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어 게임에서 축적한 가상 재화를 이베이를 통해 현실 세계에서 사고판다는 점이 무엇보다 놀라웠다. 이를테면 이베이에는 게임에서 얻은 ‘거대 거북의 벨트‘나 ‘원시 바다의로브‘ 같은 아이템을 다른 사람에게 40달러에 팔겠다는 게시물이 올라오곤 했다. 심지어 가상 세계 속 화폐인 ‘플래티넘 조각‘ 50만 개를 무려 천 달러나 주고 사는 사람도 있었다. - P5

이 연구는 사실 순전히 개인적인 흥미로 시작한 작업이었다. 그래서 캐스트로노바는 이 논문을 SSRN에 공개할 때만 해도 그리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 P7

이렇게 언론과 커뮤니티를 통해 그의 연구가 소개되기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논문은 SSRN에서 가장 많은다운로드 횟수를 기록했다. 마침내 다른 사회과학 연구자부터 정부의 경제 관료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이 그가 연구한가상 세계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순식간에 그는 각종 미디어나학술회의의 초청을 받는 가장 인기 있는 경제학자 중 한 사람이 되었다. - P7

그전까지 사람들은 게임 속 가상 세계는 현실과 단절된 세상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어찌 보면 과거 오랜 시간 동안 비디오 게임을 통해 익숙해진 편견이었다.  - P8

MMORPG 속 가상 세계는 얼핏 보기에 용과 마법이 등장하는, 현실과 전혀 다른 세상처럼 보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실 세계와 매우 유사한 경제·사회 체제가 구축되어 있었다.
가상 세계 속에서 수행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활동은 표면적으로 보면 그저 유희를 추구하기 위한 행동 같았으나 실상은 현실 세계에서 우리가 하는 행동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 P9

그의 연구는 대단히 독창적이고 흥미로웠으나 세부적인 논리 전개나 자료 정리에서 허술한 면도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지나치게 경제학적인 관점에 매몰되었기 때문인지 게임 안에서 사용자들이 하는 모든 활동을 현실 세계에서 이윤을 추구하는 경제활동 지나치게 동일시하여 이론을 전개하는 경향이 있었다. 즉, 그는 게임을 지나치게 도구적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 P10

이런 한계가 있지만 그가 게임 경제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개척한 선구자라는 점에 논란의 여지는 없다.  - P11

 가상 세계는 디지털로 이뤄져 있으며 여기서 사람들이 하는 행동이나 일어나는 사건은 모두 게임 서버를 통해 기록되고 저장되기 때문이다. 이런 자료를 ‘로그 데이터log data‘라고 부르는데, 이 로그 데이터를 분석하면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상세한 정보를 알 수 있다. - P12

이 책의 전반부인 1~3장은 이와 관련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세상의 종말이 다가왔을 때 인류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 상황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올바른 정책은 무엇일까? 가장 합리적인 보상 정책은 무엇일까? 혹시 사람들은 큰 보상이 주어지면 더 열심히 일하지 않게 되지는 않을까? 조직 관리를 위해 필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사람들이 조직에서 떠나고 조직이 쇠퇴하는 것을 미리 알 수 있는 신호는 무엇일까? 이와 같은 다양한 사회학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데 게임이 어떤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 P13

그러나 실제 온라인 게임 속 가상 세계는 개인의심리나 행동, 각종 사회적 쟁점, 심지어 국가 무역과 같은 경제활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현실과 영향을 주고받는다. 책의 후반부인 4~6장은 이와 관련된 주제를 다루고 있다. - P14

한편, 심리학에서 진행된 여러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행동에 쉽게 영향받는다. 
(중략)
 그런데 몇몇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호혜성이나 행위의 전파는 가상 세계 속 캐릭터 사이에서도 관측할 수 있으며,
심지어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의 경계를 넘어서도 가능하다고한다. 만약 이렇게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가 서로의 행동과 심리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면, 우리는 가상 세계가 현실 세계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를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 P15

고백하자면 나는 전문 연구자도 아니고 심지어 사회과학과는 거리가 먼 분야를 전공했다. 그러므로 여기서 소개하는 연구들이 사회과학 전공자의 눈에는 어설프게 비칠 수 있으리라 짐작한다. - P15

