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러 에코다


씹는 맛이 좋은 바게트와 어울리는
힘찬 식감의 속 재료를 끼워요 - P104

반미 샌드위치에는 부드러우면서도 ‘맛이 도드라지지 않는 빵이 좋다고 하지만 저는 꼭 맞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맛있는 빵과 속 재료로 만들면 더욱 맛이 훌륭한 반미가 될 테니까요. - P104

씹는 맛이 좋은 빵이어서 속 재료 역시 씹는 느낌이 좋은 재료를 쓰거나 두툼하게 써는 등 식감을 맞추었습니다. 반미는 여러 가지맛, 식감, 향이라는 요소가 빵 사이에 끼워져 있습니다. 그러한 요소들을 얼마나 「팔러 에코다」답게 표현할 수 있는가를 고민해 다섯 개의 반미를 만들었습니다.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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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적인 논리에서는 A와 B를 대비해 한쪽을 취하는 것이 기본적인 진행 방식이지만, A와 B 중 어느 쪽도 아닌 바를 교묘하게 써나가려고 하는 데리다의 문체는 전에 없이 독특하고, 언뜻 보기에명확하지 않아 읽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오늘날에는 이렇게 쓰는사람이 없을 거예요. - P35

입문서로는 우선 다카하시 데쓰야의 『데리다: 탈구축과 정의』¹³를 추천합니다. 이 책은 『산종』의 첫 번째 논문 「플라톤의 파르마케이아」의 해설로 시작하는데, 이 텍스트를 선정한 것은 정말로 잘한 것이라서 절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 P36

여담인데, 데리다의 저작을 읽으면 최근 강해지고 있는 "이해하기 쉽게 쓰지 않는 것이 나쁘다"라고 하는 독자 중심의 태도가 얼마나 천박한지 깨닫게 됩니다. - P36

이항대립에서 벗어나는 차이

프랑스 현대사상을 크게 포착하는 데에는 ‘차이‘가 가장 중요한 핵심어입니다.  - P37

현대사상이란 차이의 철학이다


(전략). 거꾸로 차이의 철학이란 반드시 정의에 들어맞는 것은 아닌 어긋남(간극)이나 변화를 중시하는 사고입니다. 이것을 특히 강하게 내세운 사람이 다음 장에서 다루는 들뢰즈입니다. - P37

지금 동일성과 차이가 이항대립을 이룬다고 했는데 그 이항대립에서 차이를 강조하고 하나의 정해진 상태가 아니라 어긋남(간극)이나 변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현대사상의 큰 방침인 것입니다. - P37

(전략). 그것은 즉, 어쨌든 차이가 중요할 뿐만 아니라, 사물(일)에는 일정한 상태를 취하는 면도 있다는 것입니다. - P38

동일성은 물론 나쁜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입니다. 다만 동일성은 절대가 아니다라는 마인드를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 P38

파롤과 에크리튀르


데리다의 논의는 무엇을 생각하든, 사고하는 것 전반과 관련됩니다. 일종의 사고술이죠. 그래서 여러 가지 응용이 잘됩니다.
이항대립에서는 종종 한쪽이 우위, 다른 쪽이 열위로 규정됩니다. 하지만 우열이 반전될 수도 있습니다. - P39

고대부터 글로 쓰인 것보다 실제로 들은 얘기가 진리의 기준이라는 사고방식이 있었습니다. - P40

(전략). 에크리튀르는 하나의 같은 장소에 머물러 있지 않고 여러 곳으로 흘러 나가 해석이라고 할까 오해를 만들어 버립니다. - P40

. 사실 눈앞에서 말하고 있다고 해서 정말로 하나의 진리를 말하고 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말하는 것에도 에크리튀르성이 있는 것입니다. - P40

이항대립의 분석

(전략). 이 마이너스 쪽에 주목한다는 얘기가, 데리다가 다음 인용에서 말하는 ‘전도‘입니다.

