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들의 모습
샹소르에서 비비안은 풍부한 인물 사진을 찍을 수 있었는데, 마치 이 작은 계곡에 프랑스에서 만날 수 있는 다채로운 인간 군상이 모두 모여 있는 것같다. 말뿐이건 진심이건 간에, 샹소르에서는 모두가 ‘가족‘이었기에 비비안은 편안하게 즐기면서 근접 촬영 기술을 연마할 수 있었다. - P90

대가족이던 조소 일가는 자주 비비안의 피사체가 되었다. 일가의 큰어른인 장은 꼿꼿한 자세와 차분하고도 확신에 찬 태도의 소유자였는데, 비비안은 가족 내 장의 위치를 명확하게 보여주려는 듯이 밑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자세로 사진을 찍었다. - P90

비비안의 초기 네거티브 필름과 사진을 보면 그녀의 엄청난 자신감이 느껴진다. 보통 원샷one shot (한 프레임에 한 사람만을 담은 샷. 옮긴이)으로 피사체를 담았는데, 그것은 비비안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방식이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비비안은 하층과 중산층의 일상을 담은 사진을 점점 더 많이 찍었다.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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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대조적으로 육체는 데카르트에 따르면 육체적 속성³⁹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크기와 모양을 갖추고 있다. 이들은 연장성을 갖는다.
육체에 없는 것은 생각이다. 육체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말을 하지 못한다. 육체는 마음이 아니며 의식이 아니다. 이 말은 모든 육체와 개별 육체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39) (옮긴이) ‘physical properties‘는 ‘물리적 속성‘ 또는 ‘물질적 속성‘으로 많이 번역된다. 육체는 수많은 물리적인 것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지금 논의 맥락에서는 물리적인 것 중 육체와 정신만을 비교하고 있으므로, ‘육체적 속성‘으로 번역한다. - P126

이렇게 보았을 때 본질적으로 인간의 육체 자체는 다른 종류의 육체와다르지 않다. 인간의 육체가 다른 종류의 육체와 다른 점은 마음, 곧 인간의 마음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다른 모든 육체들은 마음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 - P126

데카르트의 이원론은 잘 알려진 문제들에 직면하게 된다. 여기서는 단 하나만 살펴보도록 하자. 바로 상호 작용의 문제이다. 우선 (1) 우리 육체안에서 또는 우리의 육체에서 일어나는 일이 우리가 인지하는 바에 변화를 일으키고, (2) 우리의 정신생활에서 일어나는 일이 흔히 우리의 신체 행동에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은 일상적인 경험의 상식이다. - P126

. 이러한 고통의 경험은 데카르트에 따르면, 내 육체 내에서 혹은 육체에서 일어나는 별개의 일이 아니다. 반대로 나는 의식적으로 통증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이를 내 마음속에서 인식해야 한다. - P127

상호작용이 일어난다는 사실이 제기하는 한 가지 문제는 데카르트의 심신이론이 이와 같은 추정된 심신의 연합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 그리고 이와 같은 그들 간에 추정된 인과적 상호 작용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에 대해 조금의 단서도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P127

 질문은 "이러한 현상이 어떻게 발생하는가?"가 아니라 "이러한 현상이 어떻게 발생할 수 있는가?"이다. 데카르트가 주장하고 있듯이, 마음은 비물질이고 육체는 물질이라고 주장할 경우 데카르트는 의심의 여지없이 분명 일어나고 있는 일이 어떻게 일어날수 있는지를 설명할 수 없다. - P127

 데카르트의 이론에서 보았을 때, 이러한 결정은 마음의 사건이다. 이는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일이다. 내가 결정한 후에 이어지는 것은 내 몸이 특정 방식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이불을 걷어차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 P128

하지만 비물질적인 것(내 결정)이 물질적인것(나의 육체적인 운동)을 야기한다고 여기는 것은 아무리 잘 평가해도 신비스러운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최악으로 평가한다면 자연의 법칙에 위배되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 P128

 만약 마음(의식)과 육체가 상호작용한다면, 그리고 이러한 상호 작용이 어떻게 가능한지 설명할 수 있어야 적절한 심신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면, 데카르트의 심신 이론은 그러한이론이라고 평가받을 수 없다. 간단히 말해 현재 비판을 받고 있는 데카르트의 이원론은 설명력이라는 시험을 통과하는 데에 실패한다. - P128

