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스카우팅 리포트 2012 - 진짜 프로야구팬이 선택한 유일한 스카우팅 리포트
김정준 외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올해의 프로야구 경기가 벌써 10%남짓 진행되었습니다. 야구경기가 없었던 겨울동안은 그렇게도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더니 프로야구가 개막하자 시간은 쏜살같이 흘렀고, 벌써 10경기 넘게 프로야구 경기가 진행되었습니다. 야구경기에 대한 오랜 기다림과 갈망 때문이었을까. 저는 응원팀인 롯데의 경기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단지 야구를 보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개막일날 인천까지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야구가 사람을 미치게 한다는 말은 야구덕후들에게나 통용될 말로 여기고 있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비단 야구덕후뿐만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체감하고 있습니다. 이건 저 뿐만 아니라 야구를 사랑하는 많은 분들이 요즘 프로야구를 보며 공감할 것입니다. 어쩌면 야구가 그만큼 범국민적 사랑을 받는 스포츠로 자리잡았다는 말이기도 할 것입니다. 

 

 


 

    야구는 어렵습니다. 직접 경기장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도 하나같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야구는 알면 알수록 어렵다는 것입니다. 야구를 통계와 확률의 스포츠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다른 스포츠에 비해서 경기를 공부하듯 분석하며 봐야할 요소들이 꽤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런 복잡함이 야구의 묘한 맛이기도 합니다. 최근들어 그런 맛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 야구팬들 사이에선 본격적으로 공부하며 즐기기 위한 야구관련 보조자료에 대한 수요가 많이 있었고, 그 결과로 야구 전문가들이 최근에 많은 도서를 출간했습니다. 저 역시 최근에 야구 관련 도서들을 많이 읽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오늘 이야기할 책은 『프로야구 스카우팅 리포트 2012』라는 야구 전문도서입니다.



    『프로야구 스카우팅 리포트 2012』은 야구 전문가 김정준, 유효상, 이동현, 이용균, 최민규, 최훈이 공동으로 집필한 프로야구 전문도서입니다. 우선 프로야구 2011시즌을 최훈의 카툰으로 간략하게 정리하고, 각 팀의 스프링캠프 분위기와 2012년 프로야구를 전망하는 기사가 실려 있습니다. 그리고 2012년에 주목해야할 키플레이어에 대한 분석 글과 주요 선수들의 팀간 이동에 대한 글을 싣고 있으며, 스포츠 케이블방송 아나운서들의 인터뷰도 담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볼 수 있는, 각 팀 별 주요선수들에 대한 분석과 주요 기록들이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는 스카우팅 리포트가 있습니다.



    매 시즌초마다 야구 전문가들이 그해 프로야구를 전망하고 주요 선수들의 활약에 대해 추측을 하곤 합니다. 보통 그런 전망에 대한 글을 유심히 살펴보고 한 시즌의 야구가 끝났을 때 시즌 초에 했던 예상이 얼마나 잘 적중했는가 비교해보곤 했는데,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제대로된 예상을 하지 못했고, 새로운 시즌에 대한 전망보단 지금과 비슷하게 유지될 것이다 라는 비교적 무난한 진단을 내리는 모습을 보고 많이 아쉬웠습니다. 그런 면에서 『프로야구 스카우팅 리포트 2012』은 꽤 무난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도서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2011년에 활약했던 주요선수들에 대한 매우 세세한 기록들과 전문가들의 코멘트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매력적인 도서임에도 불구하고, 제 개인적으로는 조금 싱겁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어쩌면 이런 느낌은 이제 야구 팬들의 안목이 굉장히 높아져서 왠만한 준전문가 수준의 야구지식을 갖췄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직 프로야구가 열경기 남짓밖에 진행되지 않았지만, 올해 유독 새로운 선수들의 시즌 초 활약이 눈에 띕니다. 롯데를 예로 들자면, 최대성, 김성호, 이용훈, 신본기, 김성배, 쉐인 유먼의 활약이 돋보인 시즌 초 롯데야구입니다. 그래서 이런 선수들에 대한 리포트는 어떤가 궁금해서 『프로야구 스카우팅 리포트 2012』를 찾아 보았는데 그 선수들에 대한 기록과 설명을 거의 볼 수 없어서 조금 아쉬웠습니다. 신인 선수들이며 용병 선수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고 여겨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과거 독립리그, 2군 리그, 마이너 리그 기록이나 특정 경기에서의 활약도, 고교 아마야구에서의 활약 정도의 코멘트 정도를 담고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누구나 잘 아는 선수들에 대한 정보보다는 잘 몰랐던 선수들에 대한 정보가, 이런 야구 스카우팅 리포트 도서에서 더욱 가치있는 정보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누가 이들의 활약을 예상이나 했겠습니까. 그리고 롯데와 엘지가 시즌 초에 선두권을 달리고 있을지 그 누가 예상을 했겠습니까. 이 책의 야구 전문가들도 삼성과 SK, 두산, KIA, 한화 순으로 시즌을 예상했을 정도이니 얼마나 야구가 어렵고 알 수 없는 스포츠인지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아직 시즌 초반이니 이런 전망과 예상, 그리고 현재 성적이, 시즌 막바지에 어떻게 변해 있을지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그리고 지금 잘 나간다고 섯불리 설레발을 치다간 DTD할지 모르니 아직은 조금더 지켜봐야 할 것이 맞다고 봅니다. 


