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속도에 비해 작성하는 게 늦어진다.
‘도로시 죽이기‘는 범인을 바로 찾았는데.


"그럼 아까 말한 목록은 완전히 엉터리라는 거네?"
"뭐, 그런 셈이지."
"사람들한테 느닷없이 ‘스나크는‘이라고 말했어?"
"이 암호는 네 전용이야. 다른 사람들한테는 다른 암호를 알려줬어." - P72

"왜, 느닷없이 눈앞의 사람이 이상한 소리를 해서 무슨 소리냐고 물어보니까 마치 물어본 사람이 잘못했다는 듯이 정색하는 거잖아. 그게 정상이야?"
"이상한 나라에서는 늘 그런 식인데." - P73

"암호를 아는 녀석들은 애당초 이 세계의 주민들이니까 돌아가고 자시고 할 것 없다고."
"그래도 지구에 있는 동안은 이 세계를 잊어버리고 있을걸."
빌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응. 아주 까맣게 잊어버린 상태지가끔 생각나도 그저 꿈으로 치부하기 일쑤고." - P73

"여기서 암호를 알려주는 게 아니라 저쪽에서 암호를 알려주는거야."
"으음.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여기서는 이상하다는 취급을 받아도 된다는 거야?"
"여기서는 모두 다 이상하니까 별로 상관없어." - P74

"몰랐어. 이모리는 이쪽 세계에 실감을 느끼지 못하고, 빌은 요 모양이니까."
"요 모양이라니?"
"많이 모자라."
"스스로도 잘 아는구나." - P75

"생각났다. 지금 네가 알려준 정체를 확인하는 방법을 시험하기에 딱 알맞은 인물이."
"누군데?"
"흰토끼야."
"흰토끼?" 앨리스는 얼굴을 찌푸렸다. "날 목격했다고 거짓 증언을 한 사람이잖아." - P75

"말본새를 보아하니 꽤나 의심하는 것 같은데?"
"너랑 흰토끼 중에 누굴 믿느냐는 거지? 넌 분명 내친구야 하지만 휜토끼는 내 고용주거든."
"이 이야기에 개인적인 친분이 무슨 상관이야."
"그럼 널 안 믿어도 되는 거네?" 빌은 아주 환한 얼굴로 말했다. - P76

흰토끼의 집에 도착하자 마침 현관에서 품에 두꺼운 책을 끌어안은 중년 여자가 나왔다.
"어머, 안녕, 빌."
"안녕, 메리 앤, 흰토끼는 있어?"
"응. 하지만 기분이 좀 안 좋아. 어제 늦게까지 미치광이 모자장수와 3월 토끼에게 신문을 받았다." - P76

메리 앤은 그런 두 사람을 보고 미소지었다. "앨리스, 어려운 입장에 처한 모양인데 분명 결백을 입증할 방법이 있을 거야. 힘내."
"고마워요. 그런 말을 해준 건 당신이 처음이에요." 앨리스는 악수를 청했다. - P77

앨리스는 책등을 슬쩍 확인했다. 네크로 뭐라느니, 에이본 뭐라느니 하는 식으로 라틴어 느낌이 나는 기묘한 제목이 적힌 책뿐이었다.
"흰토끼는 이 세계의 여러 비밀을 조사하고 있어."
"나도 비밀에는 흥미가 있어. 그래서 앨리스와 함께 있지. 살인사건의 비밀을 알아내면 분명 기분 최고일 거야." 빌이 말했다. - P77

휜토끼는 의자에 앉아 책상에 몸을 수그리고 뭔가 쓰고 있었다.
"안녕." 빌이 말을 걸었다.
흰토끼가 고개를 들었다.
"돌아왔나?"다시 고개를 숙였다.
"저기, 뭣좀 물어보려는데 괜찮을까?" 빌이 휜토끼 곁에 섰다.
"조금만 기다려. 지금 중요한 보고서를 쓰는 중이거든." - P78

"그러니까 냄새에 의존하지 말고 잘 보이도록 안경을 쓰면 될거 가지고."
"안경 같은 걸 쓰면 눈에 보이는 것밖에 못 알아보잖아. 그럼 인간이나 마찬가지야."
"아아. 그 말을 듣고 생각났다. 지구에서는 너도 인간이잖아." - P79

"이 세계에 한자 같은 건 없어."
"그러고보니 그러네. 저기, 지금 나 어느 나라 말로 이야기하고있어?"
"일본어가 아닌 건 확실해." 앨리스가 말했다. "빌, 너 일본어할줄 알아?" - P80

"공유는 무슨 빌어먹을 공유! 우연히 우리 셋이 같은 꿈을 꿨을 뿐이야!"
"그런 우연이 일어날 리 없죠. 그것도 몇 년이나 계속되다니."
"네가 뭐라고 해도 난 안 믿어."
"그럼 증명해줄게요."
"할 수 있으면 해봐."
"우선 당신 이름을 가르쳐줘요." - P81

"지구가 꿈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죠. 자, 말해봐요."
"리오………….:
"예?" 앨리스는 귀를 의심했다. "지금 뭐라고 했어요?" - P81

"리오………… 다나카 리오."
"다나카 리오!"
"그래. 하지만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야."
"아는 사람이야?" 빌이 물었다.
앨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구리스가와 아리의 1년 선배에 해당하는 여자야." - P82

"험프티 덤프티가 살해당하기 전에 정원에 들어간 인물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아무렴 있었지. 그리고 그 녀석은 범행을 저지른 후 정원에서달아났어."
"그게 누군데?"
"몇 번 물어도 답은 똑같아 들어간 사람은 앨리스 한 명뿐이었어." 토끼는 앨리스를 흘끔 쳐다보았다. "난 결코 거짓말 안해." - P83

"흠." 흰토끼는 뭔가 생각하는 것 같았다. "빌, 자리를 잠시 비워주지 않겠어?"
"알았어. 어느 자리인데?" 빌은 방을 두리번두리번 둘러보았다.
"이 녀석, 정말로 그 이모리야?"
"이모리치고는 너무 얼간이지만 그런가봐요. 당신도 리오 씨랑 별로 안 비슷하잖아요." - P84

"이쪽에게 한마디 해두고 싶은 말이 있어서."
"그래? 무슨 이야기인데?"
"여기서 그걸 너한테 들려주면 방에서 내보내는 의미가 없다는것도 몰라?" - P84

미치광이 모자장수와 3월 토끼가 우르르 몰려들어 왔다.
"이봐, 험프티 덤프티가 살해당한 일에 대해서는 이미 이야기를 끝냈잖아."
"그래. 험프티 덤프티에 대해서는 말이지." 모자 장수는 앨리스를 힐끗 흘겨보았다. "이번에는 다른 일이야." - P85

"난 안 죽였다고? 혹시 또 살인사건이 발생했나요?" 앨리스가물었다.
"그래. 그러니까 여기 왔지. 널 신문해야겠다." 모자 장수가 앨리스를 가리켰다.
"방금 전에 그리핀이 살해당했어." - P85

"시노자키 교수님이 돌아가셨대." 다나카 리오가 말했다.
"그럼 그분이 그리핀이었나요?" 아리가 물었다.
두 사람은 학생 휴게실 구석에서 목소리를 낮추어 이야기를 나누었다. - P86

"아마 없다는 결론이 내려지겠지. 하기야 누가 고의로 상한 굴을 먹였을 가능성은 있지만."
"묘하네요. 굴을 속인 건 바다코끼리였는데." 아리가 말했다.
"하지만 실제로 먹은 건 그리핀이었지." - P86

"도대체 그 두 마리에게 어떤 공통점이 있는데요?"
"그날 둘 다 생일 아닌 날이었다."
아리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핀은 왜 안갔는데요?"
"안타깝게도 그날은 그리핀의 생일 아닌 날이 아니었어."
"생일이었구나. 불운한 짐승." - P87

