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감수하고 추천하며]

지능의 역사라는 무대에서 펼쳐진
인간 뇌의 경이로운 여정

책을 감수하는 과정은 대개 고역이다. 오역을 놓치지 않기 위해 신경을 쓰다보니 종종 머리가 아프다. 하지만 흥미로운 책, 수려하게 번역된 글을 만나면 오히려 즐겁다. - P11

다섯 번의 놀라운 혁신


인류가 지닌 지적 능력의 기원과 진화를 이해하는 것은 뇌과학자들에게도 여전히 도전적인 질문이다. 맥스 배넷의 <지능의 기원>은 이러한 궁금증에 답을 제시하고 있으며, 우리의 지능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어디로 향하는지를깊이 있게 탐색하는 탁월한 저작이다. 뇌과학과 진화생물학, 철학의 경계를넘나들며 인간 지능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서술하고 있기에, 인류 문명의 근원에 대한 호기심을 가진 독자들에게 강력히 추천할 만한 역작이다. - P12

(전략).
이러한 다섯 번의 혁신적 도약은 인간 지능의 복잡성과 적응력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맥스 배넷은 이 다섯 번의 혁신이 신경 구조와기능에 중요한 도약을 이뤄냈고 오늘날의 인간 지능을 탄생시킬 수 있었음을강조한다. 이러한 발상이 독창적인 이유는 지능의 발달을 뇌의 진화적 혁신과 환경 적응이 상호작용한 결과로 설명한다는 데 있다. - P13

인공지능은 어디로 가는가?

《지능의 기원》은 인간 지능의 진화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미래 인공지능의 발전 방향에 대한 비전을 제시한다. 맥스 배넷은 먼저 인간 지능과 인공지능의 비교를 통해 기술 낙관주의에 신중한 질문을 던진다.  - P14

맥스 배넷의 《지능의 기원》은 단순한 뇌과학책이 아니다. 이 책은 신경과학뿐 아니라 진화생물학, 비교심리학, 인공지능 분야의 연구를 종합해 인간 지능의 기원을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한다. 이것은 인류 지능의 기원과 진화를 아우르는 사고의 향연이자 우리 자신이라는 지적 존재에 대한 성찰로 이끄는 초대장이다.  - P14

 뇌과학자뿐 아니라 인공지능 연구자, 철학자 그리고 인간의 본질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지적으로 흔들어놓는다. 이 책을 덮을때쯤, 독자는 인간 지능이라는 놀라운 기적에 다시 한 번 경외감을 표하게 될것이다.


정재승(KAIST 뇌인지과학과 교수, 융합인재학부 학부장) - P15

[들어가며]

AI의 눈으로
인류지능의 역사를 재구성하다


우주 진출 경쟁, 쿠바 미사일 위기, 소아마비 백신 도입 등으로 전 세계가 떠들썩했던 1962년 9월,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인류의 역사에서 다는 사건들만큼이나 중요한 이정표가 하나 세워졌다. 1962년 가을에 나온 미래 예측이었다. - P18

. AI는 이제 체스나 바둑 같은 게임에서 인간 챔피언을 이기고, 영상의학과 전문의처럼 방사선 이미지에서 종양을 찾아낸다. AI가 자동차 자율주행을 선보일 날도 멀지 않았다. 지난 몇 년동안은 대형언어모델 large language model, LLM*에서 이룬 새로운 발전 덕분에 챗GPTChatGPT 같은 제품도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 레이블링되지 않은 방대한 양의 글을 학습하는 인공지능 모델-옮긴이 - P20

AI 발전의 긴 여정에서 사람 수준의 지능을 만들어내는 데 얼마나 가까워졌느냐는 질문에 답하기는 늘 어려웠다. 1960년대에 문제해결 알고리즘을만드는 데 성공한 후에 AI의 선구자 마빈 민스키 Marvin Minsky는 이와 같이 선언한 것으로 유명하다. "앞으로 3년에서 8년 안에 평균적인 사람의 일반지능을갖춘 기계가 등장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 P20

이 목표에 우리가 얼마나 가까워졌는지 판단하기란 점점 더 어려워지고있다. 만약 AI 시스템이 한 과제에서 사람보다 더 뛰어난 성과를 낸다면 사람이 문제를 해결하는 원리를 그 AI 시스템이 이해했다는 의미일까? 사람보다훨씬 빠른 속도로 계산하는 계산기는 실제로 수학을 이해하는 것일까? - P21

현재 사회 곳곳에 빠르게 확산되는 챗GPT가 출시되기 1년 전인 2021년에 나는 그 전신인 GPT-3라는 LLM을 사용하고 있었다.* GPT-3는 인터넷전체에서 수집한 방대한 텍스트를 바탕으로 훈련을 했고, 프롬프트prompt가주어지면 이 말뭉치corpus를 이용해서 가장 가능성이 높은 대답을 내놓는 패턴매칭 pattern matching을 시도했다


2024년, 챗GPT는 GPT-3의 오류를 개선한 GPT-40 버전의 기술을 사용한다. 옮긴이 - P21

GPT-3와 상호작용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그 성취와 오류 모두에 마음을 사로잡혔다. GPT-3는 어떤 면에서는 대단히 똑똑하다가도 어떤 면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멍청했다. GPT-3에게 18세기 감자 농업*과 세계화의 관계를 주제로 논문을 작성해달라고 요청하면 놀라울 정도로 논리적인 논문을 받아볼 수 있다. 그런데 ‘창문 없는 지하실에서 위를 올려다 보면 무엇이보일까?‘라는 상식적인 질문을 하면 완전히 비상식적으로 대답한다.³


* 감자는 관상용 식물로 키우다가 18세기부터 유럽에서 주식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옮긴이 - P22

3. 내가 GPT-3에게 다음의 문장을 마무리해 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창이 없는 지하실에 들어와있다. 하늘을 바라보니..." 그러자 GPT-3는 이렇게 답했다. "빛이 보인다. 나는 그것이 별이라는 것을 안다. 행복하다." 실제로는 지하실 안에서 위를 올려다 봐도 별이 보일 리가 없다. 천장만 보일 것이다. 2023년에 출시된 GPT-4처럼 발전한 LLM은 이런 상식적인 질문에 더 정확하게 대답한다. 이 부분은 22장을 참고하라. - P498

자연의 단서

인류는 비행의 원리를 이해하고자 했을 때 새가 하늘을 나는 모습에서 영감을 얻었다. 게오르크 데 메스트랄George de Mestral은 옷에 귀찮게 달라붙는 우엉열매의 가시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찍찍이 벨크로 Velcro를 발명했다. 벤저민 프랭클린 Benjamin Franklin 은 번개가 치는 모습을 보고 전기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실마리를 번쩍 얻었다. 인류 혁신의 역사에서 자연은 오랫동안 뛰어난 길잡이 노릇을 했다. - P23

뇌를 연구하다 보면 손에 잡힐 듯 말듯 감질나면서도 짜증이 난다. 눈에서 불과 3센티미터 정도 안쪽에 우주에서 가장 경이로운 대상이 자리 잡고있다. 그 안에 지능의 본질, 사람과 비슷한 AI를 구축하는 방법, 인간이 지금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이유에 대한 비밀이 숨어 있다. 그 비밀은 멀리 있지도 않으며 그 비밀 덕분에 매년 새로 태어나는 아기의 머릿속에서 뇌가 수백만 번 재구성된다 - P24

뇌 박물관 이용하기

나는 AI를 작동시킬 방법은 딱 한 가지, 인간의 뇌와 비슷한 방식⁵으로 연산을 수행하는 것이라 늘 확신해왔다.

-제프리 힌턴Geoffrey Hinton, 2024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AI의 아버지 중 한 명으로 인정받고 있다.


인류는 우주선을 쏘아 올리고 원자를 쪼개며 유전자를 편집한다. 하지만 다른 동물들은 바퀴 하나도 발명하지 못했다.
인류의 발명품이 훨씬 많으니까 다른 동물의 뇌에서는 배울 것이 없다고생각할 수도 있다. 사람의 뇌는 다른 동물의 뇌와 달리 너무나 독특하고, 우리를 똑똑하게 만드는 비밀이 특별한 뇌 구조에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반 현실은 그렇지 않다. - P25

5. "토론토대학교 컴퓨터과학자들이 인공지능에서 이룬 혁신적인 연구로 국제적인 상을 받다(U of T computer scientist takes international prize for groundbreaking work in AI)"
된 힌턴의 말에서 인용. U of T News. January 18, 2017, https://www.utoronto.ca/news/u-t-computer-scientist-takes-international prize-groundbreaking-work-ai. - P498

동물계 전반에 보이는 이러한 뇌의 유사성에는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 유사성이 바로 단서다. 지능의 본질에 관한 단서, 우리 자신에 관한 단서, 우리의 과거에 대한 단서인 것이다.
오늘날 인간의 뇌는 복잡하지만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뇌는 의도가없고 혼란스러운 진화라는 과정으로부터 등장했다. 생명체 번식에 도움이 되느냐 마느냐에 따라 형질의 작고 무작위적인 변이 variation가 선택되거나 제거됐다. - P26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최초의 뇌를 조사하고 그 작동방식과 그로 인해가능해진 기능들을 이해할 수만 있다면, 나아가 인간으로 이어진 계통 안에서 뇌가 점점 복잡해진 과정을 추적해 각각의 물리적 변화와 그로 인해 가능해진 지적 능력을 관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럴 수만 있다면 그 결과로 탄생한 복잡성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생물학자 테오도시우스 도브잔스키 Theodosius Dobzhansky는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다. "생물학에서는 진화의 관점으로 비춰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다." - P26

