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머지 반은 끝나고 드릴게요. 다 그렇게 한다고 들어서요." 역시, 살고자 하는 사람이었다. 이 여자는 당분간 절대 자살 같은건 안 하겠구나 싶었다. (후략). - P22
여자가 건네준 파일에는 ‘가영‘이 엄마와 연락이 끊긴 이후 대충 어디서 어떻게 지냈는지에 대한 내용들이 적혀있었다. 그리고 몇 명의 사진과 주소, 신상명세들이 있었다. 모두 남자들이다. - P23
제일 앞 페이지에 나온 사람의 이름은 ‘김지훈‘이다. (중략). 최근에 노예니 뭐니 하는 텔레그램 ‘성 착취 방‘의 가해자로 용의선상에 올랐다는 내용도 있었다. - P23
너절한 오피스텔에 어울리지 않는 고급 사양의 컴퓨터가 여러 대 있었고 그 옆으론 대용량 하드디스크가 여러 개 쌓여있었다. 딱히 열어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 P23
‘기생오라비‘처럼 반반하게 생긴 얼굴에 기름이 낀둔탁한 눈빛으로 바스락거리는 정크푸드 봉지를 들고 더스티 핑크가 들어왔다. 나는 빠르게 침대 아래로 숨었다. - P24
"제, 제가 안 죽였어요!!!" 아, 지겨운 레퍼토리.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은 말이다. 칼로 찌르고 총으로 쏘고 불태워야만 죽이는 건가? - P25
"저, 저는 가영이 못 본 지 진짜 오래됐어요. 진짜예요. 걔가 지, 진짜 주, 죽었으면, 가영이 죽인 사람은 따로 있다니까요!" 아, 어머니. 조금만 더 돈을 마련해 오시지. 그럼 이놈도 저놈도 다 죽였을 텐데. - P25
놈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다가, 나는 더스티 핑크의 내장을때려 부수는 대신 그의 컴퓨터를 때려 부순 뒤 쌓여있던 하드디스크들을 들고나왔다. 그리고 가게에 굴러다니던 네일 폴리시 배송박스에 하드디스크 하나를 넣고 포스트잇에 놈의 인적 사항을 적어 경찰서로 보냈다. - P26
(전략). ‘주민호‘. 그게 가영을 ‘넘겨받은 놈의 이름이었다. 주민호는 의사였다. - P26
으로 조사받은 적이 있다. 아. 그동안 놈들이 하고 다녔을 일들이4K로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러면 이 두 놈이 함께 가영을 그 외딴창고로 끌고 간 것일까? - P27
각종 수상한 약품들이 가득 찬 서랍도 있었다. (중략), 대개 이런 짓은 중독성이 강하기 때문에 이런 놈들의 얄팍하고 제한적인 우정이라도 꽤 길게 가는 경향이 있었다. - P27
(전략). 비록 1인분의 돈을 받았지만 이런 경우는 사실상 1+1 같은 것이라서 여자에겐 비밀로 하고 둘을 동시에 처리할 수도 있었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닐 테니까. - P28
팔을 뒤로 결박당하고 있는데도 놈의 말투는 차분했다. 꼭 진료실에서 만나는 의사 선생님 같은투로, ‘가영이‘란 이름을 부를 때는 마치 다정함을 담기라도 한 듯특히 더 느끼했다. - P29
"난 여자 안 죽여. 왜 죽이겠어." 메탈릭 네이비가 다시 한번 심야방송 남자 디제이 같은 말투로 속삭이듯 말했다. 이 말이 너무 진심인 것이 느껴져서, 너무 진심으로 욕지기가 솟았다. - P30
‘박동현‘, 그것이 가영과 함께 사라진 남자의 이름이었다. 그는 울산의 대형 학원에서 일하는 국어 강사였다. (중략). 흥신소에 따르면 ‘사람이 서글서글하고 착하다는 평판‘이 있다고 했다. - P30
. 여기까지 읽으니, 왠지 볼 때마다 구역질이 나는 베이비 블루 색이 떠올랐다. 순진한척하지만 교활한 이중적인 느낌이 닮았달까. - P31
