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다 읽었었던 책인데, 왜 완독이라고 안 해놨을까.

재미있는 책이지만, 두 번은 읽는 것이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책.
그래도 연작 도서들에게 좋은 평가를 남겨줄 의향은 있습니다. 일단 다 읽어봐서, 최근 추리 소설을 잘 안 읽은 것도 있지만, 몇몇 책은 별로 재미가 없다보니.

그래도 장점을 말하자면, 의외성입니다. 이는 단점과도 동일한데 의외성을 주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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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었고, 이젠 위로도 안 된다.
그래도 각주는 잘 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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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날 때마다 읽기 좋은 책.
하지만 쉽지도 않고 친절하지도 않은 책.
언젠간 실물로 사야지 하는 책.



실제로 19세기 미국 문화는끝없는 소비가 아니라 절제와 극기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특히 노동자들은 검소하고 저축하는 생활을 하도록 장려되었는데 그중에서도 사치품을 사는 데 돈을 쓰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오직 기본적인 먹을거리, 의복, 가정용품이나 설비 같은 필수품만을 사거나, 되도록 기초 물품은 서로 나누어 썼다. - P39

부유한 사회 구성원들은 수세기 동안 그랬던 것처럼 서로 경쟁적으로 자신들의 부와 사치를 과시했다. 그러나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 P40

마케팅과 광고.

(중략)
18세기와 19세기 전반에 걸쳐 소매상들은 상품을 어떻게 보여줄지에 관심이 없었다. 최초의 백화점인 봉마르셰가 1852년 파리에서 문을 열자 사람들은 상품을 사지 않고도 가게를 둘러볼 수 있게 되었다. 로절린드 윌리엄스가 말한 것처럼 봉마르셰 같은 기업들은 "자유로이 떠다니는 욕망을 자극하는 일에 몰두했다(McCracken, 1988, 25쪽에서 인용). - P41

그러나 봉마르셰는 특별한 경우였다. 미국 상점들은 대부분의 제품을 대량으로 진열했다. 제품들을 잘 팔기 위해 특별히 신경을 써서 배치하는 것에는 전혀 무관심했다. 아이보리 비누와 퀘이커 오트밀이 시장에 처음 나온 1870년대까지만 해도 제조사 상표가 찍힌 포장된 제품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Carrier, 1995, 102쪽). - P41

 1880년대 말 이전까지 광고는 경멸의 대상이었으 P. T. 바넘(19세기 말 미국에 서커스 전성기를 가져온 흥행사-옮긴이)이하는 식의 속임수와 관련이 있다고 여겨졌다. 1880년 미국에서 광고하는데 들어간 돈은 3,000만 달러에 불과했다. 그러나 1910년에는 석유, 식품, 전기, 고무 등 신사업에서 광고비로 지출한 돈이 6억 달러로 전체 국민소득의 4퍼센트에 이르렀다.  - P42

광고엽서, 카탈로그, 신문광고는 이제 미국인의 일상생활에 자리잡았다.
광고 게시판이나 간판, 벽보 같은 옥외광고는 어디서든 볼 수 있었다. 네온사인과 점멸등 간판 같은 전기를 이용한 광고도 시장에 등장했다. 브로드웨이는 ‘불야성의 거리‘로 이름을 떨쳤다. 오늘날 광고는 우리 삶의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심지어 우리 옷에 광고가 새겨지거나 수놓아졌어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 P42

유행이라는 개념은 상품의 판매 촉진에 또 다른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물건을 소유하고자 하는 끊임없는 열망의 분출은 ‘새로운‘ 현상이거나 최근의 일이 아니었다. - P43

1915년 의류 생산은 10억 달러를 넘어섰다. 뉴욕에서만 1만5,000개 업체가 여성 옷을 만들었다. 『보그』나 『코스모폴리턴』, 『달리니에이터』 같은 새로운 패션잡지들이 유행의 기준을 정하고 특권층이나 부자, 유명연예인들을 모델로 써서 사회적으로 의식 있는 여성들이 무엇을입어야 할지 규정했다. - P43

이런 대중적 인기에 힘입어 1923년 존 파워스가 뉴욕에 최초의 패션모델 회사를 설립했다(Leach.
1993, 309) 연예산업은 유행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고 1920 년대 미국여성들은 클라라보 같은 영화배우들을 모방하려고 난리였다. - P43

