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리와 결혼한 사람들
감독 : 트란 안 훙, 출연 : 줄리엣 비노쉬, 브느와 마지멜
네, 음식 영화입니다. 보다 보면 입안에 침이 가득 고이지요. 오죽하면 개봉관에서 주의사항으로 공복에 보면 괴로울 영화라고 홍보를 했답니다. 나이 든 줄리엣 비노쉬는 여전히 매력적입니다. 조리기구를 다루거나 요리에 몰두한 그녀는 정말 아름답네요. 요리 부심이 심각한 프랑스 영화답게 다양한 식재료와 조리법이 펼쳐집니다. 완성된 요리 만이 아니라 조리 과정이 그냥 예술입니다.
요리계의 나폴레옹이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늘 혁신적인 요리를 연구하는 요리사 도댕(브느와 마지멜 분) 옆에는 그의 요리를 존중하고 충실하게 보조해 주는 외제니(줄리엣 비노쉬 분)가 있습니다. 그들은 20년이 넘도록 같이 요리를 하며 요리사와 보조자를 넘어선 친밀 관계(거의 연인)를 이루고 있지요. 도댕은 외제니에게 청혼을 하지만, 외제니는 ‘지금 충분히 행복하다.’는 말로 그의 청혼에 대한 답을 미루곤 합니다. 도댕이 연구한 요리를 만드는 외제니의 주방과 조리도구들은 ‘먹는 것에 진심인’ 내 마음을 심하게 자극합니다. 화덕과 팬과 거대한 냄비들, 정말 탐나네요.
나는 영화 속으로 걸어 들어가 외제니가 만든 음식들을 하나하나 맛보고 싶습니다. 도댕과 함께 코스 요리를 먹고 있는 친구들이 진심 부럽네요. 그리고 요리와 함께 등장하는 이름도 종류도 다양한 와인들. 도대체 그들은 천상에서 사는 건가요? 그들이 유라시아 왕자의 초대를 받고 8시간 동안 3코스가 넘는 요리를 먹고도 유일하게 칭찬한 것은 와인이라는 건, ‘과한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생각을 하게 하네요. 도댕의 친구가 요리한 멧새구이를 먹는 그들의 방식은 코믹하지만 도전하고 싶게 만드네요. 뒷산에서 자주 만나는 까투리 한 마리 모셔 와야 할까요?
외제니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도댕은 자신의 삶에 위기를 느낍니다. 그래서 그녀만을 위한 수프를 끓이고 요리를 합니다. 코스로 제공되는 요리의 하이라이트는 절인 서양배에 곁들인 청혼 반지였지요. 침대에 누워 있는 전라의 외제니는, 뒷모습만으로 왠지 쓸쓸한 느낌을 줍니다. 주위 사람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도댕은, ‘우리는 인생의 가을에 있지만, 가을은 멋진 계절이다. 나는 가을에 외제니와 결혼할 거다.’라고 말합니다. 외제니는 그에게 ‘당신의 계절은 가을일지 모르지만, 나는 여름이다. 나는 죽을 때도 여름일 거다.’라고 응답합니다.
외제니가 없는 도댕의 주방은 슬픕니다. 조리기구들은 빛을 잃고 도댕은 식욕을 잃었습니다. 친구들은 새로운 요리사를 찾으라고 조언하고 (외제니가 요리를 가르치고 싶어한) 어린 폴린과 함께 새 요리사 후보들의 요리를 시식하는 도댕이 보입니다. 음식은 식재료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줍니다. 도댕과 외제니의 주방은 추억이 함께 조리되는 공간입니다. 어린 폴린이 있어 미래가 만들어지는 공간이기도 하구요. ‘나는 당신의 요리사인가요? 아니면 당신의 아내인가요?’ 외제니의 질문에 도댕은 어떤 대답을 했을까요?
한때 사실혼 관계였던 줄리엣 비노쉬와 브느와 마지멜은, 이 영화를 찍기 위해 헤어진 후로 20년 만에 만났다는군요. 젊은 시절 그들은 같이 요리를 했을까요? 외제니와 도댕으로 만나 다양한 요리를 같이한 그들의 케미를 칭찬합니다. 영화의 후유증이 심각합니다. 이름도 기억하기 힘든 프랑스 요리들에 홀려 있다가 점심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이 글을 쓰고 있네요. 이제 된장배춧국에 밥 말아 먹고 정신을 차려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