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어째서 살인사건이라는 거죠?" "일단 여기에 시체가 있으니까. 그게 한 가지 증거야." 모자 장수는 대답했다. "시체라니, 이 껍데기?" 험프티 덤프티가 죽으면 껍데기 말고 뭐가 남겠어?" 3월 토끼가 말했다. - P41
"이 녀석이 하는 말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빌이 말했다. "머리가 이상하거든." - P41
"그럼 사고일지도 모르겠네요." "사고? 무슨 사고?" "그러니까 담 위에 앉아서 장난치다가 떨어졌을지도 모른다는거죠." - P42
모자 장수는 순식간에 담 위로 기어올랐다. 험프티 덤프티는 여기 앉아 있었어." "아주 미끌미끌한걸요." "여기에 기름이 뿌려져 있었어." "어째서 그런 짓을?" "험프티 덤프티를 미끄러뜨리기 위해서지, 자살하려고 일부러자기 아래에 기름을 뿌리는 녀석이 있겠어?" - P42
"고작 기름만 가지고는 상황증거로서 약하지 않을까?" 빌이 말했다. "여기에 증거가 하나 더 있어." 미치광이 모자 장수는 담에서 뛰어내려 비교적 크기가 큰 껍데기 하나를 가리켰다. "이건 험프티 덤프티의 등 부분이야." - P43
"범인을 찾아내지 않아도 되겠어요?" "그건 증명이 아니야." "누군가가 범인이라고 증명하는 거죠." "그야 누군가가 범인이겠지. 살인사건이니까." "그런 의미가 아니라 어떤 특정 인물을 범인이라고 증명하는 거예요." - P43
"그것참, 당연히 특정 인물이 범인이겠지. 불특정 인물이 살인을 저지를 수는 없잖아." "그런 말이 아니라 예를 들어… 예를 들어 3월 토끼가 범인이라고 증명하는 거예요." "난 아니야! 믿어줘! 난 무고해." - P44
3월 토끼가 손자국에 세제를 묻히고 걸레로 깨끗하게 닦아내고 있었다. "무슨 짓이에요?" 앨리스는 소리를 질렀다. 험"프티 덤프티 등을 깨끗하게 닦아주고 있잖아." "그게 무슨 의미가 있죠?" "등이 기름투성이라고. 누구든 기분 나쁠 거야.‘ - P44
"3월 토끼가 증거를 인멸했어요." "이미 증명했으니까 증거는 필요 없어." 미치광이 모자 장수가말했다. "아직 필요한데. 범인을 밝혀낼 수 있었다고요." "아까 너 3월 토끼가 범인이라고 했잖아." 빌이 말했다. - P45
"그래, 3월 토끼를 의심한다면 너도 의심해야 공평하지." "내게는 험프티 덤프티를 죽일 이유가 없어요." "너. 험프티 덤프티랑 무슨 일로 다뤘다면서." "다투기는 누가요. 난 험프티 덤프티에게 시에 대해 물어봤을뿐이에요. 그랬더니 험프티 덤프티가 별안간 기분이 나빠져서 내게 무례하게 굴었다고요. 그뿐이에요." "험프티 덤프티가 무례하게 굴어서 네가 울컥했다. 아니야?" - P45
"뭔가 생각났나, 도마뱀." 미치광이 모자 장수가 물었다. "응, 생각났어." "좋아. 빨리 말해. 그때나랑너랑………. "앨리스는 알고 있었어." 뭐? 무슨 이야기야? "뭘 알고 있었는데?" "험프티 덤프티가 담에서 떨어졌다고 했어." 그 이야기야? - P46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험프티 덤프티는 오늘 살해당했어. 그렇게 빨리 정보가 전해질리 없다고." "험프티 덤프티는 언제나 그렇잖아요." - P46
"다른 험프티 덤프티?" 앨리스는 생각에 잠겼다. "아니요. 험프티 덤프티는 하나뿐이에요." "그렇다면 네 이야기는 진실이 아니야. 험프티 덤프티는 오늘죽었으니까." "그럼 그 기억은 도대체 뭐죠?" - P47
"조사 끝났어." 느닷없이 히죽히죽 웃는 얼굴이 공중에 나타났다. "수고 많았어, 체셔 고양이야." "무슨 조사요?" 앨리스가 물었다. "목격자가 있는지 없는지 조사했지." 3월 토끼가 설명했다. - P48
