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보다 실은 게이스케 씨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저한테 물어보고 싶은 것?! 그게 뭔가요?" 그러자 탐정은 한순간 망설이는 표정으로 "어, 뭐라고 하면 좋을까" 하고 이제 와서 고민하듯 머리를 쓸어 올리더니 겨우 질문을 꺼냈다. 요컨대 그거죠. 어젯밤에 꽤 오래 샤워를 하신 모양인데, 정말인가 싶어서요." - P306
탐정은 난감한 듯 턱을 문지르며 말했다. "왜 굳이 밤늦은 시간에 씻으신거죠?" - P307
"그런데 게이스케 씨, 어젯밤에 탐정님이 가지고 돌아온 도깨비가면 말인데요. 그건 사이다이지 가문에 얽힌 미술품 같은건가요? 아니면 가문과는 아무 연관도 없는 물건인가요?" - P308
"그 이야기라면 아쓰히코 씨께 들었어요. 사이다이지 출판에서 첫 번째로 출간한 책이 『모모타로』 그림책이었다면서요." 사야카는문득 떠오른 생각을 말했다. "그 그림책을 지금 볼 수 있나요?" - P308
게이스케는 작게 소리치고 고개를 저었다. "여기 ‘화장‘은어디까지나 별장입니다. 그런 중요한 책은 두지 않아요. 있다면 회사창고에 있지 않으려나요." - P309
그 말에 게이스케는 아리송한 표정으로 다시 방한복판으로 돌아오면서 스님에게 물었다. "무슨 말씀인데요? 혹시 이번 사건과 관련 있는 이야기입니까?" "흠, 그것 말인데, 실은 소승도 어떤 시주님께 들었을 뿐이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망설여집니다. 어쩌면 이번 사건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르고, 전혀 관계 없을지도 모르지요. 그래서 두 분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 P310
스님은 탐정을 똑바로 쳐다보고 대답했다. "그 기적의 무대가 북쪽 벼랑이기 때문이지요. 일명 ‘도깨비 뒤집기 벼랑‘. 어젯밤에 빨간 도깨비가 떨어졌다는 그 벼랑 바로 밑에서 일어난 신기한 일입니다. 어떻습니까, 탐정님, 궁금하신지요? 소승도 어젯밤에 있었던술래잡기의 전말을 듣고, 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했습니다." - P311
3
도라쿠 스님은 마작 테이블의 의자를 끌어당겨서 앉았다. (중략). "그래서 무슨 이야기인데요? 남자 중학생들의 체험담이라고 하셨는데, 걔들이 뭘 어쨌길래요?" - P312
하지만 다카오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위험하기는 학교 친구와 밤낚시라니 아주 재미있겠는데." "오오, 실제로 재미있었던 모양입니다." 스님이 말을 이었다. - P312
사야카는 어깨를 움찔했다. "그런데・・・・・・ 뭐요?" "즐겁게 낚시하던 그들에게 갑자기 재난이 떨어져 내렸어요. 말그대로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린 거지요." 다카오는 얕잡아 보는 듯한 어조로 "이야, 머리 위에라" 하고 말했다. "벼랑 위에서 빨간도깨비라도 떨어졌습니까?" "그렇다면 재난이긴 해도 기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 P313
"응?! 소승은 벼랑에서 뭔가 떨어졌다고 한 적이 없는데… "어라?!" 듣고 보니 그랬나 싶어 사야카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런 사야카에게는 아랑곳없이 스님은 뜻밖의 말을 꺼냈다. - P313
"위가 아니었습니다. 그건 바닷속에서 튀어나온 모양이에요. 바닷속에서 점프하듯 나타난 거지요. 그리고 순식간에 배 위쪽으로높이 떠올랐다는군요." 사야카는 스님의 말이 무슨 뜻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얼떨별할 뿐이었다. - P313
"아니요, 인간이었습니다." 스님은 진지한 표정으로 딱 잘라 말했다. - P313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 듯 사야카가 입을 열었다. "저기, 스님. 상황을 좀 더 자세하게 알려 주시지 않겠어요? 예를 들어 중학생들은 해수면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나요. 아니면 다른 곳을 보면서수다라도 떨고 있었나요?" - P314