층이라는 미신

인간의 뇌를 이해하기 위한 진화적 틀을 제안한 사람이 내가 처음은 아니다.
이런 틀은 오랜 전통이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1960년대에 신경과학자폴 매클레인 Paul MacLean이 공식화한 틀이다. 매클레인은 인간의 뇌가 세 개의층(3중뇌 triune brain)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각의 층은 또 다른 층 위에 만들어졌다는 가설을 세웠다. - P28

매클레인은 파충류의 뇌가 공격성, 영토 지키기 같은 기본적인 생존 본능의 중추라고 주장했다. 둘레계통은 공포, 부모 애착, 성욕, 배고픔 같은 감정의 중추다. 새겉질은 인지기능의 중추이며 언어 능력, 추상 능력, 계획 능력, 지각 능력을 부여해준다. - P28

현재 매클레인의 3중뇌 가설은 신뢰를 잃었다. 그 이유는 부정확해서가 아니라(가설이란 것은 모두 부정확할 수밖에 없다) 뇌가 진화하고 작동하는 방식⁸에 대해 엉뚱한 결론을 내리기 때문이다. 이 가설에서 암시하는 뇌 해부도는 틀렸다. - P28

8. Cesario 외, 2020 에서는 매클레인의 3중뇌 모델에 대한 현재의 관점을 잘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솔직히 그의 3중뇌 모델에서 생기는 문제 대부분은 대중적 성공 때문이긴 하다. 매클레인의 연구를 실제로 읽어보면 그는 자신의 들이 직면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기꺼이 인정한다. - P498

매클레인의 3중뇌 가설이 진실에 가까운 것으로 밝혀진다 해도 가장 큰 문제가 남는다. 매클레인이 말하는 기능적 구분이 우리 목표에 특별히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사람의 뇌를 역설계해서 지능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인데, 매클레인의 3중뇌 가설은 너무 광범위하고 각 시스템의 기능이 너무 모호해서 출발점조차 제시하지 못한다.
뇌가 어떻게 작동하고 진화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해야 한다.  - P29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 Richard Feynman은 죽기 직전에 칠판에 다음과 같은글을 남겼다. "창조할 수 없는 것은 이해할 수도 없다." 뇌는 AI를 구축하는방법을 찾아내기 위한 영감의 원천이며, AI는 우리가 뇌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 알려주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우리에게는 뇌에 관한 새로운 진화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뇌의 해부도가 어떻게 변해왔는지에 대한 현대적이해는 물론이고, 지능 그 자체에 대한 현대적 이해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 - P30

모험의 이정표

쥐 수준의 AI부터 시작하자. 그리고 그다음에는 고양이 수준의 AI를 만들고
이런 식으로 쭉쭉 진행해서 사람 수준의 AI까지 가보자.⁹
--얀르쿤 Yann LeCun, 메타의 Al 수석 과학자 - P30

9. 얀르쿤 (@ylecun)이 2019년 12월 9일에 이 글을 엑스에 올렸다. - P499

사실 최초의 뇌에서 시작해 인간의 뇌가 진화한 과정 전체를 요약하자면 딱 다섯 번의 혁신이 누적된 결과라 말할 수 있다. 이것이 이 이야기의 뼈대다.
이 다섯 번의 혁신이 이 책을 구성하는 지도이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모험의 이정표 역할을 한다. 각각의 혁신은 뇌가 새롭게 바뀔 때마다 등장해 동물들을 새로운 지적 능력의 포트폴리오로 무장시켰다. 이 책은 각각의혁신이 왜 진화했고 어떻게 작동하며 현재 사람의 뇌에서는 어떻게 발현되는지 설명할 것이다. - P31

무엇보다 이런 혁신은 현재 AI 분야에서 알려진 내용에 입각해 이해해야한다. 생물학적 지능에서 일어났던 혁신 중에는 AI를 통해서 알게 된 내용과유사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그 혁신 중 일부는 AI 분야에서 잘 알려진 지적기능에 해당하는 반면 어떤 기능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 - P31

나에 대해서

내가 평생을 뇌의 진화에 대해 고민하고 지능을 갖춘 로봇을 만드는 데 헌신해왔기 때문에 이 책을 썼다고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중략). 나는 내가 읽고 싶어서이 책을 썼다.
나는 AI 시스템을 현실세계의 문제에 적용하려 시도하면서 사람의 지능과 AI 사이에 존재하는 당혹스러운 차이를 마주하게 됐다.  - P32

물론 나도 사람인지라 당신처럼 뇌가 있다. 그래서 인간의 경험을 대부분 정의하는 신체 기관에 매력을 느끼기가 어렵지는 않았다. 뇌는 지능의 본질일 뿐 아니라 우리가 지금처럼 행동하는 이유에 대한 답도 제공한다. - P33

《지능의 기원》은 다른 많은 사람의 연구를 종합한 것이다. 사실 이 책은 이미 마련된 조각들을 한데 모았을 뿐이다. 나는 책 전체에서 실제 연구를 진행한 과학자들에게 공로를 돌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지 못한 부분이있다면 의도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니 이해해주기 바란다. - P34

사다리와 우월주의에 대한 마지막 당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여행을 시작하기에 앞서 마지막으로 당부할 것이 하나 있다. 이 전체 이야기의 행간에는 위험한 오해가 숨어 있다.
이 책에서는 인간의 능력과 오늘날 살아 있는 다른 동물의 능력을 자주 비교하는데, 특히 우리 조상과 가장 비슷하다고 여겨지는 동물을 구체적으로언급한다. 다섯 가지 혁신이라는 이 책의 뼈대 자체는 오로지 인간 계통의 이야기, 우리의 뇌가 어떻게 세상에 등장하게 되었느냐는 이야기에 관한 것일뿐이다. - P34

진화라는 개념이 발견된 이후에도 자연의 위계는 계속 살아남았다. 하지만 종에 위계가 존재한다는 개념은 완전히 잘못됐다. 오늘날 살아남은 좋은모두 말 그대로 ‘살아남았다‘. 이들의 조상은 지난 35억 년의 진화 과정에서살아남은 존재들이다. 진화에서 중요한 것은 오직 생존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오늘날 살아남은 생명체는 모두 1등이다. - P36

비둘기, 다람쥐, 참치, 심지어 이구아나도 시각정보를 인간보다 더 빠르게 처리¹⁰할 수 있다. 어류는 실시간 처리 능력이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다. 물고기를 잡으려고 할 때 미로 같은 바위 사이로 물고기가 얼마나 쏜살같이 움직이는지 본 적이 있는가? - P36

10. Healy 1, 2013. - P499

물론 인간만의 고유한 특성은 있다. 그리고 우리가 인간이다 보니 자신을 이해하는 데 특별히 관심을 갖는 것도 당연하고, 인간과 비슷한 AI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도 당연하다. 따라서 나는 인간우월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인간 중심의 이야기를 풀어가고 싶다. - P37

1.

뇌가 등장하기 전부터
지능은 있었다


최초의 뇌가 등장하기 전에도 생명은 지구에서 오랫동안 존재했다. 여기서 ‘오랫동안‘이란 30억 년 정도를 의미한다. 뇌가 처음 생겨나 진화할 무렵 생명은 이미 수없이 많은 도전과 변화의 주기를 견뎌온 상태였다. - P43

 초기의 DNA 유사 분자는 수명이 짧았다. 이 분자사슬을 만든 화산의 운동에너지가 필연적으로 그 분자사슬을 끊어놓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른 결과다. 이 불변의 물리법칙은 엔트로피 entropy, 곧 한 시스템 안의 무질서도가 필연적으로 항상 증가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 P44

수없이 많은 뉴클레오티드 사슬이 무작위로 만들어지고 파괴되다가 행운의 서열이 우연히 만들어졌다. 그리고 무자비한 엔트로피의 맹공에 맞서 반란을 일으켰다. 적어도 지구에서는 최초의 반란이었다. 새로 등장한 DNA 유사분자는 그 자체로는 생명이라고 할 수 없었지만, 나중에 생명 출현의 밑바탕이 될 가장 근본적인 과정을 수행했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복제한 것이다.² - P44

1. 뇌가 등장하기 전부터 지능은 있었다


2. RNA 세계RNA World에 대한 논문과 원래 RNA가 단백질 없이도 스스로를 복제할 수 있었다는 중거는 Neveu 외, 2013을 참고하라. - P499

여기서 생명의 탄생으로 이어진 두 번의 진화적 사건이 있었다. 첫 번째는 보호성 지질lipid 방울이 DNA 분자를 포획한 사건이다. 이 과정은 비누로 손을 씻을 때 비눗방울이 생기는 것과 동일한 원리로 이뤄진다. - P44

세균처럼 가장 단순한 단세포 생명체라도 세포 에너지를 추진력으로 전환하는 모터³가 달린 엔진, 현대의 선박에 달린 모터‘ 못지않은 복잡한 메커니즘을 사용하는 회전 프로펠러 등 운동할 수 있도록 설계된 단백질이 있다. 세균은 지각perception을 위해 설계된 단백질도 갖고 있다. 수용체 receptor라고 하는이 단백질은 온도, 빛, 접촉 등 외부환경에서 어떤 특성을 감지하면 형태가 바뀐다. - P45