"공작 부인이 직접 여기 올 리 없지. 공작 부인은 지금 아기를키우느라 바쁘다고." "진짜 아기는 아니지만, 앨리스가 말했다. "쉿." 미치광이 모자 장수와 3월 토끼, 그리고 빌과 체셔 고양이가 거의 동시에 입술 앞에 집게손가락을 세웠다. - P48
"그런데 흰토끼는 당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난대?" "당일이라면 오늘 말이죠?" "난 틀린 표현 안썼어!" 모자장수는 불쾌하다는 듯이 말했다. "알아요. 틀렸다고 지적한 거 아니에요." "오늘 흰토끼는 순찰시간에 늦을 뻔했다." "녀석은 늘 목에다 시계를 걸고 다니면서 왜 시간을 못 지키는거지?" - P49
"지시는 내가 내린다!" 모자 장수가 고함을 질렀다. "그건 나중에 하고 우선 목격 증언을 들려줘." "그 담은 정원 한복판에 있으니까 정원에 들어가지 않으면 아무도 험프티 덤프티에게 다가갈 수 없어. 그리고 흰토끼가 도착했을 때 정원 안에는 험프티 덤프티밖에 없었지." "정원 한복판에 담이 있다니 어떻게 된 거죠? 담은 부지의 경계선에 세우는 거잖아요." - P49
"입구는 거기뿐이에요?" "거기뿐이야. 다른 곳은 담에 둘러싸여 있어서 안에 못 들어가." "역시 바깥쪽에도 담이 있구나." "담이란 안과 밖을 구분하기 위한 물건이니까." - P50
"짐승들은 다 알지." 모자 장수가 말했다. "냄새나 적외선 같은걸로 말이야. 당연히 흰토끼도 알아차릴걸." "그럼 그거 아닐까요? 이 세계는 때때로 아무 상관도 없는 곳이랑 이어지잖아요. 그런 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르죠." "공간 왜곡을 말하는 거야?" 체셔 고양이가 물었다. "그걸 공간 왜곡이라고 불러요?" - P50
"여왕 폐하의 정원 부근은 비행 금지야. 이곳 상공은 늘 감시받고 있어서 하늘로는 접근할 수 없어." 체셔 고양이가 말했다. "정말로요? 못 믿겠는데요." 느닷없이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작은 새 한 마리가 앨리스 일행이 있는 곳으로 떨어졌다. - P51
"흰토끼가 가장 유력한 용의자라는 뜻인가요?" "어떻게 그렇게 되는데?" "하지만 흰토끼한테 살인을 저지를 기회가 있었던 건 확실해요." "그것도 조사해뒀어." 체셔 고양이가 말했다. - P52
"즉 그 전에 정원에 들어갔다가 그 후에 정원에서 나온 사람이 범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군요." 앨리스가 말했다. "그 의견에는 이의 없어." 미치광이 모자 장수는 딱 잘라 말했다. "만약 흰토끼가 누군가를 목격했다면 이제 이 사건은 해결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 P52
"그럴까요? 만약 그 인물이 인정하지 않는다면?" "자백이 없어도 상황증거로 판단컨대 그 녀석이 범인 확정이지. 적어도 재판에서는 승산이 없어." "판사는 누군데요?" "여왕 폐하겠지. 어쩌면 국왕 폐하일지도 모르지만 국왕 폐하는 여왕 폐하가 시키는 대로 할 테니까 실질적으로 똑같아." - P53
"하지만 그렇게 번거로워지지는 않을거야. 흰토끼가 정원에 들어온 인물이 있었다고 증언했거든. 그리고 그 인물은 국왕의 시종과 말들이 현장에 도착하기 전에 현장에서 달아났어." - P53
"그게 누군데요? 가르쳐줘요." "그렇게 알고 싶어?" "예, 거기 모자 장수가 날 의심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 빨리 오해를 풀고 싶어요." - P53
"딱 한 번만 말할 테니까 잘 들어." 체셔 고양이가 말했다. "그거 요즘 유행하는 표현이에요?" 앨리스가 말했다. "앨리스, 너야." "엥?" 앨리스는 입이 떡 벌어졌다. - P54
