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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우리집 뒤에 있는 북한산에 오른다.

힐러리는 산에 오르는 이유를 아주 멋지게 말한 바 있지만

내가 산에 오르는 까닭은 한가지다.

산행은 백수에게 가장 좋은 운동이니까.

백수라고 차별하지 않으니까.(이크, 두가지구나)

 

어제 오후, 오징어 한마리와 소주 한병을 사가지고 북한산에 올랐다.

바쁜 일이 없으니 가다가 힘들면 쉬었다 간다.

처음엔 산을 오르는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쟤 백수냐?"라고 놀리는 것 같아 괜히 멋쩍었지만

자주 오르다보니 그들에게도 밝게 웃어줄 수 있다.

정상에 올라 두 팔을 벌리고 타이타닉 흉내를 내보다

으슥한 곳에 가서 소주를 마신다.

오징어는 따스함을 잃었지만 소주는 더 시원해져서 좋다.

그런 데서 마시는 소주는 유난히 더 맛있는지라

행여 한방울이라도 흘릴까봐 종이컵을 핥아먹게 된다.

혹자는 산에 가서 술을 마시면 산에 간 게 도루묵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산 정상에서 마시는 소주의 기똥찬 맛을 외면한다면

건강해진들 무엇하랴.

소주병을 기울여 남은 몇방울까지 입안에 털어넣고

나른해진 몸을 일으킨다.

내려오는 길은 언제나 가뿐하다.

산아, 그리고 소주야. 니들이 있어서 난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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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07-01-30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북한산도 다니시는군요.바쁘시겠어요.ㅎㅎ

moonnight 2007-01-30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소주를 사랑하시는군요. 북한산에 올라 소주 한 잔이라. 글만 읽어도 흐뭇~ ^^

2007-01-31 1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이가 들어 배움의 길이 끝나면 가장 중요한 게 경제적 독립을 해야 한다는 거다.

독립까지는 아니라도 자기 손으로 돈을 얼마라도 벌어야 매사에 떳떳하다는 것.

나도 직장생활을 하던 때가 있었다.

비정규직이었고, 거기서 받는 월급이 내가 한달간 먹어치우는 밥값, 빨래값, 잠자는 값 등에

턱없이 못미쳤다 하더라도

내가 밥을 두공기 먹는다고 뭐라고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동생은 '임산부같은 배를 하고서 밥을 그렇게 많이 먹냐'고 핀잔을 줬지만

그건 밥값이 아깝다는 얘기는 아니었다.

백수인 지금은 밥을 조금만 더 먹으려고 해도 눈치가 보인다.

그래서 난 집에 아무도 없을 때

나 혼자 진라면을 끓여먹고 밥을 마음껏 말아 먹을 수 있는 그때가

참 좋다...

마침 오늘은 다들 어디론가 나가고 나 혼자 있다.

일단 진라면을 끓인 뒤 계란을 한 세개쯤 넣고

밥솥에 있는 밥을 다 말아야겠다.

그리고 도서관에 가야지.

백수의 주말은 이렇듯 처량하다.

로또라도 사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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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27 23: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moonnight 2007-01-29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서 공부 많이 하셨어요? 아님 독서? ^^ 오뚜기진라면님은 무슨 책을 즐겨 읽으시는지 궁금해집니다. 라면 맛있겠어요. 그래도 계란 세 개는 좀.. ^^;
 

난 백수다.

실업자의 정의가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구하는데 일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럴 의사가 별로 없어진 내가 정부의 실업자 통계에 잡혀 있는지 궁금하다.

아무튼

백수로 살려면 백수라는 자격지심을 갖지 말아야 한다.

백수에 대한 가정적, 사회적, 국가적 그리고 이성적 편견이 워낙 지대한지라

그런 것들과 싸우며 살려면 보통 사람보다 더 굳은 마음을 먹어야 한다.

가장 흔히 쓰이는 방법이 그래 나 백수다 어쩔래 하고 들이대는 것.

 

알라딘에 가입하고 닉네임을 만들면서

'백수'라는 이름을 생각했다.