 


    아무튼 야구경기가 있을 때마다 『프로야구 스카우팅 리포트 2012』을 꺼내서 다른 팀의 선수들에 대한 분석글을 읽어보는 재미가 꽤 쏠쏠할 것 같습니다. 상황별 기록과 상대 선수간 기록에 따라서 감독이 특정 상황에서 어떤 선수로 교체하고 작전을 펼칠 것인지, 이 책으로 인해 더욱 유심시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 드디어 야구의 계절이 왔습니다. 야구장에 직접가서 좋아하는 팀을 응원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집에서 맥주와 치킨을 준비해놓고 티비앞에 앉아서 『프로야구 스카우팅 리포트 2012』와 함께 프로야구를 시청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결론은, 올해도 구도부산 롯데야구 파이팅! 입니다. 확 마! 단디 안할거면 야구고 뭐고 그냥 다 아 주삐라! 올해도 우승 몬하면 내는 마 모르겠다 안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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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러리엄
로렌 올리버 지음, 조우형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나는 내 영혼이 닿을 수 있을 만큼 너를 깊고 넓고 높이 사랑해." 사랑하는 그대에게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습니다. 저보다 훨씬 이전에 아주 오래 전의 누군가가 그의 시에서 이 문장을 먼저 사용했을테지만, 그건 제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이토록 아름다운 표현들보다 더 아름답고 진실된 제 마음을 앞서 말한 시 한 구절을 인용해가면서까지 어떻게라도 그대에게 잘 전달할 수만 있다면 하고 바란다는 것,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옛 시를 빌려서라도 그대를 향한 제 작은 몸부림을 고스라니 전달할 수만 있다면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오로지 그것만을 바라고, 그것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랑, 사랑, 그리고 사랑. 그 순간 이후의 세상은 그대와 나, 둘뿐이고, 나머진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니까 다른 것에 대해선 전혀 고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로렌 올리버『딜러리엄』은 디스토피아적 근미래 세상을 그려놓은 소설입니다. 이 소설에서 말하는 디스토피아적 세상은 감정이 없는 세상을 말합니다. 분노와 질투, 복수에서 비롯된 파괴적 감정은 세상을 아프게 했던 전쟁의 씨앗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세상은 인간의 감정을 하나의 질병으로 간주하며 치료해야할 대상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장 큰 죄악으로 여기며 18세가 되면 검사를 통해 아이들을 감별하고 치료를 거친 후 세상의 구성원으로 살 수 있게 재조정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말하는 완벽한 행복이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무감각을 말하며, 치료라는 것은 감정을 감지하는 뇌의 일부를 제거하는 수술을 말합니다.



    가끔은 이런 소설이 보여주는 미래의 세상이 황당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설마하니 세상이 그렇게까지 되도록 사람들이 가만히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말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말이 안되는 소설의 설정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소설이 갖고 있는 치밀함에 놀라곤 합니다. 피어나는 새싹들에서 온기를 느끼고, 타오르는 태양의 열기에 몸을 내맡겨보기도 하며,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고 눈물을 흘리곤 했던 어린 시절의 낭만주의자들이 어느 순간부터 생활에 찌든 무미건조한 표정을 한 채 매일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더욱 그렇게 느껴집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세상의 밝은 면보단 어두운 면에 익숙해져 있고, 거대한 세상안에서 무력감을 느끼며, 스스로는 안될 것이라고 체념하며 자신을 닫아 버리곤 합니다. 소설에서 말하는 자연 치유라는 것이 바로 우리들이 스스로 자신에게 행하는 이런 것입니다. 세상을 살다보니 스스로 감정을 밀어내고, 건조한 일상을 행복이라고 단정하며, 세월을 따라 흘러가고 있는 것입니다. 



    결혼 생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오로지 너 하나밖에 없다. 다시 태어난다 하더라도 나는 너와 결혼할 것이고, 천년 만년 살더라도 나는 너와 또 다른 평생을 살아 갈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남녀가 이 세상에 많이 있다면 정말로 다행일 것입니다. 하지만 젊은 시절 구구절절한 사랑을 노래했지만 세월이 흘러 그시절의 마음이 식어버리는 경우의 남녀도 많을 것입니다. 또한 혼기를 놓치고 시간이 많이 흘러버려서 운명인지 무언인지 모를 그런 힘에 이끌려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남녀도 있을 것입니다. 또 상대방에 대한 특정한 목적을 갖고 결혼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 목적을 상대방에게서 구할 수 없게 되자 사랑도 함께 식어버린 남녀 역시 존재할 것입니다. 슬픈 현실이지만 세월이 흐르다 보니 이제는 이것이 사랑인지 생활인지 모르겠다고 여기는 남녀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남녀들은 서로를 어제보다 오늘 더 사랑하고, 오늘보다 내일 더 사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놈의 정 때문에'라는 핑계로 시간을 죽이고 있진 않은가, 그리고 혹시라도 이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으며, 그런 것에 대한 고민과 생각마저 하지 않은 채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묻고 싶습니다.