한편 다카오는 냉정한 말투로 이야기를 재촉했다. "그런데 스님, 바닷속에서 튀어나왔다는 흰옷을 입은 사람은 어떻게 됐습니까? 점프하고 나서 다시 바닷속으로 돌아갔나요? 그렇다면 그자는 인어라는 건데..." - P315
"배 위에요?! 그럼 중학생들은 그 사람을 지척에서 봤겠군요." "오오. 물론 보았지요. 남자였답니다. 그 이상은 모르고요." - P316
"그럴 여유가 없었던 모양이에요. 남자가 떨어진 충격으로 배가 심하게 흔들리다 순식간에 뒤집혔거든요. 중학생들은 어두운 바다에 빠져서 흰옷차림 남자를 신경 쓸 처지가 아니었어요." - P316
사야카의 질문에 도라쿠 스님은 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당시 어른들에게 자신들이 체험한 일을 있는 그대로 밝히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런 기적 같은 체험담을 어른들이 믿어줄리 없으니. 그들이 정확하게 어디까지 이야기했는지는 소승도 모르고요. 다만 다음 날 부근 바다를 수색하기는 했나 보더군요" - P317
"참고로 살아남은 중학생 중 한 명이 묘한 소리를 했다는군요.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바닷속에서 기묘한 걸 목격했다나." - P318
"용이요?!" 탐정은 어이없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용이라면 드래곤...... 말씀입니까?" - P318
도라쿠 스님이 그렇게 말한 직후에 탐정은 당구대 가장자리에서 주르르 미끄러져 떨어졌다. 그리고 의외라는 듯이 눈을 깜빡거렸다. 2, 20년?! 어, 이거 일어난 지 20년도 넘게 지난 일이었습니까?!" "그렇습니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 스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소승이 최근 이야기라고 한 적은 없는데요." - P318
"으음, 아무래도 이번 사건과는 관계없지 않을까....... 어, 23년? 으엥 스님 방금 23년 전이라고 하셨습니까?!" 다카오는 문득 뭔가에 생각이 미친 듯 괴상한 소리를 질렀다. - P319
"그렇습니다. 딱 23년 전이지요. 계절은 봄방학 초반이라고들은기억이 나는데. 그렇다면 지금이 2018년이니까 1995년 3월이겠군요." "아아... 1995년・・・・・・ 3월......." 혼잣말하듯 중얼거리던 다카오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사야카도 긴장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 P319
두 가지 일은 같은 날 밤에 일어난 걸까? - P320
9장
고바야카와 다카오의 모험
1
도라쿠 스님이 게임룸에서 말해 준 23년 전의 신기한 사건. 그 이야기를 들은 고바야카와 다카오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나선계단을 내려가 ‘화장‘ 지하로 향했다. - P321
사야카는 안경을 손끝으로 밀어 올리며 로프를 빤히 바라보았다. "안성맞춤이라니, 이 로프로 뭘 하려고요?" "실은 슬슬 목을 매 볼까 해서." 탐정은 멋진 농담을 날렸다. "이야, 사건이 미궁에 빠진 책임을 지려는 건가요? 구질구질하지 않아서 좋네요." 사야카는 웃음기 하나 없이 말했다. - P322
사야카의 머릿속에 얼토당토않은 용도가 떠올랐다. (중략). 그런 사야카 앞에서 탐정은 잡동사니를 더욱 헤집어서 쓸 만한 물건을 몇 개 더 찾아냈다. - P322
정면 현관이 침묵과 정적에 휩싸인 직후, 두 사람 사이에 격렬한 내분이 발발했다. "헛소리하지 말고 당신도 따라와!" "싫어요. 폭풍이 치잖아요!" "이런 박정한 인간 같으니라고!" "하지만 무리라고요!" "무리는 무슈우리야!" - P323
2
이리하여 사야카도 비옷을 챙겨 입었다. 변호사다운 정장 차림에 녹색 판초우의라는, 어떤 의미에서 전위적인 패션이다. - P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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