어?"
"아뇨, 모르는데요." - P159

나는 두 번째 질문으로 넘어갔다. 노노구치 오사무와 히다카 구니히코의 관계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아, 그렇구나, 그때 이미 가가 선생은 학교를 사직한 뒤였지?"
"그때, 라고 하시면?"
"히다카 구니히코가 무슨 신인상을 탔을 때 말이야." - P160

"잘 기억나지는 않는데 아마 그 시점에는 아직 교류가 없었을 거야. 한참 뒤에야 그를 요즘 다시 만나게 됐다고 우리한테 얘기했었으니까."
"한참 지난 뒤라면 2, 3년쯤 지난 다음이라는 뜻인가요?" - P161

"노노구치 선생도 작가지망생이었잖아. 어렸을 때 친구가자기보다 먼저 작가가 된 걸 보고 나름대로 초조했던 거 아닐까? 그렇다고 모른 척 무시할 수도 없고 자기도 모르게 찾아서읽었겠지. 그러고는 뭐야, 이 따위 글로 작가가 되다니, 차라리 내가 쓰는 게 낫겠다, 그런 식으로 생각했을 거라고."
그럴싸한 이야기였다.
히다카 구니히코가 『타오르지 않는 불꽃』으로 문학상을 탔을 때는 노노구치 선생님이 어떤 모습이었어요?" - P162

"여전히 학교폭력은 없어지지를 않아."
그렇겠지요, 라고 나는 대답했다. 학교폭력에 관한 사건에는 나도 민감해져 있었다. 예전에 내가 범한 실수가 머릿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 P163

말할 것도 없이 우리의 목적은 노노구치와 특별한 관계였던 여성의 정체를 밝혀내는 것이었다. 에이프런, 목걸이, 여행 신청서. 현재로서는 그 세 가지 물품이 단서였지만 그 밖에 좀더 결정적인 증거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P163

에이프런이 있으니까 여자가 가끔 이 집에 왔었다는 건 틀림이 없다. 그런 때 사진을 찍는 것도 가능했을 터였다. 노노구치 오사무는 오토포커스 기능이 있는 카메라를 갖고 있었다.
"사진이 있는데도 이렇게 눈에 띄지 않는 거라면 어딘가에감춰뒀다는 얘기겠죠?"
"그런 얘기가 되지. 하지만 왜 감춰뒀을까? 노노구치는 체포될 때까지 이 집이 경찰에 수색을 당하리라는 건 예상하지 못했을 텐데." - P164

나는 방 안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한 가지 퍼뜩 생각나는 게있었다. 지난번에 노노구치 오사무가 했던 말이다. 더 이상 집안을 휘젓지 말아달라, 남에게서 맡아둔 귀중한 책도 있다, 라고 했었다. - P165

"일하는 틈틈이 문득 그녀를 보고 싶다면 여기쯤에 사진을 세워두면 딱 좋을 텐데 말이에요."
그가 말한 자리는 워드프로세서 바로 옆이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물론 탁상용 사진 액자 같은 건 없었다. - P166

사진 속의 여자는 히다카 하쓰미라고 했다. 즉 히다카 구니히코의 전처였다. - P167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남편 장례식 때였는데요, 노노구치 씨가 나한테 이상한 걸물었어요."
"뭐였지요?"
"비디오테이프는 어디에 있느냐고 했어요."
"비디오테이프?"
"처음에는 남편이 수집한 영화 비디오인 줄 알았어요. 근데그게 아니라 취재용으로 촬영한 비디오테이프 얘기더라고요." - P169

"짐이 도착하는 대로 알려달라고 했어요. 자신의 집필에 사용할 테이프를 우리 남편에게 맡겨뒀다고 하더라고요."
"뭐가 찍혀 있는지는 말하지 않았군요?"
네, 라고 대답하면서 히다카 리에는 탐색하듯이 우리를 보며 말했다. - P170