    물론 제가 지금 여러분께 하고 있는 질문은 아닙니다. 소설『딜러리엄』이 제게 했던 질문들입니다. 그리고 앞에서 제가 말한 내용들을 소설이 겉으로 뻔히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혹시라도 이런 것은 아닐까 하며 저 혼자만 그렇게 느꼈고 혼자서 상상한 내용일지 모릅니다. 아무튼 소설은 굉장히 낭만적인 비극을 보이고 있습니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이고, 오! 로미오, 내 사랑 줄리엣!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같은 문제가 생긴 근본적인 원인은 역시 사랑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이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사람을 살아나게 하기도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런 장르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지는 모습을 보면 가끔은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소설은 분명히 멋지고 괜찮았는데 영화로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특히 어린 남녀의 사랑을 영화에서 어설프게 그려놓고, 세세한 감정을 잘 잡아내지 못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원래 사랑이라는 감정에서 개연성을 찾기 힘든 것이기도 할 뿐더러 십대의 감성은 더더욱 그렇기 때문에 그런 감정을 잘 표현해내지 못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딜러리엄』에서 표현하는 사랑의 감정은 꽤 진지한 설명과 충분히 납득할만한 개연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손에 쥐어진 땀의 느낌부터 미묘하게 떨리는 입술과 속눈썹, 그리고 가슴 속에 응어리진 아픔까지 느껴졌다면 이 소설이 그런 감정을 어떤 식으로 표현했는지에 대한 제대로된 설명이 되진 못하겠지만, 아무튼 저는 그런 것이 느껴졌습니다. 이렇게 사랑의 감정이란 것은 텍스트로 설명하기 힘든 것일 뿐만아니라 텍스트가 아니면 또 설명하기 힘들어 보이기도 한 것이기에, 어설픈 연기력으로 텍스트적 사랑을 표현하려 한다면 어려움이 많을 것입니다. 더더욱 어린 배우가 그것을 소화하려 하는 경향이 많기 때문에 꽤 많은 영화들이 실패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소설의 영화화가 그렇게 반갑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소설이 만약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눈에 보이는 위기감이 크게 느껴지지 않을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비슷한 장르의 다른 소설들의 세상은 사람들의 목숨이 왔다갔다하며 말 그대로 정말 죽느냐 사느냐를 고민해야하는 암울한 세상인데 반해, 『딜러리엄』이 보여주는 세상은 비교적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진 않기 때문입니다. 죽는다는 것은, 더군다나 사랑 때문에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오히려 아픔이 있어 아름답다고 느껴질 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 낭만주의자가 아니라면 이런 식의 사랑 놀이가 하찮게 느껴지기도 할 것입니다.  물론 사랑하는 남녀와 그 둘만의 세상에선 그들을 갈라놓으려는 모든 장애물들이 그 무엇보다도 잔인한 적들이고, 사랑이 아니라면 죽은 것이나 다름 없다는 생각으로 이보다 더한 위기는 없다고 말할 것이지만 말입니다. 반면 어떤이들은 아마도 이들의 갈등을 그저 젊은 시절, 2층 창문 너머에 있을 순이를 그리워하며 순이의 방에 몰래 드나들수 있게 했던 창문 옆의 커다란 나무가 잘려버린 정도의 위기라 볼 수 있겠고, 물래방앗간에서 철수와 몰래 만날 약속의 날을 손꼽아 기다리다가 아버지로부터 외출금지령을 선고받은 정도의 위기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딜러리엄』은 저같은 낭만주의자들이 재미있게 볼 소설이며 그들의 감성을 충분히 자극할 장르소설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아! 사랑, 사랑, 그리고 사랑이여. 그것은 너무나 멀리서 너무나 아름다운 자태로 내려다보고 있기에 더욱 저를 슬픔에 빠져들게 합니다.







    가장 치명적인 것은 사랑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결국 사랑이 사람들을 죽게 한다는 점이다. (9쪽)



    사람들은 자주 실수를 저지르고, 그 실수는 거의 생물학적인 것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부자연스러운 행동을 하게 만드는 호르몬이나 화학적 불균형이 남자애를 여자애에게 여자애를 남자애에게 이끌리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충동도 물론 치료에 의해 해결 된다. (59쪽)



    가끔 나는 사물을 가만히 바라보며 세상이 내 눈앞에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펼쳐져 있도록 받아들일 때, 한순간 시간이 멈추고 세상이 그 각도 그대로 얼어붙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어떻게든 그 순간을 충만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익힌다면 영원히 살 수도 있는 거다. (168쪽)



    사진, 아니 영화같은 장면들이 이어졌다. 이건 영화일 수밖에 없다. 현실에선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일들 같았다. (237쪽)



    사실 내가 무슨 말을 하려 하는지 스스로도 알 수가 없었다. 제대로 생각을 할 수도 말할 수도 없었다. 그저 내 안에서 태풍처럼, 허리케인처럼 소용돌이치고 있는 단어 하나가 있었다. 그 단어가 마침내 내 안에 가득 차올라 혀를 차고 입 밖으로 탈출하려 하는 것을 나는 두 입술을 꼭 붙인채 막아냈다.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아직 한 번도, 그 누구에게도 말해보지 않은, 심지어 마음속으로 혼자서 생각해 보지도 않은 그 단어. (324쪽)



    사랑. 단 한 마디의 단어. 속삭임을 닮은 소리이자 칼날보다 크지도 길지도 않은 그 단어. 바로 그것이었다. 단검 속은 면도칼. 그렇게 삶의 중앙을 갈라 버리고 모든것을 둘로 나누는 것이다. 이전과 이후. 세상의 반대쪽은 영원히 다른 쪽으로 그렇게 떨어져 나간다.

