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읽었던 만화는 무엇이었을까? 기억해내고 싶지만 너무 어렸을 때 일이다. 이건가 싶은 작품은 몇 개 있지만 그중어느 것이었다고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폭 빠져 있었던 포근한 기억은 간직하고 있다. - P175

내가 만화를 접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이모네 집이었다. - P175

어머니와 그리 닮지 않은 이모는 내가 찾아가면 언제나 웃으며 "우리 만화광 마야가 오늘도 왔네" 하고 머리를 쓰다듬어준 다음에는 내가 무엇을 읽든 상관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야한 장면이 많은 만화는 책장 위쪽, 초등학생인 내 손이 닿지않는 곳에 옮겨놓았던 것 같지만. - P176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튀어나온 말인지는 모른다. 차를 운전할 때도, 무전기를 쓸 때도 면허가 필요한데 책을 쓸 때는면허가 필요없다니 신기하다는 실없는 이야기였을지도 모른다. - P177

《월간 코믹 라. 신》은 처음에 《월간 코믹 신소》의 별책으로 시작했다. ‘신‘을 돌림자로 써서 같은 계보라고 주장하는 모양이지만 내용은 상당히 다르다. - P177

. 만화 잡지를 모조리 사들일 용돈도, 그걸 보관할 방도 없지만 《라. 신》만큼은 매달 꼬박꼬박 발매일인 18일에 산다. - P178

2월 18일은 혹독하게 추운 일요일이었다. 질리지도 않고계속 내리는 눈이 온 동네를 뒤덮은 가운데 나는 목도리와 귀마개, 고무장화 등등으로 최대한 방수 방한 조치를 하고 국도변에 있는 고분도 서점으로 갔다. - P178

결과부터 말하면, 내 노력은 전부 헛수고였다. 《라·신》은아직 들어오지 않았다. 점원에게 물어보니 정식 발매일이 일요일이면 하루이틀 어긋나기도 한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 P179

제14회 신대륙상 수상 작품 역습의 너구리, 마미아나 마모루.
모르는 사람이다. 재미있으면 좋겠다. - P180

노력상은...….… 다사카이치타로, MILULU, 쇼다 가네스케, 조지아 사토, 야지마가오루, 지크하일, 이바라 가즈루,
하루 엔마・・・・・….
"어, 엇!" - P180

이바라 가즈루! 「탑이 있는 섬」!
실려 있다. 내 펜네임이, 내가 그린 만화 제목이, 《코믹 라•신》 3월 호에 실려 있다! - P181

『가미야마 시 독후감 대회 모음집』이었다.
"이건 사 년 전 책인데, 어제 방 청소하다가 나왔어요. 별생각 없이 펼쳐봤는데 예상치 못한 이름을 찾았지 뭐예요." - P183

"메로스라, 왠지 오레키한테 안 어울리는데."
"마야카도 참. 호타로가 자발적으로 우정 소설을 골랐을것 같아? 아마 과제 도서였겠지."
"그럼 나도 기억할 텐데, 메로스가 과제였던 적이 있었나?" - P184

"중학교 1학년 때 여름방학 과제 도서라면 분명 악셀 하케의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임금님』이었을 텐데요."
듣고 보니 그랬던 것 같다. - P184

"그런데 마야카, 이 독후감이 제법 걸작이란 말이야. 호타로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호타로구나 싶어서 감회가 새로워." - P185

"이미 공개된 거니까."
그냥 보여주기 싫다고 하지 않고 보여주기는 싫지만 공개된 글인 이상 읽지 말라는 말은 하지 못하겠다는 뜻이 깃들어있는 게 참으로 오레키답다. 허락을 받은 나는 지이의 손에서 책자를 받아들었다. - P185

"특히 대단한 건 이 독후감이 가부라야 중학교 대표로 가미야마 시 독후감 대회에 나갔고, 제일 낮다고는 해도 상까지받았다는 사실이야. 솔직히 독후감은 책을 읽은 감상을 쓰는숙제가 아니라 어떤 감상을 쓰면 선생님이 통과시켜줄지 고민하는 숙제라고 생각했는데, 한 수 배웠어. 이럴 수도 있는거구나." - P189

