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있어야 초상집 같어."

박연선,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
(놀, 2016) - P66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울지 못했다.
그제야 내겐 우는 기능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 P67

"그 옥상*만 보면 지 애비가 모집** 나갔다나오면서 고상했다던 생각이 나서 딱해못 젼디겄슈."

이문구, 「행운유수」, 『관촌수필』
(문학과지성사, 2018)


* 건물 옥상이 아니라 어떤 인물을 가리킨다.
** 일제강점기에 한국인 젊은이를 모아 주로 해외에 노동자로 데리고 간 일을 두루 칭하는 말. - P68

20대 초에 공장에서 일을 했다. 가진 게 몸뿐이라 그랬다. 공장을 고를 때 프레스가 있는 공장은 가지 않기로 했다. 유압프레스나 모터프레스에 손가락이 절단된 사람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 P69

"생각이 많으믄 다치는겨." 그분이 내게 일을 가르치며 했던 말이었다.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내 팔에도 그가 가진 것과 비슷한 흉터가 생긴 후에야 깨달았다. - P69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 공장엔 ‘프레스‘만 없었다. 나는프레스에 끼는 일은 없었지만 전기에 감전돼 쓰러지거나, 고온의 기름에 데거나, 무거운 물건을 들다 허리를 다치곤 했다. - P69

"안전장치가 읎어서 그려." - P69

지난 2023년 2월 한용운의 『님의 침묵』 초판본이 온라인 경매에서 1억5100만 원에 낙찰되어 현대문학 최고가를 기록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초판본과 재판본 모두 출간 직후 일제가 금서로 정한 탓에 희귀본으로 남았다고 한다. - P71

홍성문화원에 따르면 ‘사러졌다‘는 말은 ‘사라지다‘의 충남홍성 방언이라고 한다. 방언으로 쓰인 시를 표준어로 바꾼 건 왜곡 아닐까? (중략).
언어학자들의 깊은 뜻이 있었겠지.. - P71

"술 마시지 말고 밥 열심히 먹으래유."
"이상 별로 없다는 얘기구만. 그려, 의사가 시키는 대로 혀."

김종광, 「낭만 삼겹살」, 『낙서문학사』
(문학과지성사, 2006) - P74

 사람의 수명이 80년이라고 쳤을 때, 나는 절반 이상을 살아 중년의 반열에 들었다. ‘생애전환기 무료검진‘ 어쩌고 하면서 안내문도 날아든다. - P75

내가 내 진료를 받기 전에 초음파검사와 혈액검사 비용이30만 원이나 나온다고 해서 ‘에휴 어쩌나 걱정하고 있던 중, 고양이가 아파서 고양이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갔다. 면역성 질환이 있다고 하던데 병원비가 14억5천 4백23만4천 원 정도 나왔다. 정신이 멍해지면서 금전 감각이 속절없이 무뎌진다. - P75

우리집에는 아직도 ‘국회의원 신경식‘이라는 글씨가 각인된금도금 티스푼이 있다. 신경식은 충청도 출신 정치인으로, 청주-청원 지역구에 야당인 민주한국당 (당시 여당 민정당) 소속으로 국회의원 선거에 나섰으나 두 번 낙선한다. 이후, 1988년 여당인민정당 후보로 출마해 이후 내리 네 번 국회의원 배지를 단다. - P77

"오줌은 앉아서 눠야지유"라는 말은 여자라면 다 된다는 의미였을 터다. 그러나 이 말은 모호하다. 성정체성은 출생 시 성별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 P79

숨이 끊어졌다고 생각한 부모가 윗목에 밀어놓고 날 새면 가져다 묻는다고 했는디 날 새고 보니께 아가 꼬무락대고 핏기가 돌아 살아났다는디 그때부터 아가 영 데퉁* 맞고좀 모자라


송진권, 「조맹선이 소 몰 듯이」, 『자라는 돌』
(창비, 2011)



* 거칠고 미련하다는 뜻의 표준어, - P80

옆의 소설을 읽다 ‘뭐야, 내 이야긴가‘ 하고 표지를 들춰 보니 저자의 고향이 충북이라고 나온다. 뭐지, 우리 동네 사람인가!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 P81

