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아픈 사랑의 방법

 

감독 : 미카엘 하네케, 출연 : 장루이 트랭티냥, 에마뉘엘 리바, 이자벨 위페르

 

 

사랑에 대해 생각한다.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한다. 서로 사랑하는 부부가 있다. 아내(에마누엘 리바 분)는 피아니스트였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은퇴했다. 그녀가 지도한 제자가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되어서 스승을 초대하고 그 연주회에서 아내는 기뻐하고 제자를 자랑스러워한다. 제자도 자신을 지도했던 스승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존경한다고 말한다.

 

상대를 존중하고 아끼는 부부는 잘 가꾼 장미정원 같다. 정돈된 향기가 주변에 머물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래 살아 익숙한 집에서 서로 도우며 생활한다. 그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에서는 잔잔한 행복이 느껴진다. 남편(장루이 트랭티냥 분)은 아내가 오래전에 연주한 피아노 소리를 회상한다. 이제 아내는 피아노를 연주하지 않는다. 그 사실이 남편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아내가 갑자기 쓰러진다. 몸을 가누지 못하고 기억을 잃어가고 난폭해진다. 남편은 당혹스럽다. 아름다운 아내의 변화를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간병인들이 아내를 함부로 대하는 것을 알게 된 남편은 혼자서 아내를 돌보기로 한다. 그도 늙었다. 자신도 돌보아야 한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먹여주고 씻어주고 재워야 하는 아내가 힘에 부친다. 그래도 남편은 주변에 도움을 구하지 않는다. 남편은 미련하리만치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다. 아프고 초라해진 아내를 사람들이 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한다. 죽음의 의미에 대해 생각한다. 잘 죽는 법에 대해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결정한다. 자신의 힘으로 아내를 가장 귀하게 사랑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그 방법이 옳았는지 옳지 않았는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나는 그가 아내에게 선물한 꽃잎의 가치를 생각한다. 흩어진 꽃잎의 마음을 생각한다. 꽃은 들판을 기억할 것이다. 이슬에 젖어 찬란하게 피어있던 시절을 기억할 것이다.

 

그들이 떠난 빈집에 홀로 앉아 있는 딸(이자벨 위페르 분)의 마음을 생각한다. 딸은 아픈 어머니가 요양원에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자신이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고 자책할까? 남겨진 자들은 슬플까? 괴로울까? 화가 날까? 아프지 않은 이별은 없는 걸까? 내가 감당하기 힘든 돌봄을 나에게 강요하는 것은 어떤 무게일까? 왜 돌봄 요구는 때로 슬프도록 폭력적일까?

 

나를 돌보며 생각한다. 내가 먹을 음식을 내가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나 남았을까? 나는 언제까지 내 머리를 감겨줄 수 있을까? 나는 몇 살까지 가고 싶은 곳에 내 힘으로 걸어갈 수 있을까? 운전하지 못하면 오두막을 떠나야 하는 걸까? 너무 이른 걱정인가? 아니, 너무 늦은 걱정인가? 나는 내게 소원이 있다면 완전 자율주행차가 빨리 나오는 것과 대화할 수 있는 돌봄 로봇이 발명되고 너무 비싸지 않은 금액으로 살 수 있으면 좋겠어.’라고 친구들에게 말하곤 한다. 참 쓸쓸한 기대를 하고 있구나.

 

내가 사람에게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 기대하고 싶은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반어법이기도 하다. 사람으로 태어나 완전히 사람으로부터 분리된 생활을 하기는 사실상 힘들다. 오래된 상처가 남긴 기억이 나를 세상으로부터 멀어지게 했지만 내가 사는 곳은 무인도가 아니다. 사람의 마을에 노을이 지는 것을 바라볼 때 내 마음은 평안하다. 말하자면 내 삶에 간섭하지 않는 사람의 무리가 가까이 있다는 것에 조금은 안심하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