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모노레일

도쿄만(東京)에 인접한 화물선적 창고 안은 햇빛이 전혀 들지 않는다. 마치 종유동(洞)처럼 서늘해 보이지만, 천장에 매달린 백열등 아래로 포크리프트(forklift)를 타고 오가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흥건히 땀이 밴다. - P9

부채는 원래 붙어 있던 종이가 뜯겨나가 부챗살만 남았는데, 누군가 물건 포장에 쓰는 투명 비닐테이프를 대용으로 붙여놓았다. - P10

료스케는 포크리프트를 차고에 넣고 운전석에서 뛰어내렸다. 착지와 동시에 관자놀이에 맺혀 있던 땀방울이 주르르 뺨으로 흘러내려 제멋대로 자라난 수염 사이를 지나 턱 언저리로 번져갔다. - P10

료스케는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늦게 안벽으로 나왔다. 햇빛이 쏟아지는 도쿄만을 바라보며 땀에 젖은 티셔츠를 벗어든 료스케는 슬쩍 손목시계로 눈길을 주어 시간을 확인했다.  - P11

료스케는 오스기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바닥에 놓아둔 캔커피 주입구에 새까맣게 달라붙은 개미들이 보였다.
"약속이라도 있는 거야?" - P11

옆에서 개미의 움직임을 지켜보던 오스기가 "개미 말야, 정력제로 쓴다더라." 라고 중얼거렸다.
"이걸?"
"개미는 자기 몸집보다 몇 십 배나 큰 물건도 운반하잖아. 이녀석들은 불가사의한 파워를 지녔다니까!" - P12

약 한 달 전, 료스케가 ‘메일 미팅사이트에 등록한 것이 교토에서 일어난 ‘메일 연쇄살인 사건이 계기라고 하면 좀 과장된 이야기이긴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전혀 관계가 없지 않았다. 왜냐하면 한때 사무실에서 료스케의 얼굴이나 분위기가 그 사건으로 체포된 스물다섯 살짜리 범인과 닮았다는 이야기가 화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 P13

료스케는 그 후로도 여러 번 와이드쇼나 잡지에서 범인의 사진을 봤다. 잡지에는 "여자를 궁지에 몰아넣은 게 즐거웠다."는범인의 진술이 게재되어 있었고, 이유는 모르지만 어쩐지 그 말이 마음에 걸렸다. 물론 그 말에 공감했던 건 아니다. - P13

오스기나 회사 사람들로부터 범인과 얼굴이나 분위기가 닮았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인지 료스케는 TV 뉴스에서 그 사건을 다룰 때면 볼륨을 올렸고, 식당에서 펼쳐든 신문에 속보라도 실려 있으면 포크커틀릿이 식는 것도 모르고 열중해서 기사를 읽곤 했다. - P14

료스케가 타월을 어깨에 걸치고 목욕탕으로 들어가는 미닫이문을 열려는 순간, 로커에 넣어둔 휴대폰이 울렸다. 허둥지둥급히 꺼내보니 ‘오늘밤 약속, 7시 30분에서 8시로 바꿔주세요.‘라고 찍혀 있는 ‘료코‘의 문자메시지였다. - P15

료스케는 그 메일을 농담처럼 받아들였다. 모노레일을 한 번도 타본 적이 없다는 말을 농담으로 여긴 게 아니라, 한 번도 타보지 않아서 타보고 싶다는 그 말을...………. - P16

‘로코‘의 메일을 받은 것은 시부야에서 바람을 맞고 나서 3일이 지나서였다. 그때는 이미 오는 메일도 거의 없어 슬슬 사이트 등록을 해지하려던 참이었다. - P17

목욕을 마친 료스케는 일단 아파트로 돌아가 새 티셔츠와 바지로 갈아입고, 곧바로 집을 나왔다. 지갑에는 어제 역 앞에서 찾은 3만 엔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 - P17

흔해빠진 대화이긴 했지만, 2주동안이나 서로 메일을 주고받았기 때문에 료스케는 자기만의 ‘로코‘ 모습을 만들어놓았다. 핸드백에서 휴대폰을 꺼내는 눈앞의 여자는 상상과는 너무 동떨어진 모습이었다. - P18

"료스케 씨는 무슨 일을 해요? 메일로는 물어보지 않았죠"
"나・・・・・・ 글쎄 뭐라고 해야 하나, 선박 관계."
"선박 관계? 혹시 모터보트 선수?"
"네?
(중략).
"그쪽 선박 관계 일이었구나."
‘료코‘ 가 아주 살짝 고개를 뒤로 젖히며 웃었다.
가까이서 보니 ‘로코‘ 입술의 립스틱이 약간 번져 있었다.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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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구조대원이 천천히 몸을 돌려 순찰대 경찰 둘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저은 뒤 구급 장비를 둘러멨다. 그리고 들것을 들고있는 동료에게 그들의 일은 다 끝났다는 신호를 보냈다.
침대에 누워 있는 남자는 이미 몇 시간 전에 숨을 거두었다. - P14

숨이 끊어졌으면 식환에 연락할 것이지. 구급대는 뭣 하러불러? - P14

경찰 행동 매뉴얼에 따르면, 현장에서 타살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될 시 시신을 발견한 증인의 진술과 현장 상황을 기록한 뒤 ‘식환서‘라고 불리는 식품환경위생서¹에 연락해 시신을 공공 화장장으로 운반한다.


