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캣?" 내가 불렀다.
"쉿, 나도 보여"
캣은 조심스럽게 가속기를 조준했고, 가속기는 다시 한번 윙윙거리는 소리를 낸 후 발사되었다. 크리퍼의 앞마디가 산산조각이 나 공중에 흩어졌고 나머지 몸통은 눈 속으로 떨어졌다.
그녀가 말했다. "그래, 확실히 이 무기가 먹히네." - P218

오큘러로 보이는 영상에서는 마른 형상 중 하나가 장난감같은 소총을 떨어뜨리고 뒤쪽으로 휘청거리며 걷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풍선 같은 머리를 이쪽으로 돌려 나를 뚫어져라보고 있었다. 내가 휘청거리며 넘어지고 있는 동안에도 시점은바뀌지 않았고, 그동안 총을 떨어뜨린 마른 사람은 픽셀화된 눈 속으로 사라졌다. 다른 한 명이 무기를 들어 올려 발사하고또 발사해 그와 나 사이에 연신 폭발이 발생했다. - P219

낯선 목소리였다. 내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우리 목소리가 들릴까요?"
캣의 목소리다. - P220

"죄송해요. 저한테 문제가 있나요?" 내가 말했다.
"모르지. 신체적 외상은 없고 지금은 뇌파도 정상이야 첸이야기에 따르면 밖에서 이유 없이 밀가루 포대 자루처럼 쓰러졌다고 하던데. 의학적인 관점에서 좋은 신호는 아니지."  - P220

나는 땅에 발을 디디고 일어섰다. 잠깐 어지러웠지만, 곧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버크가 나섰다. "한동안 여기 있어야 해. 이런 신경과 관련된 증상은 가볍게 여기면 안 돼 뇌 사진을 찍어 보고 싶은데 종양이 생겼을 수도 있네." - P222

"예전에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요. 기억 안 나세요?
종양은 자라는 데 시간이 걸리고, 저는 아직 살아 있은 지하루 반밖에 안 됐잖아요."
버크는 얼굴을 찌푸렸다. 기억이 난 듯했다.
"좋아. 종양은 아니라고 하자고. 하지만 한 가지는 꼭 확인해야겠어." - P222

버크는 뒤돌아 캣을 보며 말했다. "지난 한 시간 이내에 오큘러에 전력이 과하게 흐른 적이 있는 것 같아 검사를 받아봐야 해. 뇌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을 거야. 오큘러에 이상이 생기는 건 위험 신호야."
"네, 검사해 주세요."
내 말에 버크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인간 두뇌 전문이야. 자네는 의용공학자에게 검사를 받아야지." - P223

거짓말이었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이미 머릿속에서 결론을내렸다. 버크가 이야기한 것처럼 오큘러는 시신경과 연결되어있고, 뇌의 10여 개 영역과도 연관이 있다. 한 개를 빼내서 새것으로 갈아 끼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오큘러에 결함이 발생해 장치를 교체하려면 매우 오랫동안 까다로운 현미경 수술을 받아야 한다. - P224

캣과 헤어진 뒤 카페테리아에 들러 사이클러 페이스트를 한잔 더 마시고 방으로 돌아갔다. 달리 할 일이 없었다. 방에 도착하니 에잇이 무릎에 태블릿을 올린 채 침대에 앉아 있었다. - P226

 "그래. 그럼 네가 돌아왔으니까 배 좀 채우러 가 봐야겠다.
배급 얼마나 남았어?"
"잘 모르겠어. 아마 900킬로칼로리 정도?"
"좋아, 내가 다 먹는다."
나는 안 된다고 하려고 했지만, 에잇은 이미 문밖을 나서고있었다.
"말리지 마. 난 이제 막 재생 탱크에서 나왔으니까." 그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 P226

에잇이 나와 같은 주제에 관심을 둔다는 사실에 5초 동안 놀랐다가, 그나 나나 다르지 않으니, 그러지 않는 게 오히려 더 놀랄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나와 에잇 사이에는 지난 6주라는 차이가 있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6주가 어마어마한 차이를 만든 것 같았다. - P227

이 질문을 곱씹으며 상황이 나빠질 경우 나는 어떻게 될지생각하고 있는데 오큘러에 메시지가 도착했다.

