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렇게 합리적인 척 제시하는 주제들의 표면 바로 밑에는정신질환자는 말할 것도 없고 과학과 과학자들, 나아가 지성주의 전반을 향한 훨씬 더 오래되고 만연한 회의론의 원천이 자리잡고 있다는강력한 증거가 있다. 그 원천은 바로 공포와 증오를 일으키는 유령 같은 인물인 타자 the Other 다. 이 인물은 나중에 다시 등장할 것이다. - P216

제1차 세계대전 후 독일에서 제작된 1920년작 무성영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Das Cabinet des Dr. Caligari에서 사악한 칼리가리 박사는 최면을 걸듯 국민을 홀리는 한편 전쟁 도발에 혈안이 된 정부를 상징하던 인물이었다. - P217

1927년에는 과학에 의해 조작된 악마적 미래에 대한 자유주의자 독일인들의 공포가 놀랍도록 현란한 세트와 상징적 이미지들과 함께 다시 등장했다. 바로 암울한 예언적 알레고리들이 가득한 프리츠 랑Fritz Lang의 환상적인 영화 <메트로폴리스 Metropolis>로 이 영화는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가 대표하는 현대적 디스토피아를 묘사하는 SF 영화들의 효시라 할만하다. - P218

 <메트로폴리스>는 파괴적인 로봇을 만들고자 하는 로트방이라는 과학자와 그를 따르는 냉소적인 엘리트들, 그리고 그들에게 꼼짝없이 짓눌리는 가난하고 예속된 노동자 무리를 보여주면서 기독교의 이상이 후퇴하고 있음을 암시적으로 드러낸다. 결국 로트방이 만들어낸 로봇은 모든 통제를 벗어나 도시를 파괴한다. - P218

인류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과학기술의 파괴력이 만들어낸 지옥도를 경험한 뒤로, 영화의 한 테마로서 미친 과학자와 미친 과학은 한 쌍으로 묶여 다니기 시작했다. 집단광기의 세계가 낳은 묵시록적의도가 담긴 힘, 그것이 곧 미친 과학이었다. - P218

요컨대 케빈과 딘의 예술적재능이 그들을 조현병으로 이어지는 통로에 데려다놓은 것일까? 또는 그 반대로, 조현병에 대한 취약성이 그들에게 예술적 재능을 부여한 것일까? - P219

많은 나라에서 전형적인 답은 긍정 쪽으로 기운다.
(중략)
미친 예술가는 미친 과학자, 미친교수, 젠체하는 지식인과 함께 전기연예, 심지어 정치적 조롱의 단골 소재다. 물론 감탄의 대상이기도 하다. - P219

광기와 창조성의 연관에 대해서는 현대 신경과학의 견해도 시대를 초월한 통념과 대체로 일치한다. 결정적인 연관의 증거를 제시한다기보다는 여러 단서를 덧붙여 잠정적으로 잠정적인 긍정이라고할 수도 있겠다 말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 P220

 브뤼노는 이렇게 썼다. "습관, 모방, 언어 습득은 창조성과 반대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 그것들은현재 지니고 있는 역량을 넘어서고자 하는 충동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아이에게 중요한 문제는 한쪽의 반복과 상투성과 표준, 그리고 반대쪽의 독특함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다." - P221

우리를 창조성과 정신이상의 문턱 앞으로 이끄는 문장이다.
정신질환의 미로에 갇혀 있는 비밀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이 의문에 관해서도 아직 확정된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반세기 이상 연구되어온 이 질문은 신경과학자들에게 가장 난해한 수수께끼 중 하나로,
옥스퍼드 대학교 이상심리학과 명예교수이자 예리한 학자인 고든 클래리지(Gordon Claridge의 오랜 연구 주제이기도 하다. - P221

그렇다면 스키조타이피-schizotypy-의 어떤 면이 창조성과 연결되며, 거기서다시 정신질환으로 연결되는 것일까? - P222

탁월한 학자 클래리지가 강력한 실험 증거와 임상 증거를 대며 주장하는 대로 정말 모든 사람의 뇌에 스키조타이피가 존재한다면, 여기에는 관점을 바꿔놓을 어마어마한 함의가 담겨 있다. - P222

 스키조타이피는 모든 사람이 조현병의 잠재성을 갖고 태어난다는 사실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 잠재성은 처한 환경에 따라 정신질환으로 현실화될 수 있고, 창조성을 매우 높이는 결과를 낳을 수도있으며, 심지어 영적 무아경을 불러올 수도 있다. - P222

한편 조현병이 단순히 창조적인 사람에게 닥치는 비극적인 위험요소인 것만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연구자들도 있다. 그들은 유전자풀에 계속 남아 있다는 점이 핵심이라고 말한다. 조현병이 계속 존재하는 것은 "창조성과 유전적으로 함께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P223

