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독서가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책은 2만 3천여 권입니다. 방송이나 강연 등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그 책들을다 읽었는가‘입니다. 당연히 다 읽지 못했습니다. - P19

저는 책을 많이 산 사람 중 하나인 동시에 책에 관한 한 많이 실패한 사람일 것입니다. 워낙 많이 샀기 때문에 그만큼실패했던 경우도 많으니까요. 재미있을 것 같아서 산 책이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 P19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듯이 절대적인 독서의 비법은 따로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그렇습니다. 다만 상대적으로 책을조금 더 많이 관심 있게 살펴보고 골라온 사람으로서, 조금더 많이 읽어본 사람으로서 저만의 방법이 있습니다. - P20

그런데

책을 읽으세요?


‘있어 보이고 싶다는 것은 자신에게 있지 않다‘라는 걸 전제하고 있습니다.
‘있는 것‘이 아니라 ‘있지 않은 것‘을 보이고 싶어 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허영이죠. 요즘 식으로 말하면 허세일까요.
저는 지금이 허영조차도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 P21

저 역시 필요할 때마다 구글링을 통해서 제가 알고 있는 것이 틀리지는 않았는지 확인해보기도 하고 필요한 내용을 수집하기도 합니다. 인터넷으로 정보를 얻는 것이 용이하고 빠르다는 점은 이제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그런데 빠른 검색 결과로 나온 정보는 잘게 잘라진 것이고 그것을 감싸고 있는 문맥이나 전체적인 체계까지 파악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 P22

인터넷으로 접하는 정보 중 조작되거나 잘못된 것을 일일이 다 거르기는 아주 어렵지요.
게다가 책을 읽는 것이 정보 습득에 오히려 더 빠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 P22

. 말하자면 미처 꿰지 못한 서 말의 구슬들인 거죠. 흔히 인터넷을 ‘정보의 바다‘라고 하는데, 그렇기때문에 내가 원하는 결과를 바로 얻는 것이 오히려 어려울수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깊이 있는 내용이 체계적으로담겨 있는 책을 읽는 것이 역설적으로 정보를 얻는 더 빠른방법일 수도 있다고 하겠습니다. - P23

또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라고 묻는다면 저는 자주 있어보이니까‘라고 농담처럼 답하기도 합니다. (중략)
‘있어 보이고 싶다는 것은 자신에게 ‘있지 않다‘라는 걸전제하고 있습니다. ‘있는 것‘이 아니라 ‘있지 않은 것‘을 보이고 싶어 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허영이죠. - P2

오늘날 많은 문화 향유자들의 특징은 허영심이 없다는 게아닐까 생각하고는 합니다. 각자 본인의 취향에 강한 확신을갖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그 외 다른 것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배타적이기까지 합니다.  - P24


완독해야
하나요?

"책은 꼭 끝까지 읽지 않아도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일단 책을 손에 잡으면 끝까지 읽어야 한다고, 즉 완독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더군요.
책을 읽기로 마음먹기까지도 힘이 들었는데, 그 책을 다 읽지 않으면 안 된다고 스스로 다잡고 있다면, 얼마나 벅차겠어요. - P39

 독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재미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재미있어야 책을 읽을 수 있어요. ‘목적 독서‘는 한계가분명합니다. 사람은 사실 그렇게 의지가 강하지 않아서 목적만을 위해 행동할 수 없어요. - P39

막상 『위대한 개츠비』를 조금 읽어보니 재미가 없을 수도있죠. 192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시대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으면 약간 지루할 수도 있습니다. 예민하고 정밀한 묘사 방식에 숨이 좀 막힐 수도 있고요. 그러면 또 다른 책에 눈을 돌리고 집어 들어도 됩니다.  - P40

대부분의 비소설, 논픽션 분야의 책들은 챕터별로 독립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차례를 보고 흥미가 생기는 부분부터 읽으셔도 돼요. 만약 앞부분이 어렵다면, 중간부터 읽으셔도 됩니다. - P41

‘아님 말고‘라는 태도를 가지고 있으면 정말 인생이 행복할 수 있어요. 내가 이것을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면, ‘아님 말고‘라는 태도만 갖게 되면 다른 사람앞에서 당당해질 수도 있을 겁니다. 사실 삶에서는 절박한 상황 때문에 ‘아님 말고‘를 외치기 어려울 때도 많습니다. - P41

 아무리 좋은 책이라고 99명이 권해도 한 명인 내가 거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건 내가 책에서 흥미를 느껴야 한다는 거죠.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은 없습니다. 반드시 끝까지 다 읽어야 하는 책은 없습니다.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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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후기