....어떤 고전적인 철학적 대립에서 우리는 마주 대함의 평화로운 공존이 아니라 어떤 폭력적인 위계질서에 관계되어 있습니다. 두 항 중 하나가 다른 하나를 (가치론적으로, 논리적으로 등등) 명령하고 높은 곳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대립을 탈구축한다는 것은 우선 어떤 일정한순간에, 위계질서를 전도시킨다는 것입니다.¹⁴



14 Jacques Derrida, Positions: Entretiens avec Henri Ronse, Julia Kristeva, Jean-LouisHoudebine, Guy Scarpetta, Les Éditions de Minuit, 1972, pp.54-55.; ジャック•デリダ, 
訳, 『ポジシオン』, 青土社, 2000, 60眞.; 자크 데리다, 박성창 편역, 「입장들』, 솔, 1992, 65쪽. 프랑스어 원문과 대조하면 일역본이 더 정확하다. 다만 hiérarchie는 한국에서 대체로 ‘위계 서열(화)‘보다는 ‘위계질서‘로 번역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좋겠다. 또 la hauteur를 일본은 ‘높은 지위‘로, 한국어본은 ‘우위로 번역했으나 ‘높은 곳‘이 축적 번역이다. - P42

탈구축절차는 다음과 같이 진행됩니다.

① 우선 이항대립에서 한쪽을 마이너스로 하는 암묵적 가치관을 의심하고 오히려 마이너스의 편을 드는 다른 논리를 생각합니다. 하지만 단순하게 역전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 P42

② 대립하는 항이 상호 의존하며, 어느 쪽이 주도권을 잡는 것도아니고 승패가 유보된 상태를 그려 냅니다.

③ 그때 플러스도 있고 마이너스도 있는, 이항대립의 ‘결정 불가능성‘을 담당하는 제3의 개념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 P43

비본질적인 것의 중요성

어떤 내용이든 뭔가 주장을 할 때는 반드시 A vs B라는 이항대립을 사용하지만, 보통은 별로 의식하지 않습니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사용합니다. - P44

이런 데리다의 ‘본질주의 비판‘ 덕분에 주디스 버틀러는 『젠더 트러블』이라는 책을 쓰고 동성애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원리론을쓸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 서양 문명보다 뒤처진다고 여겨졌던 여러 지역의 명예 회복을 위한 ‘포스트콜로니얼리즘postcolonialism‘에대한 논의도 데리다적 발상을 통해 가능해졌습니다. - P45

가까운가 먼가


이쯤에서 깊이 파고들고 싶은데요, ‘본질적 = 중요‘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것은 이상한 질문일지도 모릅니다. 즉, 중요하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인데요, 보통 그런 것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 P45

가짜보다 진짜가 낫다는 건 상식이잖아요. - P45

이것이 근본적인 이항대립으로, 또렷이 눈앞에 진짜가 있다는 것을 철학에서는 ‘현전성‘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러한 현전성에 대해 열등하다는 ‘재현전‘과의 대립이 있습니다.  - P46

직접적인 현전성, 본질적인 것: 파롤
간접적인 재현전, 비본질적인 것: 에크리튀르 - P46

 파롤은 직접 진의를 전한다. 에크리튀르는 간접적이기 때문에 오독된다. 이것을 조금 전의자연과 인공 또는 문화의 대립에도 해당하는 ‘우화‘처럼 파악해 주었으면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 P47

탈구축의 윤리

지금까지 데리다의 사고방식에 대한 개념적인 설명이었습니다. - P49

크게 말해서 이항대립에서 마이너스라고 여겨지는 쪽은 ‘타자‘쪽입니다. 탈구축의 발상은 불필요한 타자를 배제하고 자신이 흔들리지 않고 안정되고 싶다는 생각에 개입하는 것입니다. 내가 내게 가장 가까운 상태이고 싶다는 생각을 흔드는 것입니다. - P49

데리다와도 관계가 있었던 에마뉘엘 레비나스Emmanuel Lévinas (1906~1995)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유대인 철학자로, 그도 그런 방향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 P49

레비나스와 데리다의 차이를 간단히 말하면, 레비나스의 경우 타자의 동떨어진 절대적인 거리[멂]를 강조하는데요, 데리다의 경우는 일상 속에 타자성이 거품을 일으키는 듯한 이미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P50

