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유언장과 빨간도깨비

정신을 차리니 침대 위였다. 눈을 뜨자 안경 너머로 낯선 천장이 보였다. 잠시 후에야 사야카는 여기가 ‘화장‘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방에 들어오자마자 침대로 몸을 던진 기억이 났다.
그렇다기보다 거기까지밖에 기억이 없었다. 옷도 갈아입지 않고그대로 잠든 모양이다. - P74

"으엑, 3시 1분!"
법사는 오후 3시부터라고 유코가 그랬다. 탐정 말마따나 사야카는 사이다이지 가문의 혈연이 아니니까 참가 의무는 없지만, 불참할 생각은 아니었다.
"죄송해요. 당장 갈게요!"
사야카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허둥지둥 방을 뛰쳐나왔다. - P75

사야카는 사람들에게 "늦어서 죄송합니다" 하고 고개 숙여 사과한 후에 탐정 옆자리에 앉았다. 그는 짓궂은 시선을 던지며 "이야.
좋은 아침이야"라면서 어째선지 아침 인사를 했다.
"어?!" 사야카는 한순간 어리둥절했다. 그러고 나서야 놀라서 작게 소리쳤다. "어, 어떻게? 내가 잔걸 알았어요?"
(중략).
"이제 다 모인 것 같군요." 도라쿠 스님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방정면에 위치한 작지만 훌륭한 제단에서 고인의 영정사진이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 P76

"승려로서 한 말씀을 드리자면, ‘돈과 지위에 너무 탐욕을 부리다간 신세를 망칩니다. 물론 여기에는 그런 분이 한 분도 안 계시리라 생각합니다만, 아무쪼록 조심 또 조심하십시오."
스님은 중얼거리듯이 말하면서 합장했다. (중략).
이로써 사십구재 법사는 대충 끝난 모양이다.
이제 사람들의 관심사는 딱 하나다. 사야카는 뜨거운 시선이 자신에게 쿡쿡 박히는 느낌을 받았다. - P78

"다행히 이 자리에 관계자 여러분이 모두 모여 계시네요. 기왕 모인 김에 아직 처리하지 못한 사안을 마무리하고 싶은데 어떠신가요. 여러분?"
에이코가 말하는 ‘아직 처리하지 못한 사안은 물론 유언장 개봉이다. 사람들이 한순간 술렁였지만 결국은 또 이의 없소!‘라는 분위기로 수렴됐다. - P79

"그럼 개봉에 앞서 한 가지만 말씀드릴게요. 사이다이지 가문의 친인척이 아니신 분은 방에서 나가주시기 바랍니다. 그게 좋겠죠,
마사에 씨?"
"그러게. 미안하지만 나가들 줬으면 해."
마사에의 말에 다카자와 나오토, 도라쿠 스님, 고이케 부부는 얌전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큰 방에서 나갔다. 사람 수가 줄어들자 큰방은 더 조용해졌다. - P80

이리하여 큰 방에는 사이다이지 가문의 친인척만 남았다. 사야키는 문제의 갈색 봉투를 보란 듯이 새삼스레 높이 쳐들었다. 그리고 중대한 한마디를 더 꺼냈다.
"누가 가위 좀 주세요! 가위가 없으면 개봉을 못해요!"
방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어, 가위, 가위?" 하며 허둥지둥 호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가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었지만, 대신에 칼 한자루가 사야카 눈앞에 쑥 디밀어졌다.
칼을 내민 사람은 쓰루오카 가즈야였다. "정 없으면 이걸 사용해." - P81

 ‘유언장 PART 3‘라고 적힌 갈색 봉투가 나오지않아서 사야카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 P82

나, 사이다이지 고로가 남긴 유산은 아래와 같이 분배할 것.


구체적인 내용은 여기서부터다. 사야카는 한 구절, 한 글자도 틀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읽어 나갔다.


첫째, 사이다이지 출판의 주식은 전부 첫째 딸 에이코에게 물려준다.


그 순간 에이코의 얼굴에 안도하는 표정이 번졌다. 고로 씨가 소 - P83

 사야카는 표정 변화 없이 계속 낭독했다.


둘째, 오카야마시에 있는 사이다이지 가문의 토지, 건물 및 거기 딸린 비품은 여동생 마사에에게 물려준다. 마사에는 그것들을 적절히 관리하고 활용할 것.

이건 사이다이지 가문의 본가를 가리키는 거라고 사야카는 이해했다. - P83

마사에는 미동도 없이 무표정을 유지했다. 사야카는 다음 항목을 읽었다.


셋째, 내가 소유한 그림, 골동품, 미술 공예품은 전부 셋째 딸 유코에게 물려준다. 유코는 그것들을 적절히 관리하고 활용할 것.

(중략). 객관적으로 보자면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오카야마의 문학관에서 학예사로 일하는 유코는 문학은 물론 예술 전반에 정통한 재원이라고 들었다. - P84

사야카는 수긍하고서 유언장을 읽어 나갔다.


넷째, 내가 오랜 세월 수집한 모든 장서는 둘째 아들 게이스케에게 물려준다. 게이스케는 그것들을 적절하게 관리하고 활용할 것.


자기 이름이 나오자 게이스케는 막내 유코와 비슷하게 숙이고있던 고개를 들고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 P84

현재까지 유언장의 내용에 특별히 부자연스러운 부분은 없었다.
"좋아, 이 기세로 마지막까지 가자!‘ 사야카는 그렇게 기원하며 다음 부분을 읽었다.


다섯째, 비탈섬의 토지, 건물 및 그에 딸린 비품은 아내가나에게 물려준다.


(중략).
사야카는 한층 큰 목소리로 "다만!" 하고 말을 이었다.


다만 몸 상태가 좋지 못한 가나에를 대신하여 죽은 여동생 시즈에의 아들인 쓰루오카 가즈야에게 관리를 맡긴다. 그것들을 적절하게 관리하고 활용해 주는 대가로 쓰루오카 가즈야에게 현금 3천만엔을 증여한다. - P85

사야카는 환희에 젖은 쓰루오카의 얼굴을 매섭게 노려본 후 다시유언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고인의 유언은 이제 얼마 안 남았다.

여섯째, 오랜 세월 사이다지 이 가문을 위해 일해 준 고이케 기요시, 고이케 시노부에게는 현금 1천만 엔씩 증여한다. 마찬가지로오랜 세월 주치의로서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 준 다카자와 다다나오의 아들 나오토에게 현금 1천만 엔을 증여한다. - P86

사야카는 유언장에 시선을 되돌렸다. 그리고 항목별로 작성된유언의 마지막 항목을 낭독했다.