단행본 간행에 부쳐

본서는 ‘명탐정‘ 노리즈키 린타로가 등장하는 시리즈의 네번째작품입니다. 처음 제 소설을 접한 분이라면, 그리고 이 소설이 마음에 들었다면 시리즈를 거슬러 올라가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또한 이후로 기술할 내용은 기존 독자를 염두에 두었기에 혹시그렇지 않은 독자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드린다면 미리 용서를 구합니다. - P371

자, 이번 작품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신구 내외를 불문하고수많은 선행 작품에 많은 빚을 졌습니다. 탐색을 즐기는 독자의재미를 빼앗지 않기 위해 여기서 인용의 출처를 소상히 밝히지는 않겠지만, 이번에는 특히나 스타일의 혼용 경향이 현저합니다. - P372

이 인용들은 모두 제 마음을 흔든 작품들과 그 작가에 대한 오마주이자 러브레터입니다.
부디 독자들에게 이런 마음이 전해지기를그런데 다른 관점에서 봤을 때, 제 소설이 정말 매번 그렇게 다른가요? - P372

좀처럼 책을 내지 않는 제게 다양한 위로의 말씀을 건네주신 인내심 강한 독자 여러분. 정말로 오래 기다리게 해드렸습니다. 그럼 다음 모험에서 또 만나뵙겠습니다.

1991년 3월 - P373

문고판 간행에 부쳐

이 장편을 쓴 건 스물여섯 살 때로, 1990년부터 이듬해 초에 걸친 시기였다. 세월이란 참으로 빨라서 벌써 오 년 전의 일이다.
작업 마무리에 돌입했을 즈음 걸프전이 발발했던 기억이 난다. - P373

당초에는 논노벨 시리즈"로 3의비극까지 쓴 뒤 『1의 비극부터 순서대로 문고판으로 내려고했는데, 편집부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내가 원고를 주지 않자 결국 더는 미루지 못하게 됐다는 게 실상에 가깝다.
그러고보니 최근 3의 비극은 언제 나오느냐는 질문을 자주받는데,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 P374

WHAT WILL BE, WILL BE? - P374

『요리코를 위해』의 구성이 니컬러스 블레이크를 밑바탕에 깐것처럼 이 작품의 설정, 특히 인물의 배치와 스토리 전개는 포스트 황금기의 본격미스터리 걸작을 인용, 재해석함으로써 이런 형태로 만들어졌다. 다만 여기서 참조한 작품을 거명하면 거의 스포일러가 돼버리기에 아직 읽지 않은 독자를 위해 숨겨두기로 한다 - P375

여담이지만 나는 최근 리처드 보커의 『상원의원』을 읽었을때 역시 이 작가를 떠올렸다. 주인공의 상황과 스토리의 반전 방식이 대단히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 P375

글이 늘어지지만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짚어두고 싶다. 이 소설이 유괴 사건에 휘말린 아버지의 일인칭으로 기술된 결정적인 이유는 단적으로 말해서 탐정 노리즈키 린타로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진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 건 당연히도『요리코를 위해』 때문이다. (중략) 하여 ‘또 하나의 니시무라 유지의 수기‘가 소설의 전체를 지배하게 된 것이다. (중략) 그리고 이 작품에 이어지는 『또다시 붉은 악몽』이란 소설의 골자는 한없이 산란하는 이야기 속에서 다시 한번 탐정의 시점을 되찾고자 하는 작가의 고된 편력의 여행에 다름 아니다.

1996년 6월
노리즈키 린타로 - P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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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누군가 誰か

내년 봄 컬렉션에는 거짓말처럼 아름다운 저 흰색을 살려보면 어떨까. 그녀는 그런 생각을 더듬다가 문득 거짓말이라는단어를 입 밖에 내어 중얼거렸다.
"거짓말... 그래, 전화한 그 남자는 거짓말을 한 거야."
실내가 따뜻해서 창유리에는 흐릿하게 김이 서렸다.  - P110

 내가 그날 밤 우연히 미오리 레이코의 맨션 근처에 있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맨션 뒤쪽에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거기서 비상계단을 급하게 뛰어 내려오는 나를 봤다고 말했다. 마치 내가 레이코를 살해했다고 생각하는 듯한 말투였다. - P110

오늘 아침 전화한 남자는 거짓말을 했다. 사체를 발견한 충격으로 내가 얼굴이 창백해지고 벌벌 떨었는지는 모르지만, 비상계단을 급하게 뛰어 내려오지는 않았다. 오히려 발소리를 안내려고 평소보다 천천히 내려왔다. 한 단 한 단 천천히.. 애초에나는 키가 작아서 항상 굽이 10센티미터나 되는 하이힐을 신는다. 그날 밤도 마찬가지였다. - P111