이러한 결과를 피할 방법이 한 가지 있다. (중략). 이는 인간 심신의 상호 작용을 아예 부정하는 것이다.  - P128

심신이 실제로 상호 작용하지 않으면 데카르트가 상호 작용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지적은 데카르트에 대한 적절한 비판이 아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상호 작용 자체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내 발에 박힌 압정이 나의 고통을 야기하는 원인이 아니라면 이 감각은 어디에서 오는가? - P129

일부 데카르트주의자들이 선호하는 한 가지 대응 방법은 기회 원인론(occasionalism)으로 알려져 있는데, 우리는 이를 이원론 옹호 노력이 직면하는 어려움을 보여주기 위한 사례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 P129

(전략) 나의 결정은 그 자체가 내 몸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렇게 행동하게 만드는, 신에게 주어진 기회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압정이 내 발에 박히는 것 또한 나에게 고통을 야기할 신에게 주어진 기회이다. 신은 전능하기에 내 몸을 잠자리에서 일으키고, 내 발에 고통을 야기하는 등 무엇이든 할 수 있다.  - P129

그러나 이는 문제를 한 단계 뒤로 미루어놓을 따름이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은 질문이 여전히 제기될 수 있다. 만약 인간의 심신 간에 상호 작용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신과 인간의 마음, 그리고 신과 인간의 육체 사이에어떻게 상호 작용이 일어나는가?  - P129

 그리스인들은 ‘기계 속의 신(deus ex machina)⁴⁰이라는 어구를 사용했다. 이는 연극 속에서 위험에 처해 있지만 자신의 힘으로는 안전을 확보할 수 없는 등장인물을 인위적으로 구출하는 신을 가리킨다.

40) (옮긴이) 원문에는 "deux ex machina"로 되어 있는데 오타인 듯하다. 레건은 이것을 영어로 God in a machine이라고 말하는데 God from a machine이 정확한 번역이다. - P130

철학자들 또한 유사한 방법으로 이론을 구조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기회 원인론의 방식으로 신의 개입 메커니즘을 도입해 데카르트주의 이원론을 구하려는 노력은 철학에서 확인되는 이와 같은 현상의 고전적인 사례이다. - P130

 인간의 심신을 관장하는 인과 관계의 중재자로서의 신을 도입하기 전까지는 이원론이 상당히 많은 가정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정신들이 있고, 다음으로 육체들이 있다. 꽤 간단해 보인다. 하지만 신이 제3의 인물로 도입될경우 매우 논란이 될 소지가 있는 가정이 추가된다. - P130

데카르트의 몰락으로 얻게 되는 교훈이 있다. 이 교훈은 마음을 ‘비물질적인 것‘, 즉 영혼으로 보면 우리가 분명 곤경에 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겉보기와 다르게, 모든 것이 비물질적이라고 주장하려 하지 않는 이상, 상호작용의 문제는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며, 원리적으로 상호작용이 일어나는지 일어나지 않는지, 일어난다면 상호작용이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한 질문에 지적으로 만족할 만한 대답을 제공할 수 없는 이론이 남게 되기 때문이다. - P131

 의식의 기원과 진화에 대한 진화론적 관점을 받아들이는 장점 중 하나는 심신과 관련한 이원론에 빠지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진화론이 진실임을 입증하지는 않지만 적어도이러한 입장은 가능한 반박의 원천 하나를 제거한다. 진화론이라는 배경관점에서 볼 때, 동물이 "마음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하는 것이 그들이 "비물질적이면서 불멸의 영혼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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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현지 시각) 별 문제 없이 지구에 착륙하다.

상용 추진력(확대): 유지
착륙속도(억제): 상용 추진력 지수 6.3
착륙 순간 속도: Bajo-U1 4, Molina-Calvo9
엔진 용적: AZ-0.3
착륙 지점 지표: 632 (IIB) 28476394783639473937492749
착륙 지점 지명 : 사르다뇰라* - P7

07:15 구르브가 4번 출구를 통해서 비행체를 벗어난다. 가벼운 남풍, 섭씨 15도, 상대습도 56퍼센트, 해상의 물결이 잔잔하다. - P8

07:21 구르브가 원주민과 첫 접촉을 가졌단다. 구르브가 보내온 데이터에 따르면, 그 지구인의 신장은 170센티미터, 두개골 크기는 57센티미터, 눈은 두 개, 꼬리 길이는 0.00센티미터(꼬리 없음.)이다. (중략). 소리 자체의 개념도 거의 없는 편이다. 구르브가 만난 지구인의 이름은 유크 푸익 이 로익이다.(내가 잘못 들었거나 불완전한 이름일 수도 있다.) - P8