윌리엄 리치는 서비스가 새로운 소비자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였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서비스가 그 당시 미국에 만연한 불평등과 가난, 노사분쟁을 가리는 구실을 했다고 말했다. 또한 소비자 사회가 어떻게 발전했는지 알고 싶다면 서비스의 발전과정을 보라고 주장했다. - P43

사회기관의 변화

미국인의 구매 습관을 바꾼 두 번째 방식은 미국 사회를 뒷받침하는 주요 기관들의 변화를 통해 소비를 촉진하도록 기능을 재정립하는 것이었다. 교육기관, 문화기관, 정부기관, 금융기관과 심지어 가족 자체까지도상품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그 의미와 기능을 바꿨다. - P44

 예컨대 미국의 전문학교나 대학에서는 그때까지 대량소매와 신용제도, 금융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를 진행하지 않았다. - P44

박물관들도 소비자 문화의 발전을 위해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재정립했다. 뉴욕 맨해튼에 있는 미국자연사박물관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비롯해 브루클린 박물관과 뉴어크 박물관(모두 J. P. 모건과 같은 부자들이거액을 기부한 곳들은 기업들과 제휴하기 시작했다. - P45

패션과 의복의 역사와 관련한 특별 전시가 마련되었다. 위슬러는 그 전시를 위해 뉴욕에 있는 백화점들의 매장상품 진열기법을 차용했다(사실은 1893년 인류학자 프란츠 보애스가 시카고 만국박람회에서 외국 문화 관련 전시를 하면서 마네킹을 썼던 착상을 나중에 매장상품 진열 디자이너들이 모방했다). - P45

 그러나 20세기 이전까지 국가의 관심은 상품 제조, 기업조직, 노동통제, 상품 이동에 주로 초점을 맞추었다. 국가기관이 경기순환에서소비 부문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들어서다. 실제로 정부가다른 어떤 사회기관들보다도 소비자의 탄생에 더 많은 기여를 했다고 말한 것은 과장이 아니다. - P45

1932년 상무부 건물이 워싱턴에 세워졌을 때, 그것은 세계에서 가장 큰 관제건물이었다(10년 뒤 국방부 건물이 건립되기 전까지 그 건물보다 더 큰 관건물은 없었다). 그때 상무부 건물에는 실제로 특허청을 비롯해 당시 가장중요한 부서였던 내외통상국BPDC까지 기업과 관련된 모든 정부 부한자리에 모였다. 의회가 BFDC에 배정한 예산은 1921년 10만 달러에서1930년 800만 달러로 8,000퍼센트 증가했다. 그동안에 BFDC의 직원수 역시 100명에서 2,500명으로 늘었다. - P46

상무부는 소매광고와 협동광고를 지원하고 상인들에게 서비스 전략, 유행, 방식, 온갖 종류의 진열방법에 대해 자문을 아끼지 않았다. 상무부는 소매상들에게 상품을 소비자들에게 배달하고 상점가를 재개발하고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주차장과 지하수송체계를 정비하고 색전구를 달고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식‘으로 상품을 진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 조언했다. - P46

또한 후저는 개인의 주택 소유를 강조했다. 그는 회고록에서 "모든 미국 가정의 가장 중요한 권리는 적어도 한 번은 자기가 꿈에 그리던 새집을 짓는 것이다. 더 나아가 사람이면 누구든 자기 집을 소유해 스스로 가재도구와 방, 주변 환경들을 정리하고 싶은 본능이 있다"라고 썼다(Nash,
1988, 7쪽 인용). 상무부는 영화 <즐거운 나의 집>과 함께 ‘당신의 집을 소유하라‘는 제목의 홍보전단을 제작해 ‘주택 구입‘을 장려하며 전국에 뿌렸다. - P47

소비자 경제를 만들어내는 또 다른 조치는 노동자들에게 더 큰 구매력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중략)
 기업가나 고용주의 입장에서 가장 이상적인 상황은 지속적으로 생산원가를 낮추고 이익을 늘리기 위해 되도록 임금을 낮게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상품 생산자들은 저마다 다른 생산자들이 높은 임금을 지불하기를 바란다. - P47

따라서 때때로 경제가 호황을 맞아 노동자들의 소비 수준이 높아지면 중류계급과 상류계급은 노동자들이 검소하지 못하다고 비난하곤 했다. - P47

기업들은 효율성을 늘리기 위해 새로윤 수단들을 개발했다.
(중략)
그것은 특별한 훈련이 필요하지 않고 포드가 말한 것처럼 "아주 멍청한 사람들도 이틀이면 익힐 수 있는" 공정이었다. 말하자면 노동자들은 모두 하루에 9시간씩 동일한 동작을 10초마다 반복해야 했다. - P48