메마르고 개성 없는 남자의 목소리에 어떻게 대답했는지,
또렷이 기억난다.
"내가 지금 일 때문에 도쿄를 떠나야 해요. 모레 돌아온 뒤에, 그래요, 그 말이 사실이라면 모레 밤 11시에 이 번호로 다시전화하세요. 어떤 얘기든 받아줄 테니까. 그때까지 그날 밤 나를 봤다는 건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세요." - P111

 오래전에 내가 ‘악마와 천사, 어느 쪽에 입을 맞춰도 어울린다‘라고 극찬했던 그녀의 입술은 이제 어떤 말도 하지 못한다. 게다가 내가 그날 밤 레이코의 집에서 문제의 사진과 필름을 훔쳐 온 것은 영원히 어느 누구에게도 알려질 일이 없다. - P112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났다. 현재 하는 디자인 일을 반절넘게 맡고 있는 야마가미 아키라가 오늘 패션쇼의 매상을 들고온 것이다. 작년부터 지방에서 하는 쇼는 모두 야마가미에게 넘겼는데 최근 들어 젊은 디자이너들의 활약은 눈부신 데가 있었다. 실은 한 세대 전까지는 디자이너라고 하면 오트 쿠튀르로 유명인사나 재벌가 사모님들에게 특권층이라는 허영심을 채워주는 의상을 만들어주는 존재였다. - P113

그녀도 언제까지나 이십 년 경력과 견직물의 프라이드에만 기댈 수는 없었다. (중략) 심지어 가구며 주방 용품과 침구에 자신의 이름을 찍어 판매망을 넓히기에 혈안이었다. 냉장고며 이불에까지 ‘기미코 마가키‘라는 이름을 넣는 것은 자부심이 허락하지 않았지만, (후략) - P113

이곳 삿포로까지 일부러 찾아온 효과가 있었는지 쇼 행사장은 젊은 여성들로 가득 차고, 프레타포르테라고 해도 보통 기성복보다 몇 배는 비싼 옷들이 쇼가 끝나고 삼십 분 만에 완판되었다. 게다가 목표했던 물량의 두 배 가까운 추가 주문도 들어왔다. - P114

그녀는 곧바로 수표를 손끝으로 헤아리며 액수를 계산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손가락은 어느새 세월의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 그렇다, 오 년 전에는 그 여자애도 단지 이런 수표 한 장에 지나지 않았다... - P115

아주 매력적인 표정을 가졌지만, 그게 단지 두 종류뿐이라는 것이다. 화려함의 어딘가에 그늘진 뜨거움을함께 짜 넣은 듯한 신비한 시선, 얼음이 불타오르는 기적마저 믿게 할 듯한 시선뿐이었다.
"그래, 모델이야. 모델로서는 완벽한 표정이지."
그녀는 수화기에 대고 저도 모르게 그렇게 부르짖었다.
실제로 만나보니 예상보다 키가 작았지만 아름다움은 사진보다 훨씬 더해서 얼굴의 화려함이 자그마한 몸매를 커버해주었다. -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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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사 년 동안의 수도원 생활에서 매 학년마다 한명 이상의 학생이 중퇴를 했다. 때로 누군가 죽음을 맞아 애도의 노래 속에땅에 묻히거나 친구들 손에 들려 고향으로 옮겨지기도 했다.
가끔은 누군가 제멋대로 수도원을 뛰쳐나가거나 큰 잘못을 저질러 퇴출되기도 했다. - P111

한스 기벤라트의 학년 역시 몇 명의 학생을 잃었다. 묘하게도 그들은 모두 헬라스 방 학생들이었다.  - P111

오후 첫 수업이 시작되는 2시가 되어서야 힌딩거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힌딩거는 어디 갔지요?" 지도교사가 물었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누가 헬라스 방에 좀 가보세요."
하지만 그곳에도 힌딩거의 흔적은 없었다.
"수업에 좀 늦나 보군요. (후략)." - P112

4시에 지도교사가 노크도 없이 교실에 들어와서는 교장에게 귓속말을 했다.
"주목해주세요!"
교장의 한마디에 학생들은 가만히 앉아 다음 말을 기다렸다.
"여러분의 친구 힌딩거 군은 연못에 빠진 것으로 보입니다."
교장은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힌딩거 군을 찾는 일에 함께 나서주기 바랍니다. 마이어 교수님이 여러분을 인솔하실 건데 교수님 말씀을 분명히 따르고 절대 제멋대로 행동하는 일이 없도록 해주세요." - P113