1 식품 및 환경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홍콩의 정부 부처. - P15

숯불을 피워 자살한 사건으로 판단하고 매뉴얼에 따라 처리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선배 키다리가 구조대를 불렀다. 아썬은 키다리의 행동이 불필요해 보였지만, 사실 혹시 모를 가능성에 대비하는 것만이 아니라 성가신 마찰을 피하기 위한 목적이 더 컸다. - P16

터무니없는 민원에 대해서는 당국이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지만, 경찰대 내부의 직장 문화는 또 별개의 문제였다. - P16

대단한 공을 세우지 않는 한 말단 경찰이 경위로 승진하는데 걸리는 기간은 평균 15년. 아무리 출세욕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누구든 같은 직급의 동료가 하나 줄어드는 건 반가운법이다 - P17

처음에 키다리는 연로한 어머니와 둘째 아들이 아침에 일어난뒤 숯을 피우고 자살한 맏아들을 발견한 상황일 거라고 예상했지만 간단히 심문해보니 부인은 사망자의 어머니가 맞지만 옆에 있는 남자는 이웃이었다. - P17

네 평쯤 되는 방. 홍콩의 평균 주거 면적으로 보면 꽤 큰 침실에 잡동사니가 가득 쌓여 있었다. (중략). 벽에는 애니메이션과 온라인 게임 포스터가 붙어 있고, 어수선한 컴퓨터 책상 위에 게임 캐릭터 피규어와 장식품까지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 P18

"카, 화장실이 딸린 방이라니. 은둔족의 천국이네." 아썬이옷장 옆 모퉁이에서 문을 발견하고 열어보니 창이 없는 작은화장실이었다. (중략). ‘은둔의 천국‘이라는 아썬의 말에 담긴 조롱의 뉘앙스를 키다리는 알아채지 못했다. - P18

키다리는 이런 사람이 하나 사라져도 무덤덤하기만 한 사회의 냉혹함을 생각했다. 내일 신문에 이 남자의 죽음이 짤막하게라도 실릴지 장담할 수 없었다. - P19

키다리가 고개를 들어 방의 다른 쪽으로 시선을 옮기자 아썬이 그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문이 열린 옷장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아썬, 내 말 안들…………." - P19

다만 키다리와 아썬의 눈앞에 있는 유리병에 담긴 것은 쥐나 개구리가 아닌, 잘린 팔다리와 장기였다. 인간의 팔다리와 장기. - P20

1장

일선 경찰의 다급한 보고가 경찰 본부에 도착한 직후 홍콩섬 총구總區 강력반 제2B팀에 사건이 배정되었고, 사건의 심각성을 고려해 B팀 팀장인 쉬유이가 직접 현장에 나가 수사를 지휘하기로 했다. - P23

오늘도 야근이군. 쉬유이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사실 그는야근을 별로 싫어하지 않았다. - P24

"감식 요원은 뭐래? 피해자가 몇 명이야?"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최소 두 명인 것 같아요." 자치가 유리병 중 하나를 가리켰다. "발바닥 네 개는 확인했어요. 왼쪽 둘, 오른쪽 둘." - P24

속이 울렁거려 다른 데로 시선을 옮기자 위 칸에 있는 병 하나가 다시 그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단발의 여자 머리였다. 이목구비가 단정하고 예쁘장하게 생긴 얼굴이었다. - P25

"젠장....... 이 변태는 토막 살인도 부족해서 시신의 자세까지 연출해놓았나?" 자치가 검은 비닐에 덮인 사망자를 흘긋보고 중얼거렸다. - P26

"이 사람이 이 방 주인이라고?" 쉬유이가 침대로 다가가 검은 비닐을 젖혔다. 겉보기엔 흉악무도한 변태 살인마처럼 보이지 않았다. 머리칼과 수염은 지저분했지만 야윈 체형과 가느다란 팔다리는 가해자보다 피해자에 가까워 보였다.  - P26

"어머니 성을 따랐나? 아버지는 없어?"
"그런 것 같아요. 이 주소지에는 어머니와 아들만 등록되어있어요."자치가 수첩을 덮었다. "마흔 넘도록 직업도 없이 어머니와 살았으니 은둔이겠죠." - P27

"자살이 확실해?" 쉬유이가 방 한가운데 그릇 속에서 하얗게 탄 숯을 내려다보았다.
"일차적인 판단은 그래요. 자세한 건 부검의가 부검해봐야죠."
(중략).
"죄를 짓고 죄책감에 자살한 거라면 수사에 도움이 되도록범행을 자백하는 유서를 남겼을 텐데." 쉬유이가 방 안을 둘러보며 만화, 소설, DVD가 빼곡히 꽂혀 있는 책장을 가리켰다. - P27

무수한 살인 현장을 목격한 쉬유이에게도 표본이 된 토막시신은 처음이었다. (중략). 그는 셰바이천에게 시체기호증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 P28