"작가의 마음을 고민할 필요는 없습니다"라는 주장이었다.
선생님은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어차피 별생각 없을 겁니다. ‘빨리 술 마시고 자고 싶다‘
라고 생각하면서 쓴 문장이라도 그 문장이 무엇을 뜻하는지정확하게 짚어내 고민하는 게 국어입니다. 가령 마쓰오 바쇼는 ‘해와 달은 백년 과객이요, 오가는 세월 또한 나그네‘라고했습니다. 이 문장을 진지하게 마주한 결과, 풀어낼 수 있는뜻은 바쇼에게 세월은 지나가는 게 아니라 오가는 것, 즉오기도 하고 가기도 하는 것이라는 인식으로, 이는 곧 바쇼가 시간 여행자라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럴 리 없다고생각한다면 직접 조사해보도록, 재미있어요." - P190

"아아, 그거."
부루퉁하던 오레키가 피식 쓴웃음을 흘렸다.
"다섯 장 이상 쓰는 숙제인 줄 알고 딱 다섯 장 썼던 거야.
그런데 실제로는 다섯 장 이하였어. 얼마든지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었는데 괜한 수고를 한 게 억울해서 어디 좀 빼버릴까 했다." - P191

가미야마 고등학교 만화 연구회는 작년 축제 이후로 변해버렸다.
서툴러도 좋으니 직접 그려보고 싶은 그룹과, 직접 그리고싶은 욕구는 없이 만화를 읽으며 즐기고 싶은 그룹이 축제를둘러싼 여러 소동을 계기로 적대시하기 시작했다. - P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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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렇게 합리적인 척 제시하는 주제들의 표면 바로 밑에는정신질환자는 말할 것도 없고 과학과 과학자들, 나아가 지성주의 전반을 향한 훨씬 더 오래되고 만연한 회의론의 원천이 자리잡고 있다는강력한 증거가 있다. 그 원천은 바로 공포와 증오를 일으키는 유령 같은 인물인 타자 the Other 다. 이 인물은 나중에 다시 등장할 것이다. - P216

제1차 세계대전 후 독일에서 제작된 1920년작 무성영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Das Cabinet des Dr. Caligari에서 사악한 칼리가리 박사는 최면을 걸듯 국민을 홀리는 한편 전쟁 도발에 혈안이 된 정부를 상징하던 인물이었다. - P217

1927년에는 과학에 의해 조작된 악마적 미래에 대한 자유주의자 독일인들의 공포가 놀랍도록 현란한 세트와 상징적 이미지들과 함께 다시 등장했다. 바로 암울한 예언적 알레고리들이 가득한 프리츠 랑Fritz Lang의 환상적인 영화 <메트로폴리스 Metropolis>로 이 영화는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가 대표하는 현대적 디스토피아를 묘사하는 SF 영화들의 효시라 할만하다. - P218

 <메트로폴리스>는 파괴적인 로봇을 만들고자 하는 로트방이라는 과학자와 그를 따르는 냉소적인 엘리트들, 그리고 그들에게 꼼짝없이 짓눌리는 가난하고 예속된 노동자 무리를 보여주면서 기독교의 이상이 후퇴하고 있음을 암시적으로 드러낸다. 결국 로트방이 만들어낸 로봇은 모든 통제를 벗어나 도시를 파괴한다. - P218

인류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과학기술의 파괴력이 만들어낸 지옥도를 경험한 뒤로, 영화의 한 테마로서 미친 과학자와 미친 과학은 한 쌍으로 묶여 다니기 시작했다. 집단광기의 세계가 낳은 묵시록적의도가 담긴 힘, 그것이 곧 미친 과학이었다. - P218

요컨대 케빈과 딘의 예술적재능이 그들을 조현병으로 이어지는 통로에 데려다놓은 것일까? 또는 그 반대로, 조현병에 대한 취약성이 그들에게 예술적 재능을 부여한 것일까? - P219

많은 나라에서 전형적인 답은 긍정 쪽으로 기운다.
(중략)
미친 예술가는 미친 과학자, 미친교수, 젠체하는 지식인과 함께 전기연예, 심지어 정치적 조롱의 단골 소재다. 물론 감탄의 대상이기도 하다. - P219