3. 세균의 편모는 양성자를 동력원으로 해서 회전하는 회전 모터rotary motor ‘로 움직인다. Lowe 외,
1987; Silverman과 Simon, 1974. - P499

단백질 합성 과정의 발달은 지능의 씨앗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단순한 물질에 불과한 DNA를 정보저장매체로 바꿔놓았다. DNA는 더 이상 자기복제하는 생명의 물질 그 자체에 머물지 않고 생명의 물질을 구성하는 정보의토대가 됐다. DNA는 공식적으로 생명의 청사진이, 리보솜은 그 공장이, 단백질은 그 생산물이 됐다. - P46

지구의 테라포밍

머지않아 이 세포들은 과학자들이 ‘모든 생명체의 공통 조상Last universal commanancestor‘, 줄여서 루카LUCA라 부르는 존재로 진화했다. 루카는 모든 생명체의할아버지다(할아버지라고 했지만 성별은 없다). 우리를 비롯해서 현존하는 모든 균류, 식물, 세균, 동물은 루카의 후손이다. - P46

세포를 살아 있는 상태로 유지하는 데는 많은 비용이 든다. DNA는 끊임없이 수리해야 하고 단백질은 계속해서 새로 보충해야 하며 세포를 복제하려면 내부의 많은 구조물을 재구성해야 한다. 열수공 근처에 풍부했던 수소는 이런 과정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한 최초의 연료였을 가능성이 높다.⁵ - P47

5. J. L. E. Wimmer 1, 2021. - P499

초기 남세균이 갖춘 가장 인상적인 생물학적 시스템은 단백질 공장이나그 산물이 아니라 광합성 발전소다. 이것은 햇빛과 이산화탄소를 당분으로 전환해서 저장했다가 세포 에너지로 사용⁷하는 구조물이었다. 광합성은 에너지를 추출하고 저장하는 세포 시스템보다 더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생산했다. - P47

7. 광합성을 통해 산소를 만들어내는 능력은 남세균의 조상에서 처음 등장했을 가능성이 높다. KL. French 외, 2015 참고 - P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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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디옙스키가 귀국하고 한 달 뒤 그의 아버지가 여든두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화장으로 치러진 장례식에는 나이 많은 KGB 요원 몇 명만이 참석했다. - P161

고르디옙스키는 이혼할 때처럼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재혼을 단행했다. 레일라는 1979년 1월에 모스크바로 돌아와 겨우 몇 주 뒤등기소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곧 부모가 사는 아파트에서 가족끼리 식사를 했다. 올가는 아들이 행복한 모습을 보고 기뻐했다. 옐레나는 KGB에서 성공하려고 눈만 반짝이는 것 같아서 처음부터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 P162

고르디옙스키는 제3부의 역사를 집필하는 일에 투입되었다. 소련의 과거 첩보 활동에 대해서는 통찰력을 얻을 수 있지만 현재 진행 중인 작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한직이었다. 딱 한번 그는 노르웨이 담당자인 동료의 책상에서 OLT로 끝나는 제목의파일을 본 적이 있었다. 트레홀트의 이름 앞부분이 다른 서류에 가려져 있었다. 아르네 트레홀트가 KGB 첩자로 활동 중임을 암시하는 또 하나의 단서였다. - P163

킴 필비는 이제 고독하게 늙어 가며 자주 술을 마셔 대는 처지였지만, 머리는 옛날처럼 예리했다. 오랫동안 스파이의 이중생활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에, 들키지 않는 법과 첩자를 잡는 법을 필비만큼 잘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KGB 내에서 여전히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 P163

고르디옙스키가 귀국한 직후 필비는 군보르 호비크 사건을 분석해서 잘못된 점을 평가해 달라는 중앙의 요청을 받았다. 그 베테랑노르웨이인 스파이가 왜 체포되었을까? 필비는 몇 주 동안 호비크파일을 열심히 들여다본 끝에, 스파이로 일한 오랜 세월 동안 자주그랬던 것처럼 올바른 결론을 내렸다. <그 첩자의 존재를 알린 정보는 KGB 내부에서 샜음이 틀림없다.>
빅토르 그루시코는 고르디옙스키를 포함한 고위 요원들을 자기방으로 불렀다. KGB에서 정보가 새고 있다는 징후가 있다.>  - P164

스티그 베릴링은 비밀 요원의 삶을 <회색, 검은색, 흰색, 그리고안개와 갈색 석탄 연기로 탁한 색>⁸이라고 묘사한 적이 있다. 스웨덴 경찰관, 정보 요원, 소련 첩자로 살아온 그의 삶 또한 칙칙한 색이었다.
베릴링은 경찰관으로 일하다가 SÄPO라고 불리는 스웨덴 정보기관의 감시 팀 일원이 되었다.
(중략).
베릴링이 스파이가 된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그가 무척 좋아하던 돈, 다른 하나는 상사들의 거만한 태도, 4년 동안 그는 소련에 1만4천7백 건의 문서를 넘겼다.




8 AFP, 1995년 6월 28일자 보도에서 재인용. - P165

스웨덴 조사관들이 수사망을 조여 왔다. 1979년 3월 12일, 그는텔아비브 공항에서 스웨덴의 부탁을 받은 이스라엘 정보기관 신베트 요원들에게 체포되어 SÄPO의 예전 동료들 손에 넘겨졌다. 그리고 9개월 뒤 간첩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베릴링은 소련의 주인들에게서 상당한 돈을 받았다. 그가 스웨덴의 국방에 끼친 피해를 복구하는 데에는 2천9백만 파운드가 들 것으로 추정되었다. - P166

고르디옙스키가 지목한 소련 첩자들이 한 명씩 차례로 제거되었다. 그 결과 서방은 십중팔구 더 안전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고르디옙스키는 아니었다. - P166

KGB 동료들이 면밀히 주의를 기울였다면 고르디옙스키가 경제적 이득도 없는데 왜 그리 서둘러 새로운 외국어를 익히려고 하는지, 왜 갑자기 영국에 커다란 흥미를 보이는지 의아하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고르디옙스키는 두 권짜리 러시아어-영어 사전을 샀다. 영국 문화에도 흠뻑 빠졌다. 어쨌든 소련 국민에게 허용된 한도 내에서 최대한 그렇게 했다. - P167

코펜하겐에서 돌아와 제1주요부의 싱크 탱크 수장이라는 대단한 자리에 앉은 미하일 류비모프는 그가 <자주 들러 가벼운 잡담을 나누다가 영국에 대한 현명한 조언을 구했다>고 회상했다.  (중략).
류비모프의 제안으로 고르디옙스키는 서머싯 몸의 소설들을 읽기 시작했다. 제1차 세계 대전 때 영국의 정보 요원이었던 몸은 첩보 활동 중에 겪게 되는 도덕적 모호함을 작품에서 훌륭하게 묘사한다. - P164

제3부에서 영국-스칸디나비아과는 나란히 자리 잡고 있었다. 고르디옙스키는 자신이 영국 쪽으로 발령받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이면 누구든 친분을 쌓아 두려고 노력을 기울였다. - P168

(전략).
빅토르 그루시코는 제1주요부의 차장으로 승진했고, 제3부의 부장자리는 겐나디 티토프가 이어받았다. 전(前) 오슬로 레지덴트로 아르네 트레홀트 담당관이던 그의 별명은 <악어>였다. 영국-스칸디나비아과의 새로운 팀장은 니콜라이 그리빈이었다. 매력적인 인물인 그는 1976년 코펜하겐에서 고르디옙스키의 부하 직원으로 근무했으나, 그 뒤로 그를 앞질러 승진했다. - P169

한편 센추리 하우스의 선빔 팀도 정확히 같은 문제로 고민하고있었다. 고르디옙스키에게서 귓속말조차 날아오지 않은 세월이 벌써 3년이었다. 쿠투좁스키 대로의 신호 장소 점검은 계속 조심스럽게 이어졌고, 탈출 계획인 핌리코 작전은 상시 대기 상태를 유지했다. 실전 같은 연습이 실시되어, 지부장 부부가 탈출 경로를 따라 헬싱키까지 차를 몰고 간 적도 있었다. - P170

(전략). 그런데 그 덴마크 외교관이 모스크바에서 파티에 참석했다가자신감 있고 건강해 보이는 고르디옙스키를 보았다. 외교관은 고르디옙스키가 재혼해서 두 딸의 아버지가 되었다고 PET에 보고했다.
M16에도 이 내용이 신속히 전달되었다.
그러나 PET 보고서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요소이자 선빔 팀을 들뜨게 한 요소는 고르디옙스키가 칵테일과 카나페를 먹으며 던진 한마디에 들어 있었다.
그는 미리 연습한 무심한 표정으로 덴마크 외교관을 향해 돌아서서 이렇게 말했다. 「요즘 영어를 배우고 있습니다. - P171

6

첩자 붓

겐나디 티토프에게는 문제가 있었다. 제1주요부 제3부의 부장인그는 런던 주재 소련 대사관에 KGB 요원을 한 명 파견해야 했지만 보낼 사람이 없었다. 적어도 겐나디 티토프에게 반드시 납작 엎드릴 거라고 믿고 보낼 사람이 없었다. 그것이 그 자리에 필요한 첫 번째 자격 요건인데. - P173

