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스릴러에선 이런 것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막상 읽으면서도 기시감이 느껴졌다.
이 책이 1990년대에 나왔었다는데, 그때는 이런 식의 전개가 익숙하지 않아서 인기가 있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재미있는 책이다. 가볍게 읽기 좋은 책으로 추천할만하다.

그의 대답은 명료하고 게다가 흥미로웠다. 『야광충』은 노노구치 오사무의 노트나 플로피디스크 속에서 내용이 일치되는 원고가 발견되지 않았던 작품 중의 하나라는 것이었다. - P144

그날 밤부터 나는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노노구치 오사무에게 히다카 구니히코의 작품 중에 추리소설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그가 이 작품의 제목을 말했었다. 뭔가 다른 의도가 있어서 이 책을 거론했는지 어떤지는 아직 알수 없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일부러 자신이 관여하지 않은 작품을 추천했는지도 모른다. - P145

고뇌를 거듭하던 그는 밤이면 밤마다 자신이 살해되는 꿈을꾼다. 천사의 얼굴을 가진 아내가 그에게 미소를 보낸 뒤에 침실의 창문을 여는 것이다. 그러면 거기로 한 남자가 들어온다.
남자는 나이프를 들고 그에게 덤벼들지만 그 직후에 남자의모습은 아내로 바뀐다. 그런 꿈이었다. - P146

히다카 쿠니히코는 모 사립대학의 계열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그대로 그 대학 문학부 철학과에 진학했다. 그곳을 졸업한뒤에는 홍보대리점과 출판사 등을 전전했고, 그 사이에 응모한 단편소설로 신인상을 수상한 것이 계기가 되어 작가활동을시작했다. 그게 약 10년 전의 일이다. 데뷔 후 3년쯤은 책이 거의 팔리지 않았지만, 4년째 되던 해에 『타오르지 않는 불꽃』이라는 작품으로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단숨에 인기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 P147

각자 다른 길을 걸어온 두 사람이 재회한 것은 노노구치 오사무에 의하면 7년 전쯤이었다. 소설 및 잡지 등을 통해 히다카의 이름을 보고 반가워서 찾아갔던 게 계기였다고 한다. - P148

"결론부터 말하자면, 타오르지 않는 불꽃이 히다카 씨에게 모종의 분기점이 되었던 건 분명해요. 그 작품으로 한 꺼풀을 벗었다고 할 수 있죠. 둔갑을 했다. 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 P149

『타오르지 않는 불꽃』은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던 한 남자가출장길에 목격한 불꽃놀이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폭죽 장인이 된다는 이야기다. 스토리도 재미있지만 불꽃의 묘사가 특히 훌륭했다. - P150

"그걸 두 분이서 함께 생각해내는 건가요?"
"아뇨, 기본적으로는 모두 히다카 씨가 생각해냅니다. 당연하죠, 그쪽이 작가니까요. 나로서는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보고간단한 의견을 말해주는 정도예요." - P150

"별로 그런 느낌은 아니었어요. 그렇다고 전혀 뜻밖인 것도아니었죠. 폭죽 장인에 대해 다룬 소설가가 적지 않으니까요."
"미무라 씨가 뭔가 충고를 해서 그 내용이 바뀌었다. 하는부분은 없습니까?" - P151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건 구별하기 힘들어요. 그 작가의 글이냐 아니냐를 알 수 있는 단서는 단어의 사용이나 표현 방식에 있거든요." - P151

나의 고스트라이터설은 흔들리지 않았다. - P152

단서는 세 가지였다. 첫 번째는 에이프런이다. 체크무늬로,
여성용이 분명한 디자인의 에이프런이 노노구치 오사무의 서랍장에 세탁하여 다리미질을 한 상태로 들어 있었다. - P153

두 번째는 금목걸이였다. 이쪽은 아직 케이스에 든 채로 포장도 뜯지 않은 상태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보석가게의 물건이다. 누군가에게 선물하려다가 그대로 넣어둔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 P153