아마추어 코스프레모델이 참혹하게 살해된 사건이었는데 그 사건을 조사하다가 ‘오토코노코‘¹라고 불리는 젊은 남자들이 많다는 걸 알았다. 여자 캐릭터로 분장하는 걸 즐기는 남자들이었다.  - P28

"담당 형사님이세요?" 셰메이펑이 소파에서 튕기듯이 일어나 쉬유이의 두 팔을 붙잡고 울부짖었다. "이게 무슨 일이에요? 왜 나를 내 집에서 내보냈어요? 우리 바이천이 용의자라고요? 애가 죽었는데 무슨 범죄를 조사한다는 거예요?" - P29

"네・・・・・・ 쉬 경위님, 이 늙은이가 부탁할게요. 구조대원들이우리 바이천을 살릴 수 없다고 했어요. 혹시 방에서 마약 같은걸 찾더라도 모른 척해주세요."
"마약이요?" - P30

"시, 시체요?" 셰메이펑이 더듬더듬 물었다.
"셰바이천의 옷장에서 시신이 담긴 유리병 열 몇 개가 발견됐습니다. 시신을 토막 내서 표본으로 보존한 겁니다."
셰메이펑이 쉬유이의 두 손을 힘없이 놓았다. - P30

"옆집에 사는 칸즈위안闞致遠입니다. 여기서 30년 가까이 살았고 바이천과는 어릴 적부터 아는 사이입니다." 칸즈위안이 노부인의 손등을 토닥여 안심시키며 대답했다. "쉬 경위님, 무슨 착오가 있는 거 아닙니까? 바이천의 방에 시신이 있다니요? 동물 표본이나 인터넷으로 산 영화 소품이겠죠?"
"저도 착오이길 바랍니다만, 지금으로선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 P31

"셰 여사님, 현장 상태로 볼 때 셰바이천이 제일 유력한 용의자입니다. 일차적인 판단으로는 셰바이천이 범행을 저지른 뒤 두려움에 시달리다가 자살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최종결론을 내리기 전에 여사님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일상생활에 이상한 점은 없었는지, 교우 관계는 어땠는지 말씀해주십시오." - P31

"잠깐. ‘그중 한 구‘라고요?" 칸즈위안이 쉬유이의 말을 끊고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반문했다. "바이천의 방에 시체 여러 구가 있었단 말입니까?"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지만 최소 두 구 이상입니다." - P32

"그럴 수도 없어요. 내가 출근해도 바이천은……………."
"쉬 경위님." 셰메이펑이 입만 벙긋거리며 말을 잇지 못하자 칸즈위안이 말을 받았다. "바이천은 그럴 수가 없습니다.………….바이천은 ‘은둔형 외톨이‘입니다. 집 밖에 나가서 낯선 사람을 접촉하는 걸 두려워했습니다." - P32

"바이천은 20년 동안 밖에 나오지 않았다고요!" 셰메이펑이 벌컥 소리쳤다.
쉬유이는 멍해졌다. 그녀의 말에 그의 추리가 헝클어졌다. - P33

"20년이요? 20년 동안 집에 틀어박혀 살았다는 겁니까?"
"네, 쉬 경위님." 칸즈위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살인은커녕 편의점에 사이다 한 병 사러 나가지도 못했어요."
"몰래 빠져나갔을 가능성이 없다고는 못 하겠죠."
"아뇨! 바이천은 몰래 나간 적도 없어요! 밖에 나갔다면 제가 어떻게 모를 수 있겠어요?" 셰메이펑이 아들의 혐의를 부인하듯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 P33

"메이펑 아주머니는 가사도우미 일을 하셔서 오전에만 일하세요. 바이천의 방에서 발견된 피해자가 두 명 이상이라고 하셨는데, 여러 명이 대낮에 이 집에 들어와 바이천에게 살해당한 뒤 토막 났다는 말씀이신가요? 전혀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라고 해도 누가 그런 황당한 추리를 믿겠습니까? 바이천을 범인으로 단정하지 말고 객관적으로 조사하십쇼!"
쉬유이는 예상보다 똑똑한 칸즈위안에게 정곡을 찔렸다. - P34

쉬유이는 하는 수 없이 방법을 바꾸어 처음부터 차근차근물어보기로 했다. "셰바이천이 사망한 걸 어떻게 아셨나요?" - P34

"(전략).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문 앞에 음식이그대로 있었고 방에서 온라인 게임 소리도 들리지 않고 문을두드려도 대답이 없어서 아주머니가 걱정하며 제게 도움을 요청하셨습니다." - P35

"항상 문을 잠가두었어요. 억지로 열려고 하면 심하게 화를냈어요......." 셰메이펑이 수심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쉬유이는 ‘자애로운 어머니 밑에 못된 자식이 많다‘는 말을 떠올렸다. - P35

"네. 열쇠는 바이천이 갖고 있었어요. 그래서 억지로 문을 열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경찰에 신고한 건가요?" - P36