* 1966년 마드리드에서 출생한 여가수. 그룹으로 데뷔해 1993년에 앨범「여자(Mujer)」를 발표하면서 솔로로 전향했다. 미모와 열정적인 퍼포먼스로유명세를 탔으며, 지금도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발표하면서 ‘에스파냐의 마돈나‘ 혹은 ‘팝의 여왕‘으로 불린다. - P8

07:23 구르브, 연락 없다.
08:00 구르브, 연락 없다.
09:00 구르브, 연락 없다.
12:30 구르브, 연락 없다.
20:30 구르브, 연락 없다. - P9

10일

07:00 구르브, 연락 없다. 나는 구르브를 직접 찾아 나서기로 마음먹는다.
먼저 나는 우주선이 원주민들의 눈에 띄는 불상사를 막기위해 비행체를 지상의 주거 형태로 변형한다. 카탈로그에 의하면, 반(半) 독립형 주거지라고 명명된 주거지에는 침실 세 개와욕실 두 개에다 난방 장치가 설치된 주택 그리고 공동 수영장,
마당 두 곳, 주차장 등 최상의 편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 P10

07:45 나는 개성 강한 자들의 밀집도가 높은 지역에서 본래의 내 모습으로 변신할 참이다. 이 또한 지구인들의 이목을 피하기 위한 방도이다. 나는 해치 대신(변형된 해치는 구조가 단순한 반면, 조작이 생각보다 훨씬 힘들다.) 육중한 사각형대문을 통해 밖으로 나온다. - P11

08:01 나는 노선버스에 이어 오펠 코르사에 치인다.
08:02 오펠 코르사에 이어 배달용 승합차에 치인다. - P11

08:00 (중략) 내가 지켜본 지구인들은 체격이 다양하다. 그들 중에는 키가 아주 작은 자들도 많은데, 키가 더 큰 자들이 그들을 조그만 차에 태우고 다니지 않으면, 그들은 키가 아주 큰 자들한테 밟히는(그리하여 이성을 잃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른다. 키가 큰 자들 중에서 200센티미터를 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지구인들의 키가 서 있을 때와 누워 있을 때가 정확하게 똑같다는 사실이다.  - P12

08:00 (중략) 지구인들은 걸을 때 뒤쪽에서앞쪽으로 이동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양팔을 끈질기게 흔들어양다리의 움직임을 이끌어내야 한다. 성깔이 급한 자들이 가죽이나 플라스틱으로 만든 가방 혹은 다른 행성의 물질로 제작한, 샘소나이트라는 가방으로 팔뚝의 힘을 강화하는 것도그런 이유이다. - P12

11:00 구르브가 지나가기를 기다린 지 세 시간이 지나가고있다. 부질없는 짓이다. 늦은 시간인데도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수효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나는 구르브가 이 시간에 내 눈에 띄지 않고 지나갈 가능성을 나름대로 어림해 본다. 대략 73 대 1의 확률이 나온다. - P13

12:00 그리스도의 현신을 기리는 기도 시간이다. 나는 그시간에 구르브가 내 앞을 지나가는 일은 없을 거라고 자위하면서 기도에 들어간다.

13:00 무려 다섯 시간을 뻣뻣한 자세로 서 있다 보니 내 몸이 서서히 지쳐 가고 있다. 근육이 마비된다. 나는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뱉을 힘을 모으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중략) - P13

13:00 (중략) 보아하니 지구인들은 그들이 호흡하다라고 하는 행위,
즉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 기능이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모양이다. 여타의 문명적인 것들이 거부되는, 이른바 과학적인것들만 받아들여지는 지구에서 이러한 자동 기능은 숨을 쉬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신체의 다른 기능들, 예를 들어 혈액순환이나 음식물의 소화 혹은 눈을 깜빡이거나(이것은 언급한두 가지 기능과 달리 자신의 의지에 따라 조절되며, 윙크라고 불린다.) 손톱이 저절로 자라는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 P14

14:00 드디어 내 몸이 물리적 한계점에 봉착한다. 나는 왼다리를 뒤쪽으로, 오른 다리를 앞으로 꺾은 채 땅바닥에 무릎을 꿇는다. 자세 탓일까. 지나가던 어떤 여자가 무엇인가를 건네준다. 5 페세타짜리 동전이다. 나는 행인들이 불손하다고 비난할까 봐서 동전을 꿀꺽 삼킨다. 섭씨 20도, 상대습도 64퍼센트, 가벼운 남풍, 해상의 물결이 잔잔하다. - P14

14:30 (전략) 비로소 구르브의 위치를 알아내는 일이 예상보다 더 힘들지도 모른다는 현실적인 우려가 고개를 든다.

