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의 무게

 

감독 : 오기가미 나오코, 출연 : 이치카와 미카코, 쿠사무라 레이코, 미츠이시 켄


 

영화를 보는 동안에도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에도 귓가에 맴도는 소리는 렌따루 네꼬이다. 지금도 나는 몇 번씩 그 말을 주문처럼 말하곤 한다. 나는 나에게 고양이를 빌려주고 싶다. 산 아래 오두막에 이사한 첫해, 마당을 맴돌던 고양이에게 사료를 주고 정들었다가 그 애가 무지개 다리를 건너가고 다른 고양이에게 정을 주지 못했다. 그런데 어디선가 끊임없이 고양이가 나타나서 나를 건드렸다. 어떤 때는 가족 단위로 나타나기도 했다. 겁 없는 새끼들은 내 다리를 타고 오르기도 해서 몇 대에 걸쳐 사료를 드리며 모시기도 했다. 그렇게 고양이가 많은데, 또 자신에게 고양이를 빌려주고 싶다고?

 

손수레에 고양이를 싣고 다니며 고양이를 빌려주는 사요코(이치카와 미카코)는 고양이가 아니라 남자를 만나고 싶다. 그녀는 결혼하고 싶은데 도무지 남자들이 관심을 주지 않는다. 그녀를 좋아하는 것은 온통 고양이, 고양이 뿐이다. 심지어 그 고양이들은 특별한 재주(?)가 있어서 그녀를 부양하기도 한다. 혼자 사는 할머니를 위로해주고 상처 받은 사람들의 허전한 마음 구멍을 메워주는 고양이는 진정 치유인가? ‘올해는 기필코 결혼하고 말 거야!’ 라고 결심하며 인물 같은 것은 보지 않겠어.’ 라고 말하는 사요코에게 과연 기다리던 남자가 나타날까?

 

언제부터 인가 우리 마을에 고양이가 나타나지 않는다. 아주 드물게 옆 동네 고양이가 지나가기도 하지만 머무르는 고양이가 거의 없다. 누군가 고양이를 매우 미워하거나 괴롭히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너무 아픈 이야기라서 말하고 싶지 않지만, 아직도 시골에서는 고양이를 관절염에 좋은 약재로 보기도 한다는 슬픈 전설이 있다.

 

내 첫 고양이 미뇽(프랑스어로 귀염둥이)’이는 고양이로 매우 무능한 아이였다. 거의 다 자란 성묘인데도 어미가 내치지 못할 만큼 홀로서기를 못했다. 쥐나 두더쥐를 사냥하지 못했고 커다란 덩치로 작은 풀벌레를 따라 다녔다. 심지어 그 풀벌레도 놓치기 일쑤여서 사료를 주지 않으면 굶어 죽게 생겼다. 내가 사료를 주기 시작하자 비로소 어미가 떠났다. 미뇽이는 살아있는 것에 정을 주지 않으려는 나를 무장해제 시켰다. 녀석은 겁도 없이 나에게 비벼댔고 나는 투덜거리며 녀석을 사랑했다. 그동안 나의 외로움은 가벼워졌다.

 

사람에게 경계가 무너진 것이 녀석이 무지개 다리를 건넌 이유이다. 말하자면 나의 사랑이 문제였다. 녀석은 고양이가 가져야 할 예민함과 민첩성이 없는 모자란 고양이여서 누군가의 공격을 피하지 못했다. 한참 동안 보이지 않던 녀석이 마당에 쌓인 눈 위로 피를 흘리며 걸어왔다. 비틀거리는 녀석을 붙잡아 상처를 소독하고 욕실에 매트를 깔았다. 한 번도 인간의 집에 들어온 적 없는 고양이는 그 와중에도 도망갈 곳을 찾느라 정신이 없었다. 안아주고 계속 머리를 만져주면 겨우 잠이 들어 욕실에서 같이 잤다. 출근하면서 오두막 근처 창고에 누울 자리를 만들어 옮겼는데, 아픈 몸으로 창고 입구까지 나와 앉아 나를 배웅해주던 녀석이 생각난다. 며칠 후, 녀석은 내 손바닥에서 생선살 몇 개를 받아먹고 물을 몇 모금 마시고 눈을 감았다.

 

인간의 이기심을 생각한다. 고양이를 약재라고 생각하는 그 사람을 생각한다. 나의 이기심을 생각한다. 나는 미뇽이가 내 고양이라고 생각했다. 책임지지도 못하면서 내 방식으로만 사랑했다. 나는 그에게 때론 매우 엄격했다. ‘너는 왜 두더지도 못 잡아 오느냐고 버럭 화를 내기도 했다. 그러면 녀석은 나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조심조심 다가와서 내 다리에 몸을 비벼댔다. 그렇게 나는 녀석이 홀로서기 하지 못하게 방해했다. 내가 사료를 주거나 생선살을 발라 주지 않았으면 녀석은 악악거리며 잘 살았을지도 모른다.

 

내 고양이를 만나고 싶다. 많이 모자라고 무능한 나의 고양이를 다시 빌려주면 좋겠다. 이번에는 어쩌면 그를 방해하지 않고 욕심부리지도 않고 건강하게 잘 사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렌따루 네꼬, 네꼬, 네꼬나의 고양이는 어디에 있을까? 우리 동네에는 고양이가 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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