노동자들은 이렇게 멍하니 지루하게 일하는 공정에 반발했다. 포드가처음으로 이런 일관작업 체계를 도입하자 장기 결근자들이 늘어나고 직장을 옮기는 사람들도 급증했다. (중략) 그는 업계 평균 하루에 2~3달러 하던 임금을 5달러로 올리고 근로시간도 하루 8시간으로 줄였다. 그러자 곧바로 이직률이 5퍼센트로 떨어지고 포드 공장에 취업하려는 노동자들이 줄을 섰다.  - P48

1929년 미국인이 소유한 자동차수는 2,300만 대였는데 1950년에는 4,000만 대가 넘었다. 오늘날은 소형 트럭을 포함해 한 사람당 평균 1.3대의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다. - P48

19세기에 미국인들은 신용거래를 극도로 거부했다. 미국 사회에서 신용거래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은 1920 년대에 들어서였다(Calder, 1999).
이로써 자동차와 주택 구매의 전성기가 도래했다. - P49

주택담보대출을 받기가 쉬워지면서 1940~1960년대의 주택 건설 경기는 호황을 이루었다. 그것은 이어서 가정용품, 가구, 도로 건설과 같은 관련산업의 활성화에도 불을 붙였다. 1960년 전체 미국인의 62 퍼센트가 자기 주택을 소유했다. 1940년 44퍼센트였던 것에 비하면 크게 늘어난 셈이다.  - P49

 2008년 미국 가구가 부담해야 할 빚은 13 조달러를 넘었다. 미국 가정의 20퍼센트가 자산보다 빚이 많았다. 자산 가운데 부동산을 제외한다면 그 비율은 40퍼센트로 늘어났다. - P49

하지만 우리 경제에서 돈을 빌려주는 주체들은 사람들이 빚을 갚을 때가 되면 그 돈이 현실화된다고 단순하게믿는다. - P49

그러나 이 가운데 어떤 것도 정부가 이자율을 제한하고(이자율 한도),
‘공정대부법‘을 통과시키고, 여성이나 소수자 집단과 같은 특정 집단이돈을 빌리기 쉽게 조치하고, 학자금 융자를 제공하는 금융정책을 실시하지 않았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 P49

그전까지 상품 유통은 주로 소규모 상점이나 대가족이 소유한 백화점이 담당했다. 그러나 1920 년대 들어 대형 복합 소매업체가 등장했다. 1886년에는 오직 두 곳의 연쇄점업체가기껏해야 5개가 넘는 상점을 운영했을 뿐이다. 하지만 1912년에는 177곳의 연쇄점업체가 2,235개의 계열 판매점을 운영했고, 1929년에는 거의1,500곳의 연쇄점업체가 7만 개의 계열 판매점을 운영했다. - P50

정신적 · 지적 가치의 전환

(전략)
 T. J. 잭슨 리어스는1880~1930년에 검약과 자기부정을 강조하던 것에서 정기적인 여가와 강박적인 소비, 자아실현을 선호하는 것으로 미국의 가치관이 바뀌었다고 주장했다(Lears, 1983).  - P50

광고업자들은 제품을 광고하는 방식을 바꿈으로써 이런 변화를 자본화했다. 그들은 제품 자체의 특징을 강조하기보다는 제품과 연관된 부수효과와 좀더 풍요롭고 윤택한 생활에 대한 약속을 더 많이 강조했다. 단순히 어떤비누나 신발, 방취제의 품질이 좋다고광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제품이 구매자의 심리와 신체, 사회적 행복에얼마나 큰 기여를 하는지 광고한 것이다(Lears, 1983, 19쪽). - P50

옷이나 향수, 방취제 등은 사랑을 매개하는 수단을 제공할 것이다. 알코올음료는 우정을 돈독히 해줄 것이다. 안전한 자동차 바퀴나 보험증권은 가족에 대한 책임을 충족시키는 수단을 제공할 것이다. 상품은 만족의 원천이며 자기표현의 중요한 수단이 될 것이다.  - P51

19세기 말에 마음의 치유라고 알려진 일련의 종교운동이 등장했다.
(중략)
이런 운동들, 즉 신사상운동, 교회일치운동, 기독교과학운동, 신지학운동 등은 사람들이 단순히 의지와 신념에 따라 행동하기만 한다면 질병을 고치고 지상천국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했다. - P51

