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고, 재미있다. 왜지?




 조각은 현실과의 닮음을 마다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조각이 처음부터 닮음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위대한 조각의 시대들에 있어서 조각이 추구하는 것은 이세계의 모든 동작들과 모든 시선들을 요약하게 될 동작, 형상,
혹은 텅 빈 시선이다. 조각의 목표는 모방하는 데 있는 것이아니라 양식화하는 데 있다. - P442

실연한 연인은 그리스 여인상들의 주위를 돌면서 여인의 육체와 얼굴 속에서 시간의 풍화작용을 극복하고 살아남은 그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도 있으리라. - P443

회화의 원리 또한 선택에 있다. "천재 그 자체는 보편화하고 선택하는 재능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들라크루아는 자신의예술에 대해 성찰하면서 쓰고 있다. - P443

 그렇기 때문에 풍경 화가나 정물 화가는 통상적으로 빛에 따라 변화하거나 무한한 조망 속으로 함몰되거나 혹은 다른 미적 가치들의 충격으로 인해 사라져 버리는 그 무엇을 시간과 공간 속에 따로 떼어 고립시킨다. 풍경 화가의 최초 작업은 풍경을 틀 속에 넣는 일이다 - P443

위대한 창조자들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처럼 영사기가 이제 막 멈춘 것처럼 대상의 고정화가 막 이루어졌다는 인상을 주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그림 속의 모든 인물들은 그리하여 예술이라는 기적에 의하여 사멸하기를 멈추고 계속하여 살아 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이다.  - P443

"헛된 것이 곧 그림이라, 우리에게 즐거움을 줄 수 없는 대상들과의 닮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구나" 들라크루아가 파스칼의 이 유명한 말을 인용하면서 ‘헛된‘이라는형용사를 ‘기이한‘으로 바꾸어 쓴 것은 적절하다. - P444

 누가 채찍질하는 형리의 손과 수난의 십자가와 길가의 감람나무들을 눈여겨보았겠는가? - P444

예술은, 애써 노력하는 것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 헤겔이 꿈꾸었던 바 특수와 보편의 조화를 실현시킨다. 아마도 이것이야말로 우리 시대와같이 통일을 미친 듯이 갈구하는 시대가 가장 강렬한 양식화와 보다 도전적인 통일성을 갖춘 원시예술 쪽으로 경도되는이유가 아닐까? - P444

가장 강력한 양식화는 언제나 예술적 시대들의 초기와 말기에 발견된다. 존재와 통일을 향한 무질서한 충동 속에서 모름지기 현대회화를 떠받치고 있는 부정과 전치(轉)의 힘은 바로 그러한 양식화에 의해 설명된다. - P444

반 고흐의 다음과 같은 찬탄할 만한 말은 모든 예술가들의 오만하고도 절망적인 절규의 표현이다. "나는 삶에 있어서나 그림에 있어서나 신은 없어도 잘해 나갈 수 있다. 그러나 고통스러워하는 나는 나보다 더 위대한 어떤 것, 내 삶 자체인 어떤 것, 즉창조의 힘 없이는 살 수 없다." - P445

 전적인 부정에서 태어난 혁명 정신은 예술 속에도 역시 거부 이외에 동의가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리고 관조는 행동과 균형을 이루고, 미는 불의와 균형을 이룰 가능성이 있다는 것, 어떤 경우미는 그 자체에 있어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불의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 P445

미를 창조하자면 인간은 현실을 거부하는 동시에 현실의 제 양상들 중 어떤 것들을 찬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술은 현실에 이의를 제기하지만 그러나 현실을 벗어날 수는 없다. 니체는 일체의 도덕적 혹은 신적인 초월성이 이 세계와 이 삶에 대한 중상비방을 조장하는 것이라 하여 그러한 일체의 초월성을 거부했다. - P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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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처럼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직전의 경험에 엄청난 지배를 받습니다.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 P73

선거 기간에 여론조사 기관에서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당선자를 예측한 결과보다 7세 아이들이 후보들의 사진만 보고 판단했을 때 최종 결과를 더 잘 예측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 P74

실제로 우리는 뽑을 사람을 이미 정해놓은 다음 이데올로기부터 정책까지 그에 맞는 이유를 가져다 붙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가장 본질적인 것만을 생각하고 판단합니다. - P74