    이전과 이후……, 그리고 그 사랑이 지속되는 그 동안.. 칼날보다 크지도 길지도 않은 찰나와도 같은 짧은 시간. (329쪽)



    사랑.

    끝없이 반복되는, 방의 구석까지 빠짐없이 조각해 넣은 글씨는 우아한 필기체와 딱딱한 활자체가 섞여 있었다. 그 광경은 마치 긁히고 상처 나고 구멍이 난 벽이 판 편의 시로 녹아내리고 있는 것 같았다. (404쪽)



    사랑, 치명적인 것들 중에서도 가장 치명적인 것. 사랑은 당신이 사랑을 소유할 때도, 그렇지 못할 때도 당신을 죽게 한다.

    하지만 엄밀히 그건 맞는 말이 아니었다.

    사랑은 형을 선고하는 자인 동시에 형을 선고 받는 자였다. 사형집행인. 칼날. 마지막 순간의 구원. 헐떡이는 호흡과 머리 위를 빙빙 돌아가는 하늘. 그리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신이여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게 하는 기도.

    사랑, 그것은 당신을 죽게 하고 또 동시에 살게 한다. (4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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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사기의 수상한 중고매장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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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당신은 『가사사기의 수상한 중고매장』에 나오는 그 사람과 닮았어.'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소설 속에 나와 닮은 모습을 한 어떤 인물이 있나 보구나 하며 흘려 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어떤 분이 '당신은 거기에 나오는 히구라시를 닮았어.'라고 하셔서 조금씩 그 책이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신은 가사사기를 닮았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삼 세 번. 도대체 그 소설이 어떤 소설이길래 나와 닮은 사람이 이토록 수상하게 많이 등장한단 말인가. 궁금증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미치오 슈스케의 『가사사기의 수상한 중고매장』을 읽어 보았습니다.


 


    한 권의 소설을 다 읽고 그 소설에 대해 다시 되새겨 볼 때, 책을 읽던 당시 메모를 해뒀던 페이지를 다시 열어보면, 그때 느꼈던 묘한 감정들이 되살아나면서 다시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경험을 하곤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메모해둔 페이지가 많으면 많을 수록 그 소설은 나를 일깨워주고, 내 가슴 속에 무언가 뜨거운 것이 자리잡게 한 대단한 소설이었다 라는 평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 결국엔 나는 괜찮은 소설을 읽었다 라고 결론짓습니다. 『가사사기의 수상한 중고매장』은 제게 그런 모습의 소설입니다.



    물론 누군가는 이 소설을 통해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추리소설을 기대하거나 미스터리한 모습을 한 소설을 기대하고 봤다면 더욱 그럴 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사사기의 수상한 중고매장』을 미스터리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미스터리함이 부족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사건이 그렇게 대단하거나 흥미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지 못하고, 잔혹하거나 선정적인 내용을 담고서 사람들을 바짝 긴장하게 만들고 있는 부분도 보이질 않습니다. 또 단편의 이야기가 연작으로 나오기 때문에 몰입도가 떨어지기도 합니다. 철수가 학교에 가서 신발주머니를 잃어버렸는데 짝궁인 영희가 의심스러운 미스터리함 정도랄까요. 예를 들자면 그런 식의 이야기가 있다는 겁니다.



    미치오 슈스케의 소설은 보통 분열된 자아를 가졌거나 무언가로부터 병들어있고 나약하고 상처받은 모습을 한 인물들이 어두운 형상을 하고 등장합니다. 이런 모습은 어찌보면 그가 글을 쓰기 시작하면 희안하게 그런 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갈 수 밖에 없다 라는 묘한 홀림처럼 정말로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저변에 깔고있는 무의식의 흐름같은 것들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또 신기한 것은 소설마다 무언가 확실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수상한 모습을 한 작가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가사사기의 수상한 중고매장』은 그런 식의 어두움따위가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굉장히 명랑하고 밝고 쾌활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소설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당시 미치오 슈스케의 2세가 태어났거나, 혹은 2세를 위한 소설을 써보자는 밝은 마음을 먹고 집필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어찌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가 있습니까. 차라리 다른 사람이 쓴 소설이라고 인정하는 편이 낫겠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이 미치오 슈스케의 소설이다라고 단정할 수 있는 한가지가 근거가 있습니다. 바로 슈스케 스타일의 치밀한 퍼즐이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작은 에피소드 하나에서도 흘려놓은 모든 힌트와 단서들을 확실히 사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작은 이야기들을 모아서 하나의 큰 소설로 완성하는 과정에서도 그런 퍼즐의 조각들을 재사용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니까 하나의 퍼즐을 맞추고 완성할 때, 분명히 퍼즐을 완성했는데 조각 하나가 남겨져 있다면 이상하다 여길 게 아닙니까. 그런데 슈스케는 그런 식으로 남겨질 모든 퍼즐의 조각들을 쓸어담아서 타이트하게 짜놓는 대단한 능력을 발휘해냅니다. 더욱이 이 소설에선 순수 미스터리의 퍼즐뿐만 아니라 감동의 퍼즐까지도 보이고 있으니. 역시 정말로 대단한 소설이란 생각을 합니다. 비록 그 퍼즐이 『가사사기의 수상한 중고매장』에서는 4세 이하의 어린이가 가지고 놀 유아용 퍼즐이었지만 말입니다.