 박한선 신경인류학자가 『동아사이언스』에 쓴 「저출산의 미스터리」라는 기고에 따르면, 구석기시대에는 4~8명의 자식을 낳았을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 양반층의 출산율은 5.09명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내가 눈을 시퍼렇게 뜨며 살고 있는) 40년 전부터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불과 0.7명대에 머무른다. - P81

핸드폰은커녕 전화기도 없는 집에서 태어난 나로서는 지금의 급격한 변화를 감당하기가 벅차다. - P81

인제 그거 안 해유.
인제 그거 안 해요?
야, 안 해유.

이성배, 「공주장」, 『이 골목은 만만한 곳이 아니다』
(고두미, 2020) - P82

충청인의 ‘그거‘는 텍스트만으로는 무엇을 뜻하는지 절대 알 수가 없다. 대화 현장에 있어도 당사자가 아니면 어떤 것에 관한 대화인지 헷갈린다.  - P83

어서오세요 유심칩 바꿀라구요 번호가 몇 번이세요 저희가 일 년 이내면 무상으로 암만 어련허시겄어요 너덧 해 실컨 썼으니께둔 내구 갈으야겠죠 명의자 신분증 가지고오셨어요 유심칩을 바꾸시라구만 허던디요 신분증이 있어야지 변경이 어이참 아츰버텀 패약벨에 오라 가라


김병섭, 「오뉴월 손님은 눈깔망나니보다 무섭다」,
『암마뚜마』 (도서출판b, 2019) - P84

한 달에 100킬로미터도 차를 운행하지 않는 어르신이 제약회사 영업사원과 비슷한 보험료를 낸다든지, 데이터를 5기가도 안 쓰는 어르신이 무제한 요금제를 쓰는 일이 수두룩하다. 업체 입장에서 이런 우량 고객이 어디 있는가. - P85

"요즘 타는 거리만큼만 내는 보험도 있는데 바꿔 보세요."
했더니, "보험회사 박가 걔를 내가 10년 알었는디, 뭔 소리여."혹은 "그려, 밥은 먹었구?" 같은 대답만 돌아왔다.
둘이 다른 대답이지만 같은 뜻이다. 굳이 해석하자면 "나도알지만 귀찮아" 정도가 되지 않을까. - P85

요즘은 호구조사하듯 개인사를 물어보는 게 매우 실례다. 그렇다고 물어보지도 않은 사실을 말하는 건 tmi다. - P87

충청도에서는 설명이나 대답은 우회적으로 할지 모르지만 질문은 돌직구 그 자체다. 차라리 『동백꽃 필 무렵』에 등장하는 동네 주민처럼 대놓고 물어보기라도 하면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종종 든다. - P87

‘참혹햐‘라는 대목에서 반가움을 숨길 수 없었다. 우리 동네에서도 자주 쓰던 말이기 때문이다. 명사의 끝에 ‘햐‘라는 용언을 붙이면 십중팔구 충청도 사투리가 된다. - P89

셔터가 내려진 가게 앞에 망연자실하며 서 있는 주인에게
"망했슈?"라든지, 건강검진을 받고 온 친구에게 "뭐랴, 암이랴?" 하고 대놓고 묻기도 한다.
그것이 예의 아니고는 차치하고, 그렇다는 거다. - P89

"고뎅이를 잡어서 국을 끓여서 먹으믄
소화가 그르케 잘 되구 벤비도 그냥 없어져요,
이 고뎅이가."

SBS 프로그램『고향에서 온 편지』
70회(1999)에서 - P90

필성: 니가 나중에 포상금 타므는,
나랑 5대5로 나눠 먹는 거지
용배: 누가 5여


영화 「거북이 달린다』(2009)에서 - P94

그리고 그거 아는가? 2023년 여름 한국을 휩쓸었던 영화『범죄도시 2』 속 그 대사.
"누가 5야."
이 대사는 『거북이 달린다』에서 먼저 쓰였다는 사실. - P95

『내 고향 충청도』는 롯데자이언츠의 『부산 갈매기』, SSG랜더스의 『연안부두』처럼 한화이글스를 대표하는 지역 응원가다. 그렇기에 한화이글스 팬들은 『내 고향 충청도』를 들으면 야구부터 떠올린다. - P99

야구에 관심이 없더라도 대전에 가면 성심당뿐 아니라 야구장에 가보길 바란다. 흥겨운 응원가를 들으며 맥주를 마시고 있노라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 P99

머리말두 요약해유?