아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가족이야."
"너, 아까 혼자 산다고 하지 않았어?"
"햄순이는 내 가족이야."
"이름을 듣자하니 햄스터?"
"응. 맞아."
"햄스터랑 몇 시간이나 이야기를 나눴는데?"
"글쎄. 한 두세 시간쯤?" - P88

"그리핀이 살해당했어."
"그건 알아. 불운한 짐승이지."
"시노자키 교수님도 돌아가셨고."
"그런가 보더군. 사인도 똑같고 말이야." - P88

"그래서, 모자 장수는 누구를 연쇄살인범으로 생각하는데?" 아리는 이야기로 되돌아왔다.
"물론 앨리스지. 뭐, 험프티 덤프티 살해사건의 용의자니까 의심하는 게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하지만 이번에는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다고."
"그게 정말이라면 범인은 따로 있다는 뜻이로군."
"마치 남의 일처럼 말하는데, 알리바이의 증인은 너거든?" - P89

"그리핀이 살해당한 당일, 앨리스와 빌은 해안에서 이야기를 나눴어."
"그건 어렴풋이 기억나는군.‘
"그리고 앨리스와 빌은 해안에서 그리핀을 목격했어." - P90

"빌이 머저리라는 건 모두 다 알고 있거든. 그러니까 빌의 증언은 아무도 진지하게 듣지 않아."
"들으나 마나 한 위안거리를 알려줘서 고마워."
"천만의 말씀."
"아무튼 빌의 기억도 증언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니 새로운 증거를 모으러 시노자키 연구실에 가자." - P93

"어머, 큰일이네. 장례식에 학회도 있구나." 히로야마 부교수의 눈썹이 더더욱 처졌다.
"저기, 장례식과 학회는 완전히 다른 범주에 들어갑니다. 친척도 아니니까 장례식에는 조문 예복 차림으로 부의금을 들고 가서 인사하고 오면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 P93

"글쎄요. 시노자키 선생님과 같은 급의 다른 분을 새로이 초대할지도 모르고, 저희 쪽에 대리 강연을 의뢰할지도 모르죠."
"대리 강연 의뢰가 들어오면 어떻게 하지?"
"히로야마 선생님이 강연하시는 게 도리상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 P94

"누가 제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죠." 이모리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옮기지 마. 나, 바쁘다고." 그리고 다바타 조교수에게 말했다.
"얘는 4학년이야? 아니면 대학원생?"
"글쎄요."
"글쎄요라니? 자기 연구실에 소속된 학생이 몇 학년인지도 몰라?" - P95

"어머나, 그러니, 우리 학과 학생이구나. 친구를 찾으러 왔니?"
"그게 아니라요. 시노자키 선생님에 대해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시노자키 선생님은 돌아가셨어."
"압니다."
"더 이상 할 말 없는데."
"선생님의 사인이 뭔지 아십니까?" - P96

"굴을 과식하셨다고 들었는데."
"히로야마 선생님." 다바타 조교수가 끼어들었다. "과식하신 게 아니라 식중독입니다.‘ - P96

"확실히 믿기 어려운 이야기죠." 이모리는 당당하게 말했다.
"하지만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는 평범한 일입니다."
"여기가 아니라면 도대체 어딘데?" 히로야마 부교수가 물었다.
"어디 같으세요?" 이모리는 히로야마 부교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 P97

"저는 도마뱀 빌입니다. 자, 뭔가 짐작가는 것 없으세요?"
한순간 히로야마 부교수의 안색이 변한 것처럼 보였다.
"뭐? 도마뱀? 이것도 무슨 퀴즈야? 아니면 그냥 장난? 나 지금바쁘다고, 몰래카메라를 흉내 내고 싶으면 다른 사람한테 가봐."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다바타 조교수가 입을 열었다. "이상한데, 묘한 게 생각났어." - P97

"같은 곳을 빙빙 돌며 옷을 말렸잖아요. 당신이 가르쳐준 방법이에요." 아리가 말했다.
"누구 옷이 젖었다고?" 히로야마 부교수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은 다 말랐습니다." 다바타 조교수가 말했다. "아니, 분명 그건 그냥 꿈이야." - P98

"잠깐!"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히로야마 부교수의 눈이 빛났다.
"기억났다!"
"이상한 나라가 생각나신 거로군요."
"기억났다고 해봤자 꿈이지만 실제로 체험한 것과는 완전히 달라." - P99

"공작부인!" "공작부인!" "공작부인!" 이모리와 아리, 그리고 다바타 조교수가 동시에 말을 꺼냈다.
"그래, 공작부인이었어." - P99

"남이 듣고 오해할 소리 하지 마. 난 결혼 안 했어. 그리고 미혼모도 아니야."
"결혼 안 하셨기는요. 공작 부인인걸요."
"아아, 꿈 이야기구나. ・・・・・・ 아기・・・・・・ . 그러고 보니 그런 게 있었던 것도 같고."
"사실은 돼지지만요."
"돼지? 무례한 말은 삼가. 그 아이가 얼마나 예쁘게 생겼는데." - P99

"그것만은 그만둬. 으음, 그러니까 넌 빌이었지."
"예."
"그리고 다바타는 도도새."
"예."
"그리고 그쪽의 넌?"
"얘는 앨리스예요." - P100

"여왕은 분명 선생님을 자기 신하로밖에 여기지 않을 겁니다."
이모리가 다시 말을 꺼냈다.
"아니, 은근히 날 한 수 위로 여기지."
"그걸 어떻게 아시죠?"
"공작부인 정도 되면 알아." - P100

"그리핀은 모르지만 시노자키 선생님은 병으로 돌아가셨어. 이건 틀림없어."
"오지 씨와 무슨 관련은 없었습니까?"
"오지? 그게 누군데?"
"요전에 옥상에서 떨어져서 죽은 박사 연구원입니다." - P101

"조사고 뭐고 오지는 자살이나 사고고, 시노자키 선생님은 병사야. 애당초 사건성이 없다고."
"현실 세계에서는 그렇죠." 이모리가 말했다. "하지만 이상한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 P102

"확실히 너희들 이야기를 들으니 뭔가 짚이는 것 같기도 해서 가설로서는 흥미로워. 하지만 꿈은 꿈이야. 아무리 기억이 남아있어도 현실하고는 아무 관계도 없다고, 그런 건 잊어버리고 현실을 살아가도록 하렴."
"그냥 꿈으로 치부하고 잊어버리라는 겁니까?" - P102

"나중에 갖다 붙인 거지. 애당초 그 두 쌍이 정말로 서로 연결되어 있었는지도 수상해."
"적어도 오지 씨와 험프티 덤프티는 분명히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걸 어떻게 알지?"
"본인이 그렇게 말했으니까요." - P103

"만약 앨리스가 두 사람을 죽인 혐의로 처형당하기라도 하면 구리스가와의 생명이 위험합니다."
"내 알바 아니야. 현실 세계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다소나마 관심이 생길지도 모르지만, 꿈속 세계에서 벌어졌다는 살인사건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사람은 없어. 자, 난 이제부터 다바타랑 상의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이만 돌아가주겠니?" - P103

"잠깐만요!" 느닷없이 아리가 외쳤다. "당신하고도 관계가 있어요, 공작부인!"
"현실 세계에서는 공작부인이 아니야."
"당신은 여왕에게 그 정원을 관리하라는 명령을 받았죠."
"여왕의 명령으로 하는 일 아닌데. 난 호의로 관리해주고 있을뿐이라고." - P104

"여왕은 당신 책임이라 여기고 질책하겠죠. 어쩌면 참수형에 처할지도 모르고요."
"그건 여왕의 입버릇이야. 실제로 목이 잘린 사람은 없어."
"질책 정도는 기꺼이 받겠다는 건가요?"
"으음. 질책은 안 할걸. 친구 사이에 질책이라니 이상하잖아.
뭐, 불평 정도는 할지도 모르겠네. 그건 그것대로 짜증날지도 모르겠다." 히로야마 부교수는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 P105

"그러고보니 시노자키 선생님은 비만체형이셨죠."
"진짜 뚱뚱하셨지. 굴을 먹고 식중독에 걸리지 않았어도 머지않아 뇌경색이나 심근경색으로 저세상에 가셨을 거야. 오지라는 사람보다 오히려 시노자키 선생님이 험프티덤프티에 더 잘 어울릴것 같아."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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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다가 든 생각, 그렇다면 담배와 같은 기호품에 대한 욕구도 대리 충족을 시켜줘 길거리에서 담배를 안 피게 될 세상이 올 수 있는가?

