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났을 때 어머니는 자리에 없으셨다.
계셨는데 내가 기억을 못할 수도 있지만,
아무튼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먼저 눈을 맞춘 사람은 어머니가 아닌, 유모였다.
그 후로도 난 어머니를 오래도록 보지 못했는데
어머니는 내가 눈을 뜨기 전 밖에 나가셔서 내가 잠든 이후에 집에 들어오셨다.
하루는 내가 낮잠을 하도 많이 자서 열시까지 깨 있던 적이 있는데
웬 아주머니가 들어오시더니 날 보고 웃는다.
하도 놀래서 "누구세요?"라고 물었더니 그 아주머니가 이러셨다.
"이것이! 지 엄마도 못알아보네!"
그렇게 해서 난 태어난 지 4년만에 어머니를 처음 봤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울 어머니는 정말 미스테리했다.
돌잔치 같은 큰 행사에도 유모를 내보내는 사람이 도대체 어디 있담?
좀 더 나이가 들고 나서 어머니가 엄청나게 바쁜 분이고,
그 바쁨에 걸맞은 돈을 벌어오신다는 걸 알게 됐다.
내 생일 때마다 베개 밑에 들어있는 돈봉투는 알고보니 어머니가 주신 거였다 (생일은 어떻게 기억하셨는지 몰라...)
아무리 생일이지만 다섯살배기 어린애한테 100만원은 좀 크지 않았나 싶지만 말이다.
아무튼 난 유모가 우리 엄마가 아닌 게 슬펐는데
그건 유모가 참 예쁘게 생겼기 때문이었다.
거울을 봐도 못생기기 짝이 없는 나도 나이가 들면 저절로 유모처럼 변할 줄 알았는데
나랑 똑 닮은 엄마가 계시다는 걸 알았으니 얼마나 슬프겠는가?
아빠한테 이런 말을 했더니 아빠는 빙긋이 웃으며 머리를 쥐어박으셨다.
"야, 걱정하지 마. 돈만 있으면 예쁜 여자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어."
그래서 아빠한테 물었다.
"아빠는 그럼 날 낳기 전에 아주 가난했었나 봐?"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 해 생일날 어머니는 내 베개 밑에 10만원을 넣어 뒀다.
난 처음에 농담이겠지 싶어서 필사적으로 봉투 속은 물론이고
침대 시트 밑에까지 샅샅이 훑었지만
그게 다였다.
그해 겨울-내 생일은 1월달이다-은 이상고온이라고 다들 난리였지만
난 삶에서 가장 추운 겨울을 보냈다.
그 후부터 난 엄마의 외모에 대해서는 일체 발언하지 않았다.
엄마는 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걸까?
어느날 우연히 만난 엄마한테 그걸 물어봤더니
엄마는 빙긋이 웃으며 "크면 알게 된다"고 하셨는데
서른을 훌쩍 넘긴 지금도 엄마가 하는 일을 난 알지 못한다.
대체 얼마나 더 커야 알 수 있는지, 어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