일곱째, 이미 명기한 것 이외의 현금, 예적금, 유가증권, 부동산 등은 3등분하여 에이코, 게이스케, 유코에게 물려준다.

거액의 유산을 물려받은 3남매는 일제히 영정사진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유산 분배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은 이로써 전부 끝났다. - P87

‘아아, 아빠, 아주 안타까운 사실을 보고해야겠어. 우리 법률사무소에 떨어질 국물은 한 방울도 없나봐. 주치의와 고용인에게는 1천만 엔이나 증여했으면서, 왜 고문 변호사에게는 한 푼도 남겨 주지않는건데? 아빠, 혹시 고로 씨한테 미움받았어?‘
"뭐, 이제 와서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사야카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유언장을 봉투에 넣었다. - P88

2


유언장 개봉이라는 커다란 이벤트가 끝나자 사이다이지 가문의 친인척들은 제각각 자리에서 일어나 큰 방을 나섰다. 어떤 사람은 심각한 표정, 어떤 사람은 상쾌한 표정으로. 쓰루오카 가즈야는 콧노래라도 부를 것처럼 기분 좋은 표정으로 방을 나섰다.
한편 사야카는 막중한 임무를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이 가슴에 가득했다. - P88

돔 모양의 천장이 원형 플로어를 뒤덮고 있다. 과연, 전망실이 틀림없다. 주위를 둘러보자 커다란 창문 여러 장이 띠 모양으로 줄지어 있었다. 동시에 여기는 휴게실이기도 하리라. 여기저기에 세련된 디자인의 의자와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또한 도서실이기도 한모양이다. 플로어의 절반쯤 되는 공간에 키가 큰 서가가 여러 개 늘어서 있었다. 서가는 고인이 남긴 수많은 장서로 가득했다.
"우와, 굉장하네." 사야카는 무심코 감탄에 찬 목소리를 내뱉었다. - P89

다카오는 사야카를 원망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만에 하나 유언장에 ‘전 재산을 탐정 고바야카와에게 물려준다‘는 내용이 있었으면 어쩔 건데? 당신 때문에 인생 최고의 순간을 맛볼 기회를 놓치는 거잖아."
"아하. 그거라면 안심해요, 고바야카와 씨. 당신은 아무것도, 맛볼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니까." - P90

"응. 확실히. 원래 건물 자체가 비탈섬의 높직한 곳에 있는 데다,
돔 모양의 이 공간은 건물 옥상에 있잖아. 경치가 좋을만도 하지."
다카오의 설명을 들으며 사야카는 다양한 각도에서 경치를 바라보았다. 서가가 놓인 방향-그쪽이 북쪽인 듯하다ㅡ을 제외하고,
띠 모양으로 줄지은 창문을 통해 동쪽, 서쪽, 남쪽을 한눈에 바라볼수 있다. 특히 지금 시각은 서쪽 창문으로 비쳐드는 세토내해의 석양이 예뻤다. - P92

"흠, 고바야카와 씨. 혼자 이 경치를 바라보며 지질한 생각에 잠겨 있었던 거로군요."
"지질한 생각 안 했어. 그냥 고독을 곱씹고 있었을 뿐이야." - P92

"그러게. 하지만 쓰루오카 가즈야의 이야기로는, 그가 이 섬에 마지막으로 왔던 23년 전에는 이 구체가 없었대." - P92

정확하게는 책이라기보다 책 모양의 오브제라고 해야 할까. 만져서 확인할 수는 없지만 재질은 분명 종이가 아니다. 일종의 금속이다. 녹청이 쓴 듯한 독특한 색깔과 질감으로 보건대 청동이리라.
다시 말해 청동으로 만든 책인 셈이다. 크기는 보통 단행본보다 훨씬 크고, 형태도 정육면체에 가깝다. 두께도 백과사전이나 국어사전 못지않게 두껍다. - P93

3

시간이 조금 더 흘렀다. 해가 세토내해의 서쪽으로 가라앉자, 비탈섬에도 밤이 찾아왔다. 시곗바늘이 가리키는 시간은 오후 7시.
‘화강장‘을 방문한 사람들이 1층 식당에 다시 모여 앉았다. - P94

하지만 기적 같은 일품도, 식탁의 싸늘한 분위기를 깨부수지는 못했다. 이유는 분명했다. 식탁을 둘러싼 사람들 대부분이 중요 인물에 대한 중요한 화제를 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중요 인물은 쓰루오카 가즈야다. - P95

"그건 그렇고 말이야, 쓰루오카 군." 갑자기 멀리 떨어진 자리에서 아쓰히코가 말을 꺼냈다. "장인어른의 아들도 아닌 처남이 설령현금만이라도 유산을 상속받다니 의외였어."
약간 커지고 높아진 목소리로 추측건대, 술에 좀 취했으리라. 그래서 무심코 본심이 튀어나온 것이다. - P95

"야, 유코! 뭐야, 이 녀석. 뭐가 그렇게 불만인데? 아까부터 다들렸어!"
쓰루오카는 의자를 박차듯이 일어섰다. 한편 유코도 겉보기와달리 겁 없는 성격인 듯했다.
"불만이 있을 리가요. 전부 아빠의 유언인데요. 뭘!"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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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쿠데타 이후
두 번째 국가 위기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윤석열 탄핵심판을 담당할 헌법재판관 임명을 법적 근거 없이 거부했다. 그는 선출되지않은 권력이며, 그 자신이 내란죄 피의자이기도 하다. - P8

전혜원 기자 woni@sisain.co.kr

2024년 12월 14일 국회가 탄핵소추안을통과시킴에 따라 윤석열의 직무는 정지되었다. 차분히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면 될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일이 이상하게 진행되고 있다. 탄핵심판을 진행할 헌법재판소 구성이 늦어지면서다. - P8

(전략).
다만 6인 체제에서 ‘결론‘을 내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재판부가 검토중이라고 2024년 12월26일 브리핑에서이진 헌법재판소 공보관은 밝혔다. 법규정에는 없지만, 재판관 6명이 정치적으로결단한다면 결론까지 내릴 수 있다고 보는 헌법학자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 ‘탄핵을 결정하려면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는 헌법 제113조 1항에따라, 적어도 재판관 6명이 ‘만장일치‘로찬성해야만 탄핵이 인용된다.  - P9

