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하면, "넘지 마시오"라고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경계선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설득, 조종, 속임수의 세상이 하나의 행성이라고한다면 아예 발을 들이지 말아야 할 지역과 폐해나 불법이라는 다양한 위험이 도사린 지역이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단순함을 선호한다. 당신이 디지털 제품을 만드는 일에 종사한다면, 내가 해줄 조언은 다음과 같다. 거짓 주장을 사용하지 말고 현지 법규를 제대로 파악한다 - P115

3부

다크패턴의 여러 유형

2010년에 darkpatterns.org를 만들었을 때, 나의 목표는 인식을 제고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브랜딩과 홍보에 크게 집중했다. - P119

오늘날 기만적 패턴에 관한 문헌을 살펴보면, 분류와 명명 체계가 놀랄 정도로 다양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각자 나름대로 유용하지만, 초기의 분류는 원시적인 편이고, 나중에 나온 것은 활용할 수 있는 증거와 지식이 엄청나게 많아져 더 정교해졌다. - P119

최근에는 기만적 패턴이 법학자나 입법자, 규제당국의 관심 분야로 떠올랐다. 따라서 이들은 관심 주제, 담당 지역에 관련된 법과 법률 용어를 중심으로 분류 체계를 만든다. (후략).² - P120

3부 다크패턴의 여러 유형


2 EDPB. (2022, March 14). Dark patterns in social media platform interfaces:How to recognise and avoid them. European Data Protection Board. Retrieved14 January 2023 from https://edpb.europa.eu/system/files/2022-03/edpb_03-2022guidelines_on_dark_patterns_in_social_media_platform_interfaces_en.pdf - P321

13장

다크패턴의 분류체계

내가 전문가 증인으로서 많이 활용하는 분류 체계는 마투르 등의 분류(2019)이다. 실용적이고 증거도 많기 때문이다. 이 분류 체계는 프린스턴 대학교와 시카고 대학교 소속 연구자 7명이 작성한<대규모 다크패턴: 1100개의 쇼핑 웹사이트 분석 결과>¹라는 논문에 소개되었다. - P121

13장 다크패턴의 분류체계

1 Mathur, A., Acar, G., Friedman, M.J., Lucherini, E., Mayer, J., Chetty, M., andNarayanan, A. (2019). Dark patterns at scale: Findings from a crawl of 11Kshopping websites. Proceedings of the ACM on human-computer interaction,
3(CSCW), article 81. https://doi.org/10.1145/3359183 - P321

13장 다크패턴의 분류체계

1 systems, https:/ Mathur, A., Acar, G., Friedman, MJ., Lucherini, E., Mayer, J., Chetty, M., andNarayanan, A. (2019). Dark patterns at scale: Findings from a crawl of 11Kshopping websites, Proceedings of the ACM on human-computer interaction,
3(CSCW), article 81. https://doi.org/10.1145/3359183designed to - P321

기만적 패턴의 분류 체계라고 하면 적용할 수 있는 유형의 수가 정해진 것처럼 규범적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그렇지만 현실에서 인간의 창의력과 착취 행동에는 전혀 제한이 없다. 모범 사례 가이드라인으로 나온 것조차 기만적 패턴에 영감을 주는 데 활용되어 유용했던 것에서 해를 주는 것으로 손바닥 뒤집듯 바뀔 수 있다² - P122

기만적 패턴을 둘러싼 환경이 복잡한 이유와 분류 체계에 항상어느 정도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지에 관해 지금까지의 설명으로 충분히 이해했기를 바란다. - P122

(전략).

긴급성

카운트다운 타이머 : 카운트다운 타이머를 이용하여 사용자에게 가격을 제안하거나 세일이 곧 끝날 것이라고 알린다.
기간 한정 메시지: 사용자에게 가격을 제안하거나 세일이 곧 끝날 것임을 날짜를 정해서 알리지만 실제로 정해진 기한은 없다. - P123

사회적 증거

•활동 메시지: 사용자에게 웹사이트 활동(예: 구매, 조회수, 방문자수) 정보를 알린다.
•후기: 제품 페이지에 출처가 불분명한 후기를 게시한다. - P124

행동 강요.

가입 강요: 원하는 작업을 완료하려면 계정을 만들거나 정보를 공유하도록 강요한다. - P125

14장

은닉


(전략).
그런데 사용자를 조종하고 싶다면, 이와 반대로 글을 쓰고 긴 문단이나 제대로 명명되지 않은 섹션에 중요한 정보를 숨겨놓아 독자가 그 내용을 기대하지 못하거나 찾을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들면 된다. - P126

장바구니에 몰래 넣기

온라인 소매업체가 고객의 장바구니에 몰래 물건을 넣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가장 뻔뻔한 수법은 말도 없이 물건을 추가해놓 고고객이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이에 관해 불만을 제기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후략).


장바구니에 자동으로 담긴, 주문도 하지 않은 1파운드짜리 잡지

(전략).
내가 이 웹사이트를 신나게 탐색하다가 워킹화를 한 켤레 사려고 마음을 먹었다고 해보겠다. 화면에서 이상한 점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냥 일반적인 쇼핑 페이지로 보인다.² - P127

14장 은닉

2 Image source for figure: Sports Direct. (n.d.). Retrieved 4 May 2015 from https://sportsdirect.com - P322

. 영국에서 인기 있는 BBC 소비자권리 TV 쇼인 <워치>에서는 스포츠 다이렉트를 집중 보도했다. 이런 관행은 2014년에 발효된 소비자 권리 지침 (Consumer RightsDirective)⁴ 덕분에 EU 전체에서 불법이 되었다. - P129

4 Consumer Rights Directive (2011) https://eur-lex.europa.eu/legal-content/EN/TXT/?uri=celex%3A32011L0083 - P322

비용 숨기기

숨겨진 비용을 넣는 관행(‘순차 공개 가격 책정 (drip pricing)‘⁵ 또는 ‘미끼상술(bait and switch)⁶이라고도 함)의 경우, 사용자가 구매 여정에서는예상하지 못한 비용을 의도적으로 결제 직전에 제시하는 것이다. - P129

5 Federal Trade Commission. The economics of drip pricing. (2015, January6). Retrieved 10 October 2022 fromevents/2012/05/economics-drip-pricinghttps://www.ftc.gov/news-events/