그리고 세 번째는 여행 신청서였다. 그것은 작게 접혀서 목걸이 포장과 함께 작은 가방 속에 들어 있었다. 신청서는 모 여행대리점의 것으로, 그 내용에 따르면 노노구치 오사무는 오키나와 여행을 신청하려고 한 모양이었다. 신청서의 날짜는 7년 전 5월 10일로 되어 있었다. 출발 예정일이 7월 30일인 것을 보면 여름휴가를 이용해 여행을 떠날 생각이었던 듯했다. - P153

이런 세 가지 단서에서 추정할 수 있는 것은 노노구치 오사무에게는 적어도 7년 전에는 연인이라고 할 만한 여자가 있었고, 현재 그 여자와의 관계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노노구치 쪽에서는 아직도 그여자에 대해 호감을 품고있다는 점이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추억의 물건을 오랜 세월 소중히 간직하고 있을 리 없는 것이다. - P154

하지만 7년 전이라면, 히다카 구니히코가『타오르지 않는 불』을 발표하기 1년 전이었다. 그 무렵에 노노구치 오사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 여자를 만나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 P154

"공개하라는 건 아니고요. 그냥 저한테만 말해주시면 돼요.
만일 수사 결과, 사건과 관계가 없다는 게 밝혀지면 두 번 다시 이런 질문은 안 할 것이고, 물론 보도기관에 발표하지도 않겠습니다. 또한 상대 여성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것은 제가 보증하지요." - P155

하지만 노노구치 오사무는 그 여자의 이름을 말하려 하지않았다. 그 대신, 수사 방식에 클레임을 걸어왔다.
"아무튼 더 이상 내집을 휘젓지 말아줘. 그 속에 남에게서맡아둔 귀중한 책도 있으니까." - P156

하지만 이 탐문수사에서는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노노구치의 자택 왼편 이웃집에 살고 있고 전업주부라서 늘 집에 있다는 아줌마조차 그의 집에 여자 손님이 찾아오는 건 본 적이 없다고 대답한 것이다. - P156

나는 노노구치 오사무의 교제 범위를 처음부터 다시 점검해보았다. 올 3월에 사직했다는 중학교에도 가보았다. 그러나 그의 사적인 부분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극단적으로 적었다. 예전부터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편이 아니었지만, 건강이 나빠진뒤로는 학교 밖에서 다른 교사들을 만나는 일은 아예 없어졌다고 한다. - P157

나는 다시금 인사말을 건네고 도네 선생의 근황 등을 으레하는 절차대로 물어보았다. 그런 뒤에 노노구치 전임 교사에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찾아왔다고 슬그머니 운을 뗐다.
도네 선생은 그 즉시, 요즘 큰 화제가 된 인기작가 살인사건을 머릿속에 떠올렸는지 진지한 표정으로 승낙해주었다. - P158

"하지만 여자의 감이라는 건 적중했을 때는 꽤 인상적이지만 실은 틀리는 일도 많거든. 그러니까 객관적인 정보도 말해두는 편이 좋겠지? 노노구치 선생이 중매로 몇 번인가 선을 봤었다는 건 알고 있어?"
"아뇨, 모르는데요." - P159

나는 두 번째 질문으로 넘어갔다. 노노구치 오사무와 히다카 구니히코의 관계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아, 그렇구나, 그때 이미 가가 선생은 학교를 사직한 뒤였지?"
"그때, 라고 하시면?"
"히다카 구니히코가 무슨 신인상을 탔을 때 말이야." - P160

"잘 기억나지는 않는데 아마 그 시점에는 아직 교류가 없었을 거야. 한참 뒤에야 그를 요즘 다시 만나게 됐다고 우리한테 얘기했었으니까."
"한참 지난 뒤라면 2, 3년쯤 지난 다음이라는 뜻인가요?" - P161

"노노구치 선생도 작가지망생이었잖아. 어렸을 때 친구가자기보다 먼저 작가가 된 걸 보고 나름대로 초조했던 거 아닐까? 그렇다고 모른 척 무시할 수도 없고 자기도 모르게 찾아서읽었겠지. 그러고는 뭐야, 이 따위 글로 작가가 되다니, 차라리 내가 쓰는 게 낫겠다, 그런 식으로 생각했을 거라고."
그럴싸한 이야기였다.
히다카 구니히코가 『타오르지 않는 불꽃』으로 문학상을 탔을 때는 노노구치 선생님이 어떤 모습이었어요?" - P162

