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읽었던 만화는 무엇이었을까? 기억해내고 싶지만 너무 어렸을 때 일이다. 이건가 싶은 작품은 몇 개 있지만 그중어느 것이었다고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폭 빠져 있었던 포근한 기억은 간직하고 있다. - P175
내가 만화를 접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이모네 집이었다. - P175
어머니와 그리 닮지 않은 이모는 내가 찾아가면 언제나 웃으며 "우리 만화광 마야가 오늘도 왔네" 하고 머리를 쓰다듬어준 다음에는 내가 무엇을 읽든 상관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야한 장면이 많은 만화는 책장 위쪽, 초등학생인 내 손이 닿지않는 곳에 옮겨놓았던 것 같지만. - P176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튀어나온 말인지는 모른다. 차를 운전할 때도, 무전기를 쓸 때도 면허가 필요한데 책을 쓸 때는면허가 필요없다니 신기하다는 실없는 이야기였을지도 모른다. - P177
《월간 코믹 라. 신》은 처음에 《월간 코믹 신소》의 별책으로 시작했다. ‘신‘을 돌림자로 써서 같은 계보라고 주장하는 모양이지만 내용은 상당히 다르다. - P177
. 만화 잡지를 모조리 사들일 용돈도, 그걸 보관할 방도 없지만 《라. 신》만큼은 매달 꼬박꼬박 발매일인 18일에 산다. - P178
2월 18일은 혹독하게 추운 일요일이었다. 질리지도 않고계속 내리는 눈이 온 동네를 뒤덮은 가운데 나는 목도리와 귀마개, 고무장화 등등으로 최대한 방수 방한 조치를 하고 국도변에 있는 고분도 서점으로 갔다. - P178
결과부터 말하면, 내 노력은 전부 헛수고였다. 《라·신》은아직 들어오지 않았다. 점원에게 물어보니 정식 발매일이 일요일이면 하루이틀 어긋나기도 한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 P179
제14회 신대륙상 수상 작품 역습의 너구리, 마미아나 마모루. 모르는 사람이다. 재미있으면 좋겠다. - P180
노력상은...….… 다사카이치타로, MILULU, 쇼다 가네스케, 조지아 사토, 야지마가오루, 지크하일, 이바라 가즈루, 하루 엔마・・・・・…. "어, 엇!" - P180
이바라 가즈루! 「탑이 있는 섬」! 실려 있다. 내 펜네임이, 내가 그린 만화 제목이, 《코믹 라•신》 3월 호에 실려 있다! - P181
『가미야마 시 독후감 대회 모음집』이었다. "이건 사 년 전 책인데, 어제 방 청소하다가 나왔어요. 별생각 없이 펼쳐봤는데 예상치 못한 이름을 찾았지 뭐예요." - P183
"메로스라, 왠지 오레키한테 안 어울리는데." "마야카도 참. 호타로가 자발적으로 우정 소설을 골랐을것 같아? 아마 과제 도서였겠지." "그럼 나도 기억할 텐데, 메로스가 과제였던 적이 있었나?" - P184
"중학교 1학년 때 여름방학 과제 도서라면 분명 악셀 하케의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임금님』이었을 텐데요." 듣고 보니 그랬던 것 같다. - P184
"그런데 마야카, 이 독후감이 제법 걸작이란 말이야. 호타로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호타로구나 싶어서 감회가 새로워." - P185
"이미 공개된 거니까." 그냥 보여주기 싫다고 하지 않고 보여주기는 싫지만 공개된 글인 이상 읽지 말라는 말은 하지 못하겠다는 뜻이 깃들어있는 게 참으로 오레키답다. 허락을 받은 나는 지이의 손에서 책자를 받아들었다. - P185
"특히 대단한 건 이 독후감이 가부라야 중학교 대표로 가미야마 시 독후감 대회에 나갔고, 제일 낮다고는 해도 상까지받았다는 사실이야. 솔직히 독후감은 책을 읽은 감상을 쓰는숙제가 아니라 어떤 감상을 쓰면 선생님이 통과시켜줄지 고민하는 숙제라고 생각했는데, 한 수 배웠어. 이럴 수도 있는거구나." - P189
"작가의 마음을 고민할 필요는 없습니다"라는 주장이었다. 선생님은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어차피 별생각 없을 겁니다. ‘빨리 술 마시고 자고 싶다‘ 라고 생각하면서 쓴 문장이라도 그 문장이 무엇을 뜻하는지정확하게 짚어내 고민하는 게 국어입니다. 가령 마쓰오 바쇼는 ‘해와 달은 백년 과객이요, 오가는 세월 또한 나그네‘라고했습니다. 이 문장을 진지하게 마주한 결과, 풀어낼 수 있는뜻은 바쇼에게 세월은 지나가는 게 아니라 오가는 것, 즉오기도 하고 가기도 하는 것이라는 인식으로, 이는 곧 바쇼가 시간 여행자라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럴 리 없다고생각한다면 직접 조사해보도록, 재미있어요." - P190
"아아, 그거." 부루퉁하던 오레키가 피식 쓴웃음을 흘렸다. "다섯 장 이상 쓰는 숙제인 줄 알고 딱 다섯 장 썼던 거야. 그런데 실제로는 다섯 장 이하였어. 얼마든지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었는데 괜한 수고를 한 게 억울해서 어디 좀 빼버릴까 했다." - P191
가미야마 고등학교 만화 연구회는 작년 축제 이후로 변해버렸다. 서툴러도 좋으니 직접 그려보고 싶은 그룹과, 직접 그리고싶은 욕구는 없이 만화를 읽으며 즐기고 싶은 그룹이 축제를둘러싼 여러 소동을 계기로 적대시하기 시작했다. - P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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