연민(또는 「가련함」)과 공포 (또는 「무서움」)를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 13장에서, "연민은 주인공이 부당하게 불행에 빠지는 것을 볼 때 생기고, 공포는 우리와 비슷한 주인공이 불행에 빠지는 것을 볼 때 생긴다"라고 설명하였다. - P41

되었었다. 특히 레싱 (Lessing)은 그의 <함부르크 연극론(Hamburgiche Dramaturgie, 1769)>에서, "다른 사람에게 갑자기 비극적 고통이 몰려오는 것을 볼때 느끼는 우리의 놀라움이란 동정적인 경악이어서,
그것은 이미 연민 아래 포섭되는 개념이다"라고 말하며⁶ 「연민」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는데, 그의 해석에 의하면 「공포」란 단지 연민의 감정 이후에 부수적(附隨的)으로 따라오는 종속적 감정이라는 얘기가 된다. - P42

생태계에 있어 연민의 감정이란 원칙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피비린내 나는 약육강식과 생존경쟁의 원리만이 적용되는 생태계의 질서 안에서는, 오직 약자가 강자에게 갖는 공포의 느낌만이 있을 뿐이다.  - P43

우리는 매일같이 쇠고기를 먹고 있는데, 진정으로 소에 대한 연민의 정을 느낀다면 어떻게 습관적으로 쇠고기를 먹을 수 있단 말인가?  - P43

그러니까「연민」이란 강자가 약자에게 느끼는 순간적인 감정일 뿐 지속적이고 보편적인 감정은 아닌 것이다. - P43

만약 어떤 비극 장면에서 A라는 인물이 B라는 인물을 잔인하게 죽인다고 할때, 관객이 가해자인 A의 입장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연민인 셈이고, B라는 피해자의 입장에서느낄 수 있는 감정이 공포인 셈이다. - P44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해자의 입장에서 비극을 감상하려고 할 것인데, 왜 피해자의 입장에서 비극을 감상하며 정서적 해방감 (대리배설에 의한)을 느낀단 말인가, 하는 의문이 바로 그것이다. - P44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사디즘(sadism)과 마조히즘(masochism)의 개념을 필요로 한다. - P44

 그런데 사디즘과 마조히즘은 서로 표리관계를 갖는 유사한 감정이기 때문에, 관객은 그가 처한 상황에 따라 사디스트도 되고 마조히스트도 된다. - P45

성기의 구조로 보아 남성은 항상 공격적이기 때문에 주로 사디스틱한 쾌감을 즐기고, 여성은 항상 받아들이는 입장이기 때문에 주로 마조히스틱한 쾌감을 즐긴다고도 볼 수 있다. - P45

문제는 사도마조히즘이 과연 위험한 성도착(性倒인가 하는 점이다. 빌헬름 라이히나 허버트 마르쿠제 같은 급진적인 성해방주의자들 사이에서는 사도마조히즘이 성적 자유의 표현으로 찬미되는 경향이 있다.  - P45

그러므로 사디즘이건 마조히즘이건, 사회적으로 큰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본능적 욕구표현의 정상적인 형태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 P46

특히 모든 종교가 정신적 마조히즘에 신앙심의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후략) - P46

 특히 희극이 아니라 비극만이 카타르시스 효과를 준다는 것은, 관객의 반응으로서의 연민과 공포보다도 연극의 내용이나 장면이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 P46

그렇다면 문제는, 왜 연민을 수반하는 「공포」만이우리들의 억압된 정서나 본능적 욕구를 대리배설시켜 주느냐에 있다. 기쁨이나 노여움이나 슬픔 등의 감정은 본능적 욕구를 대리배설시켜 줄 수 없는 것일까? - P47

그런데 한방의학에서는 병에 대한 저항력을 결정짓는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작용을 하는 것이 바로정신적 상태라고 본다. "칠정(七情)이 울결(鬱結)하면 병이 된다"고 보는 것이 한방의학의 상식이다. - P48

칠정(七情)은 다만 정신적인 작용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육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 P48

칠정이 각각 오장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은 일곱가지 감정들이 오장을 지배한다는 것을 뜻한다. 즉,
적당한 우(憂)와 사(思)는 비(脾)의 활동을 촉진시켜 소화력을 왕성하게 한다.  - P49

그러므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카타르시스 이론에서 말하는 「공포」또는「무시무시함」의 감정은 한방의학에서 말하는 공경(驚)의 감정에 해당된다 하겠는데, 공경심(恐驚心)이 신(腎)에 해당하는 감정이라면 카타르시스의 효과는 바로 신(腎)에 미치는 효과라고 볼 수 있다. - P51

그러므로 카타르시스 이론에서 말하는 공포의 효과는 곧 「신(腎)에 적당한 자극을 주어 생식력을 왕성하게 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 P52

그러나 이 공포가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죽음에의 공포라고 볼 때, 우리는 쉽사리 공포와 성욕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 - P52

 생태계의 법칙은 단순하다. 모든 생물은 태어나서, 번식하고, 죽는다. 심지어 어떤 동물은 새끼를 낳자마자 죽어 버리는 것도 있다.
그래서 「성욕」과 「죽음에의 공포」는 서로 밀접한 관련성을 갖는 것이다. - P53

인간의 경우 사형수가 교수형을 당할 때 반드시사정(射精)을 한다는 사실이나, 전쟁 때 오히려 여자들의 생존율이나 출산력이 왕성해지는 것도 바로이러한 이치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 P53

그러므로 비극을 통해 공포를 느끼면서 우리가 오히려 야릇한 쾌감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은, 곧 성욕의 대리 충족감을 비극을 통해서 얻게 되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 P54

리차즈에 의하면 공포는 「배타적인 감정」이고 연민은 「우호적인 감정」인데, 이들은 서로 모순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카타르시스란 모순되는 충동의 조화를 의미하는 것이며, 그 자체가 이미 아이러니라는 것이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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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째서 살인사건이라는 거죠?"
"일단 여기에 시체가 있으니까. 그게 한 가지 증거야." 모자 장수는 대답했다.
"시체라니, 이 껍데기?"
험프티 덤프티가 죽으면 껍데기 말고 뭐가 남겠어?" 3월 토끼가 말했다. - P41

"이 녀석이 하는 말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빌이 말했다. "머리가 이상하거든." - P41

"그럼 사고일지도 모르겠네요."
"사고? 무슨 사고?"
"그러니까 담 위에 앉아서 장난치다가 떨어졌을지도 모른다는거죠." - P42

 모자 장수는 순식간에 담 위로 기어올랐다. 험프티 덤프티는 여기 앉아 있었어."
"아주 미끌미끌한걸요."
"여기에 기름이 뿌려져 있었어."
"어째서 그런 짓을?"
"험프티 덤프티를 미끄러뜨리기 위해서지, 자살하려고 일부러자기 아래에 기름을 뿌리는 녀석이 있겠어?" - P42

