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날의 초상
김주영 지음 / 개미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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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무슨 책을 볼까 도서관에 갔다가 김주영이란 이름을 보고 집어왔다.

근데 왜 알라딘에선 엔터키를 치면 두줄씩 내려가나.

그의 대표작 <객주>는 문학에 문외한인 나까지도 들어본 적이 있다.

<어린 날의 초상> 은 내가 처음 읽은 김주영의 소설이다.

이 책에는 갓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일곱살 어린애가 나온다.

저자는 그의 눈으로 본 세상 풍경을 담담하게 그린다.

초등학교 선생은 애인과 광에 가서 사랑을 하고

주인공의 엄마는 홀어머니인데 두 남자 사이에서 욕망을 충족시키느라 바쁘다.

그 애가 조용히 관찰만 했다면 '뭇 인간군상들이 펼치는 욕망의 파노라마'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지만

그는 아주 무서운 애였다.

시시때때로 세상 일에 관여해 그 물줄기를 돌려놓았다.

까졌다, 되바라졌다 등 일찍 철이 든 아이를 일컫는 어떤 말도 이 아이에게는 부족하다.

머리가 모자란다는 이유로 자기보다 나이든 여자아이를 괴롭히는 것도 이해 못하겠고

엄마 사랑을 빼앗긴다는 이유로 하나밖에 없는 자기 동생을 미워하는 거,

이건 이해는 할 수 있지만 실제로 일을 벌이는 건 너무 공포스럽지 않은가.

그래서 난 이 책을 '인간 군상들이 펼치는 욕망의 파노라마' 로 정리하는 대신

너무 일찍 세상을 알아버린 아이가 발랑 까지다 못해 악마로 자라는 이야기라고 요약하겠다.

홀어머니 애가 주인공인지라

아빠가 없으면 삐뚤어진다는 편견을 재생산하는 것 같아 아쉽고

아무리 나쁜 놈이지만 자신으로 인해 동생이 죽었는데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는 악마로 주인공을 묘사한 건 지나친 듯하다.

'어린날의 초상' 대신 '악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를 제목으로 썼다면 좋았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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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오리 2007-03-17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에 글 올리셨네요. 그 동안 바쁘셨나봐요~ 취직하셨어요? ^^ ㅋ

moonnight 2007-03-17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hift 랑 엔터 같이 누르면 한줄씩 내려간답니다. 저도 첨엔 그걸 몰랐었죠. 호호. ^^
 
사라진 마술사 1 링컨 라임 시리즈 9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9.11 테러가 성공-테러범 입장에서-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게 너무도 예고 없이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었다. 테러범들이 예행연습을 하기로 했다고 가정해 보자. 일단 폭탄을 실은 모형비행기를 가지고 초가집 한 채를 날린다. 그 사건 자체는 주목을 못 받겠지만, 수사관들은 모형비행기와 폭탄의 출처를 파악하려고 할 거다. 그 다음 그보다 큰 규모의 건물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난다. 이번엔 좀 더 큰 행글라이더가 수단이었다. 수사관들이 모여 회의를 한다. 동일범의 소행이라는 데 의견이 일치하고, 그들이 과연 노리는 게 뭔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해진다. 수사력이 뛰어나고 잘난 체하기를 좋아하는 한명이 말한다.
“세계무역센터라는 데 내 봉급의 반을 걸겠소.”
WTC 건물로 비행기를 몰던 테러범들은 깜짝 놀란다. 어느 새 다가온 F15기가 “비행기를 세우지 않으면 격추하겠다.”고 경고한다. 사람들이 모두 대피해 무역센터에는 아무도 없다. 결국 그들은 머리에 손을 얹은 후 비행기에서 나오는 신세가 된다.
9.11 이후 사전에 이런저런 정보가 입수됐었다는 게 사건 직후에 흘러나왔다. 굳이 다른 일을 하지 않더라도 수상한 자들이 모여 수상한 행동을 하는 건 다른 이의 주목을 끌게 마련이다. 그래서 난 <사라진 마술사>의 범인을 이해하지 못한다. 범인의 목적은 E였지만, 그는 미스디렉션-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하는 마술적 기술-을 한답시고 A와 B라는 사건을 저질러 명수사관 링컨 라임의 표적이 된다. 그것도 부족한지 사건과 전혀 무관한 C를 저지르다 검거될 뻔하는데, 그가 왜 굳이 링컨 라임같은 사람과 머리싸움을 자청했는지 알 길이 없다. 그 정도로 좋은 기술과 머리가 있는 사람이라면, 굳이 미스디렉션 같은 걸 안해도 목적 달성을 쉽게 할 수 있었을 거다. 그러니 이 책에서 벌어지는 링컨 라임과 범인과의 치열한 머리싸움은 순전 독자를 위한 것일 뿐, 범인 자신에게 하등 이득될 게 없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재미없는 건 결코 아니다. 이 책 덕분에 난 설 연휴를 손에 땀을 쥐는 긴박감을 느끼며 보낼 수 있었다. 명절을 잘 보내는 게 뭔지는 모르지만, 재미있게 보내는 것도 잘 지내는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책의 저자인 제프리 디버는 알고보니 내가 재미있게 봤던 <본 콜렉터>의 원작자이며, 그 책 말고도 여러 권의 링컨 라임 시리즈를 썼다고 한다. 당분간은 심심할 새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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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와 스탈린의 선택, 1941년 6월
존 루카치 지음, 이종인 옮김 / 책과함께 / 2006년 10월
평점 :
품절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은 2차 대전 이야기를 해주면서 스탈린을 비난했다.