피도 없고 살인도 없는, 미스터리한 모습을 하고 있는 수상한 미스터리.

달달하고 따뜻한 미스터리로 오염된 정신을 정화시켜 보자.

 



    다시 맨 처음에 이야기했던 가사사기와 히구라시의 이야기를 하자면, 가사사기는 자신이 마치 명탐정인 양 온갓 상상의 나래를 펼쳐가며 특별한 범죄, 또는 있지도 않을 범죄의 냄새를 쫓는 허세와 망상의 인물입니다. 눈치없지만 귀여운 모습을 한 자칭 탐정 역을 하며 상상의 추리를 하다가 마지막 한 수, 체크메이트 직전에 뭔가 틀어져서 오답에 다가가고 마는 그런 인물로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옳은 소리도 제법 많이 하고 있어서 그 모습이 미워보이기 보다는 재미있고 유쾌해 보입니다. 그리고 히구라시는 그런 가사사기 옆에서 아무도 모르게 사건의 진상을 풀어내고 서로가 오해가 없도록 조정하며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는 인물입니다. 사람들이 실망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쉽게 무언가를 거절하지 못하며, 차라리 내가 조금 손해를 보고 말지, 라는 생각으로 직역보단 의역을 해내는 인물. 그런데 가사사기와 히구라시, 이 두 인물은 정말로 저와 닮은 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모두와 닮았을 지도 모릅니다. 한편 '당신은 『가사사기의 수상한 중고매장』에 나오는 그 사람과 닮았어.'라는 말의 의미를 깨닫고 무척 놀랐습니다. 그래서 묻고 싶습니다. 정말로 제게 그런 모습들이 그렇게도 뻔히 보이던가요.








    <머피의 법칙>은 몇 번 읽어도 배워야 할 내용이 바닥나지 않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실패의 예, 그것을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는 재주꾼들의 말로 완벽하게 망라해 놓은 게 바로 이 책이야. 인생에서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는 일단 실패란 무엇인가를 샅샅이 알아 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히구라시 군. (12쪽)



    게임이란 그 자리에서 끝맺을 줄 알아야 재미있는 거야. (63쪽)



    여기는 분명히 나무들의 향기로 가득 차 있어. 하지만 말이야, 히구라시 군. 내가 그것보다 더 확실하게 느낀 건 범죄의 향기지. 죄가 남긴 향기라는 보이지 않는 입자가 아까 전부터 내 본능을 자극하고 있어. (97쪽)



    강 옆의 잔디밭에 나란히 앉아 셋이서 아이스캔디를 먹었다. 건너편 강가에 우거진 나무들 사이에서 쓰르라미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쓰르람쓰르람, 하는 소리가 먼 곳과 가까운 곳에서 울려퍼지자 오래된 영화 속에 들어간 것 같았다. 그런 산의 소리를 싣고 흐르는 강을 바라보고 있으니 어쩐지 죽은 어미니가 떠올랐다. 내 바로 코앞에서 어머니가 그 따뜻한 눈을 영원히 감은 그때의 일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생각해 보면 어머니의 인생 역시 이렇게 구부러진 좁은 강과 마찬가지로 굴곡이 심했다. (114쪽)



    사치코에게 이 공방에서의 생활은 쓰르라미의 울음소리와 똑같았으리라. 멀리서 들을 때는 듣기 좋았다. 하지만 실제로 가까이서 들어보자 상상했던 것과 완전히 달랐다. (156쪽)



    나미는 분명히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그 기분은 더할 나위 없이 진심의 것이다. (227쪽)



    남자는 여자를 위해 몰래 도움이 되고자 하는 법이거든. (2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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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 엘러리 퀸 컬렉션 Ellery Queen Collection
엘러리 퀸 지음, 주영아 옮김 / 검은숲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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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리소설을 자주 읽다보면 각 소설의 사건들마다 돌고 돌아 마르고 닳도록 자주 사용된 트릭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본격류의 소설은 트릭에 대한 분류부터 그런 트릭을 사용했으면 풀이는 이런 식으로 흘러갈 것이니 그점을 유의하고 보라는 충고까지 틀에 박힌 공식이 정해져 있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리고 그런 공식대로 읽다보면 결말도 충고와 비슷하게 흘러가기 마련이고요. 지금에 와서 자주 등장했던 트릭이 등장하면 '또 이 트릭이야'라며 식상하다 느낄지 모르지만, 그 트릭이 세상에 처음으로 누군가의 노력에 의해 만들어졌을 때는 대단하고 기발하다는 찬사를 받았으며, 왜 미처 그 생각을 해내지 못했을까 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겁니다.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말이죠. 그래서 여느 문학과 조금 다른 이유로 인해 추리소설 장르의 오래된 고전작품들은 더욱 대단한 의미를 지닙니다.

