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동조자들은 악마였기에 최소한의 죄의식조차 느끼지 않았던 걸까요? 그들의 죄의식을 마비시키는 다른 기제가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조심스럽게 편견이라는 키워드를 꺼내봅니다. - P231

자신이 편견 덩어리라고 자인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어찌 보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편견이 없다고 자신하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 P231

이 질문부터 시작하는 이유는 고든 올포트의 《편견》을 어떤관점으로 읽을지 결정하기 위해서입니다. 두 가지 방법이 가능한데요, 우선, 우리는 이 책을 편견의 포로가 된, 어떤 문제 있는집단을 비판하기 위해 읽을 수 있습니다. 이 독해 방법은 나는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운데, 내가 비판하는 대상은 편견에 휩싸여 있고 그래서 저들의 편견을 비판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를 올포트의 《편견》에서 찾을 수 있다는 전제로부터 출발합니다. - P232

《편견》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주제가 연관되어 있는 책을 동시에 교차적으로 읽어, 책 사이의 상호연관성을 통해 각각의 책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병렬독서‘를 시도하려 합니다. - P232

 첫번째 책은 <어느 독일인의 삶>니다.  - P232

두 번째로 병렬독서할 책인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도 미국의 언론인 밀턴 마이어 Milton Mayer가 나치 협력자를 인터뷰한 책입니다. 그는 서문에서 "나치즘이 단순히 무기력한 수백만 명 위에 군림하는 악마적인 소수의 독재가 아니라 "대중운동이라는 사실을 난생처음 깨달았다"(《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10쪽)라고 고백합니다. - P233

사회과학 책의 목차는 그저 찾아보기용이 아닙니다. 목차 자체가 메시지이자 작가가 독자에게 알려주는 독서 팁입니다. - P233

우리는 윌리엄스의 《기나긴 혁명》을 읽으면서 ‘함께 생각하기‘에 대해 이야기했는데요, ‘함께 생각하기‘의 실마리도 목차에 있습니다. - P234

그런데 처음 읽는 작가의 책인 경우, 아직 서로 잘 알지 못하는 사람과 대화할 때 봉착하는 어려움에 처하기도 하죠. 아주두꺼운 책이라면, 게다가 작가가 낯설다면 제일 먼저 할 일은 작가의 스타일을 익히는 것입니다. - P234

<편견》처럼 두꺼운 책을 완독하려면 최소한 달 정도의 시간은 걸릴 테니, 그동안 올포트와 ‘함께 생각하기‘를 해야 합니다.
그러니 마음이 급할 필요는 없습니다. 처음엔 책 읽는 속도가 안날 수밖에 없습니다. - P234

<편견>은 한 에피소드로 시작됩니다. "로디지아에서 한 백인트럭 운전수가 쉬고 있는 한 무리의 원주민을 지나치면서 중얼거렸다."(《편견》, 35쪽) 이게 첫 문장입니다. - P235

연이어 올포트는 다른 에피소드를 제시합니다. 폴란드인, 우크라이나인, 독일인이 서로에 대해 사용하는 혐오표현을 나열하더니, 중국인은 미국인을 악마로 생각한다는 사례를 제시한 후에 "세계 어느 지역도 집단 경멸의 태도에서 자유롭지 않다. 각자의 문화에 얽매여 있는 한 우리는 모두가 편견 덩어리에 불과하다"(《편견》, 37쪽)라는 이 책의 핵심 메시지를 전합니다. - P235

 올포트가 편견을 정의 내리는 방식에서는 잠바티스타 비코의 《새로운 학문》을 통해 익힌 어원학이 생각납니다. 올포트가 비코를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비코가 발전시키려고 했던 어원학적인 방법론의 계승자입니다. - P236

 첫번째는 선례, 즉 이전의 결정과 경험에 근거해서 내리는 판단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두번째로는 사실에 대한 합당한검토나 숙고가 이루어지기 이전에 형성된 판단이라는 의미가 더해집니다. - P236

