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은 백수에게도 열려 있다.

아니, 나같은 백수를 더 환영하는지도 모른다.

사실 네이버 같은 데서 악플 달고 하는 사람, 대부분 백수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거기서 댓글을 달다가 고등학교 친구를 만난 적도 있다.

체벌에 관한 기사에 댓글을 다는 애가

혹시 아는 애인가 싶어 "너 혹시 원희 아니냐?"라고 물어봤더니

그는 깜짝 놀라더니 "너 누구야?"란 댓글을 남기고는 사라져 버렸다.

그 생활을 몇달 하다가

이렇게 살면 발전이 없다는 회의가 들어 그만뒀다.

이제부터 책을 읽자는 마음에 알라딘에 온 게 석달 전이다.

사람들이 쓴 리뷰를 보고 읽을 책을 고르고

학교 도서관에 가서 그 책들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는데

그러다가 용기를 내서 서재를 만들었다.

다른 사이트처럼 직업을 묻는 난이 없어서 좋았다.

직업란에다 '기타'라고 답을 하면 쑥스럽잖아.

서재도 생기고 했으니 가끔씩 내 일상을 쓸 생각이다.

사실 내 일상이라는 게 특별할 건 없다.

느즈막히 일어나 도서관에 가고

책 좀 보다가 너다섯시 쯤 집에 온다.

처음에는 친구들이랑 술도 먹고 그랬는데

자격지심이 생겨 연락이 와도 안나가게 되었다.

지금은 전화하는 친구가 거의 없다.

앞으로 시간이 날 때면 여기서 글이나 읽으며 보낼 생각이다.

사람들 생각과 달리 백수라고 해서 마음 놓고 인터넷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괜히 어머니 눈치가 보이고

시집 못간 여동생이 오면 컴퓨터를 비켜줘야 한다.

백수라는 게 범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랑일 수는 없다.

이 공간을 사람들과 사귀고 교류하는 장으로 사용하기보다는

흐트러진 내 자신을 추스리고

미래를 설계하는 계기로 삼을 생각이다.

나같은 백수에게 저녁을 차려 주신 어머니 감사합니다.

올해는 꼭 기대에 부응하겠으니

용돈 좀 넉넉히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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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23 2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paviana 2007-01-23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라면을 많이 좋아하시나봐요. ㅎㅎ

Mephistopheles 2007-01-24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줄의 반전이 그 어떤 반전보다 탁월했습니다..^^

2007-01-24 16: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2-08 1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해적오리 2007-02-26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갑자기 이 페퍼가 왜 이케 웃길까요?
지금 자러가서 나머지는 아침에 읽도록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