신학생들은 겁먹은 새들처럼 모여들어 불안한 눈으로 시체를 내려다보고 파랗게 얼어 뻣뻣해진 손을 마주비볐다. 물에 빠져 죽은 친구가 앞서 실려가고 학생들은 그 뒤를 따라 눈 덮인 숲길을 묵묵히 걸어갔다. 문득 그들의 불안한영혼에 공포가 엄습했고 사슴이 포식자의 기척을 느낀 것처럼 잔인한 죽음의 냄새를 맡았다. - P113

어찌 되었든 예기치 않게 친구의 창백한 얼굴을 가까이 보자 한스는 왠지 모를 깊은 아픔을 느끼고 충동적으로 그의 손을 잡았다. - P114

교장을 선두로 모든 교사들이 나와서 죽은 힌딩거를 맞이했다. 살아 있었다면 그런 예우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도망쳤을 힌딩거였다. 언제나 교사들은 살아 있는 학생을 볼 때와는 완전히 다른 눈으로 죽은 학생을 바라본다. 평소에는 그토록 무심하게 학생들에게 악을 행하면서도 이런 순간만큼은모든 생명과 젊음이 절대 돌이킬 수 없는 소중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 P114

이튿날 힌딩거의 아버지가 왔다. 그는 아들이 누운 작은 방에서 몇 시간 동안 홀로앉아 있다가 교장과 차를 마신 뒤 그날 밤은 근처의 히르셴 여관에 묵었다.
드디어 장례식이 치러졌다. 관이 기숙사 건물에 놓였고 알고이 지방에서 온 재단사가 곁에 서서 모든 과정을 바라보았다. - P115

(전략). 그리고 울음을 참으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얼굴로 커다랗고 고요한 공간의 한가운데에서 한겨울의 마른 나뭇가지처럼 서 있었다. 희망도 없이 다 잃고 다 내어줘 버린 듯한 그 모습에서 불행을 느낄 수 있었다. 목사는 재단사의 손을 잡고 곁을 지키다가 관이 이동하자 멋지게 구부러진 신사 모자를 쓰고 제일 앞에 서서 관을 따라 걸었다. - P116

장례식이 끝나고 교장이 힌딩거의 아버지와 함께 헬라스 방을 찾아왔다.
"여러분 중 누가 힌딩거 군과 가장 친했습니까?"
교장이 방에 있는 학생들에게 물었다. 처음에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힌딩거의 아버지는 근심스럽소 비참한 표정으로 젊은 얼굴들을 쳐다보았다. - P116

. 하지만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이내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길로 수도원을 떠나갔다. 하루 종일 기차를 타고 하얀 겨울 왕국을 달려 집에 도착하면 그는 부인에게 그녀의 사랑하는 아들이 어디에 묻혔는지 설명해야 할 것이다. - P117

 한스 기벤라트는 목이나 발에 아무 이상이 없었지만 불운했던 그날 이후 더 진지해지고 더 나이 든것 같았다. 그는 어딘가 달라졌다. 소년은 청년이 되었고, 그의영혼은 근심과 두려움에 떨게 되었으나 아직 쉴 곳을 알지 못하는 다른 세계에 떨어진 것 같았다.  - P117

 학생들은 하일너를 피해 다녔으며, 조교는 그에게 조롱 섞인 친절을 베풀었다. 진정한 친구였던 셰익스피어, 실러, 레나우만이 그를 둘러싼 굴욕적이고 강압적인 환경과는 다른 위대한 세계를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은둔자의 구슬픈 목소리로 채워졌던 ‘수도사의 노래‘는 점점 수도원과 교사들, 동급생들을 향한 씁쓸하고 증오 섞인 시 모음집으로 변했다. - P116

 한스는 어색하게 인사하고 의자를 침대 쪽으로 끌어다앉았다. 그리고 아픈 친구의 손을 잡았지만 하일너는 화를 내며 벽쪽으로 몸을 돌려버렸다. 그러나 한스는 물러나지 않고잡은 손에 힘을 꽉 주며 옛 친구가 자신을 쳐다보도록 만들었다. 하일너가 짜증을 내며 입을 열었다.
"원하는 게 뭔데?" - P118

하일너는 눈을 감았다. 한스는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저기 말이야, 내가 잘못했어. 네가 다시 내 친구가 되고 싶을지는 모르겠지만 날 용서해줘야 해."
하일너는 아무 말 없이 계속 눈을 감고 있었다. 속으로는 한없이 기쁜 얼굴로 친구를 향해 미소 짓고 있었으나, 지금은 외롭고 씁쓸한 역할에 너무 익숙해져서 적어도 한동안은 그런 가면을 그대로 쓰고 있어야 했다. 한스는 집요하게 매달렸다. - P119