누구에게나 정체성은 복합적입니다. 다중 정체성이죠. 저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저는 남자이고요, 중년이고 서울에 살고 대학 교수이고 서점을 하는 자영업자입니다. 몇 가지만 나열했지만 저를 구성하는 요소는 ‘그리고‘라는 접속사를 통해 무한대로 언급될 수 있습니다. - P236

 편건은 대상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측면 중 한 가지만을 본다는뜻입니다. 편견을 이렇게 정의내리면 누가 자신은 편견 없는 사람이라고 자신할 수 있겠습니까. -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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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관점이 있다는 것에는 도움이 되지만 실제적으로 결론을 내리는데는 도움이 되지 않은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헬스클럽 체인 사업을 시작한 사업가 중 한사람인 빅 태니는 "전성기의 그리멕은 거의 우상이었습니다. 근육은 더 커질 수도 있고 줄어들수도 있지만, 그리 같은 사람은 다시 없었습니다." 태니는 존 그리멕을 열렬히 숭배했다. - P318

그리멕의 유명한사진 중에 아주 짧은 트렁크를 입고 기둥에 비스듬히 기대서서 왼팔을 불끈 치켜들고 오른쪽 다리를 슬쩍 구부린 포즈로 찍은 사진이 있는데, 그 사진을 보면 마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처럼 보인다. 호프먼은 이 사진을 《스트렝스 앤드 헬스》 1945년 9월호 표지에 실었다. - P318

 1950년대 영양 보조제 시장은 거의 호프먼이 독식을 하고있었다. 그동안 그는 비타민 미네랄 식품 보조제, 하이 프로틴 퍼지, 하이 프로틴 바, 프로타민정 등을 팔아 수백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이모든 제품들이 근육의 성장을 도와주는 보조제라고 호프먼은 설명했다. 하이 프로틴과 슈퍼 하이 프로틴 영양 보조제는 분말 제품과 알약제품이 있었는데, 엄청난 판매고를 기록했다. 《스트렝스 앤드 헬스는 그 영양보조제의 효과를 실증하는 사례로 호프먼의 보디빌더들 사진이 실렸다. - P318

호프먼은 이 다이어트 및 영양보조제들이 노화까지 예방해 준다고주장했다. 『고단백 조리법 (High Prolvin Recipe Book)』이라는 책에서 그는
‘단백질 부족은 노화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 P319

캘리포니아 의과대학의 필립 라시 교수는 근력 훈련 연구에서 단백질 보조제는 플라시보 효과 이상의 효과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호프먼은 라시의 연구 방법에 문제가 있어서 그러한 결과가 나왔을 뿐, 자신의 운동선수들은 확실한 효과를 보았다고 반격했다. - P319

라시는 그토록 자신이있다면 더 규모가 큰 연구를 수행할 수 있도록 8,000달러의 연구 자금을 대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페어의 말에 따르면 라시의 연구 결과가자신에게 유리하게 나올지 확신할 수 없었던 호프먼이 라시의 요구를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 P319

그러다가 1982년 드디어 그에게 큰 곤경이 닥쳤다. 식품의약국은 호프먼에게 그가 생산하는 영양보조제 포장에서 보디빌더들의 사진을 삭제할 것을 명령했기 때문이었다.  - P319

그러나 호프먼에게도 의회 쪽 연줄이 있었다. 그의 연줄 중 하나였던 미주리 주 상원의원 에드워드 롱은 "식품 의약국의 주장은 퀘이커 오트밀 포장 상자에서 퀘이커 교도들의 사진을 삭제해야 한다는 주장과 똑같다. 식품의약국은 왜 본연의 업무에 매진하지 않고 엉뚱한 주장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식품의약국의 명령을 비난했다. - P320