우리의 감각을 지배하는 것들

(중략)
이역점 또는 공간역이라고 하는 곳으로 피부의 두 점을 자극했을 때 두 곳을 자극한다고 느끼는 최소한의 거리를 뜻합니다. - P74

손바닥 위의 두 곳을 이쑤시개로 찔렀을 때 분명히 다른지점을 찌르고 있지만 상당히 거리를 둬야 두 곳을 찌르고 있다고 느끼는 부위가 있고, 조금만 거리를 둬도 두 곳을 찌른다고 느끼는부위가 있습니다. 민감한 부위일수록 거리가 짧으며 그 최소한의 거리가 이역점입니다. - P75

접촉이라는 것은 좋아하는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 중 하나이지만 접촉을 통해 좋다는 감정을 느끼게 될 수도있습니다.  - P75

날씨가 추운 지역에 살고 있는 그 딜러는 출근하자마자 헤어드라이어로 자동차 문고리를 적당하게 데워놓았습니다. 자동차를 사러 방문한 고객이 문을 열때 최적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덕분에 그는 그 지역에서 가장 실적이 좋은 딜러가 됐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더 많이 만지고 접촉한 제품을 구매합니다. - P75

시각장애인이 점자책을 읽을 때 손끝은 가만히 있고 책이 움직이는 것(수동적 촉감각)보다 직접 손끝을 움직여 책을 읽는 것(능동적 촉감각)이 내용을 이해하는 데 유리합니다. - P76

 특히 촉감은 다른 감각보다 예민해서 단순한 접촉이 아니라 문화와 맥락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 P75

촉감각에서 느끼는 고통은 그 문화에서 그것을 불안하게 만드느냐, 불안하지 않게 만드느냐에 철저한 지배를 받습니다.불안할 때 맞으면 많이 아프지만 불안하지 않을 때 맞으면 덜 아픕니다. - P76

 하지만 시각과 청각 중 하나를 잃었을 경우 소리를 듣지못하는 사람들의 행복이 상대적으로 덜 행복하다고 합니다. 두 가지 감각을 모두 잃은 헬렌 켈러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Blindness separates us from things but deafness separates usfrom people." - P77

 우리가 소리의 속성이나 듣는다는 것을 이해하면 그동안 잘 몰랐던 인간의 마음에 대해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소리를 통해 인간의 마음에 대해 눈뜰 수 있습니다. - P77

즉 내가 듣는 내 목소리와 남이 듣는 내 목소리가 조금 다릅니다. 그 이유는 녹음한 내 목소리를 들을 때는 고막만 울리지만 직접 말하면서 내 목소리를 들을 때는 성대를 울리면서 머리도 같이 진동하기 때문입니다. - P77

그리고 우리의 귀는 세상으로부터 받은 에너지를 어떻게든 울림으로 만들어 그 정보를 처리하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가 듣는 모든 종류의 소리입니다. - P78

소리가 울림이라면 ‘마음을 울린다는 것은 이성과 감정 중 어디에 가까운 표현일까요? 감정입니다. 귀는 눈보다 우리 감정을 더 많이 자극합니다. 실제로 눈으로 보기만 하는 것보다 귀로 듣기만 할때 더 감정적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P78

오감 중 남은 두 가지 감각은 후각과 미각입니다. 갓 태어난 아이가 힘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은 젖을 빠는 것입니다. 따라서 후각과 미각은 태어났을 때 가장 발달되어 있는 감각인 동시에 떼어놓기 어려운 상호작용하는 감각입니다. - P79

그런데 인간의 후각과 미각만큼 문화적 지배를 받는 것도 없습니다. 한 문화에서는 말도 안 되게 괴로운 맛이나 냄새가 다른 문화에서는 너무도 괜찮은 맛이나 냄새인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 P79

맛의 기본은 짠맛, 신맛, 쓴맛, 단맛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4가지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오히려 매운맛에 관심이 많습니다. 라면의 매운맛, 떡볶이의 매운맛이 다름을 구별하는가 하면 매운 정도까지 세세하게 구분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미각과 후각은 문화 종속적인 특성이 강합니다. - P79

그런데 미각처럼 간사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좋아하는 노래를 매일 들을 수 있고, 좋아하는 그림을 매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맛은 단 몇 차례만 반복해도 쾌감에서 고통으로 변합니다. - P79

큰 전기충격을 받기 직전에 단맛을 보게 되면 평생 단 음식을 먹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미각에 일회성의 경험이 중요한 것은 음식이 물질이기 때문입니다. - P80

