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은 어디에 있는 걸까?
감독 : 클로이 자오, 출연 : 프란시스 맥도맨드, 데이빗 스트라탄, 린다 메이
한때 나는 내가 민달팽이라고 생각했다. 오갈 데가 없었기 때문이다. 죽을 힘을 다해 살던 어느 날, 등뼈가 단단해지더니 작은 집이 생겨났다. 덜 춥고 덜 더웠지만 집을 지고 다니다 보니 늘 고단했다. 주택담보대출이라는 무게가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너무 힘들어 집을 던져 버리고 개조한 픽업트럭을 사서 전국을 돌아다니는 꿈을 꾸다 깨기도 했다. 그때 꾸었던 꿈이 얼마나 철없는 생각이었는지 영화를 보며 반성하고 또 반성했다. 이고 지고 다니던 집을 조그맣게 만들어 산비탈 밭에 내려놓고 사는 것이 어쩌면 사치일 수도 있겠구나.
영화가 시작하면 미국의 경제공황으로 공장지대로 이루어진 한 마을이 사라지고 아예 우편번호와 주소가 없어졌다는 설명이 나온다. 그 마을의 이름은 엠파이어. 거대기업을 따라 형성된 마을은 기업이 망하면서 폐허가 되었다. ‘US석고’라는 회사의 공원인 남편과 인사과 직원이던 펀은 직장을 잃고 심지어 남편은 병으로 사망한다. 사람들이 떠나고 비어 있는 마을을 끝내 떠나지 못하다가 결국 노매드가 되는 주인공 펀, 낡은 밴에 최소한의 살림만 싣고 남은 짐은 창고에 맡기고 떠난다. 그리고 여기저기 방랑하며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한다. 아마존 물류창고에서 일하거나 캠핑장지기,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는 모습이 보여진다.
한때 시간제 교사를 하다 만난 아이가 펀에게 ‘집이 없다면서요?’ 라고 묻자, HOUSE는 없지만, HOME은 있다고 말하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그녀가 아이에게 ‘내가 알려준 시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니?’ 하고 묻자, ‘네’ 라고 대답하며 아이가 말하는 것은 멕베스의 대사이다. 그리고 우연히 만난 젊은 노매드에게 펀이 ‘자신의 결혼식에서 읽은 시’라며 들려주는 것은 세익스피어의 소네트이다. 시를 사랑하고 시를 노래하며 어쩌면 삶을 사랑하는 방법을 들려주는 것 같은 펀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따듯하다. 그녀는 말랑말랑한 마음을 안고 노매드의 삶을 살고 있구나.
집이란 무엇인가? 나는 왜 굳이 산기슭에 작은 오두막을 내려놓았나?
노매드에서 만난 데이브는 아들의 부탁으로 아들부부와 함께 살게 된다. 나름 그와 친밀하게 지내던 펀은 그의 초대를 받고 먼길을 찾아간다. 추수감사절을 함께 보낸 펀에게 데이브는 이곳에서 같이 살자고 말한다. 하지만 넓은 손님방 침대에서 잠들지 못하고 낡은 차의 좁은 잠자리에 누워야 잠을 자는 펀, 차의 수리비 때문에 오랫동안 만나지 않은 언니에게 돈을 빌리면서도 그녀는 노매드를 포기하지 못한다. '뱅가드' 라고 이름을 붙인 밴을 타고 달리다가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서 차를 멈추고 바다를 향해 달려가는 그녀, 다시 집이란 무엇이며 나는 어디에서 살고 싶은가? 라는 의문이 오래오래 남는 영화이다.
여담으로 낡은 밴 안에 있는 펀의 물건들은 펀을 연기한 프란시스 맥도맨드가 아끼는 물건들로 하나하나 채워서 만들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주신 접시에 대한 사연도 실화라고 한다. 밴의 작은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 여기저기 서랍을 만들고 작은 찬장에 아끼는 도자기 컵들을 수납한 모습을 보며 집의 크기는 행복의 크기와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작은 오두막도 혼자 살기에는 너무 큰 공간이 아닐까?
영화의 원작은 제시카 브루더의 동명의 책인데, 프란시스 맥도맨드가 관심을 두고 영화로 만들고 싶어 하다가 클로이 자오 감독을 만나 영화화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실제 노매드인 린다 메이를 주인공으로 하려다가 클로이 감독이 프란시스에게 주인공 역할을 권했다고 한다. 그렇게 프란시스 맥도맨드는 연기를 한다기보다 펀의 삶을 그대로 살아간다. 함께 출연한 노매드들도 그녀가 영화배우인 줄 몰랐다고 한다. 촬영 중에 만난 어떤 자영업자는 그녀에게 자신의 매장에서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겠냐고 권하기도 하고 영화 속 서사(남편이 죽은 이야기)를 실화로 알고 촬영이 끝나고 그녀를 위로해 준 한 노매드는 그녀가 영화배우이며 그녀의 남편이 유명한 영화감독이라는 얘기를 듣고 정말 놀랐다고 한다. 클로이 감독의 연출은 아무런 간섭없이 카메라가 한 여자의 삶을 천천히 따라가는 것 같아서 보는 시선에 따라 다큐처럼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