산타모니카의 아름다운 해변을 무대로 젊은 남녀가 모여 역기 운동이나 곡예에 가까운 기계 체조, 즉 물구나무서기, 텀블링 등의축제를 벌였던 것이다. 이들이 모이는 산타모니카 해변은 ‘머슬 비치‘
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러한 움직임이 절정을 이루던 1950년대에는 정기적으로 수천 명의 관중을 끌어 모으며 보디빌딩 연기를 보여 주는 몇명의 젊은 보디빌더들이 있었다. - P320

머슬 비치의 인기 비결은 그것이 완전히 자발적인 움직임이었다는데 있었다.
(중략)
그곳에 모인 젊은이들은 각자 바벨이나 링을 가지고 오고, 또 스스로 가설 무대를 지어서 역기 운동을 실연하고 솜씨를 뽐냈다. 산타모니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할리우드도 머슬 비치의 축제를 더욱 뜨겁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였다. 엑스트라가 필요한 영화제작자는 머슬 비치로 직접 나와서 젊은 운동선수들을 데려갔다.  - P320

아무리 캘리포니아라고는 하지만 머슬 비치는 매우 특이한 현상이었고, 캘리포니아의 해변 문화가 창조되는 데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 P321

그리고 체육관은 곧 보디빌딩을 하는 장소라는 인식이 생겼다. 골드 짐을 설립했다가 매각하고 월드 짐을 설립한 조 골드 역시 머슬 비치의 단골손님이었다. - P321

머슬 비치의 단골손님 중의 또 한 사람, 퍼지 스톡턴은 태양처럼 빛나는 금발 머리 아가씨로 캘리포니아 여성의 상징이었다. - P321

그러나 역도가 궁극적으로는 더 날씬하고 탄탄한 몸매를 만들어 줄 것이라는 레스의 줄기찬 설득에 역도를 시작했고, 결국 레스의 말처럼 머슬 비치가 이상적으로 표방하는 미인의표본이 되었다. - P322

그러나 머슬 비치의 인기는 1959년에 된서리를 맞았다. 한 보디빌더가 어린 소녀에게 성폭력을 가하는 등, 분위기가 점점 퇴폐해져 갔기때문이었다. 요즘에는 머슬 비치로 알려졌던 장소에 "20세기 피트니스붐의 진원지"라는 팻말 하나만 꽂혀 있다. - P323

역기 운동과 관련된 사업에 있어서는 와이더는 물론이고 누구도 감히 호프먼과 대적할 수 없었다. 그러나 와이더는 또 하나의 틈새시장을 발견하고 그 시장을 석권했다. 그가 눈독을 들인 틈새는 보디빌딩, 즉 근육을 기능적으로만 발달시키는 것이아니라 아름답게 발달시키는 운동이었다. - P323

 와이더는 머슬 비치 출신의 보디빌더를 비롯한 다양한 보디빌더들의 스폰서가 되어 주면서 각종 보디빌딩 대회를 후원하거나주최하는 주요 인사가 되었다. - P323

"나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기록 갱신을 원하는 사람과, 자신의 몸을더 멋진 몸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 중에 어느쪽이 더 숫자가 많겠는가? 역도 대회에서 남보다 더 무거운 역기를 들어 올리고 싶어 하는 사람이 한 명 있다면, 자기 몸을 아름답게 가꾸고 싶어 하는 사람은 100명 있을 것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와이더가 말했습니다. - P323

와이더는 과학적인 신뢰를 더욱 공고히 다지기 위해, 유니온 시티에있는 자기 회사 본사 안에 ‘와이더 리서치 클리닉‘ 이라는 새로운 병원을 설립했다. 그러나 와이더의 과학 자문위원 중 한 사람이었고 맥길대학교 교수였던 E. M. 올릭조차도 그런 병원을 실제로 본 적이 없다고솔직히 털어놓았다. - P324

호프먼이 조직한 역도 선수들의 연합인 아마추어 체육 선수 연맹에 대항할 만한 보디빌딩 연합을 결성하자는 생각을 처음 해낸 것도 올릭이었다. - P324