마침내 하일너가 한스의 손을 꼭 쥐며 눈을 떴다.
며칠 후 하일너도 침대에서 일어나 의무실을 벗어났다. 새롭게 다져진 우정은 수도원 안에서 대단한 관심거리가 되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속해 있다는 묘한 행복감과 말없이도 비밀스럽게 통하는 일체감으로 경이로운 몇 주를 보냈다.  - P119

 게다가 둘 모두 지난 시간 동안 서로몹시 그리워했던 터라 이들의 재결합은 대단한 경험이자 특별한 선물처럼 여겨졌다. 조숙한 두 소년은 설렘 가득한 수줍음과 함께 우정을 나누었고, 그 속에서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ㅠ첫사랑의 달콤한 비밀을 미리 맛보았다. - P120

한스는 우정이 깊어지고 행복해질수록 학교와는 점점 더 멀어졌다. (중략). 그러는 동안 리비우스는 물론 호메로스마저도 중요성과 광채를 잃어버렸다. 교사들은 이제까지 흠 잡을 데 없는 학생이었던 기벤라트가 수상쩍은 하일너의 강한 영향 아래 문제아로 변해가는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 P120

 교사라면 자신의 교실에 한 명의 천재보다 여러 명의 둔재가 있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교사의 의무는 특출한 인물을 키워내는 것이 아니라 라틴어와 수학을 잘하는 성실한 인간을 길러내는것이었다. 그러나 어느 쪽이 더 심하게 고통 받는가?  - P121

눈에 띄는 두 젊은이에게서 위험을 감지하자마자 교사들은 전통 깊은 학교의 원칙에 따라 애정 대신 곱절의 엄격함으로 단속하려 했다. 가장 성실하게 히브리어를 공부했던 한스를 자랑으로 여겼던 교장이 어설픈 시도로 녀석을 구원하려 했다. - P122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보자고 했어요. 괜찮다면 편하게 자네라고 불러도 될까?"
"물론입니다, 교장 선생님."
"최근에 자네 성적이 약간 떨어졌다는 걸 자네도 잘 알고 있을 걸세, 기벤라트 군. 적어도 히브리어에서 말일세. 현재까지 우리 학교에서는 어쩌면 자네가 히브리어를 가장 잘하는 학생일 걸세. 그런데 성적이 갑자기 떨어져 버리니 내 마음이 안 좋다네. 혹시 히브리어 공부에 흥미가 떨어진 건가?"
"그렇지 않습니다, 교장 선생님." - P123

"혹시 하루 공부 분량이 너무 많은가?"
"아닙니다. 전혀요."
"아니면 혹시 개인적으로 독서를 많이 하고 있나? 솔직히 말해보게!"
"아닙니다. 독서는 거의 하지 않습니다. 교장 선생님."
"대체 이해를 할 수 없군, 이 젊은 친구야. 어딘가에 원인이있을 텐데 말이지. 앞으로는 성실히 노력하겠다고 약속해주겠나?"
한스는 권력자가 내민 오른손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 P124

"그래야지. 이제 마음에 드는군. 다만 너무 지치지 않도록 하게나. 안 그러면 수레바퀴에 깔리고 말 테니."
교장은 한스의 손을 꼭 잡았다. 한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문 쪽으로 향했다. - P124

"왜냐하면 하일너는 제 친구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친구를 외톨이로 만들 수 없습니다."
"음, 자네는 얼마든지 다른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잖은가? 하일너의 나쁜 영향을 자진해서 받는 사람은 자네밖에 없어. 그 결과는 뻔할 텐데 말이야. 대체 하일너 군의 어떤 점을 좋아하는 건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희는 서로를 아끼고 있고, 제가 그 친구를 버리는 건 비겁한 행동 같습니다." - P125

 한스는 마치 사랑에 빠진 청년처럼, 위대한 영웅처럼 행동하고 싶었다. 일상적인 것, 지루하고 사소한 공부 따위나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매번 절망적인 한숨을 내쉬며 자신을 공부의 멍에에 묶어야 했다. 하일너처럼 대충 공부하고 필요한 것만 빠르게 거의강제로 머릿속에 집어넣는 일을 한스는 이해할 수 없었다. - P126

그리스어로 된 신약성경을 읽을 때도 한스는 때때로 인물들의 생생한 현실감에 놀라고 거의 압도당할 지경이었다.
특히 마가복음 6장에는 예수가 제자들과 함께 배에서 내리는장면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다. "eugus ényvovtes aitovQQalov (배에서 내리자 사람들이 곧 예수를 알아보고 그리로달려오니)." 이 구절에서 한스도 인간 예수가 배에서 내리는 것을 보았고 그가 예수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 P126

