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 - 우리가 알고 있던 만들어진 아프리카를 넘어서
윤상욱 지음 / 시공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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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일본 코에이KOEI사의 <대항해시대>라는 PC게임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아프리카 대륙을 항해하며 지도를 밝히고 모험과 무역을 하는 게임이었습니다. 무역로를 장악하고 항구를 독점하기 위해 왕정에 거금을 기부해야했고, 독점한 항구에서는 아프리카 지역 특산품들을 헐 값에 사들일 수 있었으며 그것을 다른 지역에 웃돈을 얹어 판매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왕정에 기부했던 금액이상의 이익을 남겨야만 했고, 그런 자금력을 바탕으로 세력을 넓히는 방식의 게임입니다. 그런데 아프리카에 위치한 많은 항구들 중에서 크기는 작으나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자리잡은 모가디슈라는 항구는 항상 분쟁이 일어났던 곳이라 골치 아파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그곳은 지금까지도 기아와 전쟁으로 고통받고 있는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라는 점이 놀랍습니다.

 

 


    <대항해시대>가 이토록 현실을 잘 반영한 게임이었줄 몰랐습니다. 더군다나 제국주의에 빠진 서강 국가들이 상대적으로 힘이 없었던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약소국들에게 저지른 나쁜 짓을 플레이어한테 서스럼없이 권유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놀랐습니다. 원주민은 물리쳐야할 적이었고 골치아픈 존재였으며, 이용해야할 도구고 일종의 자원이었습니다. 그런 생각들이 은연중에 생겨나도록 했던 게임의 교묘함에 치가 떨립니다. 그리고 한편으론 이런 제국주의적 발상을 기초로한 게임을 재미있어하며 열심히 했다는 것에 죄의식을 느낍니다.



    윤상욱 님의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라는 책의 제목에서 그대로 말하고 있듯이, 정말로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었습니다. 아프리카를 알려고 하더라도 모를 수 밖에 없는 분명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가 알고 있다고 여기는 아프리카의 이야기는 이미 아프리카 스스로가 주인이 아니었을 당시의 아프리카 이야기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책에서는 지금 역시 아프리카의 주인은 아프리카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총체적인 난국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아프리카의 과거와 현재는 답이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미래 역시 끝없이 검고 우울해 보입니다. 그래서 영국의 학자 킷칭은 아프리카 연구에 30년 인생을 바쳤다가 결국 2000년에 '나는 왜 아프리카 연구를 그만두었나?'라는 글을 쓰고 아프리카 회의론을 주장하는지 모릅니다. 1960년 당시 아프리카 대륙은 풍부한 자원력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세계경제의 시장으로 두각되는 듯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의욕적으로 개혁과 개방을 주장하던 아프리카 지도자들의 적극적인 모습에 감탄한 서강 여러 국가들은 아프리카에 많은 자본들을 투입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 그 자본은 아프리카를 윤택하게 하지 못했고, 아프리카는 더욱 혼란에 빠졌으며 더욱 깊숙히 박힌 고통을 경험해야만 했습니다. 책에서 분석해 놓은 그 이유들은 무척 복잡한 모양새를 하고 있습니다. 물고 물리는 관계에서 도저히 어떻게 빠져나와야 하는지 돌파구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래서 이 책의 서두에서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이 이 책은 아프리카의 고통과 모순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가 고통받고 있다는 것은 이 책을 보기 전에도 어느 정도를 알고 있었지만, 고통의 원인이 이렇게 뿌리 깊은 줄은 몰랐습니다. 아덴만의 여명작전과 재스민 혁명을 계기로 아프리카에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언론에서 말하는 아프리카가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왜 그들이 그랬는가에 대해 역사, 문화, 정치적인 면을 두고 이해하려 하기보단 무조건적으로 어두운 부분만을 보려고 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도 모르게 전염될지 모를 병원균을 바라보듯 하며 말입니다.