6 Bait and switch: A type of deceptive design. (2010), Retrieved 10 October 2022from https://www.deceptive,design/types/bait-and-switch - P322

스텁허브가 숨긴 비용

숨겨진 비용의 대표적인 사례는 블레이크 등이 스텁허브(공연티켓 재판매업체)와 함께 수행한 연구로, 해당 연구 논문은 <마케팅 사이언스>의 2021년 4월호에 실렸다.⁷ - P129

7 Blake, T., Moshary, S., Sweeney, K., & Tadelis, S. (2021, July). Price salience andproduct choice. Marketing Science, 40(4), 619-636. https://doi.org/10.1287/mksc.2020.1261 - P322

(전략).
결과는 어땠을까. 티켓 가격이 초반에 제대로 제시되지 않았던 A집단의 사용자는 21% 더 많은 돈을 썼고, 구매 과정을 완료할 확률이14.1% 더 높았다. 이는 엄청난 차이다.
당신이 회사를 하나 운영하는 중인데, 간단한 디자인 의사 결정하나만으로 고객이 21% 더 많은 돈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해보자. 고민할 것도 없이 이 디자인을 채택할 것이다. - P131

에어비앤비가 숨긴 비용

리조트 요금, 어메니티 요금, 목적지 요금, 청소비 등은 환대 산업에서 정착된 지 꽤 되었다. 2019년에 메리어트는 예약 가격의 최대 55%까지 청소비를 부과했다.⁹ - P131

9 Serati, N. (2019, May 16). The ugly side of Marriott‘s new home rentals: Sky-high cleaning fees. Thrifty Traveler. Retrieved 10 October 2022 from https://thriftytraveler.com/news/hotels/marriott-cleaning-fees-homes-villas/ - P322

 에어비앤비는 국가별로 다르게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운영하고 정기적으로 변화를주기 때문에 이 가격이 어떻게 나왔는지 구체적으로 따져보기는어렵다. 그러나 2021년 6월 현재 에어비앤비 미국 웹사이트 모습을 캡처해보면 다음과 같다.¹² - P133

12 Shon, S. (2021, June 22). Demystifying Airbnb fees: How to understand the final cost before booking. The Points Guy. Retrieved 10 October 2022 from https://thepointsguy.com/guide/understand-airbnb-fees/ - P323

13소셜미디어에서 많은 사용자가 비용을 숨기는 방식에 불만을제기했지만, 이는 특정 국가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었다.¹³ 호주의 에어비앤비 사용자의 경우, 호주 경쟁소비자위원회(AustralianCompetition and Consumer Commission, ACCC)에서 비용을 숨기는 기만적패턴을 금지하기 때문에 이런 일로 속을 일이 없다.¹⁴ - P135

13 Sawyer, D. (2017, December 28). I built a browser extension. Reddit. Retrieved10 October 2022 from https://www.reddit.com/r/Frugal/comments/7mpca2/i_built_a_browser_extension_that_shows_you_the/
14 ACCC. Price displays. (2022, October 6). Australian Competition and ConsumerCommission, Retrieved 10 October 2022 from https://www.accc.gov.au/consumers/pricing/price-displays - P323

구독을 숨기는 기만적 패턴


피그마가 숨긴 구독당신이 디자이너라면 피그마를 알고 있을 것이다. 피그마는 UI디자인 협업 툴로 업계에서 상당히 많이 쓰인다. 피그마에서 디자인을 만들고 오른쪽 상단의 파란색 ‘공유‘ 버튼을 누르면 다른 사람에게 디자인을 공유할 수 있다.¹⁸ - P137

2021년 3월에 그레고르 바이크브로트라는 트위터 사용자가 지적한 것처럼, ‘편집 가능‘ 옵션을 선택하면 백그라운드에서 해당 초대수신인에 대한 신규 월 구독이 생성된다. 그리고 이 구독료는초대를 보낸 사람의 신용 카드로 결제된다.
그런데 이 추가 비용은 사용자 인터페이스 어디에도 나타나지않는다.  - P138

편집자 계정을 갖고 있는 팀 구성원은 별생각 없이 ‘편집 가능‘ 옵션을 선택하여 새로운 구독을 생성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초대를 받은 사람은 여기에 다른 사람을 초대할 수도 있다. 디자인팀에서 신용 카드 청구서나 인보이스를 들여다볼 일이 거의 없고, 회계팀에서 디자인 팀이 지출한 비용에 이의를 제기할 이유도 없을 것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이 옵션을 선택하면 월 구독료가 올라간다는 사실을 회사 전체적으로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 P139

이미 예상했겠지만, 이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하퍼라는 트위터사용자의 불만처럼 원치 않는 비용을 엄청나게 발생시켰다.²²
에어테이블에서 사람들을 초대할 때 ‘에디터‘나 ‘크리에이터‘로 선택해서 보내면 비용이 신용카드로 자동으로 청구되는데, 공지되지는 않는다. - P140

22 harper. (2020, June 15). just got a $3360 charge from @airtable because i invitedsome folks to review a base i made. Twitter. Retrieved 8 May 2023 from https://twitter.com/harper/status/1272549461391290370 - P323

16장

미스디렉션

다른 기만적 패턴들처럼 미스디렉션도 인간 역사에서 많이 활용되었다. 소매치기든 무대 마술이든, 혹은 사용자 인터페이스 디자인이든 간에 적용되는 기본 원칙은 모두 같다.¹ - P147

16장 미스디렉션

1 Joseph, E. (1992). How to pick pockets for fun and profit: A magician‘s guide topickpocket magic. Adfo Books. - P324

감정적 선택 강요 기만적 패턴

‘감정적 선택 강요(confirmshaming, 컨펌셰이밍)‘라는 말은 2016년에한 익명의 블로거가 컨펌셰이밍 텀블러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널리 알려졌다.²
감정적 선택 강요는 감정을 조종하는 방법으로 사용자를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해 무언가를 선택하게 (혹은 선택하지 않게 만드는것이다.³ - P148