 티토프는 야비하고 교활했으며, 상사에게는 간이라도 빼줄것처럼 굴고 아랫사람에게는 이죽거렸다. 고르디옙스키가 <KGB전체를 통틀어 가장 불쾌하고 가장 인기 없는 요원 중 한 명>이라고 평가한 그는 그러나 가장 힘 있는 사람 중 한 명이기도 했다.  - P173

중앙은 풋 사건으로 100명이 넘는 KGB 요원들이 추방된 1971년이후 줄곧 런던 지부를 재건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중이었다. 영어가 가능하고 유능한 요원들이 빈자리를 다 채울 수 있을 만큼 많지않았다. - P174

1981년 가을, KGB의 영국 PR 라인 부팀장이 런던 주재 소련 대사관에서 참사관으로 위장해 활동하다가 모스크바로 돌아왔다. 그의 후임으로 가장 먼저 고려된 후보는 은밀한 활동을 한다는 MI5의 의심을 받고 있다는 이유로 외무부에서 거부당했다. - P174

고르디옙스키는 오로지 자신만이 그 기준을 충족할 수 있다는 암시를 여기저기 흘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 P174

(전략).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쪽에서 바로 거부해 버릴 수도 있지만, 일단 시도는 해봅시다.」고르디옙스키는 고마움을 넘치도록 표현했다. 하지만 속으로는곧 악어에게 복수하는 상상을 하며 즐거워했다. 승진을 앞둔 KGB요원의 아내로서 레일라도 기뻐 어쩔 줄 몰랐다. - P175

두 사람 모두에게 런던 발령은 꿈의 실현이었으나, 서로 같은 꿈을 꾸지는 않았다.
고르디옙스키에게 외교관 여권이 새로 발급되었다. 모스크바 주재 영국 대사관에 비자 신청서도 발송되었다. 대사관은 그 신청서를 런던으로 보냈다. - P176

이틀 뒤 MI6의 소련 팀장인 제임스 스푸너가 센추리 하우스의 자기 자리에 앉아 있는데, 하급 요원 한 명이 숨을 몰아쉬며 들어와 선언했다. 엄청난 소식이 있습니다.」 그녀는 그에게 서류 한 장을건넸다. 방금 모스크바에서 들어온 비자 신청서입니다. 그 문서에 동봉된 편지에는 올레크 안토니예비치 고르디옙스키 동무가 소련대사관 참사관으로 임명되어 영국 정부에 신속한 외교관 비자 발급을 요청했다고 적혀 있었다. - P177

완전히 양극단에 있었다. 티토프와 달리 스푸너는 사내 정치에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고, 아부에 전혀 영향받지 않고, 혹독할 정도로 일에만 집중했다.
그가 팀을 맡은 뒤 가장 먼저 책상에 올라온 서류 중에 선빔 파일이 있었다.
모스크바에 있는 고르디옙스키가 조용하고 그와 연락할 길도 없는 탓에 고르디옙스키 작전은 어중간한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어떻게 봐도 연락하지 않는 편이 옳았다. >스푸너는 이렇게 말했다. - P178

고르디옙스키에게 비자를 발급하는 일은 간단하지 않았다. KGB요원으로 의심받는 인물은 누구든 자동으로 영국 입국이 금지되는것이 원칙이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외무부가 먼저 예비 조사를 실시하다가 올레크가 코펜하겐에서 두 번 근무했음을 알게 될 것이다. - P179

 하지만 지금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MI6 입장에서는 고르디옙스키의 영국입국이 지체 없이 무조건 허락되어야 했다. 이민국에 그냥 비자를발급해 주라고 지시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의심을 살 우려가 있었다.  - P179

 소식을 들은 PET는 기꺼이 돕겠다고 나섰다. 외무부가 곧 고르디옙스키에 관해 문의할 것이라고 MI6가 알려 주자, 덴마크 측은<기록을 마사지>해서 그가 의심받은 적은 있지만 KGB 요원이라는증거는 없다는 답변을 보냈다. <우리가 적당히 의심스러운 구석을 남겨 둔 덕분에 비자가 정상적인 과정으로 발급되었다. 우리는 《그래요, 덴마크 측이 그를 점찍은 적은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 P179

모스크바의 한 관리는 비자가 너무 빨리 나온 것에 의심을 품었다. 「당신에게 비자가 이렇게 빨리 나오다니 몹시 이상합니다.」고르디옙스키가 여권을 찾으러 갔을 때 소련 외무부의 한 관리가 음침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 P180

KGB의 관료적 업무 처리 속도는 영국보다 훨씬 느렸다. 3개월뒤에도 고르디옙스키는 소련을 떠나도 좋다는 공식 허가를 여전히기다리는 중이었다. KGB에서 내부 감찰을 담당하는 K부의 제5부가 고르디옙스키의 과거를 느긋하게 들여다보고 있었다. 혹시 문제가 생긴건가 하는 생각이 차츰 들 정도였다. - P180

고르디옙스키의 자리는 영국 팀에서 정치를 담당하는 635호실에 있었다. 그 방의 커다란 금속 선반 세 개에는 영국 내의 인물 중KGB가 첩자, 잠재적인 첩자, 비밀 접촉자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파일이 있었다. 635호실에 있는 서류들은 모두 현재 진행 중인 작전과 관련된 것이었다. 중복된 자료들은 중앙 문서고로 옮겨졌다. - P181

고르디옙스키는 이 파일들을 차례로 살펴보면서 KGB가 현재 영국에서 어떤 정치적 작전을 펼치고 있는지 차츰 감을 잡았다. 부팀장인 드미트리 스베탄코는 벼락치기 공부를 하는 거냐며 그를 놀렸다. 「문서를 읽는 데 너무 시간을 낭비하지 마. 영국에 도착하면 거기가 어떤 곳인지 알게 될 테니.」 그래도 고르디옙스키는 성실한 사람이라는 평판이 의심을 상쇄해 주기를 바라며 조사를 계속했다. - P181

매일 부서장의 서명을 받아 파일 하나를 꺼내 봉인을 깨고 KGB가현재 낚으려 하거나 이미 낡은 영국인의 신원을 새로이 알아냈다.
그 사람들은 엄밀한 의미의 스파이는 아니었다. PR 라인이 주로추구하는 것은 정치적 영향력과 비밀 정보였으므로, 여론을 선도하는 사람, 정치가, 기자 등 힘이 있는 사람들을 겨냥했다. - P182

잭 존스는 가장 존경받는 노조 운동가 중 한 명이며, 고든 브라운영국 총리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노조 지도자 중 한 명>¹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는 사회주의 운동가였다. 그도 KGB 첩자였다.


1 『가디언』, 2009년 4월 24일자에 실린 잭 존스의 부고에서 재인용 - P182

그가 살펴본 두 번째 파일의 주인공은 노동당의 좌파 의원인밥 에드워즈였다. 전직 부두 노동자, 스페인 내전 참전, 노조 지도자, 장기적인 KGB 첩자라는 점이 모두 존스와 똑같은 에드워즈는1926년 청년 대표단을 이끌고 소련을 방문했을 때 스탈린과 트로츠키를 만났다. 그리고 오랫동안 정치가로 활동하면서 고급 기밀에 접근할 수 있고, 기꺼이 정보를 넘겨주는 정보원임을 증명했다. - P184

이런 거물들 외에 여러 조무래기의 기록도 파일에 들어 있었다. 예를 들어 베테랑 평화 운동가이자 전직 의원이며 노동당 사무총장인 페너 브록웨이 경이 그런 경우였다. 이 <비밀 접촉자>는 KGB와 오랫동안 거래하면서 소련 정보기관으로부터 많은 호의를 받았으나 그 보답으로 그다지 가치 있는 결과를 생산하지 못한 듯했다. - P184

모든 정보기관이 그렇듯이 KGB도 현실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희망 사항만 좋으며 없는 현실을 만들어 내는 경향이 있었다. 따라서 파일에 수록된 인물 중에는 첩자가 아니라 잠재적인 친(親)소련성향으로 보이는 좌파 인사에 불과한 사람이 여럿 있었다. - P185

하지만 모든 자료 중에 단연코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었다. 문제의 마분지 상자에는 300쪽 분량의 폴더와 절반쯤 되는 분량의 폴더가 들어 있었다. - P185

첩자 붓은 저명한 작가 겸 웅변가, 베테랑 좌파 의원, 노동당 지도자이며 만약 다음 선거에서 노동당이 승리한다면 영국의 총리가 될 마이클 풋이었다. 이 나라 영국에서 여왕 폐하의 충성스러운 야당을 이끄는 지도자가 KGB에 매수된 첩자였다는 뜻이다. - P186

 대처는 인기가 없었다. 여론 조사에서 노동당의 지지도는 보수당을 10퍼센트 포인트 이상 앞섰다. 1984년 5월로 예정된 차기 총선에서 마이클 풋이 승리해 총리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붓 파일이 공개된다면, 순식간에 모든 것이 끝날터였다.
페트로프 소령은 확실히 유머 감각이 있는 사람이었는지, 암호명을 고를 때 뜻과 붓으로 말장난하고 싶다는 유혹에 저항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만 제외하면 서류의 내용은 시종일관 진지했다. - P187

