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욕망의 이중주


감독 : 토드 필드, 출연 : 케이트 블란쳇, 노에미 메를랑, 니나 호스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는 언제나 옳다. 물론 나에게만 그렇다. 키가 작은 나는 그녀의 미루나무처럼 기다란 키와 오만하게 솟아오른 광대뼈를 좋아한다. 짝사랑학을 오래 이수한 학생답게 나는 그녀에게 반해있다. 그래서 그녀의 연기에 공간이 있어도 그 비어있음까지 사랑한다. 물론 리디아 타르를 연기한 그녀에게 공간이 있었다는 뜻은 아니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모습, 음악전공 학생들에게 강의하며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독일어로 연주곡에 대한 생각을 설명하는 모습 등은 그녀가 얼마나 캐릭터를 연구하고 노력했는지를 보여 준다.

 

주인공 타르(케이트 블란쳇 분)는 최초로 비엔나오케스트라의 여성지휘자가 된 입지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오케스트라의 지휘봉을 가진 그녀는 음악을 지휘하는 것처럼 자신의 삶과 주변 인물들도 지휘(?)하려는 욕망이 있다. 모든 것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 그녀에게 위기가 찾아온 것은 그녀가 권력으로 취한 달콤한 과거 때문이다.

 

그녀는 당당하게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밝히고 오케스트라의 첼로연주자인 샤론과 결혼해서 입양한 딸 페트라를 기르고 있다. 그 가정을 만드는 동안의 노력이 나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그녀의 끝없는 욕망은 음악의 완성만이 아니라 새로운 사랑을 탐닉한다. 새롭고 자극적인 사랑은 마약과 닮았다. 다만 중독자인 타르, 그녀만이 그 중독의 위험과 후유증을 모를 뿐이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하는 실수는 오랜 시간 묵인되거나 방치되다가 한순간 터져 버린다. 그 결과는 실수한 자신뿐만이 아니라 그를 사랑하거나 추종한 사람들에게도 상처를 남긴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는 어느 한쪽이 노력한다고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이미 가진 것에 대한 감사함을 모르는 관계는 위험하다. 그렇다. 나의 사랑은 내 존재를 감사하지 않았다. 습관이 되어 버린 행위와 일상은 슬프다. 슬픔은 나를 그가 없는 세상으로 달려가도록 만들었다. 눈물이 나를 떠밀어 버렸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떠내려가다가 마침내 산기슭에 도착한 건가?

 

타르가 가진 권력으로 소유한 혹은 소유했다고 믿은 것들이 균열을 일으키고 그녀는 침몰한다. 권력을 가졌을 때, 그녀가 욕망하던 것들은 독성을 가졌으며 그녀를 병들게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아프다는 것을 인식하지도 인정하지도 않는다. 그리하여 자신의 것이라고 믿은 권한을 빼앗겼을 때 자신과 주변을 파괴하고야 만다. 게다가 스스로 파괴한 삶을 억울해하고 다시 행복했던 시절을 찾으려고 하는 그녀가 무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힘을 가진 사람이 겸손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일까? 아니면 겸손한 사람은 힘을 가질 필요가 없는 걸까? 내가 가진 힘으로 다른 사람의 삶에 간섭하는 것이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왜 모르는 걸까? 놀라운 재능을 가지고 누구나 부러워하는 자리에 오르고도 만족하지 못하고 위험한 자극을 가지고 싶은 욕망은 왜 생기는 걸까?

 

영화를 보며 불편했던 부분은 그렇게 파괴된 그녀가 아시아의 어느 작은 도시에서 다시 지휘봉을 잡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음악적으로 한없이 낮은 자리로 내려가 다시 시작하려는 그녀를 보여 주는 걸까? 그녀는 정말 초심으로 돌아간 걸까? 아니면 다시 욕망하기 시작한 걸까? 여성이든, 남성이든, 권력의 힘을 믿고 그가 저지른 행위에 대해 책임지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 줄 수는 없는 걸까? 그런데 왜 하필 아시아인가? 그리고 왜 하필 아이들인가? 그녀의 욕망은 순화된 걸까? 그녀는 용서받을 수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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