 



 

    그렇다고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가 그 시대에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기발하고 유별난 트릭을 보이고 있는가 하면 그렇진 않습니다. 요즘도 간혹 모습을 보이고 있는 단골 트릭이며, 세상의 거의 모든 추리소설 작가들이 한번쯤 건드려 본 트릭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공식대로 뻔히 흘러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독자로 하여금 어디로 튈지 모를 이 책의 이야기를 꼭 붙잡기위해 두 손에 힘을 주어가며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합니다. 그점에서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는 대단함을 보입니다. 더군다나 이 소설은 나온지 오래됐음에도 그동안 봐왔던 뻔한 트릭에 의해 한층 수준이 높아진 독자들까지 속게 만드는 치밀함을 보입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해 요즘 시대에도 통하는 추리소설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엘러리 퀸의 대표 작품들을 이야기할 때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가 한번씩 거론되곤 하는가 봅니다.



    종합선물 세트.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를 또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종합선물 세트같은 추리소설이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종합선물 세트는 대부분 말그대로 종합적이긴 하지만 전문적인 모습을 하고 있진 않습니다. 그래서 종합선물 세트가 싫냐면 또 그렇지도 않습니다. 한 장소에 동시에 담아 놓아 자연스럽고 조화롭게 보이게 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의미를 갖기도 하니까요.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는 발에 땀나듯 뛰어다닌 행동파 추리와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물고 쇼파에 앉아서 펼치는 논리파 추리가 동시에 담겨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엘러리의 시점에 의해 간간히 섞인 블랙 코미디가 음울하고 기괴한 분위기의 사건 현장에 조화롭게 잘 어울리면서 '재미'있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집트, 이도교, 나체주의, 광신도라는 유별난 소재가 이 소설을 더욱 재미있게 만들고 있고, 독자를 더욱 혼란에 빠져들게 합니다.



    하지만 앞에서 지적한대로 전문적이지 못한 부분이 조금 있습니다. 기계적인 트릭을 사용하고 있다만, 주 트릭의 비밀이 풀리는 부분에서 기계적인 그 트릭이 이야기에 미치는 파괴력이 약해 보입니다. 사람들을 모아놓고 일장연설해가며 트릭의 풀이를 했으면 멋들어지게 터트려 주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그점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살인사건의 동기도 조금 생뚱맞은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미치광이의 미친짓이야말로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식의 결말은 많은 독자들를 맥빠지게 만들었을 겁니다. 어쩌면 이것이 주 트릭의 비밀을 숨기기 위한 함정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그런 이유에서였다면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합니다.



엘러리 퀸의 국명 미스터리 시리즈 중에서도 대표작.

초심을 잃지 않고 이야기에 휘둘리지 않는 우직한 자세로 승부하자.



    엘러리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부분이 워낙에 많았던 사건이라 읽는 내내 혼란스러웠고 지금에 와선 줄거리를 요약해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아무리 사건이 혼란스럽고 이것저것 많은 것을 보여준다하더라도 초심을 잃지 말고 왜 살인자는 그런 번거러운 짓을 했을까 그것만을 생각하면 됩니다.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는 거의 모든 살인사건이 대개 그런 식으로 초점을 맞춰나가 본다면 범인을 추리해내는데 수월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소설에선 그러기가 쉽지 않습니다. 능숙하고 현란한 템포의 강약 조절, 그리고 단번에 휘몰아친 소설의 전개 방식 때문이기도 하고, 추리를 방해하는 단서와 인물들을 많이 보여주는 산만한 전개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 모습이 조잡해 보이진 않았습니다. 그래서 책을 덮고서 이 악랄한 소설을 다시 되새겨 보니, 뻔한데 왜 그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라는 생각에 한동안 멍해져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재미있었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엘러리 퀸의 국명 미스터리 시리즈는 열 편이 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번 괜찮았던 시리즈는 다음 시리즈가 왠만큼 실망을 주지 않는 이상, 기대감을 꾸준히 이어갑니다. 그리고 일단 시작했으니 끝을 봐야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계속해서 찾아보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시리즈를 발견하면 괜히 행복해집니다. 읽을 거리가 생겼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발견했다, 지금도 읽을 책이 있고, 내일도 읽을 책이 있다, 라는 안도감과 포만감이 행복으로 이어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은 저에게 행복한 시간을 선물해준 종합선물 세트이기도 합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살인은 살인이란 거야. 그리고 이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살인의 99.9퍼센트는 그 이유를 밝히기가 누워서 떡 먹기란 말이다, 이 어리석은 녀석아. 특별한 건 아무것도 없어, 알겠니? (65쪽)