"고작 기름만 가지고는 상황증거로서 약하지 않을까?" 빌이 말했다.
"여기에 증거가 하나 더 있어." 미치광이 모자 장수는 담에서 뛰어내려 비교적 크기가 큰 껍데기 하나를 가리켰다. "이건 험프티 덤프티의 등 부분이야." - P43

"범인을 찾아내지 않아도 되겠어요?"
"그건 증명이 아니야."
"누군가가 범인이라고 증명하는 거죠."
"그야 누군가가 범인이겠지. 살인사건이니까."
"그런 의미가 아니라 어떤 특정 인물을 범인이라고 증명하는 거예요." - P43

"그것참, 당연히 특정 인물이 범인이겠지. 불특정 인물이 살인을 저지를 수는 없잖아."
"그런 말이 아니라 예를 들어… 예를 들어 3월 토끼가 범인이라고 증명하는 거예요."
"난 아니야! 믿어줘! 난 무고해." - P44

3월 토끼가 손자국에 세제를 묻히고 걸레로 깨끗하게 닦아내고 있었다.
"무슨 짓이에요?" 앨리스는 소리를 질렀다.
험"프티 덤프티 등을 깨끗하게 닦아주고 있잖아."
"그게 무슨 의미가 있죠?"
"등이 기름투성이라고. 누구든 기분 나쁠 거야.‘ - P44

"3월 토끼가 증거를 인멸했어요."
"이미 증명했으니까 증거는 필요 없어." 미치광이 모자 장수가말했다.
"아직 필요한데. 범인을 밝혀낼 수 있었다고요."
"아까 너 3월 토끼가 범인이라고 했잖아." 빌이 말했다. - P45

"그래, 3월 토끼를 의심한다면 너도 의심해야 공평하지."
"내게는 험프티 덤프티를 죽일 이유가 없어요."
"너. 험프티 덤프티랑 무슨 일로 다뤘다면서."
"다투기는 누가요. 난 험프티 덤프티에게 시에 대해 물어봤을뿐이에요. 그랬더니 험프티 덤프티가 별안간 기분이 나빠져서 내게 무례하게 굴었다고요. 그뿐이에요."
"험프티 덤프티가 무례하게 굴어서 네가 울컥했다. 아니야?" - P45

"뭔가 생각났나, 도마뱀." 미치광이 모자 장수가 물었다.
"응, 생각났어."
"좋아. 빨리 말해. 그때나랑너랑……….
"앨리스는 알고 있었어."
뭐? 무슨 이야기야?
"뭘 알고 있었는데?"
"험프티 덤프티가 담에서 떨어졌다고 했어."
그 이야기야? - P46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험프티 덤프티는 오늘 살해당했어. 그렇게 빨리 정보가 전해질리 없다고."
"험프티 덤프티는 언제나 그렇잖아요." - P46

"다른 험프티 덤프티?" 앨리스는 생각에 잠겼다. "아니요. 험프티 덤프티는 하나뿐이에요."
"그렇다면 네 이야기는 진실이 아니야. 험프티 덤프티는 오늘죽었으니까."
"그럼 그 기억은 도대체 뭐죠?" - P47

"조사 끝났어." 느닷없이 히죽히죽 웃는 얼굴이 공중에 나타났다.
"수고 많았어, 체셔 고양이야."
"무슨 조사요?" 앨리스가 물었다.
"목격자가 있는지 없는지 조사했지." 3월 토끼가 설명했다. - P48

"공작 부인이 직접 여기 올 리 없지. 공작 부인은 지금 아기를키우느라 바쁘다고."
"진짜 아기는 아니지만, 앨리스가 말했다.
"쉿." 미치광이 모자 장수와 3월 토끼, 그리고 빌과 체셔 고양이가 거의 동시에 입술 앞에 집게손가락을 세웠다. - P48

"그런데 흰토끼는 당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난대?"
"당일이라면 오늘 말이죠?"
"난 틀린 표현 안썼어!" 모자장수는 불쾌하다는 듯이 말했다.
"알아요. 틀렸다고 지적한 거 아니에요."
"오늘 흰토끼는 순찰시간에 늦을 뻔했다."
"녀석은 늘 목에다 시계를 걸고 다니면서 왜 시간을 못 지키는거지?" - P49

"지시는 내가 내린다!" 모자 장수가 고함을 질렀다. "그건 나중에 하고 우선 목격 증언을 들려줘."
"그 담은 정원 한복판에 있으니까 정원에 들어가지 않으면 아무도 험프티 덤프티에게 다가갈 수 없어. 그리고 흰토끼가 도착했을 때 정원 안에는 험프티 덤프티밖에 없었지."
"정원 한복판에 담이 있다니 어떻게 된 거죠? 담은 부지의 경계선에 세우는 거잖아요." - P49

"입구는 거기뿐이에요?"
"거기뿐이야. 다른 곳은 담에 둘러싸여 있어서 안에 못 들어가."
"역시 바깥쪽에도 담이 있구나."
"담이란 안과 밖을 구분하기 위한 물건이니까." - P50

"짐승들은 다 알지." 모자 장수가 말했다. "냄새나 적외선 같은걸로 말이야. 당연히 흰토끼도 알아차릴걸."
"그럼 그거 아닐까요? 이 세계는 때때로 아무 상관도 없는 곳이랑 이어지잖아요. 그런 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르죠."
"공간 왜곡을 말하는 거야?" 체셔 고양이가 물었다.
"그걸 공간 왜곡이라고 불러요?" - P50

"여왕 폐하의 정원 부근은 비행 금지야. 이곳 상공은 늘 감시받고 있어서 하늘로는 접근할 수 없어." 체셔 고양이가 말했다.
"정말로요? 못 믿겠는데요."
느닷없이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작은 새 한 마리가 앨리스 일행이 있는 곳으로 떨어졌다. - P51

"흰토끼가 가장 유력한 용의자라는 뜻인가요?"
"어떻게 그렇게 되는데?"
"하지만 흰토끼한테 살인을 저지를 기회가 있었던 건 확실해요."
"그것도 조사해뒀어." 체셔 고양이가 말했다. - P52

"즉 그 전에 정원에 들어갔다가 그 후에 정원에서 나온 사람이 범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군요." 앨리스가 말했다.
"그 의견에는 이의 없어." 미치광이 모자 장수는 딱 잘라 말했다. "만약 흰토끼가 누군가를 목격했다면 이제 이 사건은 해결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 P52

"그럴까요? 만약 그 인물이 인정하지 않는다면?"
"자백이 없어도 상황증거로 판단컨대 그 녀석이 범인 확정이지.
적어도 재판에서는 승산이 없어."
"판사는 누군데요?"
"여왕 폐하겠지. 어쩌면 국왕 폐하일지도 모르지만 국왕 폐하는 여왕 폐하가 시키는 대로 할 테니까 실질적으로 똑같아." - P53

"하지만 그렇게 번거로워지지는 않을거야. 흰토끼가 정원에 들어온 인물이 있었다고 증언했거든. 그리고 그 인물은 국왕의 시종과 말들이 현장에 도착하기 전에 현장에서 달아났어." - P53

"그게 누군데요? 가르쳐줘요."
"그렇게 알고 싶어?"
"예, 거기 모자 장수가 날 의심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 빨리 오해를 풀고 싶어요." - P53

"딱 한 번만 말할 테니까 잘 들어." 체셔 고양이가 말했다.
"그거 요즘 유행하는 표현이에요?" 앨리스가 말했다.
"앨리스, 너야."
"엥?" 앨리스는 입이 떡 벌어졌다. - P54

"넌 우연히 암호가 일치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역시 암호구나."
"난 그렇게 말했지."
"그렇다면 즉.....… 안돼. 역시 말 못 하겠어." - P55