 일체의 물결이 일지 않는, 투명하고 안정된 것으로서 자기나 세계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탄산이고, 거품이 일고, 소음으로 시끄러우며, 그러나 모종의 음악적인 매력도 가지고 있는듯한, 웅성거리는 세계로서 세계를 파악하는 것이 데리다의 비전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P50

자연과 문화는 서로 의존하고 있으며 주종이 계속 바뀝니다. 이런 의미에서 자연이든 문화든 파르마콘적으로 양의적인 것이라고 파악할 수 있습니다. - P51

 (전략). 그러나 그때 무엇인가를 잘라 버렸다, 고려에서 배제해 버렸다는 것에 대해 창피하다는 생각이 남을 것입니다. - P51

미련에 찬 결단을 내리는 사람이야말로 ‘어른‘

(전략).
이것은 제 해석인데요, 그들의 사상은 "애초에 인간은 아무 말하지 않아도 우선 행동하지요"라는 것을 암묵적인 전제로 삼는 것이라고 파악하는 편이 좋습니다. - P52

게다가 그 접목에도 한도가 있습니다. 뭔가 이벤트를 한 가지 기획한다고 할 때, 모두를 만족시키고 아무런 비판도 받지 않게 할 수는 아마 없을 겁니다. 시간이나 물자에 제약이 있으니까요. - P53

사람은 결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P53

이와 같이 본서에서는 차이나 타자로부터의 호소의 중요성을 설명한 다음, 그러나 결단을 내리거나 동일화하는 것은 그것대로 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것과 타자성 사이의 마주 대함이 팽팽하게 맞버티는 가운데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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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미☆샌드위치


두툼하고 맛있는 캐나다 반미가 제 마음을 흔들었어요.


제가 처음으로 반미를 먹은 건 어학연수로 갔던 캐나다에서였습니다. 싸고 맛있으면서 한 개로도 여러 식감을 한 번에 맛볼 수 있다는 점에 감격해서 일주일에 세 번은 먹으러 다녔습니다. (후략). - P67

원래는 베이커리를 열 생각이었기 때문에 빵은 직접 만들고 있습니다. 개업 후에 인터넷으로 베트남 빵을 만드는 방법을 연구했는데, 밀가루에 쌀가루를 더하여 쓰기도 하는 등 배합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나중에 쌀가루를 쓰는 베이커리는 사실 거의없다는 걸 알았지만, 쌀가루를 쓰면 더욱 바삭바삭해지기 때문에 지금도 고집하여 쓰고 있습니다. - P67

2019년에는 이동하면서 판매할 수 있도록 푸드 트럭을 개시했습니다. 앞으로는 여러 곳을 찾아가 맛있는 반미를 많이 팔고 싶습니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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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세월이 지난 뒤, 총살형 집행 대원들 앞에 선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¹은 아버지에 이끌려 얼음 구경을 갔던 먼 옛날 오후를 떠올려야 했다.


1)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에 의하면,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1899년 콜롬비아 보수 정권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켰던 자유파 지도자 라파엘 우리베 우리베 장군이 모델이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라파엘우리베 우리베 장군의 빼빼 마른 외양뿐만 아니라 엄격한 성격까지 닮았다. 아우렐리아노라는 이름은 라틴어의 <aurum(황금)>에서 유래하고 있다. - P11

만 했다. 매년 삼월경이면 누더기를 걸친 집시 가족 하나가 그 마을 어귀에 천막을 쳐놓고는 북을 치고 나팔을 불어대면서 아주 소란스럽게 새로운 발명품들을 선전하곤 했다. - P12

「물건들이란 제각각 생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요」²
영혼을 깨우기만 하면 다 되는 겁니다. 그 집시가 투박한 어조로 떠벌리곤 했다. 

2) 부엔디아 가문의 역사를 예언한 멜키아데스가 한 이 말은 이 소설의, 특히<마술적 magic>인 차원에서, 문제 해결의 열쇠들 가운데 하나다. - P12

(전략). 그는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증명하기 위해 여러 달 동안 갖은 애를 다 썼다. 그 쇠붙이 두개를 질질 끌고, 큰소리로 멜키아데스의 주문⁴을 읊조리면서 강바닥까지 포함해 일대를 샅샅이 훑었다.