광기와 창조성의 연관에 대해서는 현대 신경과학의 견해도 시대를 초월한 통념과 대체로 일치한다. 결정적인 연관의 증거를 제시한다기보다는 여러 단서를 덧붙여 잠정적으로 잠정적인 긍정이라고할 수도 있겠다 말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 P220

 브뤼노는 이렇게 썼다. "습관, 모방, 언어 습득은 창조성과 반대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 그것들은현재 지니고 있는 역량을 넘어서고자 하는 충동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아이에게 중요한 문제는 한쪽의 반복과 상투성과 표준, 그리고 반대쪽의 독특함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다." - P221

우리를 창조성과 정신이상의 문턱 앞으로 이끄는 문장이다.
정신질환의 미로에 갇혀 있는 비밀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이 의문에 관해서도 아직 확정된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반세기 이상 연구되어온 이 질문은 신경과학자들에게 가장 난해한 수수께끼 중 하나로,
옥스퍼드 대학교 이상심리학과 명예교수이자 예리한 학자인 고든 클래리지(Gordon Claridge의 오랜 연구 주제이기도 하다. - P221

그렇다면 스키조타이피-schizotypy-의 어떤 면이 창조성과 연결되며, 거기서다시 정신질환으로 연결되는 것일까? - P222

탁월한 학자 클래리지가 강력한 실험 증거와 임상 증거를 대며 주장하는 대로 정말 모든 사람의 뇌에 스키조타이피가 존재한다면, 여기에는 관점을 바꿔놓을 어마어마한 함의가 담겨 있다. - P222

 스키조타이피는 모든 사람이 조현병의 잠재성을 갖고 태어난다는 사실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 잠재성은 처한 환경에 따라 정신질환으로 현실화될 수 있고, 창조성을 매우 높이는 결과를 낳을 수도있으며, 심지어 영적 무아경을 불러올 수도 있다. - P222

한편 조현병이 단순히 창조적인 사람에게 닥치는 비극적인 위험요소인 것만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연구자들도 있다. 그들은 유전자풀에 계속 남아 있다는 점이 핵심이라고 말한다. 조현병이 계속 존재하는 것은 "창조성과 유전적으로 함께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P223

현대 초기에 칼 융은 광기와 창조성이 서로 얽혀 있을지도 모를어두운 황야를 대담하고도 심도 깊게 탐구했다. 융은 한때 자신의 스승이었고 나중에는 적대적인 사이가 된 프로이트가 세워둔 제한적인경계선 너머에 있는 생각과 이미지에 평생 매료되었다.  - P223

융이 탐구한 대상은 동양의 여러 종교와 그 종교들이 사용하는 화려하고 때로는 두려움을 자아내는 이미지들, 인간 경험이 보편적으로 공유하며 기이한 토템으로 표현되는 ‘무의식‘, 악마, 신, 요정, 어머니, 아이, 그림자 등이었다. - P224

앞서 언급한 과학자에 대한 자극적인 판타지와 실제 과학자의 기질과 목표를 비교해볼 기회를 가졌던 사람은 비교적 소수다. - P225

20세기에 자살한 유명한 예술가들의 명단은 예술가를 정신이상자이자 비극적 인물로 보는 감상적인 관점을 더욱 강화했다. 버지니아 울프는 1941년 주머니에 돌을 가득 채우고 우즈강으로 걸어 들어갔고,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1961년 아끼던 엽충을 자신에게 겨눴고그의 아내 메리는 그것이 사고라고 주장했다), 시인 실비아 플라스는 몇차례의 자살 기도에 실패한 뒤 1963년 마침내 가스를 써서 성공했으며, 화가 마크로스코 Mark Rothko는 1970년 손목을 그었고, 시인 존 베리면John Berryman은 1972년 미네소타의 한 다리 위에서 뛰어내렸으며,
그런지 기타리스트 커트코베인 Kurt Cobain 은 1994년 총으로 자신을 쏘았고, 배우 스폴딩 그레이 spalding Gray는 2004년 스태튼섬으로 가는 페리에서 뛰어내렸다. - P226