보디빌더들을 후원하고, 잡지에 그들의 사진을 실었다. 와이더가 내는 잡지는 수가 점점 늘어 나중에는 잠시 왕국을 이룰 정도였다. 《머슬 앤드 피트니스》, 《머슬 앤드 피트니스 허스》, 《플렉스》, 《멘스 피트니스》, 《셰이프》, 《피트 프레그넌시》, 《내추럴 헬스》가 모두 와이더가 발행하는 잡지였다. - P325

아마추어 체육 선수 연맹에서는 보디빌딩 대회에서 근육을 자랑하는 것 외에도 운동 능력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는규칙을 세웠다. "보디빌딩 대회에 참가하려면 고교 시절 축구선수로활동했다는 증명서나 그 당시 입었던 유니폼 같은 것을 제시해야 한다는 말이었죠." 토드가 말했다. - P325

호프먼은 자신이 발행하는 잡지들을 통해, 오로지 아름다운 몸매를갖기 위해 근육을 다진다는 남성들에 대해 한껏 조롱하는 투로 글을썼다. - P325

와이더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두사람의 다툼이 법정으로까지 비화된 1958년까지는 와이더도 자기 잡지를 통해 호프먼을 맹렬히 비난했다. - P326

 결국 1965년까지 끈 두 사람의 법정 공방은 호프먼의 승리로 끝났다. 법원은 와이더에게 1달러의 손해 배상금을 호프먼에게 지불하라는 판결을 내렸던 것이다. - P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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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간히 이 책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많이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난투켓 헬스클럽의 자갈깔린 주차장에 지프와 SUV 차량들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운동할 시간이었다. 여자 다섯 명과 남자 세 명이 회원 등록 창구 바로 뒤편에 있는스피닝 룸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아래층에 있는 소규모의 역기 운동실은 바벨이며 덤벨을 들고 땀을 흘리는 열두어 명의 남자 회원들만있었다. - P305

개인적인 체력 단련 수준의 운동이 어떤 것이냐를 보여 주는 그림이있다면, 그곳의 풍경이 바로 그런 그림이었다.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중년 남녀가 매사추세츠주의 한 휴양지에 있는 헬스클럽에서 역기 운동으로 몸매를 가꾸거나 근육을 다지며 하루를 마감하는풍경. - P305

여학생들은 몸놀림이 빠르고 노련했다. 그리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매력적이었다. 어느 순간 그 소녀들이 왜 그토록 아름답게 보이는지 깨달았다. 그 아이들은 그냥 몸이 날씬하고 탄력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소녀들이지만 그들에게는 근육이 있었다. 물론 일반적으로 ‘근육‘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그런 이미지의 근육은 아니었다. 울퉁불퉁 불거져나온 근육도 아니고 그럴싸하게 다듬어진 근육도 아니었다. - P306

나는 그 모든 아름다움이 역기 운동으로 얻어진 결과라고 결론지었다. 역기 운동이 아이들에게 근력과 섬세한 아름다움을 주었던 것이다. - P307

 우선 래리에게 나에게도 역기 운동을 가르쳐 줄 수 있는지 물었다. 내게 적당한 역기 운동 프로그램도 짜 달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나도 운동 벌레들의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다.
역기 운동의 기초를 배우자 체육관의 비밀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정말로 몸매를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운동은 대부분의 여성들이 생각하는 몸매 가꾸기 운동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은 물론이고, 많은 남성들이 이따금씩 역기를 들었다 놓았다 하며 제법 운동하는 척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도 깨달았다. - P307

래리와 내가 첫 수업을 위해 체육관에 도착했을 때, 래리는 거의 남자들만 모여 있는 역기 운동실로 나를 데리고 갔다. 점잖아 보이는 운동기구들은 하나도 없고 좁다란 벤치와 철제 심봉, 그리고 디스크 모양의 중량 추만 있는 곳이었다. - P307