    그것은 벌거벗은 남자였다. 키가 크고 체격이 떡 벌어지고 구릿빛 근육이 잘 발달된 남자였는데, 그가 달릴 때마다 길게 기른 검은색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렸다. 엘러리는 그가 타잔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쪽에 있는 덤불 속에서 타잔의 친구 코끼리가 긴 코를 휘두르며 나타나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듯했다. 그런데 허리에 감고 다니던 가죽옷은 어디갔지? (144쪽)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범죄를 해결하는 건 바로 그런 틀에 박힌 철저함이죠. (193쪽)



    인생이란 놈은 항상 부당한 속임수를 쓰는군요. 이십 년 전에 눈에 보이는 위험으로부터 도망을 쳤더니, 보이지 않던 위험이 이십 년 후에 그들을 따라잡았으니 말이죠. (318쪽)



    그것은 "언제나 남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어라."라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늘 "확실한 가치가 있는 증거는 남들이 듣는 줄 모르고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란다. 그런 대화를 듣게 되면 용의자에게 수백 가지 질문을 해서 얻어내는 것보다 더 많은 걸 알아낼 수 있을 게다."라고 말하곤 했다. (343쪽)



    뭐 이런 것들의 역사는 책에서 많이 읽을 수가 있었죠. 손발을 잘라낸다든지, 꼬챙이로 찔러 죽인다든지, 살갗을 벗겨낸다든지. 페이지마다 각종 이야기들이 피로 쓰여 있죠. 하지만 책을 읽는 것만으로는 김이 날 정도의 뜨끈뜨끈한 공포를 완전히 맛볼 수가 없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인간의 몸을 파괴하고 싶어 못 견디는 미치광이의 기괴하기 짝이 없는 변덕을 상상조차 할 수가 없습니다. (376쪽)



    무엇을 증명한다는 행위는, 결국 증명을 하는 사람보다는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달려 있으니까요. (4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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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 - 우리가 알고 있던 만들어진 아프리카를 넘어서
윤상욱 지음 / 시공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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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일본 코에이KOEI사의 <대항해시대>라는 PC게임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아프리카 대륙을 항해하며 지도를 밝히고 모험과 무역을 하는 게임이었습니다. 무역로를 장악하고 항구를 독점하기 위해 왕정에 거금을 기부해야했고, 독점한 항구에서는 아프리카 지역 특산품들을 헐 값에 사들일 수 있었으며 그것을 다른 지역에 웃돈을 얹어 판매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왕정에 기부했던 금액이상의 이익을 남겨야만 했고, 그런 자금력을 바탕으로 세력을 넓히는 방식의 게임입니다. 그런데 아프리카에 위치한 많은 항구들 중에서 크기는 작으나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자리잡은 모가디슈라는 항구는 항상 분쟁이 일어났던 곳이라 골치 아파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그곳은 지금까지도 기아와 전쟁으로 고통받고 있는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라는 점이 놀랍습니다.

 

 


    <대항해시대>가 이토록 현실을 잘 반영한 게임이었줄 몰랐습니다. 더군다나 제국주의에 빠진 서강 국가들이 상대적으로 힘이 없었던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약소국들에게 저지른 나쁜 짓을 플레이어한테 서스럼없이 권유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놀랐습니다. 원주민은 물리쳐야할 적이었고 골치아픈 존재였으며, 이용해야할 도구고 일종의 자원이었습니다. 그런 생각들이 은연중에 생겨나도록 했던 게임의 교묘함에 치가 떨립니다. 그리고 한편으론 이런 제국주의적 발상을 기초로한 게임을 재미있어하며 열심히 했다는 것에 죄의식을 느낍니다.



    윤상욱 님의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라는 책의 제목에서 그대로 말하고 있듯이, 정말로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었습니다. 아프리카를 알려고 하더라도 모를 수 밖에 없는 분명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가 알고 있다고 여기는 아프리카의 이야기는 이미 아프리카 스스로가 주인이 아니었을 당시의 아프리카 이야기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책에서는 지금 역시 아프리카의 주인은 아프리카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총체적인 난국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아프리카의 과거와 현재는 답이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미래 역시 끝없이 검고 우울해 보입니다. 그래서 영국의 학자 킷칭은 아프리카 연구에 30년 인생을 바쳤다가 결국 2000년에 '나는 왜 아프리카 연구를 그만두었나?'라는 글을 쓰고 아프리카 회의론을 주장하는지 모릅니다. 1960년 당시 아프리카 대륙은 풍부한 자원력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세계경제의 시장으로 두각되는 듯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의욕적으로 개혁과 개방을 주장하던 아프리카 지도자들의 적극적인 모습에 감탄한 서강 여러 국가들은 아프리카에 많은 자본들을 투입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 그 자본은 아프리카를 윤택하게 하지 못했고, 아프리카는 더욱 혼란에 빠졌으며 더욱 깊숙히 박힌 고통을 경험해야만 했습니다. 책에서 분석해 놓은 그 이유들은 무척 복잡한 모양새를 하고 있습니다. 물고 물리는 관계에서 도저히 어떻게 빠져나와야 하는지 돌파구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래서 이 책의 서두에서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이 이 책은 아프리카의 고통과 모순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가 고통받고 있다는 것은 이 책을 보기 전에도 어느 정도를 알고 있었지만, 고통의 원인이 이렇게 뿌리 깊은 줄은 몰랐습니다. 아덴만의 여명작전과 재스민 혁명을 계기로 아프리카에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언론에서 말하는 아프리카가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왜 그들이 그랬는가에 대해 역사, 문화, 정치적인 면을 두고 이해하려 하기보단 무조건적으로 어두운 부분만을 보려고 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도 모르게 전염될지 모를 병원균을 바라보듯 하며 말입니다.