[RedHawk]: 미키 너 오늘 힘들었다며 난 16:00에 임무 교대야. 같이 저녁 할래? 내가 살게.

당연히 답은 완전 좋아였지만 대체 무슨 수로 네가 저녁을 대접할 수 있지? 하는 질문이 머릿속에 떠올랐고, 어떻게 대답할지 생각하기도 전에 메시지 하나가 전송되었다. - P228

[Mickey8]: 잘 들어. 나는 지난 24시간 동안 두 번이나 죽을고비를 넘겼고, 너는 두 번 다 낮잠을 자고 있었어. 계속 이럴 거면사이클러에서 20분 뒤에 만나 이번에는 제대로 한번 해보자고.
(중략)
[Mickey8]: 좋아, 알겠어. 맛있는 저녁 많이 잡수세요, 덩치만 큰아가씨. 네가 얼른 크리퍼한테 먹혔으면 좋겠다. - P229

14장

나는 주문 카운터 쪽으로 돌아섰다. "한도를 정해 줘. 나 정말 여기 있는 음식을 다 먹을 수도 있어."
베르토는 주문 카운터를 내려다보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면 이렇게 하자. 1000킬로칼로리 아래로, 됐지?" - P231

베르토는 아직도 거짓말을 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을것 같았다. 나는 감자, 귀뚜라미 튀김 그리고 작은 볼에 담긴 양상추와 토마토 샐러드를 주문했다. 그래도 700킬로칼로리밖에 되지 않아서 페이스트를 한 컵 가득 담아 남은 칼로리를 채웠다. 많아서 나쁠 건 없지. 내가 주문한 음식이 배식에서 나와서 보니 베르토도 음식을 주문한 모양이었다.
베르토는 토끼 고기를 주문했다.
- P231

"(전략). 그러니까 플리터를 90도로 꺾으면 날개둘 중 한쪽 끝은 여유 공간이 50센티미터밖에 안 되는 거야.
회전을 시작하는 타이밍이 10분의 1초 이내로 정확해야 해."
"그래, 미친 소리 같아. 그래서?" 내가 재촉했다.
"다른 사람들도 다 미쳤다고 했어. 그래서 내가 내기를 걸었지."
베르토는 이야기를 멈추고 입안 가득 음식을 채웠다. (중략)
"그럼 해냈지. 3000킬로칼로리를 모았다. 이 말씀이야. 훌륭하지?" - P233

"별일이 아니야? 그깟 몇 킬로칼로리에 목숨을 걸었잖아. 나를 위해서는 절대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놈이."
베르토는 맥이 탁 풀린 표정이었다. 그는 나를 빤히 보았고나도 그를 뚫어져라 보았다.
내가 거기까지 안다는 사실을 알려서는 안 되는데…………… 이야기를 하고 말았다. - P234

"미키? 그게 정확히 무슨 뜻이야?" 베르토가 물었다.
나는 대답을 하려고 입을 열었다가 다시 굳게 다물었다.
"넌 막 재생 탱크에서 나왔잖아. 미키, 내 말이 틀려?"
나는 시선을 돌렸다. - P234

 베르토가 토끼 뒷다리를 한 입 더 베어 무는 모습을 보며, 나는 이렇게 덧붙이는 상상을 한다. 너한테 이틀치 배급을 주겠다고 했으면 돌아왔으려나? 마침내 입을 열고 상상한 대로 이야기하려는데, 우리를 보고 있던 경비대원 무리중 하나가 테이블에서 일어나 우리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 P235

대런은 베르토의 한두 걸음 뒤에 서서 가슴팍 앞으로 팔짱을 끼고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인 채 말했다.
"저기, 신사 여러분, 오늘 저녁 배급은 맛이 괜찮으신가?"
베르토는 뒤를 돌아보며 토끼 뒷다리를 들어 일부러 천천히한 입을 뜯었다. - P235