"이론은 나중에 생각하면 돼. 일단 현상을 분석하지 않으면 이론은 나오지 않아 그거 알아? 상대성이론은 어떤 상황에서든 빛의 속도는 항상 일정하다는 신기한 현상에서 탄생했다고."
"하지만 말 안 할래. 말하면 분명 이상하다고 비웃을 테니까." - P56

"응. 하지만 혹시 망상이 아닐까 싶어서………. 앗, 어쩌면 지금 네가 말했다는 것 자체가 내 망상일지도 몰라."
"그렇게까지 의심이 많으면 자기 정신 상태도 못 믿게 돼."
"지금 그야말로 내 정신 상태가 못 미더운 상태야." - P56

"그럼, 뭔데? 네가 어떻게 내가 무슨 꿈을 꿨는지 알아?"
"나도 너랑 똑같은 체험을 했으니까."
"우리 둘의 꿈이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 P57

"뭐가 객관적인 현상인데?"
"이상한 나라가 실제로 있다고 가정하는 거야."
"내 머리보다 네 머리가 더 걱정된다."
"오컴의 면도날이라고 알아?"
"수입 면도기야?" - P57

"단순한 꿈이 아니야. 두 세계의 특정 인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
"무슨소리야?"
"이쪽 세계에는 나, 이모리 겐이 존재하고 저쪽 세계에는 도마뱀 빌이 존재해. 그리고 그 둘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한쪽의 꿈이다른 쪽의 현실에 해당해." - P59

"앨리스는 험프티 덤프티를 살해한 범인으로 몰렸어."
"그랬지. 하지만 그건 미치광이 모자 장수와 3월 토끼가 자기들 맘대로 그렇게 믿는 것뿐이야."
"하지만 그들은 증거를 제시했어."
"증거라니, 흰토끼의 헛소리?" - P59

"어차피 꿈속 이야기인걸, 뭐."
"그러니까 그냥 넘어가자? 만약 종신형을 받고 감옥에 갇히면네 인생의 절반이 날아가는 거야."
"절반? 꿈은 깨면 끝인데?"
"반년 전까지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하지만 같은 상황의 꿈을 꾼다는 걸 알아차리고 나서 꿈 일기를 써보기로 했지." - P60

‘그럼 질문을 바꿀게." 이모리는 말했다.
"이상한 나라의 꿈 말고 기억나는 꿈 있어?"
"당연하지."
"예를 들어 어떤 꿈?"
"어떤 꿈이라니・・・・・・ . 엥?"
"어떤 꿈인데?" - P60

"그럼 시간을 주면 다른 꿈을 기억해낼 수 있다는 거지?"
"그럼. 당연하지."
"좋아, 얼마든지 기다릴 테니 한번 해봐." 이모리는 입을 다물었다.
아리는 눈을 감고 심호흡했다. - P61

"기억났어?"
"깜빡 잊어버렸을 뿐이야. 가끔 그럴 때가 있잖아."
"지금까지 살면서 꾼 꿈을 싹 다 잊어버렸다고?"
"싹 다 잊어버린 건 아니야."
"그럼 무슨 꿈이 기억나는데?"
"..... 이상한 나라・・・・・・ ." 아리는 꺼져 들어갈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 P61

아리는 한숨을 쉬었다. "그래. 난 지금까지 한 종류의 꿈밖에 꾼적이 없는 것 같아."
"안 믿길지도 모르지만 이제부터 매일 꿈 일기를 쓰면 점점 믿음이 생길 거야."
"그러니까 넌 이제부터 내가 매일 밤 감옥에 갇힌 꿈을 꿀 거라는 거구나." - P62

"세계관찰, 이 세계와 이상한 나라 양쪽을 관찰하다 보니 조금씩 두 세계의 관계가 눈에 들어오더라."
"네 이야기를 듣다 보니 병원에 가보는 게 나을 것 같은 기분이들어."
"어째서?"
"보통은 자신의 망상이라고 여길 거야." 
"너도 자신의 망상이라고 생각해?"
"아니. 같은 체험을 한 사람이 한 명 더 있잖아. 하기야 너 자신이 내 망상이 아니라면 말이지만." - P63

"아니, 그게 아니라 같은 체험을 한 사람이 너 말고 한명 더 있
"뭐라고?" 아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이야기를 빨리 했어야지."
"일단 네가 정말로 앨리스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었어." - P63

"오지 씨도 이상한 나라의 주민이었어."
"하지만 아까 오지 씨는 그냥 안면이 있는 사람이라면서."
"그래. 그냥 안면이 있는 사이지. 특별히 두터운 우정으로 맺어진 사이는 아니야." 이모리는 말을 이었다. - P64

"놀라 자빠질 지경이었어. 하지만 사실이 명백해지니 연구자로서 흥미가 동하더라고. 도대체 이건 어떤 원리로 일어나는 현상인지 궁금했지."
"알아냈어?"
"아니, 겨우 가설을 세우고 있는 단계야." - P65

"네게 들려줘야 할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고 했잖아."
"지금까지 이야기한 거 아니야?"
"지금까지 한 이야기도 충분히 중요해. 하지만 지금까지 한 이야기를 전제로 이제부터 할 이야기는 네게 정말로 중요해."
"뜸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 병원 문닫겠어." - P67

"만약 앨리스가 험프티 덤프티를 살해한 범인으로 체포되면 어떻게 될까?"
"아까도 말했지만 감옥에 갇히겠지."
"판사가 여왕이라면?"
"목이 달아날지도 모르지. 여왕은 상대가 누구든지 간에 목을 쳐라!‘라고 말하니까. 하지만 실제로 목이 댕강 잘린 사람은......" - P67

"중요한 정보를 하나 알려줄게. 네 마음은 충분히 굳센 것 같으니까." 이모리는 심호흡을 했다. "이상한 나라에서 오지 씨의 아바타라는 험프티 덤프티였어." - P68

"그래. 두 세계의 죽음은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어." 이모리는 차분하게 말했다. "그럴 경우, 앨리스가 사형을 당하면 현실세계의 너도 죽어." - P68

숲 속에는 사람 눈(혹은 짐승의 눈)이 많기 때문에 앨리스와 빌은 해안으로 왔다.
그러나 여기라고 아무도 없는 것은 아니다.
조금 떨어진 모래 언덕 뒤편에서 그리핀과 가짜 거북이 엿보고있고, 그 바로 옆에서는 바다코끼리가 어린 굴을 속이고 있는 참이었다. - P69

"지금 지구라고 했는데, 역시 여기는 지구가 아니구나."
"뭐, 그렇다고 결정된 건 아니지만. 뭐, 여기는 그다지 지구 같지 않으니까."
"역시 넌 이모리 같지 않아. 이모리는 좀 더 명석한걸." - P70

"확실치는 않지만 몇 명에게 미묘한 반응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지. 그들은 한순간 놀란 듯한 표정을 짓거나 꿈의 내용을 자세히 듣고 싶어 했어."
"그 사람들한테는 가설을 들려주지 않았어?"
"아무 준비도 없이 공개해도 될지 망설여졌거든. 혹시 진짜 무슨 음모라면 큰일 날지도 모르잖아." - P70

"그럼 다음에 지구에서 잠이 깼을 때 보여줘 아무튼 그 목록에나도 실려 있었던 거구나."
"아니. 넌 목록에 없었어."
"그럼 왜 나한테 암호를 가르쳐준 건데?"
"도박이었어."
"도박?"
"앨리스와 구리스가와 아리의 이미지는 아주 비슷해. 그리고 넌 음모가 유형이 아니야."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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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가서 설명 드릴게요. 절대 예원이 나가지 않게 해주세요. 너무 걱정 마시고요. 제가지금 갑니다.
통화는 일방적으로 끊어졌다. 다급한 마음이 여실히 느껴졌다.
그것은 옥순도 마찬가지였다. 전화가 끊어지자 그녀는 더욱 불안했다. 이 상황을 이해시켜줄 마지막 줄이 끊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 P48