    그런데 아프리카에 대한 오해가 풀리더라도 아프라카에 대한 시각 자체가 달라지지 않겠다는 점이 참으로 신기합니다. 이 책을 통해서 아프리카를 제대로 알려고 했고, 이해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아프리카에 대해선 회의적인 생각이 듭니다. 아프리카는 여전히 힘들어 보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완전히 답이 없어 보입니다. 유일한 답이 있다면 교육에 있다고 보는데, 이것도 단기간에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누가 아프리카의 미래를 위해 교육에 지원할지 그것도 미지수입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당장 먹을 빵이 아니라 스스로 밀을 재배하고 수확해서 빵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기가 쉽지 않은 이유가 당연하다는 듯 책에서 제시하고 있으니 무척 답답할 노릇입니다.



    그래서 '아프리카를 연구했지만 알고보니 답이 없었다. 그래서 연구를 그만두었다.'라는 그 말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아프리카 대륙 자체를 <대항해시대> 게임내의 모가디슈처럼 하나의 골치덩어리로 여기면 안될 테지만,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를 읽고 아프리카에 대한 더욱 자세한 내막을 알고 나니 회의적일 수 밖에 없어 보입니다. 책에서 아프리카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기도 합니다만, 제 생각에는 역시 변함이 없습니다. 아프리카에 대한 답은 다음 세대가 되어서야 나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아프리카와 아프리카인들이 겪어온 고통과 모순에 관한 것이다. 외교관의 화려한 무용담이 아니며, 아프리카의 자원과 시장을 알리는 책은 더더욱 아니다. 누가 언제 어떻게 아프리카와 아프리카인들에게 고통을 주었으며, 왜 아직도 아프리카는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또 미래는 어떻게 변해갈 것이며, 거기에는 어떤 도전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이 책의 주된 관심이다. (8쪽)



    폭력과 불신이 증폭하고 무시무시한 공포가 주변을 떠도는 곳에서 사람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은 누구인가. 가족밖에는 없다. '아프리카인들이 아프리카인들을 잡아먹는' 시대에 신뢰할 수 있는 공동체의 범위는 부족, 씨족, 가족 단위로 좁혀졌다. 아프리카의 파편화는 이를 표현한 것이며, 인근 부족, 이웃 마을 사람들 간 불신과 증오의 기억은 훗날 국민 국가 형성 과정에 결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수 없었다. (95쪽)



    기내에 계신 승객 여러분, 오랜 시간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항공기는 13시 정각에 이륙할 예정이었으나, 기체에 결함이 발견되었습니다. 기장은 이륙을 거부했고……. 결국 저희 항공사는 젊고 용감한 기장으료 교체하였습니다. 저희 항공기 이제 출발합니다. (133쪽)



    극단적 비관론자들은 아프리카를 '4D의 대륙'이라고 부른다. 죽음, 질병, 재난이 끝ㅎ기지 않는 아프리카는 절망의 대륙이라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꿈꿀 수 없는 절망의 대륙, 아프리카를 바라보는 시각 중에서 이보다 더 가혹한 표현은 아마 없을 것이다. (205쪽)



    전쟁터에 내몰린 아프리카 소년, 소녀들의 일화에서 새삼 추악한 인간 본성, 그 역겹고 징그러운 냄새가 느껴진다. 우선 소년병들은 성인 병사들보다 군량미를 덜 소비하기 때문에 '경제적'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전쟁터에서 유엔군들은 소년병에게 쉽사리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므로 총알받이로 쓰기 적당하다. 부모와 가족을 잃은, 그래서 의자할 곳 하나 없는 어린이들의 공허한 정신세계에 폭벽의 괘함, 환각과 성적 정복감은 쉽사리 주입되므로 다루기도 쉽다. 그리고 전쟁터에서 죽어도 아쉽지 않다. 다시 마을을 습격해 납치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소년병은 인간으로서는 차마 할 수 없는 잔인무도한 아동 착취다. (254쪽)



    국가란 어쩌면 공기와도 같은 것이다. 너무나도 당연하고 평범한 것이기에 평소에는 그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다. 그러나 국가가 무너져 제 구실을 못하는 아프리카에서 어린아이들은 총알받이와 성 노예가, 어민들은 목숨을 건 채 일확천금을 노리는 해적이 된다. 아프리카 정부들의 무능력은 곧 비극의 씨앗이다. 유능하고 힘 있는 정부, 적어도 국민들의 생명만큼은 지켜줄 수 있는 정부가 들어서지 않는 한, 아프리카 비극은 꼬리에 꼬리를 물 것이다. (259쪽)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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