더 심각한 시나리오는 문형배·이미선 재판관 퇴임이 예정된 2025년 4월18일까지 결론을 내리지 못할 경우에 발생한다.
이러면 ‘4인 체제‘가 되어 헌법재판소 자체가 심리 불능에 빠진다.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 상태에서 탄핵 인용도, 기각도 못한 채 남은 임기가 지속된다. - P9

"헌법기관 기능 뭉개는 것도 국헌 문란"

지금 비어 있는 3명은 국회 몫이다.
비상계엄 전인 11월29일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 시절, 여야는 공석인 국회 몫 헌법재판관 3명 중 더불어민주당이 2명,
국민의힘이 1명을 추천하기로 합의했다. - P9

그런데 12월 14일 국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한 이후인 12월17 선일 권성동 국민의힘 신임 원내대표는 대통통령 권한대행은 헌법재판관을 임명할수 없다고 주장했다. - P9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국회가 헌법재판관 3명을 선출해도 한덕수 권한대행이 임명하면 안 되는 이유로
"탄핵소추안을 가결한 국회가 헌법재판관을 추천하는 건 검사가 판사를 고르는것과 마찬가지다"라는 논리를 편다. - P9

그러나 우리 헌법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헌법 제71조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국무총리,
법률이 정한 국무위원의 순서로 그 권한을 대행한다.
헌법 제111조 2항 헌법재판소는 법관의 자격을 가진 9인의 재판관으로 구성하며, 재판관은대통령이 임명한다.
헌법 제111조 3항 제2항의 재판관 중 3인은국회에서 선출하는 자를, 3인은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자를 임명한다.

헌법재판관 9명 중 3명은 ‘국회에서 선출하는 자를 ‘대통령이 임명하며, ‘대통령이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국무총리가 그 권한을 대행한다는 것이 헌법에 적힌 전부다. - P9

국민의힘은 과거 황교안 대통령 권한· 대행 사례를 들며 ‘대통령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은 대통령 탄핵 인용 뒤에야 가능하다고도 주장한다. - P9

권한대행마저 탄핵해야겠냐고 묻는다면

만약 한덕수 권한대행이 끝까지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해 국회가 200명 미만의 찬성으로 한덕수 총리를 탄핵했는데, 한덕수가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 정족수는 151인이 아니라 200인이라며 직무정지를 거부한다면, 대통령 권한대행 후순위인 최상목 경제부총리와, 여전히 권한대행이라 주장하는 한덕수의 이중권력상태에 돌입할 수도 있다. 국민의힘이 한덕수가 여전히 대통령 권한대행‘이라 주장할 경우, 한 나라에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둘인, 앞날을 그리기도 어려운 극심한국가 혼란 상태로 들어가게 된다.  - P10

계엄법상 국방부 장관은 국무총리를거쳐 대통령에게 계엄의 선포를 건의할수 있고,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고자할 때는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고되어 있다. - P10

그런데도 국민으로부터 선출되지 않은, 그 자신이 내란죄 피의자이기도 한 한덕수는 대통령 권한대행이라며 내란 상설특검 후보자 추천을 의뢰하지 않았고,
윤석열 탄핵심판을 담당할 헌법재판관임명을 법적 근거 없이 거부했다. 내란 일반 특검과 김건희 특검에 여야 합의를 요구했다. - P10

윤석열과 우리 사이
타협할 수 없는 심연

대통령의 자기 확신에 ‘검찰 출신‘이나 ‘유튜브 시청‘ 외에더 근본적 요인이 있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윤석열·김건희 부부가 초자연적 계시를 진지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 P14

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윤석열은칩거 중이다. 검찰과 고위공직자수사처의 내란죄 수사 출석 요구에 불응했다. - P14

윤석열과 대다수 국민 사이에는 심연이 있다. 우선 현 상황에 대한 인식이 너무 다르다. 대통령이 극우 유튜브에 심취해 있다는 소문이 사실로 밝혀졌다. 윤석열 스스로 부정선거 음모론을 믿는다고말했고, 이를 입증하기 위해 실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 병력을 투입하기에 이르렀다. - P14

일각에서는 윤석열에게 ‘결단주의적관점이 보인다고 지적한다. 결단주의는독일 법학자 카를 슈미트(1888~1985)의 헌법 이론이다. 슈미트는 주권자가 ‘예외상태‘에서는 헌법을 벗어난(혹은 초월하는) 결정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P14

정치학자인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중략).
안병진 교수의 윤석열에 대한 평가는
‘검찰주의자‘라는 세평과도 조금 다르다.
검찰 조직이 아니라 "자신에게만 충성하는 자기애가 그의 본질이라고 본다. - P15

정치적 손익과 성공 가능성을 따지는 일반인과 달리 계엄이라는 거대한 조치를취하면서도, 자신의 결정을 믿는 결단주의자는 일단 "저지른다"는 것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자신감이다. 윤석열정부는 일찌감치 대중의 신임을 잃었다.
한국갤럽 조사 기준, 취임 80일 만에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졌다. - P15

 카를 슈미트의 이론은 전제군주를 옹호하는 왕권신수설과 거리가 멀다. 그는
‘독재‘를 긍정하고 의회민주주의를 평가절하했으나, 어디까지나 정치 권력의 정당성은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주장했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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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단어의 위치에 신경 써라

문장성분을 제대로 갖춰 온전한 문장을 만드는 것 못지않게이들 성분을 순서에 맞게 잘 배열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장성분의 위치가 잘못되면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워진다. 심한 경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으므로 수식 관계를 잘 살펴 단어나 구절을 적절한 곳에 두어야 한다. - P102

주어와 서술어 사이가 너무 멀어서도 안 된다. - P102

15

수식어는 수식되는 말
가까이에



‘아름다운 그녀의 웨딩드레스라고 하면 무엇이 아름다운 것일까? 만약 웨딩드레스를 가리키는 것이라면 ‘그녀의 아름다운 웨딩드레스‘라고 하는 것이 낫다. 이처럼 글의 흐름상 수식어는 바로 뒷말을 꾸미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 P104

진정한 효의 의미를 아는 젊은이라면 이 같은 부모의 마음을 깊이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진정한‘이 수식하는 것은 ‘효‘가 아니라 ‘의미‘이고, ‘이 같은‘이 수식하는 것은 ‘부모‘가 아니라 ‘마음‘이다. 이들 단어를 수식되는 말 가까이에 놓아야 의미가 확실해지고 문장이 부드러워진다.

→효의 진정한 의미를 아는 젊은이라면 부모의 이 같은 마음을 깊이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 P105

재정안정을 위해 새로운 제도를 추진하고 있으나 일부는 도입이 아예불투명한 상태다.