그렇다면, 신경과학은 높은 지능과 과학적 천재성과 예술적 창조성이 정신질환을 수반한다는 신화를 뒷받침할까? 정신이상은 예외적인 존재가 된 사람이 치러야 하는 대가인 것일까?
슬프지만 그 답은 ‘그렇다‘인 것 같다. - P227

창조성과 정신이상이 뇌에서 동일한 기원을 공유한다고 주장하는 최근의 가장 유명한 연구자들로는 아이오와 대학교의 낸시 쿠버앤드리어슨 Nancy Coover Andreasen과 존스홉킨스 대학교 의학대학원 정신의학과 교수 케이 레드필드 제이미슨Kay Redfield Jamison, 켄터키 대학교 정신의학과 교수 아널드 M. 루드윅 Armold M. Ludwig이 있다. - P227

1974년에 앤드리어슨은 아이오와 대학교 동료인 정신의학자 아서 캔터 Arthur Canter와 함께 논문을 발표했다. 창조적 글을 쓰는 작가들을 대상으로 정신과 질환의 증상을 검사한 결과, 그들이 열다섯 명의
"비창조적 대조군 자원 참가자들과 "유의미한 차이를 보였다"고 밝히는 내용이었다.  - P228

장애와 매우 가까운 병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 정동장애는 ‘기분장애 mood disorder‘의 동의어이며, 경우에 따라 기분장애에는 양극성장애가 포함된 수도 있는데, 앙극성장애는 조현병과 유사한 증상을 공유하고 있어 조현병과 비슷하기는 하지만 보통 정신증psychosis 단계까지는 가지 않는다. - P228

최근에는 이와 유사한 또 다른 설명이 제시되었는데, 앞서 열거한특징이 정신질환의 신호라기보다는 극단적이지만 정상적인 인간 행동의 표현이며, 부분적으로는 창조적 작업의 본질적 성격 때문에 초래된 것이라는 내용이다. - P229

하버드 대학교 정신의학과 교수인 앨버트 로덴버그Albert Rothenberg 는 그 연구를 가리켜 ‘창조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그만큼 포착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예라고 말했다. "문제는 그들이 창조적인 것의 기준으로 내세운 것이 썩 창조적이지 않았다는 점"
이라는 것이다. "예술가 협회에 속하거나 미술이나 문학을 한다는 게 그 사람이 창조적이라는 증거는 아니다.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들이미술이나 문학과 관련한 일을 하고자 시도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그들이 그 분야에 뛰어나서라기보다는 그 분야에 끌리기 때문이다. 이런 점 때문에 데이터가 왜곡됐을 수도 있다." - P230

‘정신이상‘에 관한 고정관념이 사람들의 인식에 끈질기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모종의 불안이 작동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러한 불안이 정신질환에 대한 공포에서만 생겨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사회가 정신질환을 다루는 방식에 엄청나게 억제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여기서 불안을 조장하는 요소 중중요한 한가지는 ‘타자‘라는 우리의 친구들일지도 모른다. - P231

의학과 신경과학, 통계분석의 전문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앞서나 자신이 설명하려 했던 분야를 이야기하기에는 그다지 신뢰할 수없는 화자라는 점을 솔직히 인정할 수밖에 없다. -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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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홍콩의 건국일은 2029년 1월 1일이다. 그로부터 18개월 전, 그러니까 홍콩의 중화인민공화국 편입 30주년이 되던 해에, 기본법 정지에 항의하는 홍콩 시민들의 데모가 무력 진압되고 반대 의견이 탄압받으면서 불법 출국자의 수가 급증했다. - P64

그러나 해외 투자가들의 견해는 달랐다. 대량의 자금이 홍콩으로 유입되었다. 이것은 인도주의와는 무관하며, 당시의 세계 경제 상황의 반영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한국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난 잉어 자산을 흡수해 줄 프로젝트를 찾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산업 인프라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겠지만, 뉴홍콩은 번영을 구가하는 동남아시아의 산업 중심지와 지리적으로 충분히 가까웠기 때문에 이들의 공학적 전문 기술과 남아도는 생산능력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 P65

