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항해술의 변천

본래 전함으로 건조됐던 H.M.S. 테러호와 H.M.S. 에러버스호는 보강된선체와 난방 장치, 증기 기관, 격납식 프로펠러 등 당대 최고의 기술을탑재하고 있었다. 예아호와 폴라선호는 더 단순하게 설계되고 홀수도 더얕았지만 더욱 우수한 조종성을 갖췄기 때문에 선원들이 얼음 사이로유달리 좁은 해협을 항해할 수 있었다.

지난 몇 년간 나 역시 프랭클리나이트가 됐다. 나는 입수할 수 있는 모든 관련 서적을 탐독하며 스스로를 그 불운한 대원 중 한 명이라고 상상해보기도하고 여전히 풀리지 않은 수많은 의문들로 골머리를앓기도 했다. 프랭클린은 어디에 묻혔을까? 그의 항해 일지는 어디에 있을까? 이누이트족이 대원들을도우려고 했을까? 몇몇 대원들이 탈출하는 데 거의성공했을 가능성은 없을까? - P16

여정의 절반에 가까운 5600km를 항해한 지금.
프랭클린 수수께끼에 몰두하려던 내 계획은 냉혹한현실을 마주하게 됐다. 얼음에 갇히게 되면 폴라선호를 잃을 수도 있었다. 게다가 우리가 어떻게든 해안에 안전하게 도달한다 하더라도 이곳에서는 구조가 어려울 수 있었다. 물론 초반에 언급한 그 북극곰도 빼놓을 수 없는 위험 요소였다. - P16

하지만 런던에서는 상황을 전혀 다르게 보고 있었다. 쪽지가 발견되기 5년 전인 1854년에 또 다른증언이 대두됐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모피 무역상이자 탐험가인 존 레이가 인눅-푸-제-죽이라는이누이트족 사람으로부터 몇 년 전 35~40명의 ‘코블루나(백인)‘ 무리가 큰 강 어귀 인근에서 아사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 P17

영국의 소설가 찰스 디킨스는 이 같은 여론을 더욱 부추겼다. "대원들과 그들의 위대한 지도자의 고귀한 행동과 모범이 미개한 극소수 부족의 허튼소리보다 존엄하다." 디킨스는 자신이 발간하는잡지 <하우스홀드 워즈>에 이렇게 썼다.  - P17

원거리 무역

이집트 제26왕조 시대의 미라 제작업은 이미 확고히자리를 잡았으나 비용이 많이 드는 산업이었다. 고대 세계에서는 먼 지역에서 재료를 조달하는 데 많은 시간과비용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카라에서 버려진 방부처리용기에서는 나일강 삼각주에 자생하지 않는 나무와 관목에서 나온 잔여물이 많이 발견됐으며 어떤 재료는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가져왔을지도 모른다. 이런재료들은 매우 귀했다. 일례로 무덤 6에서 발견된 다마르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져온 것일 수도 있다. 미라 제작은 고대 이집트인의 삶과 죽음에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르나 나일강 유역을 따라 번성했던 사후 세계 산업은 이집트 국경을 넘어 더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 P4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