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난 점심으로 오뚜기진라면을 먹자고 결심했다.
내 닉네임으로 쓸 정도로 좋아하는 음식인데 결심 운운하는 게 생뚱맞지만
사실 난 이름에 걸맞지 않게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진라면을 먹지 않았었다.
냄비에 물을 얹고 가스불을 켠 다음 찬장을 열어 라면을 찾았다.
없다.
진라면이 한개도 없다.
가게가 그리 멀지 않지만, 물 끓이다 말고 라면 사러 가는 건 얼마나 귀찮은가.
필사적으로 라면을 찾았다.
여전히 없다.
도대체 내 라면을 누가 다 먹어치운 걸까.
딱 한개 남은 라면은 누가 사다놓았는지 모르겠는 너구리였다.
'이거라도 먹어야지' 하면서 난 냄비에 너구리를 넣었다.
한젓갈 떴을 때 난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걸 느꼈다.
놀란 나머지 남은 면도 후루룩 먹어치웠고
그 얼큰한 국물에다 밥도 한그릇 말아먹었다.
그렇게 하진 않았지만, 남은 국물 한방울이 아쉬워 냄비를 핥고 싶을 정도였다.
너무 오랫동안 너구리를 외면하고 살았다.
한 7년? 십년?
그 너구리가 너무 강렬했기에
가게에 가서 진라면 몇개와 너구리 3개를 샀고
그 중 한개를 어제 점심 때 끓여먹었다.
실로 대단한 맛이었다.
그 전날 마신 술로 인한 숙취는 눈녹듯 사라지고
내게 남은 건 포만감과 뿌듯함, 그리고 상쾌함이었다.
젓가락을 놓고 반성했다.
내가 너무 편협했다는 걸.
진라면은 분명 맛있지만 이 세상에는 맛있는 라면이 또 있고
오랜 세월 동안 외면하고 지낸 것 중에도 보석은 있다.
앞으로도 난 진라면을 많이 먹겠지만
틈틈이 너구리를 먹을 것이며
그밖에 또 맛있는 게 없는지 부단한 시도를 해볼 생각이다.
여러분도 간만에 너구리 한마리 몰고 가시는 게 어떤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