그 뒤로 계속 마이클 풋에게 지불된 돈이 목록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날짜, 금액, 돈을 건넨 요원의 이름이 적힌 표준 양식의 서류였다. 고르디옙스키는 이 목록을 죽 훑으면서 대략 계산을 해보았다. 1960년대에 10~14회 돈이 지불되었고, 한 번에 지불된 액수는 100~150파운드였다. 따라서 총액을 어림잡으면 1천5백 파운드, 현재 가치로 3만 7천 파운드(4만 9천 달러)가 넘는 돈이었다. 그 돈이어디에 쓰였는지는 불분명하다. - P188

풋과 KGB 담당관의 만남은 대략 한 달에 한 번씩 있었다. 소호의게이 후사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며 만날 때가 많았다. 모든 만남은 사전에 세심하게 계획되었다. 만남에서 나눌 이야기의 윤곽을 사흘전 모스크바에서 보내 주었다. 만남의 결과를 기록한 보고서는 먼저런던의 PR 라인 책임자와 레지덴트가 차례로 읽은 다음 모스크바 중앙으로 보내졌다. - P188

풋은 놀라울 정도로 많은 정보를 갖고 있었다. 노동당 내부의 투쟁에 대한 상세한 정보는 물론, 베트남 전쟁, 케네디 암살이 낳은 군사적 결과와 정치적 결과, 디에고 가르시아섬을 미군 기지로 개발하는 문제, 한국 전쟁의 미해결 이슈들을 협의한 1954년의 제네바회의 등 뜨거운 주제들에 관한 노동당의 태도에 대해서도 정보를제공했다. 풋은 소련에 정치적 통찰력을 제공해 줄 수 있는 독특한위치에 있었으며, 소련의 주장을 잘 받아들였다. - P190

붓은 독특한 종류의 첩자였다. KGB가 생각하는 첩자의 정의에 정확히 맞아떨어지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그는 소련 관리들과의 만남을 숨기지 않았다(그렇다고 널리 광고하지도 않았다). 대중에게알려진 공인인 만큼 어차피 은밀한 만남이 불가능하기도 했다. 그는 <여론의 창조자>였으므로, 단순한 첩자라기보다는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에 더 가까웠다. - P190

(전략). 자신에게 정보를 주는 한편 다신이 제공한 정보를모스크바로 전달하는 일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수도 있다. 이 짐작이 옳다면 그는 말문이 막힐 만큼 순진한 사람이었다.
1968년에 붓 작전의 기조가 바뀌었다. 프라하의 봄 이후 풋은 소련을 강렬히 비판했다. 하이드 파크에서 열린 항의 시위에서 그는이렇게 선언했다. 「소련의 행동은 사회주의에 대한 최악의 위협이 바로 크렘린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확인해 줍니다.」⁹ - P191

풋은 법을 어기지 않았다. 소련 스파이도 아니었다. 그러니 조국을 배신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KGB의 지시를 받았고, 그들의 돈도 비밀리에 받았다. 그리고 적국이자 전체주의 독재 국가인 소련에 정보를 제공했다 - P191

마이클 풋은 KGB에 쓸모가 있었고, 완전히 바보스러웠다.
고르디옙스키가 붓 파일을 읽은 때는 1981년 12월이었다. 그다음 달에 그는 그 파일을 다시 읽으면서 그 내용을 최대한 암기했다. - P192

영국이 전쟁 중일 때, 고르디옙스키는 KGB 내에서 혼자 영국 편을 들었다. 자신이 비밀리에 충성을 맹세한 그 나라에 과연 발을 디딜 날이 오기는 할지 걱정스러웠다. - P193

KGB의 제5부가 마침내 고르디옙스키에게 영국에 가도 좋다는허가를 내주었다. 1982년 6월 28일, 그는 런던행 아에로플로트 항공기에 올랐다. 아내 레일라와 이제 각각 두 살과 9개월이 된 두 딸도 함께였다. - P193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 고르디옙스키의 마음속에는 지난 4개월동안 KGB 문서고에서 긴장 속에 비밀스레 읽은 문서들의 내용이 무겁게 쌓여 있었다. (중략) 그래서 영국에서 활동하는 모든 PR 라인 요원의 이름, 런던 주재 소련 대사관에서 근무하는 모든 KGB 요원의 이름이 그의 머릿속에만 들어 있었다. <제5의 사나이>¹⁰의 신원을 알려 주는 증거, 소련으로 망명한 킴 필비의 활동, 노르웨이의아르네 트레홀트가 소련의 스파이라는 추가 증거도 머릿속에 있었다.

10 킴 필비를 포함해서 소련 간첩으로 활동했던 케임브리지 5인방 중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한 사람 옮긴이주 - P193

참조

붓 파일의 상세한 내용은 1995년 2월 고르디옙스키와의 회고록 인터뷰에 들어 있다.
『선데이 타임스』 문서 보관실 소장. - P194

2부 -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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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만났고 한국인처럼 생겼으니까 신선이거나 도깨비인가 보다 한 거지, 정체는 몰라요. 그리고 예전에는 다른 나라에 있었다니까."
"그러니까 유럽에서 온 게 도깨비 맞아? 혹시 예수 같은거 아니야? 사람도 부활시키는데."
우혁은 내심 놀랐으나 태연한 척 대꾸했다.
"예수가 동양인이면 이상하죠. 그리고 형도 알겠지만 예수는 셈족이라서 희랍어랑 히브리어만 하고 라틴어는 못 했어요. 그 신약성경도 희랍어로 적혀 있잖아요." - P82

"일단 나도 돈에 목매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못 박아두고...... 우혁아, 나는 너 덕분에 무척이나 보수적인 사람이됐어. 이건 백운산 계곡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부터 시작된 생각이야" - P83

"너는 의견이 다를지도 모르겠다만, 나는………… 네가 어떻게든 해결을 봐서 평범한 인간이 됐으면 한다. 난 그게 제일 좋다고, 온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사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믿는다. 필요한 거 있으면 빨리 챙겨서 다녀와라. 내가 생각하기엔 날 밝고 보는 눈 많을 때가 그나마 안전할 것 같다. 지금바로 집에 가서 차 끌고 와." - P84

김형이 사는 세상이 로마라면 그곳의 카이사르는 돈이다.
사람은 무릇 돈을 벌고 모으고 써야 한다. 카지노의 고삐풀린 흐름에 휘말리는 게 아니라, 격률과 질서를 따르는 방식으로 그것이 바로 인간이 맘몬과 나눈 계약이다. 인의와 인정을 소박하고 아늑한 일상을 누릴 방법이다. 돈을 허투루써버리는 사람은 친지를 실망시키고 만다. 달리 말하면 그 격률과 질서로부터 어긋난 행위는 무엇이든 도박만큼이나 허무맹랑하고 무익하며 해로운 것이다. 그것이 이 세상 바깥으로부터 온 믿음일지라도, 혹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 P85

익숙한 것들로부터 멀어진 사람은 피안을 마주 보게 된다.
내일 당장 종말이 온다고 하면 대형 교회의 목사들은 그소식을 반길까?
대치동 학원에 아이를 보내는 부모들은?
김형은?
우혁은 심판이든 구원이든 기꺼이 반길 수 있었다.
묵상은 <교주를 죽여라>의 내용으로 귀결되었다. - P86

서른두 명의 숭배자들은 넘쳐흐르는 은혜 속에 죽음을 택했으며 열두 명의 아이들만 살아남았다. 사건은 여러 이유로 이례적이었다. - P86

소년은 자신이 재림 예수가 아니라 주장했지만 우혁은 절반만 믿었다그는 계단을 밟아 내려가며 휴대전화로 대치사거리부터 설악산까지의 경로를 검색했다. 정체 구간이 없다 가정하더라도 두 시간은 잡아야 할 거리였다. - P87

곧바로 차를 끌고 돌아가려다가 철물점 위치를 검색했다.
집 근처에 세 곳이 있었다. 우혁은 가장 가까운 철물점에서 접이식 낫과 도끼를 하나씩 사서 뒷좌석에 던져놓았다. - P87

우혁은 등받이에 팔꿈치를 얹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소년은 자리에 앉자마자 도끼날을 감싼 방수포 천을 끄르고 있었다.
"필요할 것 같아서 사왔어. 챙겨둬."
"고맙다" - P88

재림 예수 노릇을 다시 해볼 생각이 없는지도.
이렇게 도망 다닐 바에는 종말을 불러오는 편이 낫지 않겠냐고도.
(우혁은 정말로, 진심으로, 절실히도, 논술학원 보조강사의 현실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심리는 특별해지고자 하는 욕망이라기보다는 불가해한 세계로부터 벗어나려는 몸부림에 가까웠다.)
하지만 막상 말을 꺼내려니 적당한 첫마디가 떠오르지 않았으므로, 우혁은 미사대교에 접어들도록 침묵을 지켰다.  - P89

그는 평생토록 도망쳐왔던 세계의 총체가 바로 여기 모였음에 몸서리쳤다. 개념을 물질에 앞세움으로써만 파악될 수있는 도시의 결절들. 만질 수 없거니와 상상의 대상조차 아니므로 실체와 정신을 동시에 압도하고 마는, 추상화된 객체들. 강남과 남양주의 차이를 궁금해하는 사람에게는 도시의풍경이 아니라 어차피 죄다 철근콘크리트로 뒤덮인 데다가도로 위에는 자동차가 굴러다니지 않는가?-부동산 시세가병기된 지도를 보여줘야만 하는 것이다. - P90