"넌 우연히 암호가 일치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역시 암호구나." "난 그렇게 말했지." "그렇다면 즉.....… 안돼. 역시 말 못 하겠어." - P55
"이론은 나중에 생각하면 돼. 일단 현상을 분석하지 않으면 이론은 나오지 않아 그거 알아? 상대성이론은 어떤 상황에서든 빛의 속도는 항상 일정하다는 신기한 현상에서 탄생했다고." "하지만 말 안 할래. 말하면 분명 이상하다고 비웃을 테니까." - P56
"응. 하지만 혹시 망상이 아닐까 싶어서………. 앗, 어쩌면 지금 네가 말했다는 것 자체가 내 망상일지도 몰라." "그렇게까지 의심이 많으면 자기 정신 상태도 못 믿게 돼." "지금 그야말로 내 정신 상태가 못 미더운 상태야." - P56
"그럼, 뭔데? 네가 어떻게 내가 무슨 꿈을 꿨는지 알아?" "나도 너랑 똑같은 체험을 했으니까." "우리 둘의 꿈이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 P57
"뭐가 객관적인 현상인데?" "이상한 나라가 실제로 있다고 가정하는 거야." "내 머리보다 네 머리가 더 걱정된다." "오컴의 면도날이라고 알아?" "수입 면도기야?" - P57
"단순한 꿈이 아니야. 두 세계의 특정 인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 "무슨소리야?" "이쪽 세계에는 나, 이모리 겐이 존재하고 저쪽 세계에는 도마뱀 빌이 존재해. 그리고 그 둘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한쪽의 꿈이다른 쪽의 현실에 해당해." - P59
"앨리스는 험프티 덤프티를 살해한 범인으로 몰렸어." "그랬지. 하지만 그건 미치광이 모자 장수와 3월 토끼가 자기들 맘대로 그렇게 믿는 것뿐이야." "하지만 그들은 증거를 제시했어." "증거라니, 흰토끼의 헛소리?" - P59
"어차피 꿈속 이야기인걸, 뭐." "그러니까 그냥 넘어가자? 만약 종신형을 받고 감옥에 갇히면네 인생의 절반이 날아가는 거야." "절반? 꿈은 깨면 끝인데?" "반년 전까지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하지만 같은 상황의 꿈을 꾼다는 걸 알아차리고 나서 꿈 일기를 써보기로 했지." - P60
‘그럼 질문을 바꿀게." 이모리는 말했다. "이상한 나라의 꿈 말고 기억나는 꿈 있어?" "당연하지." "예를 들어 어떤 꿈?" "어떤 꿈이라니・・・・・・ . 엥?" "어떤 꿈인데?" - P60
"그럼 시간을 주면 다른 꿈을 기억해낼 수 있다는 거지?" "그럼. 당연하지." "좋아, 얼마든지 기다릴 테니 한번 해봐." 이모리는 입을 다물었다. 아리는 눈을 감고 심호흡했다. - P61
"기억났어?" "깜빡 잊어버렸을 뿐이야. 가끔 그럴 때가 있잖아." "지금까지 살면서 꾼 꿈을 싹 다 잊어버렸다고?" "싹 다 잊어버린 건 아니야." "그럼 무슨 꿈이 기억나는데?" "..... 이상한 나라・・・・・・ ." 아리는 꺼져 들어갈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 P61
아리는 한숨을 쉬었다. "그래. 난 지금까지 한 종류의 꿈밖에 꾼적이 없는 것 같아." "안 믿길지도 모르지만 이제부터 매일 꿈 일기를 쓰면 점점 믿음이 생길 거야." "그러니까 넌 이제부터 내가 매일 밤 감옥에 갇힌 꿈을 꿀 거라는 거구나." - P62
"세계관찰, 이 세계와 이상한 나라 양쪽을 관찰하다 보니 조금씩 두 세계의 관계가 눈에 들어오더라." "네 이야기를 듣다 보니 병원에 가보는 게 나을 것 같은 기분이들어." "어째서?" "보통은 자신의 망상이라고 여길 거야." "너도 자신의 망상이라고 생각해?" "아니. 같은 체험을 한 사람이 한 명 더 있잖아. 하기야 너 자신이 내 망상이 아니라면 말이지만." - P63