2 confirmshaming. (n.d.). Confirmshaming. Retrieved 3 August 2022 from https://confirmshaming.tumblr.com/
3 특히 예리한 사람이라면 컨펌셰이밍을 기만보다는 조종 패턴으로 설명하는 것이 더 낫다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 사용자에게 숨기는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이름을 간결하고 기억하기 쉽게 할 목적에서 나는 조종 및 기만 둘 다를 의미하는 기만적 패턴‘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둘의 차이에 관해 더 자세한 분석을 보고 싶다면 다음을 참조하길 바란다. ‘The Ethics of Manipulation‘(Stanford Encyclopediaof Philosophy). (2022, April 21). https://plato.stanford.edu/entries/ethics-manipulation/ - P325

시어스의 감정적 선택 강요

시어스라는 리테일 업체는 감정의 조종과 말장난을 활용하여마케팅 이메일 수신 거부 버튼에 ‘괜찮습니다. 전 공짜 돈이 싫어요‘라는 문구를 썼다. 이는 전형적인 감정적 선택 강요 사례다. - P149

마이메딕의 감정적 선택 강요
이 사례는 퍼 액스봄이 발견했다. 그는 "내가 당했던 최악의 #컨펌셰이밍이다"⁵라고 말했다. 마이메딕은 응급 처치 용품과 약품을파는 곳이다. 마이메딕은 알림을 보내도 될지를 묻는 화면에서 ‘아니요, 전 살고 싶지 않아요‘라고 해놓았다. - P149

5 Axbom, P. [axbom]. (2021, August 29). Per Axbom [Tweet]. Twitter. https://twitter.com/axbom/status/1432004956190556163 - P325

시각적 방해 기만적 패턴

이 유형의 기만적 패턴에는 사용자가 페이지에서 보일 거라고합리적으로 기대하는 내용을 숨기는 행위가 포함된다. 이를 구현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트렐로의 시각적 방해 사용자가 강제로 더 비싼 ‘비즈니스 클래스‘를 구독하게 만듦

2021년 1월에 한 익명의 트위터 사용자 (@ohhellohellohi)가 트렐로의 사용자 가입 여정에 활용된 기만적 패턴을 지적했다.⁷ (후략).⁸ - P150

7 Sunflower, [ohhellohellohii]. (2021, January 27). @darkpatterns this one nearlygot me. @trello really wants you to use their free trial [Tweet]. Twitter. https://twitter.com/ohhellohellohii/status/1354535533456879618

8 Image source for figure: Sunflower, [ohhellohellohii]. (2021, January27). @darkpatterns this one nearly got me. @trello really wants you touse their free trial [Tweet]. Twitter, https://twitter.com/ohhellohellohii/status/1354535533456879618 - P325

아무 문제도 없어 보이는 ‘가입‘ 버튼을 클릭하면 사용자에게는세 가지 요금제(무료, 스탠다드, 비즈니스 클래스)가 노출된다. 그런데사용자에게 이 세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한 것이 아니라, ‘30일 무료 체험 시작‘이라고 적힌 커다란 녹색 버튼만 눈에 띄게했다. 아무리 둘러봐도 다른 선택지는 보이지 않았다 - P152

여기는 몇 가지 속임수가 적용되었다. 이를 하나하나 살펴보자.
우선, 뷰포트 아래의 캔버스 영역(즉, ‘스크롤을 내려야 볼 수 있는 영역)에 버튼을 숨겼다. 사용자의 브라우저 창이 너무 작으면 ‘비즈니스 클래스 없이 시작하기‘ 버튼은 아예 보이지 않을 것이다. - P153

트렐로는 다른 시각적 속임수도 사용했다. 흰색 상자는 주요 콘텐츠 영역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렇게 시각적으로구분된 영역 아래에는 부가적인 각주 텍스트(저작권 메시지와 법적고지사항 등)만 넣는 것이 보통이다. - P153

마지막으로 두 버튼이 눈에 얼마나 잘 띄는지에서도 차이가 있다. ‘30일 무료 체험 시작 버튼은 색상이 들어가고 대비가 높지만, ‘비즈니스 클래스 없이 시작하기‘ 버튼은 색상이 없고 대비도 낮다. - P153

유튜브의 시각적 방해 : 거의 보이지 않는 닫기 버튼

‘프리미엄 (Freemium: 무료를 의미하는 ‘free‘와 고급을 의미하는 ‘premium‘
의 합성어)‘은 다소 투박하기는 하지만 두 가지 용어를 하나로 합쳐만든 새로운 용어다. 어떤 서비스가 프리미엄일 경우에는 2단계가격 전략을 소비자에게 제공한다. - P155

2021년 1월에 @bigslabomeat라는 트위터 사용자는 유튜브가 유튜브 프리미엄 무료 체험 가입에 기만적 패턴을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¹² - P155

12 bigslabomeat. (2021, January 20). Getting desperate now? This came up whenI opened the @YouTube app. I don‘t want premium [Tweet]. Twitter, https://twitter.com/bigolslabomeat/status/1351819681619976198 - P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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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1장

해질녘 나는 숙모와 나란히 문간에 서 있었다. 숙모는 누군가를 업었는지 포대기를 두르고 있었다. 그때의 어스름한 거리의 정적을 나는 잊지 못한다. - P25

나는 1909년 여름에 태어났으니까 메이지 천황 붕어 때는네 살이 조금 넘은 나이였다. 아마 같은 무렵의 일인 듯한데, 나는 숙모와 둘이서 우리 마을에서 20리 정도 떨어진 어느마을의 친척 집에 가서 본 폭포를 잊을 수 없다.  - P25

낯선 남자의 목말을 타고나는 폭포를 바라보았다. 무슨 신사가 옆에 있어 그 남자가 그곳의 갖가지 에마(絵馬)¹를 보여 줬지만 나는 점점 쓸쓸해져서 가차, 가차, 하고 울었다. 나는 숙모를 가차라고 불렀다. 숙모는 친척들과 멀찍이 움푹 팬 땅에 양탄자를 깔고 떠들썩하다가, 내 울음소리를 듣고 황급히 일어섰다.