. 겉으로는 수줍은 척, 숙맥인 척하지만 자기가 채갈 수 있는 그 좁은 영역에 떨어지는 고기를 호시탐탐 노리는 하이에나 같은 놈들. 섹스에 밥도 청소도 빨래도 다 해줄 테니까, 이런 남는 장사가 없었겠지. - P32
게다가 이런 자식들이 외롭다고 말하는 건, 그냥 거기가 근지럽고 심심하다는 뜻이다. - P32
이 사회의 ‘승자‘가 되지 못한 분풀이를 자기보다약한 존재에게 해야 하니까. 그건 많은 경우, 옆에 있는 여자이고. 아아, 죽여 마땅한 놈이다. 집 여기저기 어설프게 보수한 흔적이보이는 건 베이비 블루가 성질나는 대로 이것저것 집어 던진 결과겠지. 성질내는 이유는 뻔하다. 이를테면…. - P33
아. 그 순간을 참지 못하고 나는 그만 놈의 팔을 부러뜨리고 말았다. 조금, 프로답지 못했을지도. 하지만 뭐, 그의 말처럼 죽진 않으니까. 그 정도면 자비를 베푼 셈이다. - P34
슬픔 때문인 척하지만, 사실 저건 내가 부러뜨린 팔이 아프기 때문이다. 잠시 보다가 퍽, 나도 모르게 그의 얼굴에 발길질했다. 아, 추한 것을 보면 좀처럼 견디지 못하는 성격 탓이다. - P35
같지는 않다. 그는 올해 영화감독으로 데뷔했고 결혼도 했는데, 아내의 직업은 검사였다. 아내 아버지의 직업도 전직 검사였다. (중략). 겉으로는 점잖고 우아해 보이지만 사실은 어둡고 재수 없는 음험한 색. 나는 배준호를 딥 그린이라 부르기로 했다. - P35
어느새 여자가 준 파일의 마지막 페이지였다. 그렇다면 역시 딥그린이 가영을 죽인 것일까. 목적도 확실해 보인다. 어쩌면... 가영이 임신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 P36
딥그린은 화장실 벽에 고개가 처박힌 상태로도 조잘조잘 잘도 떠들었다. 자신이 가영을 믿고 편찮으신 장인어른의 관리를 맡겼는데 장인어른이 실종되었고, 책임을 추궁하려 했더니 가영도 함께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 P38
다시 찾아간 더스티 핑크의 오피스텔은 텅 비어있었다. 경찰들이 그렇게 빨리 움직인 건가? 에이 설마. 부동산 아저씨에게 비타민 음료를 건네고 들은 이야기. 놈이 며칠 전 방 안에서 자살했다는 것이다. 이제 진짜로 좆됐다 싶어서? 그럴 리가. - P40
메탈릭 네이비의 아파트. 역시 이사가 한창이었다. (중략). 아. 조금만 더 빨리 올 걸, 설마 그 리클라이너도 니가 가져갔냐? 갑자기 확 약이 올랐다. - P41
. 아, 벌써 죽은 건가. 그린씨는 평생쉽게 살아서 그런가, 끈기가 부족하네. 아니 어쩌면, 이 친구가 내생각보다 유능한 것일지도. 그러니까, ‘가영‘이가. - P42
"불에 탄 거, 치매 할아버지였구나" 그러자 가영이 흘러내린 앞머리를 뒤로 상큼하게 넘기면서 대답했다. "좀 걱정했는데, 면허증 놓은 게 그래도 통했네. 경찰들이 멍청해서 살았지. 할배가 워낙 왜소해서 덩치는 비슷했어" - P42
아, 근데 아까부터 자꾸 약 오르네. 이쪽에도 천부적인 재능이있어. 사람 목 조르는 거만큼. "어머니가 슬퍼하시는 거 알잖아" "이렇게 살아있는 거보다는, 그렇게 죽어있는 걸로 아는 게 엄마 마음이 더 낫지 않을까?" 흠. 그 역발상의 효심에는 조금 감탄했다. - P43
"너, 나랑 일 같이 하자." (중략). "네일, 실컷 해줄게. 니가 해달랄 땐 언제든." 어느덧 자영업 5년 차, 이제 슬슬 사업을 확장할 때도 됐지.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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