이런 신흥 종교들은 사람들에게 고통과고난을 벗어난 지상천국이 바로 상품의 세계에 있다는 생각을 널리 퍼뜨렸다. 사람들은 이제 한 종교사가가 말한 것처럼 ‘상품‘
goods 을 통해서 ‘선‘good을 찾게 되었다. - P53

빌리켄 인형의 인기는 정신적 가치의 변화가 일어났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이제 이 세상에서 자아실현을 추구하고 인간이 만든 상품에서 만족할 만한 요소를 찾는 것이 가능해졌다. 세상은 좋은 곳이었다. 어떤 괴로움도 없었다. 가난과 불의, 불평등은 오직 마음속에만 있었다. 모든 사람에게 부족함이 없는 세상인 것이다. - P53

이런 변화는 미국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다른 나라들에서도 똑같은 변화가 일어났는데 그 가운데서도 영국과 독일, 프랑스가 가장 두드러졌다(Carrier, 1995). 이제 전 세계가 바뀌고 있었다.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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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TVELY 핏블리의 포인트 레슨

양질의 단백질이 포함된 식사를 했다면 단백질 보충제를먹지 않아도 돼요. 보충제를 먹는다고 해서 근육을 더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만약 보충제를 먹는다면 운동을마치고 30분 후에 먹는 것이 좋아요. - P50

운동을 하고 나서 단백질이 충분한 식사를 하면 보충제를 따로먹을 필요가 없어요. 보충제를 먹고 닭가슴살까지 먹는 경우도 있는데, 너무 많은 단백질을 한 번에 먹으면 간과 신장에 무리를 줄 수 있어요. - P50

단백질 보충제는 식사를 할 수 없을 때 간편하게, 또는 저녁 운동을 하고 나서소화기관에 부담을 주지 않도록 액상으로 섭취하기에 좋아요.  - P50

 프로 선수들이 장기간 고강도 운동을 할 때 ‘크렙스회로‘라는 단백질 대사를 사용하지만,
일반인들은 탄수화물을 에너지로 먼저 사용하고 다음으로 지방을 사용하게 되어 있어요. - P51

WPC는 농축유청단백질이에요. 장점은 우유의 미네랄과 다양한 영양분을 고스란히 갖고 있고 다른 보충제에 비해 저렴한 편이에요. 단점은 흡수율이 낮고 유당불내증이 있는 사람이 먹으면 설사하기 쉬워요. 유당불내증이 있으면 유청을 제거한 WPI를 먹는 것이 좋아요. - P51

WPH는 분리유청가수분해단백질이에요. 단백질 순도가 가장 높고 유당불내증이 있어도 소화가 잘돼요. - P51

만약 몸이 마른 편이어서 체중을 늘리고 싶다면 게이너(gainer)를 추천해요.
게이너를 2스푼 정도 먹으면 400~600칼로리를 섭취할 수 있어요. - P52

일반적으로 단백질 보충제 30g에 단백질이 24g 들어 있고 탄수화물은 2.3g 정도로 적게 들어 있는데이것만 먹으면 당신생으로 오히려 근손실이 일어날 수 있어요. - P52

그러니 단백질 보충제는 무조건 단백질 함량이 높은 것보다는 ‘프로틴 밀‘처럼 단백질, 탄수화물, 식이섬유가 골고루 들어간 제품을 식사 대용으로 먹는 것이 좋아요. - P52

운동할 때 우리 몸은 이화작용을 통해 몸에 저장된 복잡한 물질을 간단한 물질로 분해해서 에너지를 얻어요. 그런데 단백질 보충제를 먹으면 몸에 흡수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이화작용이 동시에 일어나요 - P52

 단백질 보충제는 운동을 완전히 마치고 30분 정도 지나서 먹는 것이 좋아요. 운동이 끝나도 성장호르몬이 안정화되는데 30분 정도 걸리기 때문에 그 시간을 기다려주는 거예요. - P53