그리고 내가 래리와 함께 처음으로 역기 운동을 시작하던 때만 해도 역기 운동전용 구역 안의 운동기구에는 노란 딱지가 붙어 있고, 그 딱지에는 이런 농담조의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경고: 이 기구를 사용하면 근육이 생길 수 있습니다.‘ 벽은 온통 거울로 덮여 있는데 ‘운동기구를 던지지마세요.‘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그곳은 같은 체육관 안에서도 별도의 행동 규칙과 의사소통 법칙이 존재하는 별개의 세상이었다. - P308

그날, 근육의 힘이 달린 나머지 나는 나지막하게 신음 소리를 했다. 내가 "으윽!"
하고 낮게 소리를 지르자 래리는 약간 놀란 표정을 지으며 역기 운동실에서 "으윽!" 하는 소리를 내는 것은 창피한 일이라는 암시를 주었다.
그곳에서는 운동이 고통스러울 땐 아주 크고 요란하게 기합 소리를 내지르는 것이 옳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얼굴 표정 또한 중요했다. - P308

역기 운동실에서는 지켜야 할 에티켓이 있다. 다른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 가지 운동기구를 독차지하다시피 계속 점유하거나 중량 추를 피라미드처럼 쌓으면서 힘 자랑을 하는 것은 실례다. - P309

역기 운동을 할 때 가장 좋은 옷차림은 자기 몸의 윤곽을 잘 볼 수 있는 옷차림이다. 노출이 심하다고 보일 수도 있겠지만 팔 전체와 다리도 대부분 드러내서 자신의 근육이 수축되는 모습을 잘 볼 수 있는 옷이좋다. - P309

역기 운동실에서 운동을 하다 보니 마치 이상한 단체에 가입한 기분이었다. 래리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신음 소리도 아니고 비명소리도 아닌 이상한 소리 (기합 소리)를 지를 수 없었다.  - P309

나는 주로 웨이트 리프팅 머신으로 하는 운동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덤벨이나 바벨 운동에는 시간을 덜썼다. 덤벨이나 바벨 운동은 정말로 세심한 주의를 요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소 거칠게 보이는 반면, 웨이트 리프팅 머신은 덜 부담스러우면서도 그다지 거칠게 보이지 않는다는 이점이 있었다. - P310

 스쿼트(squat)를 처음 시도할 때도 너무나 힘들었다. 스쿼트는 바벨을 어깨에 걸치고 균형을 잡으면서 허벅지가 바닥과 평행을 이룰 때까지 무릎을 구부리는 자세였다. 나는 몇 년동안이나 스미스 머신이라는 기계에 의존했다. - P310

역기 운동에는 빠른 속도로 달린다던가 수영을 한다던가 하는것과는 다른 즐거움이 있다고 리처드 프리드먼은 말한다. "여기 운동은 새로운 기분을 느끼게 해 줍니다. 내 몸이 내 것이라는 느낌, 완벽하게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자신감, 피부가 팽팽하게 당겨지는 그런 느낌이죠." - P311

역도 선수 출신으로 대학에서 역도의 역사에 대해 연구하는 존 D.
페어는 자신이 역도를 사랑하는 이유에 대해, 강한 힘을 갖는 게 좋아서라고 말했다. 페어는 십대 청소년 시절 호리호리하고 나약한 소년이었지만 지금은 우람한 근육질의 남성이 되었다.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40년 동안 역기 운동을 했고, 역도 대회나 보디빌딩 대회에 60회 이상 출전한 경력이 있다. - P312

체력 단련 운동의 대가인 잭 라랜은 여든여섯의 나이인 요즘도 매일한 시간씩 역기 운동으로 체력을 다진다고 했다. "제 근육이 지쳐서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못할 때까지 운동을 합니다." 그 말은 매일 운동을 할 때마다 매우 무거운 역기를 여러 번 반복해 들어서 나중에는 더 이상들수 없을 때까지 계속한다는 뜻이다. - P312