딸이 거기에 서 있었다. 파랗게 질린 입술로 자신을 향해 웃고있었다. 점퍼 하나 없이 이 겨울에 여기까지 어떻게 온 걸까 생각하기도 전에 예원의 손을 잡고 있는 웬 남자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 P49

예원은 선우의 옷 중에서 고무줄로 된 트레이닝복을 꺼내 아이에게 입혔다. 아이의 작은 복사뼈 위로 바지가 껑충 올라갔다. 티셔츠는 몸을 죄었다. 예원이 옷자락을 매만지며 해사하게 웃었다. - P49

대문을 넘는 자신을 물끄러미 보는 시선을 그때의 옥순은 알지 못했다. 청소를 마친 후장을 보러가려고 화장대에 올려둔 지갑을 예원이 보는 것도 말이다. - P50

없었다. 예원이.
지갑이 사라진 것을 알게 된 것은 조금 나중의 일이었다. - P50

"네, 장모님."
-이 서방, 이걸 어쩌나!
장모님의 목소리는 기절하기 직전의 사람 같았다.
-자네랑 통화하는 사이에 예원이가 사라졌어! - P51

예원의 손을 잡고 걸으면서도 아이의 작은 머리가 연신 가게 쪽으로 향했다. 아이의 시선 끝에는 주황색 망에 담긴 구운 달걀과 꼬치 어묵 같은 것이 있었다. 아니면 옆에 있는 사탕이나 과자, 초콜릿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예원은 문득 걸음을멈추었다.
"뭐 먹을래?" - P52

버스에 올랐다. 버스표에 있는 좌석 번호를 확인하며 안쪽으로들어갔다. 예원이 가진 티켓은 18번과 19번 좌석이었다. 앉으려는데 아이가 머뭇거렸다. 아이의 눈이 안쪽 자리에 가 있었다.
"창가에 앉을래?"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가만히 있을 뿐이었지만, 아까처럼 눈을 돌리지는 않았다. - P52

그때 예원은 창 너머 승강장으로 달려오는 선준을 보지 못했다. 봤다고 해도 달라질 일은 없었다. - P53

차 한 대가 예원의 앞을 거칠게 막아섰다. 예원은 한 팔을 내뻗으며 아이를 감쌌다. 차의 조수석 유리창이 밑으로 내려갔다. 앉아 있는 것은 선준이었다. 화를 내는 건지, 울고 싶은 건지 알 수없는 얼굴이었다. - P54

"당신이 지금 무슨 짓을 벌인 줄이나 알아?"
집 안에 들어서기 무섭게 선준이 소리를 질렀다. 뒤따라 들어오는 예원은 여전히 로운의 손을 잡고 있었다. 큰 눈을 깜박이며선준의 얼굴을 보던 예원은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무릎을 굽히고 앉아 로운의 신발을 벗겼다. - P55

"아까 병원에서 불렀던 노래 있지? 그거 불러봐. 응?"
로운은 멀뚱히 정면만을 보고 서 있었다. 고개를 돌리며 예원이 선준을 향해 웃었다. - P55

문득 금평 경찰서에서 발견됐다던 시신이 떠올랐다. 선우의 것과 비슷한 목걸이는 우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에 불고 시간이 오래되어 그렇게 보인 것뿐이라고. 어쩌면 지금쯤 선우가 아니라는 검사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른다고. - P56

"얘는 우리 선우가 아니라고."
그렇게 말하는 선준에게도 절망이 찾아왔다. 이런 소리를 할때마다 깨닫게 된다. 우리는 선우를 잃었다는 것을. - P57

"편식도 안돼. 알았지? 다음 반찬은 꼭 김치 먹기?"
아이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거실에 앉아 있는 선준은 손을 들어 마른세수를 했다.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입술을 깨물며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아까부터 계속 울려대는 전화를 더 이상무시할 수는 없었다. - P57

미친 건 아닌가. 차마 그 소리를 뱉지 못하고 장모님의 말은 끊어졌다. 입으로 뱉는 순간 현실이 될까 두려운 마음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선준은 너무 걱정 마시라는 말을 기계적으로 뱉었다. - P58

"원장님, 저 이선준입니다."
몇 번이고 전화를 받지 않은 선준에게 민서진은 대뜸 원망을 터뜨렸다. 선준은 보이지도 않을 민서진에게 고개를 숙이고 사죄했다. 상황도 대충 알렸다. - P58

충동적으로 아이를 데리고 나갔을 가능성이 있어요. 선우라고 믿고 싶은 거지 정말로 착각한 게 아니라는 거예요. 잘못된 걸알고도 지금은 인정하지 않으려는 방어기제가 작용하고 있을 거예요. 힘들더라고 현실을 직시할 수 있도록 해주시는 게 좋아요. - P58

"괜찮아, 이리 와."
로운은 그대로 앉아 동그랗게 뜬 눈으로 말끄러미 예원을 보았다. 예원이 웃으며 부드럽게 로운의 손을 잡았다. 그녀가 이끄는대로 로운은 천천히 일어나 욕조 안으로 몸을 들였다. - P59

이것 역시 3년 전에 사용했던 것이다. 이 집의 모든 것은 3년 전에 머물러 있었고,
3년 만에 다시 깨어나고 있었다. - P60

 3년 전 여섯 살이었던 선우가 입던 잠옷이니 로운에게 맞을 리가 없었다. 단추 사이사이가 벌어지고 팔과 다리가 쑥 올라온 옷을 입은 로운을 보니 더욱 화가 났다. 선준은 예원의 손목을 거칠게 잡아끌고 거실 가운데에 세웠다.
"자, 봐! 저 애가 정말 선우라고?" - P60

 사진 속의 선우는 피부가 하얗고, 머리카락은 손에 쥐면 빠져나갈 정도로 가늘고 부드러웠으며, 쌍꺼풀이 없었고 눈 끝이 둥글게 휘어져 순해 보였다. - P61

예원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치솟았다. 마구 저항하던 어깨의 움직임도 멎었다. 예원의 고개가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선준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바닥으로 툭 떨어진 눈물은 예원의 것이었다. - P61

"우리 선우였으면 좋겠어. 이젠 이젠 찾았으면…………. 이젠 찾고 싶어."
예원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선준은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터질 것 같은 가슴을 어찌할 도리가 없어서 그녀를 당겨 안았다. 이렇게 끌어안고 지탱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 P62

"선우다."
"뭐?"
선준이 놀란 눈으로 로운을 보았다. 로운이 벽에서 뗀 시선을 천천히 선준에게로 향했다. 로운의 작은 입술이 선준을 향해 똑똑히 말했다.
"이선우예요."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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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작의 후속작을 먼저 읽고 첫 작품을 읽는 것이다.