하지만 코로 들어오고 입으로 들어오는 것은 단 한 번이라도 우리에게 엄청난 손상을 미칠 수 있습니다. 무언가 먹고 크게 체한 경험이 있으면 다시는 그 음식을 먹고싶지 않은 것처럼 미각과 후각에 있어서만큼은 일회성 경험을 끝까지 가지고 갑니다. - P80

우리는 이미 육감을 체험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인간의 오감은 모두 연합되어 있습니다.
 (중략)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뉴턴Elizabeth Newton은 박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감각이 동떨어져 있을 때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실험을 했습니다. - P80

 실험을 하기 전 그녀는 테이블을 두드리는 사람들에게 상대가 정답을 맞출 확률을 물어보았고 평균적으로 50%라고 예측했습니다. 그런데 실험 결과는 겨우 2.5%만 제목을 맞췄습니다. 우리의 감각은 교류를 통해 정보를 해석하기 때문에 한 가지 감각의 정보만 제공하면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해 이러한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 P81

우리가 가진 오감을 합치면 육감이라는 것이 발동합니다. 육감과 오감의 차이는 ‘증거‘입니다. 눈에 보이거나 귀에 들리는 등의 증거가 있으면 오감입니다.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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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알수록 많이 착각한다

먼저 시각의 영향력부터 알아보겠습니다. 눈은 가장 앞쪽에 각막이, 그다음에 렌즈라고도 하는 수정체가 있습니다. 여기로 이미지가 들어와 눈 뒤에 있는 망막에 상이 맺힙니다.  - P68

망막은 스크린입니다. 스크린은 2차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3차원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3차원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하드웨어인 눈은 분명히 2차원 형태를 가지고 정보를 분석합니다. - P69

 이는 우리가 3차원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무언가를 해석하고 있음을 뜻합니다. - P69

 그런데 누구도 저렇게 찌그러진 굴렁쇠가 잘 굴러가느냐고 의심하지 않습니다. 우리 머릿속에선 저 사진을 보는 순간 이미 정확하게 동그란 이미지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P69

보는 순간 세상을 편집하며, 보는 순간 세상의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를 취해서 믿은 다음 보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 P69

한 가지 질문을 던지겠습니다. 지금 자신이 있는 곳에서 서울시청까지 가는 방법은 몇 가지일까요? 택시, 지하철, 버스, 걸어가기.
대부분 상식적인 수준의 몇 가지 방법을 이야기합니다. 토끼뜀으로 갈 수도 있고, 돈이 많이 들지만 헬기를 불러서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인간은 한두 가지 가능성을 빨리 취하고는 합니다. 그것이 적응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 P70

그런데 가끔은 시각을 통해 여러 가지 정보를 너무 많이 알고 있어서 착각하거나 세상을 잘못 해석할 때가 있습니다. 그 모든 종류의 일들을 가리켜 착시라고 부릅니다. - P71

 즉 무언가를 볼 때 전혀 상관없는 단서를 사용하면 착시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 P71

 이는 곧 내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경험을 쌓아왔느냐가 지금 보는 것의 대부분을 결정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직전의 경험은 엄청난 생각의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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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정도 안에 다 읽을 수 있겠지? 아님 그냥 새로 구매하는 편이 좋았나?





 그러나 어떠한 예술가도 현실 없이 일할 수는 없다. 창조는 통일의 요구이며 세게의 거부다. 그러나 창조는 세계에 결여되어 있는 그 무엇 때문에, 또 때로는 있는 그대로의세계의 이름으로, 세계를 거부한다. - P437

그렇지만 우리는 모든 혁명적 개혁자들이 예술에 대하여드러냈던 적대감을 주목하게 될 것이다. 플라톤만 해도 아직 온건한 편이다. - P437

그러나 현대의 혁명 운동은 예술에 대한 심판과 다를 바 없으며 그 심판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다. 종교 개혁은 도덕을 택하고 미를 추방한다. 루소는 예술에 있어서 사회가 자연에 가한 훼손이라는 일면을 고발한다. - P438

대혁명은 당대의 유일한 시인²⁶⁹을 단두대로 보내 처형한다. 유일한 대산문가²⁷⁰는 런던으로 추방되어 기독교와 정통 왕조를 변호한다. 그 얼마 뒤 생사몽주의자들은 "사회적으로 유용한" 예술을 요구하게 된다.

(중략)

269) 대혁명에 가담했다가 공포 정치의 과도함에 항의한 죄로 처형당한 시인 앙드레 드 셰니에를 가리킨다.