역도선수이며 텍사스대학교에서 여성 근력 훈련의 역사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얀 토드는 강한 근력을 자랑스러워하고 근력을 키우는 운동을 좋아하는 여성들도 많다고 이야기한다. - P313

요즘에야 보겔처럼 역기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어디서나 볼 수 있고 역기 운동이 특이한 운동도 아니지만, 그런 근력 훈련은 사실 아주 오랫동안 조용히 진행된 변화의 결과였다. 알고보면 역기 운동이 비정상적이고 무식한 운동으로 인식되던 때가 그리 오래전이 아니었다. - P314

페어의말을 들어 보자.

그 당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기 운동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고약한 땀 냄새로 가득 차고 지저분한 체육관이나 어둠침침한 차고, 아니면 눅눅한 지하실에서 노동자 계층의 빈민자들이나 이민자들이 하는 운동이라고 생각했죠. - P315

호프먼은 강한 남성미를 내세운 끈질긴 홍보 전략과 영업 수완을 내세워 수십 년 동안 미국의 역기 운동 시장을 장악했다. 펜실베이니아의요크는 ‘머슬 타운 USA‘ 라는 별명으로 불렸고, 호프먼이 설립한 뉴욕바벨 컴퍼니는 미국 역도 선수들이나 역기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운동기구를 독점 공급하다시피했다. - P315

이런 책과 잡지를 통해 호프먼은 역기 운동을 대중화하고 자신이 제조한 비타민, 미네랄, 단백질 보조 식품을 역도선수나 보디빌더는 물론 피트니스와 건강에 신경을 쓰는 사람에게도효과가 있다고 홍보하면서 판매를 촉진했다. - P315

호프먼은 오일 버너를 제조하는 자신의 공장을 미끼로 미국 전역의 정상급 역도 선수들을 요크라는 작은 공장 도시로 끌어들였다. 당시는대공황으로 모든 사람들이 극심한 궁핍을 겪을 때였다. 역도 선수들이라고 예외일 수 없었다. 호프먼은 챔피언급 역도 선수들에게 주당 10달러의 임금을 제시하며 자기 공장에 일자리를 주었다. - P316

호프먼이 구성한 역도팀은 요크 갱(York Gang)‘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올림픽 메달은 물론 각종 보디빌딩 대회를 완전히 점령하기 시작했다. 호프민은 거기서 커다린 이익을 거두었다. 그의 이데올로기에설득되어 ‘메카를 보고자 하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장장 40년 동안 요크를 거쳐 갔다. - P316

역기 운동은 피가 뜨거운 남성들을 위한 운동이라고 호프먼은 강조했다. 그리고 여성들에게도 바벨 운동을 할 것을 권장했지만, 요크 갱은 완전히 남성들만의 세계였다. 호프먼은 역기 운동이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실제로 기능을 하는 근육을 키워 주는 운동이라고 생각해 보디빌더나 역도선수들의 몸을 사진으로 찍어 책과 잡지에 싣는 데 열심이었다. - P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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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흐규흐규.
책은 호구호구?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승복을 입고 돌아다니다보면, 가끔씩 흑인 꼬마 아이들이 내 앞에서 갑자기 이소룡 흉내를 내곤 한다. 처음에는 저꼬마들이 왜 그러지 생각했는데, 얼마 안 가 그 아이들 입장에선 승복을 입은 사람이면 ‘무술 하는 사람‘이겠구나 싶어 웃음이 나곤 했다. - P142

미국 아이들과 어른들의 반응은 서로 다른 것 같지만, 또 서로 통하는 부분이 있다. ‘승려‘라고 한다면 그들은 내가 쿵푸, 혹은 명상을 하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즉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 P143

