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히 잠드는 건 하루를 치열하게 사는 사람의 특권이다,라고 말했던 까닭은
내가 잠을 깊게 못들기 때문이었다.
백수라는 특성상 하루를 소일하면 소일했지, 치열하게 살 리가 없으니까.
오늘 새벽 두시 반, 갑자기 잠에서 깬 이유도
세시간 정도 잤으면 충분하다는 내 몸의 신호이리라.
찬물을 세컵 정도 마시고 뭘 할까 고민하다
새벽 산책을 나가기로 했다.
백수라는 게 티가 나도록 대충 옷을 챙겨입고 새벽 거리를 걸었다.
새벽임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북적댄다.
그러고보니 오늘은 금요일의 연장,
"토요일보다 금요일이 더 손님이 많아요"라고 말하던
단골 술집 주인의 말이 떠올려진다.
주5일제가 전면적으로 시행되는 게 아님에도
금요일이 성황을 이루는 건,
술을 마시는 계층이 직장인보다는
일에서 자유로운 20대여서가 아닐까 잠시 생각해 봤다.
평소 자주 지나가던 길임에도
새벽 공기를 마시며 걸으니 길 구석구석이 새롭게 느껴진다.
해산물을 파는 술집은 여전히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다.
회를 비롯해 해삼, 멍게, 개불 등을 파는 그집은
보도블록에 테이블을 갖다놓고 영업을 해 별로 마음에 안들지만
그런 데서 마시는 게 색다른지 식당 안쪽보다 더 먼저 사람이 들어찬다.
딱 한번 가봤지만 별로 강한 인상을 받지 못했는데,
장사가 아주 잘되어 그 옆의 건물까지 사서 확장을 했다.
백수심의 발로겠지만, "저 술집을 내가 했다면 좋겠다"고 혼자 중얼거렸다.
치마가 짧은 여자분들도 제법 눈에 띈다.
내가 보수적이라 그런지 "저러고 다니면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을 하지만
그런 분들 때문에 새벽 산책이 더욱 즐겁긴 하다.
아름다움을 드러내고픈 욕망, 박정희는 왜 그런 자연스런 욕구를 억제하려 했을까.
자신은 궁정동에서 얼마든지 즐길 수 있어서?
이유가 뭐든간에 그거 하나만으로도 군사독재는 충분히 나쁘다.
반팔을 입고 다니는데도 전혀 춥지 않다.
오히려 새벽 바람이 시원하기만 하다.
사람들 중엔 "벌써 여름이 왔다"고 하는 사람이 있지만
새벽이라도 시원한 걸 보면 아직 여름은 오지 않았다.
이제 진짜 여름이 닥치고
그때 되면 하루 24시간 중 더위를 식히며 숨을 고를 곳은 없으리라.
30분간의 산책이 끝난 게 뿌듯해서
라면을 끓인다.
오뚜기진라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