1) 발원할 때나 소원이 이루어졌을 때, 신사나 절에 말 대신 봉납하는 말 그림 액자 - P26

숙모에 대한 추억은 여러 가지 있지만, 그 무렵 부모님과의 추억은 공교롭게도 하나도 가진 게 없다. - P26

예닐곱 살이 되면 추억은 또렷하다. 나는 다케라는 하녀에게 책 읽는 것을 배워 둘이서 여러 책을 함께 읽었다. 다케는내 교육에 열심이었다. 나는 몸이 허약한 탓에 누워서 많은책을 읽었다. 읽을 책이 없어지면 다케는 마을의 일요학교 같은 데서 어린이책을 부지런히 빌려 와 내게 읽도록 했다. 나는묵독을 익혔기 때문에 아무리 책을 읽어도 피곤하지 않았다. - P27

절 뒤편은 높다란 묘지이고, 황매화나무 산울타리를 따라수많은 솔도파(率堵婆)²가 숲처럼 서 있었다. 솔도파에는 보름달만 한, 자동차 바퀴처럼 검은 쇠바퀴가 달린 게 있었다.

2) 죽은 사람의 공양을 위해 경문 구절 따위를 적어 묘지에 세우는, 위가 탑처럼 뾰족하고 갸름한 나무판자 -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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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전에 없이 과대하고 관대한 건물이다. 매년약 450만 명의 사람이 대성당에 들어가기 위해 대기 행렬에 합류하고, 여기에 그저 바깥에서 건물을 바라만 보고자 오는 방문객2천만 명이 더해진다. 대중적인 문화 오락인 것이다. - P32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와 까사밀라가 독창적이고 유일하다면, 이 구역은 2천 년에 걸쳐 지어진 수백 채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럼에도 이곳의 건물 역시 대중적인 문화 오락 역할을 하며 수백만 명의 사람을 끌어들인다. 의심할 여지 없이 인간적인 장소다.

왜일까? - P33

우리가 누구인지 알려면 건물을 보라는 말이 있다. 고딕 지구에서는 여러 세대에 걸친 카탈루냐인의 정체성이 수천 개의 표면에서 자신 있게 목소리를낸다. - P35

고딕 지구의 거리도 가우디의 건물도 내게는 모두 평범한 사람을위해 지어진 궁전이다. 둘 모두 인간성에 대한, 그러니까 인간의 이에 대한 진리처럼 끼친다. 돈 한 푼 내지않고 누구라도 향유할 수 있다. 친근하게 보는 이의 기분을 고양하고 언제나 최소한의 것 이상을 제공한다. - P36

고딕 지구와 가우디의 건물처럼, 이 지하철역들도 인간의 필요. 욕구·행위를 염두에 두고 지어졌다.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으면서 제작자의 생애를 훌쩍 뛰어넘어 존속할 수 있으리라는 염원과 함께 만들어진 것이다. - P37

바르셀로나 고딕 지구에서 서쪽으로 10킬로미터 거리에 평범한 사람을 위한 궁전이 또 하나 자리하고 있다. 1975년 건축가 리카르도 보필 Ricardo Bofill의 설계로 지어진 월든 7 Walden 7은 까사 밀라같은 고급 아파트 건물이 아니라 국가 주도 하에 당시 통상보다 적은 비용으로 지어진 국가 보조 공동주택 단지다. - P38

보통의 저예산‘ 주거프로젝트는 으레 작고 옹색한 출입구를 가지기 마련이지만, 월든7은 그렇지 않다. 외려 장중하고 장대하게, 복수의 그림자와 반짝이는 푸른색 타일로 극적인 분위기를 담아낸다. - P40

이렇게 생긴 건물은 나에게 이런 느낌을 줄 수 있는데, 왜 이런 건물이 더 많지 않은 걸까? - P40

.. 2주 후, 나는 캐나다 밴쿠버로 여행을 떠나 해안가 호텔에 자리를잡는다. 길 건너편 넓은 광장은 밴쿠버항의 가장자리까지 펼쳐져있는데, 대체로 평평하고 사실상 아무도 없다. 반복은 종종 눈에 띄는 반면 복잡성은 찾아볼 수 없다. 공간의 가장자리를 따라 기울어진 가로등 몇 개와 캑터스 클럽 카페 Cactus Club Cafe의 노란 차양이 있다. - P41

얼굴 없는 고층 건물 사이에서 흥미로운 지붕 하나를 발견한다. 지붕이 덮고 있는 건물은 갈색 벽돌과 회색 석재로 지어졌다.  - P42

어느새 흥미로운 지붕들이 한데 모인 그 건물의 건너편에 와 있다. 건물의 이름은 마린 빌딩 Marine Building 이다. 자연스레 건물의1층을 흘깃 살피고는 뒤로 기대어 건물을 올려본다. 높이를 빠르게 타고 올라 꼭대기에 다다른 시선이 또 한 번 멈춰 지붕의 디테일을 음미한다. - P43

마린 빌딩의 출입구도 월든 7처럼 거주자와 방문객에게 특별한사람이 된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한 쌍의 넓은 회전문은 금으로장식되어 있고, 떠오르는 태양이 돛을 활짝 편 목선 위로 찬란한 광선을 뿜어낸다. 그 중심에는 십자가가 세워져 있으며, 태양의 꼭대기에는 여섯 마리의 거대한 캐나다기러기가 날고 있다.  - P44

마린 빌딩 여기저기에서 느껴지는 사치스러운 손길의 실제적기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건축가 존 Y. 맥카터 John Y. McCarter는 ‘무언가 매력적인 것‘을 만들고 싶었다고 변호한다. - P46

마린 빌딩은 점진적인 감정의 고조를 촉발한다. 즐거움을 준다. 관대한 마음을 가졌다. 모험과 발견과 바다의 경이로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 주변 세계가 사실은 흥미롭고 생생하게살아 있음을 상기시킨다. - P47

내 오른편에 피너클 호텔 하버프런트Pinnacle Hotel Harbourfront가 있다. 호텔은 장대할지언정 다양한 층위로 이루어진 마린 빌딩 같지 않고, 바르셀로나 고딕 지구의 높고 좁은 구조물과도 다르다. 마치 가로로 눕혀진 마천루처럼 여봐란 듯이 수평적인 느낌을 준다. - P48

 피너클 호텔 하버프런트 앞을 지나칠때면 대개 대형 유리판이나 플라스틱 간판이 보인다. 건물의 거대한 창문은 천장부터 바닥까지 이어진다. - P48

표면을 가득 메운 흥미로운 요철들이 특별한 방식으로 세월의 흔적과 때를 숨길 수 있게 하는 바르셀로나의 건물들과 달리, 아무런 장식도 없는 호텔의 표면은 빈 캔버스가 되어 수십 년간 쏟아지며 얼룩을 남긴 빗물을 강조한다. - P50

한때 존 Y. 맥카터가 얘기했던 ‘분위기‘는 어디에 있는거지? 즐거움은 어디에 있으며? 이야기는 어디에 있고? 찬미는 어디에 있을까? 관대함은? 배려라는 감각은 어디에 있지? 인간적인 손길은어디에 있는 걸까? - P51

매일 수천 명의 사람이 지나다니는 세계적인 도시의 중심가라는 사실은 아무래도 좋은 것 같다. 바르셀로나와 밴쿠버 다른 지역에서는 관대함을 경험했고, 여기서는 이기주의를 맞닥뜨린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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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ken windows
인식의 힘이 비즈니스를 어떻게 움직일까?