"이건 좀 지난 일인데요, 노노구치 씨가 하쓰미 씨에 대한얘기를 했던 적이 있어요."
나는 내심 놀랐다.
"어떤 얘기였지요?"
"하쓰미 씨가 사망한 사고에 대한 거예요."
"노노구치 씨가 그 사고에 대해서?"
히다카 리에는 다시 머뭇거리다가 이윽고 마음을 정한 듯 입을 열었다.
"그건 단순항 사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노노수치 씨가 그렇게 말했어요." - P171

"네. 나도 물어봤죠. 그건 무슨 뜻이냐고. 그랬더니 노노구치씨가 그 즉시 후회하는 표정으로, 방금 한 말을 잊어버려라, 히다카에게는 말라고 하더라고요." - P171

하지만 이것에 대해서는 따로 추리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노노구치의 집에 에이프런이 있고, 그에게 목걸이 선물을 받을 예정이었던 여자, 그와 함께 오키나와로 여행을 떠나려 했던 여자의 정체가 히다카 하쓰였다는 것이다. 그 시점에 그녀는 분명 히다카 구니히코의 아내였으니까 두 사람은 불륜관계였다는 얘기다. 노노구치 오사무가 히다카 구니히코를 다시 만난 게 7년 전이고, 히다카 하쓰미가 사망한 것은 5년 전이니까 두 사람이 깊은 관계로 발전할 시간은 충분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또한 노노구치의 집에서 발견된 여행 신청서에 적혀 있던 또 한 사람의 이름이 노노구치 하쓰코였다. 그건하쓰미의 가짜 이름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 P172

나는 노노구치 오사무가 히다카 구니히코의 고스트라이터였다는 건 거의 명확하다고 추리했다. 많은 정황 증거가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추리는 왜 노노구치가 계속 고스트라이터로 하가카의 글을 대신 써주었는가 하는 의문에 대한 답은 되지 못했다. - P173

하지만 어쨌든 노노구치 오사무와 히다카 부부 사이에 어떤일이 있었는지 조사할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유감스럽게도 부부가 모두 사망해버려서 직접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겠지만. - P173

노노구치가 하쓰미의 죽음을 단순한 사고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노노구치는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는가. 또, 사고사가 아니라면 무엇이라는 건가. - P174

그렇다면 남는 것은 자살뿐이다. 즉 노노구치는 히다카 하쓰미가 사고로 죽은 게 아니라 자살했다고 생각한다는 얘기다. - P175

"아뇨 사위가 하는 일이 워낙 바빴으니까요. 웬만해서는 친정 나들이는 못 했어요. 그래서 전화로 잠깐 어떻게 사는지 물어보는 정도였지요."
"목소리를 통해서는 딱히 이상한 점은 없었다는 말씀이시군요?"
"예." - P179

"앨범은?"
"그건 있지요."
"그럼 우선 그것부터 좀 보여주세요."
"하지만 앨범에 붙여놓은 건 사위하고 딸 사진뿐이에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참고가 될지 어떨지는 저희가 판단하니까요." - P180

이윽고 마키무라 형사가 한 장의 사진을 발견했다. 그리고 말없이 내게 그것을 보여주었다. 나는 마키무라가 어째서 그 사진을 점찍었는지 금세 이해했다. - P181

나는 그의 빈정거리는 말에는 대응하지 않고, 가져간 사진을 그 앞에 내밀었다. 말할 것도 없이 그의 국어사전에 끼워져있던 히다카 하쓰미의 사진이었다.
"이 사진이 당신 방에서 발견되었어요."
그 순간, 노노구치 오사무의 안면이 기묘하게 뒤틀린 채딱 굳어버렸다. 호흡이 거칠어지는 게 느껴졌다. - P185

"글쎄, 그게 언제 찍은 사진인지도 모른다니까. 더구나 그사진들이 어딨는지 내가 어떻게 알겠어? 앨범에 넣었는지 내버렸는지, 그것도 몰라. 아무튼 나는 기억에 없는 사진이야."
노노구치 오사무는 낭패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나는 다시 두 장의 사진을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두 장모두 멀리 후지산을 배경으로 찍은 것이다. - P187