270) 기독교의 정수를 쓴 샤토브리앙을 가리킨다. - P438

오직 발레스 만이 예술에 대한 저주에 주술적인 어조를도입하는데 이것이 오히려 예술에 진정성을 부여한다.
이 어조는 또한 러시아 허무주의자들의 어조이기도 하다. - P438

 고뇌에 찬 대시인인 허무주의자 네크라소프는 그 자신이 시인이면서도 푸시킨의 전작품보다도 한 조각의 치즈를 택하겠노라고 잘라 말한다. - P439

독일관념론 역시 예술에의 비난에 있어 준엄하다. 『정신현상학』의 혁명적 해석자들에 따르면, 화해에 도달한 사회에는 예술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미는 상상의 대상이아니라 생활의 대상일 것이다. 현실이란 그것이 전적으로 합리적인 것일 때 그 자체만으로 모든 갈증을 만족시켜 줄 것이다. - P439

예술이란 모든 시대에 두루 속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그것은 그 시대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니 마르크스의 말대로 그것은 지배계급의 특권적 가치들을 표현한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의 혁명적 예술이 존재할 뿐이다. 그것은 바로 혁명에 봉사하는 예술이다. - P439

 러시아의 제화공은 그가 자신의 혁명적 역할을 의식하는 순간부터 결정적미의 진정한 창조자가 된다. 라파엘로도 새로운 인간에게는 이해되지 않는 일시적 미를 창조했을 뿐이다. - P440

사실 마르크스는 어떻게 그리스의 미가 우리에게 여전히 아름다울 수 있는가 하고 자문한다. 그는 이 의문에 대하여, 그리스의 미는 세계의 순진한 유년 시대를 표현하고 있으며 우리는 어른들끼리의 투쟁 한가운데서 이 유년 시대에 대한 향수를 느끼는 것이라고 답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어떻게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걸작들과 렘브란트와 중국의 예술이 우리에게 여전히 아름다울 수 있단 말인가? - P440

 우리는 과연, 셰익스피어와 제화공 사이의 이 투쟁에 있어 셰익스피어를 저주하는 자는 제화공이 아니라 그 반대로 셰익스피어를 계속 읽으면서도 장화 만들기를 택하지 않는 자들 - 하기야 그들은 결코 장화를만들지 못하겠지만 이라는 사실을 주목하게 된다.  - P440

그렇지만 이런 광적인 금욕에는 우리가 관심을 가질 만한나름대로의 이유들이 있다.
(중략)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반항은 세계의 건설이기도하다. 이것이 또한 예술의 정의다. 반항의 요구는 사실상 부분적으로는 어떤 미학적 요구다.  - P441

이 운동은 또한 모든 예술의 운동이다. 예술가는 자기 생각에 맞추어 세계를 재창조한다. 자연의 교향곡들은 늘임표를 알지 못한다. - P441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진동들로 말하자면, 그것들은 우리에게 소리를 전달하기는 하지만 그 소리가 화음이 되는 경우란 거의 없고, 멜로디인 경우란 결코 없다. 그렇지만 음악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가. - P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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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 일이야? 너처럼 잘나가는 문인이 나 같은 은행원을 다만나자 하고"
은행 간부쯤으로 보이는 풍모였다. 고급 모직코트를 걸치고 구불거리는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거드름을 피우고 있었다. - P62

"등단하고 싶으면 시를 나한테 보내봐. 내가 보고 추천해줄데 있으면 알아봐줄게."
사내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그러더니 잠시 숨을 고르고 커피를 들이켠 후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입을 열었다. - P62

"아, 최근에 대학가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학회에 관한 정보를알고 싶어. 모이는 장소, 모이는 시간 모두 그리고 문학회 이름과 참석하는 학생들 정보도 오랜만에 만난 문학회 정송희 선배이야기로는 네가 아직도 대학가 문학회를 찾아다니면서 후원도해주고 시낭송회에도 참석한다는 것 같더라고 하시더라." - P62

상의 친구는 눈을 빛냈다.
"좋아. 지금 떠오르는 문학회는 두 곳 밖에 안 되는데, 내일 정리해서 네가 있는 곳으로 보낼게 금홍 씨는 잘 계시지?" - P63

"내일 오후에 다방으로 와주게나 문학회 중 가장 의심이 갈만한 곳을 가보려 하니."
구보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 P63