"출근은 안 하시나요?"
"재택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메이펑 아주머니가 제게 도움을 청한 겁니다."
전염병이 많은 직장인의 일상을 바꿔놓았으므로 쉬유이도이상하게 여기지 않았고, 칸즈위안이 IT나 온라인 업계 종사자일 거라고 생각했다. - P36

"아들이 은둔형 외톨이가 된 특별한 계기가 있습니까?" - P36

"바이천이 어떤 공포증을 앓았던 것 같아요. 차츰 사람을 멀리하고 자신이 설정한 공간 밖으로 나가면 불안해했습니다." 칸즈위안이 말했다. "처음에는 메이펑 아주머니와 제가 바이천의 방에 들어가 말을 걸고 얘기도 나눌 수 있었지만 언젠가부터는 문도 잠그고 우리와도 문을 닫은 채 얘기하거나 온라인 채팅으로 대화했습니다." - P37

"20년 동안 그렇게 생활했다는 건가요?" 쉬유이가 약간 퉁명스럽게 물었다.
"바이천은 제 외아들이에요. 그 애가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다면 저는 그걸로 충분했어요. 그래서 뭐든 원하는 대로 하게 내버려뒀어요...... 바이천...... 왜 이렇게 바보 같은 짓을 했니엄만 널 원망한 적이 없어. 널 평생이라도 데리고 살 수있는데……………" - P38

"칸 선생님, 저는 자살한 용의자의 어머니보다 참혹하게 토막 살해된 피해자에게 더 마음이 쓰입니다. 우린 아직 그 피해자들의 이름도 모릅니다." 쉬유이도 물러서지 않고 당당하게 말했다. "불만이 있으면 C&IIB³에 민원을 제기하시지요."


3 Complaints and Internal Investigations Branch의 약자. 홍콩 경찰의 관리 감독 및 감찰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 - P39

"계속 바이천을 범인으로 단정하고 계신 것 같은데, 다른 가능성은 전혀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누군가 살인죄를 뒤집어씌우려고 바이천을 살해하고 자살로 위장했다거나..." 칸즈위안도 쉬유이의 반박에 물러서지 않고 노기를 누르며 새로운 가능성을 내놓았다. - P39

쉬유이는 셰바이천의 집에 다시 들어가다가 셰바이천과 칸즈위안의 집 인테리어가 조금 다르다는 걸 알았다. - P40

단칭맨션은 층마다 두 세대씩 있는 6층짜리 아파트였다. 60여 년 전 분양 당시에는 중산층은되어야 살 수 있는 서양식 아파트였지만, 세월이 흐르며 인기없는 구닥다리 아파트가 되었다.  - P41

"피해자가 둘뿐이면 좋겠군." 셰바이천에 대한 정보를 조금 파악하고 온 쉬유이가 새로운 단서가 있는지 방 안을 둘러보았다.
"휴대폰을 찾았어요. 그런데......."
"그런데?" - P41

"그릇에 컴퓨터 부품 조각들도 있어요. 하드 드라이브인 것같아요." 자치가 책상 위 컴퓨터를 가리켰다. "확인해봤는데 하드가 없었거든요. 작정하고 증거를 은폐한 것 같아요.……………." 쉬유이는 턱을 쓰다듬으며 이 사건이 자신의 형사 경력에서 가장 힘든 일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 P42

"자치, 이 골목이 어디로 통하지?" 쉬유이가 뭔가 생각난 듯 부하에게 물었다.
"포만 스트리트일걸요? 코너를 돌아서 쭉 가면 올드리치 스트리트고요. 그건 왜요?"
쉬유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는 셰바이천이 방 안에 틀어박혀 있는 척하면서 어머니 몰래 창문을 넘어 밖으로나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 P42

낮 12시, 쉬유이는 단칭맨션 앞에서 간단한 언론 브리핑을통해 사건을 설명하고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다. - P43

 쉬유이는 현장에 도착한 순찰대가 자살자의 방에서 유리병에 보존된 토막 시신을 발견했다는 사실만 공개하고, 시신의 토막 형태나 피해자의 특징, 셰바이천이 은둔형 외톨이라는 것 등 세부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 P43

"무직에 41세인 자살자가 범인인가요?" 한 기자가 물었다.
"수사 중입니다만, 그럴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습니다."
기자들은 범인이 이미 사망해 연쇄살인범이 어딘가에 숨어있을 걱정은 없으니 시민들은 안심하고 생활해도 좋다는 행간의 뜻을 알아들었다.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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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있어야 초상집 같어."

박연선,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
(놀, 2016) - P66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울지 못했다.
그제야 내겐 우는 기능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 P67

"그 옥상*만 보면 지 애비가 모집** 나갔다나오면서 고상했다던 생각이 나서 딱해못 젼디겄슈."