‘아예‘가 수식하는 것은 ‘불투명한‘이 아니라 ‘도입‘이므로 그 앞에위치해야 한다.

→재정안정을 위해 새로운 제도를 추진하고 있으나 일부는 아예 도입이 불투명한 상태다. - P106

정부는 개인정보를 보호한다는 관점에서 고액 납세자의 이름과 주소를 공개하는 제도를 폐지하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개인정보를 보호한다는 관점에서‘가 ‘고액 납세자의 이름과 주소를 공개하는 제도‘를 수식하는 것처럼 보여 어색하다. ‘폐지하는앞으로 가야 한다.

→정부는 고액 납세자의 이름과 주소를 공개하는 제도를 개인정보를보호한다는 관점에서 폐지하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 P107

16

주어와 서술어는
너무 멀지 않게


"부모는 학생이 수능 점수가 좋지 않다고 실망하지 말고 자기적성에 맞는 학과를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부모는 ~도와야 한다)에서 보듯 겹문장일 경우 전체 문장의 주어가 서술어와멀리 떨어져 있으면 어느 서술어와 호응하는지 판단하기 힘들다. - P108

시민들이 사고로 숨진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건물 앞 계단에 촛불을 늘어놓으며 애도를 표시하고 있다.

‘시민들이‘와 ‘애도를 표시하고 있다‘ 사이에 긴 수식어가 있어 읽기 불편하다. ‘시민들이‘를 ‘건물 앞 계단에‘ 앞에 두는 것이 부드럽다.

→사고로 숨진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시민들이 건물 앞 계단에촛불을 늘어놓으며 애도를 표시하고 있다. - P109

기자들이 18일 오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지법에 출두하는정치인을 취재하고 있다.

읽다 보면 언뜻 기자들이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로 비칠 수있다. 목적어가 길기 때문에 주어 ‘기자들이‘를 서술어 취재하고있다‘ 바로 앞에 두는 것이 좋다.

→18일 오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지법에 출두하는 정치인을 기자들이 취재하고 있다. - P109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간에 최고경영자가 권위가 손상받는 일 없이회사 경영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최고경영자가‘와 ‘권위가‘가 나란히 붙어 있어 읽기 불편하다. 최고경영자가‘를 서술어 가까이에 두는 것이 자연스럽다. 요령을 부려 ‘권위가 손상받는 일 없이‘를 ‘권위 손상 없이‘로 해도 된다.

→1.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간에 권위가 손상받는 일 없이 최고경영자가 회사 경영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간에 최고경영자가 권위 손상 없이 회사 경영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P110

제6장

적확한 단어를 선택하라

비슷한 단어를 혼동해 쓰는 경우가 많다. ‘부문‘과 ‘부분‘, ‘조종‘과 ‘조정‘처럼 모양과 뜻이 비슷한 한자어의 개념을 정확히 모르고 사용하는 예가 적지 않다. - P115

적확한(꼭 맞는) 단어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풍부한 어휘력이 밑받침돼야 하지만 궁금할 때마다 사전을 찾아보는 습관을 들이면 도움이 된다. - P116

18

비슷한 한자어
구분하기


•일절 일체

안주 일절, 외상 일체 사절!

일절(一切)은 ‘아주‘ ‘전혀‘ ‘절대로‘의 뜻이다. ‘
(중략) 일체(一切)는 ‘모든 것‘ 또는 ‘모두 다‘를 의미한다. (중략) 한자는 같으면서도 일절‘과 ‘일체‘로 차이가 나는 것은 ‘‘切이(가) ‘끊을절‘ ‘모두 체‘의 두 가지 뜻으로 달리 읽히기 때문이다.

→안주 일체, 외상 일절 사절! - P117

•운영·운용

새 정부의 경제정책 운영이 일관성이 없어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다.

운영(運營)은 조직이나 기구·사업체 등을 경영하는 것이며, 운용(運用)은 무엇을 움직이게 하거나 부리는 것이다. 정책·제도·법인력 등에는 ‘운용‘이 어울린다.

→새 정부의 경제정책 운용이 일관성이 없어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다. - P118

• 참석 · 참가 · 참여

이번 행사에는 세계 20여 개국에서 300여 명의 예술가가 참석했다.

‘참석‘은 비교적 작은 규모의 모임이나 회의에 함께해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행사 · 대회 등 규모가 큰 것에는 ‘참가‘가 어울린다.
‘참여‘는 ‘현실 참여‘ ‘경영 참여‘ 등에서처럼 어떤 일에 끼어들어 관계하는 것으로 추상적인 형태의 활동까지 포함한다.

→이번 행사에는 세계 20여 개국에서 300여 명의 예술가가 참가했다. - P119

•주인공 · 장본인

최고 인기 여배우의 마음을 사로잡은 행운의 장본인이 누구인지 세인들의 관심이 대단했다.

사전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긴 하나 장본인張本人)은 부정적인곳에 주인공(主人公)은 긍정적인 곳에 잘 어울린다.

→최고 인기 여배우의 마음을 사로잡은 행운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세인들의 관심이 대단했다. - P120

•당사자, 주역

그는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어 낸 당사자다.

당사자는 어떤 일이나 사건에 직접 관계가 있거나 관계한사람이란 뜻이다. (중략). 주역(主役)은 주된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사건 해결의 주역들‘ ‘그는 팀이 우승하는 데 주역이 되었다‘ 등처럼 사용된다.

→그는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어 낸 주역이다. - P120

•반증 · 방증

절제되지 않은 언어로 상대방의 감정이나 건드리려 하는 건 자신의 논리가 빈약하다는 반증이다.

반증(反證)은 반대되는 증거이며, 방증(傍證)은 주변 상황을 밝힘으로써 간접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중략) ‘방중‘의 경우 ‘증거‘로 바꾸어도 뜻이 통한다.

→절제되지 않은 언어로 상대방의 감정이나 건드리려 하는 건 자신의논리가 빈약하다는 방증이다(증거다). - P121

• 배상. 보상

다른 건물이 들어서 조망권·일조권을 침해당하면 이에 대한 배상을 받을 수 있는지가 논란이 되고 있다.

배상(賠償)은 불법행위로 인해 발생한 손실을 물어 주는 것이고,
보상(補償)은 적법행위로 인한 손해를 물어 주는 것이다. (후략)

→다른 건물이 들어서 조망권 · 일조권을 침해당하면 이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가 논란이 되고 있다. - P123

•곤욕·곤혹

지나치게 복잡한 입학 전형 방식이 학생과 부모들을 곤욕스럽게 만들고 있다.