그 이래 수십 년 동안 베이징에서는 정치적, 경제적 개혁이 주기적으로 일어났고, 그것들은 언제나 체제에 환멸을 느낀 유능한 중산 계급의 유출로 끝을 맺었지만, 해외에서 이들을 받아주는 곳은 단 한 군데밖에는 없었다. 중국이 점점 더 가난해지고, 고립화하는 동안, 뉴홍콩은 점점 더 번영했다. 2056년에 뉴홍콩의 국내총생산은 오스트레일리아의 그것을 초과하고 있었다. - P66

돈이나 데이터가 조세를 피하기 위해 편의상의 국적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은 언제나 부조리하게 느껴지지만, 법률은 그렇게 빨리 바뀌는 것이아니기 때문에, 이곳의 무간섭 방임주의적 laissez-faire 법규에 매력을느낀 수백 개의 다국적 기업이 본사를 뉴홍콩으로 옮겼다. 설령 기업본체가 궤도상의 슈퍼컴퓨터들 사이를 흘러 다니는 비과세 데이터의물결로 무형 법인화되는 날까지의 일시적인 조치에 불과하더라도 말이다. - P67

오존층 파괴를 야기하는 물질의 단계적 사용 금지는 몇십 년 전에 달성되었지만, 성층권은 지금도 오염된 채로 남아 있다. 그리고 매년 봄마다남극 상공에서 확산되는 ‘구멍‘은 여전히 건강에 심각한 위험을 끼치고, 위도와 암 발병률의 상관관계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놓는다. 남반구 온대의 햇볕 쪽이 열대의 그것보다 훨씬 더 위험한 것이다. - P68

바닥에 깔린 빨간색과 황금색융단과 다빈치의 스케치를 묘사한 거대한 벽화가 눈에 띈다. 뉴홍콩에서 싼 숙소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 푼도 없는 배낭여행자들에게는아예 비자를 내주지 않는 것이다.  - P68

호텔 방 자체는 돈을 물쓰듯 쓰고 있다는 내 기분을 조금은 완화해 줄 정도로는 작았고, 창문 밖으로도 <액슨> 본사 건물의 벽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건물 벽면을 우아하게 장식하고 있는 것은 <액슨>에서 발매된 각종 베스트셀러 신경 모드의 상품명들이었다. - P69

 사실, <액슨>은 ‘잠재의식학습 도구, 즉 잠재의식이 ‘직접‘ 받아들인다는 메시지를 기록한 영상이나 음성 테이프의 판매 회사로부터 성장해 온 회사지 않은가? - P69

짐을 풀고, 샤워를 하고, 뒤늦게 모든 뇌내 시계를 1시간 반 앞으로 당겨놓은 다음, 침대 위에 앉아 인구 1,200만의 도시에서 정확히어떤 식으로 로라를 찾아낼 것인지를 결정해 보려고 했다. - P69

닥터 팽글로스는 내가 가장 선호하는 정보 수집가다. 표면상으로는 보호받고 있는 정보를 훔치는 벨라와는 달리, 팽글로스는 합법적으로, 이론상 누구라도 접근할 수 있는(물론 이것은 헛소리다) 정보를단 몇 달러의 요금을 지불하고 키를 몇 번 누르는 것만으로도 찾아준다. 파우더를 뿌린 가발을 쓴 점이 있는 팽글로스의 가면은 나로 하여금 언제나 볼테르라기보다는 몰리에르를 떠올리게 하고, 그의 악센트는 왕립 셰익스피어 극단의 무대에서나 들을 수 있는 것이지만,
조사 기술만은 트집 잡을 곳이 없다. - P71

벨라에게 전화를 걸어서 현재 제약업자들의 목록을 건네고, 최근석달동안의 배송 기록을 입수해 달라고 했다.
"5시간" 그녀가 말한다. "패스워드는 ‘녹턴‘이야." - P71

‘내 생일이 아냐, 바보, 로라의 생일로 점을 보란 말이었어."
나는 그녀를 빤히 쳐다보다가, 어깨를 움츠렸다. 지금 논쟁해 봤자 무의미하다. 내 머릿속에는 아직도 힐게만 병원의 환자 기록이 들어 있었다. 로라의 생일은 2035년 8월 3일이었다. - P75