내 말에 대해 노노구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물론 긍정한다는 뜻의 침묵이었다.
"여기 하쓰미 씨가 입은 에이프런은 어때요? 노란색과 흰색의 체크무늬가 눈에 익은 것이겠지요? 당신 집에서 발견된 것과 똑같은 에이프런이니까요." - P189

"제발 사실대로 얘기해주세요. 당신이 자꾸 감추려고 들면우리는 다시 조사에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가 움직이면 당연히 매스컴에서 냄새를 맡을 확률도 높아져요. 아직은 그런 낌새가 없지만 곧 눈치를 채고 온갖 억측이 난무하는 기사를 써낼 거라고요. 당신이 모든 것을 솔직히 털어놓으면 그런 쪽에 대한 대책도 세울 수 있어요." - P190

"세키카와? 그게 누구지?"
"모르세요? 세키카와 다쓰오라는 게 풀네임이죠. 한 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텐데요."
"모르겠어. 나는 그런 이름, 들어본 적이 없어."
그가 단언하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답을 알려주기로 했다.
"트럭 운전기사예요. 하쓰미 씨를 치었던 사람입니다."
노노구치는 허를 찔린 얼굴이었다. - P194

"짐 속에 들어 있던 비디오테이프는 이것뿐이에요."
그렇게 말하며 히다카 리에가 테이블 위에 늘어놓은 것은8 밀리미터 비디오테이프 일곱 개였다. 모두 한 시간짜리 녹화용 테이프였다. - P196

상자를 당겨 뚜껑을 열었다. 비닐봉투에 담긴 나이프가 들어 있었다. 손잡이는 플라스틱이고 칼날은 20센티미터 정도였다. 비닐봉투째 들고 가늠해보니 묵직한 무게가 느껴졌다. - P19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가 온다, 어려운 책은 손도 대기 싫은 날이다.


"아, 맞다. 에노시마...!"
이제야 떠올랐다. 이날, 예전에 약속한 바와 같이 하야카와가의 세 사람과 마키마까지 넷이서 에노시마 여행을 가게 된것이다. - P211

"너희, 시끄러워. 여긴 공공장소야."
맞은편 자리에 앉은 아키가 인상을 팍 쓰며 야단쳤다.
덴지는 파워와 얼굴을 마주 본 다음, 거만하게 팔짱을 꼈다.
"꼬장꼬장하게 굴지 좀 마. 이럴 때 신나게 떠들고 놀지 않으면 언제 노냐?" - P212

"그 왜, 섬이란 주위가 전부 바다로 둘러싸여서 어딘가 고독하잖아? 하지만 에노시마는 육지와 연결되어 있으니 외롭지않다는 뜻이야."
"그렇군요." - P214


"덴지, 실은 저 섬에 내 별장이 있느니라.‘
"아, 그래..."
적당히 대꾸했더니 언짢은 목소리로 항의를 했다.
"뭐냐, 그 성의 없는 대답은 설마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건 아니겠지?"
"어, 거짓말이라고 생각해." - P215

"뭐, 대체로 이런 느낌이네요."
언제나와 같은 멤버들과 나누는 언제나와 같은 대화. 그러나 오늘처럼 비일상적인 자리에서는 그것도 왠지 신선하게 느껴졌다. - P21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책은 목차에는 아마 뚜렷이 나타나 있지 않을지도 모르는 많은 문제들을 제기한다. 이 책은 우리의 문명, 즉 인간다움과 합리성, 평등과자유를 목표로 한다고 기술될 수 있는 문명, 사실은 아직 유아기 상태이지만 인류의 수많은 지적 지도자들에 의해 그렇게도 자주 버림받아 왔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성장하고 있는 문명이 직면한 몇 가지 어려움을 묘사하고 있다. - P1

이렇게 함으로써 이 책이 전체주의와 전체주의에 대한 줄기찬 투쟁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 P2

나는 주로 물리학의 방법론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따라서 이 책에서 다룬 문제들과는 거리가 먼 종류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또한 몇몇 사회과학과 특히 사회철학의 다소 불만족스러운 상태에도 여러 해 동안 관심을 기울여 왔다. - P2