어느 순간 나타났다가 언제나 금세 또 사라져버리는 환상 때문에 한스는 자신에게 묘한 변화가 일어난 것 같았다.
어떤 때는 검은 땅이 유리처럼 들여다보이는 것 같았고 어떤때는 신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이런 근사한 순간들은 예기치 않게 찾아왔다가 슬퍼할 새도 없이 사라졌다. 마치 어딘가 낯설고 신성한 데가 있어서 감히 말을 붙이거나 머물러달라고 부탁할 수도 없는 순례자 혹은 친절한 손님처럼 말이다. - P127

 한스는 이런 하일너를 달래기보다는 오히려 그에게 동참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다른 학생들이 꺼리는 기괴한 섬처럼 고립되었다. 한스는 시간이 흐르자 이 상황도 그리 나쁘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에게 은근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교장만 없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한때 교장의 총애를 받았던 학생은 이제 냉랭한 대접을 받았고 누구나 알 정도로 무시당했다. - P128

. 신체는 아직 성장기에 볼 수 있는 우락부락한 골격을 갖추지 못했지만, 모세의 책을 공부할 때는 적어도일시적이나마 매끈한 이마에 어른다운 진지함이 나타났다. 뺨이 통통한 아이는 이제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한스 또한 많이변했다. 키나 마른 체격은 하일너와 비슷했지만 이제 하일너보다 더 나이 들어 보였다. - P128

한스는 학교 성적에 대한 불만이 늘어날수록 하일너의 영향아래 더 날카로워지고 학우들과 더 멀어졌다. 더 이상 모범생이나 미래의 수석 학생으로서 다른 학생들을 내려다볼 수 없었기 때문에 우쭐거림은 그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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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캣?" 내가 불렀다.
"쉿, 나도 보여"
캣은 조심스럽게 가속기를 조준했고, 가속기는 다시 한번 윙윙거리는 소리를 낸 후 발사되었다. 크리퍼의 앞마디가 산산조각이 나 공중에 흩어졌고 나머지 몸통은 눈 속으로 떨어졌다.
그녀가 말했다. "그래, 확실히 이 무기가 먹히네." - P218

오큘러로 보이는 영상에서는 마른 형상 중 하나가 장난감같은 소총을 떨어뜨리고 뒤쪽으로 휘청거리며 걷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풍선 같은 머리를 이쪽으로 돌려 나를 뚫어져라보고 있었다. 내가 휘청거리며 넘어지고 있는 동안에도 시점은바뀌지 않았고, 그동안 총을 떨어뜨린 마른 사람은 픽셀화된 눈 속으로 사라졌다. 다른 한 명이 무기를 들어 올려 발사하고또 발사해 그와 나 사이에 연신 폭발이 발생했다. - P219

낯선 목소리였다. 내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우리 목소리가 들릴까요?"
캣의 목소리다. - P220

"죄송해요. 저한테 문제가 있나요?" 내가 말했다.
"모르지. 신체적 외상은 없고 지금은 뇌파도 정상이야 첸이야기에 따르면 밖에서 이유 없이 밀가루 포대 자루처럼 쓰러졌다고 하던데. 의학적인 관점에서 좋은 신호는 아니지."  - P220

나는 땅에 발을 디디고 일어섰다. 잠깐 어지러웠지만, 곧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버크가 나섰다. "한동안 여기 있어야 해. 이런 신경과 관련된 증상은 가볍게 여기면 안 돼 뇌 사진을 찍어 보고 싶은데 종양이 생겼을 수도 있네." - P222

"예전에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요. 기억 안 나세요?
종양은 자라는 데 시간이 걸리고, 저는 아직 살아 있은 지하루 반밖에 안 됐잖아요."
버크는 얼굴을 찌푸렸다. 기억이 난 듯했다.
"좋아. 종양은 아니라고 하자고. 하지만 한 가지는 꼭 확인해야겠어." - P222

버크는 뒤돌아 캣을 보며 말했다. "지난 한 시간 이내에 오큘러에 전력이 과하게 흐른 적이 있는 것 같아 검사를 받아봐야 해. 뇌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을 거야. 오큘러에 이상이 생기는 건 위험 신호야."
"네, 검사해 주세요."
내 말에 버크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인간 두뇌 전문이야. 자네는 의용공학자에게 검사를 받아야지." - P223

거짓말이었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이미 머릿속에서 결론을내렸다. 버크가 이야기한 것처럼 오큘러는 시신경과 연결되어있고, 뇌의 10여 개 영역과도 연관이 있다. 한 개를 빼내서 새것으로 갈아 끼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오큘러에 결함이 발생해 장치를 교체하려면 매우 오랫동안 까다로운 현미경 수술을 받아야 한다. - P224