그런데 검색을 해보니까 백수를 쓰는 사람은 예상외로 많았다.

'백수'만 해도 여럿이 잡히고

백수쟁이곰,  백수두달째, 백수킹카, 백수의 왕, 백수고양이, 심지어

백수건달까지 있다

그들이 이렇게 들이대는 것도 다 험한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함일 터

그들의 존재에 든든한 동지감을 느끼며

다른 닉네임을 찾았다.

별로 오래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책상 앞에 놓여 있는 진라면이 눈에 띄었다.

원래 신라면만 먹다가 차승원이 맛있다고 한 이후부터

진라면만 쌓아놓고 먹고 있었다.

난 닉네임에 진라면이라고 썼다.

그런데 검색을 해보니 진라면도 두명이나 있다.

백수를 닉네임으로 쓰는 사람들에겐 동지감을 느꼈지만

진라면을 쓰는 사람에겐 좀 화가 났다.

그들이 설마 나보다 더 진라면을 많이 먹을까?

게다가 그들의 서재에 가봤더니 방문객도 0이고

서재에 아무것도 차려놓은 게 없다.

그래도 난 다른 닉네임을 찾아야 했다.

더 오래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진라면이라는 글자 옆에 오뚜기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난 오뚜기진라면이 됐다.

난 알라딘 유일의 오뚜기진라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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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25 15: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1-25 16: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1-27 1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인터넷은 백수에게도 열려 있다.

아니, 나같은 백수를 더 환영하는지도 모른다.

사실 네이버 같은 데서 악플 달고 하는 사람, 대부분 백수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거기서 댓글을 달다가 고등학교 친구를 만난 적도 있다.

체벌에 관한 기사에 댓글을 다는 애가

혹시 아는 애인가 싶어 "너 혹시 원희 아니냐?"라고 물어봤더니

그는 깜짝 놀라더니 "너 누구야?"란 댓글을 남기고는 사라져 버렸다.

그 생활을 몇달 하다가

이렇게 살면 발전이 없다는 회의가 들어 그만뒀다.

이제부터 책을 읽자는 마음에 알라딘에 온 게 석달 전이다.

사람들이 쓴 리뷰를 보고 읽을 책을 고르고

학교 도서관에 가서 그 책들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는데

그러다가 용기를 내서 서재를 만들었다.

다른 사이트처럼 직업을 묻는 난이 없어서 좋았다.

직업란에다 '기타'라고 답을 하면 쑥스럽잖아.

서재도 생기고 했으니 가끔씩 내 일상을 쓸 생각이다.

사실 내 일상이라는 게 특별할 건 없다.

느즈막히 일어나 도서관에 가고

책 좀 보다가 너다섯시 쯤 집에 온다.

처음에는 친구들이랑 술도 먹고 그랬는데

자격지심이 생겨 연락이 와도 안나가게 되었다.

지금은 전화하는 친구가 거의 없다.

앞으로 시간이 날 때면 여기서 글이나 읽으며 보낼 생각이다.

사람들 생각과 달리 백수라고 해서 마음 놓고 인터넷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괜히 어머니 눈치가 보이고

시집 못간 여동생이 오면 컴퓨터를 비켜줘야 한다.

백수라는 게 범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랑일 수는 없다.

이 공간을 사람들과 사귀고 교류하는 장으로 사용하기보다는

흐트러진 내 자신을 추스리고

미래를 설계하는 계기로 삼을 생각이다.

나같은 백수에게 저녁을 차려 주신 어머니 감사합니다.

올해는 꼭 기대에 부응하겠으니

용돈 좀 넉넉히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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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23 2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paviana 2007-01-23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라면을 많이 좋아하시나봐요. ㅎㅎ

Mephistopheles 2007-01-24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줄의 반전이 그 어떤 반전보다 탁월했습니다..^^

2007-01-24 16: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2-08 1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해적오리 2007-02-26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갑자기 이 페퍼가 왜 이케 웃길까요?
지금 자러가서 나머지는 아침에 읽도록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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