현대 초기에 칼 융은 광기와 창조성이 서로 얽혀 있을지도 모를어두운 황야를 대담하고도 심도 깊게 탐구했다. 융은 한때 자신의 스승이었고 나중에는 적대적인 사이가 된 프로이트가 세워둔 제한적인경계선 너머에 있는 생각과 이미지에 평생 매료되었다.  - P223

융이 탐구한 대상은 동양의 여러 종교와 그 종교들이 사용하는 화려하고 때로는 두려움을 자아내는 이미지들, 인간 경험이 보편적으로 공유하며 기이한 토템으로 표현되는 ‘무의식‘, 악마, 신, 요정, 어머니, 아이, 그림자 등이었다. - P224

앞서 언급한 과학자에 대한 자극적인 판타지와 실제 과학자의 기질과 목표를 비교해볼 기회를 가졌던 사람은 비교적 소수다. - P225

20세기에 자살한 유명한 예술가들의 명단은 예술가를 정신이상자이자 비극적 인물로 보는 감상적인 관점을 더욱 강화했다. 버지니아 울프는 1941년 주머니에 돌을 가득 채우고 우즈강으로 걸어 들어갔고,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1961년 아끼던 엽충을 자신에게 겨눴고그의 아내 메리는 그것이 사고라고 주장했다), 시인 실비아 플라스는 몇차례의 자살 기도에 실패한 뒤 1963년 마침내 가스를 써서 성공했으며, 화가 마크로스코 Mark Rothko는 1970년 손목을 그었고, 시인 존 베리면John Berryman은 1972년 미네소타의 한 다리 위에서 뛰어내렸으며,
그런지 기타리스트 커트코베인 Kurt Cobain 은 1994년 총으로 자신을 쏘았고, 배우 스폴딩 그레이 spalding Gray는 2004년 스태튼섬으로 가는 페리에서 뛰어내렸다. - P226

그렇다면, 신경과학은 높은 지능과 과학적 천재성과 예술적 창조성이 정신질환을 수반한다는 신화를 뒷받침할까? 정신이상은 예외적인 존재가 된 사람이 치러야 하는 대가인 것일까?
슬프지만 그 답은 ‘그렇다‘인 것 같다. - P227

창조성과 정신이상이 뇌에서 동일한 기원을 공유한다고 주장하는 최근의 가장 유명한 연구자들로는 아이오와 대학교의 낸시 쿠버앤드리어슨 Nancy Coover Andreasen과 존스홉킨스 대학교 의학대학원 정신의학과 교수 케이 레드필드 제이미슨Kay Redfield Jamison, 켄터키 대학교 정신의학과 교수 아널드 M. 루드윅 Armold M. Ludwig이 있다. - P227

1974년에 앤드리어슨은 아이오와 대학교 동료인 정신의학자 아서 캔터 Arthur Canter와 함께 논문을 발표했다. 창조적 글을 쓰는 작가들을 대상으로 정신과 질환의 증상을 검사한 결과, 그들이 열다섯 명의
"비창조적 대조군 자원 참가자들과 "유의미한 차이를 보였다"고 밝히는 내용이었다.  - P228

장애와 매우 가까운 병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 정동장애는 ‘기분장애 mood disorder‘의 동의어이며, 경우에 따라 기분장애에는 양극성장애가 포함된 수도 있는데, 앙극성장애는 조현병과 유사한 증상을 공유하고 있어 조현병과 비슷하기는 하지만 보통 정신증psychosis 단계까지는 가지 않는다. - P228

최근에는 이와 유사한 또 다른 설명이 제시되었는데, 앞서 열거한특징이 정신질환의 신호라기보다는 극단적이지만 정상적인 인간 행동의 표현이며, 부분적으로는 창조적 작업의 본질적 성격 때문에 초래된 것이라는 내용이다. - P229

하버드 대학교 정신의학과 교수인 앨버트 로덴버그Albert Rothenberg 는 그 연구를 가리켜 ‘창조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그만큼 포착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예라고 말했다. "문제는 그들이 창조적인 것의 기준으로 내세운 것이 썩 창조적이지 않았다는 점"
이라는 것이다. "예술가 협회에 속하거나 미술이나 문학을 한다는 게 그 사람이 창조적이라는 증거는 아니다.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들이미술이나 문학과 관련한 일을 하고자 시도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그들이 그 분야에 뛰어나서라기보다는 그 분야에 끌리기 때문이다. 이런 점 때문에 데이터가 왜곡됐을 수도 있다." - P230

‘정신이상‘에 관한 고정관념이 사람들의 인식에 끈질기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모종의 불안이 작동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러한 불안이 정신질환에 대한 공포에서만 생겨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사회가 정신질환을 다루는 방식에 엄청나게 억제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여기서 불안을 조장하는 요소 중중요한 한가지는 ‘타자‘라는 우리의 친구들일지도 모른다. - P231

의학과 신경과학, 통계분석의 전문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앞서나 자신이 설명하려 했던 분야를 이야기하기에는 그다지 신뢰할 수없는 화자라는 점을 솔직히 인정할 수밖에 없다. -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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