곤욕(困辱)은 심한 모욕을 뜻한다. ‘곤욕을 치르다‘ ‘곤욕을 겪다‘
등의 예로 쓰인다. 곤혹(困惑)은 곤란한 일을 당해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을 의미한다. (후략)

→지나치게 복잡한 입학 전형 방식이 학생과 부모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 P123

• 시험·실험

평화헌법을 보유한 일본이 군대 및 전쟁에 대한 태도를 바꾼 데는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실험발사가 결정적 계기가 됐다.

‘시험‘과 ‘실험‘을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시험(試驗)은 주로 행위를 뜻하는 명사 앞에 붙어 시험 삼아 무엇을 해 볼 때 쓰인다. 실험(實驗)은 행위를 뜻하지 않는 명사 앞에 붙어 과학 부문에서 어떤 현상을 조사·관찰하거나 새로운 방법·형식을 사용해 볼 때 쓰인다.
(생략)

→평화헌법을 보유한 일본이 군대 및 전쟁에 대한 태도를 바꾼 데는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가(발사실험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 P124

19

비슷한 순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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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든지, -던지

어젯밤에 술을 얼마나 마셨든지 아무 기억도 안 난다.

‘-든지‘는 선택, ‘-던지‘는 과거 회상을 나타낸다. ‘-든‘, ‘든지‘
‘든가‘ 등 ‘든‘이 들어간 것은 선택, ‘-던‘ ‘-던지‘ ‘-던가‘ 등 ‘던‘
이 들어간 것은 과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 된다.

→어젯밤에 술을 얼마나 마셨던지 아무 기억도 안 난다. - P126

• 붙이다. 부치다

기득권 계층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중요 사안을 국민투표에 붙이는 등개혁 정책을 밀어부쳤다.

‘붙이다‘는 떨어지지 않게 하다. 관계를 맺게 하다, 말을 걸다, 뺨을 때리다 등의 뜻이 있다. ‘부치다‘는 힘이 미치지 못하다, 편지나 물건을 보내다, 의논 대상으로 내놓다, 논밭을 다루다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후략)

→"기득권 계층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중요 사안을 국민투표에 부치는 등 개혁 정책을 밀어붙였다. - P128

•탓 · 덕분. 때문

특소세가 내린 탓에 그나마 매출이 조금 늘었다.

‘탓‘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때, ‘덕분(德分)‘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때 쓴다. ‘때문‘은 두 경우 모두 사용할 수 있다.

→1. 특소세가 내린 덕분에 그나마 매출이 조금 늘었다.
2. 특소세가 내린 때문에 그나마 매출이 조금 늘었다. - P131

• 결단 결딴

정부가 빨리 결딴을 내리지 않으면 우리 경제가 결단나게 생겼다.

결단(決斷)은 결정적 판단이나 단정을 의미하는 한자어다. ‘결단‘
은 아주 망가져 손을 쓸 수 없는 상태를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정부가 빨리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우리 경제가 결딴나게 생겼다. - P132

20

조사 정확하게
사용하기


조사는 그 말과 다른 말의 문법적 관계를 표시하거나 그 말의 뜻을 도와주는 품사다. 크게 격조사 · 접속조사 · 보조사가 있다. - P134

보조사는 문법적 구실보다는 단어의 섬세한 의미를 전달하는 조사다. 글 쓰는 사람이 전달하고자 하는 섬세한 뉘앙스를 간단하고도 함축적으로 표현해 내는 역할을 한다. - P134

•공부를 잘한다 : 단순히 공부를 잘한다는 사실만 나타냄.
•공부는 잘한다: 다른 것은 못하지만 공부 하나는 잘한다는 의미를 내포.
•공부도 잘한다: 다른 것도 잘하고 공부도 잘한다는 의미를 가짐. - P135

그녀와 헤어진다는 것은 생각할 수가 없는 일이다.

‘생각할 수가‘보다 ‘생각할 수조차‘가 예상하기 어려운 극단의 경우임을 표현하기에 적절하다.

→그녀와 헤어진다는 것은 생각할 수조차 없는 일이다. - P135

막내도 출가시키고 나니 몹시 허전하다.

하나 남은 마지막임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막내도‘보다 ‘막내마제‘가 적당하다.

→막내마저 출가시키고 나니 몹시 허전하다. - P136

04

문장은
짧게

(전략). 아무리 잘 짜인 문장이라하더라도 길면 사람의 호흡과 일치하지 않으므로 읽어 내려가기힘들고 지루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문장이 길어서 좋은 점은 거의 없다. (중략).
한 문장은 딱히 몇 자가 돼야 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30자나 50자 이내가 적당하다. 길어도 60자를 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 P39

한 문장에 너무 많은 내용을 집어넣으려 하지 말고 한 가지 내용만 담는다는 생각으로 짧게 끊어 쓰는 것이 좋다. 긴 듯하거나 복잡하다 싶으면 두세 문장으로 나눠 써야 한다. - P39

많은 수험생이 전공과 대학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닫지 못하고 인기학과나 소위 명문 대학을 중시해 진학하는 경향이 짙으며, 특히 최근에는 취업난 때문에 졸업 후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학과 선호도가 분명해지고 있지만 자신에게 맞지 않는 전공을 선택해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의 경우 전공 공부에 흥미를 갖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례가 많다.

이처럼 문장이 길면 끝까지 읽어 내려가기 힘들고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다. 다 읽고도 무슨 말인지 몰라 다시 한 번 읽어야 하는수고를 끼칠 수 있다. 적당한 길이로 끊어 메시지를 나누어 담는것이 바람직하다.

→많은 수험생이 전공과 대학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인기학과나 소위 명문 대학을 중시해 진학하는 경향이 짙다. 특히 최근에는 취업난 때문에 졸업 후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학과 선호도가 분명해지고 있다. 하지만 자신에게 맞지 않는 전공을 선택해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의 경우 전공 공부에 흥미를 갖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례가 많다. - P40

정보서비스 · 전자상거래 · 홈뱅킹 등 수용자의 다양한 정보 욕구를 충족시켜 줄 쌍방향 데이터 서비스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방송·통신 융합에 따른 데이터 서비스 개념을 정립하고 새로운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하며, 기술 개발 및 표준형 수신기의 생산 산업화를 조속히 이루어야 한다.

어렵고 딱딱한 내용일수록 짧게 끊어 쓰는 것이 좋다. 두세 문장으로 분리해 메시지를 나누어 담으면 훨씬 읽기 편하고 의미를파악하기 쉽다.