"여전히 학교폭력은 없어지지를 않아."
그렇겠지요, 라고 나는 대답했다. 학교폭력에 관한 사건에는 나도 민감해져 있었다. 예전에 내가 범한 실수가 머릿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 P163

말할 것도 없이 우리의 목적은 노노구치와 특별한 관계였던 여성의 정체를 밝혀내는 것이었다. 에이프런, 목걸이, 여행 신청서. 현재로서는 그 세 가지 물품이 단서였지만 그 밖에 좀더 결정적인 증거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P163

에이프런이 있으니까 여자가 가끔 이 집에 왔었다는 건 틀림이 없다. 그런 때 사진을 찍는 것도 가능했을 터였다. 노노구치 오사무는 오토포커스 기능이 있는 카메라를 갖고 있었다.
"사진이 있는데도 이렇게 눈에 띄지 않는 거라면 어딘가에감춰뒀다는 얘기겠죠?"
"그런 얘기가 되지. 하지만 왜 감춰뒀을까? 노노구치는 체포될 때까지 이 집이 경찰에 수색을 당하리라는 건 예상하지 못했을 텐데." - P164

나는 방 안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한 가지 퍼뜩 생각나는 게있었다. 지난번에 노노구치 오사무가 했던 말이다. 더 이상 집안을 휘젓지 말아달라, 남에게서 맡아둔 귀중한 책도 있다, 라고 했었다. - P165

"일하는 틈틈이 문득 그녀를 보고 싶다면 여기쯤에 사진을 세워두면 딱 좋을 텐데 말이에요."
그가 말한 자리는 워드프로세서 바로 옆이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물론 탁상용 사진 액자 같은 건 없었다. - P166

사진 속의 여자는 히다카 하쓰미라고 했다. 즉 히다카 구니히코의 전처였다. - P167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남편 장례식 때였는데요, 노노구치 씨가 나한테 이상한 걸물었어요."
"뭐였지요?"
"비디오테이프는 어디에 있느냐고 했어요."
"비디오테이프?"
"처음에는 남편이 수집한 영화 비디오인 줄 알았어요. 근데그게 아니라 취재용으로 촬영한 비디오테이프 얘기더라고요." - P169

"짐이 도착하는 대로 알려달라고 했어요. 자신의 집필에 사용할 테이프를 우리 남편에게 맡겨뒀다고 하더라고요."
"뭐가 찍혀 있는지는 말하지 않았군요?"
네, 라고 대답하면서 히다카 리에는 탐색하듯이 우리를 보며 말했다. - P170

"이건 좀 지난 일인데요, 노노구치 씨가 하쓰미 씨에 대한얘기를 했던 적이 있어요."
나는 내심 놀랐다.
"어떤 얘기였지요?"
"하쓰미 씨가 사망한 사고에 대한 거예요."
"노노구치 씨가 그 사고에 대해서?"
히다카 리에는 다시 머뭇거리다가 이윽고 마음을 정한 듯 입을 열었다.
"그건 단순항 사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노노수치 씨가 그렇게 말했어요." - P171

"네. 나도 물어봤죠. 그건 무슨 뜻이냐고. 그랬더니 노노구치씨가 그 즉시 후회하는 표정으로, 방금 한 말을 잊어버려라, 히다카에게는 말라고 하더라고요." - P171

하지만 이것에 대해서는 따로 추리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노노구치의 집에 에이프런이 있고, 그에게 목걸이 선물을 받을 예정이었던 여자, 그와 함께 오키나와로 여행을 떠나려 했던 여자의 정체가 히다카 하쓰였다는 것이다. 그 시점에 그녀는 분명 히다카 구니히코의 아내였으니까 두 사람은 불륜관계였다는 얘기다. 노노구치 오사무가 히다카 구니히코를 다시 만난 게 7년 전이고, 히다카 하쓰미가 사망한 것은 5년 전이니까 두 사람이 깊은 관계로 발전할 시간은 충분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또한 노노구치의 집에서 발견된 여행 신청서에 적혀 있던 또 한 사람의 이름이 노노구치 하쓰코였다. 그건하쓰미의 가짜 이름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 P172