5년간 매일 들른 단골 커피전문점에서 당신은 어느 날 문득 페인트칠이 벗겨진 벽을 보고 왜 음식의 위생 상태를 의심하게 되는 것일까? 마사 스튜어트는 부당 내부거래 혐의 때문이 아니라 그 논란을 무마시키는 과정에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녀는 왜 위법 행위까지 하며 논란을 무마시키려 했을까? 정치인들은 그들의 불법적이고 비양심적인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런 혐의를 무마하려다 지지자들을 잃고 만다. - P26

01

깨진 유리창의
숨겨진 힘을 찾아서

빨간불에 길 건너는 사람을 막을 수 없다면 강도도 막을 수 없다. 1982년 출판 당시, 깨진 유리창 이론은 기존의 형사행정학이론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혁명적이고 독창적인 개념으로평가되었다 - P27

‘법‘과 ‘질서‘는 다르다. 법을 수호하려면 각자 법을 어기지 않고 살아가면 된다. 매우 간단하다. 그러나 도시와 국가와 기업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들‘ 이 같은규칙을 따라야 하며, 각각의 규칙이 똑같은 비중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 P28

 줄리아니시장과 브래턴 경찰국장은 마음대로 차 유리를 닦고, 낙서를 하고, 무임승차를 하는 사람들을 처벌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용납할 수 있는 것들과 용납하지 못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설명했다. 지하철에 낙서를 하거나 무임승차를 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모든 뉴욕 시민에게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 P30

페인트칠이 벗겨진 식당은 음식도 맛이 없다

그렇다면 깨진 유리창 이론을 비즈니스 세계에 어떻게 접목시킬 수 있을까?
비즈니스에서는 고객의 인식이야말로 기업의 성패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한 번의 실수, 한 명의 불친절한직원, 한 번의 불쾌한 경험 때문에 고객은 당신의 회사에 등을 돌린다. - P31

고객을 유인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긍정적 인식‘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부정적 인식‘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일 역시 중요하다. 깨진 유리창은 갈아 끼우는 것 외에는 해결책이 없다. - P33

정치인은 왜 이미지 관리에 신경 쓰는가


 (전략).
비즈니스를 운영하면서 작은 부분까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힘들여 얻은 고객의 충성심을 놓치게 된다. - P34

‘살림의 여왕‘ 마사 스튜어트 Martha Stewart 의 경우를 보자.
그녀는 부당 내부거래, 사기, 공공신탁 조작 혐의를 받았지만 유죄 판결을 받지는 않았다. 정작 유죄 판결을 받은 부분은 혐의에 대한 논란을 무마시키려 했던 불법 행위였다. 왜 그녀는 혐의에 대한 논란을 무마시키려 했을까?  - P35

비즈니스에서 과연 깨진 유리창이란 무엇인가? 빛바랜 페인트처럼 물리적인 것들은 비교적 찾아내기 쉽다. 그러나 기업의 정책에 따르지 않거나 고객에게 부적절한 행동을 하는 현장 직원들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 P36

05

크리스피 크림보다 던킨도너츠에
열광하는 이유 혹은 그 반대


똑같은 제품에 다른 고객이 몰리는 이유


크리스피 크림 Krispy Kreme 도넛과 던킨도너츠Dunkin Donuts도넛의 맛을 구분할 수 있는가? 나는 그럴 수 없다.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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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누나 유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을 때 구사나기는 커피숍에서 『주간 트라이』 최신호를 읽고 있었다. ‘구아이회‘에 관한기사 제2탄이 실려 있었던 것이다. - P53

‘구아이회‘라고, 너, 들어봤어?"
구사나기는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주간지를 내려다보았다.
"응, 알아. 요즘 여러 가지로 화제에 오르는 것 같던데."
자신이 그와 관련된 사건을 담당하고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누나 시어머니가 그 종교에 빠졌단 말이야?" - P54

"누나, 둘째를 원해?"
"아니야, 이제 와서 둘째는 무슨. 그런데 있잖아, 너 알아?
‘구아이회‘ 입회금이 자그마치 백만 엔이야. 할머니가 돈을어떻게 쓰건, 그거야 당신 자유지만, 속임수일 게 뻔하잖아."
흠, 하고 구사나기는 한숨을 쉬었다.
"그럴지도 모르지. 그래서, 나더러 어쩌라는 거야. 설마 할머니를 설득하라는 말은 아니겠지?" - P53

구사나기는 유리에게 부탁받은 얘기를 늘어놓았다. 웃어넘길 줄 알았는데 유가와의 반응이 예상 밖이었다.
"실은 지난번에 자네한테 얘기를 들은 후로 내내 마음이찜찜했어. 우리 연구실에서도 ‘아이회‘가 화제에 오르더니학생들끼리도 갑론을박을 벌였거든. 그들을 지도하는 입장에서 무시할 수가 없더군. 그래서 지난주와 이번 주 『주간트라이』를 열심히 읽고 있던 참이야."
"뭐 좀 알아냈어?" - P56

(전략).
명함을 건네는 유가와에게 사토야마 나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다행이군요. 누추하지만 일단 앉으시죠. 커피라도 가져오겠습니다."
"아니에요, 저희는 괜찮습니다. 그보다, 어서 얘기를 듣고싶어요."
사토야마 나미가 필기도구와 녹음기를 꺼냈다. 유가와는난처한 표정으로 구사나기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 P57