    그런데 아프리카에 대한 오해가 풀리더라도 아프라카에 대한 시각 자체가 달라지지 않겠다는 점이 참으로 신기합니다. 이 책을 통해서 아프리카를 제대로 알려고 했고, 이해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아프리카에 대해선 회의적인 생각이 듭니다. 아프리카는 여전히 힘들어 보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완전히 답이 없어 보입니다. 유일한 답이 있다면 교육에 있다고 보는데, 이것도 단기간에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누가 아프리카의 미래를 위해 교육에 지원할지 그것도 미지수입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당장 먹을 빵이 아니라 스스로 밀을 재배하고 수확해서 빵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기가 쉽지 않은 이유가 당연하다는 듯 책에서 제시하고 있으니 무척 답답할 노릇입니다.



    그래서 '아프리카를 연구했지만 알고보니 답이 없었다. 그래서 연구를 그만두었다.'라는 그 말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아프리카 대륙 자체를 <대항해시대> 게임내의 모가디슈처럼 하나의 골치덩어리로 여기면 안될 테지만,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를 읽고 아프리카에 대한 더욱 자세한 내막을 알고 나니 회의적일 수 밖에 없어 보입니다. 책에서 아프리카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기도 합니다만, 제 생각에는 역시 변함이 없습니다. 아프리카에 대한 답은 다음 세대가 되어서야 나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아프리카와 아프리카인들이 겪어온 고통과 모순에 관한 것이다. 외교관의 화려한 무용담이 아니며, 아프리카의 자원과 시장을 알리는 책은 더더욱 아니다. 누가 언제 어떻게 아프리카와 아프리카인들에게 고통을 주었으며, 왜 아직도 아프리카는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또 미래는 어떻게 변해갈 것이며, 거기에는 어떤 도전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이 책의 주된 관심이다. (8쪽)



    폭력과 불신이 증폭하고 무시무시한 공포가 주변을 떠도는 곳에서 사람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은 누구인가. 가족밖에는 없다. '아프리카인들이 아프리카인들을 잡아먹는' 시대에 신뢰할 수 있는 공동체의 범위는 부족, 씨족, 가족 단위로 좁혀졌다. 아프리카의 파편화는 이를 표현한 것이며, 인근 부족, 이웃 마을 사람들 간 불신과 증오의 기억은 훗날 국민 국가 형성 과정에 결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수 없었다. (95쪽)



    기내에 계신 승객 여러분, 오랜 시간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항공기는 13시 정각에 이륙할 예정이었으나, 기체에 결함이 발견되었습니다. 기장은 이륙을 거부했고……. 결국 저희 항공사는 젊고 용감한 기장으료 교체하였습니다. 저희 항공기 이제 출발합니다. (133쪽)



    극단적 비관론자들은 아프리카를 '4D의 대륙'이라고 부른다. 죽음, 질병, 재난이 끝ㅎ기지 않는 아프리카는 절망의 대륙이라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꿈꿀 수 없는 절망의 대륙, 아프리카를 바라보는 시각 중에서 이보다 더 가혹한 표현은 아마 없을 것이다. (205쪽)



    전쟁터에 내몰린 아프리카 소년, 소녀들의 일화에서 새삼 추악한 인간 본성, 그 역겹고 징그러운 냄새가 느껴진다. 우선 소년병들은 성인 병사들보다 군량미를 덜 소비하기 때문에 '경제적'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전쟁터에서 유엔군들은 소년병에게 쉽사리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므로 총알받이로 쓰기 적당하다. 부모와 가족을 잃은, 그래서 의자할 곳 하나 없는 어린이들의 공허한 정신세계에 폭벽의 괘함, 환각과 성적 정복감은 쉽사리 주입되므로 다루기도 쉽다. 그리고 전쟁터에서 죽어도 아쉽지 않다. 다시 마을을 습격해 납치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소년병은 인간으로서는 차마 할 수 없는 잔인무도한 아동 착취다. (254쪽)



    국가란 어쩌면 공기와도 같은 것이다. 너무나도 당연하고 평범한 것이기에 평소에는 그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다. 그러나 국가가 무너져 제 구실을 못하는 아프리카에서 어린아이들은 총알받이와 성 노예가, 어민들은 목숨을 건 채 일확천금을 노리는 해적이 된다. 아프리카 정부들의 무능력은 곧 비극의 씨앗이다. 유능하고 힘 있는 정부, 적어도 국민들의 생명만큼은 지켜줄 수 있는 정부가 들어서지 않는 한, 아프리카 비극은 꼬리에 꼬리를 물 것이다. (2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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