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 엘러리 퀸 컬렉션 Ellery Queen Collection
엘러리 퀸 지음, 주영아 옮김 / 검은숲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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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리소설을 자주 읽다보면 각 소설의 사건들마다 돌고 돌아 마르고 닳도록 자주 사용된 트릭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본격류의 소설은 트릭에 대한 분류부터 그런 트릭을 사용했으면 풀이는 이런 식으로 흘러갈 것이니 그점을 유의하고 보라는 충고까지 틀에 박힌 공식이 정해져 있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리고 그런 공식대로 읽다보면 결말도 충고와 비슷하게 흘러가기 마련이고요. 지금에 와서 자주 등장했던 트릭이 등장하면 '또 이 트릭이야'라며 식상하다 느낄지 모르지만, 그 트릭이 세상에 처음으로 누군가의 노력에 의해 만들어졌을 때는 대단하고 기발하다는 찬사를 받았으며, 왜 미처 그 생각을 해내지 못했을까 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겁니다.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말이죠. 그래서 여느 문학과 조금 다른 이유로 인해 추리소설 장르의 오래된 고전작품들은 더욱 대단한 의미를 지닙니다.

 



 

    그렇다고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가 그 시대에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기발하고 유별난 트릭을 보이고 있는가 하면 그렇진 않습니다. 요즘도 간혹 모습을 보이고 있는 단골 트릭이며, 세상의 거의 모든 추리소설 작가들이 한번쯤 건드려 본 트릭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공식대로 뻔히 흘러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독자로 하여금 어디로 튈지 모를 이 책의 이야기를 꼭 붙잡기위해 두 손에 힘을 주어가며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합니다. 그점에서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는 대단함을 보입니다. 더군다나 이 소설은 나온지 오래됐음에도 그동안 봐왔던 뻔한 트릭에 의해 한층 수준이 높아진 독자들까지 속게 만드는 치밀함을 보입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해 요즘 시대에도 통하는 추리소설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엘러리 퀸의 대표 작품들을 이야기할 때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가 한번씩 거론되곤 하는가 봅니다.



    종합선물 세트.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를 또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종합선물 세트같은 추리소설이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종합선물 세트는 대부분 말그대로 종합적이긴 하지만 전문적인 모습을 하고 있진 않습니다. 그래서 종합선물 세트가 싫냐면 또 그렇지도 않습니다. 한 장소에 동시에 담아 놓아 자연스럽고 조화롭게 보이게 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의미를 갖기도 하니까요.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는 발에 땀나듯 뛰어다닌 행동파 추리와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물고 쇼파에 앉아서 펼치는 논리파 추리가 동시에 담겨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엘러리의 시점에 의해 간간히 섞인 블랙 코미디가 음울하고 기괴한 분위기의 사건 현장에 조화롭게 잘 어울리면서 '재미'있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집트, 이도교, 나체주의, 광신도라는 유별난 소재가 이 소설을 더욱 재미있게 만들고 있고, 독자를 더욱 혼란에 빠져들게 합니다.



    하지만 앞에서 지적한대로 전문적이지 못한 부분이 조금 있습니다. 기계적인 트릭을 사용하고 있다만, 주 트릭의 비밀이 풀리는 부분에서 기계적인 그 트릭이 이야기에 미치는 파괴력이 약해 보입니다. 사람들을 모아놓고 일장연설해가며 트릭의 풀이를 했으면 멋들어지게 터트려 주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그점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살인사건의 동기도 조금 생뚱맞은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미치광이의 미친짓이야말로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식의 결말은 많은 독자들를 맥빠지게 만들었을 겁니다. 어쩌면 이것이 주 트릭의 비밀을 숨기기 위한 함정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그런 이유에서였다면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합니다.



엘러리 퀸의 국명 미스터리 시리즈 중에서도 대표작.

초심을 잃지 않고 이야기에 휘둘리지 않는 우직한 자세로 승부하자.



    엘러리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부분이 워낙에 많았던 사건이라 읽는 내내 혼란스러웠고 지금에 와선 줄거리를 요약해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아무리 사건이 혼란스럽고 이것저것 많은 것을 보여준다하더라도 초심을 잃지 말고 왜 살인자는 그런 번거러운 짓을 했을까 그것만을 생각하면 됩니다.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는 거의 모든 살인사건이 대개 그런 식으로 초점을 맞춰나가 본다면 범인을 추리해내는데 수월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소설에선 그러기가 쉽지 않습니다. 능숙하고 현란한 템포의 강약 조절, 그리고 단번에 휘몰아친 소설의 전개 방식 때문이기도 하고, 추리를 방해하는 단서와 인물들을 많이 보여주는 산만한 전개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 모습이 조잡해 보이진 않았습니다. 그래서 책을 덮고서 이 악랄한 소설을 다시 되새겨 보니, 뻔한데 왜 그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라는 생각에 한동안 멍해져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재미있었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엘러리 퀸의 국명 미스터리 시리즈는 열 편이 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번 괜찮았던 시리즈는 다음 시리즈가 왠만큼 실망을 주지 않는 이상, 기대감을 꾸준히 이어갑니다. 그리고 일단 시작했으니 끝을 봐야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계속해서 찾아보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시리즈를 발견하면 괜히 행복해집니다. 읽을 거리가 생겼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발견했다, 지금도 읽을 책이 있고, 내일도 읽을 책이 있다, 라는 안도감과 포만감이 행복으로 이어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은 저에게 행복한 시간을 선물해준 종합선물 세트이기도 합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살인은 살인이란 거야. 그리고 이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살인의 99.9퍼센트는 그 이유를 밝히기가 누워서 떡 먹기란 말이다, 이 어리석은 녀석아. 특별한 건 아무것도 없어, 알겠니? (65쪽)



    그것은 벌거벗은 남자였다. 키가 크고 체격이 떡 벌어지고 구릿빛 근육이 잘 발달된 남자였는데, 그가 달릴 때마다 길게 기른 검은색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렸다. 엘러리는 그가 타잔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쪽에 있는 덤불 속에서 타잔의 친구 코끼리가 긴 코를 휘두르며 나타나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듯했다. 그런데 허리에 감고 다니던 가죽옷은 어디갔지? (144쪽)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범죄를 해결하는 건 바로 그런 틀에 박힌 철저함이죠. (193쪽)



    인생이란 놈은 항상 부당한 속임수를 쓰는군요. 이십 년 전에 눈에 보이는 위험으로부터 도망을 쳤더니, 보이지 않던 위험이 이십 년 후에 그들을 따라잡았으니 말이죠. (318쪽)



    그것은 "언제나 남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어라."라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늘 "확실한 가치가 있는 증거는 남들이 듣는 줄 모르고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란다. 그런 대화를 듣게 되면 용의자에게 수백 가지 질문을 해서 얻어내는 것보다 더 많은 걸 알아낼 수 있을 게다."라고 말하곤 했다. (343쪽)



    뭐 이런 것들의 역사는 책에서 많이 읽을 수가 있었죠. 손발을 잘라낸다든지, 꼬챙이로 찔러 죽인다든지, 살갗을 벗겨낸다든지. 페이지마다 각종 이야기들이 피로 쓰여 있죠. 하지만 책을 읽는 것만으로는 김이 날 정도의 뜨끈뜨끈한 공포를 완전히 맛볼 수가 없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인간의 몸을 파괴하고 싶어 못 견디는 미치광이의 기괴하기 짝이 없는 변덕을 상상조차 할 수가 없습니다. (376쪽)



    무엇을 증명한다는 행위는, 결국 증명을 하는 사람보다는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달려 있으니까요. (405쪽)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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