대런의 얼굴이 움찔거리더니 점점 일그러졌다. "고메즈 너는 아주 개자식이야. 네놈도, 딱 한 대 남은 멀쩡한 플리터도 오늘 아침에 박살이 날 뻔했어."
(중략)
"플리터는 내가 없으면 어차피 쓸 일도 없잖아. 나샤는 어차피 중력 그리드 없는 건 조종하지 않으니까." (중략). "그렇게 개척지 자산이 신경이 쓰이면 네 저녁 식사를 사이클러에 넣지 그래? (후략)." - P236

"넌 빠져, 고메즈, 방금 나는 저녁 식사로 빌어먹을 사이클러 페이스트를 먹었고, 기분이 별로라……………"
대런은 거기까지밖에 말하지 못했다. 베르토의 뒤통수를 밀치는 최악의 수를 두었기 때문이다. 대런은 덩치가 좋은 경비대원이었다. 그가 그렇게 나오면 보통 사람들은 알아서 그를 피했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베르토는 자신에게 이런 짓을 한 사람을 그냥 보낼 친구가 아니었다. - P237

베르토가 포그볼을 잘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길쭉하고 흐느적거리는 외모와 달리 그는 초인적으로 빨랐다. - P237

"설명해 보게."
나는 베르토를 흘긋 보았다. 그의 시선은 마샬의 머리 뒤쪽 어느 한 점에 고정되어 있었다. 5초쯤 어색한 정적이 흐른 뒤내가 말했다.
"오해가 있었습니다. 사령관님." - P238

"흠, 드레이크가 자네를 모욕했다고? 자네는 털끝하나 다친것 같지 않은데 드레이크는 광대뼈에 금이 가서 의료국에 누워 있지. 그건 어떻게 설명할 텐가?"
베르토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가 저를 모욕했다고 했지, 이겼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마샬의 얼굴에 더 깊은 골이 파였다. - P239

"좋아. 이 일로 자네들을 어떻게 할 수 있으면 나도 좋겠네.
특히 지난 24시간 동안 자네들이 내 사무실에 두 번이나 들락거렸다는 점을 생각하면 말이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감시 카메라에 찍힌 영상이 자네들의 설명과 대부분 일치하더군. 드레이크가 분명 제멋대로 접근했고, 본인이 나가떨어지기 전에 고메즈를 먼저 건드렸어. 솔직히 경비대원들에게 조금 실망했네." - P240

마샬이 책상에 있는 태블릿을 두드리자 오큘러에 영상 클립이 나타났다. 나는 눈을 깜빡여 동영상을 재생했다. 멀리서 찍어 화질이 나빴지만 눈 덮인 능선 꼭대기에 있는 바위를 향해 베르토의 플리터가 돌진하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 P241

‘(전략). 자, 이제 인적 자원과 물적 자원 측면에서 우리가 위태로운 상황에 있다난 사실을 알면서도 겉멋든 어린애들이나 할 법한 장난에 자네 목숨과 더 중요하게는대체할 수 없는 금속 및 전자 기기 2000킬로그램을 위험에 빠뜨린 이유를 설명해 주겠나?"
(중략)
마샬이 마침내 침묵을 깼다. "좋네. 자네가 도박꾼인 것은잘 알겠어. 자네가 지난 이틀 동안 어긴 규칙을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지. 어차피 상관도 안 할 테니."  - P241

 "반스, 추천할 방법이라도 있나?"
나는 베르토를 흘긋 본 다음 마샬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제가 말입니까? 없습니다. 사령관님."
마샬은 다시 한번 한숨을 쉬고 의자에 기댔다. "몇 안 되는 선택지 가운데 제일 나은 방법은 일을 늘리고 배급을 줄이는것이겠지. (후략)." - P242

 이윽고 마샬의 머리 뒤쪽 어느 한 점에 시선을 고정한 채겨우 입을 뗐다. "네, 사령관님, 감사합니다."
"그렇지. 가 보게." 우리가 일어서서 방을 나서려는 찰나 마샬이 큰 소리로 덧붙였다. "아, 반스? 이 사건에 어떻게 끼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자네도 연관이 있는 게 틀림없겠지. 자네 배급도 5퍼센트 삭감하는 것으로 하겠네."
나는 그를 향해 돌아섰다. "네? 안 됩니다!"
"10퍼센트." 내가 다시 반항할 기미를 보이자 마샬이 덧붙였다. "15퍼센트로 하겠나?" -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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