캐런은 사라져 있었다. 예언을 읽어보니, 결국 일에서 성공하고 연애에서는 수많은 시련을 겪은 끝에) 행복해진다는 얘기였다. 나는 종이를 구겨서 쓰레기통에 던져넣고, 호텔로 되돌아갔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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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항해술의 변천

본래 전함으로 건조됐던 H.M.S. 테러호와 H.M.S. 에러버스호는 보강된선체와 난방 장치, 증기 기관, 격납식 프로펠러 등 당대 최고의 기술을탑재하고 있었다. 예아호와 폴라선호는 더 단순하게 설계되고 홀수도 더얕았지만 더욱 우수한 조종성을 갖췄기 때문에 선원들이 얼음 사이로유달리 좁은 해협을 항해할 수 있었다.

지난 몇 년간 나 역시 프랭클리나이트가 됐다. 나는 입수할 수 있는 모든 관련 서적을 탐독하며 스스로를 그 불운한 대원 중 한 명이라고 상상해보기도하고 여전히 풀리지 않은 수많은 의문들로 골머리를앓기도 했다. 프랭클린은 어디에 묻혔을까? 그의 항해 일지는 어디에 있을까? 이누이트족이 대원들을도우려고 했을까? 몇몇 대원들이 탈출하는 데 거의성공했을 가능성은 없을까? - P16

여정의 절반에 가까운 5600km를 항해한 지금.
프랭클린 수수께끼에 몰두하려던 내 계획은 냉혹한현실을 마주하게 됐다. 얼음에 갇히게 되면 폴라선호를 잃을 수도 있었다. 게다가 우리가 어떻게든 해안에 안전하게 도달한다 하더라도 이곳에서는 구조가 어려울 수 있었다. 물론 초반에 언급한 그 북극곰도 빼놓을 수 없는 위험 요소였다. - P16

하지만 런던에서는 상황을 전혀 다르게 보고 있었다. 쪽지가 발견되기 5년 전인 1854년에 또 다른증언이 대두됐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모피 무역상이자 탐험가인 존 레이가 인눅-푸-제-죽이라는이누이트족 사람으로부터 몇 년 전 35~40명의 ‘코블루나(백인)‘ 무리가 큰 강 어귀 인근에서 아사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 P17

영국의 소설가 찰스 디킨스는 이 같은 여론을 더욱 부추겼다. "대원들과 그들의 위대한 지도자의 고귀한 행동과 모범이 미개한 극소수 부족의 허튼소리보다 존엄하다." 디킨스는 자신이 발간하는잡지 <하우스홀드 워즈>에 이렇게 썼다.  - P17

원거리 무역

이집트 제26왕조 시대의 미라 제작업은 이미 확고히자리를 잡았으나 비용이 많이 드는 산업이었다. 고대 세계에서는 먼 지역에서 재료를 조달하는 데 많은 시간과비용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카라에서 버려진 방부처리용기에서는 나일강 삼각주에 자생하지 않는 나무와 관목에서 나온 잔여물이 많이 발견됐으며 어떤 재료는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가져왔을지도 모른다. 이런재료들은 매우 귀했다. 일례로 무덤 6에서 발견된 다마르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져온 것일 수도 있다. 미라 제작은 고대 이집트인의 삶과 죽음에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르나 나일강 유역을 따라 번성했던 사후 세계 산업은 이집트 국경을 넘어 더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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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점이 기묘하다. 분명 도입부부터 해서 회상이 아니라 지금 시점에서 서술되고 있었는데, 왜 이 부분만 갑자기 회상을 하는 장면이 들어가 전체 문단의 시간 순서가 안 맞게 되는 것인가.

경쾌한 음정의 곡인데 흥겹기보다는 좀 처량하게 들렸다. 들을 때에는 무슨 노래인지 몰랐으나, 훗날 더듬어 생각해보니 그날 상이 부른 노래는 <부기우기>라는 재즈였다. 구보는 당시 미국에서 유행하던 노랫가락을 상이 어떻게 알고 불렀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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