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ecoming 비커밍 - 미셸 오바마 자서전
미셸 오바마 지음, 김명남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11월
평점 :
품절
미셸 오바마는 읽기를 미리 배워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에 입학했을 때 또래에 비해 이점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녀는 반에서 제일 똑똑한 두 아이를 따라잡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고 그때의 심정을 이야기한다. 미셸 오바마의 어머니는 딸의 이야기를 차분히 잘 들어주었다. 화를 오냐오냐 받아주는 적은 없었지만 좌절감은 진지하게 여겨주었다고 회고한다. 새 선생님에 대한 불평을 진지하게 듣고 학교에 건의하여 월반을 하게 만든 것도 그녀 어머니의 작품이었다.
그녀의 부모님은 미셸 오바마와 `그녀의 오빠를 어른처럼 대했다고 한다. 가르치려 들지 않고 아이들의 질문에 끝까지 진지하게 대답해주었다. 대화가 몇 시간식 이어졌다고 하니 그 인내심이 놀랍다. 어머니는 한결같이 남매를 사랑했지만 결코 손아귀에 쥐고 흔들지는 않았다. 심지어 10대 때도 통금이 없었고 몇 시에 귀가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지 물어보고 직접 스스로 결정을 내리며 지키도록 했다.
아버지를 따라 유권자들 집을 방문하며 보낸 많은 시간과 주말에 친척과 함께 한 나들이 시간들이 그녀를 차츰 더 외향적이고 사교적인 아이로 변화시켰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백인과 흑인의 구분과 차별에서 오는 혼란을 경험하며 인생의 숙제를 발견한다.
"나는 앞으로 내 출신과 내가 바라는 미래를 내 정체성과 조화시켜나가야 할 터였다."
프린스턴 대학에 입학할 때 신입생 중 흑인은 9퍼센트도 못 되었다고 한다. 프린스턴은 극도로 백인적이고 대단히 남성적이었다고 이야기한다. 흑인이 길을 걸어가면 앞에 있던 백인 학생들이 길을 비켜 주지 않기도 했다. 프린스턴에서 소수 인종은 너무 적어 어딜 가나 눈에 띄었고 미셸 오바마는 그 상황을 남들의 예상을 뛰어넘을 만큼 잘 해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며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는다. 오기가 발동한 것이다. 이후, 그녀는 하버드 법대로 진학하고 사다리의 가장 높은 발판인 '시들리 앤드 오스틴'이라는 일류 법률 회사의 시카고 지점에서 두둑한 급여를 받고 일하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인턴의 멘토 역할을 맡게 되는데 그 인턴도 하버드 출신의 잘 나가는 법대생인데 이름이 희한했다. 바로 버락 오바마였다.
버락 오바마는 첫날부터 늦었다고 미셸 오바마는 이야기한다. 보통 2학년생을 인턴으로 고용하는데 버락 오바마는 겨우 법대 1년을 마친 상태로 인턴을 왔다. 그리고 오기 전부터 사내에서 파란을 일으켰다고 한다. 소문에 그가 특별하다는 것이다. 그는 미셸 오바마보다 세 살이 많았다. 미셸 오바마는 그에게 조언이 필요 없다는 사실을 금세 알 수 있었다고 한다.
버락 오바마는 법대 진학 전 3년 동안 시카고에서 지역사회 조직가로 활동했다. 미셸 오바마는 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며 버락 오바마의 남다름을 이야기한다.
"버락은 도시공공주택 정책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혼자 밤을 보내는 편을 더 좋아했다. 그는 활동가로 일하며 가난한 시민들이 겪는 고초에 귀 기울이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말하는 희망과 사회적 상승의 가능성이란 우리가 말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거니와 이해하기도 쉽지 않은 내용이었다."
버락 오바마는 젊었을 때부터 엄청난 연설가이자 달변가였던 것 같다. 사회 조직가로 일할 때 흑인 교구에서 주민 세미나에 가서 다음과 같이 말하며 청중의 마음을 흔든다.
"어느 쪽이 더 낫겠습니까? 지금 이대로의 세상에 안주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마땅히 와야 할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애써보는 것입니까?"
버락 오바마는 <하버드 로 리뷰>의 편집자로 선출되었는데 이 학술지는 미국 법조계에서 중요한 정기간행물 중 하나로 꼽힌다고 한다. 따라서 편집장으로 뽑힌다는 것은 엄청난 성취인데, 놀랍게도 이 학술지 101년 역사상 최초의 흑인 편집장이었다고 한다. 즉, 버락 오바마는 이미 대단한 인재이자 마음만 먹으면 두둑한 연봉을 약속하는 법률 회사에 취직할 수도 있는 위치였다. 그러나 그는 이런 것에 관심이 없었다. 미국의 인종 문제에 대한 책을 쓰고 싶어 했고 자신의 가치와 일치하는 일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미셸 오바마는 버락 오바마의 확신과 목적의식에는 감탄하며 응원하지만 그것과 함께 사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그녀는 아버지의 죽음과 수잰의 죽음을 통하여 인생은 짧고 낭비할 시간이 없다는 교훈을 얻는다. 그리고 변호사가 아닌 시장의 보좌관으로 일하게 된다. 물론, 연봉은 기존보다 절반가량으로 줄어들었다.