이문구, 「행운유수」, 『관촌수필』
(문학과지성사, 2018)


* 건물 옥상이 아니라 어떤 인물을 가리킨다.
** 일제강점기에 한국인 젊은이를 모아 주로 해외에 노동자로 데리고 간 일을 두루 칭하는 말. - P68

20대 초에 공장에서 일을 했다. 가진 게 몸뿐이라 그랬다. 공장을 고를 때 프레스가 있는 공장은 가지 않기로 했다. 유압프레스나 모터프레스에 손가락이 절단된 사람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 P69

"생각이 많으믄 다치는겨." 그분이 내게 일을 가르치며 했던 말이었다.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내 팔에도 그가 가진 것과 비슷한 흉터가 생긴 후에야 깨달았다. - P69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 공장엔 ‘프레스‘만 없었다. 나는프레스에 끼는 일은 없었지만 전기에 감전돼 쓰러지거나, 고온의 기름에 데거나, 무거운 물건을 들다 허리를 다치곤 했다. - P69

"안전장치가 읎어서 그려." - P69

지난 2023년 2월 한용운의 『님의 침묵』 초판본이 온라인 경매에서 1억5100만 원에 낙찰되어 현대문학 최고가를 기록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초판본과 재판본 모두 출간 직후 일제가 금서로 정한 탓에 희귀본으로 남았다고 한다. - P71

홍성문화원에 따르면 ‘사러졌다‘는 말은 ‘사라지다‘의 충남홍성 방언이라고 한다. 방언으로 쓰인 시를 표준어로 바꾼 건 왜곡 아닐까? (중략).
언어학자들의 깊은 뜻이 있었겠지.. - P71

"술 마시지 말고 밥 열심히 먹으래유."
"이상 별로 없다는 얘기구만. 그려, 의사가 시키는 대로 혀."

김종광, 「낭만 삼겹살」, 『낙서문학사』
(문학과지성사, 2006) - P74

 사람의 수명이 80년이라고 쳤을 때, 나는 절반 이상을 살아 중년의 반열에 들었다. ‘생애전환기 무료검진‘ 어쩌고 하면서 안내문도 날아든다. - P75

내가 내 진료를 받기 전에 초음파검사와 혈액검사 비용이30만 원이나 나온다고 해서 ‘에휴 어쩌나 걱정하고 있던 중, 고양이가 아파서 고양이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갔다. 면역성 질환이 있다고 하던데 병원비가 14억5천 4백23만4천 원 정도 나왔다. 정신이 멍해지면서 금전 감각이 속절없이 무뎌진다. - P75

우리집에는 아직도 ‘국회의원 신경식‘이라는 글씨가 각인된금도금 티스푼이 있다. 신경식은 충청도 출신 정치인으로, 청주-청원 지역구에 야당인 민주한국당 (당시 여당 민정당) 소속으로 국회의원 선거에 나섰으나 두 번 낙선한다. 이후, 1988년 여당인민정당 후보로 출마해 이후 내리 네 번 국회의원 배지를 단다. - P77

"오줌은 앉아서 눠야지유"라는 말은 여자라면 다 된다는 의미였을 터다. 그러나 이 말은 모호하다. 성정체성은 출생 시 성별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 P79

숨이 끊어졌다고 생각한 부모가 윗목에 밀어놓고 날 새면 가져다 묻는다고 했는디 날 새고 보니께 아가 꼬무락대고 핏기가 돌아 살아났다는디 그때부터 아가 영 데퉁* 맞고좀 모자라


송진권, 「조맹선이 소 몰 듯이」, 『자라는 돌』
(창비, 2011)



* 거칠고 미련하다는 뜻의 표준어, - P80

옆의 소설을 읽다 ‘뭐야, 내 이야긴가‘ 하고 표지를 들춰 보니 저자의 고향이 충북이라고 나온다. 뭐지, 우리 동네 사람인가!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 P81

 박한선 신경인류학자가 『동아사이언스』에 쓴 「저출산의 미스터리」라는 기고에 따르면, 구석기시대에는 4~8명의 자식을 낳았을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 양반층의 출산율은 5.09명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내가 눈을 시퍼렇게 뜨며 살고 있는) 40년 전부터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불과 0.7명대에 머무른다. - P81

핸드폰은커녕 전화기도 없는 집에서 태어난 나로서는 지금의 급격한 변화를 감당하기가 벅차다. - P81

인제 그거 안 해유.
인제 그거 안 해요?
야, 안 해유.

이성배, 「공주장」, 『이 골목은 만만한 곳이 아니다』
(고두미, 2020) - P82

충청인의 ‘그거‘는 텍스트만으로는 무엇을 뜻하는지 절대 알 수가 없다. 대화 현장에 있어도 당사자가 아니면 어떤 것에 관한 대화인지 헷갈린다.  - P83

어서오세요 유심칩 바꿀라구요 번호가 몇 번이세요 저희가 일 년 이내면 무상으로 암만 어련허시겄어요 너덧 해 실컨 썼으니께둔 내구 갈으야겠죠 명의자 신분증 가지고오셨어요 유심칩을 바꾸시라구만 허던디요 신분증이 있어야지 변경이 어이참 아츰버텀 패약벨에 오라 가라


김병섭, 「오뉴월 손님은 눈깔망나니보다 무섭다」,
『암마뚜마』 (도서출판b, 2019) - P84

한 달에 100킬로미터도 차를 운행하지 않는 어르신이 제약회사 영업사원과 비슷한 보험료를 낸다든지, 데이터를 5기가도 안 쓰는 어르신이 무제한 요금제를 쓰는 일이 수두룩하다. 업체 입장에서 이런 우량 고객이 어디 있는가. - P85