이런 연관에서 볼 때 한 가지 점이 나에게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우리는 전체주의의 이런저런 형태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너무 자주 듣는다. 지성과 수양을 쌓았기 때문에 자신의 말에 책임을 져야 할많은 사람들이 전체주의는 피할 수 없다는 공언을 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정말 민주주의가 영원하리라고 믿을 정도로 순진한가? - P3

역사주의의 발전 과정을 더듬어가면서 나는 우리의 지적 지도자들에게 상당히 널리 퍼져 있는 역사적 예언이라는 위험한 관습이 여러 가지기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밀에 정통한 사람들의 집단에속하고, 역사의 과정을 예측할 특이한 능력을 갖는다는 것은 항상 기분좋은 일이다. - P5

나는 역사주의가 언제나 이런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제시하려는 것은 아니다. 특히 마르크스주의자들같이 책임감에 대한 긴장을 풀지 않으려 하는 역사주의자들도 있다. - P6

왜 이 모든 사회철학자들은 문명에 대한 반역을 지지하고 있는가? 그들의 인기 비결은 무엇인가? 그들은 왜 많은 지식인들을 사로잡고 오도하는가? 나는 그들이 우리의 도덕적 이상이나 완전에 대한 꿈과는 조화되지 않고 조화될 수도 없는 이 세계에 대한 깊은 불만을 표시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 P7

 먼저 정의에 대한 플라톤적인 이론과 현대의 전체주의적이론이나 실천이 얼마나 유사한지 혼란을 겪어본 후라야 이런 문제들을 해석하는 것이 얼마나 절박한 일인지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 P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귀족의 자살 대체물

중세 사회가 자살 문제에 있어서 예외였을 확률은 매우 낮다. 비록 고대비그리스도교 사회와 대조적으로 중세에는 널리 알려진 자살이 거의 없다고 해도 그렇다. 중세에는 루크레티우스, 브루투스, 카토, 세네카 같은사례가 없다. 10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유명한 자살 사례가 한 건도 없다. - P24

이러한 관점에서 마상시합은 ‘유희적 자살‘과 유사하다. 결투 재판이나 신의 심판을 가리는 그 밖의 다양한 형식들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끊이지 않는 전쟁은 자살 충동의 중요한 배출구인 동시에 직접적 자살을 방지하는 수단이었다. - P25

프루아사르는 14세기에 90명의 기사가 싸움터에서 물러나느니 그 자리에서 죽기를 택했다고 전한다. 『플랑드르 연대기』에 따르면 쿠트레 전투에서의 라울드넬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그리스도교의 꽃이 죽어 버리는 꼴을 보느니 살고 싶지 않다고 했을 것이다. - P25

중세의 연대기에는 이러한 전사들 특유의 간접 자살들이 넘쳐난다.
심지어 때로는 직접적 죽음까지 등장한다. 그래서 외드에게 패배한 부르주 주교와 그 무리는 검을 들어 자기 몸을 찔렀다고 『생 브누아의 기적』은 전한다. 불로뉴 백작 르노처럼 모욕을 당하느니 죽음을 원한 죄수들도 있었다. - P26

잔다르크의 예는 좀더 심란하다. 그녀는 죄수 신분으로 탑에서 투신했는데 그 이유가 아주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다. 심문을 받는 동안잔다르크는 콩피에뉴 민간인 학살을 암시하여 "선량한 사람들이 죽어나간 후에 계속 사느니 차라리 죽고 싶다"고 했다. 한번은 "프랑스의 적영국인들의 손아귀에 떨어지느니 죽는 편이 낫다"고 대답하기도 했다. - P27

그러니까 중세에도 자살은 있었지만 사회계층에 따라 그 양상은 크게 달랐다. 농민과 수공업자는 가난과 고통을 못 이겨 스스로 목을 맸다.
기사와 성직자는 수치를 면하고 이교도의 승리에 찬물을 끼얹기 위해서죽음을 자초했다. - P27