맞은편에서 흰토끼가 달려왔다.
조끼에서 시계를 꺼냈다. "큰일 났다! 늦겠어."
이 토끼가 특별히 시간 개념이 없는 건지, 원래 토끼라는 종족자체가 시간을 지키는 능력이 모자란 건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그는 늘 이 모양이었다. - P5

 어쩐지 좀 더 지루하지만 차분한 일상이있었던 것 같은 기분도 든다.
"거기 비켜, 메리 앤! 늦을 것 같아! 알잖아!"
앨리스가 입을 열려고 했을 때 뒤에서 누가 말을 붙였다. - P5

"있지. 암호를 정해두자."
돌아보자 도마뱀 빌이 서 있었다.
"암호? 무슨 소리야?"
"암호란 같은 편이라는 걸 식별하기 위해 비밀리에 정해놓는 말이야." - P6

"너, 아는 이들 모두에게 지금이랑 똑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돌아다니는 거니?"
빌은 고개를 저었다. "설마, 모두에게 말하면 의미가 없잖아. 이이야기는 같은 편에게만 했어."
어머. 빌은 날 같은 편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 P6

"왜냐니, 암호가 없으면 적인지 아군인지 판단할 수 없잖아."
"판단할 수 있는 거 아니야? 난 같은 편이잖아."
"그러니까 암호를 정해두지 않으면 앨리스가 같은 편인 줄 모른대도."
"그럼 적이라도 상관없어."
빌은 고개를 붕붕 저었다. "그건 곤란해. 앨리스는 같은 편이니까." - P7

"암호는 다음에 다시 정하자."
"왜?"
"얘가 있어서." 앨리스는 호주머니를 가리켰다.
"호주머니가 사방팔방 퍼뜨릴까봐? 그 녀석은 대개 과묵하니까 괜찮아." - P8

"아까 앨리스가 털 뭉치라고 했어."
"아니. 안그랬어. 네가 그랬지..
"내가 털 뭉치라고 하니까 앨리스가 ‘그래‘라고 했잖아."
"그건 털 뭉치"라는 뜻이 아니라 ‘호주머니의 내용물은 털 뭉치같은 것‘이라는 뜻이었어." - P8

"앨리스는 털 뭉치 같은 게 신경 쓰이는 거야?"
"그래, 그냥 털 뭉치가 아니니까."
"그냥 들어 있는 게 아니야? 그럼 얼마 주고 샀는데?"
"안샀어. 친구니까."
"친구한테 샀다고?"
"아니, 친구한테 안 샀어."
"그럼 친구 아님 한테 샀구나."
"친구 아님한테도 안샀어. 만약 그런 단어가 있다면 말이지만." - P9

"털 뭉치치고는 하지만 겨울잠쥐로서는 보통인가?"
"겨울잠쥐? 왜 갑자기 그런 뚱딴지같은 녀석 이야기를 하는거야?"
"쉿!" 앨리스는 입 앞에 손가락을 세웠다. "다 들려. 호주머니에 들어 있으니까."
"맙소사!" 빌은 호들갑스럽게 머리를 끌어안았다. "왜 그런 중요한 이야기를 비밀로 한 거야?" - P10

"그래도 언제 깨어날지 모른다고. 그러니까 지금은 암호를 말하지마."
"겨울잠쥐가 깨어나기를 기다렸다가 암호를 가르쳐달라는 거야?"
"그게 아니라 겨울잠쥐가 들을 수도 있으니까 암호를 말하지 말라는 거야." - P10

"그럼 같은 편 말고 다른 사람에게 새나가면 곤란하지 않아?"
"뭐? 그럼 겨울잠쥐는 적이야? 어디서 그런 정보를 입수했어?"
빌은 눈을 반짝였다. - P10

"겨울잠쥐가 적과 내통하고 있을 가능성"
이 녀석이?" 빌은 겨울잠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통자는 늘 이렇게 푹 잠들어 있는 건가?"
......
"잠이랑 내통은 상관없어. ・・・・・・ 하지만 이렇게 잠이 많으면 내통자답다고 하기는 힘들지도 모르겠다." - P11

"나안자!" 겨울잠쥐가 말했다.
앨리스와 빌은 말없이 겨울잠쥐를 관찰했다.
겨울잠쥐는 눈을 감은 채로 숨을 색색 내쉬었다. - P11

"겨울잠쥐 같은 편으로 생각하는 거야. 그럼 암호가 새나가도아무 문제 없어."
"엥? 그렇게 쉽게 믿는 거야?"
년 겨울잠쥐를 의심해?"
"설마."
"그렇겠지. 나도 이 녀석을 의심하지 않아. 게다가 만일 이 녀석이 적이라고 해도 전혀 무섭지 않다고. 그럼 적이든 아군이든 상관없잖아."
"깔보지 마!" 겨울잠쥐가 소리쳤다. - P12

"아무튼 겨울잠쥐가 같은 편이라고 생각하는 건 찬성이야. 빨리암호인지 뭔지를 말해줘."
"알았어. 내가 먼저 ‘스나크는‘이라고 말하는 거야. 그럼 너
"부점이었다."
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떻게 알았지? 비밀이 새나갔나?"
"누구한테서 비밀이 새나갔다는 거야?"
빌은 겨울잠쥐를 노려보았다. - P13

"음. 너, 겨울잠쥐 앞에서 암호를 말한 적 있어?"
"응. 있어. 정확하게 따지자면 난 앞쪽 절반을 말했고, 나머지는네가 말했지만."
"방금 전에 우리 둘이 말한 거?"
"기억 안나?" - P13

"그래. 아까 처음 말했어. 그 전에는 내 머릿속에만들어 있었지."
"그런데 겨울잠쥐를 의심하다니 사리에 어긋나잖아."
"하지만 내가 암호를 가르쳐주기 전에 네가 이미 알고 있었으니겨울잠쥐를 의심할 이유는 충분한 것 같은데."
"아니야. 겨울잠쥐는 무고해." - P14

 빌은 이마를 탁 쳤다. "내가 배신자였을줄은 꿈에도 몰랐어."
"안심해, 빌, 너도 배신자가 아니야."
"어떻게 알아?"
"넌 배신자 유형이 아니거든. 게다가 네가 배신자라면 너 스스로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 거야." - P15

"큰일이다!" 시종들과 말들이 그렇게 외치면서 눈앞을 달려갔다.
"뭐야? 왜 그래?" 빌이 물었다.
"왕의 시종과 말들이 허둥대는 걸 보니 답은 하나야."
"누가 배신자인지 알아낸 거야?"
"그게 아니라 틀림없이 담에서 떨어졌어."
"뭐가 담에서 떨어졌는데?" - P16

"그래서 누가 떨어졌는데?"
"진심으로 묻는 거야?"
"응." 빌은 고개를 끄덕였다.
"왕의 시종과 말이 달려갔는데 모른단 말이지."
"응." 빌은 고개를 끄덕였다.
"험프티 덤프티." - P17

"잠깐 기다려." 앨리스도 허둥지둥 뒤를 쫓았다.
"여왕님의 성 정원이야." 빌은 달리면서 손가락질했다.
빌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을 보자 팍삭 찌그러진 뭔가가 사방으로 흩어져 있었다. 거대한 하얀색 껍데기 같은 것이 보였다. 그리고 검붉은 뭔가도. - P17

험프티 덤프티 주변에 두 명이 서 있었다. 뭐, 사람은 아닐지도모르지만 아무튼 사람 취급하는 것이 여기 방식이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두 명이 3월 토끼와 미치광이 모자 장수라는것이 확실해졌다. - P18

"범죄? 험프티 덤프티가 담에서 떨어졌을 뿐이잖아요? 그렇다면 사고죠."
모자 장수가 고개를 들었다. "아니. 험프티 덤프티는 살해당했어. 이건 살인사건이야.‘ - P18

구리스가와 아리는 침대에서 흐느적흐느적 기어 나와서 자명종 시계를 썼다. 언제나처럼 징그럽게 사실적인 꿈이었다. 한창 꾸고 있을 때는 이것이 꿈인지 의심할 수 없을 만큼 오감이 전부 뚜렷하다(엄밀히 말하자면 그 감각 자체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느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는 거지만). - P19

그건 그렇고 왜 이렇게 머리가 이상한 인물과 동물이 사는 세계의 꿈만 꾸는 걸까? - P19

최근에는 이 꿈만 꾼다. 혹시 매일 꾸고 있나? 설마.
어제 꾼 꿈을 떠올려보자.
어제는 그 세계 꿈을 꿨다. 어제는 말이지. 이틀 연속으로 꾸는건 그렇게 신기한 일이 아니다.
그저께 꾼 꿈을 떠올려보자.
분명 그 세계 꿈이었던 것 같아. 우연히 사흘 연속꿨을 뿐이지만,
그저께는 어땠더라?
어쩐지 그 세계 꿈을 꿨던 것 같은데,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 P20