이원기, Peter Cho 공저, 『영어쿠데타』
(유앤아이코리아, 2002) - P102

영어학습지 영어쿠데타의 머리말 바로 뒤에 나오는 문장이다. 독특하게도 영어 쓰임새나 문법을 충청도 사투리로 설명했다. - P103

팬데믹이 끝난 후에도 극장 관객수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영화 한 편을 진득하게 보는 이가 줄었다. - P103

잠시의 지루함을 참지 못하는 사람도 늘었다. 틱톡이나 쇼츠처럼 1분도 채 되지 않는 영상조차 빨리감기 버튼이 없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현실에 어떤 두려움마저 느낄 정도다. - P103

몸주로 강림하신 게 분명햐?

김영진, 박혜정, 안상경 공저,
『충청도 앉은굿: 충청북도 무형유산 제20호』
(청주시, 2012) - P106

앉은굿이란 말 그대로 앉아서 하는 굿이다. 흔히 굿이라 하면 오색 한복을 입고 춤추는 법사를 연상하지만 충청도 법사는 흰옷을 입고 흰 고깔을 쓴다
- P107

불현듯 신이 대답을 안 하면 이 굿은 어떻게 진행될까 짓궂은 생각이 든다. - P107

"그랑께 예전부텀 고양일 영물이라 안 한 갑뉴.
저렇게 악에 악을 쓰다 디져야 약이 되니께,
참만 기다려유."

문상오, 『묘산문답』
(밥북, 2020) - P110

고양이가 관절에 효험이 있다는 이야기는 예부터 있었다. 고양이는 몸이 유연한 데다,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멀쩡한 관절을 갖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 P111

고양이로 만든 국을 나비탕이라고 한다. 레시피 중 하나가 ‘끓는 물에 산 채로 넣어야 한다‘이다. 어떻게 이런 가학적 상상을 인간의 건강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실현할 수 있는가.  - P111

친구가 내게 그리 살면 심심하지 않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나는 여행을 다니지도 않고, 골프를 치거나 낚시를 하지도 않는다. - P113

인간은 역사 대부분 심심했다. 일 년에 몇 번 없는 사형집행이나 왕의 행차, 결혼식 정도가 사람들의 시선을 뺏는 일이었다. - P113

안덕벌 떼과부가 따로 읎어

역경을 헤쳐 나가는 억척스러운 여성을
빗대어 이르는 충청도 속담 - P114

청주의 내덕동 일대의 옛 이름은 안덕벌이었다. 6.25전쟁 직후, 안덕벌에 남편을 잃은 여성들의 마을이 형성되었다. (당시에는 ‘과부촌‘이라 불렸다.)  - P115

그 배경에는 보도연맹 학살 사건이 있다 - P115

 보도연맹원 가입은 할당제로 이루어져 지역공무원들은 좌익 성향과 관계없는 일반인도 가입시켰다. 전쟁 직전에는 가입자 수가 수십만에 이르렀다. 전쟁이 발발하자 정부와 군은 보도연맹원들이 인민군에 협조할 것을 우려해이들을 무차별로 살해하기 시작한다. - P115

"어허, 정말이여! 허참, 그 애가
이게 정말이냔 말이여."

남정현, 「부주전상서」, 『남정현 대표소설선집』
(실천문학사, 2004) - P118

이항복이 죽은 지 수백 년이 흐른 지금, 말이나 소가 새끼를 낳으면 낳은 곳에서 키우지 어디로 보내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람은 어떤가. 서울 인구는 이항복이 살았던 한성 인구의 50배가 넘었다.  -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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