캣과 헤어진 뒤 카페테리아에 들러 사이클러 페이스트를 한잔 더 마시고 방으로 돌아갔다. 달리 할 일이 없었다. 방에 도착하니 에잇이 무릎에 태블릿을 올린 채 침대에 앉아 있었다. - P226

 "그래. 그럼 네가 돌아왔으니까 배 좀 채우러 가 봐야겠다.
배급 얼마나 남았어?"
"잘 모르겠어. 아마 900킬로칼로리 정도?"
"좋아, 내가 다 먹는다."
나는 안 된다고 하려고 했지만, 에잇은 이미 문밖을 나서고있었다.
"말리지 마. 난 이제 막 재생 탱크에서 나왔으니까." 그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 P226

에잇이 나와 같은 주제에 관심을 둔다는 사실에 5초 동안 놀랐다가, 그나 나나 다르지 않으니, 그러지 않는 게 오히려 더 놀랄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나와 에잇 사이에는 지난 6주라는 차이가 있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6주가 어마어마한 차이를 만든 것 같았다. - P227

이 질문을 곱씹으며 상황이 나빠질 경우 나는 어떻게 될지생각하고 있는데 오큘러에 메시지가 도착했다.

[RedHawk]: 미키 너 오늘 힘들었다며 난 16:00에 임무 교대야. 같이 저녁 할래? 내가 살게.

당연히 답은 완전 좋아였지만 대체 무슨 수로 네가 저녁을 대접할 수 있지? 하는 질문이 머릿속에 떠올랐고, 어떻게 대답할지 생각하기도 전에 메시지 하나가 전송되었다. - P228

[Mickey8]: 잘 들어. 나는 지난 24시간 동안 두 번이나 죽을고비를 넘겼고, 너는 두 번 다 낮잠을 자고 있었어. 계속 이럴 거면사이클러에서 20분 뒤에 만나 이번에는 제대로 한번 해보자고.
(중략)
[Mickey8]: 좋아, 알겠어. 맛있는 저녁 많이 잡수세요, 덩치만 큰아가씨. 네가 얼른 크리퍼한테 먹혔으면 좋겠다. - P229

14장

나는 주문 카운터 쪽으로 돌아섰다. "한도를 정해 줘. 나 정말 여기 있는 음식을 다 먹을 수도 있어."
베르토는 주문 카운터를 내려다보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면 이렇게 하자. 1000킬로칼로리 아래로, 됐지?" - P231

베르토는 아직도 거짓말을 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을것 같았다. 나는 감자, 귀뚜라미 튀김 그리고 작은 볼에 담긴 양상추와 토마토 샐러드를 주문했다. 그래도 700킬로칼로리밖에 되지 않아서 페이스트를 한 컵 가득 담아 남은 칼로리를 채웠다. 많아서 나쁠 건 없지. 내가 주문한 음식이 배식에서 나와서 보니 베르토도 음식을 주문한 모양이었다.
베르토는 토끼 고기를 주문했다.
- P231

"(전략). 그러니까 플리터를 90도로 꺾으면 날개둘 중 한쪽 끝은 여유 공간이 50센티미터밖에 안 되는 거야.
회전을 시작하는 타이밍이 10분의 1초 이내로 정확해야 해."
"그래, 미친 소리 같아. 그래서?" 내가 재촉했다.
"다른 사람들도 다 미쳤다고 했어. 그래서 내가 내기를 걸었지."
베르토는 이야기를 멈추고 입안 가득 음식을 채웠다. (중략)
"그럼 해냈지. 3000킬로칼로리를 모았다. 이 말씀이야. 훌륭하지?" - P233

"별일이 아니야? 그깟 몇 킬로칼로리에 목숨을 걸었잖아. 나를 위해서는 절대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놈이."
베르토는 맥이 탁 풀린 표정이었다. 그는 나를 빤히 보았고나도 그를 뚫어져라 보았다.
내가 거기까지 안다는 사실을 알려서는 안 되는데…………… 이야기를 하고 말았다. - P234

"미키? 그게 정확히 무슨 뜻이야?" 베르토가 물었다.
나는 대답을 하려고 입을 열었다가 다시 굳게 다물었다.
"넌 막 재생 탱크에서 나왔잖아. 미키, 내 말이 틀려?"
나는 시선을 돌렸다. - P234

 베르토가 토끼 뒷다리를 한 입 더 베어 무는 모습을 보며, 나는 이렇게 덧붙이는 상상을 한다. 너한테 이틀치 배급을 주겠다고 했으면 돌아왔으려나? 마침내 입을 열고 상상한 대로 이야기하려는데, 우리를 보고 있던 경비대원 무리중 하나가 테이블에서 일어나 우리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 P235