4) 『물건들이란 제각각 생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요, 영혼을 깨우기만 하면 다 되는 겁니다』 - P13

. 이글이글 타오르는 어느 날 정오, 집시들은 그 거대한 돋보기를 가지고 놀라운 광경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길 한가운데에 마른 풀잎들을 쌓아놓고서 태양 광선을 모아 불을 붙였다. 그 자석 건이 실패로 돌아간 것 때문에 아직 마음을 달래지 못하고 있던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는 그 발명품을 전쟁 무기로 사용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 P14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는 과학자로서의 헌신적인 태도에다 목숨을 잃을 위험까지 무릅쓰며 자신의 전술적실험에 완전히 몰입해 있었기 때문에 우르술라를 달래려고조차하지 않았다. - P14

그는 그 새로운 무기가 지닌 전술적 가능성이 무엇인가를 측정하면서 오랜 시간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지낸 결과 마침내 어찌나 명쾌한지 가르치기에도 쉽고, 읽으면 머리에 쏙쏙 들어올 수 있는 설명서 하나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 P15

. 결국, 기다리다 지친 그가 멜키아데스 앞에서 자신의 제안이 수포로 돌아간 것에 대해 한탄을 하자 그 집시는 자신이 정직하다는 사실을 충분히 입증할 만한 증거를 보여주었다.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에게 돋보기 값으로 받은 금화들을 되돌려주고, 덤으로 포르투갈 지도 몇 장과 갖가지 항해 도구들까지 건네주었던 것이다.  - P15

 집안 일들을 완전히 내팽개친 채 정원에서 별의 운행을지켜보면서 밤들을 지새웠으며, 정확하게 정오를 측정하는 방법을 설정한답시고 거의 일사병에 걸릴 지경에 이르기도 했었다. 기구들을 사용하고 제어하는 데 전문가가 되었을 때, 골방을 떠날 필요도 없이 미지의 바다들을 항해하고, 사람이 살지 않는 땅들을 찾아가고, 멋진 인간들과 접촉하는 걸 가능케 해줄 수 있는 공간에 대한 개념 하나를 갖게 되었다. - P16

「지구는 둥글지, 마치 오렌지처럼」
우르술라는 인내심을 잃고 말았다. 「미치려거든 당신 혼자서나미쳐요. 하지만 당신이 가지고 있는 그 집시 같은 생각들을 애들에게 주입시키려 하진 말아요, 그녀가 소리를 질러댔다. - P17

마을 사람들이 모두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가 판단력을 잃어버렸다고 믿게 되었을 즈음 멜키아데스가 도착해 시시비비를 가려주었다. - P17

그 시기에, 멜키아데스는 놀라우리만치 빠르게 늙어버렸다. - P17

 그러나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가 말의 귀를 잡아당겨 쓰러뜨릴 수 있을 만한 괴력을 지니고 있었던 반면, 그 집시는 지병으로 몸이 쇠진한 것처럼 보였다. 사실, 그것은 세계곳곳을 셀 수도 없이 여행하면서 얻은 여러 가지 희귀한 병의 결과였다. - P18

 그는 활짝 펼쳐진 까마귀 날개처럼 커다란 검은모자를 쓰고, 수세기의 녹청(緑靑)이 끼어 우중충해진 벨벳 조끼를 입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무한한 지식과 신비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짐 하나와 자신을 일상의 자질구레한 문제들에 얽매이게 만드는 삶의 조건 하나를 지니고 있었다. - P18

『이건 악마의 냄새예요』 그녀가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멜키아데스가 바로잡아 주었다. 『악마는 유황 성분을 지니고 있다는 게 밝혀졌고요, 또 이건 단지 약간의 염화수은일 뿐이지요』
늘 무언가 가르치려고 드는 멜키아데스는 적색 황화수은이 지닌 악마적 특성에 대해 현학적인 설명을 했지만 우르술라는 들은체도 하지 않고 기도를 하러 애들을 데리고 나가 버렸다. - P19

멜키아데스는 이런 물건들 외에도 일곱 행성에 해당하는 일곱 가지 금속 표본과 황금을 두 배로 늘리는 모이세스와 조시모¹¹의 공식들, 그리고 <위대한 연금술>¹²의 과정을 밝히고 있는 일련의 메모와 그림들을 놓았는데, 그 메모와 그림들을 해석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현자의 돌>¹³을 만들 시도를 할 수 있었다.