"아니, 그게 아니라 같은 체험을 한 사람이 너 말고 한명 더 있 "뭐라고?" 아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이야기를 빨리 했어야지." "일단 네가 정말로 앨리스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었어." - P63
"오지 씨도 이상한 나라의 주민이었어." "하지만 아까 오지 씨는 그냥 안면이 있는 사람이라면서." "그래. 그냥 안면이 있는 사이지. 특별히 두터운 우정으로 맺어진 사이는 아니야." 이모리는 말을 이었다. - P64
"놀라 자빠질 지경이었어. 하지만 사실이 명백해지니 연구자로서 흥미가 동하더라고. 도대체 이건 어떤 원리로 일어나는 현상인지 궁금했지." "알아냈어?" "아니, 겨우 가설을 세우고 있는 단계야." - P65
"네게 들려줘야 할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고 했잖아." "지금까지 이야기한 거 아니야?" "지금까지 한 이야기도 충분히 중요해. 하지만 지금까지 한 이야기를 전제로 이제부터 할 이야기는 네게 정말로 중요해." "뜸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 병원 문닫겠어." - P67
"만약 앨리스가 험프티 덤프티를 살해한 범인으로 체포되면 어떻게 될까?" "아까도 말했지만 감옥에 갇히겠지." "판사가 여왕이라면?" "목이 달아날지도 모르지. 여왕은 상대가 누구든지 간에 목을 쳐라!‘라고 말하니까. 하지만 실제로 목이 댕강 잘린 사람은......" - P67
"중요한 정보를 하나 알려줄게. 네 마음은 충분히 굳센 것 같으니까." 이모리는 심호흡을 했다. "이상한 나라에서 오지 씨의 아바타라는 험프티 덤프티였어." - P68
"그래. 두 세계의 죽음은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어." 이모리는 차분하게 말했다. "그럴 경우, 앨리스가 사형을 당하면 현실세계의 너도 죽어." - P68
숲 속에는 사람 눈(혹은 짐승의 눈)이 많기 때문에 앨리스와 빌은 해안으로 왔다. 그러나 여기라고 아무도 없는 것은 아니다. 조금 떨어진 모래 언덕 뒤편에서 그리핀과 가짜 거북이 엿보고있고, 그 바로 옆에서는 바다코끼리가 어린 굴을 속이고 있는 참이었다. - P69
"지금 지구라고 했는데, 역시 여기는 지구가 아니구나." "뭐, 그렇다고 결정된 건 아니지만. 뭐, 여기는 그다지 지구 같지 않으니까." "역시 넌 이모리 같지 않아. 이모리는 좀 더 명석한걸." - P70
"확실치는 않지만 몇 명에게 미묘한 반응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지. 그들은 한순간 놀란 듯한 표정을 짓거나 꿈의 내용을 자세히 듣고 싶어 했어." "그 사람들한테는 가설을 들려주지 않았어?" "아무 준비도 없이 공개해도 될지 망설여졌거든. 혹시 진짜 무슨 음모라면 큰일 날지도 모르잖아." - P70
"그럼 다음에 지구에서 잠이 깼을 때 보여줘 아무튼 그 목록에나도 실려 있었던 거구나." "아니. 넌 목록에 없었어." "그럼 왜 나한테 암호를 가르쳐준 건데?" "도박이었어." "도박?" "앨리스와 구리스가와 아리의 이미지는 아주 비슷해. 그리고 넌 음모가 유형이 아니야."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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