문학에 나타난 자발적 죽음

문학은 이 이분법적 시각, 즉 어떤 때는 자살을 저주하고 어떤 때는 자살을 칭송해 마지않는 태도를 잘 보여 준다. 작가, 성직자, 음유시인 들은 대개 자살을 그리스도교 원칙에 따라 비난한다. - P28

 자살의 이유는 불가능한사랑, 지나친 번민, 후회, 수치, 패전의 모욕을 피하고픈 의지 등이다. 요컨대, 실패했는데 그 패배를 참을 수가 없기 때문에 자살을 하는 것이다. 자살이라는 치명적 행위를 촉발하는 것은 분노 폭발적인 질투심이나 절망,
즉 죄다. 게다가 자살은 주로 악한들이 한다. - P30

무훈시들은 일견 대체로 자살에 매우 적대적인 인상을 풍긴다. 그러나 이 노래들을 좀더 면밀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래서 바예는 "가장 잘알려진 무훈시들의 유명한 주인공 중에서 죽음을 자초하지 않은 자는 한명도 없다"고 했다. - P30

무훈시들은 직접적이지만 명예로운 자살의 예들도 담고 있다. 「오베리」에서 고트롱은 아버지를 대신하여 스스로 목을 맨다. 「도렐과 배통」에서 베아트리스는 아들이 죽고 남편이 유배당하자 탑에서 뛰어내린다. - P31

이 모든 자살은 분명히 실추 행위로서, 슈미트의 말마따나 "문학에서도 자살은 모든 행위 가운데서도 오직 넘어설 수 없는 고통만이 명령할수 있는 불길한 행위"라는 데 동의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귀족들의 행적에서 자살은 칭송할 만한 영웅적 행위로 여겨질 뿐, 비난을 받지는 않는다. - P33

자살도 계급 따라

중세의 자살은 두 얼굴을 지닌다. 거의 평민들에게만 자살을 탄압하고 귀족들은 봐주는 식이다. - P33

이러한 차이는 권리와 도덕에서 재발견된다. 대의를 위한 이타적 자살이든 사랑·분노· 광기에서 비롯된 자살이든 귀족의 간접 자살은 허용될 수 있었다. 그러한 자살은 어쨌든 귀족의 사회적 역할과 관련된 것이었다. - P34

반면, 상놈의 자살은 이기주의자와 비겁자의 고립된 행위다. 그는 몰래 목을 매닮으로써 자신의 책임을회피한 셈이다. 그의 동기는 절망, 곧 사탄이 사주한 치명적 죄악이다. - P34

자살 성향이 있는 성직자들도 특수한 하나의 부류로 묶인다. 문헌상으로 사제나 수도승의 자살은 극히 드문 일이다. 그러나 추문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은폐하거나 사고나 자연사로 위장하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 P35

자살한 성직자의 시신은 민법에 의한 형 집행은 면했다. 14세기 말에왕실 법관 장 르 코크는 성직자는 온전한 정신으로 자살을 해도 그 시신을 관할 교구의 주교에게 인도해야 한다고 선언하고 얼마 전에 자살한 생트 크루아의 원장신부에 대하여 이렇게 덧붙였다. "그는 사제였으므로시신이 교수되어서는 안된다." - P35

사실, 이따금 민법과 교회법 사이의 의견차가 발생했다. 특히 자살한 사람의 재산을 지방풍습에 따라 몰수하는 문제를 두고 곧잘 이러한 의견차가 빚어졌다. 몽트뢰유 벨레에서 칼로 자신을 찔러 자살한 사제 장 앙브루아 사건에 대해서도 양주에서 문제가 제기됐다. - P36

이단의 자살은 박해 때문에, 혹은 독자적인 신앙의 이름으로 자행되었다. 개종을 거부하고 형벌을 피하려는 뜻에서 자결을 택하는 경우는 많았다. - P37

 게다가 십자군 원정에 참여한 수장들은 알비파의 신앙적 고집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그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면하기 위하여 자살로 내몬 면도 없지 않았다. - P37