가장 큰 문제는 자료 확보의 어려움이다. 어느 분야든 마찬가지겠지만 연구에 필요한 자료는 항상 부족한 법이다. - P15

이런 이유 때문인지 캐스트로노바의 논문이 발표된 지 20년이 지났어도 게임 사회학은 여전히 학문적 유아기 수준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한 상태다. 이렇게 연구 수준이 낮다 보니 초반에 큰 관심을 보이던 사람들도 지지부진한 결과에 실망하여 등을 돌린 경우가 많다. - P17

그런데 여기서 그는 한 가지 기발한 착상을 떠올린다. 기존 게임 서비스를 단순히 끝내고 리부트버전을 시작하는 게 아니라 <파이널 판타지> 속 가상 세계인 에오르제아가 거대한 재앙에 의해 멸망하고 새로운 세계가 시작된다는 설정을 적용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기존 버전을 리부트버전으로 대체하겠다는 것이다. - P26

서비스 종료일이 다가올수록 에오르제아 전반에 걸쳐진행되는 종말 설정에 사람들의 관심이 뜨거워졌다. 도시에 쳐들어오는 몬스터들의 공격을 막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재화를 털어 방어에 전념하는 사용자가 있는가 하면, 심지어 이전에 게임을 떠났던 사용자가 에오르제아의 종말을 직접 경험하기 위해 돌아오는 사례도 있었다. - P28

특히 감동적인 부분은 마지막을 장식한 참여자 명단 영상이었다. <파판 14>의 엔딩 크레디트는 무려 1시간 38분 동안 이어졌는데, 여기에는 게임 제작진뿐만 아니라 종료 시점까지 남아준 게임 사용자들의 이름이 모두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파판 14>는 엔딩 크레디트가 가장 긴 게임으로 《기네스북Guinness book》에 올랐다.  - P29

이 사례는 실패한 게임이 리부트를 통해 성공한 거의 유일한 사례라는 점뿐만 아니라 서비스 종료 자체를 게임 안에 훌륭하게 녹여냈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찬사를 받고 있다. - P29

 처음에 그는 가상 세계의 종말을 앞둔 사람들이 서비스 종료를 결정한 게임 회사의 독단적인 결정에 분노하거나최후의 순간에 마음껏 가상 세계를 짓밟는 등의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걱정했다. 혹은 어차피 서비스를 종료하면모든 게 끝이니 미련을 두지 않고 접속을 끊고 일상으로 돌아가 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 P33

그러나 그의 예상은 모두 빗나갔다. 그동안 서비스에 애착을 가지던 사람들은 종료 순간에 가상 세계에 모여 그동안의추억을 서로 나누고, 서비스가 서서히 종료되면서 가상 세계가 조금씩 사라지고 마침내 텅 빈 화면에 접속 오류 메시지 창이 뜨는 모습을 같이 지켜봤다. - P34

고려대학교 김휘강 교수 연구실은 아마 전 세계에서 게임과관련된 연구를 가장 많이, 가장 다양하게 진행하는 곳일 것이다. 이 연구실에서는 주로 국내에서 서비스되는 MMORPG 로그 데이터를 이용해 데이터기반 보안이나 사용자 행동 분석과 관련된 여러 가지 논문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 P35

논문에 따르면, (저자의 예상과 달리) 테스트 종료가 가까워져도 게임 사용자들은 캐릭터 육성이나 생산, 소비 등의 활동에 큰 변화가 없었다. 물론 캐릭터 성장과 관련된 임무 수행이나 경험치 획득 같은 활동량은 소폭 줄어들었으며, 경제활동에서 생산에 비해 소비 비율이 늘어나는 경향이 보이기는 했으나 종말을 앞둔 시점의 변화라고 하기에는 그리 크지 않았다. - P36

강아름 교수는 그 이유에 관해 테스트 종료를 앞둔 상황이기 때문에 다른 캐릭터들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더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사용자들이 늘어났기 때문으로 추정했다. 물론 그렇다고 이것을 종말을 앞둔 아비규환으로 확대해석해서는 안 될 것이다. - P38

마지막으로 저자는 캐릭터 간의 채팅 데이터를 이용해 소통량의 변화도 분석했는데 서비스 종료가 가까울수록 함께 임무를 수행할 새로운 모임을 구하는 내용은 줄어들지만 기존 모임의 구성원들과 주고받는 대화량이 점점 늘어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 P39

정리하자면, 이 연구는 서버에 기록된 수많은 캐릭터의 상세한 수행 기록을 바탕으로 가상세계의 종말을 앞둔 사람들의 행태를 분석했다는 측면에서 의의가 있다. 물론 이 연구에서 관측한 행태가 실제 세계의 종말에서도 똑같이 재현될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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