"일본이 패망하기 일주일 전, 소련은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지."

어차피 소련이 없더라도 일본은 원자폭탄의 힘으로 이길 수 있었으니

소련이 그렇게 잔머리를 굴리지 않았다면 우리는 분단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게 선생님의 말씀이었다.

백수 입장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쑥스럽지만

한 일도 없이 이득만 취하는 건 정말 나쁜 짓이다

쉬는 시간에 난 친구와 소련의 여우짓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원래 미워했던 소련을 더 미워하게 되었다.

3년쯤 뒤 소련이 무너졌을 때 난 인과응보라고, 이제 세계는 안전해졌다고 좋아했다.

 

담임 선생이 한 말들 중 나이가 듦에 따라 거짓으로 판명되는 말이 한둘이 아닌데

소련이 한 일이 없다는 것 역시 그 중 하나였다.

<히틀러와 스탈린의 선택, 1941년 6월>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러시아가 없었더라면 영미 동맹은 히틀러의 독일을 정복하지 못했을 거라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영미 동맹과 러시아를 동시에 상대한 독일의 양면전쟁을 독일의 패망 이유로 드는데

독일에게 첫 패배를 안긴 러시아는 2차 대전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셈이 된다.

그게 하필이면 우리의 분단으로 연결된 건 슬픈 일이지만.

 

이 책은 2차대전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

히틀러와 스탈린이 불가침조약을 맺고 또 그것을 파기할 때까지 두 사람의 행적을 그려 보인다.

몰랐던 사실은 스탈린이 내 담임의 생각처럼 여우가 아니라

최소한 히틀러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곰이었다는 것이다.

히틀러가 독소 불가침조약을 파기하려고 러시아와의 국경에 군사를 증강시켰음에도

그리고 러시아 침공에 대한 수많은 첩보가 스탈린에게 날아들었음에도

스탈린은 히틀러를 존경했고 두려워했고 그를 믿었다.

독일의 침공을 알게 된 스탈린이 이틀 동안 방안에 틀여박혀 좌절만 했다는 대목은

그가 그리도 겁많은 인물이었는지 놀라움을 안겨준다.

스탈린이 히틀러를 두려워한만큼 히틀러가 스탈린과 러시아의 추위를 두려워했다면

나폴레옹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었다면

그래서 독소 불가침 조약이 전쟁 내내 지켜졌다면

유럽의 지도는 독일제국과 러시아제국으로 간단히 정리되었을지 모른다.

전쟁 당일까지 히틀러를 믿은 스탈린의 선택이 잘못된 건 당연하지만

러시아를 침공한 히틀러의 선택은 더 잘못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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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 2007-04-16 0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보니 책도 보고 싶어지네요.

블리츠크리그 2009-01-13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그 선생님이 잘못 가르치셨네요....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한건 포츠담에서 약속한 사항이였고 그걸 이행한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