그러나 영웅적인 시대의 자발적인 그리스도교 순교자들은 존경할 만할지언정 기쁜 마음으로 화형대로 걸어가는 알비파들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악마가 알비파들에게 그 같은 대담성을 불어넣는다.
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똑같은 자살 행위를 해도 그리스도교 순교자들은 구원받고 알비파 순교자들은 저주받는다. - P38

 행위 그 자체보다는 자살자의 동기, 인물, 사회적 출신이 더 중요했다. 물론 법과 원칙은 매우 엄격했으나그 적용 실태는 놀랄만큼 유연했다. 그리스도교 문명에서 자살을 죄로보는 원칙은 자명하지도 않고 본래적이지도 않다. 사실, 그리스도교의 초기 자료들은 이 주제에 대해 침묵하거나 애매한 태도를 보인다. - P39

히브리 문화권에서의 자살

구약성서는 자발적 죽음의 몇몇 사례를 철저하게 중립적으로 다룬다. 사울 왕은 팔레스타인과의 전투에서 패하고 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무엘서』는 그저 "그러자 사울은 손수 칼을 뽑아 자결하였다"라고만 말한다.  - P39

삼손도 자신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머리 위로 신전을 무너뜨렸으니 스스로 목숨을 끊은 셈이다.  - P39

이 자살들은 대체로 영웅적인 행위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전통이 지속되다가 1,2차 유대전쟁에서 더욱 확장되어 개인 및 집단자살이 크게늘었다.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의 저작도 이 영웅적 행위들을 전한다. - P40

이러한 예들을 나열하기보다는 요세푸스가 말하는 ‘영웅적 행위들‘
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마사다 항전을 살펴보자. 서기 73년, 1000여 명의 유대인들은 바위 요새에서 로마인들에게 악착같이 항거하였으나 결국 요새가 함락될 위기에 이르렀다. 유대인들의 수장 엘레아잘은 상황에 걸맞지 않은 장문의 연설로 집단자살을 종용한다. 이 연설은 구약성서적인맥락에 스토아주의, 신플라톤주의, 힌두교를 연상케 하는 요소들을 결합한 명실상부한 자살옹호론이다.  - P41

독이 있으면 해독제도 있는 법,『유대전쟁사』에서는 엘레아잘의 연설에 정반대되는 주장도 볼 수 있다. 이번에는 요세푸스가 민감한 상황에서 직접 자신의 뜻을 밝힌다. 요세푸스가 자기편 사람들과 함께 로마인들의 포로가 된다. 그는 로마인들이 그들의 목숨을 빼앗지 않겠다고 약속하자 자기편 사람들에게 자살을 하면 안된다고 말한다. - P43

어느 쪽을 믿어야 할까? 자신이 직접 자살할 위기에 놓여 자살반대론을 펼치는 요세푸스? 아니면 (엘레아잘의 연설은 요세푸스의 창작이 명백하므로) 엘레아자의 목소리를 빌려 자살옹호론을 펼치는 요세푸스? 이 문제는 매우 부수적이다. 중요한 것은 구약성서와 직결된 유대인들의 세계에서 자살에 대한 입장은 고정되어 있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데 있다.  - P45

물론 모세의 율법에서 살인하지 말라는 제5계명을 자살에 대한 금지로 읽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계명이 자기 자신의 생명에도 적용되는지는 명시되지 않는다.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성경은 자살의 사례를 전하면서 타살의 경우처럼 명백하게 비난을 하지 않는다. - P45

 게다가 제5계명은 다양한 예외들을 인정한다. 전쟁에서 적군을 죽이거나 정당방위로 사람을 죽이거나 죄인을 처형하는 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중세 그리스도교가 성경에서 자살반대론의 근거를 찾기란 상당히 곤란했다. - P45

하지만 요한이 전하는 예수의 말, 즉 "누가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바치는 것이다"라는 "나는 내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 같은 발언은 자발적으로 선택한 죽음, 소위 자살에 대한 긍정 아닌가?