그들은 부부가 되고 다른 연인들처럼 싸우는 법을 배우는데 그 과정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매우 인상적이다. 한 쪽 또는 둘 다 지나치게 피로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에서 사소한 이유로 싸움이 시작된다. 서로를 이해하는 데 몇 년쯤 걸렸다고 회고한다.
"그래도 점차 짜증이나 가끔 치미는 화를 더 잘 표현하고 더 잘 참게 되었다. 요즘 우리의 싸움은 훨씬 덜 드라마틱 하고 더 효율적일 때가 많다. 그리고 아무리 팽팽하게 긴장된 상황이라도 서로에 대한 애정을 분명히 바탕에 깔고 있다."
버락 오바마는 1992년 여름 '프로젝트 보트!'라는 전국적 초당파 조직의 접촉으로 일리노이주에서 활동하게 된다. 소수자 집단의 투표를 장려하는 운동이었다. 이후, 미셸 오바마는 시청과 작별을 고하고 비영리단체인 '퍼블릭 앨라이스'라는 신생 단체에 합류하게 된다. 이 단체는 좀 더 많은 청년을 공공 부문과 비영리 조직으로 진출하도록 돕는 단체였다.
그들은 임신이 뜻대로 되지 않아 힘든 시기를 보낸다. 미셸 오바마는 임신만큼은 의지로 해낼 수 없고 정복해서 되는 일이 아니었다고 고백한다. 그 와중 유산도 한 번 경험하게 된다. 불임 클리닉에 가서 진찰을 받기도 했다. 힘든 시기 끝에 첫째 말리아를 가지게 된다.
버락 오바마가 정치에 입문하고 나서 정치와 가정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12월 23일 하와이로 휴가를 가게 되는데 의회는 연휴를 맞아 휴회에 들어간 뒤였다. 그런데 갑자기 회기에 돌입한다는 연락이 오고 투표를 하려면 48시간 안에 버락 오바마는 돌아가야만 했다. 그가 열렬히 지지해온 새 총기 규제 조치가 포함된 법안이라 중요한 투표였다. 그런데, 첫째 말리아가 밤사이에 불덩이가 되고 만다. 결국 그는 떠나지 않게 되고 그의 부재는 혹독한 정치적 고난이 되어 그에게도 돌아온다.
미셸 오바마는 놀랍게도 둘째를 낳고 새로운 직장을 얻는 과정에서 면접에 세 살 된 사샤를 데리고 간다. 더 놀라운 것은 미래의 상사가 그 상황을 이해해준 것이다. 탄력 근무 요구도 들어준다. 버락 오바마가 점점 더 바빠지며 미셸 오바마와의 갈등도 심해진다. 그러다, 저녁 먹으려고 버락 오바마를 마냥 기다리는 삶이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일과를 정하고 고수하며 주체적인 삶으로 전환하게 된다.
정치판은 흙탕물이라고 표현하고는 한다. 한국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미국이라고 다를 것이 없었다. 미셸 오바마는 자신이 아무리 굳은 신념으로 애쓰더라도 자신을 비방하고 자신의 존재를 왜곡하는 사람들을 결코 이길 수 없을 같았다고 고백한다. 야비한 인신공격에 지치고 상처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만둘 수도 없는 길이었다. 버락 오바마는 이런 미셸 오바마를 위로하고 지지한다.
"미셸, 당신은 골칫거리는커녕 우리의 크나큰 자산이야. 그걸 잊지 말아야 해. 하지만 만약 당신이 선거운동을 그만두고 싶거나 줄이고 싶다면, 그것도 완벽하게 이해해. 이 문제는 당신 맘대로 해도 돼."
버락 오바마 재임 시절, 그가 일과 가족과의 시간을 구분하여 잘 지켰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거의 매일 위층으로 올라가 저녁을 함께 먹고 가족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다.
백악관은 방이 무려 132개, 화장실이 35개가 있고 지하층 포함 총 6층 건물이라고 미셸 오바마는 이야기한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 그의 가족은 모든 행동을 사전에 경호팀과 일정 관리팀과 의논해야 했다. 놀랍게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는 우편물을 대신 읽고 답해주는 직원만 약 50명이나 되었다.
미셸 오바마는 퍼스트레이디로 있으며 다양한 활동을 한다. 그녀는 "너는 중요한 존재야"라는 단순한 메시지를 꾸준히 들려주는 부모님과 선생님과 멘토가 있었다는 점에서 자신은 행운아였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이제 다음 세대에게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는 '리치 하이어'라는 사업이 된다.
그녀는 "나는 어쩌다 그만 평범하지 않은 여정을 밟게 된 평범한 여성이다."라고 겸손히 이야기한다. 나아가, 많은 사람이 이 세상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게 되면 좋겠다고 희망을 밝힌다. 더불어 자신만의 목소리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힘이 된다고 덧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