"요즘 타는 거리만큼만 내는 보험도 있는데 바꿔 보세요."
했더니, "보험회사 박가 걔를 내가 10년 알었는디, 뭔 소리여."혹은 "그려, 밥은 먹었구?" 같은 대답만 돌아왔다.
둘이 다른 대답이지만 같은 뜻이다. 굳이 해석하자면 "나도알지만 귀찮아" 정도가 되지 않을까. - P85

요즘은 호구조사하듯 개인사를 물어보는 게 매우 실례다. 그렇다고 물어보지도 않은 사실을 말하는 건 tmi다. - P87

충청도에서는 설명이나 대답은 우회적으로 할지 모르지만 질문은 돌직구 그 자체다. 차라리 『동백꽃 필 무렵』에 등장하는 동네 주민처럼 대놓고 물어보기라도 하면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종종 든다. - P87

‘참혹햐‘라는 대목에서 반가움을 숨길 수 없었다. 우리 동네에서도 자주 쓰던 말이기 때문이다. 명사의 끝에 ‘햐‘라는 용언을 붙이면 십중팔구 충청도 사투리가 된다. - P89

셔터가 내려진 가게 앞에 망연자실하며 서 있는 주인에게
"망했슈?"라든지, 건강검진을 받고 온 친구에게 "뭐랴, 암이랴?" 하고 대놓고 묻기도 한다.
그것이 예의 아니고는 차치하고, 그렇다는 거다. - P89

"고뎅이를 잡어서 국을 끓여서 먹으믄
소화가 그르케 잘 되구 벤비도 그냥 없어져요,
이 고뎅이가."

SBS 프로그램『고향에서 온 편지』
70회(1999)에서 - P90

필성: 니가 나중에 포상금 타므는,
나랑 5대5로 나눠 먹는 거지
용배: 누가 5여


영화 「거북이 달린다』(2009)에서 - P94

그리고 그거 아는가? 2023년 여름 한국을 휩쓸었던 영화『범죄도시 2』 속 그 대사.
"누가 5야."
이 대사는 『거북이 달린다』에서 먼저 쓰였다는 사실. - P95

『내 고향 충청도』는 롯데자이언츠의 『부산 갈매기』, SSG랜더스의 『연안부두』처럼 한화이글스를 대표하는 지역 응원가다. 그렇기에 한화이글스 팬들은 『내 고향 충청도』를 들으면 야구부터 떠올린다. - P99

야구에 관심이 없더라도 대전에 가면 성심당뿐 아니라 야구장에 가보길 바란다. 흥겨운 응원가를 들으며 맥주를 마시고 있노라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 P99

머리말두 요약해유?

이원기, Peter Cho 공저, 『영어쿠데타』
(유앤아이코리아, 2002) - P102

영어학습지 영어쿠데타의 머리말 바로 뒤에 나오는 문장이다. 독특하게도 영어 쓰임새나 문법을 충청도 사투리로 설명했다. - P103

팬데믹이 끝난 후에도 극장 관객수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영화 한 편을 진득하게 보는 이가 줄었다. - P103

잠시의 지루함을 참지 못하는 사람도 늘었다. 틱톡이나 쇼츠처럼 1분도 채 되지 않는 영상조차 빨리감기 버튼이 없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현실에 어떤 두려움마저 느낄 정도다. - P103

몸주로 강림하신 게 분명햐?

김영진, 박혜정, 안상경 공저,
『충청도 앉은굿: 충청북도 무형유산 제20호』
(청주시, 2012) - P106

앉은굿이란 말 그대로 앉아서 하는 굿이다. 흔히 굿이라 하면 오색 한복을 입고 춤추는 법사를 연상하지만 충청도 법사는 흰옷을 입고 흰 고깔을 쓴다
- P107

불현듯 신이 대답을 안 하면 이 굿은 어떻게 진행될까 짓궂은 생각이 든다. - P107

"그랑께 예전부텀 고양일 영물이라 안 한 갑뉴.
저렇게 악에 악을 쓰다 디져야 약이 되니께,
참만 기다려유."

문상오, 『묘산문답』
(밥북, 2020) - P110

고양이가 관절에 효험이 있다는 이야기는 예부터 있었다. 고양이는 몸이 유연한 데다,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멀쩡한 관절을 갖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 P111

고양이로 만든 국을 나비탕이라고 한다. 레시피 중 하나가 ‘끓는 물에 산 채로 넣어야 한다‘이다. 어떻게 이런 가학적 상상을 인간의 건강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실현할 수 있는가.  - P111

친구가 내게 그리 살면 심심하지 않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나는 여행을 다니지도 않고, 골프를 치거나 낚시를 하지도 않는다. - P113

