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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옷을 입으렴
이도우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랜만에 이도우 작가의 신간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몇년 전 누군가 나에게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이란 책을 선물했었다. 받을 당시에는 잘볼게라고 말했지만 바쁘게 지내다보니 그 책은 나의 뇌리속에서 잊혀지고 말았다. 그리고 꽤 시간이 지났고 방 한쪽에 정신없이 쌓여져 있는 책을 정리하다 이 책을 발견했었다. 낯선 제목의 책이 왜 나에게 있는지 생각하다 누군가에게 선물받았다는것을 기억해냈고 그 사람을 떠올리며 책을 읽었었다. 다 읽고나니 안 읽고 지나갔으면 후회했겠다 싶었고 당시에 그 사람은 왜 이 책을 굳이 선물했는지도 어렴풋이 느껴졌다. 그 책은 나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기에 당연히 저자의 신간 역시 기대가 되었고 만나보고 싶었다.
'고둘녕' 그녀는 전철역과 가까운 세진상가 1층에서 '실과 바늘'이란 세 평 남짓한 옷수선 가게를 하고 있다. 이 책은 그런 그녀의 현재와 과거의 이야기를 번갈아가며 들려주고 있었다. 둘녕이는 열한 살때 외갓집에 맡겨지게 된다. 엄마가 영영 사라져버린후 혼자 지내기 일쑤였던 그녀에게 어쩌면 외가에서의 생활은 희망이 없던 삶에 한줄기 빛과 같이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수안 역시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둘녕의 동갑내기 이종사촌인 수안 역시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있었다. 둘은 자신만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었고 그러했기에 성격이 달랐지만 서로를 의지하며 의미있는 유년시절을 만들지 않았나 싶다.
둘은 같은 공간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영원히 함께 할 수 없음을, 서로 다른길을 가야함을 알고 있었던거 같다.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그들이 처해져있는 상황이 점점 그들의 운명을 갈라놓고 있었다. 사람마다 각자의 인생에서 짊어진 무게가 있다. 누구의 무게가 더 무겁고 가벼운지는 어느 누구도 알 수가 없고 알 필요도 없다. 자신의 삶에 주어진 무게를 보태려고 덜어내려고 할 필요도 없다. 그냥 자신이 짊어진 무게 속에서 삶의 방향을 찾고 그 방향 속에서 즐거움을 찾으면 되는 것이다. 책을 보면서 둘녕에게 지워진 무게는 결코 가벼워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수안과 함께 함으로써 조금은 그 무게를 덜어내는듯 했지만 결코 덜어낼수가 없었다. 그녀에게 남은것은 유년시절의 아련한 기억들 뿐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둘녕의 과거를 바라보다보니 나의 과거가 떠오른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가장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는 어린시절. 그때는 불행이란 단어가 존재하는지도 몰랐었다. 웃고 즐기며 활발하게 세상을 뛰어다녔고 모든 것이 환하게만 느껴졌었다. 하지만 세상은 환한것만은 아니며 어둠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었다. 아픔을 겪고 시련을 겪으며 눈물을 흘리고 힘들어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던 그 시절. 지금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아닌거 같고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수도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왜그리 넘기 힘든 커다란 벽처럼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이것이 사람의 인생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 저자의 전작과 비슷한 부류의 소설이 아닐까 했지만 전혀 달랐다. 그렇지만 실망스럽다거나 그런 느낌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만족스러웠다. 어쩌면 이 책의 분위기가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나와 비슷하다고 느껴져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물론 둘녕이와 수안이의 상황과 나와는 유사점이 많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둘녕이가 전해주는 감정들은 나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고 그래서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더욱더 귀를 기울일수가 있었다. 따뜻한듯 하면서도 쓸쓸하고, 정겨운듯 하면서도 애틋한 느낌. 무언가로 꾸미지 않고 솔직담백한 이야기는 저자가 독자들을 끌어당기는 힘이 아닌가 싶다. 그립고도 그리운 나의 어린시절을 추억하게 해주었기에 더욱더 나의 마음에 와닿는 그런 이야기였던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