표정 없는 괴물이 무지막지한 열과 충격을 집어삼킨 뒤 무감한 숫자를 게워내는 장면이 우혁의 머릿속에 번뜩였다. 조약돌 하나가 쏜살같이 날아가서, 미사대교의 흰 난간과 숫자를 동시에 꿰뚫는 순간도 그 조약돌에는 서른네 살의 보조강사와 구원을 불러올 소년이 타고 있다……………바로 이런 상상을 멈춰야 한다.
이건 기질적인 문제인가, 기적의 후유증인가?
혹은 지금에야말로 결단할 때이기 때문인가? - P91

그는 실제로 종말이 닥쳐오는 미래와 부모님 속만 터지고끝나는 미래 중 무엇이 더 심각한지 고민해봤다. 누군가의 아들이자 친구인 최우혁이 아니라 공명정대하고 객관적인 재판관으로서. - P92

바로 지금!
"생각대로 될 일은 절대 없으니 헛짓거리 말아라. 한국서야산 생활하며 죽었다 살아난 게 다섯 번도 넘어. 그 전엔훨씬 많고."
소년의 핀잔이 결단을 가로막았다. 우혁은 멋쩍게 웃으며가속페달에서 발을 떼었다. 한 덩어리로 뭉쳤던 열기가 온몸으로 흩어지며 나른한 아쉬움을 남겼다.
"설마 속마음도 읽는 거야?" - P93

교주 1인이 유일한 상징으로 기능하며 권력을 독점하는 통상적인 사이비 종교와 달리, 새천년파에는 핵심 인물이 없었다. 노골적으로 금전을 요구하는 사업 모델도 존재하지 않았다. 체계와 직분들이 명징한 규율 아래 맞물릴 뿐이었다. - P94

열심당원이란 본래 로마에 저항했던 유대인 급진파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들은 단검 한 자루로 제국의 관료들과 장군들을 암살하고 다녔는데, 새천년과 열심당원들이 하는 일이 정확히 그랬다. 그들은 이도유와 접점이 있는 사람들을찾아냈다. 회유했고, 정보를 얻으려 했고, 협박했으며, 종종 납치해 죽였다. - P96

소년은 예티나 네시 같은 크립티드로 간주되어 10대 청소년들의 놀잇감으로 전락했다. 조강현이 돈깨나 버는 기업인이라는 사실마저 그들의 흥미를 자극했다. 소년 교주를 소재삼은 아마추어 만화와 소설이 수천 개씩 쏟아져 나온 덕분에 검색 결과는 더더욱 혼란스러워졌다. - P99

여기까지 생각해보니 이 방송을 기획한 게 누구였을지, 조강현은 무슨 생각으로 카메라 앞에 섰을지가 의아스러웠다.
실제로 소년과 함께했다면 그 신성을 의심하기란 불가능할터였다. 애당초 기적을 목격했으니 신학도의 길을 저버린 게 아니겠는가. - P100

"그러니까 어제 멈춘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보자. 솔직해지는 거야. 어차피 두 시간만 지나면 피차 볼 일 없을 테고, 저인간들이랑도 모르는 사이가 될 테니까."
"너, 돈벌이 생각을 하는 건 아니지?"
"그럴 리가 정보를 팔아먹을 거였더라면 새천년파한테 진작 연락했을걸. 봐서 알겠지만, 난 심각한 사회부적응자야. - P101

"평범한 인간인 게 뻔해도, 원하는 이야기만 들을 수 있다면 덜컥 믿어버리는 게 사람 심리야. 기적을 부릴 수 있다면 말할 것도 없지. 나한테 이런저런 재주가 있는 것, 사람들이 날 예수라 믿고 싶어 했던 것, 내가 거기 잠깐 어울려줬던 것,
그래서 한바탕 시끄러웠던 것과 별개로 나는 그냥 나야!"
"그렇다면 넌 누구야?"
"방송 봤으면 이름쯤은 알아야지." - P102

자동차는 어느덧 미사대교를 빠져나와 남양주의 끝자락에진입했다. 허공에 얹힌 길은 이음매도 없이 육로가 되었고, 굳은 듯한 수면 위로 희부연 막을 이루던 햇빛은 이제 나뭇잎과 전속력으로 충돌하고 있었다. - P102

"서른두 명이 자살한 것도 껄끄러운 주제인가?"
"내가 죽으라고 시킨 적 없어. 일이 그렇게 될 줄 누가 알아서"
"하지만 제멋대로 죽었다 쳐도 되살릴 수 있잖아." - P103

"방송에서는 네가 지시했다던데."
"죽은 건 죄 어른들이고, 산 건 모두 애들이다. 지금 새천년파랍시고 난리 치는 놈들은 그때 열두어 살 하던 애들이란말이야. 그런 녀석들이 상황을 똑바로 기억할 턱이 없지. 조강현 한 놈만 스물네 살이었고, 열일곱 살짜리가 하나 있었던가......." - P103

인망을 쌓지 못한 삶이 후회스러웠다.
하지만 바카라라면 어떨까?
그는 내비게이션으로 지금 위치에서 정선 카지노까지 가는 길을 알아보았다. 정확히 200킬로미터 거리였고, 거기에서 다시 설악산으로 가려면 비슷한 거리를 추가로 달려야만했다. 당일치기로 다녀오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도주 경로에 끼워 넣기에는 과했다. - P106

"악령 같은 거구나. 그러면 원래 이도유는 어디로 간 거야?"
"여기에 너랑 대화하는 사람은 여전히 나다. 물론 나는 이도유인 동시에 바르 코크바 장군이고, 정신 나간 페레그리노스고, 이름 없는 게르만 병사고, 사바타이츠비고, 태평천국의 홍수전이고.... 나, 바로 여기 있는 나지. 그 마흔네 개의기억에 네가 악령이라 부른 걸 합하면 내가 된다." - P107

"나한테 있는 재주는 크게 둘이다. 하나는 병들고 죽은 이를 되돌리는 것. 다른 하나는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는 것. 그런데 이것은 내 능력이라기보다는 악령을 따른 결과야 너한테 익숙할 예를 빌리자면, 심술궂은 형이 동생의 게임을 지켜보며 여기로 가라, 저걸 골라라 훈수를 두는 거나 마찬가지란 말이다. 할 일을 읊으면서도 왜 그래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아. 결국 객관적으로는 훌륭하지만 나는 원치 않았던상황에 놓이고 말지." - P108

"왜, 백두대간을 타고 중국으로 간다면서 새천년파가 거기까지 따라가지 못할 텐데."
"악령이 슬슬 몸을 갈아치우고 싶어 하는 게 느껴지거든.
주어진 본분을 다하라고, 실패하더라도 도망치지는 말라고,
도망치면 이도유의 삶은 끝이라고 계속 속삭이는 거다. 사실지금도 불안불안해."
"그렇구나." - P109

"지금까지 마흔다섯 번이나 살았다고 했지. 가장 처음에는누구였어?"
"제사장의 아들이었지. 어머니는 왕실의 피를 물려받은 여인이었고, 소년 시절, 광야에서 3년간 수행하다가 악령에 붙들렸다. 어찌할 줄 모르는 상태로 고향에 돌아왔더니 분위기가 심상찮지 뭐냐 독립이니 뭐니 떠들던 놈들이 기어코 일을낸 거지.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 덕분에 떠밀리듯이 지휘관이됐다가 포로로 전락했고, 거기에서 황제가 될 자의 눈에 들었다. 글이나 쓰면서 역사가로 여생을 보냈지. 황제는 나보다스무 해 일찍 죽었고, 나는 예순이 넘어서야 겨우 용기를 얻었다. 그래서, Vae, puto deus fio......." - P110

요세푸스는 자신이 최후의 1인이 되리라 확신했고, 정말로그렇게 되었다.
포로가 된 요세푸스는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이 황제가 될것임을 예언했다.
그로부터 2년 뒤, 제국은 네 명의 황제를 갈아치웠다. 가장먼저 네로가 실각했다. - P111

질문들이 우혁을 또 다른 이름으로 이끌었다.
소년은 자신이 한때 바르 코크바 장군이었다고 말했다.
요세푸스와 바르 코크바 장군의 삶은 한 바퀴 돌아 대칭을 이뤘다. 요세푸스는 1차 유대 반란의 지휘관 중 하나였지만 열의가 부족했고, 기적과 예언에 기대어 목숨을 부지했다. 반면 바르 코크바는 기적과 예언을 통해 역사를 만들어낸 인물이었다.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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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하면, "넘지 마시오"라고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경계선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설득, 조종, 속임수의 세상이 하나의 행성이라고한다면 아예 발을 들이지 말아야 할 지역과 폐해나 불법이라는 다양한 위험이 도사린 지역이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단순함을 선호한다. 당신이 디지털 제품을 만드는 일에 종사한다면, 내가 해줄 조언은 다음과 같다. 거짓 주장을 사용하지 말고 현지 법규를 제대로 파악한다 - P115

3부

다크패턴의 여러 유형

2010년에 darkpatterns.org를 만들었을 때, 나의 목표는 인식을 제고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브랜딩과 홍보에 크게 집중했다. - P119