나는 노노구치 오사무가 히다카 구니히코의 고스트라이터였다는 건 거의 명확하다고 추리했다. 많은 정황 증거가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추리는 왜 노노구치가 계속 고스트라이터로 하가카의 글을 대신 써주었는가 하는 의문에 대한 답은 되지 못했다. - P173

하지만 어쨌든 노노구치 오사무와 히다카 부부 사이에 어떤일이 있었는지 조사할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유감스럽게도 부부가 모두 사망해버려서 직접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겠지만. - P173

노노구치가 하쓰미의 죽음을 단순한 사고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노노구치는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는가. 또, 사고사가 아니라면 무엇이라는 건가. - P174

그렇다면 남는 것은 자살뿐이다. 즉 노노구치는 히다카 하쓰미가 사고로 죽은 게 아니라 자살했다고 생각한다는 얘기다. - P175

"아뇨 사위가 하는 일이 워낙 바빴으니까요. 웬만해서는 친정 나들이는 못 했어요. 그래서 전화로 잠깐 어떻게 사는지 물어보는 정도였지요."
"목소리를 통해서는 딱히 이상한 점은 없었다는 말씀이시군요?"
"예." - P179

"앨범은?"
"그건 있지요."
"그럼 우선 그것부터 좀 보여주세요."
"하지만 앨범에 붙여놓은 건 사위하고 딸 사진뿐이에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참고가 될지 어떨지는 저희가 판단하니까요." - P180

이윽고 마키무라 형사가 한 장의 사진을 발견했다. 그리고 말없이 내게 그것을 보여주었다. 나는 마키무라가 어째서 그 사진을 점찍었는지 금세 이해했다. - P181

나는 그의 빈정거리는 말에는 대응하지 않고, 가져간 사진을 그 앞에 내밀었다. 말할 것도 없이 그의 국어사전에 끼워져있던 히다카 하쓰미의 사진이었다.
"이 사진이 당신 방에서 발견되었어요."
그 순간, 노노구치 오사무의 안면이 기묘하게 뒤틀린 채딱 굳어버렸다. 호흡이 거칠어지는 게 느껴졌다. - P185

"글쎄, 그게 언제 찍은 사진인지도 모른다니까. 더구나 그사진들이 어딨는지 내가 어떻게 알겠어? 앨범에 넣었는지 내버렸는지, 그것도 몰라. 아무튼 나는 기억에 없는 사진이야."
노노구치 오사무는 낭패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나는 다시 두 장의 사진을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두 장모두 멀리 후지산을 배경으로 찍은 것이다. - P187

내 말에 대해 노노구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물론 긍정한다는 뜻의 침묵이었다.
"여기 하쓰미 씨가 입은 에이프런은 어때요? 노란색과 흰색의 체크무늬가 눈에 익은 것이겠지요? 당신 집에서 발견된 것과 똑같은 에이프런이니까요." - P189

"제발 사실대로 얘기해주세요. 당신이 자꾸 감추려고 들면우리는 다시 조사에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가 움직이면 당연히 매스컴에서 냄새를 맡을 확률도 높아져요. 아직은 그런 낌새가 없지만 곧 눈치를 채고 온갖 억측이 난무하는 기사를 써낼 거라고요. 당신이 모든 것을 솔직히 털어놓으면 그런 쪽에 대한 대책도 세울 수 있어요." - P190

"세키카와? 그게 누구지?"
"모르세요? 세키카와 다쓰오라는 게 풀네임이죠. 한 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텐데요."
"모르겠어. 나는 그런 이름, 들어본 적이 없어."
그가 단언하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답을 알려주기로 했다.
"트럭 운전기사예요. 하쓰미 씨를 치었던 사람입니다."
노노구치는 허를 찔린 얼굴이었다. - P194

"짐 속에 들어 있던 비디오테이프는 이것뿐이에요."
그렇게 말하며 히다카 리에가 테이블 위에 늘어놓은 것은8 밀리미터 비디오테이프 일곱 개였다. 모두 한 시간짜리 녹화용 테이프였다. - P196

상자를 당겨 뚜껑을 열었다. 비닐봉투에 담긴 나이프가 들어 있었다. 손잡이는 플라스틱이고 칼날은 20센티미터 정도였다. 비닐봉투째 들고 가늠해보니 묵직한 무게가 느껴졌다.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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