→1. 쌍방향 데이터 서비스는 정보서비스 · 전자상거래 · 홈뱅킹 등 수용자의 다양한 정보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 이러한 서비스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방송·통신 융합에 따른 데이터 서비스 개념을 정립하고 새로운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하며, 기술 개발 및 표준형 수신기의 생산 산업화를 조속히 이루어야 한다. <두 문장>
2. 쌍방향 데이터 서비스는 정보서비스·전자상거래 - 홈뱅킹 등 수용자의 다양한 정보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 이러한 서비스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방송·통신 융합에 따른 데이터 서비스 개념을 정립하고 새로운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이와 함께 기술 개발 및 표준형 수신기의생산 산업화를 조속히 이루어야 한다. <세 문장> - P42

05

‘그녀‘는아름답지 않다

‘그녀‘라는 말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일찍이 서양 문학을 접한 일본 문인들은 영어의 ‘she‘를 번역하는 말로 ‘가노조‘라는 단어를 만들어 낸다. - P205

그러나 이를 두고 이후 여러 차례 논란이 인다. 그 바탕에는 우리말에선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그‘를 쓰기 때문에 ‘그녀‘가 필요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녀‘는 또 ‘우리말(그)+한자어(女)‘
로, 이렇게 결합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 P205

‘그남(男)‘을 가정해 보면 ‘그녀‘가 얼마나 어설픈지 알 수있다. - P206

물론 ‘그녀‘에 대해 크게 이의를 달 필요가 없다는 사람도 있다. 세월은 흘러 더욱 굳건히 자리를 잡았다. 이제 와서 사용하지 않을 순 없지만 남용하지는 말아야 한다. - P206

08

‘처녀출전‘은 있는데
‘총각출전‘은 없나요?

주로 스포츠에서 많이 쓰이는 용어로 ‘처녀출전이라는 것이있다. 처녀출전이 있으면 당연히 ‘총각출전‘이 있어야 한다. 스포츠는 처녀들만 하는 것이 아니다. 총각들도 스포츠를 한다. 그러나참 희한한게 총각출전이라는 말은 한 번도 들어보질 못했다. - P211

이런 조어가 만들어진 것은 영어 때문이라고 보는 사람이 있다. 처녀림(virgin forest), 처녀비행(maiden flight),
처녀항해(maiden voyage), 처녀연설(maiden speech) 등이 영어에 있는 표현이다. - P212

여성의 성적·신체적인 면을 이용한 이런 표현이 남성 중심적 사상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점에서다. 한마디로성 차별적인 표현이다. ‘처음 출전‘ ‘첫 우승‘ ‘최초 비행‘ 등처럼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표현인 ‘처음, 첫, 최초‘를 사용해도 의미를 전달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 P212

10

접속사가 없어야
좋은 문장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Veni, Vidi, Vici)
로마 최고의 정치가이자 장군이며 문필가이기도 했던 율리우스 시저(이탈리아어 카이사르)가 소아시아 젤라에서 파르나케스와벌인 전투에서 승리한 후 원로원에 보낸 전문이다. 이 말은 영원한 명언으로 남아 있다. - P216

 간단명료하게 작성하기 위해서는 우선 군더더기가 없어야 한다. 말할 때처럼 군더더기가 많아서는 좋은 문장이 될 수 없다. 군더더기가 있느냐 없느냐는 글 쓰는 능력을 판단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 P217

특히 일이 순서대로 진행될 때는 접속사가 긴장감을 떨어뜨린다. - P217

접속사가 남용되는 것은 문장과 문장 사이의 연결에서뿐만이아니다. 단락과 단락을 연결할 때도 ‘그런데‘ ‘그리고‘ ‘그래서‘ ‘한편‘ 등 불필요하게 접속사가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글쓰기 경험이 부족한 사람의 글을 유심히 보면 단락의 맨 앞에는 여지없이 접속사가 나온다. - P218

가능하면 접속사 없이 글을 쓰는 버릇을 들여야 한다. 접속사없이 각 단락과 문장을 부드럽게 연결하도록 노력해야 글쓰기가 발전한다. - P218

16

‘삼가하다‘를
삼갑시다


자주 쓰면서도 틀리기 쉬운 단어가 ‘삼가다‘다. ‘조심하다‘ ‘지나치지 않도록 하다‘ ‘금지하다‘의 뜻으로 흔히 사용하는 말이지만 ‘삼가하다‘로 잘못 쓰는 경우가 많다. - P231

기사에서도 "단식 중인 그는 이날부터 외부인의 방문도 받지않고 언론 접촉도 가급적 삼가할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섣부른 투자는 삼가할 것을 조언하고 있다" 등처럼 ‘삼가하다‘ 형태로 잘못 쓰는 예가 있다. - P231

‘삼가다‘를 ‘삼가하다‘로 쓰는 이유는 동사의 기본형이 ‘-하다‘
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삼가다‘의 발음이 어렵기 때문이다. ‘삼가다‘를 활용한 ‘삼가니‘ ‘삼가고‘ ‘삼가서‘ ‘삼갑시다‘보다 ‘삼가하다‘를 활용한 ‘삼가하니‘ ‘삼가하고‘ ‘삼가해서‘ ‘삼가합시다‘가 뜻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발음하기도 쉽다. - P232

이러한 측면에도 불구하고 ‘삼가다‘를 표준어로 삼고 있어 ‘삼가하다‘로 쓰면 틀린 말이 된다. ‘나가다‘ ‘오다‘ ‘막가다‘처럼 기본형이 ‘삼가다‘이기 때문에 그 활용은 ‘삼가+고(니/면/서/자/라/주십시오)‘ 등으로 해야 한다.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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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고통의 급증

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와 대화를 할 때면 대화 내용이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 비디오게임으로 흘러갈 때가 많다. 부모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대개 몇 가지 공통적인 패턴으로 귀결된다. 하나는 ‘끝없는 갈등이다. - P43

나와 대화를 나눈 대다수 부모가 하는 이야기는 병원에서 진단받은 정신 질환에 관한 것이 아니다.  - P43

남자아이는 대개 소셜 미디어보다는 비디오게임 (그리고 때로는 포르노)에 빠지는 경우가 많은데, 간혹 게임을 하던 단계에서 게임 중독에 가까운 단계로 전환할 때 특히 문제가 심각해진다. - P44

이야기의 패턴이나 심각성 정도에 상관없이 모든 부모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점은 진퇴양난에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다. 대다수 부모는 자녀가 스마트폰 기반 아동기를 보내길 원치 않지만, 세상 자체가 확 바뀌어 그 물결에 저항하는 부모는 자녀를 사회적격리 상태로 내몰게 된다. - P45