오늘날 기만적 패턴에 관한 문헌을 살펴보면, 분류와 명명 체계가 놀랄 정도로 다양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각자 나름대로 유용하지만, 초기의 분류는 원시적인 편이고, 나중에 나온 것은 활용할 수 있는 증거와 지식이 엄청나게 많아져 더 정교해졌다. - P119

최근에는 기만적 패턴이 법학자나 입법자, 규제당국의 관심 분야로 떠올랐다. 따라서 이들은 관심 주제, 담당 지역에 관련된 법과 법률 용어를 중심으로 분류 체계를 만든다. (후략).² - P120

3부 다크패턴의 여러 유형


2 EDPB. (2022, March 14). Dark patterns in social media platform interfaces:How to recognise and avoid them. European Data Protection Board. Retrieved14 January 2023 from https://edpb.europa.eu/system/files/2022-03/edpb_03-2022guidelines_on_dark_patterns_in_social_media_platform_interfaces_en.pdf - P321

13장

다크패턴의 분류체계

내가 전문가 증인으로서 많이 활용하는 분류 체계는 마투르 등의 분류(2019)이다. 실용적이고 증거도 많기 때문이다. 이 분류 체계는 프린스턴 대학교와 시카고 대학교 소속 연구자 7명이 작성한<대규모 다크패턴: 1100개의 쇼핑 웹사이트 분석 결과>¹라는 논문에 소개되었다. - P121

13장 다크패턴의 분류체계

1 Mathur, A., Acar, G., Friedman, M.J., Lucherini, E., Mayer, J., Chetty, M., andNarayanan, A. (2019). Dark patterns at scale: Findings from a crawl of 11Kshopping websites. Proceedings of the ACM on human-computer interaction,
3(CSCW), article 81. https://doi.org/10.1145/3359183 - P321

13장 다크패턴의 분류체계

1 systems, https:/ Mathur, A., Acar, G., Friedman, MJ., Lucherini, E., Mayer, J., Chetty, M., andNarayanan, A. (2019). Dark patterns at scale: Findings from a crawl of 11Kshopping websites, Proceedings of the ACM on human-computer interaction,
3(CSCW), article 81. https://doi.org/10.1145/3359183designed to - P321

기만적 패턴의 분류 체계라고 하면 적용할 수 있는 유형의 수가 정해진 것처럼 규범적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그렇지만 현실에서 인간의 창의력과 착취 행동에는 전혀 제한이 없다. 모범 사례 가이드라인으로 나온 것조차 기만적 패턴에 영감을 주는 데 활용되어 유용했던 것에서 해를 주는 것으로 손바닥 뒤집듯 바뀔 수 있다² - P122

기만적 패턴을 둘러싼 환경이 복잡한 이유와 분류 체계에 항상어느 정도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지에 관해 지금까지의 설명으로 충분히 이해했기를 바란다. - P122

(전략).

긴급성

카운트다운 타이머 : 카운트다운 타이머를 이용하여 사용자에게 가격을 제안하거나 세일이 곧 끝날 것이라고 알린다.
기간 한정 메시지: 사용자에게 가격을 제안하거나 세일이 곧 끝날 것임을 날짜를 정해서 알리지만 실제로 정해진 기한은 없다. - P123

사회적 증거

•활동 메시지: 사용자에게 웹사이트 활동(예: 구매, 조회수, 방문자수) 정보를 알린다.
•후기: 제품 페이지에 출처가 불분명한 후기를 게시한다. - P124

행동 강요.

가입 강요: 원하는 작업을 완료하려면 계정을 만들거나 정보를 공유하도록 강요한다. - P125

14장

은닉


(전략).
그런데 사용자를 조종하고 싶다면, 이와 반대로 글을 쓰고 긴 문단이나 제대로 명명되지 않은 섹션에 중요한 정보를 숨겨놓아 독자가 그 내용을 기대하지 못하거나 찾을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들면 된다. - P126

장바구니에 몰래 넣기

온라인 소매업체가 고객의 장바구니에 몰래 물건을 넣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가장 뻔뻔한 수법은 말도 없이 물건을 추가해놓 고고객이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이에 관해 불만을 제기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후략).


장바구니에 자동으로 담긴, 주문도 하지 않은 1파운드짜리 잡지

(전략).
내가 이 웹사이트를 신나게 탐색하다가 워킹화를 한 켤레 사려고 마음을 먹었다고 해보겠다. 화면에서 이상한 점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냥 일반적인 쇼핑 페이지로 보인다.² - P127

14장 은닉

2 Image source for figure: Sports Direct. (n.d.). Retrieved 4 May 2015 from https://sportsdirect.com - P322

. 영국에서 인기 있는 BBC 소비자권리 TV 쇼인 <워치>에서는 스포츠 다이렉트를 집중 보도했다. 이런 관행은 2014년에 발효된 소비자 권리 지침 (Consumer RightsDirective)⁴ 덕분에 EU 전체에서 불법이 되었다. - P129

4 Consumer Rights Directive (2011) https://eur-lex.europa.eu/legal-content/EN/TXT/?uri=celex%3A32011L0083 - P322

비용 숨기기

숨겨진 비용을 넣는 관행(‘순차 공개 가격 책정 (drip pricing)‘⁵ 또는 ‘미끼상술(bait and switch)⁶이라고도 함)의 경우, 사용자가 구매 여정에서는예상하지 못한 비용을 의도적으로 결제 직전에 제시하는 것이다. - P129

5 Federal Trade Commission. The economics of drip pricing. (2015, January6). Retrieved 10 October 2022 fromevents/2012/05/economics-drip-pricinghttps://www.ftc.gov/news-events/

6 Bait and switch: A type of deceptive design. (2010), Retrieved 10 October 2022from https://www.deceptive,design/types/bait-and-switch - P322

스텁허브가 숨긴 비용

숨겨진 비용의 대표적인 사례는 블레이크 등이 스텁허브(공연티켓 재판매업체)와 함께 수행한 연구로, 해당 연구 논문은 <마케팅 사이언스>의 2021년 4월호에 실렸다.⁷ - P129

7 Blake, T., Moshary, S., Sweeney, K., & Tadelis, S. (2021, July). Price salience andproduct choice. Marketing Science, 40(4), 619-636. https://doi.org/10.1287/mksc.2020.1261 - P322

(전략).
결과는 어땠을까. 티켓 가격이 초반에 제대로 제시되지 않았던 A집단의 사용자는 21% 더 많은 돈을 썼고, 구매 과정을 완료할 확률이14.1% 더 높았다. 이는 엄청난 차이다.
당신이 회사를 하나 운영하는 중인데, 간단한 디자인 의사 결정하나만으로 고객이 21% 더 많은 돈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해보자. 고민할 것도 없이 이 디자인을 채택할 것이다. - P131

에어비앤비가 숨긴 비용

리조트 요금, 어메니티 요금, 목적지 요금, 청소비 등은 환대 산업에서 정착된 지 꽤 되었다. 2019년에 메리어트는 예약 가격의 최대 55%까지 청소비를 부과했다.⁹ - P131

9 Serati, N. (2019, May 16). The ugly side of Marriott‘s new home rentals: Sky-high cleaning fees. Thrifty Traveler. Retrieved 10 October 2022 from https://thriftytraveler.com/news/hotels/marriott-cleaning-fees-homes-villas/ - P322

 에어비앤비는 국가별로 다르게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운영하고 정기적으로 변화를주기 때문에 이 가격이 어떻게 나왔는지 구체적으로 따져보기는어렵다. 그러나 2021년 6월 현재 에어비앤비 미국 웹사이트 모습을 캡처해보면 다음과 같다.¹² - P133

12 Shon, S. (2021, June 22). Demystifying Airbnb fees: How to understand the final cost before booking. The Points Guy. Retrieved 10 October 2022 from https://thepointsguy.com/guide/understand-airbnb-fees/ - P323

13소셜미디어에서 많은 사용자가 비용을 숨기는 방식에 불만을제기했지만, 이는 특정 국가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었다.¹³ 호주의 에어비앤비 사용자의 경우, 호주 경쟁소비자위원회(AustralianCompetition and Consumer Commission, ACCC)에서 비용을 숨기는 기만적패턴을 금지하기 때문에 이런 일로 속을 일이 없다.¹⁴ - P135

13 Sawyer, D. (2017, December 28). I built a browser extension. Reddit. Retrieved10 October 2022 from https://www.reddit.com/r/Frugal/comments/7mpca2/i_built_a_browser_extension_that_shows_you_the/
14 ACCC. Price displays. (2022, October 6). Australian Competition and ConsumerCommission, Retrieved 10 October 2022 from https://www.accc.gov.au/consumers/pricing/price-displays - P323

구독을 숨기는 기만적 패턴


피그마가 숨긴 구독당신이 디자이너라면 피그마를 알고 있을 것이다. 피그마는 UI디자인 협업 툴로 업계에서 상당히 많이 쓰인다. 피그마에서 디자인을 만들고 오른쪽 상단의 파란색 ‘공유‘ 버튼을 누르면 다른 사람에게 디자인을 공유할 수 있다.¹⁸ - P137

2021년 3월에 그레고르 바이크브로트라는 트위터 사용자가 지적한 것처럼, ‘편집 가능‘ 옵션을 선택하면 백그라운드에서 해당 초대수신인에 대한 신규 월 구독이 생성된다. 그리고 이 구독료는초대를 보낸 사람의 신용 카드로 결제된다.
그런데 이 추가 비용은 사용자 인터페이스 어디에도 나타나지않는다.  - P138