다음날 오후에 ‘제비‘를 찾은 구보는 상이 브라우닝 권총을들고 요리조리 살펴보고 있는 것을 목격하였다.
"상이, 그거 권총 아닌가?"
"브라우닝 M-1900. 7.65 밀리 총구 권총일세."
"그걸로 무얼 하는 게인가?"
"이 총은 은닉이 가능한 휴대용 총이지." - P63

상은 구보를 향해 조준하였다. 구보가 얼어붙었다. 이때 금홍이 다가와 어이없다는 듯이 상의 총을 빼앗아 자신의 얼굴을 겨냥했다. 구보가 깜짝 놀라는데 그녀가 비녀 뒤에 꽂아두었던 담배 한 가치를 빼들어 총을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 P64

그러고 보니 상은 아직 파자마 차림을 나이트가운으로 가리고 발가락에는 게다를 걸친 꼴이었다. 게다가 헝클어진 머리로 보아 세안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상은 파이프 담배 끝에권총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는 허공을 향해 연기를 내뿜었다. 구보가 무언가 물어보려 하여도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는 상을 섣불리 방해할 수는 없었다. 구보는 슬슬 졸려왔다.  - P64

자신도 모르게 꾸벅꾸벅 졸던 구보는 누군가 상을 방문하는소리에 깨어났다. 심부름꾼 소년이 상에게 봉투를 건네고 돈을 받고 있었다. - P65

"셀리는 무신론을 주장해서 옥스퍼드 대학에서 퇴학 처분을 받은 자이지. 만약 셸리를 동경하는 범인이 셸리와 자신을 동일시해서 시구대로 살인을 자행한다면 그 또한 명문대학 중퇴자일 확률이 높고, 무신론이나 무정부주의 뭐 이런 아나키스트적인 생각을 발표하다 그렇게 되었겠지. (중략)
명문대에 적을 두었거나 휴학하는 자들이 꾸리는 문학회인데, 그중 가장 의심되는 한 곳을 오늘 방문하려 하네." - P65

일정목을 지나 뒷골목으로들어가자 작은 선술집들이 늘어선 길이 나왔다. 일정 중간 정도에 위치한 가게 앞에 섰다. 나무 미닫이문을 열고 상이 먼저들어갔다.
"여기 낭만문학회 청년들이 어느 방에 들어 있소?" - P66

 중앙에 화로가 있고 다다미가 깔린 방 안에는남녀 학생 일곱 명이 모여 앉아 있었다. 그중 가운데 학생이 일어나 서서 시를 읊었다.
"오, 거센 서풍, 그대 가을의 숨결이여
보이지 않는 네게서 죽은 잎사귀들은
마술사를 피하는 유령처럼 쫓기는구나.
누렇고 검고 청백하고 또한 빨간 질병에 시달리는 잎들을 오 그대는
시커먼 겨울의 침상으로 마구 몰고 가는구나." - P66

아주 아름답게 생긴 모던걸도 있었으며, 경성제대 교모와 교복을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남학생이 둘 보였다.
가운데에서 시를 읊는 남학생은 연희전문 교복을 입고 있었다. - P66

"저희는 문단에서 글을 쓰고 있는 기성작가입니다만, 아직 무명인지라 한수 배우고자 찾아왔습니다." - P67

 학생들은 낭만파 시인에 대한 난상토론을 즐겼다. 특히나 <오감도>의 시인이 이곳에 왔다는 사실에 학생들은 존경의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 P67

"저는 <오감도>가 난해하지만은 않다고 봅니다. 제 소개를 하자면, 저는 연희전문대학 영문과에 다니는 정병호라고 합니다."
상은 남학생의 건방져 보이는 얼굴을 미소를 머금고 보았다. - P67

원 리틀 투 리틀 쓰리 리틀 인디언, 파이브 리틀 식스 리틀세븐 리틀 인디언………. 저는 이 노래처럼 미국 동요와 대구도 비슷하고 익숙한 느낌이 들어서 말이죠." - P67

하지만 상은 태연하게 넘겼다.
"자네들도 낭만파 시인 바이런과 셀리의 시구를 알게 모르게사용하지 않는가? 하지만 고맙네. 그 ‘원 리틀 투 리틀‘ 하는 인디언 노래를 나는 오늘 처음 듣네. 동요나 민요는 인류의 문화원형을 그대로 담고 있네. 한마디로 잊히지 않는 불후의 명곡이지. 그런 노래와 내 시를 비교하다니, 이거 영광인걸?"
누가 봐도 상의 승리였다. -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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