인간은 역사 대부분 심심했다. 일 년에 몇 번 없는 사형집행이나 왕의 행차, 결혼식 정도가 사람들의 시선을 뺏는 일이었다. - P113

안덕벌 떼과부가 따로 읎어

역경을 헤쳐 나가는 억척스러운 여성을
빗대어 이르는 충청도 속담 - P114

청주의 내덕동 일대의 옛 이름은 안덕벌이었다. 6.25전쟁 직후, 안덕벌에 남편을 잃은 여성들의 마을이 형성되었다. (당시에는 ‘과부촌‘이라 불렸다.)  - P115

그 배경에는 보도연맹 학살 사건이 있다 - P115

 보도연맹원 가입은 할당제로 이루어져 지역공무원들은 좌익 성향과 관계없는 일반인도 가입시켰다. 전쟁 직전에는 가입자 수가 수십만에 이르렀다. 전쟁이 발발하자 정부와 군은 보도연맹원들이 인민군에 협조할 것을 우려해이들을 무차별로 살해하기 시작한다. - P115

"어허, 정말이여! 허참, 그 애가
이게 정말이냔 말이여."

남정현, 「부주전상서」, 『남정현 대표소설선집』
(실천문학사, 2004) - P118

이항복이 죽은 지 수백 년이 흐른 지금, 말이나 소가 새끼를 낳으면 낳은 곳에서 키우지 어디로 보내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람은 어떤가. 서울 인구는 이항복이 살았던 한성 인구의 50배가 넘었다.  -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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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보다 실은 게이스케 씨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저한테 물어보고 싶은 것?! 그게 뭔가요?"
그러자 탐정은 한순간 망설이는 표정으로 "어, 뭐라고 하면 좋을까" 하고 이제 와서 고민하듯 머리를 쓸어 올리더니 겨우 질문을 꺼냈다. 요컨대 그거죠. 어젯밤에 꽤 오래 샤워를 하신 모양인데, 정말인가 싶어서요." - P306

탐정은 난감한 듯 턱을 문지르며 말했다. "왜 굳이 밤늦은 시간에 씻으신거죠?" - P307

"그런데 게이스케 씨, 어젯밤에 탐정님이 가지고 돌아온 도깨비가면 말인데요. 그건 사이다이지 가문에 얽힌 미술품 같은건가요? 아니면 가문과는 아무 연관도 없는 물건인가요?" - P308

"그 이야기라면 아쓰히코 씨께 들었어요. 사이다이지 출판에서 첫 번째로 출간한 책이 『모모타로』 그림책이었다면서요." 사야카는문득 떠오른 생각을 말했다. "그 그림책을 지금 볼 수 있나요?" - P308

게이스케는 작게 소리치고 고개를 저었다. "여기 ‘화장‘은어디까지나 별장입니다. 그런 중요한 책은 두지 않아요. 있다면 회사창고에 있지 않으려나요." - P309

그 말에 게이스케는 아리송한 표정으로 다시 방한복판으로 돌아오면서 스님에게 물었다.
"무슨 말씀인데요? 혹시 이번 사건과 관련 있는 이야기입니까?"
"흠, 그것 말인데, 실은 소승도 어떤 시주님께 들었을 뿐이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망설여집니다. 어쩌면 이번 사건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르고, 전혀 관계 없을지도 모르지요. 그래서 두 분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 P310

스님은 탐정을 똑바로 쳐다보고 대답했다. "그 기적의 무대가 북쪽 벼랑이기 때문이지요. 일명 ‘도깨비 뒤집기 벼랑‘. 어젯밤에 빨간 도깨비가 떨어졌다는 그 벼랑 바로 밑에서 일어난 신기한 일입니다. 어떻습니까, 탐정님, 궁금하신지요? 소승도 어젯밤에 있었던술래잡기의 전말을 듣고, 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했습니다." - P311

3

도라쿠 스님은 마작 테이블의 의자를 끌어당겨서 앉았다. (중략).
"그래서 무슨 이야기인데요? 남자 중학생들의 체험담이라고 하셨는데, 걔들이 뭘 어쨌길래요?" - P312

하지만 다카오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위험하기는 학교 친구와 밤낚시라니 아주 재미있겠는데."
"오오, 실제로 재미있었던 모양입니다." 스님이 말을 이었다. - P312

사야카는 어깨를 움찔했다. "그런데・・・・・・ 뭐요?"
"즐겁게 낚시하던 그들에게 갑자기 재난이 떨어져 내렸어요. 말그대로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린 거지요."
다카오는 얕잡아 보는 듯한 어조로 "이야, 머리 위에라" 하고 말했다. "벼랑 위에서 빨간도깨비라도 떨어졌습니까?"
"그렇다면 재난이긴 해도 기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 P313

"응?! 소승은 벼랑에서 뭔가 떨어졌다고 한 적이 없는데…
"어라?!" 듣고 보니 그랬나 싶어 사야카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런 사야카에게는 아랑곳없이 스님은 뜻밖의 말을 꺼냈다. - P313

"위가 아니었습니다. 그건 바닷속에서 튀어나온 모양이에요. 바닷속에서 점프하듯 나타난 거지요. 그리고 순식간에 배 위쪽으로높이 떠올랐다는군요."
사야카는 스님의 말이 무슨 뜻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얼떨별할 뿐이었다. - P313