11) 연금술 전통의 두 가지 근본(유대와 그리스). 조시모 Zósimo는 서기 3세기경의 그리스 연금술사다.
12) 정신의 완성을 대변하는 <현자의 돌>을 찾기까지의 물질의 변화 과정을 말한다.
13) 영석(石). 보통의 금속을 황금으로 바꾸는 마력을 지녔다고 믿어 옛날연금술사들이 애써 찾던 것이다. - P20

일곱 개의 행성 금속 표본을 뒤섞어 녹이고, 연금술용 수은과 키프러스 산(産) 황산염으로 처리하고, 무 기름이 없어 대신 돼지 기름으로 다시 튀기는, 그위태위태하고 무모한 증류 과정을 거치는 동안 우르술라의 귀중한 유산은 솥 바닥에 눌어붙어 떨어질 줄 모르는 시커먼 치차론¹⁴으로 변해 버렸다

14) 기름에 튀긴 돼지 비계로, 콜롬비아 사람들이 간식으로 즐긴다. - P21

(전략), 옛 모습을 되찾고, 주름살이 사라진 멜키아데스를보았다. 괴혈병으로 문드러졌던 그의 잇몸, 홀쭉해진 뺨, 삐쩍 마른 입술을 기억하고 있던 사람들은 그 집시의 초자연적 능력을 드러내는 결정적인 증거 앞에서 공포감으로 전율을 느꼈다. - P21

처음에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는 농삿일을 가르치고, 어린애를 키우고 가축을 사육하는 일에 조언을 하고, 마을이 번창할수 있도록 모든 이들과 협력하여 심지어 육체 노동까지 마다않던 일종의 젊은 족장이었다. - P22

우르술라의 근면성도 남편 못지않았다. 평생 단 한번도 노래를홍얼거리는 것을 본 적이 없는, 활동적이고, 세밀하고, 엄격하고, 불굴의 활력을 지닌 우르술라는 항상 사라사 치마가 부드럽게 사각거리는 소리를 달고서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집 안 어느 곳에나 있는 것처럼 보였다. - P23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의 그런 공동체적인 솔선수범 정신은 자석들에 관한 열병, 천문학적 계산, 물질의 변이에 대한 동경, 세상의 경이들을 알고자 하는 열망에 이끌려 이내 사그라들어 버렸다. - P24

 젊은 시절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와 친구들은 바다로 나가는 길을 찾아 부인들과 아이들, 가축들을 이끌고 가재도구들을 몽땅 챙겨 그 산맥을 넘었는데, 이십육 개월이 지나자 자신들의 계획을 포기하고는 고향으로 되돌아가지 않기 위해 마꼰도를 세웠었다. - P25

 집시들은 여섯 달 동안 그 길로 항해한 끝에 우편물을 나르는 노새들이 다니는 육지에 도달했었다.¹⁸

 
18) 초기의 마꼰도는〈대륙 tierra firme〉의 〈우토포 Utopo〉왕의 섬과 마찬가지로 국가적인 삶과 완전히 분리된, 밀림 속에 든 <섬>이었다. - P25

처음 며칠간 그들은 별다른 장애에 부딪치지 않았다. 자갈투성이 강변을 따라 몇 년 전 갑옷을 발견했던 지점까지 내려갔고, 거기서 야생 오렌지 나무들 사이로 난 샛길을 따라 숲속으로 들어갔다. - P26

 그는 계속 나침반 하나에만 의지한 채 대원들을 보이지 않는 북쪽으로 인도해 마침내 마법에 걸린 듯한 그 지역을 빠져나올 수가 있었다. 별도 없는 깜깜한 밤이었으나 어둠은 신선하고 맑은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 P27