15:00 나는 한곳만 지키겠다는 생각을 단념한다. 차라리 도시 전체를 체계적으로 분류해서 찾는 게 나을 성싶다. 그런다고 구르브를 못 만날 가능성이 줄어들지 않겠지만, 결과가 어떤 식으로든 불투명하니 어쩔 수 없다. - P16

15:02 이번에는 카탈루냐 전력 회사 쪽으로 파헤쳐진 도랑에 빠진다.

15:03 이번에는 바르셀로나 상수도국 쪽으로 파헤쳐진 도랑에 빠진다.

15:04 이번에는 국립 전화국 쪽으로 파헤쳐진 도랑에 빠진다. - P16

15:06 나는 청사진 지도가 안내하는 경로를 무시하고 발길닿는 대로 걷기 시작한다.

19:00 마냥 걷고 있다. 네 시간째다. 어디가 어디인지 도통모르겠다. 슬슬 힘에 부친다. 더 이상 지탱할 힘이 없다. 도시가 광대하다. 인파가 끊임없이 밀려든다. 소음이 엄청나다. 필라르 수녀를 기리는 기념탑 같은, 거대 도시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건물이나 상징적인 조형물이 눈에 띄지 않는다. - P17

20:30 일몰 이후에 가로등만 켜지 않아도 이 도시의 환경은한결 나을 것이다. 시민들은 밤에도 거리가 필요하나 보다. 그들 대부분은 투박하게 생겼는데, 심지어 추악하게 생겼는데,
그런데도 서로가 서로를 못 보면 살아갈 수 없는 모양이다. 차량들도 눈에 쌍불을 켜며 저희끼리 으르렁거린다. - P18

21:45 내 몸에서 방전된 에너지를 재충전한다.

21:50 나는 파자마를 입는다. 구르브의 부재, 마음이 몹시무겁다. 구르브와 나는 팔백 년 전부터 밤마다 함께 지낸 사이다. 잠이 들 때까지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막막해진다. - P18

21:50 (중략) 구르브한테 우주선 관리도 맡겼고, 우주선 출입도(정해진 시간 내에서) 허용하지 않았던가. 구르브가 오늘 중으로 돌아올 것인지,
늦게라도 돌아와 줄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못 오면 못 온다고통보라도 해 주면 더없이 좋으련만.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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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비해 양갱 크기가 작아졌는 것일까, 내가 커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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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과학자가 만든 술

청산녹수 - P141

전국의 양조장을 순례하기 시작하면서 느낀 공통점은, 대표님들이 술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찾아와 주는 사람을 엄청나게 반긴다는 것이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이 술쟁이들이 가장 즐기는 일은 말 통하는 사람과 술잔을 나누며 술에 얽힌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 P142

니다."
"사정이 생겨서요. 1박은 못하고 밤 기차로 올라와야 할 것 같습
"알겠습니다. 하룻밤 보내시고 가시는 줄 알았는데…"
문자메시지의 말줄임표에서 아쉬움이 뚝뚝 떨어졌다. - P142

일제다 오남의 곡창지댜에서 나는 (중략). 오히려 그런 이유 때문일까, 이 지역의 자연환경은 수도권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볼 것 많고 아기자기하다. 축령산 편백나무숲은 북유럽의 원시림 같은 울창함을 자랑한다.  - P143

가을 단풍으로 유명한 내장산이 오르는 방향에 따라 이름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정읍 방향에서 오르면 내장산, 장성에서 출발해 백양사 방향으로 오르면 백양산이다. 노랗고 빨갛게 물든 가을 산을 보기에도 이곳이 전국에서 손꼽힌다는 이야기다. - P143

"장성이 경치도 좋지만 무엇보다 물이 좋습니다. 술 만드는 사람에게는 비할 바 없는 매력이죠."
인근의 내장산, 축령산, 불태산 등의 봉우리에서 계곡을 타고 흘러내린 물이 토양에 여과돼 샘으로 솟아나는 곳이 바로 장성이다. - P144