편집자 계정을 갖고 있는 팀 구성원은 별생각 없이 ‘편집 가능‘ 옵션을 선택하여 새로운 구독을 생성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초대를 받은 사람은 여기에 다른 사람을 초대할 수도 있다. 디자인팀에서 신용 카드 청구서나 인보이스를 들여다볼 일이 거의 없고, 회계팀에서 디자인 팀이 지출한 비용에 이의를 제기할 이유도 없을 것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이 옵션을 선택하면 월 구독료가 올라간다는 사실을 회사 전체적으로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 P139

이미 예상했겠지만, 이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하퍼라는 트위터사용자의 불만처럼 원치 않는 비용을 엄청나게 발생시켰다.²²
에어테이블에서 사람들을 초대할 때 ‘에디터‘나 ‘크리에이터‘로 선택해서 보내면 비용이 신용카드로 자동으로 청구되는데, 공지되지는 않는다. - P140

22 harper. (2020, June 15). just got a $3360 charge from @airtable because i invitedsome folks to review a base i made. Twitter. Retrieved 8 May 2023 from https://twitter.com/harper/status/1272549461391290370 - P323

16장

미스디렉션

다른 기만적 패턴들처럼 미스디렉션도 인간 역사에서 많이 활용되었다. 소매치기든 무대 마술이든, 혹은 사용자 인터페이스 디자인이든 간에 적용되는 기본 원칙은 모두 같다.¹ - P147

16장 미스디렉션

1 Joseph, E. (1992). How to pick pockets for fun and profit: A magician‘s guide topickpocket magic. Adfo Books. - P324

감정적 선택 강요 기만적 패턴

‘감정적 선택 강요(confirmshaming, 컨펌셰이밍)‘라는 말은 2016년에한 익명의 블로거가 컨펌셰이밍 텀블러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널리 알려졌다.²
감정적 선택 강요는 감정을 조종하는 방법으로 사용자를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해 무언가를 선택하게 (혹은 선택하지 않게 만드는것이다.³ - P148

2 confirmshaming. (n.d.). Confirmshaming. Retrieved 3 August 2022 from https://confirmshaming.tumblr.com/
3 특히 예리한 사람이라면 컨펌셰이밍을 기만보다는 조종 패턴으로 설명하는 것이 더 낫다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 사용자에게 숨기는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이름을 간결하고 기억하기 쉽게 할 목적에서 나는 조종 및 기만 둘 다를 의미하는 기만적 패턴‘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둘의 차이에 관해 더 자세한 분석을 보고 싶다면 다음을 참조하길 바란다. ‘The Ethics of Manipulation‘(Stanford Encyclopediaof Philosophy). (2022, April 21). https://plato.stanford.edu/entries/ethics-manipulation/ - P325

시어스의 감정적 선택 강요

시어스라는 리테일 업체는 감정의 조종과 말장난을 활용하여마케팅 이메일 수신 거부 버튼에 ‘괜찮습니다. 전 공짜 돈이 싫어요‘라는 문구를 썼다. 이는 전형적인 감정적 선택 강요 사례다. - P149

마이메딕의 감정적 선택 강요
이 사례는 퍼 액스봄이 발견했다. 그는 "내가 당했던 최악의 #컨펌셰이밍이다"⁵라고 말했다. 마이메딕은 응급 처치 용품과 약품을파는 곳이다. 마이메딕은 알림을 보내도 될지를 묻는 화면에서 ‘아니요, 전 살고 싶지 않아요‘라고 해놓았다. - P149

5 Axbom, P. [axbom]. (2021, August 29). Per Axbom [Tweet]. Twitter. https://twitter.com/axbom/status/1432004956190556163 - P325

시각적 방해 기만적 패턴

이 유형의 기만적 패턴에는 사용자가 페이지에서 보일 거라고합리적으로 기대하는 내용을 숨기는 행위가 포함된다. 이를 구현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트렐로의 시각적 방해 사용자가 강제로 더 비싼 ‘비즈니스 클래스‘를 구독하게 만듦

2021년 1월에 한 익명의 트위터 사용자 (@ohhellohellohi)가 트렐로의 사용자 가입 여정에 활용된 기만적 패턴을 지적했다.⁷ (후략).⁸ - P150

7 Sunflower, [ohhellohellohii]. (2021, January 27). @darkpatterns this one nearlygot me. @trello really wants you to use their free trial [Tweet]. Twitter. https://twitter.com/ohhellohellohii/status/1354535533456879618

8 Image source for figure: Sunflower, [ohhellohellohii]. (2021, January27). @darkpatterns this one nearly got me. @trello really wants you touse their free trial [Tweet]. Twitter, https://twitter.com/ohhellohellohii/status/1354535533456879618 - P325

아무 문제도 없어 보이는 ‘가입‘ 버튼을 클릭하면 사용자에게는세 가지 요금제(무료, 스탠다드, 비즈니스 클래스)가 노출된다. 그런데사용자에게 이 세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한 것이 아니라, ‘30일 무료 체험 시작‘이라고 적힌 커다란 녹색 버튼만 눈에 띄게했다. 아무리 둘러봐도 다른 선택지는 보이지 않았다 - P152

여기는 몇 가지 속임수가 적용되었다. 이를 하나하나 살펴보자.
우선, 뷰포트 아래의 캔버스 영역(즉, ‘스크롤을 내려야 볼 수 있는 영역)에 버튼을 숨겼다. 사용자의 브라우저 창이 너무 작으면 ‘비즈니스 클래스 없이 시작하기‘ 버튼은 아예 보이지 않을 것이다. - P153

트렐로는 다른 시각적 속임수도 사용했다. 흰색 상자는 주요 콘텐츠 영역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렇게 시각적으로구분된 영역 아래에는 부가적인 각주 텍스트(저작권 메시지와 법적고지사항 등)만 넣는 것이 보통이다. - P153

마지막으로 두 버튼이 눈에 얼마나 잘 띄는지에서도 차이가 있다. ‘30일 무료 체험 시작 버튼은 색상이 들어가고 대비가 높지만, ‘비즈니스 클래스 없이 시작하기‘ 버튼은 색상이 없고 대비도 낮다. - P153

유튜브의 시각적 방해 : 거의 보이지 않는 닫기 버튼

‘프리미엄 (Freemium: 무료를 의미하는 ‘free‘와 고급을 의미하는 ‘premium‘
의 합성어)‘은 다소 투박하기는 하지만 두 가지 용어를 하나로 합쳐만든 새로운 용어다. 어떤 서비스가 프리미엄일 경우에는 2단계가격 전략을 소비자에게 제공한다. - P155

2021년 1월에 @bigslabomeat라는 트위터 사용자는 유튜브가 유튜브 프리미엄 무료 체험 가입에 기만적 패턴을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¹² - P155

12 bigslabomeat. (2021, January 20). Getting desperate now? This came up whenI opened the @YouTube app. I don‘t want premium [Tweet]. Twitter, https://twitter.com/bigolslabomeat/status/1351819681619976198 - P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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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1장

해질녘 나는 숙모와 나란히 문간에 서 있었다. 숙모는 누군가를 업었는지 포대기를 두르고 있었다. 그때의 어스름한 거리의 정적을 나는 잊지 못한다. - P25

나는 1909년 여름에 태어났으니까 메이지 천황 붕어 때는네 살이 조금 넘은 나이였다. 아마 같은 무렵의 일인 듯한데, 나는 숙모와 둘이서 우리 마을에서 20리 정도 떨어진 어느마을의 친척 집에 가서 본 폭포를 잊을 수 없다.  - P25

낯선 남자의 목말을 타고나는 폭포를 바라보았다. 무슨 신사가 옆에 있어 그 남자가 그곳의 갖가지 에마(絵馬)¹를 보여 줬지만 나는 점점 쓸쓸해져서 가차, 가차, 하고 울었다. 나는 숙모를 가차라고 불렀다. 숙모는 친척들과 멀찍이 움푹 팬 땅에 양탄자를 깔고 떠들썩하다가, 내 울음소리를 듣고 황급히 일어섰다.

1) 발원할 때나 소원이 이루어졌을 때, 신사나 절에 말 대신 봉납하는 말 그림 액자 - P26

숙모에 대한 추억은 여러 가지 있지만, 그 무렵 부모님과의 추억은 공교롭게도 하나도 가진 게 없다. - P26

예닐곱 살이 되면 추억은 또렷하다. 나는 다케라는 하녀에게 책 읽는 것을 배워 둘이서 여러 책을 함께 읽었다. 다케는내 교육에 열심이었다. 나는 몸이 허약한 탓에 누워서 많은책을 읽었다. 읽을 책이 없어지면 다케는 마을의 일요학교 같은 데서 어린이책을 부지런히 빌려 와 내게 읽도록 했다. 나는묵독을 익혔기 때문에 아무리 책을 읽어도 피곤하지 않았다. - P27

절 뒤편은 높다란 묘지이고, 황매화나무 산울타리를 따라수많은 솔도파(率堵婆)²가 숲처럼 서 있었다. 솔도파에는 보름달만 한, 자동차 바퀴처럼 검은 쇠바퀴가 달린 게 있었다.

2) 죽은 사람의 공양을 위해 경문 구절 따위를 적어 묘지에 세우는, 위가 탑처럼 뾰족하고 갸름한 나무판자 -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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