요한복음 10:15 - P46

그리스도는 유월절을 맞으러 예루살렘에 입성하면서 자신의 운명을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알면서도 자신의 죽음을 향하여 걸어갔고 재판을 받는 동안 죽음을 피하기 위한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예수의 자살은 신인(神人)과 대속이라는 맥락에서 일반 자살과는 전혀 다른 의미, 전혀 다른 차원을 지닌다.  - P47

초대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박해를 받는 동안 이러한 뜻에 입각하여 기꺼이 순교했다. 1세기 말에 성 요한은 "그들은 목숨을 아끼지 않고 죽기까지 싸웠다"라고 기록했고 하느님의 말씀을 전파했다고 해서 목이잘린 사람들을 하늘나라에서 보았다고 했다. - P48

그러나 그리스도교인의 죽음은 신심의 증거라야만 했다. 죽음 그 자체를 추구하거나 절망을 이유로 죽음을 원해서는 안 된다. 순교자의 복된 죽음은 죄인의 절망적인 죽음과 극명하게 대조된다. - P48

삶은 멸시할 만하나 참아내야 한다. 죽음은 바랄 만하나 스스로 죽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교인의 삶은 이 어려운 연습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 신약성서에서 단초를 얻어 여러 신앙 유파들에서 발전된 주요한 가르침들은 오히려 자발적 죽음을 자극하는 콘텍스트를 구축했다.  - P49

성 아타나시우스는 원칙적으로 그리스도교인은 스스로 죽음을 구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도 그리스도가 보인 모범을 생각하여 그들을 비난하지는 못했다. 나시안스의 성 그레고리우스는 일반적인 자살을 단죄하면서도 마카베오 형제의 모친의 자살은 찬양했다. - P50

이러한 망설임은 순교외의 상황들에까지 확장된다. 314년 앙카라공의회에서 공포된 법령 제25조는 남성의 유혹에 넘어가 임신했다가 버림을 받고 자살한 여인을 단죄한다. - P51

다른 여러 영역에서 그랬듯이 교리와 처벌에 대한 입장도 이단 종파들과의 투쟁 과정에서 강경하게 변했다. 348년 카르타고 공의회에서부터 자살을 찬양하는 도나투스파에 대한 반작용으로 자발적 죽음은 규탄의대상이 되었다. - P51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자살 금지

성 아우구스티누스에 이르러 이러한 강경론은 더욱 뚜렷해진다. 그가「신국론』에서 발표한 엄격한 교리는 훗날 교회의 공식 입장이 되었다.
"우리가 말하고, 선언하고, 확증하나니 어떤 식으로든 일시적인 고행을피하기 위해 스스로 죽는 자는 영벌에 떨어질 위험을 무릅쓰는 셈이다.
아무도 타인의 죄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아서는 안 된다. 타인의 죄가 우리를 더럽히지 못하니 이는 가장 큰 죄를 범하는 것이다. 아무도 사후의 삶이 더 나을 거라는 희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는 안 된다. 스스로 죽는 죄를 저지른 자들은 그러한 내세에 결코 이르지 못한다." - P52

자살에 대한 절대 금지는 당시 지배적이었던 플라톤주의의 영향과 도나투스파에 대한 과도한 반발에서 유래했다. 플라톤주의자들은 실제로 일부 예외를 인정하긴 했지만 자살을 신권 침해로 여겼고 이러한 사상은 플로티노스, 포르피리오스, 마크로비우스, 아폴레이우스에게이어졌다. - P53

아우구스티누스는 당혹감이나 모순을 회피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삼손도 죄인인가? 교회가 우러러보는 성녀 펠라기아는 목숨을 바쳐 순수를지켰는데 그녀도 죄인이란 말인가?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도식에 들어맞지 않는 이 예외들에 대해서 그들은 신의 특별한 부름을 받은 것이분명하다고 인정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자발적이었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더욱이 제5계명은 절대적이지 않다. 죄인을 사형시키거나 전쟁에서 적군을 죽이는 것은 얼마든지 허용되니까. - P5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