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만 안다

 

 

나는 단골손님이다. 분식집, 미용실, 마트, 한 군데를 정하면 그 가게가 사라지기 전에는 다른 곳을 못 간다. 자주 가는 김밥집 근처에 새로운 김밥집이 생기고 주변의 평가가 좋아 손님이 몰리는 데, 나는 기존의 김밥집만 간다. 혹여 오래된 김밥집 사장님이 서운하실까 싶어 그런다. 그런데 사실 그 사장님은 내 얼굴을 모를 수도 있다. 나 혼자 그분의 서운함을 미리 염려하는 것이다.

 

사람도 그렇다. 한 사람을 마음에 두면 그 사람이 배신(?)하기 전에는 떠나지 못한다. 미련하다고 비웃어도 어쩔 수 없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다. 가끔 좋은 일도 있다. 오래 다닌 칼국수 가게 사장님이 내 자리에 가만히 서비스 만두를 놓고 가기도 한다. 곰탕집 사장님은 다른 손님보다 많은 고기를 넣어 주신다. 시골로 이사하고 만난 읍내 분식집 여사장님은 만날 때마다 손을 잡아 준다. 내 신조가 음식은 남기면 안 된다.’라서 내가 먹은 그릇은 양념이 묻은 흔적만 남는다. 항상 맛있게 먹어 주니 고맙다고 하신다. 모든 경우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묵묵히 하나만 아는 미련함이 힘을 받을 때가 있다.

 

사실 내가 맛없게 먹는 음식은 별로 없다. 나름 신중하게 가게를 선택하기도 하지만, 남이 해준 음식은 거의 맛있다. 내 수고가 들어가지 않은 음식은 언제나 감사하다. 모처럼 숯불갈비집에 갔는데 차려진 모든 반찬을 남김없이 먹고 일어서자 사장님이 감탄하셨다. 그 가게에서는 한번 만에 눈도장을 찍을 수 있었다. 아주 가끔 방문해도 기억하시고 내가 좋아하는 양파절임을 듬뿍 담아 주신다.

 

하나만 아는 것은 부작용이 심하기도 하다. 특히 사람에게 마음을 몰아줄 때 그런 것 같다. 한 사람에게 몰두하면 주변을 돌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래전, 친구들에게 연락하지 않는 날이 길어지자 너 또 올인하고 있지?’하고 친구가 전화로 닦달하곤 했다. 아니라고 거짓말도 할 수 없었다. 사랑과 재채기는 감추지 못한다고 하더라.

 

회사에 다닐 때 직원들이 내 핸드폰 사용기한을 듣고 놀라곤 했다. 평균 6~7년 사용했다. 다른 사람들은 일 년마다 새 모델을 들고 와 서로 자랑하던 시절이었다. 지금 44개월째 사용하는 핸드폰도 고장만 나지 않는다면 10년을 채워볼까 생각한다.

 

가게, 사람, 사물만 하나를 선택하여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 영화감독, 음악인도 편식이 심하다. 예를 들어 크리스티앙 보뱅작품이 좋으면 몰아 읽고 고레에다 히로카즈감독 영화라면 무조건 찾아서 보고 김효근작곡가의 노래라서 잘 부르고 싶다는 식이다. 다양한 작품을 읽고 여러 가지를 경험하는 것이 좋을 텐데, 아직도 한 가지에 푹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것을 보면 어릴 때 경험한 짝사랑이 남긴 후유증이 아닐까, 심히 염려되기도 한다. 너무 오래 습관이 되어서 이제 신앙이 되어 버린 건 아닐까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환경이나 사람을 만나는 것에 두려움이 많다. 한번 마음에 박히면 뽑아내기 힘드니 부담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내 경우만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 마음을 주면 감사보다 만만함을 더 느끼는 것 같다. 일방적인 감정이 아니라면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다정하게 대하는 사람이 귀하고 소중해야 마땅한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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