"기사는 읽었습니다. 하지만 비유적인 표현이 많아서 참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더군요. 조금 더 객관적인 사실을 알고 싶습니다."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사토야마 나미가 고개를 갸웃했다. - P58

구사나기가 말했다.
"염을 한 번만 받은 게 아닙니까?"
그러자 그녀가 구사나기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보란 듯이턱을 쳐들었다.
"교단을 세상에 정확히 알린 데 대한 사례라면서 대사가저를 특별 회원으로 인정해 줬습니다. 그래서 입회금을 면제받고 신자가 되었죠." - P59

"기사에 따르면 무언가 따스한 것에 감싸인 듯한 느낌이었다고 했던데요."
유가와가 말했다.
"맞아요. 아주 잠깐이었지만, 체온이 확 올라가는 느낌을받았어요." - P60

구사나기가 유가와를 바라보았다.
"기공으로 그런 일이 가능해?"
"숙련된 기공사는 손을 향하기만 해도 그 부분이 따뜻해진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 일설에 따르면 손바닥에서 원적외선이 방출된다고도 하고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대사는 그보다 훨씬 높은 수준에 도달했을 거라고 봐요."
"원적외선이라....
유가와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걸로는 사람을 창문 밖으로 떨어뜨릴 수 없어." - P61

유가와는 "불이라…………." 하고 중얼거리며 팔짱을 끼고는생각에 잠긴 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저, 하고 사토야마 나미가 입을 열었을 때였다. 유가와가갑자기 팔짱을 풀더니 구사나기를 바라보았다.
"자네가 취조실에서 렌자키 씨에게 염을 받았을 때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고 했지?" - P61

"대사에게 그 일에 관해 들었어요. 염을 보내는 시늉만 했을 뿐이라고 하시더군요. 그런 신성한 행위를 취조실 같은 곳에서 할 수는 없었다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그 의식은 이 방에서가 아니면 하지 않는다는말이군요."
유가와가 칠판에 그린 평면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네, ‘정화의 방‘에서만 하는 거죠." - P62

"과학적으로 조사하는 것 말이에요. 우리 편집부에서도 그런 얘기가 나와서 교단에 부탁한 적이 있는데, 곤란하다고 했어요."
"왜죠?"
"그런 식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거예요. 대사의 염은 상담자의 마음에 작용하는 거라서, 사람의 마음을 과학으로 읽을 수 없는 것처럼 그 힘 역시 측정할 수 있는 것이아니므로 측정하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대요. 게다가 외부인들이 들락거리면 제대로 송념이 되지 않는다고 했어요. 아까 제가 과학적으로 설명해 줄 사람을 찾는다고 말한 이유도직접적인 조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에요." - P63

8

(전략).
그녀는 ‘구아이회‘ 본부에 와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 옆에 유가와가 있다.
"소문은 들었지만, 위세가 대단한 것 같군요. 가구도 장식품도 죄다 최고급품이에요."
유가와가 실내를 둘러보며 태평스럽게 말했다. - P64

유가와가 "요코다입니다." 하며 명함을 건넸다. 실제로 편집장에게 받아 온 명함이긴 하지만 그 사용처를 편집장에게는 정확히 알려 주지 않았다. 자초지종을 들으면 노발대발할지도 모른다.
"저희 사토야마 씨가 신세를 많이 졌다고 들었습니다. 덕분에 이번 호도 매진입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유가와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대단한 연기다. - P65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유가와가 나섰다.
"실은 요즘 컨디션이 영 좋지 않아서 고민이에요. 몸이 무겁고, 머리도 하고요. 게다가 식욕 부진에 불면증까지 있지뭡니까. 그런데 의사에게 진찰을 받아 봤더니 딱히 나쁜 곳이없다는 거예요. 사토야마 씨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대사를 한번 만나보라고 권하더군요."
아하, 하고 마지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사의 염을 받고 싶다는 말씀이로군요?"
"안 되겠습니까?" - P66

과학적인 조사를 교단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말하자 유가와는 자신이 그럴듯한 이유를 붙여 피험자가 되어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하지만 설사 그럴듯한 이유가 있다 해도 물리학자가 체험하겠다고 나서면교단 측에서 달가워하지 않을 게 뻔했다. 그러자 유가와는 놀랍게도 자신이 『주간 트라이』 편집장 행세를 하겠다고 했다. - P67

마지마가 미닫이문을 열고 그렇게 말하더니 유가와의 가방으로 손을 뻗었다.
"짐은 저희가 맡아 드리겠습니다."
나미가 움찔 놀라며 유가와를 바라보았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제가 들고 있겠습니다."
유가와의 말에 마지마는 고개를 저었다. 미소를 띠고 있지만 눈빛이 날카로웠다.
"‘정화의 방‘에는 불필요한 물건을 들이지 않습니다. 그게규칙이니 모쪼록 양해해 주세요." - P68

가방을 맡긴 후 두 사람은 실내로 들어섰다. 한가운데에 방석이 놓여 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간소한 방이었다.
창문은 이미 열려 있었다.
"저게 ‘구아이의 별‘인가요?"
유가와가 상좌 뒤 벽에 걸려 있는 마크를 보면서 물었다.
맞아요, 하고 나미가 대답했다.
"디자인이 깔끔하군요. 조그맣게 글자가 쓰여 있는데, 뭐라고 쓰여 있는지 좀 봐주겠어요?" - P69

앞쪽 문이 열리고 승복 차림의 렌자키가 들어왔다. 그는 나미에게 묵례한 후 유가와를 바라보며 단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평소처럼 ‘구아이의 별‘에 예를 갖춘 뒤 단 한가운데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이때 나미는 단 앞쪽에 대학노트가 세워져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렌자키가 앉아 있는 자리 바로 밑이었다. 당연히 렌자키에게는 보이지 않을 터였다. - P70

유가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마음의 더러움을없애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좀 걸릴지도 모르겠군요. 오랜 세월에 걸쳐 더러움이 쌓인 터라서요. 저, 입회하겠다는 뜻은 확고합니까?"
"그건 아직요. 일단 체험하고 나서 결정할 생각입니다."
"그래요?"
렌자키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의심하고 계시는군요." - P71

