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쓰기
2023년 7월 12일은 나에게 특별한 날이다. 알라딘 서재에서 글을 쓰고 싶어 알라딘회원으로 가입한 날이기 때문이다. 퇴직 후 4년여 브런치(전나무 작가님 글을 좋아하고 이용한 작가님 고양이 사진에 반해있다)와 알라딘 서재(Syo님 돌아와요~)의 충실한 독자로 살았다. 20년이 넘도록 업무에 필요한 문서작성이나 이메일을 제외하고 글을 쓰지 않았다(고 쓰고 못했다로 읽는다). 그동안 쌓아둔 자산(글)이 전혀 없으니 진정한 ‘맨땅에 헤딩’ 되시겠다.
그나마 20년을 묵혀둔 말이 많았는지 일주일 동안 7개의 글을 등록했다. 짧은 글이라서 가능한 것 같다. 아주 조금 시원한 기분이 든다. 글쓰기 재료(책읽기)가 없으면 금방 바닥이 드러날 것 같아 부지런히 읽으려고 한다. 한동안 글을 자주 올려도 너그러운 알라디너들께서 ‘쟤 너무 달리는 것 아니니?’ ‘식상하다’ 하시지 않겠지만, 부족한 글을 최대한 다듬어서 올리려고 노력해야겠다.
글쓰기, 특히 詩는 나에게 애증의 대상이다. 밉다고 내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 가시덤불 같은 가슴을 무작정 안아주기도 힘들다. 내 작은 언덕에는 찔레나무가 무성하다. 장사익의 ‘찔레꽃’을 좋아해서 그 슬픈 향기를 고이 간직하고 싶지만, 현실은 찔레나무가 주변의 작은 꽃나무를 덮어버려 살아남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찔레나무와 사투를 벌인다. 두 개의 낫을 갈고 장갑을 끼고 전지가위까지 챙겨 언덕을 향해 돌진한다. 그리고 둘 중 어느 한쪽이 쓰러질 때까지 낫을 휘두른다.
시를 향한 내 마음이 찔레나무와의 전쟁처럼 사납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그만 싸우고 싶다. 다정한 마음이 무럭무럭 자라서 시가 되면 어떨까? 어릴 적 첫사랑이 몹시 아프다는 소식을 듣던 날, 파랗게 일렁이던 그 마음이 시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 아이(그는 평생 나에게는 어린 소년이다) 잘 버티고 있을까? 소식을 전해주던 친구가 내 표정을 읽으려고 하더라. 어쩌라고?
어렵게 시작한 글쓰기가 내 발목을 잡을까 두렵기도 하다. 쓰는 행위가 즐거움이 되지 못하고 숙제가 될까 걱정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부탁한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가능하면 콧노래도 부르면서 소풍하듯이 글을 써라, 나여. ‘가벼운 마음’에서 뤼시의 할머니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가장 중요한 건 즐거움이야. 누구도 너한테서 즐거움을 빼앗아 가지 못하게 해라.’
대학 시절 친구 한 명이 미국으로 시집가 살고 있다. 가끔 우리말로 얘기하고 싶다며 보이스톡으로 전화를 한다. 우리는 대학 시절에 있던 일화를 반복해서 얘기하고 또 얘기한다. 그 친구의 나이는 대학 시절에 머물고 있다. 최소한 나에게는 그렇다. 요즘 친구가 일기를 쓰고 있다고 한다. 우리말로 글을 쓰는 것이 때로 치유가 된다고 한다. 많은 필기구 중에 연필로 꾹꾹 눌러 쓴다고 한다. 사각사각 연필을 깎을 때 나는 소리가 좋단다. 일기를 쓰다 울컥해서 눈물이 흐르기도 한단다. 그러면서 내게 ‘글 좀 써. 네가 쓰는 글을 읽고 싶어.’라고 말했다.
한동안 마음에 파도가 일어 힘들었다. 친구에게는 아직 알라딘 서재 주소를 전송하지 않았다. 부끄러움이 나를 잠식하여 서둘러 서재 문을 닫아 버릴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