바다가 가깝다는 증거인 범선을 발견하자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는 맥이 풀리고 말았다.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희생을 치르고 고난을 겪으며 찾으려고 할 때는 찾지 못했는데, 오히려 찾지않으려고 했을 때 넘을 수 없는 장벽처럼 그의 길을 턱 가로막고있는 바다를 발견하자 심술궂은 운명의 장난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 P27

「빌어먹을! 마꼰도는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그가 소리를 질렀다. - P28

「우린 가지 않을 거예요. 여기서 아들 하날 낳았으니까, 여기그대로 있을 거예요」 그녀가 말했다.
「아직 여기서 죽은 사람은 하나도 없소. 죽어서 땅에 묻힌 사람이 없는 한 그곳을 고향이라 말할 순 없는 법이오」 그가 말했다. - P29

「당신들이 이곳에 머물도록 내가 죽어야 할 필요가 있다면, 난죽겠어요」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는 아내의 의지가 그토록 굳은지 몰랐었다. - P30

「그런 말도 안 되는 헛생각 따윈 집어치우고 당신 애들이나좀 챙겨요. 애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좀 보라고요. 꼭 당나귀 새끼들처럼 제멋대로라니까요」 그녀가 대꾸했다.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는 아내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그는 창문을 통해, 햇살이 가득한 채마밭에서 맨발로 뛰어놀고 있는 두 아이를 보았는데, 그 아이들은 우르술라의 주문으로 임신되어 바로 그 순간에 막 지상에 존재하기 시작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 P30

큰아들 호세 아르까디오는 이미 열네 살이었다. 네모난 머리에, 빳빳한 머리칼을 지닌 그는 아버지처럼 의욕적이고 고집 센성격이었다. 아버지처럼 키도 무럭무럭 자라고 힘도 셌건만 이미 그 즈음부터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게 역력했다. - P31

우르술라가 그때의 그 강렬한 눈빛을 다시 기억해 낸 것은 그녀가 수프 냄비를 스토브에서 꺼내 식탁 위에 놓고 있는 순간 세 살배기 꼬마 아우렐리아노가부엌으로 들어섰던 어느 날이었다. - P31

하지만, 실험실 물건들을 상자에서 꺼내는 걸 도와달라고 아이들을 불렀던 그날 오후부터 그는 더 많은 시간을 아이들에게 할애했다. - P32

그때 온 집시들은 새로운 집시들이었다.²² 그들은 자기 나라 말밖에 할 줄 모르는 젊은 남녀들로서, 매끄러운 피부와 고운 손은 아름다움의 표본이었다.


22) 마을을 찾아왔던 집시들은 두 부류가 있었는데, 한 부류는 멜키아데스 족속이고, 나중에 왔던 집시들이 바로 이 집시들이다. 전자가 <문명의 전령>이었다면, 후자는 <오락거리를 파는 장사치들>이었다. - P33

마침내 그는 멜키아데스가 늘상 천막가게를 열곤 하던 장소에 이르렀고, 그곳에서 사람을 눈에 보이지 않게 만들어주는 시럽을 스페인어로³² 선전하고 있던, 말주변 없는 아르메니아 출신 남자 하나를 발견했다.



23) 여기서 말하는 스페인어는 엄밀히 말하면 스페인 까스띠야 지방의 언어(까스페야노 castellano)이다. 까스떼야노가 현재 스페인어의 전신이라고 봐도무방하기 때문에 역자는 그냥 <스페인어>라고 번역했다. - P34

 나중에, 다른 집시들이 멜키아데스가 실제로 싱가포르의 모래언덕에서 열병에 걸려 죽었고, 시신은 자바해 가장 깊은 곳에 던져졌다는 사실을 그에게 확인시켜 주었다. - P34

해적의 보물상자 하나를 지키고 있었다. 거인이 그 상자 뚜껑을 열자 상자 안에서 살을 엘 정도로 차가운 공기 한 줄기가 새어나왔다. (중략). 아이들이 즉시 설명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는 당황스러워하며 이렇게 중얼거리고 말았다.
「저건 세상에서 가장 큰 다이아몬드란다」
「아니오. 이건 얼음이오, 그 집시가 고쳐 말했다. - P35