그리고 내가 한국에 올 때면 다른 물음들이 나를 기다리곤 했다. 한국에서 나를 보고 사람들이 묻는 첫 번째 질문은 대부분 같다.
"스님은 지금 어느 절에 계십니까?"
"어느 절에서 오셨습니까?" - P143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들 역시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는 통성명을 한 이후에 서로 이렇게 묻곤 한다.
"지금 어느 교회 다니세요?"
"절에 다니세요? 어느 절 소속이세요?" - P143

그래서 나는 안타깝다. 나는 ‘그 사람이 지금 무엇을 할 줄 알고, 또무엇을 하려고 하는가?‘에 초점을 맞추는 사회를 꿈꾸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배경과 그 사람이 소속된 그룹에서 그 사람의 정체성을 찾다 보면,
그 사람의 ‘과거‘만을 보고 ‘현재‘를 보지 못하는 과오를 범하게 된다. - P145

끊임없이 배우고 스스로를 경책하는 사람.
꼬마 아이들의 질문에 또 하나 배웠으니, 나는 지금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인지, 제대로 한 걸음 내디뎠다 위안한다. - P146

사람들과의 소통을 위해 트위터를 시작한 후, 많은 젊은 친구들이 내게 질문을 보낸다. 잘 풀리지 않는 연애 문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생긴 문제, 가족의 불화,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미련, 취업 문제 등.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자주 하는 질문은, 화가 나거나 짜증, 서운함, 미움등의 불편한 감정들이 밀려올 때 어떻게 하면 마음이 동요하지 않고 평정을 유지하며 다스릴 수 있느냐는 것이다. - P201

사실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그분들이 이렇게 질문한다는 것 자체가 알고 보면 절반의 성공을 이룬 셈이라는 것이다 - P201

그런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그런 감정이 올라왔을 때, 그 마음을 내가 다스려야 하는 대상으로만 생각한다는 것에 있다. 그 마음을 이해가 필요한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P202

그런데 밀려오는 화, 짜증, 불안, 미움의 감정을 바꾸려고 노력해 본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이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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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최근의 집계에 따르면 미국 전역에는 아프리카 혈통을 지닌 미국인들의 역사를 수집하고 보존하는 박물관이100여 곳 존재한다. 그중 가장 규모가 크고 포괄적인 박물관은 워싱턴 DC 내셔널몰 공원에 있는 국립 아프리카계 미국인 역사 및 문화박물관이다.

포로로 잡힌 모든 아프리카인의 40% 이상이 이곳을통해 미국으로 들어와 노예 경매에 부쳐졌다. 그 후 그들은 미국 전역의 농장에 노예로 팔려 갔다.

개즈던 부두를 박물관 부지로 선정하고 IAAM 설립에 1억 달러 가까이 투자한 것은 찰스턴에 일고 있는 더 큰 변화의일환이기도 하다. 2015년에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의회의사당에서 남부연합기가 철거됐고 2018년에는 시의회가 찰스턴이 노예제에 크게 일조한 사실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이 농장은 이곳에서 노예로 일했으나 인간으로서 본성을 잃지 않은 이들의 삶과 세월을 기리기 위한 장소입니다. 그들을 기리고 조명하며 그들을 통해 배워야 할 때입니다." 맥러드 농장을 운영하는 찰스턴 카운티 공원 및오락 시설 관리국에서 문화사 해석 조정자로 일하는 토비 스미스는 말한다.

IAAM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역사와 대서양 노예 무역이 전 세계에 남긴 유산을 폭넓게 탐구하는 한편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사는 아프리카계 주민들의 사연을 알리는 역할도 한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역사는 머나먼 대륙의 해안에서 시작됐지만 그중 한 편의 이야기는 이곳 찰스턴에 도착한 순간, 해안선을 따라 그리고 바다에서 시작된다.

어쩌면 궁극적으로 IAAM의 가장 놀라우면서도 심오한 측면은 역사적인 부두 가장자리에 자리함으로써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다시 바다로, 거친 대서양으로, 고향으로, 죽음으로, 생계가 엮인 곳으로 그리고 이제는 스스로를 치유하는 곳으로 돌아오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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