(전략).
"그래요? 그럼 다시 한번 해 보죠."
렌자키가 똑같은 동작을 되풀이했다. 그러자 유가와의 몸이 뒤로 밀려나는 것처럼 움직였다.
"어떠세요?"
이번에는 틀림없이 느꼈겠지, 라고 하듯이 렌자키가 빙그레 웃었다. 그러나 유가와는 이번에도 고개를 갸웃했다.
"잘 모르겠어요. 제가 원래 암시에 쉽게 걸려들지 않습니다." - P72

렌자키가 심각한 표정으로 양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눈을 감지 않은 채 유가와를 바라보았다.
다음 순간, 으악, 하고 소리를 지르며 유가와가 뒤로 나동그라졌다. 허겁지겁 몸을 일으키는 그의 얼굴이 굳어져 있었다.
"이번에는 아무래도 뭔가 느낀 모양이군요."
렌자키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유가와는 두세 번 고개를 끄덕였다.
"느꼈습니다. 확실히요." - P73

"그러십시오. 자, 그럼."
렌자키가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갔다.
"괜찮으세요?"
나미가 유가와에게 물었다.
유가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단상으로 다가가 세워 놓았던 노트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걸 펼쳐 보며 만족스럽게미소지었다. - P74

9


구사나기를 비롯한 경시청 수사관들이 후지오카와 함께
‘아이회‘ 본부를 압수수색한 것은 오전 9시경이었다. 도량예는 일반 신자도 있었는데 그들은 당혹스러워할 뿐 저항하지 않았다.
강력하게 반발한 쪽은 간부들로, 그들은 수사관이 위층으로 올라가지 못하도록 엘리베이터를 정지시켰다. - P74

옆방에는 렌자키 시코, 본명 이시모토 가즈오와 아내인 사요코가 함께 있었다. 그들을 방에서 내보낸 후 벽에 붙어 있는 책장을 조사하던 구사나기 일행은 눈에 쉽게 띄지 않는 곳에서 금속 장식을 발견했고, 그걸 조작하자 책장이 옆으로 미끄러져 움직였다.
그 안쪽에 숨겨져 있던 것은 서랍장 정도 크기의 장치였다. - P75

10

실험이 있고 일주일 후, 구사나기가 유가와의 연구실을 찾았다. 재차 감사 인사를 하려는 것이었다.
"자네 덕분에 윗사람들이 싱글벙글이야. 고맙네." - P80

구사나기가콧등을 찡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말대로야. 아쉽지만, 나카가미 건으로는 상해치사가고작일 거야. 하지만 놈들의 죄는 그뿐이 아니라네. 명백히 사기죄에 해당하거든. 그래서 수사 2과 녀석들이 아주 신났어. 우리 1과 덕분에 말이야." - P81

"그럼 그자들은 무죄일 수도 있겠군. 주모자는 누구야, 역시 교조인가?"
구사나기가 고개를 저었다.
"그 사람은 수족일 뿐이야. 이용당했다고 할까. 주모자는교조의 아내 사요코였어. 애초에 그 여자가 원흉이야." - P82

사요코는 전에 다른 남자와 결혼한 적이 있었다. (중략).
그러나 사요코는 그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재산을 노리고결혼했을 뿐이다. 실제로 결혼 당시에는 공장의 경영 상태가좋았다.
그런데 장기화한 불황의 여파로 상황이 서서히 나빠졌고가사에 시달리며 돈도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생활에 염증을느낀 사요코는 마침내 집을 뛰쳐나오고 말았다. - P83

(전략).
하지만 사요코의 남편이 남긴 취급 설명서를 읽어 본 마지마는 "이건 팔릴 만한 물건이 아니야."라며 고개를 저었다.
왜냐고 묻자 산업 기기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공작용 기계도 아니고 계측 기기도 아니야. 굳이 말하자면 건강기구랄까." - P84

그래서 새로 끌어들인 사람이 역시 도박 멤버로 알게 된 모리야였다. 모리야는 신비주의를 내세워 돈을 번 경험이 있었다. 종교 법인을 설립하는 루트도 훤히 꿰고 있었다. 셋은 사요코를 중심으로 면밀히 계획을 세웠고 마침내 종교 단체를 세웠다. (중략).
그때 알게 된 사람이 이시모토 가즈오다. 그는 기공사 간판을 내걸고 병을 치료하고 있었다. 효험이 좋다는 평판이 있는 반면 치료 효과가 전혀 없다는 소문도 많았다.
바로 이 남자야, 처음 이시모토를 봤을 때 사요코는 그렇게생각했다. 생김새도 나쁘지 않은 데다 지성미마저 살짝 풍겼다. 퍼포먼스가 뛰어나고,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도취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 P85

이렇게 해서 신흥 교단 ‘구아이회‘를 발족했다. 구아이라는 이름에 별다른 의미는 없다. 괴로울 고(苦)와 사랑 애자를 붙여 소리 나는 대로 쓴 것에 불과했다. 교조는 이시모토였지만 교단을 조직하는 일은 사요코가 도맡았다 - P86

그런데 순조롭게 신자를 늘려 가던 교단이 최근 들어 정체기를 맞았다. 입소문만으로 사람을 모으기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러던 차에 신자들 사이에 이상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몇몇 간부가 교단의 자산을 횡령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몇몇 간부란 마지마와 모리야를 가리키는 것이 분명했다. - P87

그러나 나카가미를 죽일 작정은 아니었다. 그가 뛰어내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것이 사요코와 마지마 등의 주장이었다.

