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eBook] 하룻밤에 읽는 미국사 (개정증보판) -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에서 트럼프 행정부까지, 개정증보판 ㅣ 하룻밤 시리즈
손세호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2월
평점 :
어쩐지 서재를 악평으로만 가득 채우는 것 같다. 좋은 책의 좋음은 말을 고르고 고르다 오래 마음 속에 간직해두기 때문이고 좋지 않았던 책의 ‘싫은’ 점들은 빨리 쏟아내고 지워버리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 정말 웃긴다. Gay Rights Movement를 “동성애자 운동”이라고 번역해 놨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거칠게 직역해도 “동성애자 인권 운동”이라고 옮기는 것이 가능한데 이 정도 인권 개념도 머릿속에 없는 건지 알고 있으면서도 다분히 비하적인 의미를 담은 건지 미국사 전공자도 아닌 ‘특정 종교’를 공부한 사람이 제시한 관점이니 ‘알만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것 뿐이면 이렇게 시간을 들여 리뷰를 작성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흑인 민권 운동이나 여성의 참정권 운동을 “선동”, “흑인 폭동” 등으로 표현하거나 여성 인권 운동가들을 단순히 “여성주의자들”이라고 호명한다 (책에는 표시를 해 두었는데 너무 많아 각 페이지를 일일이 인용할 수 없었다). 뉴딜 등의 진보적인 정책에 대해서도 ‘비판적’/‘객관적’/‘중립적’ 관점을 견지하는 듯하나 유독 부정적인 코멘트를 잔뜩 달아 놓았다.
이런 부분이 책 전반에 걸쳐 정말 많았지만, 그중 하이라이트는 336페이지의 설명이다. 저자는 이 장을 포함한 거의 모든 지면에서 흑인이 주체가 된 인권 운동을 내내 “폭동”이라고 호명한 바 있다. 그러나 남부의 인종차별주의자 백인들이 <흑인 인권 운동>에 반대해(!!!!) 벌인 폭동은 “무법과 폭력”이라고 아주 점잖게 표현한다. (나도 이렇게까지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들이 긴 세월 노예제도를 통해 얼마나 많은 이들의 삶을 망가뜨리고 자신의 주머니를 불려왔는지, 그럼에도 이 인종주의적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 또한 얼마나 많은 이들의 인권을 현재 진행형으로 유린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면 이런 식으로는 표현하지 못할 것이다.)
언어는 권력을 가진 주체의 프레이밍에 의해 말해진다. 고 하워드 진 선생도 말했듯, 특히 역사의 서술에 있어서 객관성이나 중립성은 사실상 도달 불가능한 영역이기도 하다. 애초에 ‘객관’과 ‘중립’은 의미가 없다. ‘객관성’이라는 것 자체도 하나의 당파성이고, ‘중립’을 취한다는 것 또한 정치적 입장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역사가가 취해야 할 정치적 관점이란 어때야 하는가. 저자는 하워드 진이 쓴 <미국 민중사>를 꼭 읽어보길 바란다.
빠르게 미국 통사를 복습해야 할 일이 생겨 가벼운 마음으로 한국어 화자에 의해 한국어로 쓰인 책을 선택한 것인데, 객관성을 담지하는 척 편견과 차별의 시선을 그대로 담아낸 점이 매우 아쉽고 그래서 후회되는 독서였다.
동성애자 운동(gay rights movement) - P358
"...남부 백인들의 반대는 종종 무법과 폭력의 양상을 띠었다." - P3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