이 장의 나머지 부분애서는 뭔가 큰잉이 일어나고 있으며, 2010대 초반에 젊은이들의 삶에 일어난 변화가 그들의 정신 건강을 급격히 악화시켰다는 증거를 보여줄 것이다. 하지만 데이터를 자세히 들여다보기 전에, 어떤 의미에서 자녀가 물결에 휩쓸려 떠내려갔다고느끼고 이제 그들을 되찾아오려고 애쓰는 부모들의 목소리를 들어보기로 하자. - P46

해일이 밀려오기 시작하다

2000년대에는 청소년에게 정신 질환 위기가 임박했다는 징후가 거의 없었다.² 그러다가 갑자기 2010년대 초반에 상황이 확 변했다. 모든 정신 질환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 P46

1장 고통의 급증


2. 이 진술에서 벗어나는 예외는 미국 십대 청소년의 자살률이다. 자살률은 2000년대 초반에 전반적으로 감소하다가 2007년에 최저점을 찍었다. 2008년부터 전반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지만, 2010년이 지나기까지는 2000년대 초반 수준을 넘어서진 않았다.
자살률에 관해서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할 것이다. 시간을 거슬러 더 먼 과거를 살펴보면, 1950년대 이후부터, 시기에 따라 기복은 있었지만 미국 청소년 사이에서 우울증과 불안을 비롯해 그 밖의 정신 질환 발생 비율이 증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2010년대 초반의 ‘하키 스틱‘ 커브와 같은 추세는 나타난 적이 없었는데, 그러한 증가추세는 이장과 이 책 전체에서 보게 될 것이다. Twenge et al. (2010) 참고. - P441

그림 1.1에서 2012년경부터 주요 우울증 에피소드 비율이 갑자기 크게 증가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림 1.1과 뒤에 나오는 대다수 그래프에 음영 표시를 추가했는데, ‘아동기 대재편‘이 일어난 시기인 2010~2015년에 뭔가 괄목할 만한 일이 일어났는지 판단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이다.) 절대적 수치(2010년 이후에 증가한 발병 건수)로 보면, 여자아이들이 남자아이들보다 훨씬 크게 증가했고, 하키 스틱 모양의 증가 양상이 훨씬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 P48

3. 2021 Substance Abuse and Mental Health Services Admin-istration (2023)014. - P441

그림 1.1에서 2012년경부터 주요 우울증 에피소드 비율이 갑자기크게 증가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림 1.1과 뒤에 나오는 대다수 그래프에 음영 표시를 추가했는데, ‘아동기 대재편‘이 일어난 시기인 2010~2015년에 뭔가 괄목할 만한 일이 일어났는지 판단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이다.) 절대적 수치(2010년 이후에 증가한 발병 건수)로 보면, 여자아이들이 남자아이들보다 훨씬 크게 증가했고, 하키 스틱 모양의 증가 양상이 훨씬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하지만 남자아이들은 애초에 여자아이들보다훨씬 낮은 수준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상대적 비율(내가 항상 기준선으로 사용하는 2010년 이후의 비율 변화)로 보면 증가 비율은 양성 모두 약150%로 비슷하다. 즉, 우울증 발생 빈도는 약 2.5배나 증가했다. 이러한 증가 추세는 모든 인종과 사회 계층에서 나타났다.⁴ - P48

4. 인구학적 변화에 관한 주석: 2010년 이후에 성별이나 성적 지향성, 사회 계층에 상관없이 미국의 모든 집단에서 청소년 정신 질환이 증가하는 추세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전반적으로 오랫동안 흑인 십대는 백인 십대보다 불안, 우울증, 자해, 자살 비율이 낮았지만, 양 집단 모두 2010년 이후에 그 비율이 크게 증가했다. 절대적인 증가는 백인십대에서 더 크게 나타난 반면, 상대적 증가(비율)는 흑인 십대에서 더 크게 나타났다(더 낮은 기준선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사회 계층에 초점을 맞춘 데이터는 드물지만, 우울증 발생은 모든 계층에서 비슷한 추세가 나타났는데, 2010년부터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LGBTQ 십대는 이성애자 십대에 비해 앞의 모든 사례에서 상당히 더 높은 비율을 보고한다. 하지만 2010년 이후에 LGBTQ 십대의 자해와 자살 비율이 증가했다는 결정적 증거는 없다. 이 통계 수치와 추가 내용에 관한 출처는 온라인 부록 내용, 특히 Adolescent Mood Disorders Since 2010: A Collaborative Review 링크를 참고하라. - P441

급증의 근본 원인


2010년대 초반에 십대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누가 언제부터 무슨 일로 고통을 받았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급증의 원인을 확인하고 그 물결을 되돌릴 잠재적 방법을 찾으려면, 이 질문들에 대해 정확한 답을 알아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P48

 첫 번째 단서는 정신 질환증가가 불안과 우울증과 관련된 장애에 집중되었다는 점인데, 정신의학에서 이들 장애는 뭉뚱 그려서 내면화 장애internalizing disorder로 분류한다. - P49

반대로 외면화 장애는 고통을 느끼는 사람이 그 증상과 반응을 다른 사람들을 향해 밖으로 표출할 때 나타난다. 행동 장애, 분노 조절장애, 폭력 성향과 과도한 위험 감수 성향 등이 이에 포함된다. 나이와 문화, 국가에 상관없이 내면화 장애는 여자아이와 여성에게서 더높은 비율로 나타나는 반면, 외면화 장애는 남자아이와 남성에게서더 높은 비율로 나타난다.⁶ - P49

6. Zahn-Waxler et al. (2008). - P442

 우울증과 불안을 나타내는 선은 나머지 진단들보다 훨씬 높은 곳에서 시작하여 상대적으로나 절대적으로나 다른 진단들보다 더 크게 증가했다. 2010년대에 대학교 캠퍼스에서 증가한 정신 질환은 거의 다 불안 그리고/또는우울증 증가가 차지한다.⁹ - P49

9. 그림 1.2에 나타낸 각 정신 질환의 진단 비율은 증가하고 있지만, 100% 이상 증가한것은 내면화 장애 세 가지뿐이다.(섭식 장애인 신경성 식욕 부진은 불안과 관련이 있어 내면화 장애로 분류된다.) - P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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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네가 나에게 그 도시를 알려주었다. - P11