대런은 베르토의 한두 걸음 뒤에 서서 가슴팍 앞으로 팔짱을 끼고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인 채 말했다.
"저기, 신사 여러분, 오늘 저녁 배급은 맛이 괜찮으신가?"
베르토는 뒤를 돌아보며 토끼 뒷다리를 들어 일부러 천천히한 입을 뜯었다. - P235

대런의 얼굴이 움찔거리더니 점점 일그러졌다. "고메즈 너는 아주 개자식이야. 네놈도, 딱 한 대 남은 멀쩡한 플리터도 오늘 아침에 박살이 날 뻔했어."
(중략)
"플리터는 내가 없으면 어차피 쓸 일도 없잖아. 나샤는 어차피 중력 그리드 없는 건 조종하지 않으니까." (중략). "그렇게 개척지 자산이 신경이 쓰이면 네 저녁 식사를 사이클러에 넣지 그래? (후략)." - P236

"넌 빠져, 고메즈, 방금 나는 저녁 식사로 빌어먹을 사이클러 페이스트를 먹었고, 기분이 별로라……………"
대런은 거기까지밖에 말하지 못했다. 베르토의 뒤통수를 밀치는 최악의 수를 두었기 때문이다. 대런은 덩치가 좋은 경비대원이었다. 그가 그렇게 나오면 보통 사람들은 알아서 그를 피했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베르토는 자신에게 이런 짓을 한 사람을 그냥 보낼 친구가 아니었다. - P237

베르토가 포그볼을 잘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길쭉하고 흐느적거리는 외모와 달리 그는 초인적으로 빨랐다. - P237

"설명해 보게."
나는 베르토를 흘긋 보았다. 그의 시선은 마샬의 머리 뒤쪽 어느 한 점에 고정되어 있었다. 5초쯤 어색한 정적이 흐른 뒤내가 말했다.
"오해가 있었습니다. 사령관님." - P238

"흠, 드레이크가 자네를 모욕했다고? 자네는 털끝하나 다친것 같지 않은데 드레이크는 광대뼈에 금이 가서 의료국에 누워 있지. 그건 어떻게 설명할 텐가?"
베르토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가 저를 모욕했다고 했지, 이겼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마샬의 얼굴에 더 깊은 골이 파였다. - P239

"좋아. 이 일로 자네들을 어떻게 할 수 있으면 나도 좋겠네.
특히 지난 24시간 동안 자네들이 내 사무실에 두 번이나 들락거렸다는 점을 생각하면 말이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감시 카메라에 찍힌 영상이 자네들의 설명과 대부분 일치하더군. 드레이크가 분명 제멋대로 접근했고, 본인이 나가떨어지기 전에 고메즈를 먼저 건드렸어. 솔직히 경비대원들에게 조금 실망했네." - P240

마샬이 책상에 있는 태블릿을 두드리자 오큘러에 영상 클립이 나타났다. 나는 눈을 깜빡여 동영상을 재생했다. 멀리서 찍어 화질이 나빴지만 눈 덮인 능선 꼭대기에 있는 바위를 향해 베르토의 플리터가 돌진하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 P241

‘(전략). 자, 이제 인적 자원과 물적 자원 측면에서 우리가 위태로운 상황에 있다난 사실을 알면서도 겉멋든 어린애들이나 할 법한 장난에 자네 목숨과 더 중요하게는대체할 수 없는 금속 및 전자 기기 2000킬로그램을 위험에 빠뜨린 이유를 설명해 주겠나?"
(중략)
마샬이 마침내 침묵을 깼다. "좋네. 자네가 도박꾼인 것은잘 알겠어. 자네가 지난 이틀 동안 어긴 규칙을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지. 어차피 상관도 안 할 테니."  - P241

 "반스, 추천할 방법이라도 있나?"
나는 베르토를 흘긋 본 다음 마샬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제가 말입니까? 없습니다. 사령관님."
마샬은 다시 한번 한숨을 쉬고 의자에 기댔다. "몇 안 되는 선택지 가운데 제일 나은 방법은 일을 늘리고 배급을 줄이는것이겠지. (후략)." - P242

 이윽고 마샬의 머리 뒤쪽 어느 한 점에 시선을 고정한 채겨우 입을 뗐다. "네, 사령관님, 감사합니다."
"그렇지. 가 보게." 우리가 일어서서 방을 나서려는 찰나 마샬이 큰 소리로 덧붙였다. "아, 반스? 이 사건에 어떻게 끼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자네도 연관이 있는 게 틀림없겠지. 자네 배급도 5퍼센트 삭감하는 것으로 하겠네."
나는 그를 향해 돌아섰다. "네? 안 됩니다!"
"10퍼센트." 내가 다시 반항할 기미를 보이자 마샬이 덧붙였다. "15퍼센트로 하겠나?" -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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