직장인은 퇴근 후 저녁에 운동하는 경우가 많죠. 운동 후 30분 정도 기다렸다가 단백질 보충제를 먹고 바로 자야 하는데, 음식과 마찬가지로 단백질 보충제도 취침 전에 먹으면 좋지 않아요.  - P53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저녁 운동을 끝내고 30분 정도 있다가 단백질보충제를 먹고 2~3시간 후에 잠자리에 드는 거예요.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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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적으로는 지구력을 요하는 종목의 운동선수들(내 생각에는 에베레스트 등반 스피닝 이벤트에 참가하는 사람들도 여기에 속하리라고 보인다.)은 항상 인체의 주요 에너지원인 글리코겐이 근육에서 모두 빠져나갈 위험을 가지고 있다. 몇 시간이고 계속해서 근육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어떤 선수들은 대회에 출전하기 직전에 엄청난 양의 탄수화물(인체는 신진대사를 통해 탄수화물을 당으로 전환시킨다.)을 섭취함으로써 보통 때보다 많은 양의 글리코겐을 몸에 저장한다. - P244

코스틸은 장거리 육상 경주나 사이클 대회를 치르는 선수들은 혈당수치가 떨어지는 것을 발견했고, 그것이 바로 피로의 원인이라고 보았다. - P244

운동을 하는 도중에 이 선수들 중 한 그룹에게는 진짜 당분이 함유된 달콤한 스포츠 드링크를 주고, 다른 한 그룹에는 인공 감미료와 인공 향신료가 든 음료를 주었다. 15분마다 운동선수들은 연구진이 배급한 음료를 마셨다. 처음 90분 동안은 두 그룹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드러나지 않았다. 양쪽 모두 서서히 힘이 약해져서 처음 출발할 때보다 약 10퍼센트 정도 힘이 줄어든 상태였다. 그러다가 진짜 당분이 함유된 음료를 마신 그룹의 선수들은 다시 힘이 솟기 시작해서 처음보다 오히려 더 큰 힘을 사지고 힘차게 실험을 끝냈다. - P244

또 다른 실험에서는 젊은 사이클 선수들에게 4시간 동안 사이클을 타도록 했다. (중략) 실험에서 코스틸은실험 대상자들에게 운동을 시작하기 전과 운동 시작 1시간 후 2시간후, 그리고 3시간 후에 각각 당분이 든 음료를 주었다. 그 다음에는 같은 선수들에게 다시 4시간 동안 사이클을 타게 하되 이번에는 인공 감미료로 단 맛을 낸 음료를 주었다. 실험 대상자들은 처음 실험에서 마신 음료와 두 번째 실험에서 마신 음료의 차이를 알지 못했다. - P245

그러나 코스틸은 이 실험의 결과가 근육에 이미 다량의 글리코겐이 저장되어 있을 때에도 당분을 더 공급하면 운동능력이 더 나아진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경고했다. 글리코겐이 고갈되었을 경우에만 당분 공급이 효과를 본다는 것이다. - P245

그러므로 우리가 먹었던 스포츠 젤은 우리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 P245

그러나 새삼 묻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우리가 운동을 할 때 실제로 얼마나 많은 양의 물이 필요하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점이었다. 코스틸이 운동 생리학자로서 출발하던 초기 시절에는 마라톤 선수들이경기 도중에 물을 마시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 P246

 요즘으로 말하면 금지약물처럼, 물이 부정하게 경기력을 향상시켜 주는 요소라고 보았던 것이다. - P246

코스틸은 선수들이 경기 도중에 무엇을 마셨는지 조사해 보았다. 선수들이 마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마라톤 규정 때문에 선수들은 한경기를 뛸 때 약 5리터의 수분을 잃었던 것이다. "그건 정말 어리석기짝이 없는 규정입니다." 코스틸이 이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다른 학자들도 마라톤 선수들의 수분 공급 금지 규정이 얼마나 위험한 규정인지 동의하자 그 후로는 마라톤 대회에서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된 급수대에서 선수들이 원하는 만큼 물을 마실 수 있도록 규정이 바뀌었다. - P247

 따라서 근육에 전달되는 포도당과 산소의 양 역시 줄어들고 피부 표피까지 순환해서 체온을 식혀 줄 혈액 공급이 모자라게 된다. - P247

선풍기가 내 피부에서 땀을 건조시켜 주고 혈액을냉각시켜 줌으로써 위와 같은 빈곤의 악순환을 막아 주기 때문이다. 체육관에서 땀을 비 오듯이 흘리면서도 시원한 바람이 겁난다는 듯이 굳이 선풍기에서 가장 먼 곳에서 운동하기를 고집하는 사람들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코스틸의 설명을 듣고 보니 내 생각이 옳았다 -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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