구봉산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야트막한 양조장 건물은 과거에 초등학교였던 곳이다. 차츰 아이들이 줄어 문을 닫은 것을 김 대표가 인수해양조장 겸 우리술 교육장으로 꾸몄다. - P144

술맛을 보러 찾아간 길이니만큼, 첫 잔이 급했다. 처음 맛을 본 것은 청산녹수에서 가장 대중적인 라인인 편백숲 산소막걸리였다. - P145

이 술에는 발효 중에 효모에 미치는 산소의 작용을 컨트롤하는 김 대표만의 특허기술도 담겨 있다(다시 말하지만 김 대표는 미국에서 세포생물학 박사후과정 (Post Doc.)을 마치고 돌아온 과학자다!). 알코올 도수는5.2도 이 숫자에서 김 대표의 아재 감성(?)이 묻어난다. - P145

드라이한 맛의 막걸리도 최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지만,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선택돼야 수지를 맞출 수 있는 대중주는 일단, 달아야 한다. - P145

이런 아쉬움을 보완하기 위해 내놓은 것이 5.8도의 산소막걸리 순수령과 8도의 산소막걸리 순수령 8도다. 물, 보리, 홉만을 이용해 만들어진 독일의 순수령 맥주처럼, 쌀, 누룩, 물만을 이용해 만든 막걸리라는 것을 표방한 제품이다. - P146

우유가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지만 발효유의 맛이 나는 과일이 첨가되지 않았지만 바나나의 향을 가진,
곡물로 만든 야쿠르트. 이것이 순수령 산소막걸리를 마셔본 인상이었다.
"일반적으로 막걸리는 발효가 끝나면 바로 제성 (출하가 가능한 술로만들기 위한 최종 작업)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순수령 막걸리는 40일간 저온발효를 마치고 나면 숙성 탱크로 옮겨서 열흘 정도 더 숙성시켜요. 그때유산균이 활동하면서 신맛이 생기는거죠" - P146

일체의 첨가물을 넣지 않고 오로지 재료로만 승부를 보겠다는 막걸리인데도, 출고가는 순수령 8도가 4천 원을 넘지 않는다. - P146

시음은 8도의 사미인주로 이어졌다. 청산녹수 양조장의 시그너처 제품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사미인주는 유기농 쌀과 벌꿀을 사용해 품격과 음용성을 한층 더 높인 탁주다. 패키징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 P147

게다가 사미인주는 사람의소화효소와는 무관한 전통누룩으로 당화와 발효를 시키는 술이다.
8도짜리 사미인주를 꽤 호기 있게 들이켰더니 무지근한 취기가 올라온다. 역시나, 10도 내외의 술은 위험하다. - P148

"드시는 분들이 막걸리 마시면 이상하게 빨리 취한다고 하시는데,
그건 이상하게 빨리 드셔서 그런 겁니다. 아무래도 막걸리는 마시는 속도가 다른 술에 비해 빠르니까요. 알코올 그램 수로 따지면 이상할 게 하나도 없이 정상적으로 취하시는 겁니다. 하하."
대학교 때부터 무의식중에 가지고 있었던 관념에 대한 과학자의 유쾌하고도 통렬한 반박이었다.  - P148

(중략), 늘 존망의 기로에서크고 작은 승부를 벌이며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전통주 업계의 현실이고스란히 느껴졌다. 문득, 대학 강단에만 서도 사는 것이 그리 힘들지는 않았을 김 대표가 쉽지 않은 도전을 이어나가는 이유가 궁금했다. - P148

같은 술꾼의 처지로, 술꾼의 말에 말없는 건배를 건네는 것 말고는 다른 것이 모두 부적절해지는 때가 있다. 지금이 그때인 듯했다. 부딪치는 술잔 속에 담긴 지지와 동감. 그것이 ‘건배‘라는 행위가 가지는 가장 큰아름다움이 아닐까.  - P149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그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어떤 환경을 갖춰야 하는가에 대한 탐구도 여기에 포함된다. 생물학을 베이스로 하는 과학자로서, 자연스러운 논리의 귀결이다. 전통 누룩 속에는 백여 종의 미생물이포함돼 있다고 한다. 이들 중 각각의 미생물이 하는 작용과 그 조화로서 만들어지는 맛과 향에 대한 연구는 아직 갈 길이 멀다. -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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