고작 꿈일 뿐인데 어쩐지 굉장히 신경쓰이네. 이럴 줄 알았으면 꿈 일기라도 쓸걸 그랬어.
그래. 꿈 일기.
시험 삼아 지금부터 써볼까? 날짜와 함께 꼬박꼬박 적어두면 심리적인 뭔가를 파악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 P21

‘스나크는 부점이었다‘는 건 무슨 뜻일까? 아아. 하지만 이 말은 빌한테 듣기 전에 이미 알고 있었던가. 그럼 혹시 그 세계에서는 누구나 아는 표현일까? 그렇다면 빌은 정말 얼빠진 녀석이야. - P22

"무슨 일 있었어요?" 아리는 한 살 많은 대학원생 다나카 리오에게 물었다.
"나카노시마 연구실의 오지 씨가 돌아가셨대."
"예?" - P22

"갑작스레 병이라도 걸리셨나요?"
"달걀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둥글둥글한 체형이니까 당뇨병이나 순환기 계통 질환이 바로 떠오르지? 하지만 아니야. 추락사래." - P22

"분명 자살은 아닐 거야." 리오가 불쑥 말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자살할 사람이 아닌걸. 그렇지 않아?"
"나는 오지 씨랑 그렇게 친하지 않아서.…………." - P23

"혹시 일정에 여유가 있을 만한 분 모르세요?"
"여유? 그런 사람은 아니지......"
"짐작가는 분이 계세요?"
"뭐, 여유롭다면 여유롭지만 여유하고는 좀 다른 것 같은 기분도 들고."
"여유가 있는 건가요 없는 건가요?"
"뭐, 별난 녀석인 것만은 틀림없어." 대학원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데요?"
"이모리야 이모리 겐, 알아?" - P25

"너, 모레 증착 장치 쓰려고 예약했지? 그거 양보해주지 않을래?"
이모리는 다시 고개를 갸우뚱했다.
"목 아파?"
"생각 좀 하느라고." - P26

"그렇게 애매해? 모레인데?"
"모레 일은 모레 일이니까. 오늘은 오늘 할 일만으로도 힘에 부친다고."
"하지만 너 지금 텔레비전 보고 있었잖아."
"그래. 그게 오늘 할 일 중 하나야." - P26

"생각해내야 할 게 또 하나 늘었군."
"생각해내지 않아도 돼. 내가 가르쳐줄게. 오지 씨 말이야."
"오지?"
"오지 씨 이름도 까먹었어?"
"아니, 그건 기억나. 하지만 나랑 친한 친구라니 처음 듣는 소린데. 어쩌면 잊어버렸는지도 모르겠네." - P26

"아아, 생각났다!" 이모리는 아리의 얼굴을 가리켰다. "넌 구리스가와야."
"계속 그걸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그래. 하지만 생각해내야 할게 한가지 더 있어. 그게 더 중요해." - P27

꼭 그렇지만도 않아 무슨 실험을 할 건지 들어볼 수 있을까?"
아리는 낙담하면서도 자신의 실험 내용을 간단히 설명했다.
"아하, 전극을 형성하기만 하면 되는 거로군."
"뭐, 요컨대 그런 셈이지."
"그럼 스퍼터* 장비를 쓰면 돼."
"스퍼터 장비라니 좀 거창하지 않아?"


* 증착에 사용되는 장비의 일종 - P28

"왜? 아직 더 남았어?"
"한 가지만 더."
"그러고보니 뭔가 생각해내야 하는 게 있다고 그랬지?"
"중요한 일이야."
"생각이 안 나는데 중요하다는 건 알아?"
"신기하게도 말이지." - P29

"오지 씨는 역시 사고였을까?"
"병으로 죽었을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겠지만 거의 없을 거야. 사고나 자살이나 타살이겠지."
"병으로 죽은 걸 빼면 당연히 그 세 가지 중 하나지 뭘."
"하지만 아주 묘해."
"너도 그렇게 생각해?"
"그 사람은 자살할 사람이 아니야." - P30

"옥상 가장자리에 앉아 다리를 흔들다가 균형을 잃은 거야."
"나잇살이나 먹은 성인이 옥상 가장자리에서 다리를 흔들까?"
"글쎄. 뭐, 사람마다 사정과 취향이 있을 테니." - P30

"자살할 거라고 생각했구나."
"자살할 것처럼은 전혀 보이지 않았어. 하지만 인간은 돌발적인 행동을 할 때도 있으니까. 난 몸을 숨기고 경찰이나 소방서에 연락하려고 했어. 그때 오지 씨의 몸이 갑자기 앞으로 기울었지."
"스스로 뛰어내린 거야?"
"그런 느낌은 아니었어.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하지만 다음 순간 오지 씨는 떨어지고 말았어." - P31

"인터넷으로 찾아보면?"
"뭣 때문에?"
"당연히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서지."
"미안하지만 그 방법으로는 진상에 도달하지 못할 거야. 사고라고 느꼈든, 살인이라고 느꼈든 그건 어디까지나 인상의 문제라고 몇 명한테 이야기를 들어본 해결은 불가능해." - P33

"잠깐만. 너 이 사건에 흥미가 있어?" 이모리는 아리를 불러 세웠다.
"음. 글쎄? 흥미가 없지는 않다는 느낌이려나?"
"자기 주변에서 사람이 죽었을 때 보이는 반응과 별반 다를 바없군. 하지만・・・・...
"하지만 뭐?"
"넌 연관되어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 P34

"아니, 아마 너도 알고 있을 거야."
"그럼 지금 당장 증명해봐."
"아아, 좋아." 이모리는 아리의 눈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역시 얘 무서워.
이모리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스나크는."
전기 충격과도 같은 오한이 아리의 온몸을 엄습했다. - P35

안 된다. 여기서 대답하면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것만 같다.
아니다. 이미 되돌릴 수 없다. 이제 평온한 인생으로 돌아갈 수없다. - P36

무릇 세계는 처음부터 이랬는걸. 그렇지?
아리는 각오를 굳혔다.
"부점이었다."
세계가 확 바뀌었다. - P36

"토끼 당신은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은데요."
"도움? 뭘 돕는데?"
"살인사건 수사 말이에요."
"살인이라고? 참 뒤숭숭한 세상이로구나!"
"살인사건을 수사한다고 말한 건 당신이잖아요." 앨리스는 기분이 언짢은 얼굴로 말했다. - P37

"파충류가 뭐야?" 빌이 물었다.
"너 같은 녀석이지."
"그러니까 ‘너는 너 같은 녀석이냐‘고 물은 거야?"
"그런 식으로 말하면 마치 내가 바보 같잖아?"
"나는 나 같은 녀석이야."
"알았다!" 3월 토끼가 외쳤다. "이 녀석은 티라노사우루스티렉스라고." - P38

"조직 단위로는 이건 엄연한 생명이라고 할 수 있지. 하지만 그것들이 통합된 험프티 덤프티는 죽었어. 이제 어디에도 없지." 미치광이 모자 장수가 말했다.
"움찔움찔할 때마다 즙이 흘러나와서 징그러운데요."
"그거 안됐군. 허나 스프라고 생각하면 괜찮을걸." - P39

"잠깐만!" 3월 토끼는 모자 장수를 손으로 제지했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봐줘."
"오늘이 무슨 기념일이라도 되나?"
"내게 특별한 날이야."
"네게?"
"그래. 오늘은 내 생일이 아닌 날이라고."
"어? 그랬어?" 모자 장수가 기쁘다는 듯이 말했다. "우연하게도 나도 오늘이 생일이 아닌 날이야."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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