"아니요, 인간이었습니다." 스님은 진지한 표정으로 딱 잘라 말했다. - P313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 듯 사야카가 입을 열었다. "저기, 스님. 상황을 좀 더 자세하게 알려 주시지 않겠어요? 예를 들어 중학생들은 해수면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나요. 아니면 다른 곳을 보면서수다라도 떨고 있었나요?" - P314

한편 다카오는 냉정한 말투로 이야기를 재촉했다. "그런데 스님, 바닷속에서 튀어나왔다는 흰옷을 입은 사람은 어떻게 됐습니까?
점프하고 나서 다시 바닷속으로 돌아갔나요? 그렇다면 그자는 인어라는 건데..." - P315

"배 위에요?! 그럼 중학생들은 그 사람을 지척에서 봤겠군요."
"오오. 물론 보았지요. 남자였답니다. 그 이상은 모르고요." - P316

"그럴 여유가 없었던 모양이에요. 남자가 떨어진 충격으로 배가 심하게 흔들리다 순식간에 뒤집혔거든요. 중학생들은 어두운 바다에 빠져서 흰옷차림 남자를 신경 쓸 처지가 아니었어요." - P316

사야카의 질문에 도라쿠 스님은 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당시 어른들에게 자신들이 체험한 일을 있는 그대로 밝히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런 기적 같은 체험담을 어른들이 믿어줄리 없으니. 그들이 정확하게 어디까지 이야기했는지는 소승도 모르고요. 다만 다음 날 부근 바다를 수색하기는 했나 보더군요" - P317

"참고로 살아남은 중학생 중 한 명이 묘한 소리를 했다는군요.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바닷속에서 기묘한 걸 목격했다나." - P318

"용이요?!" 탐정은 어이없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용이라면 드래곤...... 말씀입니까?" - P318

도라쿠 스님이 그렇게 말한 직후에 탐정은 당구대 가장자리에서 주르르 미끄러져 떨어졌다. 그리고 의외라는 듯이 눈을 깜빡거렸다.
2, 20년?! 어, 이거 일어난 지 20년도 넘게 지난 일이었습니까?!"
"그렇습니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 스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소승이 최근 이야기라고 한 적은 없는데요." - P318

"으음, 아무래도 이번 사건과는 관계없지 않을까....... 어, 23년? 으엥 스님 방금 23년 전이라고 하셨습니까?!" 다카오는 문득 뭔가에 생각이 미친 듯 괴상한 소리를 질렀다.  - P319

"그렇습니다. 딱 23년 전이지요. 계절은 봄방학 초반이라고들은기억이 나는데. 그렇다면 지금이 2018년이니까 1995년 3월이겠군요."
"아아... 1995년・・・・・・ 3월......."
혼잣말하듯 중얼거리던 다카오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사야카도 긴장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 P319

두 가지 일은 같은 날 밤에 일어난 걸까? - P320

 9장


 고바야카와 다카오의 모험

1


도라쿠 스님이 게임룸에서 말해 준 23년 전의 신기한 사건. 그 이야기를 들은 고바야카와 다카오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나선계단을 내려가 ‘화장‘ 지하로 향했다. - P321

사야카는 안경을 손끝으로 밀어 올리며 로프를 빤히 바라보았다.
"안성맞춤이라니, 이 로프로 뭘 하려고요?"
"실은 슬슬 목을 매 볼까 해서." 탐정은 멋진 농담을 날렸다.
"이야, 사건이 미궁에 빠진 책임을 지려는 건가요? 구질구질하지 않아서 좋네요." 사야카는 웃음기 하나 없이 말했다. - P322

사야카의 머릿속에 얼토당토않은 용도가 떠올랐다. (중략). 그런 사야카 앞에서 탐정은 잡동사니를 더욱 헤집어서 쓸 만한 물건을 몇 개 더 찾아냈다. - P322

정면 현관이 침묵과 정적에 휩싸인 직후, 두 사람 사이에 격렬한 내분이 발발했다.
"헛소리하지 말고 당신도 따라와!" "싫어요. 폭풍이 치잖아요!"
"이런 박정한 인간 같으니라고!" "하지만 무리라고요!" "무리는 무슈우리야!" - P323

2

이리하여 사야카도 비옷을 챙겨 입었다. 변호사다운 정장 차림에 녹색 판초우의라는, 어떤 의미에서 전위적인 패션이다. - P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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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나오는 대사의 영문 번역은 Netflix의 영어 자막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일부 변경된 것도 있습니다) - 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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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enchant
(~에게) 마법을 걸다


마법 같은 효과로 누군가를 ‘매료시키다‘라고 할때 사용합니다. 명사인 enchantment는 ‘마력‘이나 ‘매력‘이라는 뜻입니다. - P17

9 resurrect
소생하다

‘죽음에서 되살려내다, 부활시키다‘라는 뜻입니다.
‘되살아나다‘는 수동태로 써서 be resurrected라고 표현합니다. - P16

 clean out


clean out은 ‘~을 비우다‘라는 뜻입니다. be cleaned out은 ‘텅 비었다‘‘돈이 하나도 없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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