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히틀러와 스탈린의 선택, 1941년 6월
존 루카치 지음, 이종인 옮김 / 책과함께 / 2006년 10월
평점 :
품절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은 2차 대전 이야기를 해주면서 스탈린을 비난했다.
"일본이 패망하기 일주일 전, 소련은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지."
어차피 소련이 없더라도 일본은 원자폭탄의 힘으로 이길 수 있었으니
소련이 그렇게 잔머리를 굴리지 않았다면 우리는 분단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게 선생님의 말씀이었다.
백수 입장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쑥스럽지만
한 일도 없이 이득만 취하는 건 정말 나쁜 짓이다
쉬는 시간에 난 친구와 소련의 여우짓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원래 미워했던 소련을 더 미워하게 되었다.
3년쯤 뒤 소련이 무너졌을 때 난 인과응보라고, 이제 세계는 안전해졌다고 좋아했다.
담임 선생이 한 말들 중 나이가 듦에 따라 거짓으로 판명되는 말이 한둘이 아닌데
소련이 한 일이 없다는 것 역시 그 중 하나였다.
<히틀러와 스탈린의 선택, 1941년 6월>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러시아가 없었더라면 영미 동맹은 히틀러의 독일을 정복하지 못했을 거라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영미 동맹과 러시아를 동시에 상대한 독일의 양면전쟁을 독일의 패망 이유로 드는데
독일에게 첫 패배를 안긴 러시아는 2차 대전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셈이 된다.
그게 하필이면 우리의 분단으로 연결된 건 슬픈 일이지만.
이 책은 2차대전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
히틀러와 스탈린이 불가침조약을 맺고 또 그것을 파기할 때까지 두 사람의 행적을 그려 보인다.
몰랐던 사실은 스탈린이 내 담임의 생각처럼 여우가 아니라
최소한 히틀러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곰이었다는 것이다.
히틀러가 독소 불가침조약을 파기하려고 러시아와의 국경에 군사를 증강시켰음에도
그리고 러시아 침공에 대한 수많은 첩보가 스탈린에게 날아들었음에도
스탈린은 히틀러를 존경했고 두려워했고 그를 믿었다.
독일의 침공을 알게 된 스탈린이 이틀 동안 방안에 틀여박혀 좌절만 했다는 대목은
그가 그리도 겁많은 인물이었는지 놀라움을 안겨준다.
스탈린이 히틀러를 두려워한만큼 히틀러가 스탈린과 러시아의 추위를 두려워했다면
나폴레옹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었다면
그래서 독소 불가침 조약이 전쟁 내내 지켜졌다면
유럽의 지도는 독일제국과 러시아제국으로 간단히 정리되었을지 모른다.
전쟁 당일까지 히틀러를 믿은 스탈린의 선택이 잘못된 건 당연하지만
러시아를 침공한 히틀러의 선택은 더 잘못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