너는 걷다 지친 듯 여름풀 위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본다. 작은 새 두 마리가 나란히 상공을 가로지르며 날카롭게 울었다. 침묵 속에서 푸른 땅거미의 전조가 둘을 감싸기 시작한다 - P12

"도시는 높은 벽으로 사방이 둘러싸여 있어." 너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침묵의 밑바닥을 뒤져 말을 찾아 온다. 맨몸으로심해에 내려가 진주를 캐는 사람처럼. "그다지 큰 도시는 아니야. 하지만 한눈에 다 들어올 만큼 작지도 않아."
네가 그 도시를 입에 올린 건 이번이 두번째다. 그렇게 도시에는 사방을 둘러싼 높은 벽이 생겼다. - P12

"진짜 내가 사는 곳은 높은 벽에 둘러싸인 그 도시 안이야."
너는 말한다.
"그럼, 지금 내 앞에 있는 너는 진짜 네가 아니구나." 당연히 나는 그렇게 묻는다.
"그래. 지금 여기 있는 나는 진짜 내가 아니야. 대역에 지나지 않아, 흘러가는 그림자 같은 거야." - P13

"아니. 아무나 자유롭게 들어가진 못해. 그곳에 들어가려면 특별한 자격이 필요해. 하지만 너는 들어갈 수 있어. 네게는그 자격이 있으니까."
"특별한 자격이라는 게 뭘까?"
너는 가만히 미소 짓는다. 하지만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래도 그곳에 가기만 한다면, 나는 진짜 너를 만날 수 있는 거지?" - P14

그 도시에 가고 싶다고, 나는 얼마나 간절히 바랐던가. 그곳에서 진짜 너를 만나고 싶다고. - P15

나는 그 도시에서 진짜 너와 만나는 상상을 한다. 도시 외곽에 아름답게 우거진 드넓은 사과나무 숲과 강에 놓인 세 개의돌다리와, 보이지 않는 밤꾀꼬리의 지저귐을 마음속에 그린다. 그리고 상상한다. 진짜 네가 일하고 있는 작고 오래된 도서관을
"너를 위한 장소는 늘 그곳에 마련되어 있어." 네가 말한다. - P15

"꿈 읽는 이‘가 될 거야"라고 너는 소리 낮춰 말한다. 중요한 비밀을 털어놓는 것처럼.
그 말에 나는 무심코 웃고 만다. "저기, 나는 내가 꾼 꿈도제대로 기억 못해. 그런 인간이 ‘꿈 읽는 이‘가 되기란 상당히 어려울 텐데." - P16

"어째서인지, 너는 모르겠어?"
나는 안다. 그렇다, 내가 지금 가만히 어깨를 안고 있는 것은 너의 대역일 뿐이다. 진짜 너는 그 도시에 살고 있다. 높은 벽에 둘러싸인, 아득히 먼 수수께끼의 도시에. - P17

2

이 실제 세계에서, 나와 너는 조금 떨어진 곳에 살고 있다.
아주 멀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충동적으로 곧장 만나러 갈수 있을 정도로 가깝지도 않다. 전철을 두 번 갈아타고 한 시간 반쯤 걸려야 네가 사는 도시에 다다를 수 있다. - P18

나는 바다 근처 조용한 교외 주택가에 살고, 너는 훨씬 크고번화한 도시 중심부에 살고 있다. 그 여름,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너는 2학년이다. - P18

네가 우리 동네에 올 때면 주로 단둘이 강가나 바닷가를 산책한다. 도심 한가운데 있는 너희 집 근처에는 강이 흐르지 않고 물론 바다도 없기 때문에, 너는 우리 동네에 오면 제일 먼저 강이나 바다를 보고 싶어한다. 그곳을 가득 채운 자연의 물-너는 그것에 마음이 끌린다.
"물을 보고 있으면 왠지 마음이 차분해져"라고 너는 말한다. "물이 내는 소리를 듣는 게 좋아." - P19

물론 내가 신체적 욕구를 품지 않았던 건 아니다. 열일곱 살의 건강한 소년이 아름답게 가슴이 부푼 열여섯 살 소녀를 앞에 두고, 하물며 그 부드러운 몸에 팔을 두르면서 성적 욕구에 휩싸이지 않을 리 없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좀더 나중으로 미뤄도 되리라고, 나는 본능적으로 느낀다.  - P20

그런데 그렇게 이마를 맞대고서 우리는 대체 무슨 이야기를나눴을까? 지금 와서는 기억나지 않는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화제를 하나하나 가려내기가 불가능해진 것이라. - P21

주로 네가 도시의 큰 틀을 말해주면 내가 그에 대해 실제적인 질문을 하고 네가 대답해서 보충하는 식으로 도시의 구체적인 세부가 결정되고 기록되어갔다. 그 도시는 원래 네가 만들어낸 것이다. 혹은 네 안에 예전부터 존재했던 것이다. - P21

3


가을, 짐승들의 몸은 다가올 추운 계절에 대비해 눈부신 황금색 털로 뒤덮인다. 이마에 돋은 외뿔은 희고 날카롭다. 그들은 차가운 강물에 발굽을 씻고, 가만히 고개를 뻗어 붉은 나무열매를 탐하고 금작화 이파리를 씹는다.
아름다운 계절이었다. - P22

한순간 모든 것이 조각상처럼 고정된다. 움직이는 건 바람에 부드럽게 나부끼는 황금색 털뿐이다. 그런데 대체 무엇을 보는걸까? 짐승들은 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허공을 응시하고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뿔피리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뿔피리의 마지막 울림이 허공으로 빨려들어가 사라지면, 그들은 앞발을 가지런히 모아 몸을 일으키고, 혹은 기지개를 켜서 자세를 가다듬고는 일제히 걷기 시작한다. - P23

도시를 둘러싼 벽에는 문이 하나뿐이다. 그 문을 여닫는 일이 문지기의 소임이다. 두꺼운 철판이 가로세로로 박힌, 육중하고 튼튼해 보이는 문이다. - P24

문지기는 매우 억세고 우람한, 그러나 자기 일에는 지극히충실한 사내다. 정수리가 뾰족한 머리를 말끔히 깎았고 얼굴도 매끈하다. 매일 아침 커다란 냄비에 물을 끓여서 크고 날카로운 면도칼로 공들여 머리카락과 수염을 깎는다. - P24

문 양쪽 벽에는 여섯 개의 망루가 있다. 오래된 나선형 나무계단이 있어 누구든 올라갈 수 있다. 망루에서는 짐승들의 서식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보통 때는 아무도 그런 곳에 오르지 않는다. 도시 주민들은 짐승들의 생활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듯하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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