「만지려면 5레알을 더 내시오」 집시가 말했다.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는 5레알을 낸 뒤 얼음 위에 손을 얹은 채 몇 분동안 그대로 있었는데, 그 사이 신비한 물건을 만지고 있다는 두려움과 기쁨으로 인해 그의 가슴은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 P35

어린 호세 아르까디오는 얼음을 만지려 하지 않았다. 반면에 아우렐리아노는 앞으로 한 발자국 나아가 얼음에 손을 얹더니 화들짝 뒤로 뺐다. 「펄펄 끓고있어요」 놀란 아우렐리아노가 소리쳤다. - P36

「이건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야」 - P36

2


16세기경 해적 프란시스 드레이크가 리오아차를 습격했을 때 우르술라 이구아란의 증조할머니는 비상 경계 종소리와 대포 소리에 너무 놀라 혼비백산한 나머지 활활 타오르는 화로 위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화상은 그녀를 평생 쓸모없는 부인으로 만들어버렸다. - P37

슬하에 아들 둘을 둔 아라곤 출신 상인인 남편은 아내의 두려움을 없애줄 약과 놀거리를 구하느라 가게 재산의 반을 날려버렸다. - P38

결국 그는 사업을 처분하고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기 위해 가족을 산맥 기슭에 자리잡은 어느평화로운 원주민²⁵들의 촌락으로 데려갔고, 악몽 속의 해적들이들어오지 못하도록 아내에게 창문 없는 침실을 마련해 주었다.


25) 아메리카 원주민을 가리키는 용어인 <인디오>, 또는 <인디헤나>를 모두 원주민으로 번역했다. - P38

수백 년 동안 피를 섞어 온 양쪽 집안에서 태어난 가장 건강한 두 젊은 남녀가 결혼해 이구아나²⁷를 낳는 수치를 당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이미 그런 무서운 전례가 있었다.


27) <이구아나 iguana>와 우르술라의 성(姓) 이구아란 Iguarán> 사이에 내재하는 언어적 유희를 볼 수 있다. - P38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는 열아홉 살이라는 나이에 걸맞는 경박스러운 태도를 취하며 한 문장의 말로 결혼 문제를 해결해 버렸다. 「말만 할 줄 안다면 돼지새끼들이태어난다 한들 무슨 상관이에요」 그렇게 해서 그들은 삼 일 동안악대와 폭죽놀이가 어우러진 잔치를 벌이면서 결혼식을 올렸다. - P39

. 밤이 되면 이제는 성행위를 대신하는 것으로 보이는 격렬한 몸부림으로 여러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마침내 사람들은 두 사람 사이에 어떤 비정상적인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 육감적으로 눈치채게 되었고, 남편이 발기불능이어서 결혼한 지 일 년이 넘도록 우르술라가 여전히 처녀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 P40

「우르술라, 사람들이 뭐라 하고 다니는지 이제 당신도 알고 있을 거요」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가 부인에게 아주 차분하게 말했다.
「떠들라고 내버려둬요.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걸 우린 알고 있잖아요」 우르술라가 말했다. - P40

「당신이 이구아나를 낳으면 우린 이구아나를 키울 거요. 하지만, 이 마을에서 당신 때문에 죽는 사람은 더 이상 없게 될 거요」 그가 말했다.
때는 상쾌한 유월의 달 밝은 어느 밤이었는데, 그들은 루덴시오 아길라르의 친척들의 통곡 소리를 싣고 침실로 들어오는 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동이 틀 때까지 잠을 자지 않고 침대에서 노닥거렸다. - P41

「어서 꺼져. 네가 나타날 때마다 널 죽이고 말 테니까」 호세아르까디오 부엔디아가 소리쳤다.
쁘루덴시오 아길라르는 자리를 뜨지 않았고, 호세 아르까디오부엔디아 또한 감히 창을 던지지 못했다. 그날 이후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는 잠을 잘 이룰 수 없었다. - P42

「좋아, 쁘루덴시오. 우린 이 마을에서 가능한 한 멀리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테니 이제 그만 조용히 가줘」 그가 말했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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