"그들의 주장이 부자연스럽기는 하지만, 그 주장을 뒤집기도어려워."
구사나기가 말했다. - P88

"흐음, 지금까지 들은 바로는 단순한 배후 인물로 만족할만한 여자가 아닌 것 같은데."
"본인은 스스로를 배후 인물이라고 여기지 않았어. 프로듀서라고 여겼지."
그 말을 하면서 구사나기는 새삼 사요코의 얼굴을 머릿속에떠올렸다.
재미있었어요, 희대의 악녀는 얄미울 정도로 태연스럽게말했다. - P89

"그자는 믿고 있었어. 자신의 힘으로 신자들을 구원해 왔다고 말이야. 그래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자수할 의사를 밝혔던 모양이야. 자신이 죽였다고 믿었으니까. 그런데 사요코 일당은 그의 그런 믿음을 이용하기로 했지. 교조가 자수하면 선전 효과가 한층 높아질 거라고 생각한 거야. 어차피 유죄 판결이 내려지지는 않을 거라고 예상했으니까. 간수 말로는 이시모토가 구치소에 있는 내내 명상을 하더래. 그 모습이 연기로 보이지는 않았다는군."
구사나기의 얘기를 듣고 난 유가와는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으로 안경을 밀어 올렸다. - P91

구사나기가 물었다. 유가와는 티켓 앞면을 구사나기 쪽으로 돌렸다.
"전국 점 페스티벌이래."
"점?"
(중략).
"어유, 답답하긴・・・・・・ 미안해. 그냥 버리게."
"버리긴 왜 버려? 잘 맞힌다잖아. 이거 흥미진진한걸. 고맙다고 전해 줘."
유가와는 티켓을 흰 가운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 P92

4장

휘다


1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10월 들어서는 날씨가 영 신통치 않다. 이게 가을장마라는 건가, 하고 남자가 중얼거렸다.
목적지에 거의 다다랐을 때 휴대 전화가 울렸다. 남자는쭛, 혀를 차고서 손으로 더듬거려 전화기를 찾아 쥐었다. - P265

"언제까지 있을 건데?"
아내는 음, 하며 잠시 생각하다가 "내일 돌아올 예정이긴 하지만 어쩌면 하루 더 묵을지도 몰라. 장례식 뒷정리도 거들어야 하니까."라고 대답했다.
"그걸 꼭 당신이 해야 해?"
지하주차장 입구가 보였다. 몇 번 온 적이 있어서 어떻게 생겼는지 안다. - P266

통화를 마친 남자는 휴대 전화기를 조수석으로 휙 던졌다. 여자는 참 태평해서 좋겠어, 하고 생각했다. 남자는 머릿속에 어떻게 하면 한 푼이라도 더 벌까 하는 생각뿐인데. 오늘만 해도 원래는 쉬는 날이었는데 동료가 병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뜻하지 않게 자신이 불려 나왔다. 물론 거절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특별수당을 외면할 만큼 형편이 넉넉지 않다. - P267

2

이 정도 크기라면 기계식 주차장에 들어가기 어렵겠는걸.
구사나기가 은색 차체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유럽산 세단이다. 전체 길이가 5미터도 넘는 데다 차폭도 1미터 80센티미터 이상이다. 그렇다면 평면 주차 공간에 세울 수밖에 없는데, 안타깝게도 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특권층의 권력을 이용했다. 이건가." - P268

"그래서, 어떻게 생각해?"
"그게......"
구사나기는 눈꼬리 옆을 긁적거렸다.
"아직은 뭐라고 말하기 힘듭니다. 단, 피해자가 이 장소에차를 세운 게 우연은 아닌 것 같아요. 다시 말해서 그런 사실을 아는 사람의 계획적인 범행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 좋아.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듣기로 하고, 자네들은서로 돌아와 피해자의 남편이 곧 도착한다니까." - P269

"그야 그렇겠지. 다만 야나기사와 선수와는 관계없는 일이야. 아마 뛰지도 못했을걸."
"그래요?"
(중략).
"그럴 때 부인이 이런 일을 당했으니..... 타이밍이 너무나쁘네요" - P270

스포츠 센터 주차장에 여자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다는신고가 들어온 것은 오늘 오후 5시 30분경 신고한 사람은 주차장 경비원이다.
119에도 신고가 들어가 구급대원이 달려왔다. 여자는 운전석 문 옆에 쓰러져 있었다. 원피스 위에 얇은 코트를 걸쳤는데, 그 코트의 등쪽이 절반 가까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구급대원이 여자의 사망을 확인했을 무렵 관할 서 경찰관이 도착했다. - P271

이름은 야나기사와다에코 이 스포츠 센터의 VIP 회원이었다. 이날 방문한 목적은 피부 관리를 받는 것으로, 사전에 예약되어 있었다. 그럴 경우 지하 주차장 특별 구역에 주차하게 한다는 것이 피부 관리실 담당자의 설명이다.
스포츠 센터 데이터베이스에 야나기사와 다에코의 개인정보가 일부 들어 있었다. 그녀는 가족 회원이고, 남편이 프로 야구팀 도쿄 엔젤스의 야나기사와 다다마사 선수라는 사실도 그 정보에 의해 밝혀졌다. - P272

"그 피부관리실 말인데요, 부인이 그곳에 다닌다는 사실을 아는사람이 많습니까?"
글쎄요, 하면서 야나기사와가 고개를 갸웃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아무한테도 말한 기억이 없지만그 사람은 적어도 친구들한테는 말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 P273

"자동차 조수석에 있던 물건입니다. 백화점 쇼핑백에 담겨있었어요."
야나기사와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처음 봅니다."
"누군가에게 선물하려고 한 게 아닐까 싶은데, 그런 얘기를 부인께 들은 적은요?"
"없습니다." - P274

차가 달리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야나기사와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더니 소곤소곤 얘기를 나누었다. ‘빈소‘라든가 ‘장례식‘ 등등의 단어가 귀에 들어왔다.
통화 도중 야나기사와가 저, 하고 말을 건넸다.
"시신을 언제쯤 돌려보내 주실 거죠?"
구사나기는 잠시 생각하다가 "일러야 내일 저녁 무렵일 겁니다. 부검을 해야 하니까요."라고 대답했다.
"......그렇군요." - P275

3

범인은 사건 발생 닷새 만에 체포되었다. 27세 남자로, 다니던 회사에서 며칠 전 해고당했다고 한다. 회사 비품을 멋대로 가져다가 인터넷에서 판매한 사실이 발각되었기 때문이다.
(중략).
어떻게 하면 돈을 마련할 수 있을까 궁리한 끝에 주차 중인 차량을 털기로 한 그는 전에 경비원으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는 고급 스포츠 센터 주차장을 떠올렸다. - P276

남자는 옆에 있던 차 뒤에 몸을 숨기고 외제 차가 후진해서주차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차에 탄 사람은 여자 혼자였다.
차림새가 고급스럽다는건 밖에서 보아도 알 수 있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유리창을 깰 필요가없지 않은가. 차에서 내리는 여자를 덮쳐서 기절시키면 그만이다. 지갑을 지녔을 테니 전당포에 갈 필요도 없다. - 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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